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올린 바바리, 그것도 80년대 유행하던 목깃의 컬러가 다른 색으로 된 나그랑 스타일의 올드 패션, 그걸 입고 김사부(한석규 분)가 휘적휘적 걸어가면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한 선율의 전자 기타음, 그리고 등장하는 빌리 조엘의 목소리, 바로 <낭만 닥터>의 ost 'the stranger'가 드라마와 어울려지는 순간이다. 


Well we all have a face That we hide away forever

글쎄요 우리 모두는 영원히 숨기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And we take them out and Show ourselves

그리고 우리는 그 얼굴을 내밀고 우리 자신을 보여주죠

When everyone has gone

Some are satin some are steel

어떤 얼굴은 악마이고 어떤 얼굴은 철판이며

Some are silk and some are leather

어떤 얼굴은 비단이고 어떤 얼굴은 가죽이에요

They're the faces of the stranger

그것들은 낯선 사람들의 얼굴이에요

But we love to try them on

하지만 우리는 그런 얼굴을 하기 좋아하죠





드라마는 이제는 의학계에서 추방된 부용주, 그리고 이젠 돌담 병원 김사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김사부는 빌리 조엘의 노래 제목처럼 이방인이요,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사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이사장을 모시고 온 강동주(유연석 분)의 조인트를 까며 그를 돌려보내고, 위기의 윤서정(서현진 분)을 대신하여 자신의 희생을 자청하는가 싶더니 사진 한 장으로 일갈을 하며 서정을 방에서 내모는 김사부의 진짜 얼굴, 심지어 그를 몰아내려는 도윤환(최진호 분) 등은 그를 사이코패스라고 까지 모는 상황에서 그의 진심은 더더욱 모호해지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10회를 마친 <낭만 닥터>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의 돌담 병원 속칭 '사부'처럼, 회를 거듭할 수록 부용주의 진짜 모습이 '사부'라 믿고 싶어진다. 아니 믿어지게 된다. 왜?

the stranger 김사부 
그건 그의 앞뒤 모를 얼굴이 아니라, 상황, 상황, 아니 위기의 상황에서 그가 선택하는 '선의'의 본질에 대한 믿음이 깊어가기 때문이다. 
본원의 모략에 의해 돌담 병원에 들이닥친 감사팀은 결국 김사부의 치료 행위를 막는데, 강동주도, 도인범(양세종 분)도 없는 상황에서 김사부는 기꺼이 불법임을 감수하면서도 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박은탁(김민재 분)이 나서서 주먹질을 해보아도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6중 충돌 교통사고 환자까지 들이닥치는데. 

드라마틱하게도 드라마는 바로 그 위급 환자 가운데 병원 감사팀의 딸을 끼워 넣는다. 이 작위적인 상황, 감사팀은 당황스러워하지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해야하는 고지식한 감사팀장은 자신의 일을 포기할 수 없다 하고, 그런 그에게 김사부는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라고, 나는 나의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김사부의 선언, 자신의 일이란 오직 한 가지, '살린다', '환자를 살린다' 뿐이라고. 

이사장을 통한 편법적 선의 대신 김사부가 선택한 것은 원칙, 의사로서의 원칙이다. 그리고 미담처럼, 감사 직원의 딸을 수술을 통해 살려낸다. 당혹스러워 하며 원하는게 뭐냐고 묻는 감사 직원에게 김사부가 던지는 한 마디, '못나게 살지는 말자'고. 

다른 때와 달리 10회 엔딩 부분, 김사부의 진료실에서 윤서정은 그의 오래된 테잎 하나를 튼다. 거기서 울려퍼지는 건 신디 로퍼의 'true colors'

You with the sad eyes
슬픈 눈을 한 당신

don't be discouraged
용기를 잃지 마세요

oh I realize
전 알 수 있어요

It's hard to take couragein a world full of people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용기를 가지는 건 쉽지가 않죠

You can lose sight of it all
당신은 그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and the darkness inside you can make you feel so small
당신 안의 어둠이 당신을 작게 느껴지게 할수 있어요

But I see your true colors shining through 
하지만 나는 당신 안에서 빛나는 진짜 색깔을 볼 수가 있어요

I see your true colors and that's why I love you
나는 당신의 진정한 색깔을 보고, 그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에요

so don't be afraid to let them show your true colors
그러니 당신의 진정한 색깔을 다른 사람 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김사부의 'true colors'
때로는 위악적이고, 종종 모질고, 그래서 사이코패스라는 험담이 어색하지 않을 김사부이지만, 시청자들은 그의 의료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진짜 얼굴과 색깔에 매료된다. 그 진짜 얼굴은 10회 드러난 감사 직원과의 해프닝에서 보여지듯 못나지 않은 인간됨이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인간적'이라는 그 막연하지만, 이제는 마치 올드팝처럼 낯설어지는 선의. 마치 부용주가 걸친 오래된 바바리처럼 경쟁과 욕망이 점철된 세상에서 자꾸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인간적 선의, 그래서 '낭만'이란 접두어가 붙여지는 선의가 드라마 <낭만 닥터>의 주제 의식이다. 

하지만 그 김사부의 선의는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돌담 병원에 들어온 환자는 무조건 살린다는 '용기'있는 모토이지만, 이사장을 이용하려는 강동주의 얕은 수에 김사부는 말한다. 지금은 자신의 편인 듯 보이는 이사장은 그저 '돈주'일 뿐이라고.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경계가 없는 도윤환을 원장으로 앉힌 그의 본질을 혼돈하지 말라고. 그가 자신을 필요료 하는 건, 그저 자신의 수술뿐이라고. 

매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권력과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곁들인 나레이션과 부제를 곁들인 드라마는 소박한 인간적 주제 의식과 달리, 이 사회에 맴도는 어설픈 편먹기와 선의를 경계하며, 진짜 '인간주의'를 향해 성큼성큼 나간다. 

주중 드라마로 물론 강동주와 윤서정의 긴장넘치는 사랑이 곁들여 지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아님에도 일일 드라마의 고지를 넘긴 채 20%를 훌쩍 넘긴 이 드라마의 장점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와, 그것을 관통하는 휴머니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by meditator 2016. 12. 7. 15:19

시대 착오적인 컨셉으로 이어가던 <진짜 사나이>가 종영한 후 그 뒤를 이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첫 방송은 그래도 앞에 방영된 <복면 가왕> 덕분일까 6.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동시간대 <런닝맨>(6.2%)를 앞지른 수치상으로만 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성과이다. 하지만 과연 꼴찌가 아닌 시청률로 프로그램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또, 또, 또 돌아온 몰매 카메라
제목은 거창하게 '은밀하고 위대하'다 했지만, 실상 프로그램은 '돌아온 몰래 카메라'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몰래 카메라'라고 하면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바로 이경규라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전국민적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구가하게 했던 90년대의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실상 내용은 출연한 연예인을 속여 먹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 준비와 과정에서 보이는 '이경규'의 연출력이 뻔한 프로그램의 재미를 담보해 냈었다. 그러기에 이경규가 출연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나 <남자의 자격> 등 방송마다 양념처럼 '몰래 카메라'가 등장했었고, 2016년 설에는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시 또 '돌아온'이란 수식어를 달고 방영되기도 했다. 

누군가를 속여 넘기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그 과정이 중계된다면? 그러기에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는 마치 '성악설'에 기초하듯 뻔한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시청자를 '솔깃'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된다. 그래서일까? 설 특집으로 마련된 <몰카 배틀-왕좌의 게임>은 11%의 양호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젠 그뿐, 특집용을 넘어선 <마이 리틀 텔레비젼> 속 코너 속의 코너로 등장했던 데프콘이나 김완선의 몰래 카메라는 혹독한 반응으로 오죽하면 이경규가 자신이 준비한 몰래 카메라 대신 축구 중계를 하는 해프닝을 벌였을까.

하지만 그렇게 코너 속의 코너에서도 쉽지 않았던 몰래 카메라가 무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고정 코너로 등장했다. 그것도 그 주인공이라 할 이경규도 없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란 이름으로. 



새로 시작한 <은밀하게 위대하게>, 은밀하게 다가가 위대한 작전을 수행한다는 '타깃' & '의뢰인' 맞춤형 프로그램이라 내세웠지만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 프로그램이 '몰래 카메라'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 차린다. 하지만 거기에 이경규는 없었다. 굳이 이경규가 없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한 이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은 새 mc로 윤종신-존박-김희철-이수근-이국주 등의 집단 mc 체제와 설 특집에서 등장했던 '배틀' 방식을 꾀한다. 거기에 나름 몰래 카메라와의 차별성을 주기 위해 '의뢰인'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가 유행할 당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당당하게 이경규가 없는 몰래 카메라를 프로그램화 하듯 sbs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꾸러기 카메라' 등을 진행했지만 지금도 기억되는 건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아류의 우려를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다시금 반복한다. 그리고 역시 '아류'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은밀하지도 않고, 위대하지는 더더욱 않고 
실제 방송은 비틀즈를 좋아하는 이적 앞에 분장한 링고 스타가 등장하는 것과 타로 카드를 좋아하는 설현에게 그 패를 이용하여 갖가지 해프닝을 벌이는 두 가지 내용이 방영된다. 이 내용에 대한 평가에 앞서 과연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몰래 카메라가 인기를 구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도 회자되듯이 90년대 당대의 스타 최진실, 고현정에서 소설가 김흥신, 과학자 조경철에서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방송인 한선교, 이계진 등에 이르기까지 각계를 망라한 핫한 인물들이 몰래 카메라의 희생양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바로 이런 트랜디한 인물들의 뜻밖의 모습에 열광했고, 당한 당사자는 억울했지만 당대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몰래 카메라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유명도를 가늠해볼 척도가 되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프로그램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정규 프로그램화 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매주 그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프로그램의 트렌디함을 답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연 첫 회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그런 화제성을 몰고 왔는지에 대해서 아마도 그 답에 대한 고민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더 깊으리라 본다. 



또한 남을 속여먹는 것이 무조건 재밌다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첫 회 <은밀하게 위대하게>각 솔선수범해서 보여주고 말았다. 분장한 유명인이란 컨셉도, 타로 카드와 같은 운명론의 컨셉도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이경규가 몰래 카메라로 속여 넘기기 위해 연출했던 긴장감을 새로운 mc와 제작진은 전혀 자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재미 중 반은 누군가를 속인다는 그 야릇한 긴장감의 조성이고, 그 부분에서 이경규의 걸출한 능력이 있는 건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mc진은 누구랄 것도 그 면에서 아쉬움을 보인다. 

무엇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첫 방을 두고 재밌다 재미없다를 떠나, 일요일 밤 온가족이 둘러 앉아 볼 주말 예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시대 착오적인 군대 문화 속에 연예인을 끼워넣고 어거지를 부리던 <진짜 사나이> 대신 등장한 '속이기' 프로그램이라니. 제작진은 안이하게 '몰래 카메라'의 흥미에만 주목하고 90년대 이 프로그램이 웃기기에 혈안이 되어 교육 현장과 애국가 등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로 결국 종영을 하게 된 문제점은 짚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안그래도 전국민이 통치자와 그 이너 서클들이 감쪽같이 국민을 속여 넘긴 것에 분노하여 매 주말 마다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이 시점에 공중파 주말 황금 시간대를 저런 식의 성의도 없고, 아이디어는 더더욱 없는, 무엇보다 시대 착오적인 프로그램을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by meditator 2016. 12. 5. 11:28

드디어 신이 강림하셨다. tvn으로 간 김은숙 작가의 신작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렇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간 tvn금토 드라마의 고지였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방 시청률(6.7% 평균,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을 너끈히 넘겼고(6.9%), 2회만에 수도권 10%를 넘기며(10.0234%)를 넘기며 신기록을 갱신했다. 역시 명불허전 김은숙이라는 성공 신화를 이어나갔다. 




김은숙과 이응복의 절묘한 콜라보 
물론 <도깨비>가 첫 방영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데 있어 역시 김은숙이라고만 한다면 아쉬울 사람이 있다. 바로 첫 회 여성은 물론 남성 시청자들의 눈마저 사로잡을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환타지 사극으로서의 면모를 가감없이 선보인 이응복 연출이 그 주인공이다. 2013년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최고 시청률 25%를 넘겼지만 작품 초반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이응복 피디 연출의 <비밀>에 작품면에서나 시청률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김은숙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적과의 동침'. 다음 작품에서 방영 채널을 kbs2로 옮긴 김은숙 작가는 이응복 피디를 연출자로 합류시키며 <태양의 후예>라는 2016년 최대의 히트작을 빚어낸다. <태양의 후예>는 <상속자들>에서 김은숙 작가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스토리 텔링의 부실함을 김원석 작가의 든든한 원작으로 채우고, 거기에 그리스를 배경으로 이른바 '응복내'라 속칭 칭해지는 이응복 피디의 예술적 미쟝센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킨다. 덕분에 결국은 의사와 군인이 연애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리스의 풍광과 외국의 전장에서 피어나는 인류애라는 정서를 더한 <태양의 후예>는 그 평범한 이야기를 보편적 인간애의 고급함으로 전달한다. 

그렇듯 12월 2일 첫 선을 보인 <도깨비> 역시 김은숙이라는 이름보다는 이응복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올릴 오프닝을 선보인다. 어린 왕의 시샘으로 역적으로 몰려 죽음에 이른 장수의 서사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지만, 그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cg로 버무려져 환타지 사극으로 등장하는 순간, 신선하고도 웅장한 세계로 시청자를 흡인시켜 버린다. 

이 웅장한 환타지 사극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 예전 만화에서 등장했던 오래된 빗자루나, 그릇들이 변신한 깨비깨비 도깨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 옛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장수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신격화시켜 무속의 신으로 등극했던 최영 장군이나, 삼국지의 관우같은 '신'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억울함과 백성들의 숭배라는 역설적 조건을 '도깨비'의 필요 조건으로 등장시키고, 거기에 전장에서 수많은 피를 보았던 장수라는 존재론적인 한계를 몸에 칼을 꽂은 채 죽음을 향해 영생의 세계를 떠도는 원혼이라는 절묘한 운명론적인 장치로 더해 '도깨비 김신(공유 분)'라는 한국적 신을 완성시킨다. 오랫동안 도깨비라는 작품을 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 운명적 서사와 캐릭터에서 극 초반 단박에 시청자의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 그 영생의 저주를 풀 인물로서 그의 신부로 등장하는 '무명'이란 이름의 죽어야 했을 운명의 소녀 지은탁(김고은 분), 그녀의 슬픈 운명 역시 도깨비의 신부답게 시선을 잡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을 쫓을 저승 사자 (이동욱 분)와, 아직은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캐릭터만으로도 두드러진 써니(유인나 분), 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가는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도깨비>는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신선한 서사, 그 서사를 압도하는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2회에서 분명해졌듯이<도깨비>의 본질은 바로 슬픈 운명의 신인 도깨비 김신과 그 운명적 상대자 지은탁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군인에서 신까지, 구원자들
여기서 한번쯤 주목해야 할 것은 2016 올 한 해 시청률 고공행진을 갱신한 작품들이 주인공들의 면면이다. 앞서 언급한 최고 시청률 38.8%의 <태양의 후예> 속 남자 주인공은 전 국민에게 졸지에 '말입니다'란 어색한 심지어 이제는 군대에서조차 쓰지 않는 군대 용어를 습관으로 만든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기 분)이다. 그는 특전사 대위라는 사실상 군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직책이 무색하게 드라마 속에서 도대체 안되는 것이 없는, 심지어 총에 맞고도 다음 날 바로 실전에서 활약하는  능력자로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는 물론 대다수이 여성들을 매료시킨다.

유시진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최고 시청률 23.3%의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박보검 분)이다. 그 역시 여주인공을 위해서라면 세자의 신분으로 사신에게 칼을 겨눌 정도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와 졸지에 자웅을 겨루게 된 공중파 수목 드라마의 <푸른 바다의 전설>의 주인공은 셜록의 능력치에 최면술까지 구사하는 능력자 사기꾼이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 그의 진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2회 마지막 엔딩씬에서이다. 이모의 빛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당한 은탁은 간절히 김신을 원하고, 그에 응대하듯 납치 차량이 달리던 가로등이 하나씩 꺼져간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등장하는 검은 실루엣, 그 씬만으로 이 드라마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아마도 김신은 죽을 운명의 무명이었던 은탁이란 존재로 부여하듯 그녀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이렇게 고공 시청률 행진을 보이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능력자다. 2016년만이 아니다. 일찌기 전설을 썼던 <푸른 바다의 전설> 박지은 작가의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은 외계인, 그리고 그에 앞서 <구르미 그린 달빛>의 모태가 된 <해를 품은 달>은 조선의 가상 왕이었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면서 '로맨스'드라마들은 그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으로 향상되는 것과 더불어, 남자 주인공의 능력치도 업그레이드 되며,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사랑을 수행한다. 시청자들은 외계에서, 해외의 전장으로, 과거로, 그리고 이제 신계까지 넘나들며 그 능력으로 여성을 구원하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으로 행복해진다. 현실이 암울할 수록,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더욱 능력치를 갱신하며 이 드라마를 보는 이들을 위무한다. 과연 이 '블록버스터급 위로의 사랑'이 어디까지 펼쳐질 지, 신 그 이상의 사랑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물량과 스타로 대형화된 한국형 로코물의 진화 역시. 

by meditator 2016. 12. 4. 18:37

글을 쓰기에 앞서 밝혀둘 것이 있다. 제목이 '당신의 그 어떤 모습'에, '박사모'가 사랑하는 그 어떤 분(?)의 '분노가 치밀어오르게 만드는' 모습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일단 그 어떤 분의 모습이 '주체'적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몹시도 낮거니와, 그 어떤 모습으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통'을 받게 만드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은 이 리뷰의 주제 의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모습'이란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내려 하는 노력으로, 그 분(하마터먼 평소 하듯이 ㄴ자로 시작할뻔한)과는 전혀 무관하다. 


일찌기 <아엠샘>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거의 '국민 아역'급으로 등장했던 다코타 패닝의 이쁜 동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엘르 패닝, 하지만 어느덧 언니보다 더 자주 작품을 들고 우리나라를 찾는 배우가 되었다. 그녀의 2015년작 <어바웃 레이>는 또 한 편의 '퀴어' 영화처럼 소개된다. 하지만, 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어바웃 레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간의 관용과 이해, 나아가 인간의 포용에 대한 것이다. '가족'이 여전히 절대 선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레이'의 가족들이 부딪치는 문제를 통해 진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볼 만한 영화인 것이다. 



레즈비언 할머니, 싱글맘 엄마, 성전환 손녀?
영화는 제목처럼 '레이(앨르 패닝 분)'의 문제로 시작한다. 아직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16세 소년? 소녀? 레이 혹은 아만다는 헷갈리는 그녀의 이름처럼 혼돈스런 성 정체성을 가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인 레이는 헷갈리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치마 입기를 부끄러워했고, 지금도 가슴에 브래지어 대신 압박 붕대를 칭칭 감고 다니며 인형 놀이 대신, 카레이서, 우주 비행사를 꿈꿨던 아이는 이제 단호하게 자신의 성을 '남성'으로 선택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16살 어릴 적 이름이었던 여성성이 분명한 아만다라는 이름 대신 레이임을 주장하는 이 미성년이 성정체성의 변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성전환 요법을 위해 함께 상담을 하러 간 사람들은 엄마 매기(나오미 왓츠 분), 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 분), 그리고 할머니의 연인인 또 한 사람의 여성 프란시스(린다 에몬드 분)였다. 할머니의 연인을 제외한 모녀 삼대는 레이를 위해 기꺼이 상담에 응했지만, 막상 동의에 이르러 갈등을 겪는다. 

평생을 레즈비언의 권리를 위해 싸워왔던 할머니지만 막상 여성에서 남성으로 되려는 레이에게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되냐며 반문한다. 싱글맘인 엄마 매기는 자신의 성을 당당하게 선택하려는 레이가 자랑스럽다 말하지만, 막상 그 동의가 자신의 몫이 되자, 훗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로 모를 레이가 그 책임을 엄마에게 물으면 어쩔까 고뇌한다. 

레이의 성 선택, 그에 대한 어른들의 동의로 비롯된 문제는 영화의 시선을 레이와 가족의 문제에서, 어쩐지 아직도 레이보다도 덜 주체적이어 보이는 싱글맘 매기로 옮긴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싱글맘이지만 엄마 혼자 레이를 만든 건 아닌 터, 또 다른 보호자인 법적인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레이의 아버지를 찾아나선 매기, 여기서 비로소 <어바웃 레이>의 속살이 드러난다.

어릴 적부터 홀로 자신을 키우는 엄마와 레즈비언인 할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삶의 혼돈을 느꼈던 레이는 그 혼돈으로 부터 스스로 내린 삶의 결단이 서둘러 남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호한 결정을 위해 찾아간 생부, 그러나 거기서 마주한 것은 자신의 보호자라 생각했던 엄마의 쉽게 수용할 수 없는 과거, 그로 인한 자신의 탄생과 외로운 성장이다. 이는 성의 결정에 앞선 레이의 숨겨진 분노를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늘 삶 앞에서 도망치듯 살아온 매기가 어쩔 수 없이 도망치고 싶었던 삶을 직시하게 된다.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하는 딸, 지난 과오를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엄마, 그리고 한때 그 누구보다 전투적이었지만 이젠 그 모든 것에 '잔소리쟁이'나, '참견꾼'이 되어가는 할머니, 이 평범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의 사연은 일찌기 다짜고짜 스무 살 넘은 애인을 집에 데려다 놓은 남동생이 등장하는 우리 영화 <가족의 탄생(2006)>이나, 쪽팔리는 가족 구성원의 사연을 다룬 <좋지 아니한가(2007)>와 콩가루 집안의 더 콩가루같은 스토리였던<고령화 가족(2013)>과  유사한 가족 문제이다.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쉽게 용인되어 지지 않는 성과 관계의 문제들을 '가족'이라는 장을 통해 담론화시키는 것이다. 



가족의 이름으로 
그저 남성이냐 여성이냐 선택의 문제가 심각했던 레이네 가족의 문제는 이제 형과 동거하며 그 동생의 아이를 낳게 되어버린 매기의 문제에 이르면 대책이 없어져 버린다. 하지만 그 대책없음을 다시 보면, 여전히 자신을 마주하기 두려웠다는 매기는 그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신이 가장 잘한 일은 레이를 낳은 것이라 하듯, 레이를 낳고 레이의 엄마로 성실히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서야 매기와 레이 모녀를 방출(?)하고자 하는 할머니 돌리 역시 그런 매기를 품으며, 이젠 과보호가 되었을 지언정 이 모녀 삼대의 보호자로 든든하게 자리매김해왔던 것이다. 

결국 영화는 '훈훈한 가족' 영화처럼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 막판의 급격한 화해 모드가 가능한 것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건 엄마로써, 할머니로써 성실했던 그녀들의 삶으로 인해서이다. 그리고 그 '성실'함에는 아만다가 레이가 되어도, 매기가 막장극의 주인공이 되어도 내 손녀와 내 딸로, 그리고 내 엄마와 할머니로써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관계의 성실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영화는 우리 영화 속 가정의 남보다 못한 아귀 다툼은 없다. 대신 몸부림치고 혼란스러워할 때도 책임지고 부등켜 안는 '가족'이 대신한다. 그것이 싱글맘이든, 레즈비언 부부이건 말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어바웃 레이>는 '가족'으로 대접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레이의 성 정체성으로 인한 퀴어 영화가 아니라, 평생을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 당당했던 그래서 사고친 딸도, 이제 레즈비언 대신 남성을 선택하는 손녀조차 수용하는 돌리와 그녀의 연인이 보여준 노년의 모습으로 '퀴어' 영화이고, 딸의 문제를 통해 자신을 직시하고 이제서야 엄마로써, 한 사람으로 당당해지는 매기의 여성 영화이다. 
by meditator 2016. 12. 3. 17:15

연일 공중파 주중 미니 시리즈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월화 드라마 쪽은 <낭만 닥터(sbs)>가 21.7%로 20%의 고지를 넘기며 기염을 토하고 있는 반면, 시청률 불패의 수애에게 3.5%를 안기는 <우리집에 사는 남자(kbs)>와 6.2%의 <불야성(mbc)>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목 드라마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허술한 스토리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전지현, 이민호 두 스타를 앞세운 <푸른 바다의 전설>이 18.9%로 20%의 고지를 노리고 있는 반면, <역도 요정 김복주(mbc)>와 <오 마이 금비(kbs)>는 각각 4.6%와 5.5%로 좀처럼 반등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대중적인 스토리, 의학 드라마와 로맨티 코미디, 그리고 스타라는 잘 짜여진 조합의 부익부의 점령으로,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잘 기획된 상품의 독점이라는 공중파의 주중 드라마 라인으로 퉁치기엔 아까운 작품들이 있다. <오 마이 금비>가 그중 한 작품이다. 

미니 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에 빛나는 
<오 마이 금비>는 kbs에서 주최한 경력 작가 대상 미니 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이다. 그 당사자인 전호성 작가를 도와 <장영실>의 이명희 작가가 합류한 드라마로, 3회부터는 전호성 작가의 단독 집필로 이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할 사람도 있겠다. 극본 공모 당선작이라는데, 겨우 '치매'와 '시한부'를 다룬다고? 그렇다. <오 마이 금비>는 그 명칭조차 생소한 니만피크 병에 걸린 열살 소녀 금비가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노인 치매도 아니고 아동 치매를 등장시킨 이 드라마는 벌써 그 설정만 봐도, '누선'을 작정하고 자극하겠다는 '신파' 드라마인 듯하다. 그런 뻔한 드라마가 당선작이라니?

이제 6회를 마친 <오 마이 금비>, 여전히 시청률은 6%의 고지조차 좀처럼 넘지 못한 채 5%의 영역에서 머물고 있지만, 왜 이 드라마가 극본 공모 당선작이었는지는 충분히 증명해 내고 있는 중이다. 

니만피크 병에 걸렸다는 열 살 소녀 금비(허정은 분), 하지만 아픈 소녀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기억을 잃을까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는 아이이지만, 일찌기 어른답지 않은 보호자들을 만난 소녀는 웃자라 어른 뺨치게 어른스럽다. 그 '어른스럽다'는 방식이 되바라지거나, 당돌하게 말을 어른 뺨치게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여전히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 돌보기를, 아니 심지어 자신을 돌보고 주변을 돌보기조차 '성숙'하게 해내어 '누선'을 자극하는 아이 어른이다.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는 니만피크 병 주치의는 보호자로 추정되는 모휘철(오지호 분)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사기도 제대로 못치는 휘철의 사정을 아는 금비는 보육원 행을 스스로 결정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올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스스로 담담하게 처리해 나가고자 한다. 이미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 조들호의 딸로 나와 간절한 부녀애를 재연했던 똘망한 허정은의 돋보이는 연기로 대번에 금비는 안쓰럽지만 대견한 아이의 사연으로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저 처연한 아이 어른의 사연만으로 드라마가 채워지는 건 아니다. 커다란 한옥에서 값나는 고미술품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로 웃음을 잃은 고강희(박진희 분)와 모휘철의 수목과학원 연구사와 사기꾼이 조합이라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도, '가끔은 빛날 때가 있다'는 그 대사 한 마디를 '상실'이란 공통 분모로 설득시켜낸다. 

아이같은 어른과 어른 아이가 빚어내는 
드라마 속 어른들은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어른'들이지만, 그들은 어른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을 짖누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그 시절을 넘어 성장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는 아이 어른이다. 그런 아이 어른들 앞에 불현듯 나타난 어른 아이 금비를 통해, 금비를 어쩌지 못하다가 아이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이제 '아빠'라 부르라며 '어른'이 됨을 수용하는 과정을 드라마는 차분하게 그려간다. 



'치매'라는 불가항력의 병을 다루는 만큼, 매회 드라마는 누선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며 흘리는 눈물은 그 예전 '엄마없는 하늘 아래' 식의 애 어른을 보며 흘리는 '신파'의 눈물과는 다르다. '상처'를 지켜봐주는 눈물, 그리고 그 상처를 스스로 담담하게 수용하는데서 오는 안쓰러움의 눈물이 한 해를 마감하는 몇 안되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즉 상처를 드러내어 토해내는 '한풀이'가 아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데서 오는 교감과 수용의 '힐링'이 뜻밖에도 아동 치매를 다룬 <오 마이 금비>의 힐링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파'조의 드라마가 '힐링' 드라마로 거듭난 것에는 여주인공 금비 역의 허정은을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김영조 피디의 감성 가득한 연출이 한 몫을 한다. 뜻밖에도 <징비록>, <장영실> 등의 사극을 주로 연출했던 김영조 피디는 <오 마이 금비>의 전작 <공항 가는 길>이 드라마의 주제를 돋보이는 연출로 드라마 속 등장했던 도시와 제주의 감성을 한껏 살려냈듯이, 다시 한번 '신파'을 '감성'으로 전환하는 연출의 묘를 재연해 낸다. 덕분에 늦가을, 그리고 초겨울의 정취와 함께 금비와 휘철의 부녀, 그리고 강희의 상처는 그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비록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로 빛을 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이 저물지 않을 은근한 매력을 빛낸다. 

by meditator 2016. 12. 2. 16:29

동화, 글자 그대로 아이들이 읽은 이야기 책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동화' 앞에 '잔혹'이란 수식어가 붙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 알려진 그림 형제의 전래 동화집,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예전에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이 목차의 동화책들이 구비되어 있는 동화전집이 아이들의 서가를 채우곤 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였던 이 이야기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보고'가 등장하며,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잔혹'한 일면을 숨기고 있다는 '잔혹 동화'로서의 버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니 애초에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결론의 주술에 눈이 어두워져서 헐리웃을 중심으로 환타지 버전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들 잔혹 동화 버전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름다움을 질시하여 의붓 딸을 죽이려는 등의 끔찍한 설정은 굳이 버전을 운운하지 않아도 잔인한 설정들이다. 실제 언어학자였던 그림 형제는 '이야기가 전하는 교훈'보다 전해내려온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으며, 기독교 신자로 때론 채록을 하다 분노를 했을 지언정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불문하고, 그리고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들 동화의 요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가장 날것의 '욕망'이 아니었을까? 바로 이 욕망의 서사를 솔직하게 24일 개봉한 <테일 오브 테일즈>가 재연한다. 

욕망의 서사, 그 속살을 드러내다 
이탈리아 시인 잠바티스타 바실레의 설화집 <테일 오브 테일즈Lo cunto de li cunti >를 영화화한 <테일 오브 테일즈>는 말 그대로 '이야기의 이야기'인 셈이다. 나폴리 방언으로 씌여지는 바람에 200년 동안 묻혀 있던 이 책은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후 그림형제, 안데르센, j,r톨킨 등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의 원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원형'의 속살을 감독 마테오 가로네가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에서는 그렇다. 착하지만 가난한 노파는 우연히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젊음을 얻은 후 왕비가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오래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던 왕비는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아이를 낳아 아이와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괴물에 납치되었던 공주는 멋진 기사의 도움으로 괴물을 물리치고 그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테일 오브 테일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해피엔딩'의 신화를 무참히 깨부순다. 세 가지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시작은 아이를 갖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롱트렐리스 여왕(셀마 헤이엑 분)이다. 그녀를 사랑한 왕은 그들을 찾아온 정체모를 검은 두건을 쓴 마법사의 말을 따라 바닷속에 잠자는 괴물을 사냥한다. 사냥 과정에서 괴물의 목숨을 담보한 댓가로 '왕'이 죽고, 아랑곳없이 심장을 아귀아귀 먹어댄 왕비는 단 하루 만에 왕자를 생산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작한다. 바다괴물 심장의 기를 받은 사람은 왕비 단 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리를 한 처녀 역시 왕비와 같은 날, 왕비가 낳은 아이와 쌍둥이라 해도 믿을 똑닮은 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또 다른 욕망의 서사는 또 다른 왕국이다. 바다 괴물을 잡으러 갔다 죽음을 당한 왕의 장례식에서 조차도 여색에 빠져있던 스트롱클리프(뱅상 카셀 분) 왕의 왕국, 난잡한 주연에 빠져있던 왕의 귀에 지상의 것이 아닌 듯한 고아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를 찾아 하던 식으로 추파를 던진 왕, 그 추파의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사의 목소리를 지닌 염색쟁이 노파 자매였다. 오랫동안 갇혀 지내다시피 하며 염색을 하며 살던 언니 도라는 왕이 던진 추파를 기회로 잡고 '인생 역전'의 기회로 노린다. 

마지막을 여는 건 황량한 허허벌판 그 중 한 봉우리에 우뚝 솟아있는 외딴 왕국, 그 왕과 공주의 이야기다. 공주의 연주에도 아랑곳없이 벼룩잡기 놀이에 빠져있던 왕은 결국 벼룩잡기를 벼룩 키우기 취미로 전이시키고, 그 벼룩놀이의 결과는 예상치못하게 괴물에게 공주를 넘겨주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번갈아 진행되는 세 이야기 속 욕망을 추동하는 건, 자손과 생식, 사랑과 결혼, 젊음과 우정 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정서들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이런 요소들이 그 '만족'을 위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나타나는 '잔혹한 부작용'들을 영화는 솔직하게 드러낸다. 모성이란 이름의 내 자식만을 위한 끔찍한 집착, 사랑이란 이름으로 씌여지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추악한 욕정과 그 욕정에 화답하는 또 다른 욕망, 그리고 노년의 나이에도 견뎌낼 수 없는 욕망의 사다리.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욕망과 욕망의 결과물들까지. 

욕망을 에스컬레이팅하는 권력
하지만 <테일 오브 테일즈>를 그저 '욕망'에만 방점을 찍으면 설명이 부족하다. 그들이 그렇게 부조리한 욕망을 분출하는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중세로 여겨지는 시대의, 서로 다른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세 왕국, 그리고 서로 다른 세 명의 통치자들, 하지만 영화 속 그들 누구도 한 왕국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이 가진 권력은 그들이 뿜어내는 욕망의 '에스컬레이팅(escalating)' 도구이다. 스트롱클리프 왕은 자신이 왕임을 강권하며 노파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그러다 하룻밤을 보낸 여인이 추한 늙은이인 것을 확인하자 담박에 창밖으로 던져버릴 것을 명령한다. 이런 식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오로지 자신의 자신의 욕망과 집착과 재미를 위해 쓴다. 



그러나 그 왜곡된 욕망이 낳은 결과물은 초라하다. 집착도, 사랑도 , 그 어느 것도 그들이 결국 손에 쥔 것은 없다. 아픈 하이힐스 왕을 치료하는 명목으로 그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그 욕망에 빨릴 뿐이다. 욕망으로 치달았던 당사자들은 사라지거나 물러나고, 그 속에서도 약속을 지키고 신의를 지켰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것, 어쩌면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읽었던 전래 동화가 미처 말해주지 못했던 진짜 해피엔딩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2. 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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