월드컵을 맞이하여 '예언가'들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이전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문어, '파울'이 자연사한 이후, 연달아 4 경기의 승패를 맞춘 러시아 박물관에서 사는 청각 장애 고양이의 활약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그 외에서도 중국의 길고양이, 일본의 문어 등 세계 각국에서 '점쟁이'로 활약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들 '생물'에 도전장을 내민 '무생물'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16강전이 진행되는 초반, 독일의 도르트 문트, 뮌헨 공대, 벨기에 겐트 대학 연구팀이 AI(인공 지능)을 활용해 10만번의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가 정확하게 일치하자 동물들을 앞지른 AI의 활약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예외적인 스포츠답게 AI조차 독일의 탈락과 우리의 우승을 예측해내지는 못했었다. 여전히 '고양이만도 못한 AI일까'


그러나 미래학자 레이커즈 와일은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대략 2045년 경으로 예측한다. 특이점이 오면 로봇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는다. 그러면 과거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듯이(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벌어질까? 생전의 스티븐 호킹 박사는 경고했다. '특이점이후 AI가 지구를 지배하려 할 것이므로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바로 이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ality), 인간이 AI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드라마'로 들어왔다. 지난 7월 9,10일에 걸쳐 방영된 <너도 인간이니?> 17회에서 20회차이다. 

특이점에 도달한 AI 남신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시아버지인 PK그룹 남건호(박영규 분)에게 빼앗긴 천재 과학자 오로라 박사는 아들의 모습을 꼭 닮은 AI 남신을 만들었다. 아들이 자라는 과정에 맞춰 업그레이드 된 남신, 드디어 성년이 된 아들의 모습을 닮은 아니 꼭 같은 남신Ⅲ를 완성했다. 그러던 중 엄마를 찾아 왔다 교통사고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아들 남신이 의식을 잃고, 엄마는 아들의 역할을 AI남신에게 맡긴다. 몇 번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 남신의 최측근이었던 지영훈(이준혁 분)의 지시를 따라 남신의 역할을 수행하던 AI 남신, 하지만 그의 앞에 경호원 강소봉(공승연 분)이 등장하면서 AI남신은 자꾸만 '통제'를 벗어난다. 

통제를 벗어나는 남신을 다시 지시의 규율 안에 가두기 위해 엄마가 선택한 건 '수동 모드', 엄마를 사랑했던(?) AI 남신은 기꺼이 엄마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기꺼이 선택했던 수동모드는 결혼식 당일 납치당한 강소봉 앞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연구실에 있는 인공 지능 차를 원격 조정하는 건 물론, 결혼식장을 박차고 뛰어나가 강소봉을 구해내기 위해 괴력으로 납치 차량을 멈추는가 하면,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오토바이 질주를 마다하지 않은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오로라 박사에게 이젠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이 모든 일을 사주한 서종길(유오성 분) 이사를 만나 자신이 확보했을 증거를 빌미로 '협박'까지 한다. 

그저 집안의 전기 시스템이나 깔짝거리며 청소 로봇과 친구 삼고, 자신이 검색한 데이터에 기초로 곤란한 결혼 계약을 피하기 위해 강소봉에게 키쓰를 할 때만 해도 그저 좀 능력있는 AI인줄 알았던 그러나 여전히 엄마와 지영훈에게 순종적이던 AI 남신Ⅲ가 이제 그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특이점'의 지점에 이른 것이다. 



인간의 지배를 받던 AI가 그 '지배'의 시스템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심지어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지점을 벗어나는 이 상황은 물론 극 초반부터 예고된 바 있다. 화염에 휩싸인 클럽에서 자신의 정체가 들킬 상황을 넘어 사람들을 구한다던가, 자율 주행 자동차 시험 주행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차의 난동을 막아선다던가 등등, 하지만 이건 애초에 AI 남신에게 주입된 인명 구조의 원칙이라던가, 엄마의 위로를 위해 울면 안아준다던가 등등의 기본 시스템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엄마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아들 AI 남신인 강소봉을 만나며 마치 인간 남자가 여성을 만나며 변화하듯 감정이 없어 느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행동들을 하며, 이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엄마마저 거스르며 독자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이 장면은 인류의 미래의 화두인 '로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그 특이점'의 '위기이다. 

그저 '로코'의 뻔한 캐릭터가 아닌 
하지만 <너도 인간이니?>는 이 인간의 위기를 '전형적인 로코'의 설정으로 넘긴다. 엄마는 '천재 과학자'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AI 남신을 불편해 한다. 그 '불편함'의 근원은 AI의 월권이 자기 아들의 자리를 위협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더구나 아들의 치료 조차 위기에 빠진 상황, 그런 엄마의 인간적인 우려로 인해 자신이 만들어 낸 AI의 '킬스위치'를 만지작거린다. 

즉, 과학적 담론과 위기에 대한 고민이어야 할 이 상황을 드라마는 전형적인 '로코'의 '관계적 위기'로 치환한다.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는가라는 화두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와, 그 AI를 사랑한 여주인공과 AI에게 친구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된 지영훈, 그 맞은 편에 질시하는 '인간 엄마'의 감정적 대응을 포진시키며 '관계'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차라리 과학자로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면 어땠을까? 세상이 로봇의 진화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AI를 만들어 낸 당사자 엄마와 아빠라는 데이빗의 반응은 단순하다. 

<로봇이 아니야> , <너도 인간이니?> 등 '로봇'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드라마들이 트렌드에 맞춰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은 AI가 현실이 된 세태를 반영하여 드라마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활용'의 방식에 있어 지극히 '로코적 설정'의 수준에서 머무르며 '소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AI인 자신을 '활용'하는 대상을 넘어 '인정'해주는 강소봉에 대해 '시스템 에러'를 일으킨 AI 남신Ⅲ가 그 이후 보인 기능성 로봇의 경지를 넘어선 활약은 그저 '설레는 로코 남주'의 캐릭을 넘어서,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의 대상이 되어야 할 문제다. 



<너도 인간이니?>는 '도구적 존재'인 AI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구현하며 AI를 극중 가장 감정이입되는 캐릭터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인간적 형체를 지닌 그를 모두 '이용'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로 자처했던 데이빗(최덕문 분)마저도 알고보니 남건호의 하수인이었듯이. 하지만, 최근 AI의 연구에서 가장 고민 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AI의 '도덕성' 문제이듯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이른 AI 남신은 그저 불쌍한 로봇을 넘어, 통제를 벗어난 그가 보이는 실천적 능력들이 '딜레마'의 대상인 것이다. 그저 '뻔한 로코의 공식에 따라'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미를 '뿜뿜'하는 캐릭터로의 단선적 전개는 외려 <너도 인간이니?>라는 드라마의 설정을 스스로 한정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부디 가장 '감성적인 AI' 남신이라는 캐릭터를 그저 착한 남자의 캐릭터로 소모하지 않고, AI가 가진 딜레마를 극적으로 잘 활용하여 시청률과 상관없이 AI란 소재가 잘 소화된 드라마로 남아주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7. 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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