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6일 백상 예술 대상 작품상은 후보에 오른 sbs의 <펀치>, mbc의 <킬미힐미>가 아닌 sbs의 <풍문으로 들었소>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 중 펀치는 권력과 밀착한 검찰의 비리를 비판적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박경수 작가에게 '갓경수'란 별칭을 선사하며, 조재현, 김래원등의 연기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러기에, <펀치>를 제치고 <풍문으로 들었소>가 작품상을 수상한데 대해 일각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아직 종영도 하지 않은 <풍문으로 들었소>가 작품상을 받은 것에 대해 정성주-안판석 콤비가 그간 jtbc와 작품을 해왔던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결국, <풍문으로 들었소>가 작품상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후의 과정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 스스로 그 의문을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6월 2일 <풍문으로 들었소>는 6월 2일 30부작으로 그 긴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과연, 백상 작품상을 받을 만한 마무리가 되었을까?

 

 


 

 

블랙 코미디로서의 시도

아마도 <풍문으로 들었소>가 <펀치>와 동일하게 사회 비판적 시각을 다룬 내용임에도 백상이 <풍문으로 들었소>의 손을 들어주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드라마가 그간 우리 나라 드라마들이 걷지 않았던 '블랙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회 인상의 입을 통해 밝혀졌듯이 알고보니 조상 대대로 살던 집도 아니고 선친 대에서 시골 양반 집을 사들여 들인, 그 태생적 존재로 부터 속물적인 한정호 일가의 집이 바로 블랙 코미디 <풍문으로 들었소>의 배경이다.

 

존재 자체가 코미디같은 이 장소를 배경으로 한 편의 연극을 보듯 우리나라 최고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 한정호를 중심으로 그의 가족, 그리고 비서, 집사, 찬모 등 식솔 들이 연극같은 풍자의 장을 벌인다.

최고 법무법인의 대표이지만 선친이 물려 준 인맥과 부를 배경으로, 아버지 대의 방식으로 '갑'의 존재를 이어가는 한정호, 하지만 그의 공식적 직함과 거들먹거리는 그의 위세와 달리, 드라마 속 유준상이 연기하는 한정호는 한없이 경박하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할 정도로 체신이라고는 없다. 그의 기분에 어긋나면 대뜸 주먹이 날아가고, 칼을 휘두르는 그의 감정적 태도가, '갑 중의 갑'의 위선을 가장 극명하게 그려낸다.

그의 아내 유호정이 연기하는 최연희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한없이 우아한 척 하지만, 비서의 도움 없이는 그 무엇도 스스로 할 수 없는 한송의 안주인, 하지만 그녀가 말 끝마다 내뱉는 언사는 '갑'으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편협하고 왜곡되어 있다. 이들 부부를 중심으로, 그들이 '가솔'이라 지칭하는 한정호 일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정호 집안의 일거수 일투족을 결코 놓치지 않고 공유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제목처럼, 이 집안의 모든 일들은 시시각각 곧 '풍문'이 되어 '갑'의 세계에 떠돌게 된다.

 

제 아무리 코미디언 같은 한정호라도 '한송'이라는 권력을 배경으로 '갑'으로 위세 등등하게 살아가는 중, 이 집안의 궤멸은 뜻밖에도 그의 아들 한인상(이준 분)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가 사랑하게 된 여자가 아직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한, 그리고 가진 것없는 서형식(장현성 분)의 딸인 서봄(고아성 분)이고, 그녀는 만삭의 몸을 한 채 한정호의 집으로 쳐들어 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정호 일가의 갑질은 가장 만만해 보이던 '을'인 서봄으로 인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을들의 존재로 부터 비롯된 '갑'

그렇게 한정호 일가에 불청객으로 등장한 서봄으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한 한정호의 아성, 드라마는 이물질같은 서봄을 소리소문없이 내치려다, 풍문때문에 자신의 집안에 맞아들이고, 그녀를 이종교배의 교본으로 삼기 까지의 이야기를 갖은 해프닝으로 끌어간다.

 

그리고 한정호 부부가 벌이는 엎치락뒤치락 해프닝의 맞은 편에서, 쫓겨날 뻔하다가 겨우 며느리로서 생명 보전을 하고, 나아가 특유의 영민함으로 한정호 일가의 작은 마님으로 등극하게 된 서봄의 인생 역전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하면, 그 흔한 재벌가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풍문으로 들었소>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한정호 일가의 작은 마님으로 자족하던 서봄이 자신의 권력이 결국 꼭두각시같은 것이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한정호가 '가솔'이라 지칭하던 집안 사람들에게서도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서봄의 작은 아버지 서철식, '한송'의 비서 민주영을 중심으로 윤제훈, 유신영 변호사가 합류한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을 알린다.

 

마지막 회 텅빈 집안에 홀로 남겨진 한정호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정호, 이 갑중의 갑을 채우는 것은 결국 '을'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증명한다. 그가 '갑'일 수 있는 것은, 그 '갑'의 권위에 굴복하고, 갑의 떡고물을 받아 챙기고, 갑의 그늘에서 자신을 죽이며 살아가는 '을'들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중에서 보여지듯이 가솔들의 파업 한 번으로 한정호 부부가 졸지에 자기 집을 버리고 나가야 하는 해프닝에서 보여지듯이, 결국 그의 강고한 성체 역시 '을'들이 없이는 존재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저 엿듯는 사람들에서 점점 드라마의 중심부로 진입한 '가솔'들을 통해 '을'의 존재론적 정당함을 그려낸다.

 

 


 

 

이땅의 을들에게 '연대의 희망'을

거기에 덧붙여, 포기하지 않는 싸움이 보여주는 가능성도 더한다.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폐인이 된 민주영의 오빠, 그리고 역시나 어깨가 꺽어진 서철식, 그들은 과거 한송이 책임진 재판의 희생자들이다. 재판은 종료되었지만,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끝나지 않은 현재형으로 그들 본인과 가족에게 드리워져 있다. 한송의 녹을 먹는 처지이지만 민주영은 그 현재형의 고통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밥벌이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한송에서 돈을 벌지언정, 그로 인해 자기 오빠의 고통을 상쇄시키지 않고, 싸움을 시작한다. 그녀로 부터 시작된 싸움은 서봄의 삼촌 서철식을 설득하고, 그리고 서봄, 한인상, 윤제훈, 유신영을 설득하여, 거대한 한송을 상대로 한 해볼만한 싸움이 되었다.

 

블랙 코미디로 시작된 드라마는 중후반부에 들어서 진지해지기 시작한다. 주인집 이야기를 엿듣고 뒷담화나 하던 을들이 이 집안에 이물질처럼 들어온 서봄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일을 꾸미기 시작한다. 감히 얼굴조차 마주보기 저어하며 '가솔'의 지위에 감읍하던 사람들이,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법적 존재를 인지하고, 당당하게 자기 존재론적 주장을 내세운다. 한송의 또 다른 '을'이었던 민주영을 비롯한 유신영, 윤제훈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이 손을 맞잡는다. 그러자, 그저 한 사람으로는 무기력한 반발이었던 해프닝이 이제 해볼만한 싸움이 되었다. 비록 겨우 엄청난 연봉을 뒤로 하고, 월급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고,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한정호의 눈치를 보던 때와 다르게 웃음이 절로 난다. 한정호의 의리의리한 집에 눌려 보잘 것 없던 서봄의 좁은 집이  이제 들끓는 사람들과 그들의 떠들썩한 웃음으로 들썩인다.

 

갑중의 갑 한정호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시작한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렇게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삶인지. 그리고 한인상, 서봄으로 시작된 이 이야기의 서두에서 처럼, 이 땅의 젊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삶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답에 대한 예시를 <풍문으로 들었소>를 통해 모범적으로 제시한다. 아버지 세대가 사는 삶의 방식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면, 손쉬운 출세가도가 아닌 길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노예와 같은 삶에 주저앉지 않는다면, 그리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끼리 손을 잡는다면, 어쩌면 우리가 손쉽게 '갑'이라며 포기해버린 거대한 성채조차도 무너뜨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마치 '한 뼘이라도 여럿이 손을 잡고,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절벽을 오르는 담쟁이'(도종환의 시 담쟁이 중)처럼 말이다.

 

물론 <풍문으로 들었소>가 제시한 답안은 너무나도 모범 답안이라, 환타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6월 2일 한겨레 신문의 정태인씨의 칼럼에서 처럼, 정규직이 된다한들 30년을 모아도 집을 살까말까한 시대, 하지만 그 조차도 상대적 실업률이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차라리 혁명을 준비하렴>이라는 그의 말처럼 '고립된 을'로 숨죽여 쓰러지지 말고, 담쟁이처럼 절벽이라도 넘어 볼 가능성을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한 것만으로도 <풍문으로 들었소>의 결말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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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6.03 06:06

비서 민주영(장소연 분)의 오빠를 폐인으로 만들고, 봄이의 삼촌 서철식(전석찬 분)을 다치게 만들고 좌절감에 빠뜨릴 정도로 노조를 와해시켰던 '한송'의 대표, 한정호(유준상 분), 결코 노조를 합법적으로 용인시키지 않았던 그가 뜻밖에도 비서, 운전사, 찬모, 집사 들의 파업에 봉착한다. 겉으로는 의연하게  '며칠 쉬세요. 아니 쭉 쉬어도 좋고'라고 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절부절 불안해하고, 자신들을 배은망덕하게 (?) 대한 그들에 분노한다. 결국 참지 못해 호텔행이다. 


불똥으로 튄 가솔들의 파업
22화 엔딩, 파업의 불꽃은 결국 집안 사람이 아닌, 봄이에게도 떨어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한정호 부부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들이 봄이를 생각하듯이, 이종 수혈이라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봄이를 만나고, 봄이와 결혼을 하고, 봄이의 친정 식구들을 만나면서, 한정호 일가의 황태자 한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싫었지만, 그래서 아버지의 돈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한인상, 하지만, 그의 세상에서 아버지를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지만, 아버지와 달리 사는 방법이란게 그가 자라왔던 세상에선 고작 방탕한 소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건 싫었던 한인상이 봄이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가진 것없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똑부러진 봄이, 역시나 가진 것 없지만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봄이의 가족을 만나면서, 때로는 그 가족들이 너무 순진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들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고, 봄이 삼촌 서철식과 민주영 오빠의 대산 노조 사건까지 도달하게 된다. 아버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 한인상, 그가 감지한 것은 더 이상 아버지의 방식으로는 운영되기 힘든 세상의 변화이다. 민주영이 기획하고, 서철식이 앞장서고, 거기에 윤제훈(김권 분) , 유신영(백지원 분) 변호사가 밀어주는 내부로 부터 튀어나온 '연대'의 힘이다. 그리고 그 모반을 '한인상'은 대산 노조 문건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법리적 정당성'을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불똥은 뜻밖의 곳으로 튄다. 일은 자기 자식이 벌렸는데 옆의 사람 뺨을 치는 식이다. 따지고 보면 한인상 자각의 도화선을 지핀 것은 '한정호의 부도덕한 일탈 행위'인데, 권위를 상실한 남편 대신 나선 최연희(유호정 분)가 내린 결론은 집안의 군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 옛날 선대에 입혔던 메이드 복장을 다시 꺼내 입히고, 식사 시간에 시립하는 식으로 '과거 회귀'적 훈육 분위기를 만들고, 인상 부부와 손주에게 아침 문안을 받는 형식적 권위가 최연희가 내세운 해법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져 그 불똥이 튄 가솔들이 전과 같지 않다. '고생했어. 내가 신경 좀 쓸게'라면 고개를 조아리던 이비서(서정연 분)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토를 단다. 되돌아간 예전 시절에 불만을 표명하던 사람들은, 급긱야, 자신들이 예전처럼 이 집의 가솔이 아니라, 한송 트러스트라는 인력 회사에 고용된 직원의 신분임을 깨닫고, 그 계약된 관계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최연희가 시도한 것은 리버럴했던 주인과 가솔의 관계를 그 예전의 전근대적 주종 관계로 되돌림으로써, 주종, 부자 간의 권력 구조를 공고히 하려 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런 최연희의 시도는, 한씨 집안에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존재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집안의 '노예'가 아니라, 계약 관계이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 대리인인 한송이 정작 자신들과의 계약 과정에서 얼마나 불합리한 계약을 채결했는지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두가지 길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 하나는 예전처럼 말 잘 듣는 '가솔'로 돌아가 주인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반길 것인가, 아니면 쥐꼬리만큼이라도 정당한 댓가를 받는 계약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의 기로이다. 
거기서 이들의 결정은 추동한 것은, '사람다움'이었다.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리던 신분제도와 같았던 관계에서, 굴욕적인 복장과 치욕스런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에서 벗어나 정당한 인간대 인간의 계약 관계를 정립할 것을 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22회 에서 보여지듯이 파업으로 귀결되었다. 

떡고물대신 정당한 계약 관계를 바라다
한송의 대표와 대표 부인이 기꺼이 떡고물을 던져주겠다는 사람들의 반격, 이 해프닝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결국은 '떡고물'이 아니라, '쥐꼬리만해도' 인간다움의 보상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 하나요,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가솔들과, 박선생, 그리고 인상 부부의 결합으로 상징되는 '연대'가 또 하나이다. 역시나 서철식의 보상으로 대변되는 법정 투쟁의 시작 역시 마찬가지다. 드러나는 것은, '돈의 계약 관계, 혹은 보상이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것은 정당한 인간다움 삶의 투쟁이요,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의 '연대'라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소>는 밝힌다. 

하지만 그런 '연대'와 '파업'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양비서(길해연 분)와 김비서(이화룡 분)의 모호한 태도에서도 보여지듯이 믿을 수 없는 연대 세력도 있고, 봄이 아버지와 언니의 불안한 태도에서 보여지듯이 '갑'을 내재화한 '을의 불안이나, 내 자식의 안위를 앞세우는 친족의 우려 역시 걸림돌이다. 파업에 나섰지만, 집안의 장 다리는 걱정이 자꾸 솟아오르는 어느새 '갑'이 가족이 되어버린 삶 역시 쉽지 않다. 

그런 '을'들의 복잡한 태도와 달리, 파업을 맞닦뜨린 한정호 부부의 태도는 일관적이다. 그들에게 '을'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요, 감히 자신들을 불편에 빠드린 괘씸하고, 배은망덕한 존재일 뿐이다. 말로는 그들의 정당한 투쟁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뒤돌아서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 '자비'나 '이해'의 기색조차 없다. 




블랙코미디로서의 불편함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블랙 코미디'로서 <풍문으로 들었소>가 중반을 넘어서며 보이고 있는 것은 불안함과 불편함이다. 천진난만한 한정호 부부인가 싶더니, 가솔들과 자식의 반발에 '벌레보듯'한 반응을 보이는 그 부부에게서, 마음을 주었던 시청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난감해 진다. 아니,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갑인 한정호가 너무 우습다. 그의 인간성은 얕고, 그가 벌이는 일들은 유치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 대리인이 그럴 수 있는가 싶은데, 아버지, 아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부터 이어져 온 '부'를 물려받은 '갑'중의 '갑'의 실체는 어쩌면 한정호에 가장 흡사할 지로 모를 일이다. 그들이 실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신분제처럼 얽어매어진 가솔들이 손발처럼 움직여, 또 기꺼이 그들의 편에 합류한 '엘리트'들이 '갑'중의 '갑' 한정호란 존재를 만들어 주고 있을 지로 모른다는 것을 드라마는 낱낱이 폭로한다. 이 불편함을,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폭압적'인 '갑'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불편함인 것이다. 

그렇다고 '을'이 한결 같은 것도 아니다. 황태자 한인상의 모반도, 그런 한인상을 부추키는 듯한 똑똑한 봄이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한정호네 집안에서 벌어진 파업에, 봄이의 미래를 두고 설왕설래 갈리는 봄이네 집안 식구들의 마음처럼, 시청자들의 마음도 이리저리 갈라진다. 바로 그런 불편함, 어정쩡함,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갑을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노리는 지점이다. 이 관계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보라! 지금 당신의 존재는,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가르키고 있냐고 말이다. 혹시나 당신은 그간 한정호 부부를 가족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가솔들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냐고 드라마는 슬며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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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5.06 11:54

20회에 이르른 <풍문으로 들었소>의 일련의 사건은 마치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만들어 내는 '카오스 이론'의 시험장과도 같다. 


서봄과 결혼한 인상이 그를 마음에 두고 있던 장현수(정유진 분)을 외면하자, 장현수는 좌절에 빠진다.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던 딸을 보던 현수의 엄마 지영라(백지현 분)는 약이 오르고, 그런 고까운 마음을 결혼 전 자신을 사랑하던 한정호(유준상 분)의 마음을 다시 한번 흔드는 것으로 보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드라마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중년의 불장난과도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은 곧 주변 측근들을 시작으로, 한정호네 집안 가솔, 이어 한정호네 가족들에게까지 빠짐없이 전달된다. 안그래도 서봄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며 '정의감'을 키우던 인상은 부도덕한 아버지의 실체에 몸서리치며 서봄의 작은 아버지 서철식이 몸담았던 대산 노조 사건을 들고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대든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 편을 드는 어머니 최연희에게 모멸감을 준다. 그런 상황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식음을 전폐하던 연희는 의연하게 집안의 안주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전의 고상한 취미 생활이나 하던 한정호의 안사람이 아니다. 바람기 잘날 없던 한정호의 아버지를 쥐고 호령하던 시어머니처럼, 한정호마저 쥐락펴락하는 '섭정 여제'로 등극한 것이다. 



섭정왕후가 되려하는 최연희
그렇게 실질적 권한을 행세하겠다고 마음 먹은 최연희가 행사한 첫 번째 '섭정'의 권한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가 완화시켰던 집안의 모든 형식적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다. 
자녀들은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갖춰입고 부모님께 '문후'를 들인다. 자유로운 복장이었던 일하던 사람들도, 상자에 묻어 두었던 '메이드' 복장을 다시 꺼내입고, 한정호네 식구들이 밥을 먹는 뒤에 '시립'해 서있어야 한다. 심지어 작은 딸에게는 몸무게를 10kg을 빼는 것이 과제로 던져졌다. 공식적인 위신이 무너진 가족을 되돌리기 위해, 최연희가 선택한 방법은 가장 사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옷을 갖춰입고, 규범을 엄격하게 하고, 심지어 살을 빼란다. 

남의 유부녀와 바람을 필 뻔한 아버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노조원들이 폐인이 될 정도로 몰아붙이며 노조 투쟁에 개입하여 사측의 승리를 이끌어 낸 한송의 실체, 그렇게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부모의 실체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그런 부모에게 대든 아들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절대적 권력' '집을 나가라' 조차, 명민한 법학도인 인상에 의해 무력화되었을 때, 뜻밖에도 모멸감을 느낀 어머니 최연희가 선택한 수단이, 집안의 기강을 세우고자 한 것은, <풍문으로 들었소>가 그저 상위 1%의 '블랙 코미디'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을 상징하는 풍자극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섭정의 공식'이 주는 기시감
최연희가 펼친 '섭정'의 공식, 어디서 많이 보던 것들이 아닌가?
유신 시대의 말기,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해프닝과도 같은 정치적 헛발질이 계속되고,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분출되던 시절, 그 시절은 마치 한 왕조의 창건과도 같은 '대통령의 신격화'와 '국믾 교육 헌장' 등의 정신 교육, 그리고 '교련' 등의 군사적 문화로 대변된다. 정권의 존립 근거가 부실해지고, 취약해 질 수록,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정신적 쇄뇌의 수준은 강고해 졌다. 대학의 복도 곳곳에 사복 형사들이 암약했고, 노동 현장의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으며, 거리에서 의심가는 사람들의 가방은 이유불문하고 뒤집혀 지는 상황에서, 문화적으로는 '용비어천가'가 울려 퍼졌다. '효'와 '충'이 우리가 계승해야 할 가장 숭고한 문화적 유산이 되었고, 무장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광화문 한 복판에 세워졌다. 학생들은 오로지 검은 색과 흰색 등 무채색의 학창 시절을 보냈고, 입시 지옥 속에서 허우적 거렸다. 음악이나 영상 등, 심심치 않게 '금지곡'이나, 가위로 잘리는 것이 예사인 세상이었다. 


정치권의 정당성이 희박할 수록,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이 잦아질 수록,  그 반대 급부로, 마치 '신성한 존재'라도 되는 양 정권의 요식 행위는 거창해 진다. 최근, 각종 국내의 시급한 사회적 정치적 사안들을 외면한 채, 심지어 아시아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조차 피한 채, 저 멀리 중남미로 외유를 떠난 대통령, 그 순방의 일정은 링거를 맞으면서 강행군을 펼친 지도자의 미담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매번 임기를 채우지 못하거나, 임기를 맞지도 못하는 공직 인사들의 정치적 스캔들에, 주어가 없는 '엄단'과 '정풍'만이 반복되는 건, 마치 섭정 군주의 단면을 보는 것과도 같다. 거기에,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나선 광장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어버이'들의 분노는 왕조의 흔적과도 같다. '검열'을 떠올리게 만드는, 야곰야곰 등장하는 문화적 폐습들의 복귀 시도는, 그 시절의 놀라운 복기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여전히 누군가를 누군가의 딸로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그 딸의 공과가 재단되는 것은 현실의 성과다. 70년대와 같은 '다같이 잘 살자'는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가중되는 '빈익빈 부익부'에, 첨예화된 계층 갈등이요, 가진 자들의 폭리일 뿐이다. 그렇듯, <풍문으로 들었소> 속 최연희의 섭정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에게 반기를 든 자식들을 조련하기 위해, 최연희와 한정호가 불러 온 '집안의 군기' 역시, 그 옛날 섭정 시절의 그것과 같지 않다. 인상의 손을 떠난 서철식의 사건은 서철식 단독 소송으로 구체화되었고, 메이드 복장을 꺼내든 가솔들은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라며 섭섭해 한다.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 동조하는 어머니의 '섭정'에 대해 '공포'스러워 하지만, 작은 딸의 대거리 처럼 그 역시 '윤리적 도덕적' 설득력이 없는 권위에선 취약함을 노정할 뿐이다. 

웃픈 '블랙 코미디'로 시작된 <풍문으로 들었소>, 이제 2/3를 넘어선 시점, 서철식의 소송과 함께, 섭정 왕후로 등극하려 하는 연희의 시도로, '한송'으로 대변되는 상위 1% 중의 1%와, '벌레'들의 전면전이 예상된다. 과연 '벌레 한 마리'가 다시 한번 짓밟힐 지, 최연희의 '섭정'은 원하는 바의 '통제'로 이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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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4.29 11:15

<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이 연기하는 한정호는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다. 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우리 나라 최고의 법무 법인의 대표로서, 우리 사회 갑 중의 갑이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각종 법안들이, 결국 우리 나라를 움직이는 것으로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자신의 딸이 한정호의 아들로 인해 상심을 하자, 그 보복을 하겠다고 한정호를 새삼 유혹한 첫사랑 지영라(백지연 분)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정호의 뒤늦은 사랑은 여느 드라마처럼 다큰 어른들의 불장난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 중반을 들어선 <풍문으로 들었소>는 갑 중의 갑 한정호의 철딱서니 없는 사랑을 통해, 이른바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아노미'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한정호, 한인상 부자가 선택한 다른 길
아니, 도덕적 아노미라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한정호가 지영라를 만난 후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은, '탈도덕적'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 패러다임을 통해,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른바 지도층의 '탈도덕적' 습성들을 짚어볼 수 있다. 

초반 만삭이 된 서봄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아들 한인상에 대한 한정호 부부의 반응, 그리고 이후 이어진 서봄의 집안에 대한 처분 등에서, 한정호 부부는 일관되게 무자비한 '갑질'을 행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갑질은 자식을 둔 부모 맘이라던가, 처지가 다른 사돈을 하루 아침에 맞닦뜨린 처지라던가 하는 묘한 공감대를 통해 희석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분명 '갑질'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한정호 부부의 적나라한 '인간적' 반응들이, '속물'로 세상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그저 밉게만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뒤를 밟고, 뒷조사를 하고, 교묘하게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이용하여, 사돈댁을 손아귀에 쥐려는 처지조차, 그러려니 하게 유준상이 연기하는 한정호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들보다 더 똑똑한 서봄을 기꺼이 '변종교배'를 통한 집안을 업그레이드 시킬 존재로 받아들이는 융통성까지 발휘하니. 이제 바야흐로 서봄과 한정호네 식구의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지는가도 싶었다. 더구나, 한정호네 집안의 시스템을 재빨리 학습한 서봄이 '작은 마님'으로 등극하니, 그녀의 입지전적 성공기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리 호락호락 '화해'의 손을 내밀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작은 마님'에 취했던 서봄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한인상과 함께, 한정호에 대한 반란을 도모하면서, 이 평화로운 모드는 균열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교모한 법리적 해석으로, 작은 아버지와, 민주영의 오빠가 다니던 회사의 노조 사람들에게 부당한 결과라 판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신체적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서봄과 한인상은 민주영을 도와 그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정호의 아들 한인상은 그가 서봄을 택했듯이, 아버지와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의 달느 선택을 묻는 서봄에게, 그간 자신이 먹여 키웠던 그 돈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면서, 그들을 핍박하면서, 그 반대편에 서서 지금의 한송을 만들어 왔는지 어렴풋하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정호 괴물로 키워지다
그리고 이런 아들 한인상의 깨달음과 부끄러움의 맞은 편에 한정호의 후안무치가 있다. 공교롭게도 아들 한인상이 대산 노조의 끝나지 않는 법정 투쟁에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 시점에, 그 아버지인 한정호는 첫사랑 지영라에게 다시 눈이 먼다. 그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와 이루어 질 수 없었던 재벌집 안주인 지영라, 번연히 남편이 있는 그녀에게 그는 다시 마음을 빼앗기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질주한다. 

그리고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제목답게, 그 소식은 한정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스캔들'이 된다. 심지어 그의 아내와, 아들과 딸조차도. 
그렇게 남의 아내라는 현재의 처지조차 상관없이 함께 외국 여행을 꿈꾸는 그를 두고, 그의 아랫 사람들은 뒷담화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키워졌던 한정호, 심지어 사춘기 시절 혹시나 여자 문제를 일으킬까, 과목 별로 이쁜 여자 선생님을 붙여주었다는 부모 밑에서,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괴물'로 키워졌던 것이다. 그렇게 그를 괴물로 지칭한 그의 비서는 덧붙인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한정호 식 교육을 부러워해서, 너도 나도 그런 방식을 본땄다고. 

아들의 2차적 성징과 그에 따른 자연스런 호기심조차도, 과목별 이쁜 과외 선생님을 통해 충당해 주는 부모들, 그렇게 성적인 관심조차도 케어받은 아이는, 자라서,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호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바로 그에게 닥친 상황에 임기 응변과 합리화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한정호에게 스킬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바람핀 것을 알고 그의 머리를 박은 아내에게, 먼저 용서를 하겠다는 엽서를 보냈듯이,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사과의 선물을 비서를 시켜 보내면서, 동시에 지영라에게도 선물을 보내듯이, 도무지 '인간적인 반성'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아내의 분노 대신, 아내가 혼자 먹는 라면에 더 눈이 가고, 자기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게 더 화가 나는 사람, 아내와의 싸움에서, 그녀가 자신이 애지중지 하는 머리칼을 움켜 쥔 것에 분노하는 한정호에게, 진정한 반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에 공감'할 수 없는 오로지 '자기'만으로 존재하는 한정호를 그를 오래도록 수행한 비서는 거침없이 '괴물'이라고 부른다. 

이제 중반에 들어선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저 드러난 갑들의 속물적 행동 양태를 넘어, 그들의 '속물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해부한다. 그리고 그 해부를 위해 가장 사적인 한정호의 '바람'을 등장시켰고, 그 과정에서 그가 어떻게 '괴물'로 성장되어 왔는가를 그려낸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추어줘서 괴물이 된 그의 맞은 편에, 이제 막 '자각'과 '부끄러움'에 첫 발을 딛은 한인상과 서봄 부부가 있고, 다시 그 구석에, 몸도 마음도 '무소유'라 떳떳하고 초라한 서봄의 아버지가 있다. 

서봄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에게 한없이 당당하지만, 무기력하고, 아내와 아들 앞에서도 부끄러움조차 느낄 수 없는 괴물 한정호는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드라마 속 한정호와 서형식(장현성 분)의 존재가 아니라, 슬프게도 우리가 사는 사회 속 관계의 상징이다. 우리가 매번 총리를 갈아치우고 또 갈아치워도 매양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국회 검증 과정에서 털면 털수록 각종 비리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이유를, <풍문으로 들었소> 속 한정호를 통해 알게 된다. 그렇게 부모 대에서부터, '도덕'이라고는 '개나 줘버리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순종'으로 '양육'되어져 온 그들은, '타인'에 대해 '배려'는 커녕, '타인'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하는 '도덕적 불감증' 괴물들인 것이다. 그런 한정호들이기에, 민주영의 오빠나, 서봄의 작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의 고통 따위는 가볍게 즈려밟고, 마치 '타짜'들이 화투판을 '작전'짜듯이 이 나라의 법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무를 수 있는 것이다. 풍자의 도를 더해가는 <풍문으로 들었소>,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괴물 한정호, 바로 우리 사회 갑 오브 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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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4.22 05:49

12회부터 시작되었던 봄이(고아성 분)의 한송 집안 사람 만들기는 14회 스스로 자신의 집안을 조정하고, 그것을 위해 비서 이선숙(서정연 분)을 좌지우지하여 한정호(유준상 분)까지 움직이게 하는 경지에 이르러, 성공적으로 미션이 완료 되었다. 한정호- 최연희(유호정 분) 부부가 원하듯 우생학적 차원에서 봄이를 사돈댁으로 부터 완벽하게 분리시키지는 못했지만, 한송 집안의 사람답게 처신하며 자신의 친정 식구들마저 컨트롤할 줄 아는 인물로 거듭남으로써 한정호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을'들의 고군분투
언니 서누리가 한송 집안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서봄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신분 상승의 동앗줄을 잡기 위해 재벌가의 자제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서누리의 희망과 달리, 그 일은 그저 해프닝으로 한송 주변 사람들은 물론, 서누리 방송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최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봄, 언니를 만나 단호하게 말한다. '욕심이 과했다'고. 하지만 봄이의 변화는 식탁에 멀찍이 떨어져 앉은 봄이와 언니의 거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다음, 집으로 가는 차를 세워 이 비서를 다르쳐 한송 집안의 작은 사모님으로서 자신의 권위에 복속시키고, 그녀를 이용해 한정호를 움직여 언니의 치욕을 역전시키는 수완을 발휘하는데서 한정호가 흐뭇해 하는 한송인 서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한송인으로의 거듭남 뒤에는 그간 이 집안에서 수모를 겪으며 며느리로 인정받게 되어 가는 서봄의 입신양명(?)과 함께, 그런 서봄의 존재를 우습게 여기며 힘겨루기를 하려던 이비서의 몰락이 있다. 서봄의 말처럼 처음 한송 집안으로 찾아오던 날 부른 배를 안고 어쩔 줄 모르던 소녀, 한송이 보기에 그저 보잘 것없는 친정을 가진 아이였던 서봄은 어느새 당당한 한송 집안 사람으로 사람을 부릴 줄 알게 되었고, 그런 서봄의 권력 앞에, 결국 자신의 목줄을 매달 수 밖에 없는 '을'임을 자각한 이비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서봄이 한송 집안에 부른 배를 하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아이가 백일이 되기 까지가 한송 집안 사람으로서 서봄과 서봄의 집안이 '을'로서의 서러움을 당하는 과정, 즉 한정호의 '갑질'이 유세를 떠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서봄의 영특함을 눈여겨 본 한정호가 적극적으로 그녀를 자신의 집안 사람 만들기에 나서고, 그에 부응하여 서봄이 한송인으로 거듭나는 이후의 과정은, '갑질'에 대응하는 다양한 '을'들의 또 다른 '블랙 코미디' 한 편이 펼쳐진다. 



갑을 관계 속에 무기력해진 을의 존재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봄과 봄이의 집안이다. 마치 양계장에 던져진 벌레처럼 이리저리 쪼이고, 온갖 수모를 당하던 서봄은, 이제 자신이 한송 집안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가련한 미혼모에서, '작은 사모님'으로 변신한다. 14회에 이른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게 '을'에서 '갑'으로 변신한다. 한송이 벌이는 '갑질'을 영특한 머리로 습득하여, 바로 실천한다. 

미혼모가 된 딸에 좌절하고, 한송과 사돈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에 희희낙락하다, 그들의 갑질에 분노하던 서봄의 부모와 언니가, 전략을 바꾼 그들의 회유책에 1인 시위를 한다며 한송 앞까지 갔던 아버지가 피켓을 뒤로 숨기고 뒷걸음질 치듯, 적극적으로, 혹은 마지 못해하며 그들이 던진 떡고물에 두 손을 드는 모습은 이 '블랙 코미디'에 빠질 수 없는 한 장면이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벌인 '갑질'에 분노하던 사람들은, 편의적으로 대접해주며 던져준 떡고물에 어느덧 스스로 삼가며 길들여져 간다. 마치 조삼모사처럼, 돈으로 자신을 회유하냐며 분노하던 때가 언제인듯, 회유하듯 부드러운 말로 존중을 해주는 척하자, 한송이 내미는 카드를 덥석 받고, 사업 계획서를 들고 한송의 문턱을 넘는다. 

그런가 하면 애송이 사모님을 만만하게 보고, 거기에 갑질을 해볼까 해보다 큰 코를 다치는 이비서도 있다. 한송을 잘 안다는 이유 만으로 서봄을 만만하게 다루려 하지만, 결국 계급적 위계 질서 앞에, 이비서의 숙련된 노하우도 무기력하다. 

이렇게 서봄과,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이비서등이 '갑'질을 내재화시키며, 자기 안의 논리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묵인하는 과정이 벌어지는 한편에서, 한정호에 대항하려 했던 민주영(장소연 분), 봄이의 삼촌(서철식 분), 그리고 변호사 유신영(백지원 분)의 음모는 결국 투항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이기도 전에, 그들의 획책은 한송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고, 결국은 각개격파의 방식으로 저마다 백기를 들고 한송에 순응하고 만다. 

이렇게 각각의 '을'들이 '갑'들에 대항하여 저마다의 전략으로 싸우고, 동화되고, 무너지는 동안, 갑들의 행태는 여전하다. 서봄을 그 집안으로 부터 우생학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혹은 거리를 두고자 하는 한정호네의 노회한 술책은 착착 진행되고, 서봄의 언니를 둘러싼 갑들의 속물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갑들이 여전함에도, 그들에 맞서는 을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갑'질에 대한 자신의 존재 양태를 모색해 간다. 

계급적 사다리를 성공적으로 올라탄 서봄은 스스로 '갑'이 되었고, 그런 서봄에게 알량한 '갑질'을 하려던 이비서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무릎을 끓는다. 어떻게든 '갑'에 대항해 보려던 서봄네 식구들을 비롯한 민주영, 서철식, 유신영의 몸짓은 투항과 변절의 다양한 양태로 드러날 뿐이다. 

이렇게 한송가를 둘러싼 드라마 속 을들의 다양한 군상들의 고군분투를 보며 씁쓸해 지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는 갑을 관계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부터 '계급'이란 말대신 '갑을'이란 모호한 개념어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그것은, 분명하고 뚜렷한 적이 형성된 전선이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사람들은 원자화되고, 고립되어, 개별적 존재로서 각자 삶의 터전 속에서 갑에 대항한 을의 존재로 남기 때문이다. 이비서가 갓 들어온 며느리 서봄에게 '갑질'을 하려던 것처럼, '갑질'은 분명한 계급 대신 그것을 내재화한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사람들은 각자 삶의 현장에서 다양하게 변모된 갑과 마주한다. 서봄은 그런 논리를 영특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재빨리 깨달아 '갑'을 등극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유신영이나, 민주영, 서철식은 무기력하게 투항한다. 그들은 함께 싸워보려 했지만, 갑들의 각개격파에 개별적으로 무너진다. 결국, <풍문으로 들었소> 속 수많은 을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삶의 조건에서 마주친 갑들에게 손을 든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의 해프닝은, 함께 싸우기가 만만치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작은 사모님 서봄의 작은 승리가 시청자들의 기쁨으로 이어질 수 없는 이유이다. 그저 서봄은 '을'을 잘 다루는 '갑'이 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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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4.08 11:50

3월 17일 12회 <호구의 사랑>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찌기 호구를 몰래 좋아해 왔던 도희(유이 분)는 하지만, 현실에서 성폭행으로 인해 미혼모가 된 처지에 '나는 도호구입니다'라며 눈물을 흘린다. 아예 이름부터 호구인 강호구의 실속없는 사랑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호구의 사랑> 하지만 이제 후반을 향해 풀어지는 이야기 속에 호구를 둘러싼 남녀 등장인물들은 뜻밖에도 '호구'못지 않은 '호구'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법률법인의 대표 한정호(유준상 분)을 뒤집어 놓는 주인공은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아이 부모가 되어버린 그의 아들 인상(이준 분)과 서봄(고아성 분)의 '호구'같은 사랑이다. 



'호구'같은 하지만 그래서 용감한 엄마, 도희와 봄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호구의 사랑> 첫 회 등장한 이 장면의 주인공은 강호구(최우식 분)였다. 옛날 수동식 카메라의 셔터를 이리저리 누르다 그 프레임 안에 들어 온 첫사랑의 그녀 도도희를 발견하고, '호구'같이 굴던 강호구, 그 첫 장면은 <호구의 사랑>의 두 연인의 역학 관계를 내리 규정한다.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영을 잘 하는 건 물론, 얼굴마저 이뻐서 당대 스포츠 스타였던 도도희 앞에서 늘 고양이 앞에 쥐 같았던 호구, 그는 드라마가 12회에 도착하는 동안 그의 이름답게 각종 호구짓을 벌인다.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첫사랑을 외면하지 못해, 그녀의 아이 사수작전에 동참하는가 싶더니, 이제 12회 '베이비 시터'로 취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2회 말미 늘 호구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는가 싶더니 결국 자기가 먼전 호구에게 입을 맞춰 버리고 마는 도도희의 무너진 모습 속에 드러난 그녀의 속마음을 보고있노라면 그녀의 말대로 진짜 호구는 도도희인 것 같다. 
성폭행으로 인해 아이를 가졌지만, 그 아이를 책임지려는 어린 엄마, 강호구와, 이제 변강철에게 '민폐'이기만 하던 여주인공 도도희,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속내가 사실은 일찍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강호구를 좋아해서 지금도 그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 엄마이기 이전에 소녀로 새롭게 재인식하게 된다. 아이를 책임져야 하고, 하지만 첫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 감정의 혼돈을 느끼는 어린 엄마 도도희에게서 민폐녀 도도희는 없었다. 

그런데 도도희보다 더 어린 엄마가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의 속사정 역시 3월 17일 등장했다. 
<풍문으로 들었소> 이야기의 시작은 거대 법률법인 한송의 대표 한정호의 집안에 배가 잔뜩 부른 봄이가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그 뜻하지 않은 해프닝은 내내 그 사건이 얼마나 한정호의 강고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인 척하는 위선의 성채를 뒤흔들어 놓는가에 중점을 둔 채 흘러 왔었다. 봄이와, 봄이 가족의 이야기는 늘 한정호네 사건의 리액션 정도의 양념처럼 등장했다. 

8회, 결혼 시절부터 시작된 묵은 회한으로 인한 정호-연희의 부부싸움의 불똥이 인상-봄이에게 튀었지만, 뜻밖에도 그 과정에서 봄이는 그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다는 평가로 인해 연희에게 호의를 얻는다. 거기에 뜻밖에도 과외 선생의 호의적 평가로 인해, 정호 부부의 봄이에 대한 전략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정호 부부의 자신에 대한 달라진 대우에 봄이는 비로소 이 집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그런 봄이의 눈물 뒤로 비로소 임신 사실을 안 봄이네 식구들의 반응이 등장한다. 임신 사실을 알고 당장 병원에 가자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초음파 사진을 내보이며 이제 팔, 다리가 생겨나는 이 생명을 어떻게 없앨 수가 있겠냐며 절규하는 봄이, 그런 봄이에게 분노하는 아빠. 그렇게 어렵사리 어린 엄마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생명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런 어린 엄마의 용기는 한정호 일가에게 '바퀴벌레'같은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성폭행으로 임신한 아이를 내로라 하는 스포츠 스타로, 게다가 부모님도 안계신 홀홀단신으로 남자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래서 첫사랑조차 참아내야 하는 미혼모 도도희, 그리고 과외 한번 받지 않고서도 한정호 부부가 돈을 쳐들인 자기 아들보다 똑똑할까 잠을 못이루게 만드는 영재이면서도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정호네 집에 들어와 온갖 정신적 수모를 감내하며 아이를 지키는 봄이, 이 '호구'같은 두 엄마의 용기 덕분에 이쁜 두 새 생명이 세상으로 왔다. 



진짜 '호구'같은 잘난 그 녀석들
12회에 들어선 <호구의 사랑>, 드라마의 시작은 강호구의 호구짓으로 시작되었는데, 이제 중반을 넘어선 이 드라마, 정작 진짜 호구는 딴 데 있다?
그 진짜 호구는 다름아닌 변강철(임승옹 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교 회장에, 전교 1등은 따논 당상이었던 그, 하지만 그에게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다름아닌,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강호구와 함께 한 하루가 남긴 질긴 추억, 그로 인해 그는 늘 자신이 강호구를 사랑하는 게이가 아닌가 혼란을 느낀다. 
그런 변강철의 정체성 혼란은 드라마 속에서는 그의 호구짓으로 이어진다. 냉정하고 유능한 변호사이지만 강호구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는, 결국 그로 인해 도도희의 출산 해프닝에 엮이게 되고, 결국 도도희 모자를 자기 집에 들이는가 싶더니, 이제 그 집에서 강호구까지 베이비 시터로 고용하기에 이른다. 변호사이자, 멋진 아파트를 지닌 변강철의 호구짓 덕분에, 아이를 사수하려는 도도희와 강호구는 드디어 비로소 아이를 마음놓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호구같은 사랑>에 진짜 호구가 변강철이라면, <풍문으로 들었소>의 호구는 다름아닌 한인상이다. 봄이를 좋아하고, 그 결과물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상은 폭주한다. 아버지가 거대 법률 법인의 대표라는 것도, 자신이 지금 아직 미성년이라는 것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철옹성같은 대한민국 상위 1% 중의 1%를 유지하는 한씨 집안의 외아들임에도 기본적인 도덕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그는, '갑질'을 어떻게 할까에 골몰한 아버지 앞에 보잘 것없는 사돈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교묘하게 '갑질'을 하는 아버지에게 대놓고 대들어 아버지의 위선을 흔들어 깨우는 장본인도 다름아닌 아들인 인상이다. 게다가 속도 없다. 어머니는 혹여나 자기 자식인 그가 더 똑똑할까 노심초사하지만, 그는 그저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봄이가 좋다. 인정받았다고 좋아하며 우는 봄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울 뿐이다. 

<호구의 사랑>의 변강철이나, <풍문으로 들었소>의 인상이는 시쳇말로 재수없는 아이들이다. 공부 잘 하고, 거기에 집안까지 잘 나서 부러울 것없는 대한민국의 상류층을 형성할 아이들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 부러울 것 없는 아이들이, 사실은 정서적 결핍에,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호구'라고 그려낸다. 그래서 그들은 '계층'을 넘어, '계급'으로 고착화되어가는 빈익빈 부익부의 대한민국의 약한 고리로 등장한다. 이 약한 고리인 그들이, '사랑'을 통해 균열을 일으키면서 고착화된 사회 구조는 흔들거린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미혼모, 상위 1%이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도덕적 심성을 놓치지 않는 공부 벌레들, 따지고 보면 <호구의 사랑>이나, <풍문으로 들었소>가 그리는 이 젊은이들은 상당히 '낭만적'이다. 어쩌면 어른들이 속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으면 하는 존재하지 않는 젊은이 상같기도 하다. 현실의 미혼모들은 지키기보다 포기하고, 잘난 젊은이들은 아비 세대보다 그 계급 의식에 더 철저한 '갑'으로 교육받으며 성장중일지도 모르니. 그래도 이렇게 때로는 비현실적인 중뿔난 호구들이, 박제화되어 가는 '갑을' 사회 속에서 그나마 드라마로 위안을 삼는 우리들에게 숨통을 트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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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3.18 12:37

1회가 방영되고 나서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이자 극중 사고를 친 인상(이준 분)의 아버지로 등장한 한정호 역의 유준상에 대해 어색하다는 소리들이 나왔다. 그건 그의 아내 역인 최연희 역의 유호정에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준상이나, 유호정 두 사람 모두 그간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역할 들이 착하고 선량한, 그래서 오히려 치이고 당하는 수난의 주인공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랬던 두 사람이 '갑 오브 갑'으로 등장하여, 대놓고 '갑질'을 하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운운하는 상류층으로 등장하니, 그런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었다. 하지만, 6회를 경과한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이제는 그 누구도 한정호의 유준상과, 최연희의 유호정에게 어색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그간 해왔던 착한 역의 이미지를 겉으로는 한껏 드러내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갑'의 마인드를 서슴없이 내뱉는 두 사람을 통해, 상류층의 위선이 가장 절묘하게 드러나, 매우 적절한 캐스팅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질 뿐이다. 특히나, 6회 말, 인상을 향해 상을 던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몸을 던지다 가랑이가 걸려 절절 매는 해프닝을 벌이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두 손 두 발을 들게 된다. 


한정호-최연희 부부에 대한 당신의 마음은?
이렇게 가장 유순한 표정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인 척 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속물적이면서 이해타산에 재빠른 한정호-최연희 부부, 하지만 최고의 법무법인을 이끄는 이들 갑 중의 갑이, 정작 자기 아들 하나를, 그리고 그 아들의 아이를 가진, 그리고 이제 낳은 여자 아이 하나를 어쩌지 못해 번번히 당하고야 마는,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의 결혼신고서에 도장까지 찍게 되는 과정이 웃프다. '갑'인 척 하면서도 '갑'의 위선을 어쩌지 못해 상황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두 사람이 때로는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안쓰럽기 까지 하다. 

문제는 그 귀엽고 안쓰러움의 정도이다. 자기 자식 하나 맘 대로 하지 못해, 최고 법무법인 대표이면서도 번번히 아들 내외와 이제는 손주에게 휘말려 들어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갑질'을 멈멈추지 않는 한정호-최연희 부부가 연기를 잘 해서 좋은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서 더 나아가, 혹시나 이 두 사람이 벌이는 '갑질'에 은연 중에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6회말, 처음 정식으로 봄의 부모 서형식(장현성 분)과 김진애(윤복인 분)를 집으로 초청한 두 사람, 봄이 부모들이 기가 죽을 만큼 갖은 격식을 차리더니, 결국은 '친인척 관리' 차원에서 내놓은 카드가, 봄이 언니까지 취직시켜 줄테니, 시골에 내려가 과수원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곁에서 들은 봄은 울고, 인상은 반발한다. 안그래도 봄이 부모에게 사과를 하라 했던 인상은 사과는 커녕, 한 술 더 뜨는 부모에게 대든다. 



이 지점에서 tv를 보는 당신은 어떤 입장에 서게 될까? 위선적인, 그리고 지극히 이기적인 부모에게 대드는 인상에게 공감을 하게 되는지, 그도 아니면, 잘 사는 사돈 댁에 딸내미 취직이라도 부탁해 볼까 갈등하다 결국은 큰 딸마저 따라오게 하지 못하는 그래도 아직은 선을 넘지 않은 가난하지만 의연한 서형식-김진애 부부에게 마음이 쓰이는지, 그도 아니면, 분명 손가락질 받을 한정호-최연희 부부의 인간적인 매력에 자기도 모르게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만약에 사돈이 자식 취직 시켜주고, 과수원까지 준다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 <풍문으로 들었소>의 묘미는, 어쩌면 돌아가는 드라마의 스토리보다, 그 스토리를 보며 자아분열을 겪게 되는 시청자의 시각에 더 방점이 찍혀 있을 지로 모른다. 

분명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서형식과 김진애의 삶에 더 가까이 있다. 한 발을 언뜻 잘못 디디면 바로 서형식처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파산자가 될 우려가 큰 것이다. 그러나, 묘하게 체면을 차리느라 절절매면서 결국은 '인지상정'의 인간사를 넘지 못하는 한정호-최연희 부부에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정이 이입하게 된다. 더구나, 그것이 사고치는 자식의 문제에 이르르면 더더구나 그렇다. 게다가, 사고친 아들과 며느리가 된 아이들은, 심지어 아직 고등학생에, 사고를 친 주제에 반성을 하기는 커녕(?) 여전히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애쓴다. 분명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사랑이고, 존중받을 사랑이지만, 그게 또 부모 입장이 되면, 골치 아픈건 사실이니, 인상과 봄이 커플에 대한 감정 역시 오락가락한다. 그런가 하면, 구차한 서형식-김진애 커플에 대한 감정도 묘해진다. 궁상맞은 그들의 삶이 마치 내 삶인 양 구질구질해지면서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한정호의 대저택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들의 단적인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사돈이 '한송'이라며 큰 소리를 치던 모습과 겹쳐지며 또 다른 인간사의 이면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그런 그들이, 큰 딸을 취직시켜 주겠다는 한정호의 제안을 넙죽 받으면서, 다시 과수원을 들고 나오자 당혹스러워 하는 지점은, 바로 '인간적 자존감'만은 지키고 싶은 우리네 얕은 속내를 들킨 듯 얼굴이 붉어진다. 마치 누군가의 앞에서 쩔쩔 매는 내 부모를 보다 외면해 버리고 싶은 심정, 바로 그것처럼 말이다. 

'갑질'의 내재화를 질문하게 만드는 <풍문으로 들었소>
그저 한정호-최연희 부부의 갑질 스토리를 블랙 코미디로 만든 <풍문으로 들었소>는 하지만 보다 보면, 과연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의 의식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 점검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사고친 아들 내외를 어쩌지 못해,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위치에 혹여라도 훼방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그러면서도 안그런 척 하는 한정호-최연희 부부에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는 지점은 과연, 그들의 '갑'질을 자신도 모르게 '내재화'하는 것은 아닐까 반문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매번 선거 때를 중심으로, 아니 다수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 서민층인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 경제적 위치와 전혀 다른, 지배층에 합치되는 선택을 하면서, 그 논리를 마치 자기 것인양 드러낼 때, 바로, 그것이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정호-최연희에게 이입되는 그 감정과 같은 것이 아닌지, 드라마는 묻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매번 눈물을 흘리고, 반성하면서도 결국은 자기들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사고친 고등학생 아들 부부를 데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자 쩔쩔매는 모습은, 상위 1%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부모라도 그럴 만하기에 또 '인간적'인 면이라 딜레마가 된다. 하지만 그런 '한정호-최연희' 부부의 딜레마는 인간적이어 보이고, 귀엽다가도, 서형식-김진애 부부의 딜레마에 이르면 궁상맞게 느껴지면, 우리가 느끼는 딜레마의 '체면' 역시 여전히 '갑'의 내면화의 일환이 아닌가 되돌아 볼 일이기도 하다. 

마치 매회 한 편의 연극처럼, 무대 위 조명처럼 어두컴컴한 tv 속 한정호-최연희 부부의 집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결국은 깔깔거리고 뒤돌아 서면, 문득 나 자신은 어디에 서있는가 되돌아 보게 되는 <풍문으로 들었소>, 참 만만치 않은, 불편한, 그래서 중독성있는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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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3.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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