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뜨겁다. 한 겨울의 추위도 비바람도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를 식히지 못한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지만 꺼지기는 커녕, 갈수록 그 목소리는 커지고 열기는 뜨거워져만 간다. '하야'로 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하지만 과연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한 사람이 청와대에서 떠날 것만을 바래서 모여들었을까? 유시민 작가가 작금의 사태가 그 한 사람과 그 한 사람을 등에 업은 배후 세력의 농단만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형광등이 백 개'운운했던 방조와 부역의 결과라 정의내렸듯이, 그 한 사람과 그 배후 세력으로 대변되는, 그리고 그들에게 부역하고 방조했던 무리들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때문이라는 것이 옳바른 해석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울분과 분노의 대상이 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이에 sbs의 2016 창사 특집 대기획이 답한다. 바로 수저 계급주의라고. 




<최후의 제국(2012)>, <최후의 권력(2013)>, <바람의 학교(2015)> 등 '창사 특집'을 통해 신선한 다큐의 실험적 시도를 거듭했던 sbs가 2016년에 들고 돌아온 것은 <수저와 사다리>3부작이다. 

권력과 제국을 탐험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교육을 실험하기 위해 제주도에 학교를 지었던 그간의 시도에 비해 개그맨 김기리를 데리로 땅을 보러다니기 시작한 그 시작은 전작에 비해 소소해 보인다. 

수저 계급주의, 걷어차진 사다리를 논하다. 
이른바 처음으로 시도된다는 리얼 땅 버라이어티 전국에서 가장 싼 땅을 사서 땅부자가 되겠다는 제작진의 초대에 응한 김기리는 산넘고 물건너 자신의 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제일 싼 땅을 향한다. 왜 이런 우스꽝스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초등학생 장래 희망으로 떠오른 '건물주'라는 직업(?)때문이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차지한 아시아에서 가장 소득이 불평등한 나라 대한민국, 95년 이래 가장 급격하게 불평등해진 나라, 그 이유 중 하나가 불평등한 '소유'로 부터 시작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대한민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그 중 72명은 손바닥만한 땅조차 없다. 땅을 가진 사람은 단 28명, 그중에서도 단 한 명에 해당하는 토지왕이 대한민국 땅의 55%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땅은 증여와 상속을 통해 미성년을 불문하고 대물림되는 등 '세습 자본주의'를 굳힌다. 바로 이렇게 '사다리'가 걷어차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리얼 땅 버라이어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어디 소유뿐일까? 일을 해서 버는 돈보다, 돈이 돈을 버는 난라 대한민국이 그 불평등을 더한다. 그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은 '주인 의식만 있다면'을 외치는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업체 사장님의 언더커버 보스 리얼리티이다. '닭'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사장님이 시급 백만 원을 받는 동안 아르바이트생들은 시급 7200원을 받고 있다. 그 중요한 일을 한다던 사장님이 하루 일하고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의 강도로. 그를 통해 다큐는 묻는다. 과연 7200원과 백만원의 차이를. 또한 프랜차이즈 대표 사장님이 해마다 늘어나는 사업체에 미소지을 때, imf로 회사를 짤리고 치킨 집을 개업한 또 다른 사장님은 배달인원을 둘 형편이 돼지 못해 홀로 닭튀기고 배달하느라 한겨울 동상에 화상에 상해투성이다. 과연 '주인 의식'만으로 이 다른 삶의 조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이렇게 1부에서 소유에의 불평등, 2부에서 임금 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을 짚어보던 다큐는 3부 <모두의 수저>를 통해  비로소 판을 벌였던 속내들 드러낸다. 정치인, 요트회사 사장, 변호사, 철거민, 싱어송라이터, 강사, 학생 등 각계 각층의 사람 8명이 모여 각자 뽑은 수저 계급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 게임으로 3부가 열린다. 



불공정 게임으로 시도해본 '기본 소득' 실험 
1000만원으로 10개의 땅, 500만원으로 5개의 땅, 100만원으로 1개의 땅으로 시작된 게임, 주사위를 굴려 나온 지역을 지날 때마다 낸 땅의 주인이 거두어 들인 돈은 전반전이 끝나자, 빈익빈 부익부의 우리 사회 현실과 판박이가 된다. 1, 2부에서 다큐로 설명되었던 '불공정'한 사회가 게임을 통해 그 운용 원리가 드러나고 참여자들을 통해 적나라한 반응이 보여진다. 100만원이라는 돈으로 의욕적으로 살아보려는 흙수저들, 하지만 주사위를 던지면 던질 수록 빚이 늘어나것과 비례해 게임에의 의지도 상실해 간다. '노력'과 '주인 의식'만으로 해결될 길이 없는 구조를 불공정 게임은 단번에 설명해 내고만다. 

이어진 후반전 게임의 룰이 바뀐다. 건축비의 10%를 무조건 세금으로 걷고, 어느 정도 모여지면 그걸 골고루 나누어 주는 '기본 소득' 실험이 게임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게임의 결과,  결국 가진 자의 것을 뺏어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포퓰리즘' 운운하던 이준석의 반론과 달리, 게임이 끝난 후 가진 자 금수저의 재산은 줄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은수저의 재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흙수저는 달라졌다. 저마다 주렁주렁 목에 걸었던 빚대신, 처음 받은 100만원을 유지하건, 그보다 조금 늘었건, 빚이 조금 남았건, 게임 자체를 자포자기하던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누구 한 사람, 혹은 몇 명만 부자가 되는 대신, 모두가 조금씩 더 행복해 진 것이다. 

행복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처음 건축비에서 10%를 거두어서 당혹스러워했던 참가자들은 세금이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늘어났지만, 그것이 게임의 룰이 되자,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금을 내고,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기본 소득'의 운용 원리와 그 필요성에 대해 저마다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시청자도 더불어. 

스위스에서 '기본 소득'에 대한 국민 투표를 한다고 하자, '붐'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한동안 '기본 소득'에 대해 백가쟁명식의 토론이 벌어졌다. 그리고 냄비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sbs 창사 특집 대기획은 그 화제속으로 사라진 기본 소득을 우리 사회에 걷어차버려진 사다리를 복구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2005년 종합 부동산세는 강남에 사는 35.9%에게서 평균 2%의 세금을 거두는 부의 재분배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2008년 mb 정부의 셀프 절세를 통해 부동산 정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이 정부는 담배 한 갑의 세금을 강남 9억원짜리 집에 매긴 세금과 동일하게 매겼다. 

기본 소득 과연 스위스의 부결로 한 여름밤의 꿈으로 사라진 것인가? 핀란드는 내년부터 매달 70만원을 전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기본 소득 실험을 할 예정이다. 이미 하고 있는 곳도 있다.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알래스카는 해마다 석유를 팔아 번 돈 중 일부를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배당금의 형식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 나미비아 역시 기본 소득 제공으로 실업률과 빈곤율을 0%로 만들었다. 인도에서는 아동들이 정상 체중을 회복했고, 진학률이 높아졌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이재명 시장의 성남시가 시행하고 있는 청년 수당과 이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인 수당 등이 모두 기본 소득의 일환이다. 언제나 그렇듯 복지에는 꼬릿말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실제 핀란드 등에서는 풍족한 실업 수당으로 인해 1,2년씩 장기 실업으로 인한 높은 실업률이 골치거리다. 맞춤형 복지냐, 기본 소득이냐의 선택과 비용의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결국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들 배를 불리워 준다는 호혜성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 불공평이 그리도 문제일까? 3부에 걸친 다큐는 매회 '미친 짓'같은 시도를 보여준다. 시애틀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 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댄 프라이스 사장은 스스로 110만 달러였던 자신의 연봉을 7만 달러로 낮추고, 직원들은 오히려 높였다. 그 결과 놀아웠다. 매출은 두 배로 늘었고, 이직율은 역대 최저가 되었으며, 만 통의 우수한 인력의 입사 지원서가 쇄도했다. 뿐만 아니라 연봉이 늘자 직원들은 너도 나도 아이를 가져 '베이비 붐'이 일어났다. 연봉만이 아니다. 디즈니의 손녀인 아비가일 디즈니는 뉴욕 상위 1%의 부호이다. 그녀는 뉴욕의 백만 장자 40여 명과 함께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달라는 청원을 넣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아비가일 디즈니는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 답한다. 

이 이상적인 행위들, 하지만 3부 불공정 게임의 참가자의 말을 주목할 만 하다. 변호사인 참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도 한때 이상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기본 소득도 마찬가지다. 성인 남녀 1000 명을 대상으로 기본 소득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찬성과 반대의 비율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 소득을 위한 세금을 더 걷는 것에 대해 반대의 인원은 59.2%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물론 거기엔 현실에서 보여지는바의 '부조리'에 대한 불신도 한 몫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16 창사 대기획>이 벌인 불공정 게임의 의의가 짚어진다. 당위론으로서의 기본 소득이 아닌, 함께 실행해보고, 짚어보는 실험으로서의 기본 소득, 게임 전과 후 계급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세금에 대한 거부감 대신 돌아오는 소득에 대한 환희가 빛났다. 당위가 실험을 통해 가능성으로 변화되는 시간, 바로 2016 창사 대기획의 소득이다. 

by meditator 2016. 11. 28. 17:40

11월 27일로 <2016 kbs드라마 스페셜> 10부작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2016에 유일하게 만날 수 있었던 단막극 10편, 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2008년 3월 종영으로 사라졌던 kbs의 단막극은 2010년 5월 <kbs드라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노희경 작가의 <빨간 사탕>을 가지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토요일 밤의 11시 황금 시간대는 다음 해 일요일 밤 11시로 밀렸고, 2014년 잠시 주중 수요일 밤 11시의 고지를 확보하는가 싶더니, 결국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 모를, 즉 단막극을 보라는 건지, 출근을 위해 일찍 자라는 건지 모를 시간대 11시 55분이 방영시간이 되었다. 고군분투 끝에 금요일까지 노오력(?)해보던 <2015드라마 스페셜>은 같은 해 10월 방영분은 토요일로, 결국 2016시즌이 되면 일요일 밤으로 복귀(?)하고 만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인정 투쟁의 시간 
인정투쟁과도 같은 시간대의 전쟁만이 아니다. 회차의 전쟁으로 보자면 지난 몇 년간의 드라마 스페셜의 역사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생존사와도 같다. 그래도 처음 <드라마 스페셜>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매주 방영이었다. 그러나 2010년 24부작, 2011년 23부작에서 2014년 27부작까지 매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각종 특집 등에 밀려 스무 편 남짓을 방영하고 만다. 하지만 되돌아 보면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손현주 배우 등 배우들의 단막극 회생을 위한 출연료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드라마 스페셜>에 돌아온 것은 명목상이나마 '매주' 방영 대신 '시즌제'라는 이름의 회차 감소였다. 2015년 연작제 시도까지 합쳐서 총 15부작을 방영했던 <드라마 스페셜>은 2016년 9월에 이르러서야 단 10편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2017년에도 <드라마 스페셜>이 생존할 수 있을지? 결국 일요일 밤이란 외곽 지대에서 숙명이 된 낮은 시청률, 당연한 낮은 제작비로 다음 해엔 몇 편의 단막극이 만들어 질 수 있을지? 마치 생존의 의지를 가졌지만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 시한부 환자를 보는 안타까운 심정이 바로 <드라마 스페셜> 애청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애잔한 생존사에 비해 작품의 내용으로 들어서면 입장이 달라진다. 9월 25일 드라마 극본 가작 <빨간 선생님>으로 부터 시작하여 우수작 11월 27일 <피노키오의 코>로 마무리된 10편의 단막극들은 드라마 애호가들에게는 갖가지 장르가 구비된 풍성한 밥상이었다. 또 한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그 시절 선생님과 학생들간의 해프닝으로 시작된 <빨간 선생님>은 뜻밖에도 시국사범 아버지 때문에 불순분자로 몰리게 된 제자를 위해 희생하는 선생님을 통해 비극의 시대를 돌아본다. 그렇게 뜻밖의 수작으로 시작된 <드라마 스페셜>은 왕따 문제를 코믹하게 풀어낸 <전설의 셔틀>, 미혼부 문제를 휴머니틱하게 풀어낸 <한 여름밤의 꿈>, 사이보그란 첨단 과학적 소재를 통해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 <즐거운 나의 집>, 사랑과 용서의 문제를 다룬 <평양까지 이만원>, 발칙하고 대담한 성장 스토리 <동정없는 세상>, 한 편의 단편 소설과도 같은 <국시집 여자>, 웃음의 해학을 통해 고된 삶을 논한 <웃음 실격>, 연극과 드라마의 콜라보라는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 <아득히 먼 춤>, 그리고 15년 동안 묻혀진 진실을 통해 살펴본 가족애 <피노키오의 코>까지 중첩되지 않은 주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을 선보였다. 



10가지 진수성찬의 희열 
극본 공모 우수작인 <피노키오의 코>가 뜻밖의 반전을 선보였지만 '가족'이라는 주제 의식에 머물러 있는 반면, 상투적일 수 있는 스승의 은혜를 시국에 얹어 신선한 작품이 된 <빨간 선생님>처럼 수상작의 우열과 작품의 우열은 또 다른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작품으로서의 단막극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전설의 셔틀>이나 <동정없는 세상>이 그간 <드라마 스페셜>에서 줄곧 그려왔던 성장 서사와 궤를 함께 하고, <한 여름 밤의 꿈>이 역시나 <드라마 스페셜>만의 '따로 또 같이'의 가족애적 전통을 따른다면, 동시대 청년의 삶을 다룬 <아득히 먼 춤>이 시의적이었지만 실험적 터치로 신선했다면, <평양까지 이만원>은 청년의 삶이지만 본원적 질문에 가까웠다. 빠질 수 없는 '사랑'이란 주제를 다룬 작품이 <즐거운 나의 집>과 <국시집 여자>로 두 편이었지만 두 편 모두 '사랑'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 내며 '사랑' 그 이상의 영역으로 드라마를 확장시킨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10편의 드라마를 통털어 보면 장르적으로 겹치는 부분도 없고, 주제 의식 면에서도 단막극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구현했다. 하지만 1년에 단 10편이라는 제한된 편수에서 오는 다룰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덕분에 <간서치 열전(2014)>, <붉은 달(2015)>와 같은 신선한 사극을 볼 수 없어 아쉬웠고, <원혼(2014)>, <라이브 쇼크(2015)> 등의 공포물의 흔적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가만히 있으라(2015)> 와 같은 본격 사회물이 적었던 것이 아쉽다. 다양한 진수성찬을 즐긴 거 같은데 되돌아 보니 <드라마 스페셜>만의 특색있는 찬이 빠진 거 같은 서운함이랄까?



그러나 서운함은 서운함일뿐, 늘 시청률에 애달복달하여 뻔한 이야기만 돌려막는 듯한 주중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스페셜>은 마치 상업 소설에 지친 독자가 모처럼 집어든 순수 문예 창작물의 희열을 전해준다. 아마도 2015년 11월 이후 거의 1년만에 만나는 것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 '순수한' 행복의 기쁨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고 싶다. 공영 방송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그 시간을. 
by meditator 2016. 11. 28. 11:29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