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 미스 마플, 그리고 코난, 김전일, 몽크까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들이 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살인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살인을 몰고다니는'이라는 수식어가 이들 앞에 붙기도 할까. 이제 거기에 한 사람을 더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추리의 여왕2>의 유설옥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배방동에 살 땐 배방동에서 자꾸만 사건이 터지더니, 이제 경찰 고시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근거지를 옮긴 그곳에서 '살인 사건'이 터져 공부를 해야 하는 그녀의 발길을 잡는다. 심지어 한 술 더 떠서, 이번에는 기필코 붙으리라, 단호한 결심을 하고 떠난 기숙 학원에서까지 사람이 죽어 나가니, '살인'을 부르는 내공에 있어서는 저 앞서의 탐정들에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만 늦어도 학생들이 빼곡이 들어찬 강의실에서 '인강'보다도 못한 자리에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노량진, 뒤늦게 이곳에 합류한 유설옥(최강희 분)은 골목에서 웅성이는 경찰들, 그곳에 둘러쳐진 가이드 라인을 보고도 두 눈을 질끈 감고 그곳을 지나쳤다. 하지만, '범죄'가 어디 유설옥을 가만 두겠는가. 겨우겨우 한 자리 차지해서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던 강의실까지 하완승(권상우 분)가 나타나고야 만다. 사랑의 밀땅을 하는 그 분위기로 유설옥은 '지나친 관심'이라 주의를 돌려보지만, 저돌적으로 돌진한 하완승은 가장 앞자리에 앉은 윤미주를 체포한다. 팔꿈치와 신발에 확연하게 묻은 피, 도대체 피할 수 없는 이 증거 앞에서 당장 경찰 고시를 앞둔 윤미주는 '살인할 시간'도 없다며 절규하지만 그녀의 해명에 대한 답은 유치장일 뿐이다. 



첫 회, 하완승과 유설옥의 결혼 사기 사건 잠입에 이어, 하완승이 옮겨 간 서동서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으로 두 번째 시즌의 개막을 선포한 <추리의 여왕2>는 아직까지 시즌의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가정 주부 유설옥의 동네 탐정 버전은 아직 겉돌았고, 서동서의 등장인물들은 우후죽순 불협화음을 냈다. 그런 가운데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의 변주와도 같았던 '아파트 화염병 투척 사건'은 사건 초반만 해도 마치 '어린 사이코패스'의 등장인가 싶게 의미심장하더니, 급 '반성, 화해, 교훈' 모두의 사건 해결로,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시켜 버려 아쉬움을 남겼다. 

범죄와 공간의 절묘한 조합, 노량진 살인 사건 
그렇게 서주를 끝낸 <추리의 여왕2>,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라는 듯 유설옥이 노량진에 고시생으로 등장하며, 시리즈 본연의 맛을 살려내기 시작한다. 우경감도, 유설옥의 동네 주민도 없지만, 노량진이라는 동네의 '블루스'한 정서를 고스란히 사건에 투영시켜 내면서 그곳에서 탐정 유설옥의 활약에 방점을 두며, 비로소 추리의 여왕다운 서사를 보여준다. 

노량진, 새벽 3시에 일어나야 강의실 제일 앞자리를 앉을 수 있는 곳, 윤미주는 그곳에서 언제나 제일 앞자리를 놓치지 않던 학생이다. 그날은 다른 날 보다 조금 더 늦어 빠른 길로 '인강' 강의를 귀에 꽂은 채 서둘러 달렸던 골목, 그녀는 그 골목에서 '멘톨'향을 강하게 발산하던 한 남자와 부딪칠 뻔한 기억은 있지만, 자신의 발을 붙잡던 노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그녀에게 이곳은 오로지 시험합격만을 위해 편재된 공간이다. 오로지 시험에 맞춰 그 흔한 연예인 사진 한 장없이 배열된 그녀의 독서실 책상처럼, 하늘 한번, 주변 한번 둘러볼 여유의 필요조차 없는, 그래서 '살인할 시간조차'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렇게 드라마는 시즌 1의 장기인 '수사' 이전에, 공간의 정서를 한껏 부풀어 올린다. 컵밥을 들고 걸어가면서 먹는 학생들, 누군가의 체포가 또 다른 누군가의 앞자리 득템으로 이어지는 무한 경쟁, 그리고 그곳에 웅크리며 살아가는 갖가지 인물군들. 용의자 윤미주가 진범이 아닐 꺼라고 확신한 유설옥이 하완승의 수사에 참여하면서, '노량진'이라는 공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수사 선상에 등장한다. 이미 '몰카범'으로 유설옥 콤비에게 찍혔던 공시생인척 노량진을 배회하는 박기범(동하 분), 윤미주에게 남달랐던 살해당한 노인의 고시원 총무 고시환, 그리고 공시생들을 상대로 돈을 모아 빌딩을 세운 노인의 유학생 손자 이인호. 그렇게 노량진이란 공간 속의 인간 군상들이 사건의 용의선상에 등장한다. 그리고 결국 사건은, 공시생을 겁박하며 돈을 갈취하다시피 살아온 노인으로 인해 오랫동안 공들였던 기회를 놓친 공시생과 마약으로 인해 협박을 받았던 손자가 모의한 사건으로 결론이 남으로써 '노량진 블루스'다운 완결을 낸다. 

노량진이란 우리 사회의 무한 경쟁을 상징하는 한 공간에서 '경쟁'으로 인해 살인을 외면했던 사람이 용의자가 되고, 결국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악의 수단을 선택한 사람이 범인이 되는, 그리고 그 '경쟁'을 부추기며 기생해 왔던 이가 희생자가 되는,  결국 이 '경쟁의 공간' 자체가 살인을 품어내고 있다는 우의적 결론에 이른다. 거기에 덧붙여, 에필로그처럼 혐의가 풀린 윤미주가 비로소 하늘을 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죽어가는 노인의 마지막 손길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이 경찰이 될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이 질문은 곧, 수단이 목적을 삼켜버린 노량진이란 공간에 던지는 드라마의 교훈이기도 하다. 

이렇게 노량진 살인 사건을 통해 비로소 추리의 여왕 본연의 틀을 완성시킨 <추리의 여왕2>는 유설옥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경찰 고시를 위해 기숙학원으로 근거지를 옮기는 것으로, 시즌을 변주해 나가고자 한다. 그와 함께, '김과정'이란 의문의 인물이 부상함과 함께, 그저 동네 제과점 사장인 줄 알았던 정희연(이다희 분)의 의미심장한 활약, 그리고 비로소 하완승의 팀장으로 등장한 우경감(박병은 분)과 함께 시즌 2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갖춰진다. 



슬로우 스타터, 늦은 김에 시즌 3까지?
7회에서 갖춰진 체제라니, 슬로우 스타터라도 이렇게 게으를 수가 없다 싶다. 하지만 늦은 체제와 함께 시즌2에는 여전히 남겨진 숙제가 있다. 우경감의 등장과 함께, 하완승-우경감- 유설옥의 수사 라인이 갖춰진 것과 함께 그들의 개성강한 조력자로 황재민 팀장(김민상)이 강력하게 부상했지만, 아직도 서동서의 신장구 서장을 비롯하여, 조인호 과장, 계성호 팀장, 공한민 경장, 신나라 순경까지 감초라 하기엔 씬스틸을 할만한 조역들의 비중이 높다. 시즌 3까지 노린 야심찬 포석이라기엔 시즌2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할 눈 앞의 산이 아직 높은 상황에서, 이 '다수'의 출연진들에게 제 몫을 배정하며 유설옥-하완승 콤비의 수사극을 제대로 그려내는 것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부디 이 화려한 출연진들을 제대로 살려내, 공중파 미니 시리즈 최초 시즌 3까지 순항하는 <추리의 여왕>이 되기를 건투를 빌어본다. 
by meditator 2018. 3. 22. 16:04

여자는 국장되면 안되란 법있어?'

<미스티> 고혜란(김남주 분)의 이 대사는 최근 드라마 속에서 변화하는 여성상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말이다. 오랫동안 맡았던 앵커 자리를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는 동료의 말에 고혜란은 당당하게 말한다. '그만둬도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 둬!', 이 말은 '뉴스의 꽃'으로 존재했던 여성의 지위에 대한 당당한 반격이다. 극 초반 케빈 리(고준 분)를 사이에 두고, 앵커 자리를 다툼했던 고혜란과 진기주는 이제 극 중반을 넘어서며 유리 천장을 뚫기 위한 '연대'에 나선다. '여자 주제에' 장기 앵커로 집권했던 고혜란 마땅치않게 여기는 보도국 남성들을 제치고, 진기주는 기꺼이 고혜란을 위해 나선다. 그녀의 성공이 곧 후배 진기주가 가는 길을 닦아주는 것이기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허튼 속설'에 <미스티>는 반격을 가한다. 그녀들은 힘을 합쳐 남성들의 사회가 그녀들을 향해 파놓은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이렇게 드라마 속 여성이,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이 변한다. <황금빛 내 인생>의 긴 여정은 곧 88만원 세대였던 서지안(의 '자아 실현'의 과정이기도 하다. 남들처럼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 정규직에 목을 매던 서지안은 엄마의 딸 바꿔치기로 '해성가'를 경험한(?) 이후 삶의 궤도를 수정했다.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컸던 그녀는 옛친구 혁의 목공방에서 알바를 하며 진정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는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포기했던 미대 진학의 꿈을 '목공'을 통해 풀어나가고 자신의 힘으로 '핀란드 연수'까지 실행시킨다. 그 과정에서 재벌 집안의 반대로 있지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겠다 내 꿈에 만족하며 살겠다 결심한 서지안에게는 '사랑'마저 자신을 흔들어 놓는 '방해 요소'일 뿐이다. 50회 그토록 자신이 원하고, 아버지가 죽어가면서까지 바랬던 '핀란드 연수'의 꿈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최도경(박시후 분)이 잠시 뒤로 미룰 것을 종용하자, 불같이 화를 낸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사랑을 이기적이라 질타하며. 

이렇게 '사랑'보다 기꺼이 자신의 일을 택하고, 그 여정이 곧 주요 서사가 되는 최근 드라마의 경향들은 우리 사회 여성들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토록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들인데, 정작 드라마의 진행 과정에서 그녀들은 현대판 '백마탄 왕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물론, 현대로 온 왕자들은 그녀들에게 '신데렐라 구두'을 신겨, 왕궁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외려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왕궁(황금빛 내 인생 최도경의 해성가, 미스티 강태욱의 명망있는 법조가문)을 걷어찬다. 



<황금빛 내 인생> '호구'라 쓰고, '순정'이라 칭해진 최도경의 외사랑
<황금빛 내 인생>에서 동생으로 돌아온 서지안의 적응을 위해 애를 쓰던 최도경은 그녀가 친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후 '분노'도 잠시 해성가의 거짓 딸로 애쓰는 서지안을 돕던 중 사랑에 빠지고 만다. 최도경의 서지안에 대한 사랑은 '해성가'의 부속품으로 어릴 때부터 '정비'되어온 인간 최도경을 처음으로 알아봐 주었다는 그 '눈밝음'으로 부터 비롯된다.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니가 처음이야'라는 그 흔한 연애 드라마의 공식은 재벌가의 최도경을 변화시킨다. 

<황금빛 내 인생>이 여주인공 서지안의 입장에서는 '자아 실현기' 였다면, 남자 주인공인 최도경에게는 한결같은 '서지안 바라기'의 여정이었다. 서지안이 최도경이 없이도 '목공은 나의 인생'으로 홀로 서려 애쓴 반면, 최도경은 재벌이었을 때나, 재벌가를 나와 갖은 알바로 고생을 할때나, 심지어 심장 발작을 일으킨 할아버지 때문에 다시 재벌가로 돌아갔을 때도 서지안 때문이었다. 동생일 때는 재벌가가 낯선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동생이 아니면 그 사실로 인해 고통받는 동생이 안쓰러워, 그리조 밀어내건, 함께 하건 그는 늘 서지안으로부터 그의 '존재'를 인정받고, 그런 서지안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 했다. 

그렇다고 그런 최도경의 '일편단심'에 보상이 따른 건 아니다. 여주인공은 늘 그를 밀어냈고, 심지어 그를 자신의 앞에서, '치워달라'고 외면했고, 그의 선의를 곡해해 '닦아세우기'가 여러 번, 그래도 그는 서지안 앞에서는 늘 약자가 되어, 그녀를 위해 달려갔고, 품을 내어주었다. 심지어, 그와 헤어져 핀란드로 떠난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지금까지의 사랑이 '이기적이었다' 다시 반성하며, 평생을 기다릴 수 있다며, 핀란드로 달려간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최도경이 줄곧 서지안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정작 서지안에게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건 아버지다. 서지안은 딸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그녀와 단 둘이 데이트를 할 만큼, 아버지를 제일 닮은 편애의 대상이다.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유산은 큰 아들은 물론 작은 아들도 아닌, 큰 딸 서지안에게 계승된다. 경제적으로 보험금도 제일 많이 나누어줬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줄곧 큰 딸 서지안을, 딸 서지안은 아버지를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어머니'는 낳아준 사람이지만, 서지안에게 부모란 곧 아버지인 듯, 아버지가 수모를 받을 때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흔들리며, 사랑조차 거부해 버린다. 



<미스티> 범죄조차 믿고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강태욱
제 아무리 한대 칠 기세로 닦아세워도 그래도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이를 가로 막는 건, 사회적 위치가 달라도 두 집안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은 갸륵한 사랑이 있다. 바로 고혜란의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이다. 

아버지가 대법관인 법조 가문의 외아들로 태어나 대를 이어 검사로 활약했던 강태욱, 기자였던 아내를 사랑하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녀를 기꺼이 품었던 그는 앵커 자리를 꿰어차기 위해 아이를 지운 아내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케빈 리의 살해범으로 지목된 아내를 보며 '널 포기할 자신이 없다'며 기꺼이 그녀의 편에 선다. 케빈 리 아내가 시시때때로 고혜란과의 사이를 벌려놓기 위해 갖은 '정보'를 흘려도 강태욱은 고뇌할 지언정 흔들리지 않는다. '법'의 편에 서야 할 그가 케빈 리와 아내의 블랙 박스 정보를 지우고, 유일하게 그녀의 편에 선 '변호사'라는 백마를 타고 법정에 나선다. 

하지만 고혜란에게 왕자님은 강태욱 한 사람만이 아니다. 세상의 남자들이 그녀가 자기 밥그릇을 빼았는다고 질시할 때, 아니 그 이전 세상 남자들의 밥그릇을 걷어 찰 수 있기 그 전에, 그녀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무모한 도박을 벌였을 때, 그 위기에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그녀를 세상으로 나서게 해주었던 하명우(임태경 분)도 있다. 이제 강태욱이 세상 앞에 나선 고혜란의 옆에 서있다면, 하명우는 그녀의 그늘이 되어 여전히 그녀를 지킨다. 이 두 '백마 탄 왕자'와 '흑기사'야 말로 고혜란을 완성시켜주는 존재들이다. 


'환타지'가 남긴 성평등의 과제 
'사랑한다면서 널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내가 정해놓은 정답만 너한테 강요하면서 널 힘들게 했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랑 때문에 내 자신이 견딜 수 없게 초라해 질 때가 있습니다. 난 그게 사랑때문이라고 그래서 괴로운 거다 라고 생각했다......내가 괴로운 건 사랑 때문이 아니었구나. 남자의 못난 자존심 때문이었구나.'

강태욱의 이 대사들이야 말로, <황금빛 내 인생>의 최도경과, <미스티> 강태욱, 그리고 그와 비슷한 드라마 속 2018년 버전 백마 탄 왕자들에 대한 정의이다. 동화 속 왕자들이 재투성이 아가씨를 구해 자신의 왕궁으로 데려 가는 대신, 2018년의 왕자들은 기꺼이 그녀들이 사는 재투성이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가 원하는 '신발'을 그녀가 얻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도대체 왜? 라고 반문한다면, 그들은 그게 그들이 원하는 사랑이라 답한다. 기꺼이 그녀의 범죄조차 믿어줄 수 있는, 만리타국에서의 그녀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놓고 그녀에게 가는 걸, 그 '이타성'을 그들은 사랑이라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마치 산업사회의 사랑이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남자'를 응원하는 여성의 사랑을 갸륵하게 여겼다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과 <미스티> 속 남자들의 멋진 사랑은 바로 그런 '전근대적 사랑'의 '현대적 '미러링'인 것이다. '미러링'은 말 그대로 마주보기이다. 과거에 남자들을 향한 여성의 사랑이 그러했듯, 이제 그 남녀의 위치가 역전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드라마 속 남성들은 그저 '사랑의 역학 관계'에서의 미러링만이 아니라, 그럼에도 여전히 고전적 왕자의 역할을 고스란히 떠맡는 '이중 부하'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미스티> 속 고혜란에게 강태욱이 그리고 과거의 하명우가 없다면 어땠을까? 해성가에 들어가면서 부터, 가짜 딸의 위기를 겪어내던 서지안에게 최도경이, 그리고 친구 혁이, 그리고 아버지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심지어 극이 절정에 이를 수록, 진취적 여성보다 그런 그녀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남성들의 희생적 사랑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역설적으로 이런 '환타지적 설정'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여전히 그저 전도된 '역학 관계'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혹은 심지어 남녀의 평등한 사랑에 대한 '담론'에 있어 지체 되어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남자들에 의해 보호받고, 지원받음으로 그녀의 '진취적이고 저돌적인 삶'이 완성되는 여성들, 어떤 의미에서 그녀들은 또 다른 종류의 '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여성이, 그리고 남성이 함께 동등하게 사랑하고 살아가는 삶은 과제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8. 3. 14. 16:49

<작은 신의 아이들>은 지난 해 방영되었던 <구해줘>의 속편처럼 시작되었다. 사이비 종교 집단에 의해 자행된 집단 학살극, 그리고 그 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부녀. 세월은 흘러 김단(김옥빈 분)은 경찰이 되었지만, 그녀를 규정하는 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환각'과도 같은 예지력.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비이성적인 감각'으로 혼돈스러워 하는 그녀에 대비되어 등장하는 오로지 '팩트'만을 신봉하는 천재 형사 천재인(강지환 분). 하지만 감각과 이성의 대비인 이 남녀 두 형사의 대비는 일찌기 <엑스파일>이래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수사극에서 익숙한 구도였다. 또한 그들이 함께 마주한 사건은 이젠 정말 장르물에서 '클리셰'에 가까운 연쇄 살인마. 


그렇게 <작은 신의 아이들>은 익숙한 갖가지 장르물의 설정을 뒤섞어 놓은 듯한 모양새로 시작되었다. 거기에 새로이 맞이한 캐릭터가 몸에 맞지 않은 듯한 배우들의 조금은 들뜬 듯한 연기는 그런 진부한 익숙함을 포장해줄 여지가 적었다. 그래서일까? 좀처럼 2%대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4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1회 2.540%, 4회 2.861% 닐슨 코리아 수도권 유료 플랫폼 가구 기준)



하지만 이런 초반의 뻔한 설정과 아직 무르익지 않은 연기만을 가지고 <작은 신의 아이들>을 예단하는 건 이르다. 3,4회 극 초반을 이끌던 '아폴로'의 죽음과 함께, 그 뻔하던 연쇄 살인이 걷어지면서 오히려 <작은 신의 아이들>이란 드라마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한산했던 토일 밤 10시, 11시대의 시청률 쟁탈전이 <효리네 민박>, <미운 우리새끼> 등 예능의 선전과 함께, <미스티>의 화제몰이 등으로 공중파, 케이블, 종편을 막라하고 한층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장르물로서의 <작은 신의 아이들>이 갈 길은 험해보이지만, 4회에 들어서 비로소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작은 신의 아이들>의 관전 포인트에는 '방점'이 찍히기 시작했다. 


아폴로, 뽀빠이, 그리고 별
무속의 영향력 아래 놓인 말단 경찰 김단과 천재 형사 천재인이 함께 맞이한 한상구의 연쇄 살인 사건은 '무속'과 '과학'의 대비점을 강조했음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두 파트너의 불협화음을 보여준 장르물의 익숙한 구도였다. 하지만, 한상구의 첫 번째 연쇄 살인 이후 시간이 흐르고, 이제 형사와 노숙자의 처지로 역전되어 조우한 김단과 천재인가 만나게 된 백아현 실종 사건,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마주한 한상구, 그리고 그의 뜻하지 않은 죽음은 두 사람 앞에 그저 연쇄 살인범이 아니라, '아폴로'란 정체 불명의 인물을 불러들인다. 

김단을 '별'이라 부르던 한상구, 그는 죽어가며 자신을 '아폴로'라 불러 달라고 했고, 마치 김춘수의 시 '꽃'처럼 김단이 그를 아폴로라 불러주자, 연쇄 살인범 한상구는 간 곳이 없이, 피흘리며 죽어가는 어린 '아폴로'가 나타난다. 그리고 피해자였던 백아현이 비록 납치는 되었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칼로 찔렀던 '범죄', 그리고 그 범죄가 바로 '아폴로'였던 한상구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저 또 한번의 흔한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것같았던 <작은 신의 아이들>은 그  '사이비'의 폐해 속에 희생된 '아이들'을 불러오며 비로소 살을 붙여가기 시작한다.

또한  한상구가 죽어가며 되뇌였던 '뽀빠이'에 대한 의문과 함께, 수사를 위해 방문했던 그 엄숙했던 교회에서 터지던 비웃음에서 부터, 한상구의 화장 현장에까지 슬픔인지 연민인지 모를 표정으로 김단과 때론 어긋나게, 때론 공감하며 조우하게 되는 주하민 검사(심희섭 분)가 모호한 존재로 천재인과 김단의 맞은 편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작은 신의 아이들>이란 드라마의 구도가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한다. 아폴로와 뽀빠이와 그리고 사라진 별이란 아이들이 도대체 과거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어떤 일을 겪었으며, 그 일이 오늘의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천재인과 김단
이성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믿지 않으려 하는 천재인 형사와 그런 그의 앞에서 자신에게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무속의 기운'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김단의 대비는 극 초반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지난 한상구의 사건으로 어긋나고, 이제 역전된 형사와 노숙자의 관계로 마주하면서 비로소 둘의 사연도 한 걸음 깊어져 간다.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간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천재인의 '언더 커버' 노숙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강지환의 진가를 비로소 드러내고, 그런 그와 함께 자신의 사명감, 혹은 연민으로 사건 속으로 한 발씩 내딛는 김단 역 김옥빈의 감성 연기는 극 초반의 불협화음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 비로소 호흡이 제대로 맞아가는 두 사람이 동생이 파헤치던 사건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찾아간 섬, 왁자지껄한 섬 인심 너머로 풍기는 그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때론 코믹하게, 때론 진지하게 조화를 이루며 사건의 중심으로 한 발 성큼 내딛어 가는 과정의 이후가 주목된다. 또한 아직은 맛보기였던 '과학'과 '무속'의 콜라보도 본격적으로 펼쳐질 듯하니, 그 지점 역시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된다. 

<작은 신의 아이들>은 사이비 종교 집단을 다루지만, '종교'에, 혹은 '믿음'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를 도구로 하여, 그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권력'을 형성해 왔는지, 그 권력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구화시켜 희생해 왔는지를 갖가지 사건을 통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저 연쇄 살인범이었던 한상구가 알고보니 어린 시절 그 '사이비 집단' 속에서 '농락'당한 트라우마의 희생자였듯이, 이제 천재인과 김단이 찾아간 섬에서 그들이 찾아내는 진실은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 쓰고, '권력'이라 읽어야 할 어둠의 실체, 그 허울을 한꺼풀 또 다시 벗겨낼 것이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걸 풀어가는 소재의 면에서, <작은 신의 아이들>은 마치 '잘 차려진 코스 요리'와도 같다. 그러기에 전채 요리 하나가 어설프다 하여, 이 풍성한 식탁을 외면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by meditator 2018. 3. 12. 14:47

드라마 계에서 '시즌제'는 참 희박한 아이템이다. <막돼먹은 영애씨>나 <하이킥>시리즈와 같은 '시트콤'의 요소가 많은 작품이 아니고서는 사실상 시즌제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드물다. ocn의 장르물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신의 퀴즈>나, <뱀파이어 검사>, <특수사건 전담반> 등의 시즌제 드라마가 있었지만, 그 조차도 최근에 들어서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얼마전 종영한 <나쁜 녀석들>의 경우, 말이 시즌제지, 제목만 같았을 뿐 출연한 배우진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나쁜 녀석들> 시즌 1에 출연했던 박해진, 마동석 등의 존재감이 달라지면서, 이후 마동석이 단독 주연이다시피 한 <38사기동대>로 돌아왔듯, 무엇보다 시즌제에서는 출연 배우들의 연속성 여부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추리의 여왕>은 출연했던 권상우, 최강희 등의 두 주연 배우가 시즌제에 적극 호응하며 순조롭게 시즌 2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른바 '미드', 미국 드라마들이 몇 십 시즌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출연 배우들의 협조만이 아니다. 시즌을 이어갈 수 있는 양질의 내용성을 답보할 수 있는가라는 내적 충실성이 또한 시즌제 드라마의 중대한 관건이 된다. 설사 시즌제가 된다 하더라도 전작에 대한 호응을 이어갈만한 작품의 질적 수준을 이어갈 수 있는가가 결국 '시즌제'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게 된다. ocn의 장르물들이 몇 시즌을 넘기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러한 '내용성의 고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 4회를 넘긴 <추리의 여왕 시즌2>의 걸음은 그다지 산뜻하지만은 않다. 

시즌 1의 '일관성'과 '변주', 두 마리 토끼 시즌2
2017년 4월부터 방영된 <추리의 여왕> 시즌 1은 검사인 남편의 아내로, 시집살이를 하며 숨길 수 없는 '추리력'의 본능을 '저어'하지 못한 채 그리고 자살로 처리된 부모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집요한 의지를 펴보였던 주부 유설옥(최강희 분)은 이야기가 기본 줄기였다. 그런 그녀가 범죄 현장에서 조우하게된 역시나 개인적인 사연을 가진 하완승(권상우 분) 형사와 엮이게 되면서 두뇌 플레이의 주부 탐정과 저돌적인 형사라는 걸출한 콤비가 탄생하게 되었다. 유설옥의 친구 김경미(김현숙 분)의 반찬 가게를 배경으로 배방동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그곳이 관할인 '서동서'를 거점으로 '추리'와 '추격'의 두 마리 토끼를 깔끔하게 잡아냈다. 

평균 시청률 9.8%, 객관적으로 그다지 높다할 수 없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를 살린 '연출'과 거기에 어우러진 '동네 추리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설정은 애청자 층을 형성하며 순조롭게 시즌 2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두 주연 배우의 흔쾌한 결정으로 불과 1년 여 만에 시즌2로 돌아오게 된다. 

지난 2월 28일 부터 시작된 <추리의 여왕2>는 시즌제의 고민을 '일관성'을 지켜내며 '변주'를 해내는 이중 포석의 측면에서 살려가고자 고심한다. 우선 시즌제의 일관성을 위해 무엇보다 관건이 된 두 주인공이 건재하게 시즌2로 돌아온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한다. 시즌 1에서 '이혼'의 아픔을 겪은 유설옥은 이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눈치를 보며, 집안 일을 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대고 뛰쳐나오던 주부의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로운 '돌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시즌 1에서 파트너가 되어 '동지애'를 나누었던 하완승 형사와 이제 대놓고 '썸'을 타는 사이로 발전한다. 

여전히 '아줌마'와 '형사님'이지만 두 사람은 '반지'를 놓고 아웅다웅하는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의 건재와 달리,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은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혼을 했기 때문에 시즌1에서 주요한 갈등 관계였던 시댁 식구들이 사라진다. 또한 서동서를 거점으로 유설옥이 살던 배방동 주변의 이야기를 '동네 추리극'으로 펼쳐갔던 이야기는 시즌2에 오며, 그 '거점'을 중진서로 옮겨간다. 또한 시즌2에서 해결되지 않은 하완승 형사의 '구원', 서현수는 이제 하완승을 중진서로 이끄는 매개로 등장하며 시즌1과 시즌2의 여전한 기본 갈등 구조를 이끌어 간다. 배방 파출소의 홍준오(이원근 분) 소장을 비롯한 배광태 팀장(안길강 분) 등이 함께 뭉쳤던 유설옥이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 경미의 반찬 가게는 유설옥 대신 경찰 시험에 합격한 경미마저 자리를 비운 채 아직은 두 주인공만의 고즈넉한 '아지트'로 남겨진 상태다. 



이게 시즌2? 익숙한 듯 낯선 
주부 유설옥이 장바구니를 들고 익숙하게 휘젓고 다니던 배방 시장 등을 배경으로 했던 시즌 1은 시즌 2에 들어서며 여전히 중진동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주부'라는 생활 밀착형의 친근함은 훨씬 덜어졌다. 아마도 '이게 시즌2야?'라며 의아해 하는 시청자들 대부분은 배방 시장을 배경으로 추격전을 벌이고, 마트 앞에서 작전을 짜던 '배방동 시절의 삶이 묻어나는 '추리의 여왕'이 그리운 것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설옥과 하완승과 함께 배방동을 누볐던 '동지'들의 부재, 심지어 때론 견원지간이며, 심지어 유설옥과의 사이에서 미묘한 경쟁 구도였던 우성하(박병은 분)의 모호하면서도 미미한 존재 역시 시즌2를 낯설게 하는 한 요소이다. 

그 그리움을 대신하는 건 새로운 갈등 구조이다. 대신 명예 경찰이 된 유설옥과 중진서로 발령이 난 하완승을 중심으로 중진서에서 만난 하완승의 동기이자 경쟁자였던 계성우 팀장(오민석 분)과 조인호 과장(김원해 분), 신장구 서장(김종수 분)등, 누구하나 하완승 형사의 '편'이라고는 없는 중진서의 식구들이다. 이 낯선, 하지만, 말썽많은 형사를 왕따시키는 경찰 서내 서열 구조라는 익숙한 수사물의 구도는, <추리의 여왕 시즌2>를 그래서 낯설고, 진부하게 만든다. 

그렇게 아직은 낯설고 그러면서도 진부해진 <추리의 여왕 시즌2>에서 이제 4회에 이르러 새로이 시즌2의 흥미를 유발하는 존재로 정희연(이다희 분)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4개나 케이크 전문점을 차린 미적 감각이 뛰어난 여성, 하지만 어느 틈에 완승과 설옥이 벌이는 추리 수사에 끼어들어 피해자, 목격자, 심지어 회유까지 다양한 역할을 변주하며 이젠 설옥과 '사랑의 경쟁'이라는 야심조차 숨기지 않는 그녀의 '미묘한 캐릭터'가 뻔한 수사물이 될 뻔한 시즌 2에 활력을 불어 넣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하완승의 형으로 등장한 하지승은 그 역을 맡은 김태우란 배우의 존재감만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익숙함과 낯섬, 그리고 진부함이 공존하는 <추리의 여왕 시즌2>에서 하지만 결정적으로 우려가 되는 건, 이제 4회까지의 '사건' 들이다. 첫 회 프롤로그처럼 등장한 결혼 사기단 사건,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중진동 방화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나 방식이 '추리 어드벤처'로서 <추리의 여왕 시즌 2>에 맞게 셋팅되었는가에 대한 우려를 남긴다. 여전히 시즌1의 고질적 병폐였던 사건 진행의 '헐거움'이나, 늘어짐이 시즌 2에 와서도 불식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유설옥의 추리는 기대되고, 하완승의 넉살과 저돌성은 여전한 듯 하지만, 시즌 1이 보여준 배방동 어드벤처의 묘미를 아직 시즌2가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심지어 4회,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을 그대로 옮긴 듯한 어린이 방화 사건의 마무리는 '온정적 미담'으로 종료되면서, 외려 사건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결론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캐릭터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사건이 그 캐릭터의 맛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시즌 2는 <추리의 여왕>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다. 부디, 시즌 1이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받았던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 잘 간파하여, 다시 한번 중진서를 배경으로 한 '동네 추리 활극'을 재연해 내길 바래본다. 그런 의미에서 5회, 고시원으로 간 유설옥의 생활 밀착형 '추리'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3. 9. 07:01

원수가 된 두 가문의 아들, 딸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택했다. 자신의 오빠를 죽인 원수 로미오에 대한 사랑을 택한 줄리엣은 그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독배를 택했고, 그 결과 죽음을 맞이했다. 고전 시대의 '사랑'은 지상 최대의 가치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랑도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함께, '사랑' 이야기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도 하고, 자신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기꺼이 이 두 가지를 성취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3포, 5포, 9포 세대의 대변인이 된 <황금빛 내 인생>의 서지안(신혜선 분)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선다.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면서까지 소망한 '핀란드 행'을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조금 미뤄달라는 최도경(박시후 분)에게 분노한다. '니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며, 왜 싫다는,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자기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발을 거냐며 포효한다. 




신데렐라 컴플렉스 따위!!
<황금빛 내 인생>의 구도는 전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도다. 어머니 양미정의 거짓말로 뒤바뀐 친딸, 그 사실이 밝혀지며 '원수' 사이에 된 두 집안의 남녀, 그리고 고전적인 갈등 구조에 맞추어 두 남녀 서지안과 최도경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그저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수지간만이 아니다. 국내 10대 재벌 기업을 바라보는 '해성'가와, 한때 무역맨이었지만 월셋집을 전전하는 어려운 집안의 사랑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그간 익숙하게 차용해 왔던 '신데렐라' 서사이기도 하다. 

소현경 작가는 이런 고전적이면서도 익숙한 갈등의 서사를 2018년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시도한다. 백마탄 왕자의 2018년 버전인 최도경과 사랑에 빠진 서지안, 하지만 2018년의 신데렐라는 과감히 왕자가 타고 온 백마를 걷어찬다. 어려운 가정 형편, 그리고 그 보다 더 난감했던 자신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해성가의 친딸의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서지안은 사실은 친딸이 아니었다는 충격적 상황을 맞이하며 그녀가 그간 가져왔던 가치관의 '아노미'를 '자살 시도'라는 극적인 장치를 통해 겪어낸다. 그리고 김말이 양식장 일까지 거치며 어렵사리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입신양명'을 꿈꾸던 그녀가 아니었다. 대신, 친구 혁의 도움으로 시작한 '목공'의 일을 '새로운 행복의 이상향'으로 바라보며 그곳에서 '성공' 대신 '성취'의 '로망'을 다시 꿈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변화에 대한 응답이 바로 '핀란드행 티켓'으로 구현될 예정이었다. 

이렇게 지난 50회의 여정에서 어렵사리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서지안에게 '사랑'은 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었다. 오빠였던 최도경과는 '다시 보지 말아야 할' 사이였으며, 그가 자신의 집안마저 버리고 서지안의 주변을 맴돌았을 때에도 '해성가'를 지옥처럼 여겼던 서지안은 굳건하게 그의 사랑을 외면하려 애썼다. 드라마는 일관되게 서지안을 통해 2018년의 사랑은 둘이 함께 하는 사랑보다는 '개인의 실존과 정립'이 먼저라 강변해왔다. 그러기에 최도경과 서지안의 사랑은 사랑에 '방패'를 든 서지안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며 그런 그녀에게 달려가는 희생적인 서도경의 저돌적인 질주의 '도돌이표'로 되풀이 되어 왔다. 

이렇게 50부작이 넘는 대장정을 진행해온 드라마에서 '메인' 서사인 두 주인공의 사랑은 '역신데렐라' 스토리의 뼈대를 가지고 진행되어 왔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눈빛만은 간절했던' 두 사람의 관계에 시청자들은 그럼에도 '사랑의 완성'을 꿈꾸었고 응원하여 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해성가'만은 아니다라는 서지안과 그럼에도 '너에게 가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최도경의 일방적인  듯 일방적이지 않은 사랑의 도돌이표는 시청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50회, 다시 한번 최도경과 만남에서 왜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냐며 분노하는 서지안으로 마무리되는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조차 그간의 응원을 포기한다. 그래 이제 그만 '헤어져라'고. 50부의 여정 속에서 결국은 시청자들조차도 '포기'하게 만든 이 '역신데레라 스토리'가 추구했던 것이 2018년의 자기 주도적 사랑의 결말일까? 역시 2018년에는 '사랑'조차 사치인 게 맞는 걸까?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큰 아이, 서지안
사랑을 이루기 보다는 이젠 그만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이 사랑, 그 집요한 사랑의 주인공 서지안을 '걸크러쉬'한 이 시대의 자기 주도적 여성으로 소현경 작가는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자기 주도적'이란 지점에서 서지안의 행보, 과연 그럴까?

극중 서지안이 극적으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스스로를 자살로 몰아가던 그 시점, 해성가에서 쫓겨나 힘들게 집으로 돌아오던 서지안은 해성가의 아버지 최재성(전노민 분)에게 자신의 친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이 얻어맞는 장면을 목격한다. 해성가에 들어가 있는 내내 서지안을 죄책감에 빠뜨렸던 건 바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외면했다는 것, 바로 그런 죄책감의 대상인 아버지가 자신으로 인해 수모를 겪게 되자, 서지안은 그 길로 '현실'을 버린다. 

그 다음, 겨우 김말이 양식장에서 혁의 도움으로 추스리고 나왔지만 아직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을 시점,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던 최도경이 자신의 생환을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는 사실에 서지안은 최도경에게  '그게 너였어!'라며 포효한다. 그리고 이제 50회, 위암에 걸린 아버지가 자신으로 인해 해성가의 할아버지에게 따귀를 맞고, 그 앞에서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무릎까지 끓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은 다시 한번 최도경 에게 분노를 퍼붓는다. 

50회의 여정에서 서지안은 최도경과 사랑의 실랑이를 벌이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사랑, 가장 큰 그늘을 드리운 건 '아버지'다. 소현경 작가의 전작 <검사 프린세스>나, <내 딸 서영이>에서 처럼 여전히 딸에게 가장 큰 사랑은 '아버지'다. 줄리엣이 된 서지안이 선택한 건 내 가족을 죽였어도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 여전한 내 '가족', 그리고 '나'인 것이다. 

사랑은 남녀의 만남이지만, 그건 '성장'이다. 가족의 품 안에서 자란 남녀가 '가족'을 극복하고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성장'의 서사에서는 '사랑'이 중요한 통과 의례로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빛 내 인생>의 서지안은 언뜻 보면 자기 주도적인 '걸크러쉬'이지만, 지난 여정에서 그녀의 비등점을 되돌이켜 보면, 여전히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년이다. 15,6세였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하며 '성인'이 되어 자신의 가족'을 벗어났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그 중에서도 아빠라면 '감정'이 앞서는 서지안은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에 있는 어쩌면 아직 '사랑을 하기엔 준비가 되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신화 속 영웅의 서사에 '살부'가 통과 의례가 된건, 아버지가 걸림돌이 된 건, '어른으로서의 독립'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지안은 '아버지'의 그늘에 여전히 놓여있다. 드라마는 죽어가면서까지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성을 이야기하지만, 그 '부성'은 안타깝게도 딸의 지체다. 

50회 서지안이 보인 '분노의 표출'에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는 반응은 바로 이런 준비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물론 소현경 작가는 가해자였던 서태수네 가족을 명탐정 서태수를 통해 '은인'으로 변화시켰다. 그런 가운데 '해성'이라는 재벌가는 여전한 '갑질'의 상징으로 굳건하다. 심지어 그런 '해성'을 나와 서지안을 향해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려 했던 최도경조차 '이기적인 사랑'의 방식으로 규정내린다. 심지어 '위암 말기'라는 설정으로 서지안의 아버지는 죽어가면서도 희생적인 부성애의 상징으로 승화된다. 

50회 서지안의 대사는 내용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여전한 '갑질'에 '위암 말기'의 아빠가 수모를 겪었다는 것을 안 딸의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 '태도'의 문제가 시청자들을 등 돌리게 한 것이다. 아버지라면 여전히 '감정'이 앞서는 딸은 '사랑할 '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사랑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며 달려온 연인의 '핀란드 행' 만류에 여전히 분노하는 그 '자기애'라면 차라리 자신의 길을 가라고 권유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마저 걸림돌이 된 서지안, 자신의 가족 속에 웅크린 서지안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드라마는 50회, 사랑 앞에 용기를 내줄 것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러니 이제 '사랑'으로의 성숙 대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역설적 응원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가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 줄기차게 비판적으로 제시해온 '재벌 갑질'의 페해, 그리고 그런 재벌가와의 신데렐라 서사의 극복이라는 야심찬 시도는 안타깝게도 후반부에 들어서 작위적인 부성애의 강조로 인해 방향을 잃고 만다. 작가가 '아버지'를 갸륵하게 만들면 만들 수록, 딸의 사랑은 방향을 잃고 만다. 심지어 이제 사랑의 응원조차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이 '자중지난'을 뚫고 소현경 작가는 주말 가족 드라마의 정석 해피엔딩을 설득해 낼 수 있을지, 아니면 주말 드라마 최초 메인 커플의 이별로 마무리될 것인지. 어쩌면 지금 <황금빛 내 인생>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필요한 건 '해피엔딩' 여부보다 차라리 이별이라도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서사일 듯하다.

by meditator 2018. 3. 5. 09:23

2월 25일 올림픽 폐막식과 동시간대 방영한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은 29.3%로 저조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3사로 분산되었지만 총 합계 42.9%의 폐막식 중계 탓이 크다. (kbs1 18.5 %, mbc 7.0%,  sbs 17.4%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그러나 폐막식 때문만이었을까? 지난 주까지 심지어 방송 시간까지 변경되며 변칙 방영되었음에도 충성도를 보이던 시청자들 중 드라마의 내용 때문에 채널을 돌린 애청자들이 있지 않을까? 애초에 계획되었던 50회에서 2회 연장, 52회까지 단 4회를 남긴 <황금빛 내 인생> 한참 '절정'으로 치달릴 이 드라마는 오히려 방영 이래 가장 큰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불만으로 이어진다. 


<황금빛 내 인생>은 kbs2의 주말 드라마이다. 매주 토일 주말마다 방영되는 kbs2tv의 주말 드라마는 <황금빛 내 인생>처럼 40%를 넘어가는 고공 행진은 아닐 지라도 30% 정도는 거뜬히 넘는 이른바 '국민 드라마'이다. 그리고 이들 '국민드라마'는 그 시청률에 걸맞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프로파간다'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중산층'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 가족들이 자신보다 나은, 혹은 못한 다른 가족들과 혹은 사람들과 얽히며 엮어가는 갖가지 애환을 다루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결국은 결집된 가족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가족의 화합'에 도달한다는 변치않는 법칙을 실현해 낸다. <월계수 양복점>이 그랬고, <아빠가 이상해>가 그랬으며, 이제 종반을 달려가는 <황금빛 내 인생>이 그러하고자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kbs2 주말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고자 하다보니 애초에 소현경 작가가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 설파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가족드라마로서의 이 지점과 충돌하며 스스로 자가 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명탐정 서태수로 인해 진짜 위기에 빠진 해성
지난 47회에 이어 48회도 아빠 서태수(천호진 분)의 활약은 거의 '셜록'급이었다. 47회 쏟아지는 찌라시 기사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딸들이 위험에 빠지자 전직 무역맨이었던 서태수는 과거의 경험을 살려 찌라시 기사의 출처를 밝힌다. 이어서 48회 최도경을 돕기 위해 소액 주주들 설득에 나선 서지안이 들고왔던 소액 주주 명단을 보고 의아해 하던 서태수는 위암 말기의 힘든 몸을 이끌고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최도경 측에 위임장을 넘기지 않은 소액 주주들이 사실은 노진희의 위장 주식 매입자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왜 '셜록'에 가까운 서태수의 활약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것은 <황금빛 내 인생>이 애초에 풀어놓은 갈등의 봉합을 위해서다. 서태수의 아내 양미정(김혜옥 분)의 거짓말로 딸들이 뒤바뀌게 된 해성가, 그로 인해 서태수네 집안은 드라마 내내 '원죄'를 가지게 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집안의 아들 최도경과 딸 서지안. 서지안은 재벌이라는 존재론적 딜레마에, 저 '원죄'까지 얽혀 계속 최도경과의 사랑을 거부한다. 결국 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원죄'의 해결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태수가 해성가 위기에 '해결사'로 등장하며 '은인'이 된다. 또한 드라마 내내 무능력해서 가장으로서 외면받고, 그래서 병까지 얻었던 서태수가 '아버지'로서 장렬하게 그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결정적 전환점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47,8회에서 보여준 과거 상사맨의 경험을 살린 명탐정 서태수의 활약이다. 그로 인해 서태수와 그의 딸 서지안은 위기에 빠진 해성가를 살린 '은인'이 되고, 서태수 집안의 '원죄'는 상쇄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딜레마가 발생한다. 할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해성가 후계자가 싫다며 해성가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사업체까지 꾸린 최도경, 그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집안의 뿌리를 찾아 해성가로 복귀한다. 뿐만 아니라 이모 노진희네 부부가 찌라시 기사 등의 부도덕한 방식으로 할아버지를 대표 이사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조차 해임시키려하자 분개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성을 장악하려는 이모네에 대항하여 해성을 다시 복구시키려 한다. 

하지만 최도경의 의도가 무색하게 이런 일련의 해성가의 위기 상황에서 최도경을 비롯한 그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노양호의 대처는 무능력했다. 둘 사이의 사랑을 확인시키기 위해 달려든 서지안을 비롯한 쉐어 하우스 '동지'들의 소액 주주 설득 과정, 그리고 거기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노진희 측의 위장 주식 매입을 서태수가 밝히는 과정 동안, 최도경을 비롯한 해성가의 식구들은 몇 마디 말만 믿고 주주 총회의 상황을 안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태수와 서지안의 활약은 오히려 최도경을 비롯한 해성가의 존재론적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만다. 오히려 무능력한 최도경 일가, 부도덕한 노진희 일가의 해성이라면 서태수의 도움을 얻은 최도경의 '수성 성공'이 아니라 '해체'되어야 맞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의 큰 그림은 '재벌 해체'일까? 



재벌 체제의 비판적 시각, 그 귀추는?
비록 해성을 자신의 피땀으로 일구었지만 이미 드라마의 전개 과정 내내 족벌 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낸 해성가, 그럼에도 혈연에 매달려 최도경에 집착했던 노양호 회장의 전근대적 경영 방식을 부도덕한 방식이지만 '쿠데타'를 통해 제거하려 했던 노진희 쪽과 그에 합류한 주주들의 결정은 과연 잘못된 것일까?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 최도경과 여자 주인공 서지안이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최도경네 편을 들며, 해성가 주주 총회 쿠데타의 논점을 모호하게 한다. 직원들 말대로 시키는 일만 했던 최재성, 자신의 꿈을 찾겠다고 해성을 버리고 뛰쳐나간 최도경과 달리, 지금의 해성이 되도록 애썼던 노진희의 남편 정명수의 야망은 과연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는 '족벌 경영'의 문제점을 줄곧 지적해 왔으면서 정작 두 주인공의 사랑을 위해 '족벌 경영'의 편에 서는 '자가 당착'의 지점에 빠진다. 

소현경 작가는 지난 드라마의 여정 동안 노양호라는 입지전적 인물의 자수성가로 이루어진 해성의 족벌 경영 체제를 비판적으로 그려왔다. 그런 비판적 묘사의 정점은 바로 해성이라는 조직 속에서 '개'가 되기를 거부했던 최도경의 '가출'과 자수성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성가의 위기 속에서 그런 최도경의 꿈을 찾기 위해 떠난 과정은 해성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책임 방기'로 귀결되고 만다. 이렇듯 소현경 작가가 재벌 경영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벌려놓은 포석과, 그 정점의 갈등으로 등장한 노진희네 부부의 해성가 경영권 장악 쿠데타의 과정은 그저 찌라시 기사로 인한 부도덕한 경영권 장악 획책을 넘어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최도경의 말처럼 그럼에도 내 뿌리이고, 나를 사랑했던 할아버지요, 해성가를 일군 장본인이라는 말로 이 위기를 무마할 수 있을까? 과연 애초에 가졌던 최도경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과연 지금의 위기를 통해 어떻게 풀어가며 '족벌 경영 프렌들리'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을 극복해 나갈 것인지 소현경 작가의 현명한 한 수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2. 26. 15:44

3.473%로 출발했던 <미스티>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8회 6.324%에 도달했다. 6회 7.081%의 최고 시청률에는 못미치지만 여전히 화제성 면에서 압도적이다. 이제는 청와대 대변인을 바라보는 고혜란(김남주 분)의 전 애인 케빈 리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치정 미스터리의 외피를 입은 <미스티>는 하지만 그 내부에서 고혜란을 비롯한 각자의 욕망과 이해가 첨예하며 부딪치며 '치정' 그 이상의 '심리 스릴러'로써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건 당연히 고혜란이다. 이미 첫 방송부터 시청자의 시선을 대번에 빼앗아 버린 김남주에의한 고혜란은 그 존재로부터 탁월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메인 뉴스의 앵커라는 존재감을 목소리 톤부터 달리하며, 거기에 덧입힌 패션으로 완성한 '아우라'로 대번에 설득시킨 고혜란으로 <미스티>는 필요 조건을 완성한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가 내연남과의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뜨림으로써 반전의 관전 포인트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치정의 주인공'으로써의 여주인공이라는 코드 역시 김남주에 의해 설명된다.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여전히 섹슈얼한 여성으로서 욕심나는 이 이중적 코드를 배우 김남주의 준비된 캐릭터로 설득해 내며, <미스티>는 그 비밀의 화원에 성큼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를 지우면서까지 뉴스 앵커가 되고 싶은 여성,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앵커이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이 완벽한 여성, 하지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버린 이 '치정의 트랩'에 걸린 여성이 안개 속에 갇힌 비밀을 파헤치며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 늘 버거웠던 한 여성의 삶이다. 



소녀 고혜란, 자신의 과거로 부터 도망치다. 
은주(전혜진 분)를 만나고 온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이 혜란이 좋아했던 음악이라며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를 들려주자 혜란은 사색이 된다. 그리고 그 음악이 울려퍼지는 혜란의 꿈속, 어린 시절 명우(임태경 분)는 혜란에게 '너 이일과 상관 없다'며 혜란의 등을 돌려 세운다. 피를 묻힌 채 달려나가는 혜란, 그런 혜란을 바라보는 명우, 그 뒤에는 전당포 주인으로 추정되는 쓰러진 시체가 있다. 

그리고 아마도 혜란 대신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된 명우, 하지만 혜란은 그 시절 그 사건으로 도망쳐 나왔듯, 명우의 바램처럼, 그 때 그 사건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살았고, 태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고, 이제 그녀가 바라던 정치의 입문만이 남았다. 그런데 케빈 리의 아내로 그녀와 얽힌 은주는 남편 태욱을 통해 그 과거의 음악을 전해온다. 마치 <태양은 가득히>에서 요트에 묶여 나오는 시체처럼, 현재의 살인 사건은 과거를 물고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가 도망을 제대로 쳤던 것일까?



과거를 덮기 위해 그녀가 도망친 곳은?
검찰로 송치된 케빈 리의 사건, 그 수사의 키가 될 블랙박스 메모리 칩을 가지고 있는 서은주는 그걸 들고 고혜란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그 날의 영상을 남편 태욱에게 보여주고 사랑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그 칩을 검찰에 제시하고 살인죄에서 벗어나는 대신 치정의 치욕을 택할 것인가.

그런 은주의 '딜'에 혜란은 답한다. 자신이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케빈을 만난 그날,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라고. 그런 그녀의 후회는 7년 동안 진행했던 뉴스 앵커 자리가 위태로웠던 그 시간을 오버랩 시킨다. 마치 '공로상'처럼 다시 그녀에게 쥐어진 올해의 언론인상, 하지만 상의 부상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메인 앵커 자리에서의 '퇴출'이었다. 물러나도 자신이 원하는 때,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생각한 고혜란, 이렇게 나이든 여성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보도국의 '현실주의'에 그녀는 '케빈 리'라는 카드로 대응한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달려간 그곳에서 만난 건, 한때 그녀와 열정을 나누었던 이제는 케빈 리가 된 이재영(고준 분), 그리고 그의 곁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은주가 있었다. 

지나간 연정과 지금의 과업 사이에서 냉정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녀에게 케빈 리는 도발했고, 심지어 위협했고, 협박했다.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지탱해줄 카드이자, 동시에 그 쌓아올린 것을 한번에 허물어 버릴 폭탄같은 남자 케빈과의 딜을 위해 고혜란은 블랙 박스 메모리칩에 남겨진 비겁한 선택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이제 그녀를 케빈 리의 살인범으로 옭죄어 온다. 



고혜란의 마지막 승부처, 고혜란의 뉴스 나인
은주의 협박 아닌 협박, 다시 그녀를 옭죄어 오는 위기에 복도에서 주저 앉아버린 고혜란이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건 바로 '초심'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보도국이라며 청와대 영전을 만류하는 장규석(이경영 분)에게 고혜란은 반문한다. 그래서 나를 메인 뉴스 앵커자리에서 내쳤냐고. 그리고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막으려는 방해 공작에 고혜란은 바로 자신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유가 외압이 없는 보도를 하고 싶었던 그 언론인의 자세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피력한다. 

나이들어 아침 뉴스 등으로 밀려나는 처지 대신,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고혜란은 바로 그런 그녀의 방식으로 청와대 대변인 내정에도 불구하고 옭죄어 오는 체포의 압박을 고혜란의 뉴스 나인의 앵커로서 본분을 다함으로써 돌파한다. 정치권의 영전을 위해 정재계 커텍션에 대해 눈을 감으라는 국장의 회유도 아랑곳없이 그녀가 했던 대로, '뉴스는 팩트다'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앞에 나타는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폭로한다. 

고혜란이 살아오며 맞이한 위기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환기되고 있는 '미투' 운동처럼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이 살아가며 끊임없이 맞이하는 위기의 결집체이다. 소녀였던 고혜란은, 그리고 앵커 7년차임에도 고혜란은, 그리고 청와대의 영전을 앞두고서도 고혜란은, 늘 약자였던 고혜란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린 시절의 운명에서 도망쳐 온 그날 부터 고혜란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선택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자신의 은인을 외면했고, 아이를 포기하고, 남편을 이용했다. 고혜란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보다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닥쳐온 그 '운명의 미션'에서 도망치거나, 우회했다. 어쩌면 고혜란에게 닥친 미션은 고혜란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여성들이 매번 부딪쳤던 '미션'들의 집합체이다. 드라마는 고혜란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여전히 고난한 삶을 논한다. 


하지만, 이제 서은주를 만난 고혜란은 그날 케빈 리를 죽이지 못했던 자신의 선택을 분노하며, 자신의 어긋난 회피와 선택이 오늘날 자신의 위기를 자초했음을 절감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한 세 번 째 선택은 말 그대로 '정면승부'이다. 청와대를 가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대신, 그녀가 자신의 앵커 자리를 지켜왔던 그 원칙적 방식으로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도망치던 그녀가 선택한 이 방식으로 인해 살인용의자 고혜란의 국면은 전환된다. 살인 용의자 한 여성 고혜란은 이런 선택을 통해 그녀가 살아가고자 했던 인간 고혜란으로 거듭날듯하다. 
by meditator 2018. 2. 25. 15:18

'아이'를 낳는 고통이 싫어,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모성'이 회피되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그런 '반발'은 우리 사회가 얼마 만큼이나 '모성의 포용성'에 기대고 있는 가를 반증하고 있는 현상이라 보여진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는 순간, 그 '여성'에게는 '무한한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는 것으로 우리 사회는 모성을 존재한다. 진화 심리학이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아이를 감당하기 버거워 방황하는 '산후 우울증'이 엄연히 현존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지상 명제로서의 '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10회, 이 드라마는 우리가 그리도 당연하다 생각하는 '엄마'에 대해 많은 질문과 과제를 제시한다. 


해외에서까지 화제가 되었던 신경숙 작가의 화제작 <엄마를 부탁해>는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던 엄마의 실종으로 부터, '엄마'란 존재로 살아온 한 여성에게, '엄마'가 아닌 다른 삶이 있었음을 갸륵해서 추모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엄마'로 자신을 밀어넣는 삶을 살아냈던 것이다. 


엄마들이 아이를 버렸다! 
바로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엄마'에 대해 tvn의 드라마 <마더>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 시작은 지금 자신의 곁에 머무는 남자에 연연하여 자신의 아이를 쓰레기 봉지에 '방기'하는 엄마로 부터이다. 엄연히 우리 사회에 현실로 존재하는 아동 학대, 그 현실을 '자영'를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이와 함께 남겨진 자영(고성희 분), 그녀에게 혜나(허율 분)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상심한 엄마를 위해 카페라테를 타다 그걸 좋아해 버린 아이를 자영은 버거워했다. 그런 그녀의 감정은 학대로 나타났다. 그렇게 '모성'의 상실된 자영, 그런 자영의 아이 혜나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수진(이보영 분)'이 자신의 아이로 거둔다. 상실된 모성과, 그 상실된 모성을 대신하는 '공감의 의제 모성', 유괴라는 사건 이면의 이 모성의 대립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신봉하는 '모성 신화'에 발을 건다. 

그렇게 엄마가 곧 모성이라는 전제를 스스로 짓밟아 버렸던 자영은 수진이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혜나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혜나를 마주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읍소한다. 그러나, 이제 응복이 된 혜나는 자영에게 그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영이 자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복기시킨다. 죽지 않기 위해 엄마로 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해서 응복이 되었던 혜나, 그런 사실을 깨닫고 자영은 발을 돌린다. 다시 한번 혜나를 버린 것이다. 

또 다른 모성 신화도 있다. 버려진 아이 혜나를 거둔 수진처럼, 보육원에 버려졌던 내 새끼처럼 길렀던 수진의 양모 영신(이혜영 분), 스물 다섯 살 시절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나버린 수진을 암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사는 영신은 애타게 찾는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르는 딸을 데리고 나타난 수진과, 그녀의 딸 혜나, 아니 응복에게 열렬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수진이 데리고 온 응복이 자신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영신은, 그 둘에게 집착하여 놓았던 자신의 삶마저 다시 애착을 가지게 되었던 영신은 '테메테르'로 분해 가장으로서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수진과 응복을 버리겠다 선언한다. 



버려서 찾은 모성 
자영과 영신이 자신의 딸들을 버리는 이 상황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의 방기가 아니라 성장이다. 혜나를 늘 자신의 부속물로 생각하여 방기하고 심지어 쓰레기 봉투에 버렸던 자영은 처음으로, 혜나를 마주한다. 밀어내도 다가와 자신을 안아서 부담스러웠던 혜나였지만 수진에게 빼앗길 수 없어 홍희의 이발관까지 찾아온 자영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자신이 혜나가 아니라 응복이라 말하는 딸 앞에서 발을 돌린다. 딸에게 외면받은 엄마의 상처받은 뒷모습이지만, 그리고 아직 채 깨닫지 못한 채 분노한 상태이지만 자영으로서는 처음으로 혜나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 순간 자영은 처음으로 엄마다웠다. 

영신도 마찬가지다. 영신은 의사에게 고백했었다. 자신에게 수진은 아직도 열 살의 아이 그대로인 채라고. 여전히 어린 아이 수진의 보호자연 했던 영신은 이제 기꺼이 응복의 보호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정한 수진을 놓아보내 주려한다.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책임을 내세웠지만, 그 마음의 기저에는 어린 자식을 끌어안아아야만 엄마라 생각했던 그 1차원적 모성으로 부터의 탈피가 있다. 유산 대신 새처럼 훨훨 날아가라 했던 그 마음의 연장 선상에서, 응복의 엄마됨을 선택한 어른 수진의 삶에 대한 존중이 있다. 

이런 자영과 영신의 모성에 대한 방기는, 그에 앞서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자의 딸로 살아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딸을 버렸던 홍희의 모정에 잇닿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다시 묻는다. 모성의 의미를. 

우리 사회에서 엄마들은 '자식을 끼고 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식을 품은 모성'들이 치맛 바람이란 이름의 역효과를 낳으며, 아이의 삶을 재단하고, 수강 신청에서 부터 미래의 직업, 결혼 이후의 생활까지도 '지도'하고 '군림'하며 아이를 '지체'시키는 '모계 사회'의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마더> 속 자영과 영신, 그리고 홍희를 통해 보여진 모성의 방기는, 과연 '엄마됨'의 내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어린 자식을 품고 보호하고 보살펴 주는 그 1차적 보호를 지나, 성숙된 모성으로의 성장을 위해, 진정 아이를 위해 '엄마'들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극단적 설정'을 통해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10회 이들의 갈 길은 멀다. 응복이 된 혜나 앞에서 발을 돌린 자영은 '엄마 이전에 한 사람으로 먼저 서야 한다'는 수진의 충고가 무색하게 '분노'의 반격을 준비한다. 영신의 희생어린 선택은 영신보다 더 큰 희생을 선택한 응복, 아니 혜나로 인해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한다. 과연, 이 엄마들의 앞으로의 여정은 또 어떤 '모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인지. 그 누구도 쉽게 던지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질문을 드라마 <마더>는 끈질기게 천착한다. 

by meditator 2018. 2. 22. 15:26

middle age, 중년은 어떤 나이일까? 일찌기 공자께서는 마흔을 불혹(不惑-마음이 흐려져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라 하셨고, 오십을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알게 된 나이)라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께서 정의를 내린 나이의 한계는 70세였다. 인간이 대략 70년 쯤 산다는 전제 아래서 불혹의 마흔이 등장하고, 지천명의 오십이 규정된다. 그렇다. 불과 십 여년 전만 해도, 마흔하면 인생을 제법 살아낸 나이였다. 하물며 오십은 노년의 문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백세 시대가 도래했다. 마흔에 혹하지 않고, 오십에 노년이라 하기엔 자기 앞가림하고 살아가야 할 날이 오십 년이나 남아 버렸다. 또한 88만원 세대가 등장했고, 젊은 세대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나이는 자꾸만 미뤄졌고, 그에 따라 결혼도 늦어졌다. 서른만 해도 '노'자라 붙던 시대가 무색하게, 이제 마흔 정도 되어야 안정을 찾고 결혼을 할 만한 시대가 되어간다. 그런 시대에, '중년'은 예전 시절에 안정적 불혹의 세대가 아니라, 한참 세상에 '미혹'될 수 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한참' 세상을 살아가야 할 중년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들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찾아왔다. jtbc의 <미스티>와 2월 20일 4회 연속으로 첫 선을 보인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이다. 이들 두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주제 의식을 통해 우리 시대 중년의 코드를 살펴보자. 



안개 속에 숨겨진 욕망 
케빈 리(고준 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테리 스릴러 <미스티>에는 욕망이 분출되고 충돌한다. 이미 케빈 리의 등장 이전부터 고혜란(김남주 분)은 '무의식'적으로 그와의 지난 욕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녀의 '숨겨진 욕정'은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과의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의 반증이다. 외려 막상 그녀 앞에 나타난 케빈 리에 흔들리지만 그녀를 더 애닳게 만든 건 지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그녀의 마지막 목표가 될 청와대 대변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중년의 남녀들이 몸과 몸으로 부딪치는 관계를 매개로 사건이 벌어지는 듯 보여지지만, 그 드러난 육체적 욕망 이면에 숨겨진 건 사회적 욕망이다. 아내와 남편이란 사회적 관계로서 제대로 정립되어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욕망, 9시 뉴스 메인 앵커 자리를 두고 벌이는 선, 후배 앵커 사이의 치열한 욕망, 그리고 사회적 상승 욕구, 그 각자의 이해 관계에서 배태된 사회적 욕망들이, 케빈 리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육체적 욕망으로 재조직되고 결핍되며, 분출되면서 진범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살인 사건으로 펼쳐진다. 

<미스티>속 중년의 남녀는 육체적 욕망 만큼이나, 이 사회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누리며, 쟁취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이들이다. 7년간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유지하고, 이제 조만간 청와대 대변인으로 승전하기만을 바라며 '가정'과 결혼마저 희생시킬 수 있는 고혜란이나,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며, 그녀의 전애인조차도 나꿔채고자 하는 한지원(진기주 분)나, 케빈 리를 남편으로 소유했지만, 그의 사랑에 결핍된 서은주(전혜진 분)나 모두 자신이 욕구하는 바에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바로 이 양보없는 욕망의 충돌, 그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그래서 <미스티>는 치정극 이상의 긴장감을 낳는다. 그곳에 미혹되지 않는 중년의 안정감이란 없다. 



상실의 세대, 중년
여전히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나이로 <미스티>가 중년을 그려냈다면,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반대의 지점에 자리잡은 듯 보인다. 이미 <애인있어요(2015)>를 통해 중년의 사랑을 현실감있게 그려내어 화제가 된 배유미 작가의 또 한번의 중년의 이야기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애인있어요>처럼 이미 상흔을 지닌 중년의 남녀로 부터 시작된다. 

마흔 다섯 갱년기를 걱정해야 할 나이, 파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면 '비아그라'라 오해 받기 딱 좋은 나이, 그 나이의 남녀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배유미 작가가 그려낸 마흔 다섯은 각자 마흔 해가 넘는 삶을 살아내면서 등이 휘어지도록 짊어진 버거운 개인사가 짊어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혹'하고 싶지 않은 나이, 하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 이 많아서 무서운 나이, 고독사가 걱정되고, 가진 것 없이 나이드는 게 무서워지는 나이다. 

그래서 그들의 만남은 그 '상흔'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의 강권 아닌 강권으로 시작된 소개팅, 하지만 '안순진(김선아 분)'이라는 이름 만으로 그녀를 만나러 나간 손무한(감우성 분)에게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떠올려지는 상실의 공감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앞에 나타난 안순진은 누수와 관련된 분란의 이웃이요, 가슴골이 보이는 옷으로 대놓고 그를 호텔방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뻔한 노림수의 소개팅녀이다. 이 현실과 기억의 골 사이에서 어긋나고 다시 만나지는 관계를 통해 드라마는 차근차근 그 상실의 역사를 치유하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한다. 상실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열정에 대한 모색이다. 

*****
욕망의 <미스티>와 상실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중년의 양 극단과도 같이 보여진다. 하지만, 이 서로 다른 주제 속에 풀려나가는 실타래가 그려내고 있는 건, 살 만큼 산 세대로써의 중년이 아니라, 아직 한참 살만한, 그리고 살고 싶은 나이 중년이다. 세상사 버리고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갈 만한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는 100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여전히 젊어야만 하는 우리 시대의 중년에 대한 강권과도 같은 명제를 대변한다. 단지 그 열심히 살아야 할 시대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를 뿐. 
by meditator 2018. 2. 21. 05:04

올림픽으로 인해 결방에 이어 시간대를 변경하며 방영된 <황금빛 내 인생>, 비록 그간 45%를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밤 10시로 바뀐 변경된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30%를 넘는 안정된 시청률로 '인기 드라마'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2월 17일 방영분 34.7%,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달리, 2워 17,8일 방영된 46, 47회에 대해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폭력적 가부장 노양호의 실각 
1주일만 '연애'하기로 했던 주인공 최도경(박시후 분), 서지안(신혜선 분) 커플, 하지만 이들은 '한시적 계약 연애'조차 여유롭게 마무리할 수 없었다. 스키장으로 보내진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한 최도경은 지안에 대한 감정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할아버지 병실로 달려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해성가의 후계자 최도경에 대한 찌라시에 이어, 최도경이 보낸 창업 성공 문자를 받은 노양호 회장은 쓰러지고야 만다. 응급 수술 끝에 위기는 넘겼지만, 정작 그에게 닥친 위기는 '건강'만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연이어 터지는 서지수 실종과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들이 칼을 겨눈 것은 바로 노명희와 최도경, 그리고 그들을 내세운 노양호였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노양호 대표 이사에 대한 해임안 상정,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노양호'는 예의 그 만의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건, 바로 손녀 딸을 바꿔치기한 서태수를 불러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 아니 협박한다. 여전히 20년 전 자신의 딸 노명희의 실수로 벌어진 손녀 딸 유괴 사건을 덮기에 자신의 권력을 십분 이용하는 노회장, 서태수의 희생에 대한 대가로 그가 제시한 건 '돈', 그게 아니면 그가 서태수의 집을 찾아가 뺨을 때리듯 무지막지한 '폭력적 처사'가 기다릴 뿐이라 강변한다. 


소현경 작가가 '노양호 회장'을 통해 그려내고자 한건, '끝물'인 '가부장제'의 허황한 잔해이다. 대표 이사 해임안에 대해 건재한 자신이 회의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사태가 일단락 될 것이라 확신하는 그의 '믿음'처럼,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에서 나오는 '권위'에 대한 굳건한 '자존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부장적 자존감'은 자신을 거역하는 대상에 대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단'이다. 자신의 초상권만을 보호해 달라는 서태수에게도 일말의 자비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권위'는 허망하게도 바로 자신의 둘째 딸과 사위의 '모의'에 의해 대번에 '거세'된다. 그는 '아버지'였다. 두 딸은 물론, 두 딸의 식솔들, 그리고 나아가 '해성'이라는 그룹의. 노양호의 '아버지됨'의 방식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일궈온 '가부장'의 방식이다. 자신의 '가솔'들을 '보호'하는 대신, 그들에게 '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또한 그 '보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하지만 그 '자신'이 곧 '해성 일가와 해성 그룹의 '보호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양호의 '가부장'은 유일한 후계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최도경의 '일탈'을 시작으로, 정작 그의 둘째 딸이 끊임없는 아버지의 편애를 이유로한 '반란', 그에 발맞춘 이사들의 '반기'로 마무리된다. 그는 힘있는 아버지이고 싶었으나 그 '아버지'는 자식들과 자신을 따르는 '가솔'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결국 '노양호'는 현대사 속에 '한국'을 산업 근대화 시킨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며, 이제 이 시대 '지는 해'가 되어버린 그들에 대한 순리로써의 '거세'이다.



죽음을 불사한 영웅이 된 아버지
그런 노양호에게 빰을 맞고, 이제 무릎까지 끓며 자식들의 삶을 읍소하는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노양호'와 같은 '가부장'은 아니지만, '상상암'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자리에 그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노양호가 산업화 시대를 일군 '성공'의 표상이라면, 서태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불도저같은 산업화의 열기가 사라져간 imf 이후의 가장을 대변한다. 

한때는 상사맨으로 세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가족들을 호위호식하도록 만들었던 서태수이지만, 불황을 넘지 못한 그의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이제 그는 맏아들이 결혼조차 포기할 만큼 무능한 가장의 처지에 놓여있다. 그 '무능'과 실패'의 색인을 자신의 몸에 아로새겨 '상상암'이란 기상천외한 병을 앓게 된 서태수,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많이 섭섭했던 그는 평생의 로망이었던 기타를 치며 '자신'으로 충실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가족에게 아픈 그가 필요하다. 

자신의 암 보험금을 타서 지안의 유학 학비에 보태려고 했던 서태수는 이제 자신의 가족에게 다시 닥친 딸 바꿔치기와 관련된 '찌라시'에 자신을 던진다. 노양호 회장의 강요어린 요구에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읍소했던 서태수는,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셜록' 못지 않는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딸 지안과, 지수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소현경 작가는 <황금빛 내 인생>의 악의 축을 노양호 회장으로, 그에 맞선 '선의'의 아버지의 대표적 인물로 서태수를 설정하며, 두 '아버지'들의 서로 다른 '아버지' 되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논한다. 전권을 행사하던 노양호 회장에 대한 둘째 딸 내외의 쿠테타를 통해 그를 실각시킴으로써 '폭력적 가부장'의 자중지난을 그려내는 동안, 그 공격의 예봉을 피하는 '수호자'로 또 다른 아버지 서태수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력적 '가부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족'의 중심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복권'을 시도하는 것이다. 


'
무리수'가 되어가는 아버지의 복권
덕분에 모든 서사의 중심에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딸바보였던 그를 딸들은 수시로 그리워하고, 그의 무능으로 인해 외면했던 아들들도 결국 '상상암' 이후 아버지를 다시금 이해하게 되어간다. 비록 지금은 날개를 꺾였지만, 그들이 지금 이자리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 서태수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자식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확신하는 방식으로. '상상암'을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할 정도로 그 개연성 여부에 갑론을박이 시끄러웠던 아버지 서태수 복권은 그럼에도 '오죽 죽고 싶었으면 암이 걸렸다고 생각했을까'란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거기서 더 한 발 더 나아가, 47회 서지안, 서지수와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에 대한 서태수의 활약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긴급성을 넘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비록 재계 서열 10에 못든다지만, 그럼에도 재벌가라는 해성의 정보 능력과 대응력이 '전직 상사맨' 서태수에 미치지 못한다는 웃픈 설정은 애교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셜록' 급으로 서태수가 활약을 하는 동안, 주인공 최도경과 서지안 등의 그간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젊은 세대는 뒷전으로 물러서 관망하는 상황은 결국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논란마저 불러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애'를 재구성하기 위해, 정작 성인이 된 자녀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아버지' 처분만 바라는 여전한 피보호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 도움을 주지 못한 딸에게 이제 암보험금으로 유학비를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설정을 과연 '가족애'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건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유학을 가겠다는 딸에 대한 여전한 가족이란 이름의 '지체'가 아닐까? 마치 한때는 가장 아름다운 동화였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시대와 함께 '이기적인 우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덧대여 지듯이, 아낌없는 부성애의 서태수는 어느 틈에 드라마의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는 화제작이었던 전작 <내딸 서영이>에 이어 다시 한번 갸륵하고 극진한 '부성애'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애를 복원시키고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금빛 내 인생> 방영 내내 서태수의 존재감은 '작가'가 비중을 주고 '방점'을 찍으려 하면 할수록 개연성에 대한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내딸 서영이>의 극진한 부성애는 비록 몇 년이지만 달라진 시절에 자충수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는 그저 소현경 작가의 필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미 2018년 소현경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시대는 저물어 버리고 말았다는 반증처럼 여겨진다.  서태수를 설득하고 그의 부성애를 포장하려 하면 할수록 서태수에 대한 개연성이 떨어지는 묘한 상황은, 이미 이 시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가부장제'의 유효 기간이 종료되었음을 <황금빛 내인생>이 보여주고 있다. 

소현경 작가는 그간의 '가족지상주의'를 내세운 타 주말 드라마와 다른 서사로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를 짚어왔지만, 이제 종반을 향해 달리는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부성애'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복원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작가 자신도 그런 시대 역행적인 상황에 부담을 느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47회 엔딩 부분에서 '상상암'이 '진짜 암'이었다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드린다. 그래서 오히려 묻게 된다. 과연 이 시대의 '가족'은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 세대의 아낌없는 헌신을 통해서만 복원되어야 할 것인가 라고. 서태수가 극진해 지면 질수록 '가족'을 회의하게 된다. 

by meditator 2018. 2. 19. 0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