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국 동방 위성 tv <여신의 패션>에 참가한 배우 윤은혜의 참가 의상이 온라인 상에서 문제가 되어 기사화되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속속 찾아내는 '표절' 확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인 윤은혜는 오히려 반박을 하거나, 그 사실에 대해 함구하여 논란을 증폭시켰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윤은혜가 보인 반응의 속내는 11월 발매 예정 인 중국 잡지 <보그 차이나>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은혜는 '중궁 생활이 편하고 기대되'며, '내게 중국은 새로운 시작'이고, '대중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생각을 밝힌다. 그녀가 했던 '표절'에 대한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오히려 이제부터의 중국 활동에 대한 포부를 밝힐 뿐이다. 한국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국 내에서 들끓은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동방 위성 tv <여신의 패션>에 참가한 윤은혜는 연일 1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고국의 표절 시비가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아니 그것을 무시할 만큼 중국 활동을 통해 얻고 있는 결과물이 더 큰 것이다. 이렇게 '표절' 시비조차 꿀꺽 삼켜버리는 한 여배우의 행보는 최근 한국 문화 산업계를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든 이른바 중국 한류의 한 표상이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중국의 끊임없는 구애
윤은혜의 사건은 이른바 '중국 한류'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중국 한류에 기댄 것은 윤은혜만이 아니다. 10월 14일 <라디오 스타>의 mc진들은 두번 째 출연한 fx의 멤버 루나에 대한 대우에 격을 달리한다. 그저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였던 루나는 이제 중국 한류의 선두 주자로, 엄청난 출연료로 저절로 mc진의 고개를 수그리게 만든다. <라디오 스타>만이 아니다. 첫 방송을 선보였던 <해피 투게더>에 출연한 <런닝맨>의 동료 지석진과 개리를 대하는 유재석의 반응 조차 다르다. 여전히 동네 형 다루듯이 짖궃게 굴지만, 방송의 상당 부분은 개리와 지석진이 '중국 한류'로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에 대한 감탄과 존경(?)으로 채워진다. 더 이상 찌질한 동네 형이나, 이상한 동생이 아니라,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류 스타인 것이다.

이렇게 방송가의 문화나 관행조차 변화시킨 중국 한류, 그 현실에 대해 10월 15일 방영된 <추적 60분>이 다룬다. 그 시작은 지석진과 개리를 한류 스타로 등극시킨 <런닝맨>이다. 일요일 저녁 예능 <런닝맨>은 한국 내에서는 동시간대 타 방송사 예능에 비해 낮은 성적을 보이지만, 해외로 나가면 위상이 달라진다. 아이돌을 비롯한 핫한 스타들의 출연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출연진들이 중국내 한류 스타가 될 정도로 이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는 핫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청률 40%에 해당하는 5%의 기록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한류 붐의 시초가 되었던 <대장금>이 2.9%였음을 상기해보면 격세지감의 인기다. 심지어, 중국 위성 tv에서는 이와 비슷한 아류 프로그램들이 양산될 정도이고, 중국 내에서 <달리는 사람들>처럼 새로운 공동 제작 양식도 도입되고 있다. 

최근 중국 한류는 이전에 드라마를 중심으로 완성된 작품의 콘텐츠를 파는 형태에서 변화하는 중이다.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는 이제 <런닝맨>, <드림팀> 등 예능 프로그램이 그 중심에 놓여지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넘어 제작진의 중국 행과, 공동 제작 등 새로운 양식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검증을 받은 장태유 피디는 중국에서 두번 째 작품에 돌입하고 있으며, mbc 예능의 대부 이영희 피디 역시 중국 행을 선택했다. 

중국 한류의 변화는 여러가지 외적 내적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 정부가 '특정 국가 특정 지역에 편중해서 콘텐츠 구입을 자세하라'는 정책을 내건 것처럼, 자국 문화 보호와, 외국 콘텐츠 수입에 제동을 거는 등 무분별한 한류 수입에 통제를 가하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 중국에 수입되는 한국 드라마의 수입 단가가 한층 낮아졌다고 한다. 또한 중국 문화계 이제는 대부분의 한류 콘텐츠 상품들이 수입된 상황에서, 선별적인 수요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제작진, 그리고 합작을 통해 중국화된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자 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 문화계가 변화되는 것과 달리, '러쉬'라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한국의 문화 인력들의 유출은 물밀들이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15분 짜리 코너에 1억 5천의 제작비, 카메라 72대'를 쓸 수 있는 풍족한 제작 환경이 능력있는 문화 자원들의 유출을 독려한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포화가 된 상황에서 열린 중국 시장', 돈과 시장이 있는 중국과, 재능이 있는 한국 사람들의 결합은 천생연분(장태유 피디)라는 것이다. 더욱이 경제 대국에 이어, 문화 콘텐츠 강국을 추구하는 중국의 정책은 말만 하면 헐리우드의 첨단 기자제를 빌려서라도 제작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여, 열악한 제작 환경에 시달리던 문화 인력들에겐 '엘도라도'처럼 여겨질 것이라 다큐는 전한다. 



얼마 남지 않은(?) 한류의 미래 
중국 시장으로 달려가는 인력은 비단 피디 등만이 아니다. 영화 <명량>에서 특수 효과를 맡았던 업체는 이제 중국 영화 <서유기>의 특수 효과를 담당한다. 우리 어린이들의 친구 뽀로로도 중국 시장을 향해 달린다. 중국에는 한국 감독들의 합숙소가 있다는 우스개가 돌 정도이다. 

이런 한국 인력의 중국 러쉬에 대해, <까칠한 시선>의 최광희 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중국 영화의 하청 업체로 전락할까 우려한다. '하청'도 만만치는 않다. 소규모 방송 제작사는 중국측의 요구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돈을 못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이런 경우는 비단 소규모 제작사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제작사 역시 중국 측의 요구로 제작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시즌2를 제작할 처지에 놓였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거기에 심각한 것은 윤은혜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표절' 등에 대한 중국 측의 취약한 법적 장치도 문제다. 한국의 방송사, 혹은 제작사가 중국 측과 계약을 해도, 그 전에 타 위성tv에서 아류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해 버리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개그 콘서트>, <무한 도전> 등이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인력들에게 그 모사 프로그램 제작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류 프로그램이든, 자체 프로그램이든 이미 한국 내 방영되고 있는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동시에 중국인들과 공유하는 현실이다. 중국 문화계는 이제 한류의 수입을 넘어, 공동 제작, 그리고 유능한 인력의 수혈을 통해 자신만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현재 융성하고 있는 중국 한류의 미래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정도의 기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한류'라면 '일본'이 대세였다. 하지만, 결국 '겨울 연가'붐을 피크로 재미를 보게 만들었던 일본 한류는, 일본내 한류 거리를 불황에 빠뜨릴 정도로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말았다. 동방신기, jyj처럼 일본 내 자생력을 가진 몇몇 한류 스타를 제외하고는 일본 한류는 맥을 못춘다. 과연 중국 한류는 이와 같은 일본 한류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조만간 미국에 이어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등극하고자 차분히 준비해 가는 중국 콘텐츠 시장에서, 과연 우리는 한때 '한류'로만 남을 것인가, 재능있는 인력의 유출 이상, 콘텐츠 강국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낙관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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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10.15 16:10

2008년 요미우리 신문발 보도로 한일 정상 회담 과정에서 일본의 독도 편입에 대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란 표현으로 정체성을 의심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4개월여 남기고 독도를 깜짝 방문했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독도를 방문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독도 방문으로 오히려 독도는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부각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일본내 반한 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안그래도 일본내 끝없는 불황의 지속으로 재일 외국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격해지고 있는 시점,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 상황의 예봉을 한국인으로 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냉랭하다 못해 '소원'해진 한일 외교 정책, 그리고 그런 한국의 태도에 맞불을 놓기라도 한 일본 정부의 반한 시위 등 혐한 감정에 대한 암묵적 방조는 2002년 월드컵, 그리고 드라마 <겨울 연가>, 이후 동방신기 등 아이돌 그룹의 인기로 융성했던 한류 붐의 침체기를 불러온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한류'라는 막연한 문화 현상, 혹은 문화를 빙자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류', 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한류'는 '신오쿠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화 컨텐츠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고, 그 속에는 거기에 깃들어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 뉴커머들이 있다. 



신오쿠보 화려한 영광과, 긴 그늘
신오쿠보 지역이 원래부터 번성했던 상업지구는 아니었다. 일본 신주쿠에서 10분 남짓 신오쿠보, 한류 거리, 코리아 타운이라 불리어지는 이곳은 애초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던 공장 주변에, 한인들을 위한 식당, 가게들에서 그 유래를 추정한다. 하지만, 그때는 코리아 타운이라 불리워지지 않았다. 그저 퇴폐 유흥 업소들이 즐비한 후미진 골목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곳이 한류 열풍과 더불어 화려하게 만개했다. 

하도 길을 메운 인파가 많아서, 심지어 '걷다가 서지 마시오'라고 했던 이곳,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며, 신오쿠보를 중심으로 한국 식당, 화장품, 한류 인기 상품을 파는 곳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분위기를 급락시켰다. 무엇보다 일왕에 대한 남다른 외경감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 발언은 감정적 충격파가 컸다. 그에 이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단 한번도 이루어 지지 않는 정상 회담으로 양국의 냉각 분위기는 더해졌고, 그는 곧 일본 내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류가 붐을 이루었을 때는 지상파 방송에서도 한국 문화 등에 대한 소개가 자주 등장하여 일본 문화 전반에 한국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 냉각된 한일 관계는 그 자리를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대신한다. 그리고 신오쿠보 중심가에서는 혐한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진 상인들은 한류 붐을 타고 높아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미노게임처럼 파산 대열에 빠져들고 만다. 남아있는 상인들도, 혐한 시위대가 던진 빨간 페인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가리고, 가게에서 손님을 맞는 대신, 도시락 배달을 한다. 

정부의 정책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하고, 산업으로서의 한류는 편의적으로 흐름이 달라지지만,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쉽게 그 곳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한때는 tv에 소개되기도 했던, 재료가 없다며 사람들의 줄을 끊기도 했던 호떡 장수는 '화양연화'처럼 그 시절을 회고할 뿐이다. 그나마 이전에 돈을 벌어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파산 신청을 한 사람들은 일본에서도, 그렇다고 이제 한국으로도 발길을 돌리지 못해 방황한다. 



물론 정부의 냉각된 외교, 한 철 장사같았던 한류 열풍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오쿠보 상권의 한계도 있다. 동아시아 최고라 불리워지는 챠이나타운처럼 문화콘텐츠로서의 내실을 키워가지 못한 채 화장품 가게와 한류 상품에만 집중한 상권의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신오쿠보가 인기가 있자 너도나도 몰려들어 동일한 업종에 경쟁이 붙어 스스로 부가가치를 낮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혐한이나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 내 양심적인 움직임이 등장하고, 혐한시위도 한풀 꺽여 가는 이 즈음, 여전히 신오쿠보를 중심으로 일본내에 자리잡고 살고자 하는 3세대 한인들은 일본 내 공존을 위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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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7.23 15:21

7월 15일 첫 선을 보인 kbs2의 미니 시리즈 <어셈블리>의 첫 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자신들의 부당 해고 판결을 파기 환송해 버린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여, 법을 제정하는 국회로 질주한 일군의 노동자들이다. 


드라마 속 부당해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더라'
극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진중필(정재영 분)이 조직부장으로 있는 한수조 정리 해고자 복직 투쟁위는 경제시에 터를 잡고 있는 한국 수리 조선소에서 해고된 지 3년된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부당 해고에 대하여 법원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렸다. 1심에서 회사 측에 손을 들어주었던 법원은 2심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고, 마지막 대법원은 결국 1심 법원으로 환송해 버리는 허무한 결정을 내려 버린다. 그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분노한 진상필은 자신들을 '얼르고 뺨친' 대가로 '사과'라도 하라고 울부짖는다. 항의 농성하러 불법으로 점거한 의원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경제시를 대표한 국회의원은 그들이 찾아간 바로 그날, 불법 자금 수수로 의원직을 잃고 만다. 결국 아침마다 한국 수리 조선소의 아침 체조 구령에 맞춰 함께 체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노동자들은 이제 전기를 끊고, 천막을 철거하겠다는 회사의 통고에 벼랑 끝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불법'을 마다하지 않은 농성마저 무위로 만들었던 경제시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뜻밖에도 '한수조 해고자 복직 투위'에 호재로 작동한다. 조선소 등 노동자들의 다수가 선거권자인 이곳에 야당 연합이 '한수조 복직 투위' 위원장을 경제시의 야당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복직 투쟁의 길이 막연해진 가운데,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면 그나마 자신들의 억울함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한수조 복직 투위'를 흔들고, 나서겠다는 위원장과, 결국 국회의원이 일신 상의 입신양명 아니겠냐는 진상필의 만류로 복직 투위는 혼돈에 빠진다. 그런 가운데, 드라마는 뜻밖의 복병이 등장한다. 국회로 쳐들어 온 진상필을 눈여겨 본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이 진상필에게 야당이 아닌 경제시 여당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현실 속 부당 해고, 도돌이표의 끝나지 않는 싸움
여당이냐, 야당이냐, 국회의원에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 그래도 드라마 <어셈블리> 속 한수조 복직 투위에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같은 날 <어셈블리>가 끝나고 이어진 <추적 60분-부당해고, 멀고 먼 복직>으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큐는 부당 해고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한다. 부당해고,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행하는 해고를 뜻한다.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거나, 행정 소송, 민사 소송 등을 통해 부당 해고를 인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셈블리>에서처럼 대법원이 1심으로 되돌리지 않아도, 실제 법원에서 '부당 해고'을 인정 받아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일하던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법'과 같지 않다. 

우선 <어셈블리>에서 진상필이 속한 한수조 복직 투위의 법적 투쟁이 대법원까지 3년 여의 시간이 걸리듯이 '부당 해고'를 인정받기까지의 길고 지리한 법정 싸움 끝에 부당 해고 인정을 받은 노동자들, 하지만 막상 '법적 강제력'이 없는 법원의 판결에 사측은 '복직' 대신 과태료인 '이행 강제금'을 내며 버티기도 한단다. 그리고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다시 끝없는 법정 싸움이 이어진다. 총장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는 바람에 해고된 교수는 해고 무효 판정을 받아들었으나 학교측은 재임용 기간 만료를 핑계로 교수의 복직을 거부했다. 복직을 하기 위해 사장 앞에 무릎까지 끓었던 한 운전기사는 그럼에도 복직이 되지 않자, 모멸감에 스스로 회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복직이 된다고 해도 '원직 복직'은 요원하다. 우선은 원래 자신이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가 배치받은 곳은 취업 지원 센터'잡카페 드리미'였다. 말이 취업 상담이지, 그곳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는 학생들에게 풀이나 빌려주며 시간을 보내다, 그마저도 다시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어 다시 '해임 처분'을 받아야만 했다. 13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하고 복직한지 1년만에 양우권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이 복직이지 한 달 여의 교육이 끝난 후 현장에서 일하던 그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그 누구도 그와 말조차 나누지 못하게 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한 그는 자신의 생을 스스로 접었다. 그나마 '복직'이 되었다고 해고 동료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복직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부당 해고를 당한 그 순간부터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으로 몰려간다.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무효 판결에 이르는 시간은 '삶과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지름길이요, 설사 판결을 받아 복직이 된다 한들, 사측, 사용주 측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언제든지 다시 노동자들 '해고'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다. '부당 해고'에 대한 법적 판결은 너무 긴 시간, 구속력이 없어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복직 이후의 삶은 보호받지 못한다. 거기엔 그들을 구원해 줄 동앗줄 같은 국회의원 보궐 선거같은 건 없다. 



부당 해고 만이 아니다. 408일 만에 굴뚝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스타 케이칼 노동자 차광호 씨를 기다린 것은 구속 영장이었다. 경영 악화를 핑계로 문을 닫은 회사를 상대로 싸우던 노동자들은 '해고자 11명의 힘으로 해결 할 방법이 굴뚝 밖에 없어 그곳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셈블리>의 한수조을 연상케 하는 대우 조선 해양 하청 노동자 강병재씨는 50m크레인에 매달려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택시 노동자 송복남, 심정보 씨는 노조 인정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부산 시청 앞 전광판에 77일 째 올라가 있다.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 씨는 '불법 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국가 인권위원회 전광판에서 21일을 경과하고 있다. 

사용자 측에 유리한 법, 그리고 사용자의 전횡을 묵과하는 각종 시스템이 항존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은 사면초과다.  외환 위기 이후 노조의 힘이 사회적으로 약해진 이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막다른 길에서 높은 곳으로 오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나 외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노동자들이 오른 높이는 1389, 4166m(한겨레 신문 7월 2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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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7.16 16:18

5월 27일 방영된 <추적 60분>은 '월세 시대, 여러분의 집은 안녕하십니까?''에서는 최근 '월세'로 귀결되어가는 주택 시장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결국 '월세 시대'로 귀결되는 원인을 짚어본다. 


'전세 대란'으로 시작되는 월세 시대
'월세 시대', 하지만 그 시작은 전세 대란이다. 나날이 치솟는 전셋값, 하지만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전셋집, 그 과정에서 등장한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깡통 전세'가 그것이다. 치솟는 전셋값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면서 기한이 된 전셋값을 물어줄 수 없는 집주인이 속출하면서 등장한 단어이다. 과도한 부채를 얹은 집이 결국 경매 시장으로 넘겨졌을 때, 전세를 살던 임차인들은 은행의 선순위 대출금을 제외한 짜투리 금액만을 받을 수 있다. 지난 6년간 수도권 아파트 경매 통계를 보면, 세입자가 경매과정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391건에서 2481건으로 6년 동안 6배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치 속에 담겨진 의미는 누군가의 전재산이 고스란히 혹은 대부분 강탈당한 채 '하늘이 무너져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깡통 전세'로 내몰면서도 전셋값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애초에 나오는 것도 별로 없거니와, 나온다 해도 바로 소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애초에 전세 대란이 생겨난 것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저금리'와 '오르지 않는 집값'에 있다. 더 이상 부동산 가격 상승이 보장되지 않는 주택 시장에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받아 예금에 예치해두는 것만으로 '이득'이 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과도한 대출금을 끼고 집을 샀던 집주인들이 집을 날리는 사태가 속출하고, 그 과정에서 애꿏은 전세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연속되는 것이다. 

그렇게 더 이상 '집'이 '황금알'을 낳지 않는 세상에서 집주인들의 전략은 바뀌어 간다. 원금 보전을 해주기 힘든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매달 주거 비용으로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서민들의 목을 옭죈다. 4억 3천만원 전세 대신, 보증금 2억에 월세 200을 요구하는 시대, 뻔한 살림살이의 서민 생활에 '주거 비용'이 가중된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사보니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다시 과도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올 상반기 아파트 거래량은 2006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보인다. 하지만, 늘어나는 아파트 거래량에는 그늘이 있다. 실제 집값의 70까지도 대출로 충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평생 월세 대신 대출금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 2011년 이후 주택담보 대출은 꾸준히 늘어 445억원에 달했고, 이는 곧 상승하지 않는 주택 시장에, 개인의 금융적 위기, 나아가 국가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시한 폭탄과도 같다. 



하지만 전셋집이 없다고 월세를 내고, 집을 사고 하는 것도 여의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해상을 떠도는 '보트 피플처럼, '전세 난민'이 되어 서울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다시 경기도로 이렇게 떠돌게 된다. 
게다가 월세 전환의 경우도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중산층이 대거 자리잡은 동네에서는 그래도 전세와 월세가 병존하는 반면, 서민층의 주 거주 지역인 다세대, 다가구 주택들의 경우 월세가 득세한다. 결국 최근 주택 시장의 변화와 결과를 서민층이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고스란히 '서민'에게 전가되는 
이렇게 전세 대란으로 시작하여, 깡통 전세, 울며 겨자먹기 식 주택 구입, 그리고 월세 시대로 이어진 현재의 주택 시장의 상황, 그걸 광범위하게 훑어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렇게 서민들에게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만든 원인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전세 대란이 일어나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주택 대출을 손쉽게 하여 집을 사도록 유도한 것이다. 말 그대로 집을 사면 전세 대란이 줄어들 것이라는 단선적 해결책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분석처럼, 정부의 '탁상공론'처럼 주택 시장은 따라주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 대란은 가중되었고, 늘어난 주택 담보 대출은 개인은 물론, 국가 경제의 큰 부담으로 남게 된 것이다. 매번 정부는 새로운 경제 정책을 내놓지만, 월세 시대로 나아가는 흐름을 막지 못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임차 보증금'을 보전하는 법률 등 서민들의 알량한 재산이나마 보전해 주는 법적 조치는 국회에서 거북이 걸음 중이다. 결국 서민은 전세를 구해도, 집을 사도, 월세를 살아도 국가 정책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결국 <월세 시대, 여러분의 집은 안녕하십니까?>가 장황하게 주택 시장의 악순환을 설명하며 귀결한 것은, 서민들의 삶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 실패다. 아니 애초에 '서민'코스프레만 했지, '서민'들은 염두에 두지 않은 정책의 뻔한 결과이다. '전세 난민'으로 떠도는 서민들의 삶 대신, 집 가진 자들의 이익을 보전하고자 '공공 임대 주택' 대신 '주택 담보 대출'을 늘이는 정책의 결과란 불을 보듯 뻔하다. oecd 국가들과의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낮은 공공임대 주택 비율, 하지만 20만호의 행복 주택 물량은 14만호로 줄었고, 심지어 '공공 임대 주택'을 짓기 위해 마련된 택지 조차 주변 아파트 집주인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로 택지 조성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공공 복지 시스템'은 마련조차 되어있지 않은 시대,  아니 과연 '공공'이란 개면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시대,서민들만 '월세시대'의 난민으로 흘러 떠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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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5.28 11:54

4월 16일 잊지 않겠다며 우리 사회가 눈물 흘리며 기억하려 했던 '참척'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1년이 되었다. 하지만, 잊지 않겠다던 다짐이 언제였냐는 듯이 사람들은 '이제 지겹다'고 말하고, '언제까지 할꺼냐'고 다그치고 외면한다.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던 정부는 정부의 목을 죄는 정치적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마지 못해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를 인양하겠단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국가가 우릴 벌레보듯 한다'며 진실을 밝혀 달라며 삭발까지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렇게, 아이들을 잃은 마음으로 하나 되었던 나라가, 저 마다 이기심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채 다시 한번 부모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고 있는 이 시점, 세월호 사건 1년을 맞이한 방송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1주기를 추모하는 저마다의 방식
세월호 1년을 맞이하여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역시나 각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이다. <jtbc>를 비롯한 뉴스들은 팽목항에서의 세월호 1주기를 비롯한 세월호 사건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꼭지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jtbc뉴스에서 세월호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1년 우리 사회가 빨리 세월호를 잊고 지워버리려 했을 때, 꿋꿋하게 세월호가 난 지 며칠이라는 것을 환기하며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뉴스들에게 세월호 1주기가 새삼스러운 1주기 특집 꼭지였다면, <jtbc뉴스>의 세월호는 늘상 해오던 일의 연장 선상이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지킴이처럼 수척해져가면서 팽목항을 지키던 김관 기자를 다시 팽목항으로 내려보내어 그곳의 동정을 전하는 <jtbc뉴스>가 새삼 울컥하게 전해지는 이유는, 그 길고 지난한 노력의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1주기를 기리기 위해 각 방송사는 드라마는 방영하는 대신,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다큐나 영화로 대체했다. 공중파 중에서 유일하게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한 곳은 kbs1tv뿐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오랜 시간 방송을 전폐한 채 아픔을 함께 하려했던 방송의 모습에 비하면 그 세월의 간극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편성표였다. 

kbs1tv의 세월호 1주기 특집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천 개의 기억, 천 개의 바람>으로 가족을 잃은 아픔에 고통받는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참사 1년 아직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닐까', 그게 가장 힘들다는 사람들, 그리고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슬픈 바람이 아직도 그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또한 '천벌이 다름아닌 자식의 장례를 치는 것이라며'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3보 1배 30만번의 절을 하며 그리움의 힘겨운 걸음을 걷는 이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사제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 다니던 성당에 모여 그를 기억하고 치유하는 사람들을 통해 상처의 치유에 대해 고민해 본다. 후배들을 통해 '뮤지컬'등의 방식을 통해 기억되는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멈춰버린 시간도 담는다. 

이어 2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세월호 이후 남겨진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모색을 한다. 생존했지만 지독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일상 생활이 힘겨운 또 다른 피해자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아직도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진상조사 위원회'와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또한 우리 사회 안전 불감증 문제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외국의 사례를 통해 모색을 한다. 

이렇게 kbs1이 2부작 특집을 통해 세월호 참사 1년의 고통과 과제들을 총체적으로 되돌아 보고자 한데 비해, mbc는 2014년 5월 20일 25일 2부작으로 방영되었던 재난 특별 기획 <기족의 조건>을 한 회 분으로 재방하였다. 또한 sbs 역시 2014년 11월 9일 sbs스페셜로 방영되었던 <망각의 시간, 기억의 시간>을 다시 방영하였다. <기적의 조건>은 재난을 당한 해외 각국이 그 재난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시스템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각국의 사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재난 이후의 과제를 설파한 수작이었고, 역시나 <망각의 시간, 기억의 시간> 역시 팽목항에서 시작하여 일본과 독일의 사례를 통해 '현재 진행형'인 재난 기억 방식을 다룬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과연 세월호 참사 1주기 우리 사회의 달라진 패러다임을 적절하게 대변할 작품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쉽다. 



1주기에 짚어야 할 이야기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여 이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세월호 자체를 인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또한 삭발을 하며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30만번의 절을 하며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절규하는 유족들의 외침이다. 1주기를 맞이한 방송이었다면 그런 현실의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4월 11일 방영된 <추적 60분-세월호 가족의 멈춰버린 1년>은 여느 세월호 다큐처럼 여전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으로 부터 시작된다. 아픈 몸을 이끌고도 팽목항을 떠날 수 없는 엄마, 심지어 엄마는 혹시나 딸이 돌아올까봐 큰 수술조차도 미룬 채 딸을 기다린다. 또한 여섯 살난 딸만 생존한 권재근 씨 가족,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허가윤의 엄마, 다큐는 이들의 기다림이 현재형이라는 시점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그 고통을 담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실종자 아홉 명이 배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고심한다. 그리고, 그렇게 애달픈 가족들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임을 단호하게 직시한다. 그저 그들이 가족을 잃어서 안타깝고 슬프다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의 고통을 달래줄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4월 14일 방영된 kbs1의<시사기획 창>은 1주년을 맞이한 여러 기획 들 중 가장 날카롭게 벼려진 작품이다. 다큐는 반문한다. 1주기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정말 '추모'라고 생각하는가 라고.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되짚는다. 세월호 참사는 그저 하나의 재난 사고가 아니라, '돈'을 향해 달려왔던 한국인의 자화상이라는 재미 언론인의 말을 다시 한번 복기한다. '절제하는 브레이크 대신 엑셀레이커가 내장된 한국인의 자의식, 빨리 빨리 돈 벌어야 하고, 빨리 빨리 성공해야 하는 그 자의식이 선진국으로 부상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지만, 균형과 절제력을 잃으면서 한국을 부식시키고 있으며, 그 상징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의식이 사회 전반을 사로 잡는 가운데, 남을 위해 희생하기 보다는 내 잇속을 차리는 것이 당연히 되었고, 그러니 해양 마피아나, 이익을 위해 외화를 빼돌리고 배을 개조한 선주를 방치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짚는다. 

<시사 기획 창>의 가장 예리한 지적은 바로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잊고자 하는' 의식의 프레임에 대한 비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그 사건의 본질을 조명하고, 그것을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반성과 시스템에 대한 개선으로 가져 가는 대신, 서둘러 희생양을 마련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수순으로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이어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그래왔듯이 재난은 또 다시 되풀이 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얼마전 일어난 인천 대교 100중 추돌 사고가 그랬듯이. 나만 아니면 돼 라고 우리가 외면한 참사들이,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의 삶을 강타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이렇게 <시사 기획 창>이 정공법으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한 우리의 과제를 정확하게 짚는다면, <썰전>은 참사 1주년 기획 '여론 조사'를 준비하였다. 4월 16일의 여론 조사가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한 '잊자' 혹은 '지겹다'라는 여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쳤다는 것이다. 이 날의 여론 조사 결과, 현재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여 '지겹다', 잊자' 라는 여론의 중심 연령층과 지역 대가 보수층의 지지층과 정확하게 겹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여론이라는 것조차, 보수의 프레임으로 씌워진 채 그것이 보편적 여론인 양 득세하고 있다는 것을 <썰전>은 정확하게 분석해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인양 반대'라는 것이 대중의 자연스런 여론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조작된 여론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일베 어묵 사건'을 예로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세월호에 대한 악질적 '프로파간다'를 짚는다.



1주기를 맞이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니 오히려 1년이 지나가면서 더 심해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세월호 참사을 과연 방송들이 공익의 자세로 접근했는가를 짚어보았다. 다큐와 토론 프로그램으로 1주기를 맞이하여 저마다 그날의 슬픔을 기억하고 그 과제를 다시 되새겨 보려고 했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꾸준한 환기와 노력이 경주되어 왔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1주년 특집도 좋지만, 지난 1년간 자식을 잃은 가족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그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방송이 진지한 노력을 경주했는가, 반성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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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4.1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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