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가 침체된 kbs드라마에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야심차게 선보인 장혁 주연의 사극<장사의 신-객주 2015>를 편성했지만, 동시간대 sbs의 드라마에 고전했던 kbs는 3월 동시에 시작한 sbs의 <돌아와요 아저씨>를 가볍게 물리치고, 14.3%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는가 싶더니, 무려 3회만에 20%를 넘는 시청률로, 고전하는 kbs 드라마를 구제한다. 역시 김은숙이라는 감탄이 나올만 하다.
2004년 최고 시청륙 57.6% <파리의 연인> 이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온에어(2008)>, <시크릿 가든(2010)>, <상속자들(2013)>까지 지난 10여년간 언제나 '베스트셀러'의 무게를 견디며 '왕좌'의 자리를 지켜왔다. 과연, 지난 10여년간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은숙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웃통 벗어제친 군인을 관음하듯
병원 이사장에게 밉보여 우르크 의료 봉사단으로 발령을 강모연 일행을 맞이한 것은 바로 우크르에 주둔하고 있는 유시진(송중기 분)의 모우루 중대였다. 총상을 입은 유시진을 치료한 일을 계기로 잠시 사랑의 설레임에 빠졌던 두 사람, 하지만 언제나 출동을 대기하는 군인 유시진과 어긋남을 참을 수 없었던 모연은 결별을 선언했지만,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이역만리 우르크라는 곳에서 이어진다.
이슬람 권의 가상 분쟁 지역인 우르크를 배경으로 풀어지는 강모연과 유시진의 사랑 이야기는 풍광이 아름다운 지중해의 나라, 그리스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에머랄드' 빛 바다, 그리고 그 바다 만큼이나 맑은 하늘,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운 폐허의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랑'에 빠지기 좋은 장치가 된다. 우르크에서 첫 날을 맞이한 강모연과 일행, 그들을 맞이한 건, 웃통을 벗어제친 채 건강한(?) 몸으로 구보를 하는 유시진의 수하 병사들이다. 강모연과 측근들은 그런 그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심지어 그리워했던 유시진에게 시야를 가리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다. 바로 이 장면, 두 눈 크게 뜨고 웃통을 벗어제친 근육남들을 한껏 관음하는 이 시선, 이것이야말로, 시청자들이 김은숙 드라마에 빠지는 본질을 드러낸 가장 명장면이 아닐까?
멋진 풍광과, 비극을 잉태한 국제 분쟁 거기에 끼인 두 순수한 열정의 젊은 남녀, 그리고 그 젊은이의 사랑을 한껏 더 아름답게 만드는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데, 겨우 웃통 벗어제친 군인들을 한껏 관음하는 시선이 명장면이라니 어불성설 아니냐고? 하지만 어쩐다, 엎어치건 제치건, 결국 김은숙 드라마의 본질은 바로 그 장면에 있는 걸!
군인이 연애하는 이야기,
<태양의 후예>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겐 여러 반응들이 있지만, 그 중 공통적인 것을 추려보자면, '군인이 멋지다', '송중기가 멋지다', '우르크가 아름답다'로 추려진다. 이 감상의 공통점은 '멋지다', '아름답다'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과 멋짐이 불온하다.
그 누구도 잘 생긴 송중기가 연기하는 유시진 대위의 하얀 얼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난 몇 회를 통해 보건대, 육사 출신으로 대한민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생과 사가 오가는 야전에서 굴러먹은 그인데, 그의 수하 서대영(진구 분)이나, 여타 군인들과 다른 그의 외모에 대해 감탄을 할 지언정,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뭐 그건 제 아무리 전장을 헤매고, 훈련을 거듭해도 절대 타지 않고, 훼손되지 않는 이상체질이 있다 치자.
문제는 그 아름다운 군인 송중기의 사랑 이야기를 벌이기 위해 풀어놓은 대한민국 부대의 활약상이 더 불온하다는 점이다. '테러 방지법' 통과를 두고 국회의원들이 밤을 새서 국회 연단을 지키고, 하루가 멀다하고 종편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관련된 각종 기사가 도배되고 있는 이즈음, 가장 인기있는 주중 미니 시리즈가 '군인이, 그것도 가장 멋진 군인이, 군대에 대한 로망을 한껏 부풀리며 사랑하는 이야기'라니, 70년대 간접 잡는 실화 극장은 저리 가라할 국책 드라마 아닌
그런데 그 부대가 활약하는 곳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가상의 이슬람 국가 우르크다. 그곳에서 가장 인본주의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군대로 유시진의 군대는 등장한다. 특전사인 그의 부대는 미군과 힘겨루기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이슬람 국가와 미국의 신경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슬람 정부 요인의 목숨을 구하는데 솔선수범하는 진정한 정의의 군대다. (작전지휘권도 없는 한국의 민망한 처지를 포장하기 위해 이슬람 주요 인사는 우연한 사고로 유시진의 부대에 불시착하는 드라마의 미덕을 발휘한다) 드라마는 작전 지휘권을 미국이 가진 남한의 상처난 자존심, 거기에 신흥 강대국 G20에 속하게 되었지만 선진국으로서의 삶과 질을 담보하지 못한선진국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한껏 내보인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군인들의 액션 어드벤처가 아니다. 제 아무리 유시진이 자신의 군인 생명을 내걸고 작전을 수행하고, 강모연이 불가능한 수술을 감행한다 해도,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두 사람의 사랑을 맺어주기 위한 '결정적 장치'라는 것을 시청자들은 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맘 편하게 드라마 속 국제적 위기와 군대 내부의 갈등을 지켜본다. 오히려 특전사 사령관을 아버지로 둔 윤명주(김지원 분)와 겨우 특전사 상사에 불과한 서대영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더 애절하게 다가올 만큼.
문제는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인 유시진 대위의 모험과 강모연의 도발을 위해 사용되는 장치에, 가상의 이슬람 국가와 그 국민들이 대상화되었다는 점이다. 극중 유시진 대위는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이런 좌우명을 멋들어지게 드러내기 위해, 지뢰밭에서 마구 뛰어노는 우르크의 아이들이 '사용'된다. 심지어 그 아이들은 납이 잔뜩 든 쇠붙이를 빨기 까지 한다.(먹을 것도 아닌데) 그렇게 무방비하게 뛰어놀던 아이들은 한 술 더 떠서, 유시진의 부대에 와서 먹을 것을 구걸하고, 그러다 납중독으로 인해 응급 상황을 만든다.
그 잘생긴 군인과 아름다운 의사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점령지의 아이들은 한껏 구질구질해졌다. 그들의 구질구질함과 구차함은 흡사, 6.25 전쟁 당시 미군을 향해, 'give me a gum'을 외치던 우리의 아이들과 같다. 그 시절 미군의 눈에 비쳤던 가난하고 남루한 우리의 모습을 드라마는 이제 타국의 아이들을 통해 '보상'받는다. 마치 이제 우리도 느네들을 도울만큼 살만 해 라고 자화자찬하듯.
그렇게 가난한 아이들을 상대로 한껏 폼을 잡으며 사랑의 계기를 만들던(솔직히 드라마 시작하자마자 첫 눈에 반하다시피 한 두 사람은 굳이 이국의 아이들을 대상화시키지 않았어도 사랑에 빠졌을 터이다)두 사람은 이제 한 술 더 떠 이국의 정부 요인을 치료하며 사랑을 다져간다. 우리 정부도, 군대도, 그리고 그 우르크의 그 누구도 그의 목숨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유시진과, 메스를 놓은 지 한참된 속물 의사 강모연이 뜻을 맞춰 그를 구한 것이다. 상명하복이 중요한, 그리고 외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우리 군대야 그렇다 치고,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조차 생명보다 절차를 중요시하는 굳어빠진 조직으로 만들며, 두 주인공은 '정의'의 승리를 일궈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시진이 이끄는 우르크 중대는 세상에 없는 가장 이상적인 군대다. 오토바이 털이범조차 개과천선 시키는, 육사 출신 중대장과, 군대 짬밥이 높은 선임 상사 사이는 '브로맨스'인 듯 돈독하며, 중대를 이끄는 책임자가 종종 의료 봉사 온 의사 여친이랑 데이트를 즐겨도 절대 불만을 표시하기는 커녕, 일사불란하게 전장에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불사하는 이상적인 군대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종종 빚어지는 군대 내 왕따나, 상명하복의 불협화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상처받은 우리의 자존심을 부추켜 세워주는
이렇게 드라마는 실제 대한민국 사회에서 빚어지는 군대 조직의 현실을 그려내는 대신, 풍광 좋은 그리스를 이슬람 그 어딘가의 국제 분쟁 지역으로 치고, 거기서 일어나는 국제간 불협화음에서 신출귀몰한 활약을 벌이는 한국 군인의 무용담을 배경으로, 한 술 더 떠 의료 봉사진의 활약까지 얹어, 가장 환타지스러운 전장 속의 사랑을 만들어 낸다. 외국의 눈치를 보느라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조차 구렁이 담타넘듯 외면하는 폭좁은 대한민국의 입지는 미국과 힘을 겨루는 파견군으로, 구질구질한 대한민국 병영 대신 그리스의 풍광으로, 종종 사회면 기사로 등장하는 군대 내 문제들은,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치는 웃통 벗어제친 군인들로, 현실에서 한껏 주눅들었던 시청자의 어깨를 펴준다. '군인이 이렇게 멋진 줄 몰랐었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희어멀건한 군인도, 잘 나가는 의사도, 입을 여니,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한껏 잘 난체 하는 듯 하더니,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란다. 잔뜩 새침한 거 같더니, 나 이쁘지 않냔다. 때로는 순수했으나 속물이 된 여자의 세태 적응은 익숙하고, 그런 여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속물로 살아가는 시청자의 존재조차 긍휼히 여기는 듯하다. 군인이건 의사건 사람살이 거기서 거기라는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사랑밖에 모르는 남자도, 속물이라는 여자도, 결정적일 때, 정의롭고 바르니, 속물로 살아가는 우리도 본디 그 마음은 순수하고 아름다울 것이라 지레 고개가 끄덕여 진다. 순수하고 소박한 세계관이다. 이 보다 더한 위로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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