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가 돌아왔다. 하지만, 대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중의 관심이 저조하다. 첫 회 4.0%(닐슨 코리아 기준)에서 시작해서, 4회를 마친 현재 6.5%에 불과하다. 주말 드라마라 하면 20%를 오르내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공중파에선 무참한 성적표라 할 수있다. 




하지만, 꼭 그럴 것도 아니다. 용감하게 시작했지만 대가에게도 잔인한 편성시간대였기 때문이다. 주말 드라마 최강자인 <부탁해요 엄마>가 무려 38%를 넘나들고, 노년의 로맨스로 화제몰이를 한 mbc의 <엄마>도 20%를 넘기는 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토요일까지 방영하는 tvn의 <시그널>조차도 <그래 그런거야>의 불안한 위치를 위협한다. 그러나 진검승부는 어쩌면 이제 부터일지도 모른다. <부탁해요 엄마>의 후속작 <아이가 다섯>이 호평을 받지만, <그래 그런 거야> 역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 해프닝에서, 큰아들 결혼까지 시끌벅적한 사건들이 관심을 끈다. mbc의 <가화만사성>이 새로 시작하니, 이젠 <그래 그런거야>가 선점한 태세다. 조만간 <시그널>도 끝이 난다. 이러다, <그래 그런거야>가 장렬히 전사했던 sbs주말 드라마를 수렁에서 끌어올릴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노병은 죽지 않듯, 매회 터지는 <그래 그런거야>의 지뢰는 만만치 않다. 

여전히 익숙한 자기 변주
막상 <그래 그런거야>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도 익숙하다. 일찌기 <사랑이 뭐길래(1991)>에서 부터 시작된 대가족 소동극이 변주된 노래마냥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용탕집 남자들(1995)>이래 자수성가한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딸들이라는 구도는 이제 외울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노년에 들어서면서 끼인 세대로 살아온 아들 세대의 회의와, 성공한 자식 농사이지만 아롱이 다롱이로 속을 썩이고 결국은 가족이란 속에 풀어지는 자식 세대의 구성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냉혈한 의사 자식에 그에 목매는 부잣집 여자에 이르면 슬그머니 신물이 올라온다. 

그 지겨운 자기 복제에도 불구하고,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또 늘 새롭다. 노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족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가 하면(인생은 아름다워, 2010), 미혼모 를 당당한 주체로 내세웠다(무자식 상팔자, 2012). 그런 김수현 작가이기 때문에 대가족이란 뻔한 울타리 속에서 이번에는 또 어떤 도발적인 가족 문제를 들고 나올지 지레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여타 막장 드라마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타 가족 문제를 말 그대로 '문제'로 소비하는 반면, 김수현 작가는, 작가의 장담답게, '막장스럽지 않게' 진지하게 우리의 문제로 고민하고 화해해 가는 화두로 삼기 때문이다. 

매번 가족극을 쓰며 김수현 작가의 화두가 도발적임에도, 결국은 여전한 것은, 그 모든 말썽들(?)이 가족이란 제도 안에서 융해되기 때문이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남자가 없이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것도, 결국은 혜량이 넓은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수용되고, 원조를 받게 된다.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던 처연한 태섭(송창의 분)과 경수(이상우 분)의 사랑도 가족의 이름을 얻게 된다.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소영(엄지원 분)의 아이도 결국은 가족 모두가 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문제를 지각있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할아버지도, 지겹도록 말이 많은 둘째 아들도, 술만 취하면 침을 뱉어대는 큰 아들도, 그리고 매사에 허허거리며 다 좋다는 식인 막내 아들도,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도, 자기 자식을 삶의 제일 목표로 살아온 평범한 어른들이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해온 그래서 노년의 삶이 허무해지는 인생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자식에 '갑질'을 하지는 않는다. 간섭하고 노심초사하지만, 결국은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 그들을 품어주는 것이 바로 김수현 가족극의 본질이다. 

죽음보다 허무한 어른들의 지혜로움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른다운 어른. <그래 그런거야>에서 어른들은 종종 무언가를 읽는다. 시간이 남은 할머니는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고, 그 신문을 다시 아들이 읽는다. 그런데 그 신문이, 이른바 조선, 동아가 아니라, 경향 신문이란 점은 소품 하나에도 철저한 김수현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홀로된 큰 아들은 자신의 깊은 시름을 달래기 위해 시를 읽는다. 그리고 대가족에 시달린 며느리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그녀는 비틀즈의 음악을 듣는다. 말 끝마다 아내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둘째 아들 부부는 영화를 보러 간다. 비록 가서 잠들지언정. 비록 여자만 보면 얼굴이 풀어지는 할아버지이지만, 결정적일 때 할아버지의 지혜는 대범하다. 세상사를 달관한 노년의 해탈이 보인다. 

김수현 작가가 생각하는 어른들의 힘은,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섬세하게 그리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채곡하게 쌓여진 내공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막돼먹지 않은, 지각있음의 표상이다. 그리고 그래서, 2016년의 <그래 그런거야>가 더 허무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수현 드라마 속 어른들은 <사랑이 뭐길래>에서 <목용탕집 남자들>을 거쳐, <무자식 상팔자>에서 <그래 그런거야>로 오는 동안, 마치 철이 들어가듯 더 지혜로워지고, 더 지각있어 졌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어닥쳐 오는 문제들은 점점 더 난감해지지만, 그런 문제에 대비하기라도 하듯, 더 지혜로워지고, 더 생각들은 깊어지면, 더 인생에 대해 회의하며 반성한다. 마치 어른들이 점점 더 어른답지 않은 세상에 대한 반작용이기라도 하듯. 

김수현 작가는 <그래, 그런거야>의 집필을 시작하며, '막장'을 쓸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지만, 드라마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버티고 있는 어른들의 존재론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어른들답지 않아지는 세상에서, 그 어른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세상의 논리로 젊은이의 세상마저 재단하지 못해, 작품 속 어른들이 보지않는 종편 언론을 통해 어른들이 살아왔던 세상의 논리를 소리 높여 외치고, 그 어른들의 대표가 정치를 주무르는 세상에, 김수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지각있는 어른들은 환타지를 넘어, 허무함을 준다. 

<그래 그런거야>가 허무한 것은 하루 아침에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는 노년의 부박한 삶때문이 아니다. 젊은이의 문제 조차도 어른들의 품 안에서 용해시킬 수 있는 그 넉넉함이 사라진 세상때문이다. 대학 병원 교수까지 하던 집안에서 아들을 결혼시키며 집을 마련조차 해주지 못하는 검소함은 재산 비리로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는 인사 청문회의 세상에서 웃프다. 돈 앞에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초연함을 자랑하는 가족들의 당당함은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마다 집칸이나 가지고, 가게라도 번듯하게 하며 사는 중산층이상의 삶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먼저 눈치챈다. 어른들의 세대가 벌이는 갑질이 폭력이 되는 세상에서, <그래 그런거야> 속 지혜로운 어른들은 무상하다. 
by meditator 2016. 2. 22.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