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tvn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2014년의 화제작 <라이어 게임>의 김홍선 피디와 류용재 작가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카이타니 시노부의 일본 만화 원작에 대한 우려를 가장 잘 각색된 번안 드라마라는 평가로 응답했던 <라이어 게임>은 그 화제성과 함께 시즌2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김홍선, 류용재 콤비가 선택한 건, <라이어 게임>이 아니라, 3월 7일 첫 선을 보인 <피리 부는 사나이>이다. 


물론 전작인 <치즈 인더 트랩>이 용두사미의 결말로 인해 물의까지 빚는 상황을 자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중파에 비해 다양한 장르와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믿고 보는 tvn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거기에 전작 <라이어 게임>으로 인한 기대, 거기에 역시나 믿고 보는 배우 신하균의 tvn최초 출연, 덤으로 시도때도 없이 거의 홍수 수준으로 cj 케이블 각 채널을 통해 쏟아진 홍보 영상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기대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첫 선을 보인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땠을까?
드라마의 시작은 두 갈래로 시작된다. 동남 아시아에서 발생한 인질극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로 급파된 기업 협상가 성찬(신하균 분)과 경찰 특공대에서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긴 여명하(조윤희 분)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화면은 동남아시아의 화려한 볼거리와 인질 협상의 긴밀한 상황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극의 비중면에서 결코 성찬의 이야기에 밀리지 않고 진행되는 여명하의 이야기로 보았을 때, <피리부는 사나이>를 이끌어 가는 건 서로 다른 칼라를 지닌 주성성찬과 여명하 두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회 마지막 경각에 따른 애인의 목숨을 앞에 두고 자신이 동남 아시아 인질 협상에서 했던 진실을 방송 카메라 앞에서 고백하는 주성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을 볼모로 잡은 인질은 물론, '피리부는 사나이'에게도 '협상'의 기계라고만 오해받듯이, 극중 성찬은 능수능란한 협상전문가이지만, 1회 마지막이 애인의 죽음이듯이, 그것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자초하고 만다. 그런 그에 비해, 이제 막 위기 협상팀에 배치된 여명하는 훈련 과정에서 인질과 인질범의 숨겨진 진실을 간파하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본능적으로 '진실'에 대한 밝은 눈을 가진 인물임을 통해 성찬에 대비시킨다. 

능수능란한 성찬과, 아직은 풋내기에 불과하지만 '진실'에 밝은 여명하, 이 두 대비되는 캐릭터에서 연상되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라이어 게임>의 천재 사기꾼이었던 교수 하우진(이상윤 분)과 무직의 고액 채무자이지만, 진심으로 그 모든 역경을 헤쳐가던 남다정(김소은 분), <라이어 게임>의 두 주인공이다. 마치 '버전이 바뀐' 하우진과 남다정처럼, '협상'이라는 판에 전혀 다른 캐릭터 주성찬과 여명하가 등장한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만이 아니다. 익숙한 목소리도 돌아왔다. 
<라이어 게임>은 몰래 카메라와 인터넷 투표를 통해 선출된 참가자들의 최종 라운드 100억을 향한 진실 게임을 드라마화 한 작품이다. 거기서 매 라운드 게임의 진행을 알리던 그 목소리, 강압적이며, 단호했던 그 낮은 목소리가, <피리 부는 사나이> 1회, 주성찬의 핸드폰 속에서 울려 나온다. 매 라운드 참가자들의 목줄을 쥐락펴락 하던 그 목소리가, 이제 주성찬의 애인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며 주성찬의 멱살을 잡으며 '진실'을 운운한다. 진행자의 자비없는 목소리 뒤로 벌어지던 생과 사를 가르던 '라이어 게임'은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익명의 존재로 주성찬과 곧이어 여명하까지 역시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또 다른 게임의 전선에 내몰듯하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협상'이라는 소재를 차용해 왔지만, 1회에서 애인의 생명 앞에서 무기력한 협상 전문가 주성찬과, 그런 그는 물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인질범조차 쥐락펴락하며  '게임'과도 같은 한판 승부를 펼치는 어떤 인물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피리부는 사나이>가 단순한 협상 어드벤처물이 아닌, 협상이라는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한 <라이어 게임>과 같은 심리 추적극이 될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 원작 보다도 훌륭하다는 평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 <라이어 게임>의 주제 의식도 이어진다. <라이어 게임>은 드러난 현상은 100억 상금을 둘러싼 인간들의 쟁투였지만, 매 라운드라운드를 통해 드러난 것은, 승자 독식 사회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그저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피리부는 목소리라는 상징적 존재만이 아니라, 극중에 삽입된 피리부는 사나이 우화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용산 참사 혹은 쌍용차 진압 작전이 연상되는 장면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저 협상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가 아님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주제 의식은 극중 협상의 사례로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이 '유전무죄' 지강헌의 영상을 사용한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오정학 팀장은 지강헌 사건을 당대의 화제가 된 인질 사건이 아니라, 자신들의 억울함을 그 어느 곳에서도 호소할 수 없는 극한에 몰린 가지지 못한 자의 '한풀이'로 설명해 낸다. 또한 주성찬의 인질 협상의 이면에서도 우리 사회 가진 자의 전횡과, 가지지 못한 자의 억울한 죽음은 이어짐으로써,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런 우리 사회의 폐부를 <라이어 게임>이 강도영(신성록 분)을 통해 그러했듯,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위악적 존재를 통해 풀어낼 것임을 예고한다. 

시즌2에 대한 부담 대신, 판을 달리 벌리면서, 시즌1의 캐릭터와 주제 의식을 이어간, 1회의 '<피리부는 사나이>, 김홍선, 류용재 콤비의 또 다른, 버전을 달리한 <라이어 게임>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6. 3. 8. 0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