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편의 수목 드라마가 상승세에 있다. 우선 수목 드라마의 고지를 선점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13.7%(닐슨 전국)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앵그리 맘>도 만만치 않다. 단 2회만에 9.9%의 상승세를 보이며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추격하고 있다. 몇 달 전 아저씨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내 생애 봄날>이나, <아이언맨> 등이 작품성에 대한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는 것과 대별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이 그저 아줌마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만이 특징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투적이다. 주인공들 각자는 자신들이 취한 대상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벌이고, 일생일대의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tv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은 이런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이 전투적 아줌마들인 것이다. 



뒤늦은 인정 투쟁, <착하지 않은 여자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둘째 딸 현숙(채시라 분)은 호감과 비호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캐릭터이다. 언니 현정(도지원 분)의 말대로 어릴 때부터 사고치고 스무 살에 애낳고, 이제 중년에 들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엄마 집까지 날릴 처지에 놓인, 거기에 남편이랑 이혼까지 하겠나고 나선 현숙은 한편으론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론 레이프 가릿을 좋아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책없음에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은 현숙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항상 엇물리고마는 자신의 인생을 지금이라도 다시 되짚어 보고자 한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평생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물리기 위해 이혼을 하겠다는 것이요, 처음 자신의 삶이 뒤틀리기 시작했던 고등학교 시절, 인생을 엇나가게 만들었던 나말년 선생에게 사과를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몇 십년 전의 선생의 폄하를 두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과를 받겠다고 나선 현숙의 결심은 어찌보면 되물릴 수 없는 시간을 거스르는 우스꽝스런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숙이 되돌리고자 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해진 선생님의 비상식적인 수모가 아니다. 그렇게 한 교실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이었던 선생님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 자신을, 그래서 마음대로 질주해 버렸던 뒤죽박죽인 인생을 그때로 다시 돌아가 '자존'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등학교 시절, 이제 막 자아가 싹트던 현숙의 싹을 짓밟아 버린 나말년 선생의 사과는 중요하다. 뒤늦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 투쟁이다. 그것은 정구민(박혁권 분)의 아내로, 정마리(이하나 분)의 엄마로만 살아왔던 인생에서, 김현숙 자신으로 비로소 살아보겠다는 인생의 선언이다. 여전히 충동적이고, 대책없는 현숙의 삶이 공감을 얻는 것은, 누군가의 아내로, 혹은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보고픈 중년의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하기 때문이다. 

현숙만이 아니다. 현숙의 언니 현정은 현숙과는 또 다른 현실의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현숙이 과거 자신을 놓쳐버린 시점으로 돌아가 자신의 자아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면, 현정은 '아나운서'로서의 자존을 놓치지 않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이 말썽을 피워 힘든 엄마의 착한 딸 노릇을 하기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공부해서 얻은, 그리고 중년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진력을 다해 왔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남들이 다하지 않는 12시 뉴스나, 맡을 사람이 없어 대신하는 시그널 녹음만이 그녀의 몫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눈물을 삼키며, 가는 세월을 향해 버티는 그녀의 싸움은 버겁기만 하다.

공교롭게도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엄마 세대 세 사람이 벌이는 싸움의 대상은 과거다. 좋은 할아버지를 만나 재혼을 하시라는 장모란(장미희 분)의 말에 새삼 분노하는 강순옥(김혜자 분)가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은 남편의 그늘이요, 마리의 엄마이기 보다는 김현숙이 되고 싶은 현숙이 싸우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짓밟은 선생님이요, 나이들어 밀려버린 현정이 싸우는 것은 세월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과거는 한편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 여자들이 싸우고 있는 현재이기도 하다. 잘 나가는 요리 선생이 되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가부장제의 그늘이요,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물신화된 세상이요, 나이와 미모를 중심으로 편애하는 여성 비하의 현실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할머니가, 혹은 엄마가, 그리고 사회의 중진이 되어서도 벗어나기 힘든, 여전히 우리 사회 여성들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에 대항하여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엄마를 넘어선 사회적 모성의 싸움, <앵그리 맘>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엄마, 할머니, 혹은 직업적 규정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싸우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면, <앵그리 맘>의 조강자(김희선 분)는 엄마로써의 본연에 충실한다. 하지만, 그 엄마로서의 본연에 천착한 그 모습이 오히려 그녀에게 싸움의 무기가 된다. 

학교 폭력에 희생된 딸을 대신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로 간 조강자의 방식은 '눈에는,에는 이' 식이다. 성희롱을 일삼는 선생을 혼내주고, 딸을 괴롭히던 여학생을 제압하고, 일진에게 한 방을 먹이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즉자적' 대응 방식은 이미 1회에서 보여지듯이, 불의과 폭력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힘이 없으면 눈 뜨고 내 자식 잃는 것이 여사인 세상에서 묘한 쾌감과 환타지를 선사한다. 그저 자기 자식을 보호하고자 하는 모성의 발로가, 뜻밖에도 그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는 학교 폭력과 부정에 대한 징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조강자의 맹목적, 하지만 정의로운 모성에서  일찌기 독재 정권의 희생양이 된 자기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민주화 가족 실천 협의회> 어머님들에서 부터, 그리고 이제 세월호 사건 1년 동안 진실 규명을 위해 거리를 누비고, 팽목항에서 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도보 행렬을 멈추지 않았던 사회적 모성의 맹아를 찾을 수 있다. 엄마로서, 더 큰 엄마가 되어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 투쟁'이든, 자기 자식을 구하러 두 손 걷어 부치고 나선 엄마든, <착하지 않은 여자들>과 <앵그리 맘>의 중년 여성들은 더 이상 자신을 겁박하는 현실에 주저앉아 울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자신의 현실을 통찰하고, 그 현실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억압하는 대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한다. 사실 이런 전투적 여성상은 공교롭게도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에서 이미 변주되고 있는 여성상과도 일맥 상통한다. 아침 드라마 혹은 주말 드라마에서 자신의 삶을 질곡으로 만든 남편 혹은 시댁을 향해 즉자적으로 겨누어 졌던 복수의 칼날은, 이제 조금 더 예리하고 통찰력있게 벼려지어, 자신의 삶을, 혹은 자기 자식의 삶을 뒤틀리게 하는 억압적 구조에 대한, 삶의 프레임에 대한 싸움으로 진화된다. 그러고 보면, 이제 여성들은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주말 드라마를 거쳐, 주중 미니시리즈까지 싸움을 확전시켜 왔다. 전사로서의 여성상의 완성이다. 그리고 이는, 더 이상은 참고 살지 않는 엄마,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꺼리낌없어야 하는 이 시대 여성상을 대변한다. 

by meditator 2015. 3. 20. 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