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월화 드라마 <20세기 소년 소녀>와 tvn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2017년을 살아가는 2,30대 여성들을 드라마의 '주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돌아온 한예슬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20세기 소년소녀>는 그 화제성이 무색하게 2%대의 시청률에서 고전하고 있다. 반면, 남자 주인공, 표절과 관련된 잡음으로 시작에서 부터 삐걱거렸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 초반의 문제들을 불식시키며 매주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제의 드라마가 되고 있는 중이다. (10회 4.197%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전국 기준)


물론 공중파와 케이블의 시청률을 수치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애초에 무리라지만, 그럼에도 <20세기 소년 소녀>의 부진은 명확해 보인다. 똑같이 동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다른 온도차를 보이는 건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이 두 드라마의 희비를 엇갈리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현실감'때문일 듯싶다. 



내 얘기같아 마음아프고 마음이 가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
83년 함께 학원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정을 쌓았던 이제는 서른 중반의 동갑내기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감성을 고스란히 이어 청소년 시절의 풋내기 첫사랑의 정서를 이어가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서른 중반의 그녀들이 보이는 현실의 사랑 이야기에서 여전히 '기존' 이라 쓰고 '진부하다'라고 읽혀지는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뛰어넘지 못한 채 답습하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알고보니 모쏠인 스타 사진진(한예슬 분)하며, 매번 승무원 복장의 핏을 고심해야 하는 한아름(류현경 분), 초짜 변호사 장영심(이상희 분)의 처지가 그럴 듯하지만 그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어쩐지 어디선가 본 로코의 한 장면인 듯 익숙하다. 

반면, 오갈 데가 없어 계약 결혼을 감행한 전직(?)드라마 작가 윤지호(정소민 분)와 대기업 대리로서 생존하기 위해 '비혼'을 선택한 우수지(이솜 분), 로망은 현모양처지만 현실은 옥탑방 동거 신세인 양호랑(김가은 분) 등이 매회 맞닦뜨리는 결혼과 사랑, 우정의 현실은 '너무 내 얘기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세희(이민기 분)와 결혼에 골인한 지호, 세입자가 필요한 집주인과 가장 점수가 높았던 세입자라는 계약 관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를 겪는다. 무엇보다 결혼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물론, 오해의 해프닝이지만 복남이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세희를 보며 지호는 집주인을 넘어 세희를 남편으로 좋아하기 시작하며 관계의 설정에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된다고 섣부르게 덜컥 '로코'의 정석으로 넘어가지 않는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장점이다. 



결혼, 제도를 넘어선 변화에 대한 미시적 고찰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지점은 그 '마음'의 변화와 함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겪는 지호의 변화이다. 수지가 칭한 '감배' 모임, 즉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사생활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으로 변질된 동창 모임에서 그간 친구들과 소원했던 지호는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며 안온함을 느낀다. 반면 '비혼주의자' 수지는 재수없어 하고, 결혼이 로망이 호랑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달려간 시댁 제사에서 고단수의 딸내미같다는 칭찬을 들으며 시댁 제사일을 다 떠앉은 지호는, 이른바 '착한 며느리 증후군'이라는 진단과, 수비수로서의 존경을 받았던 전력'이 무색하다는 세희의 평가에 혼돈스러워 한다. 

이처럼 그간 드라마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여성, 혹은 부부 관계를 상투적으로 그려냈던 것과 달리,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미시적'으로 그 제도에 속해가는 지호를 들여다 본다. '감놔라 배놔라'해서 싫다는 수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소속감이 싫지 않았다는 지호의 마음이나, 적당히 거절할 수 있지 않았냐는 세희의 비난에 착한 며느리 증후군인가 들여다 보면서도 '마음'을 놓치지 않는 문과 출신 지호의 고민은 그래서 오히려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착한 며느리 증후군을 통해 짚어보는 '이데올로기적 관점'도 유효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으로서의 결혼이라는 정서적 결합으로서의 결혼의 그 미묘하고도 복잡한 사회학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섬세하게 살펴낸다. 

또한, 결혼이 로망인 호랑을 위해 2년 동안 자신이 해오던 일을 접어가면서 까지 '취직을 감행한 그녀의 남자 친구 심원석(김민석 분)과, 하지만 옥탑방에서 결혼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아득한 이 커플의 현실은, 개념, 무개념이라 선을 그을 수 없는, 집을 가진 세희와 지호의 고민과 또 다른 지점에서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짚어낸다. 연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손해를 보고싶지는 않은 수지의 계약 연애 역시 또 다른 현실이기는 마찬가지다. 

by meditator 2017. 11. 8. 13:57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 초식남의 연애담과 가사 노동의 소중함을 주제로 삼아 '가정' 꾸리기에 집중했던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逃げるのは恥ずかしいけど役に立つ>(아래 <니게하지>의 계약 결혼은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와 가족과 결혼에 대한 현실적 담론으로 변모했다.  여전히 일본 원작 설정의 기억을 지울 순 없지만, 회를 거듭하며 왜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이 드라마가 '리메이크'라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될 만큼 바다 건너 온 계약 결혼의 양상은 달라진다.  <직장의 신(2013)>, <호구의 사랑(2015)>를 통해 공감어린 현실을 그리는데 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윤난중 작가답게 2017년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현실'을 윤지호(정소민 분), 우수지(이솜 분), 양호랑(김가은 분) 세 30세 동창생들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낸다. 




본의 아니게 '우리'가 되어버린 세희와 지호 
세입자가 필요했던 남세희(이민기 분)와 오갈데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전직 보조작가 지호는 '의기투합' 집주인과 세입자의 월세 결혼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두 사람의 계약은 순조로웠다.  평생 살 집의 경제적 보조와 분리 수거, 고양이 밥 줄 사람이 필요했던 세희에게,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청소에,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며,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지호는 더할 나위없는 찰떡 궁합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이 순조로운 두 사람의 2년 약정 동거 프로젝트에서 함정이 된 건 현실 대한민국의 결혼 제도이다. 양가에 인사만 드리고 결혼 과정을 뚝딱하려던 두 사람에게 결혼만 하면 더 이상 어머니와 이혼을 운운하지 않겠다던 세희의 아버지와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지호의 서울 생활을 지원하던 어머니가 반기를 든다. 이런 식의 '동거'는 결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7년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한국의 부부를 '전통적 가족간의 결합'과 '개인의 자유로운 결합', 그 과도기에 있는 형태로 본다. 즉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연애에서 결혼으로 가는 과정에는 '가족'이라는 제도의 체계적 결합이 필수적이라는데 있다. 대부분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결혼 후의 집이라던가 결혼식 과정에서의 비용 면에서 부모들의 도움을 받는다.  또한 결혼은 그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결합으로 여겨지며, 그 과정에서 양가 간의 경제적 균형에서 비롯된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속출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거기에 결혼식 자체도 부모 세대는 물론 결혼 당사자에게도 그간 자신이 다른 친지들의 결혼식에 낸 '부주'의 수확 과정이라 여겨지는 게 오늘날의 결혼이다. 

다시 드라마로 와서 세희와 지호는 '결혼'이라는 면피를 통해 그들의 동거를 합리화하려 하지만, 그들이 사는 21세기의 '결혼'이라는 통과 의례의 '난코스'를 본의 아니게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상견레와, 결혼식을 통해, '우리'라는 확대 가족의 범주에 자신들을 끼워넣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 과정은 코피를 쏟을 정도로 번거로운 과정임과 동시에, 여전히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의 정을 다시금 깨닫는 여전한 가족의 울타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요, 그런가 하면 그저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형식의 '중력'을 깨뜨리는 본의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의 탄생 순간으로 드라마는 기록한다. 

가장 현실적인 이해 관계로 함께 한 두 사람이 가장 운명적인 제도 결혼을 통해 드러내는 한국의 여전히 강고한 가족 제도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을 회수를 건너 탱자의 정체성을 실감나게 살린다. 그리고 이 본의아니게 이번 생 처음으로 '우리'가 되어버린 세희와 지호가 겪어갈 해프닝이 이 드라마의 다음 관전 포인트가 된다. 



원석과 호랑의 결혼에 대한 동상이몽
<이번 생>의 한국적 정체성을 더해주는데 한 몫을 하는 건 지호의 친구 호랑과 수지이다. 그 중에서도 허무맹랑하게도 아직도 21세기에도 현모양처를  꿈꾸지는 현실은 옥탑방에서 동거를 하는 수지의 '결혼에 대한 로망'을 또 다른 각도에서 결혼에 대한 이 시대의 현실을 건드린다. 

이제 서른, 물론 마흔이 넘어 오십이 되어서도 임신이 가능하다지만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결혼하여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도록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픈 호랑에게 서른은 마치 마지노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호랑의 조바심에 동거남 원석(김민석 분)은 철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건지 동문서답만 한다. 프로포즈를 원한 호랑에게 신혼집에 들여놓을 소파를 몇 개월 할부로 옥탑방에 들여놓는 식이다. 

하지만 원석의 입장은 현실적이다. 앱 개발을 하는 중 투자도 못받아 전전긍긍하는 그에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일은 하늘의 별과도 같이 먼 미래의 이야기다. 호랑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그에겐 사랑과는 별개의 '책임'이란 무게를 더한 다른 범주의 문제가 된다. 

어쩌면 호랑과 원석의 갈등이야말로, 세희-지호 커플보다 조금 더 현실에 한발을 들여놓은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다. 계약이 진짜 가족간의 결합이 되어버린 세희와 지호의 결혼 과정에서 세희의 번듯한 직장과 집이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는 건 이미 드라마를 통해 짚어진 바 있으니까. 그런데 미래가 불투명한 옥탑방 앱 개발자에게 결혼이란 '무책임'이라기보다 오히려 '책임감'있는 소신이 되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결혼도, 연애도 사치, 우선은 직장에서 살아남기가 먼저인 수지 
어쩌면 호랑과 지호를 만날 때마다 가장 넉넉하게 그녀들의 지원군이 되어주는 수지야 말로, 가장 그녀들 중에 '여유'가 없는 형편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가라는 꿈을 꾸었던 지호와, 여전히 결혼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호랑과 달리, 수지는 일찌감치 'ceo'라는 꿈을 접은 채 대기업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에 매진하는 중이니까. 

남들이 보기엔 그럴 듯한 직장의 대리지만,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 직장 동료들의 성희롱 발언들도 유들유들하게 웃어 넘기고, 친구들과 모처럼 노래방에 갔다가도 직장 일로 부리나케 출동해야 하는,  남자는 그저 '성욕'의 대상일 뿐, 사랑 따위 사치가 여기는 수지야 말로 이 시대의 또 다른 청춘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7. 10. 25. 15:05

월화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에 이어, 수목 <부암동 복수자들(이하 복수자들)>로 편제된 tvn의 주중 미니 시리즈 배치는 다분히 시청률 타깃을 의도한 편성처럼 보여진다. 월화 <이번 생>이 2,30대 청춘들을 타깃으로 한 헬조선 청춘 백서에 가깝다면, 그에 이어 바톤을 물려받은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이후의 중년층의 현실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이런 차별적 편성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지금의 구도는 이와 같고, 그런 타깃별 편성은 4%를 바라보는 <이번 생>에 이어, 첫 회 2.9%, 그리고 2회 그 두 배에 가까운 4.63%로 폭발적인 출발을 보인 <복수자들>로 성공적이라 점쳐진다.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부암동 복수자들>은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다음 온라인 만화 대전 장려상을 수상하고 이미 웹에 게재될 당시부터 화제작이었던 이 작품은 <작업의 정석> 각본 황다은, 김이지 작가와 <골든 타임> 권석장 피디의 손을 거쳐 tvnd의 수목 드라마로 안착했다. 



같이 복수하실래요? 
제목에서 부터 '복수'라는 말로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이 작품은 더구나 중년의 세 여성이 모여 각자의 복수를 함께 도모한다는 신선한 설정만으로도 솔깃해 지는 작품이다. 부암동에 있는 까페에 모인 세 여인, 그 시발점이 된 건 재계 서열 10위 건하 그룹의 딸로 역시나 재벌가의 첫째 며느리인 김정혜(이요원 분)의 '같이 복수하실래요?'라는 청에서 부터 비롯된다.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는 재벌가의 여인이 생선 장수에게 '같이 복수하실래요?'라니. 하지만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정혜는 재벌가의 여인이지만, 아기도 없고, 심지어 이제 남편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통보까지 받은 상태이다. 남편은 미안해하기는 커녕 남편의 자식이라는 그 녀석과 희희덕거리기에 정신이 없다. 그에게 아들이 생긴다는 건 재벌가 후계 구도에서 그 누구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포기하지 못한 아기의 방은 그 듣도보도 못한 남편의 자식 방이 되어 아기 용품들이 바닥을 뒹군다.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다정한 부부지만, 정혜는 더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복수'가 필요한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나선다. 

그녀에 눈에 띤 첫 번 째 동지는 바로 남편과 함께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 만난 이미숙(명세빈 분)이다. 이미 까페세서 정혜의 눈에 들어온 이미숙을 보고 정혜는 확신한다. 그녀가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라는 것을.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청한다. '함께 복수하실래요?' 그러나 순종적인 미숙에게 그런 정혜의 청은 청천벽력이다. 그러자, 안하무인 정혜는 이제 곧 교육감 선거에 나설 남편의 폭력 행사를 폭로하겠단다. 그래서 정혜는 울며 겨자먹기로 '복수자 클럽(이하 복자 클럽)'에 나섰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도 정혜와 미숙은 서로 모임을 통해 남편들끼리도 아는 처지라지만, 세 번 째 멤버 홍도희(라미란 분)의 등장은 생뚱맞다.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날 뻔한 두 사람은, 그 대가로 차를 태워주고, '홍도 생선'이라 불러주며 인연의 끈을 맺기 시작했다.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을 계기로 애를 태우는 홍도희에게 '복수 클럽'은 동앗줄과도 같았으며, 화끈하고 통이 큰 도희는 곧 정혜와 미숙의 언니처럼 이들을 품으며 격이 다른 삶에도 불구하고 함께 클럽 멤버가 된다. 

그리고 3회, 주부만이 이 클럽의 멤버가 될 수 있다는 정혜의 냉정한 배척에도 끊임없이 주변을 멤돌던 유일한 청일점 이수겸(준 분)이 복자 클럽 제 4의 멤버가 되었다. 정혜와는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굴러들어온 돌멩이 같던 녀석이었지만, 처음부터 정혜에게 호의적이었던 수겸은, 자신 역시 그 나이 되도록 코끝 한번 비추지 않았던, 오로지 돈과 승계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친부모들을 향한 복수라는 취지에서 복자 클럽의 멤버가 되기를 '고소원'한다. 그리고 도희 딸에게 성추행과 보복 행위를 가하는 교장을 향한 복수를 성공시키며 '복자 클럽'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합류한다. 



'가부장제'에 대항한 '복수'
재벌가의 맏며느리와, 교육감 아내, 생선 가게 아줌마, 그리고 재벌가의 혼외 자식, 이들 네 사람을 엮이게 만들어 준 복수의 교감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서?

물론 네 사람 모두 '복수'를 하고 싶은 건 맞지만 이 이질적인 네 사람을 묶어주는 건 '가부장제'의 공고하고도 거대한 위계이다. 재벌가의 맏며느리이지만 가문을 승계한 아들을 낳지 못해 혼외자식을 들이는 일조차 '통보'를 받는 굴욕을 겪어야 하는 정혜. 그리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벌가의 아들로 입성하게 된 수겸은 바로 그 재벌가라는 가문으로 윤색된 가부장제의 '희생양'들이다. 번듯한 교육감 후보의 아내 미숙이지만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남편에게 학대당해 그의 손길 한번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녀에게 돈과 명예로 휘감은 '가부장'의 권력이이 힘없는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가해자'이라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하지만 도희에겐 '가부장'이 없지 않냐고? 아니 도희에게 '남편'이 없다는 건, 바로 그 남자로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조직에서 '도희'와 그녀가 보호해야 할 자녀들은 이미 '루저'라는 증거가 된다. 아버지가 없다고, 엄마가 생선 장수를 한다고 돈이 없고, 기댈 언덕이 없다고 같은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다 참다 못해 밀친 동희 아들 희수의 '자기 방어적 행동'이 '학폭위(학교 폭력 위원회)'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상황이나, 기간제 교사로 들어간 딸이 학교의 윗어른(?)인 교장에게 당하는 성추행은 '가부장제'적 모순의 현실태이다. 

혼외 자식의 입성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 정혜, 그리고 가정 폭력에 무방비한 미숙, 그리고 뻔히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 엄마 앞에서 무릎까지 끓어야 하는 도희는 남성 권력으로 체계화된 사회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왜소한 존재인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그녀들은 각자의 힘으로 돌파해 나갈 수 없는 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소심하게나마' 복수를 꿈꾸며 모여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고통을 그녀들의 계급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여성이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에 서슴치않고 '동지'로 뭉칠 수 있었다. '돈'과 사회적 지위를 앞선 고통과 공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복수가 드라마로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건,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상당수가 이런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비록 아직은 '복수'를 꿈꾸지만, 그 '복수'의 의도보다는 헛발질이 더 많은 그녀들의 복수,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부암동 복수 클럽의 '전도양양한' 복수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7. 10. 19. 05:46

9시 30분으로 자리를 옮긴 tvn의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는 2. 023 %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4회 3.841%까지 상승하며 월화 드라마의 자리를 안착시켰다. 하지만 상승하는 시청률과는 별개로 매회 <이번 생>을 보는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그건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이민기의 군 복무 중 논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혐의를 벗은 배우의 방송 출연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이제 와 발목 잡기일 뿐이니. 그 보다 정작 베일을 벗은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건 <이번 생> 드라마와 2016년 tbs에서 방영하여 20%가 넘는 화제작이었던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逃げるのは恥ずかしいけど役に(이하 니게하지)>와의 유사성이다. 



<이번 생>과 <니게하지>, 그 미묘하게도 같은
38세의 가구주 웹 디자이너 남세희(이민기 분)와 그가 여성인 줄 알고 그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오게 된 30세의 윤지호(정소민 분)은 집에서 결혼 독촉에 시달리는 남세희의 상황과 집도, 일도 다 잃은 채 고향 남해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 윤지호의 이해가 맞물리며 4회 드디어 계약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계약 결혼 스토리는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서사이지만, 일드 <니게하지>에서 역시나 비슷한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첨단 직종에 프로 독신남 히라마사(호시노 겐 분)가 아버지의 권유로 그의 집에 '가정 도우미'로 들어온 미쿠리(아라가키 유이 분)와 엮이게 되고 집의 이사로 그에게 계약 결혼을 권한 미쿠리의 요구를 냉철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손해날 것이 없다며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본 사람이라면 그 다르지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듯하다. 

특히나, 두 드라마의 공감이 기초하는 곳은 바로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린 여주인공의 처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5세 파견 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보다 전문적인 일을 찾아 임상 심리 대학원까지 진학하지만 문과 계열 그녀에겐 취업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집에서 놀고 있는 그녀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지인인 히라마사 집에 가정 도우미 알바를 권하게 되는 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된다. 물론 <이번 생>의 윤지호의 서사는 전혀 다르다. 30살, 서울대 국문과까지 나왔지만, 현실은 보조 작가, 이번에는 입봉을 하려나 했지만 그녀가 맞닦뜨린 현실은 기존 작가에 의한 원작을 알아볼 수 없는 정도의 '윤문'과 작업실을 빌려준 피디의 성폭행 시도, 결국 윤지호는 집도 절도 없이, 심지어 자신이 하고자 했던 글 쓰는 일조차 포기하며 10년 여의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두 드라마는 전혀 다르지만, 문과 출신의 여성이 자신의 꿈은 커녕 사회에 발 붙이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남자 주인공과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 tvn 측은 불거진 표절 시비와 관련하여, '리메이크도 표절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과연 <니게하지>가 없었다면 <이번 생>이란 드라마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기에 더욱 <이번 생>의 입장이 아쉽다. 

더욱이 의심이 깊어지는 건, <이번 생>의 윤난중 작가에게 이와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직장의 신(2013)> 역시 2009년 연습 삼아 일본 드라마를 각색했다 이후 판권을 사서 드라마화 전례가 있으며,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달팽이 고시원>은 소설<와세다 1.5평 청춘기>, <위대한 계춘빈>은 역시나 소설 <공중 그네>와의 유사성 논란이 이어졌던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이번 생>이 일본 드라마 <니게하지>를 <직장의 신>처럼 판권을 사서 각색했더라면 가감없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 행보가 더욱 아쉽다.  



표절이라기엔 너무도 현실적인 <이번 생>
물론 표절이라 하기엔 <이번 생>의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된다. <니게 하지>가 자신의 필요를 알아주는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 주인공이 먼저 계약 결혼을 요구하는 것과 반대다. <이번 생>은 결혼 독촉에 시달리던 남세희가 지금까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세입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분리 수거라던가 청소라던가, 고양이 돌보기같은 일을 완벽하게 해낼 뿐 아니라, 해외 축구를 좋아하는 취향까지 비슷한 윤지호라면 가장 완벽한 '결혼 상대자'가 될 것이란 생각에서 먼저 계약 결혼을 제시한다. 

수지타산을 맞춰보니 가장 적합한 결혼 상대자일 거라는 남세희의 청혼에 윤지호가 응답을 한 건, 바로 이 시대 청춘의 응답이기도 하다. <이번 생>에는 일드와 달리 윤지호를 비롯하여 다른 두 명의 동년배 여성 양호랑(김가은 분), 우수지(이솜 분), 세 명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친구이지만 각자 전업주부, 사장, 그리고 작가의 꿈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 서른 줄의 그녀들은 결혼이 늦어져 임신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는 기약할 수 없는 동거, 사장 대신 사장님의 호출이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대기업 대리, 그리고 연애 따위 사랑 따위조차 사치로 여기며 방 한 칸을 위해 계약 결혼을 감행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전업 주부에 럭셔리 현모양처가 꿈인 호랑의 꿈이 허무맹랑해 보이듯, 오히려 <이번 생>의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빗나간 전통의 강제일 뿐, 비효율적이며, 비인권적이라는 남세희와 우수지의 '비혼주의'가 공감되는 지점, 그리고 이번 생에 연애는 개뿔, 차라리 방 한 칸이 현실적이라는 윤지호의 선택이 호소력을 얻는 그 현실적 묘사가, <직장의 신>에 이어 다시 한번 3포시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으며 <이번 생>의 시청률에 청신호가 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7. 10. 18. 14:30

최근 송승헌의 행보가 심상찮다. 그저 번듯한 외모를 앞세워 '치명적 멜로'의 단골이었던 이 '미남 스타'는 주춤했던 행보를 건너고 이영애와 함께 한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만 해도 예의 캐릭터를 답보하는가 싶더니, 영화 <김창수>에서 고문을 일삼는 악랄한 감옥 소장으로, 이제 드라마 <블랙>에서는 '바바리맨' 스타일의 안하무인 저승 사자에서 시체만 보면 토해대는 어수룩한 초년 형사까지 다양한 캐릭터로 자신의 연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블랙>을 그저 새로운 송승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작품이라는 수식어로만 설명하면 아쉽다. 오히려, 그런 송승헌을 가능케 해준, 두 사람 최란 작가와 김홍선 감독을 빼놓은 <블랙>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 최란과 <보이스> 김홍선의 콜라보, 거기에 화룡점정 송승헌 
그러고 보면 송승헌이 처음은 아니다. 김홍선 감독의 전작 <보이스> 역시 익숙한 연기로 고전하던 장혁에게 오히려 그 익숙함을 극대화시킨 '미친 개'라는 '추노' 대길에 이은 새로운 닉네임을 선사하며 중견 배우의 영역 확장을 시도한 바 있다. 그리고 장혁만큼 그 '트레이드 마크'에 갇혀있던 송승헌에게 <블랙>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란 작가 역시 이제는 황시목이 된 조승우에게 고전했던 <마의>이후 다시 드라마를 할 의욕을 불러일으킨 '기동찬'의 캐릭터를 선물한 <신의 선물> 작가이다. 

하지만 김홍선 감독과 최란 작가를 그저 배우를 다시 새롭게 탄생시키는 콤비로만 규정하는 건 아쉽다. tvn에 이어 ocn에서 김홍선 감독이 선보인 <라이어 게임(2014)>, <피리부는 사나이(2015)>, <보이스(2016)>는 100억원을 놓고 겨루는 생존 게임, 인질극과 위기 협상팀의 일촉즉발 협상극, 그리고 범죄 현장 112를 배경으로 범죄의 골든 타임 수사극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소재와 구성으로 장르물의 신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비록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매회 시청자들에게 롤러코스터를 선물했던 독특한 장르물 <신의 선물-14일>의 최란 작가와 만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송승헌의 출연 이전에 이미 <블랙>은 기대작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화제의 감독과 작가, 그리고 스타 배우까지 얹힌 <블랙>의 서장은 어땠을까? 생과 사의 미스터리를 화두로 삼았던 <신의 선물-14일>의 최란 작가답게 이번에도 드라마에는 '죽음'의 기운이 뻗친다. 범죄 현장의 시체만 보면 토해대기가 바쁜 신참 형사, 조폭들 앞에서 기를 못쓰는 '형사'라는 직업이 안어울려 보이는 어수룩한 한무강이 송승헌이 첫 회에 선보인 캐릭터이다. 그런 그가 햄버거 집에서 우연히 선글라스를 쓴 하람(고아라 분)을 만나게 되고, 죽음을 보는 자신의 능력을 저주라 믿는 하람에게 '축복'이라는 선의를 던진 바람에 그녀와 함께 '죽음'을 구하는 길에 나선다. 
하지만 인질극 현장에서 죽을 운명의 사람을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역시 운명을 거스를 순 없는 것이었을까? 그 자리에 대신 나간 한무강이 총을 맞고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과 함께 주인공의 죽음으로 마무리될 뻔한 1회, 한무강의 시체가 누워있는 영안실에 잠입한 킬러는 그의 머리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려 하고, 뜻밖에도 그 손을 잡아챈 건 죽은 줄 알았던 한무강, 그렇게 1회는 반전의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2회를 열고보니, 살아난 사람(?)이 그 한무강이 아니었다는 것이 진짜 반전이다. 시체를 보면 토하던 한무강은 온데간데 없이 시체를 들척이며 초짜 형사의 티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시체의 사인을 척척 알아맞추는가 하면, 1편에서 한무강을 꼼짝못하게 하던 조폭들을 혼자의 힘으로 제압해 버린다. 게다가 마치 '인간 세상'에 처음 온 신처럼 '인간들'을 낮잡아보며 바바리맨 차림에 아래를 훤히 내놓는 걸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가 하면, 장농이고 드레스룸이건 문만 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새 무강의 행보는 1편의 한무강과 극과 극이기에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죽음의 사자, 능력자 여주인공, 그리고 과거의 사건, 익숙하되 신선한 조합
이렇게 배우 송승헌을 앞세원 한무강의 양 극단 캐릭터가 1회의 씨줄이었다면, 그 날줄은 죽음을 보는 능력으로 인해 자꾸 죽음과 엮이는 하람의 바람잘 날 없는 인생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나타난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도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머니에게 그 주둥이를 꼬매고 다니라는 막말을 듣는 이 소녀는 선글라스를 벗을 때마다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친다.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의 무강으로 인해 용기 백배하여 세상에 나서기가 무섭게, 이제 달라진 무강과 엮이며 그녀의 죽음을 보는 능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2회의 마지막, 빗속을 거닐어 집으로 돌아온 무강과 그 무강에게 너는 이미 죽었다는 무강의 몸을 빌은 검은 옷의 인물을 대치시키며, 두 무강의 존재로 인한 흥미를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무강의 두 캐릭터 이전에, 전혀 형사스럽지 않지만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막내 형사가 되어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97년 무진 주택 화제 사건을 뒤쫓던 한무강과 알고보니 무강이 찾던 그 의문의 여중생이 지금의 약혼자라는 미스터리에 숨겨진 음모는 <블랙>의 또 다른 밑그림이다.
그리고 거기에 얽혀든 어린 시절 무강과 하람의 인연, 그리고 하람의 비극적 가족사와 능력. 드라마는 마치 페스트리처럼 켜켜이 복선과 복선을 쌓으며 저마다 빛나는 구슬처럼 사건과 캐릭터를 나열한다. 

그래서일까? 너무 많은 구슬같은 이야기들은 아직 엮어지지 않은 티를 내며 각각 굴러다니기도 한다. 1,2회 나열한 구슬들은 저마다 흥미를 가지로 굴러다니지만 드라마의 초반이기에 우려보다는 기대가 크다. 거기에 새로운 면모의 송승현을 발견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마지막 장면의 김태우는 그 한 장면만으로도 다음 회를 기약하게 만든다. 죽음의 사자를 내세운 드라마가 처음은 아니고, 과거의 사건을 현재와 다른 드라마 역시 처음은 아니지만, 적어도 <블랙>은 이 낯설지 않은 제재들을 신선하게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는 성과를 거둔다. 과연 이게 '편집'의 미숙인지, 과유불급인지 그 답은 결국 '다음 기회'로  남겨진다. 
by meditator 2017. 10. 16. 16:14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 정의가 가족보다 더 어울리는게 있을까? 일찌기 레오 톨스토이는 그의 명작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다'라 했다. 그 '가정', 혹은 '가족'의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마도 그건, 각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바 '가족' 혹은 '가족 구성원'에게 성문법이 아니지만, 성문법만큼 강고하게 강제되는 역할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가족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가장'으로서의 아버지, '현모양처'로서의 어머니, 그리고 그에 부응하여 '공부 잘 해서 입신양명에 애쓰는 말 잘 듣는 자식들'일 것이다. 10월 15일 방영된, <나쁜 가족들>은 제목 그대로, 바로 이 역할에 가장 '나쁜 케이스'의 집합체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드라마 스페셜>의 명작으로 회자되는 <빨간 선생님>, <개인주의자 지영씨>의 신작이다. 85년을 배경으로 선생님과 제자의 갈등을 시대적 유감으로 풀어낸 <빨간 선생님>이나, 오피스텔의 '개인주의'를 현대 사회 고립된 개인의 뿌리깊은 사연으로 풀어낸 작품들처럼, 역시나 만만치 않은 사연을 그러나 그저 무겁지만 않게 그려낸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가족
시작은 지금부터터 6년 전, 이제 갓 청소년이 된 나나(홍서영 분)네 가족에게 생긴 일로부터 시작된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나는 군대를 다 마치치 못하고 오빠 민국(송지호 분)을 데리러 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엄마와 아빠의 '부부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김정국(이준혁 분)씨와 박명화(신은경 분)씨는 미로에 빠지고 만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나온 오빠, 그 오빠를 물고빨고 하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질색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오빠, 그리고 그저 난처해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가족들.

그리고 6년 후, 다시 가족은 나나의 자퇴 문제로 한 자리에 모인다. 그런데 모인 곳이 뜻밖에도 경찰서다. 도망치는 나나의 머리끄댕이를 잡다 청소년 학대 혐의로 온 가족이 호출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 가관이다. 담임 선생님이 나나의 자퇴를 의논하고자 전화를 건 순간 아버지 김정국 씨는 '노조 투쟁'을 하느라 아니, 딸이라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결정하라며 전화를 끊는다. 딸의 머리 끄댕이를 잡으며, 딸의 남친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이별을 회유하며 적극적인 엄마는 뜻밖에도 호시탐탐 바람한번 펴보는 게 소원인 막장 엄마다. 심지어 경찰서를 찾아온 나나를 보호해야 할 담임이 바로 전날 엄마랑 은밀한 문자를 오가던 그 문제의 남자(?)다. 오빠는 다를까? 할머니만 오면 줄행랑을 치는 오빠는 '의가사 제대' 이후 무의도식의 경지에 빠져있다.

말 안듣는 제자와 선생님의 갈등을 '시대의 풍경'으로 풀어낸 <빨간 선생님>처럼, <나쁜 가족들>은 해체 일보 직전의 가족들을 내세우며 21세기 가족의 현실을 짚어간다. 가장이어야 할 아버지 김정국씨는 홀어머니의 지극한 편애의 반발로 '가장'임을 방기한 채, 노조 활동에 매몰된다. 학창 시절 사고를 쳐서 엄마가 되어버린 박명화씨 역시 굴레다. 청소년 시절 사고쳐서 엄마가 된 그녀에겐 '연애'라 쓰고, '다른 남자랑 한번 자보는 게' 소원이고,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부산으로의 발령을 자청할 정도다. 두 부부를 보면, 이 가족을 마주한 경찰이나 선생님의 표정에서 드러나듯 부모가 이 모양인데 아이들이 오죽할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청소년 시절 사고를 쳐서 '인지'도 하기 전에 부모가 되어버린 김정국씨와 박명화씨가 맞닦뜨린 부모, 가족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할머니의 과잉 보살핌으로 품안의 자식으로 자라난 아들은 서울대 법대를 갔지만 군대 폭력으로 의가사 제대를 하고 현실 부적응자가 되었다. 청소년이 될 그 때부터 부모님께 왜 결혼을 했냐고 도발적 질문을 던지던 나나는 내 인생은 내꺼라며 자퇴와 가출,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정말 부모같지 않은 김정국, 박명화 씨의 행태를 보며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낫다며 나나는 도발적 조언을 했지만, 그래도 나나의 자퇴만을 막아보겠다는 김정국, 박명화씨는 가족으로 거듭나는 선택을 한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던 김정국 씨는 아들의 취업과 노조위원장 자리를 바꾸며 아버지 되기를 선택하고, 부산으로의 탈출을 꿈꾸던 엄마는 어떻게든 나나를 졸업시키기 위해 눈물의 휴직을 감내한다. 이른바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아빠되기와 엄마되기에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부부의 헌신(?)은 물거품이 되고 다시 가족은 경찰서에 나란히 앉는 신세가 된다.




21세기 가족을 묻다.
그리고 결국은 실패한 이 두 부부의 '가족되기 해프닝'은 역설적으로 오늘날 '가족'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묻는다. 시어머니의 그 길고 긴 레파토리, 내 인생 희생해서 너희들을 키웠다는 그 징한 역사의 방식을 답습했지만, 실패하고만 김정국, 박명화씨의 부모되기를 통해 '자기 희생'위에 견고한 성채를 쌓아온 우리 사회 가족 제도를 근본에서부터 회의한다.

이 짧은 드라마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씬, 전혀 가족같지 않은 이들이 한 차에 어쩔 수 없이 낑겨앉은 이 장면이야 말로 피하고 도망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우리 사회 가족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상징한다. 음주 운전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바꿔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장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서로의 처지와 책임이 부가되는 가족의 현장이다. 그리고 거기서 도망쳐버린 엄마가 다음날 남편의 호텔에서 시어머니 칠순 잔치 현장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 선생님과 마주친 가족들과의 상면은 드라마의 갈등을 '불꽃놀이'처럼 점화한다.

결국 알량한 부모의 위신이나 희생을 향한 어거지 노력마저도 수포로 돌아간 후, 비로소 부모들은 솔직해 진다. 자신들 역시 아직은 '어른답지 않음'을. 부모로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부모로써의 자신이 없음을. 그리고 '부모'라는 정해진 틀에 가두기엔 자신들의 삶에 대한 욕구가 너무도 가열참을. 이 사회가 제시한 부모라는 '제복'에 틀어 맞추기엔 너무도 자유분방하게 커져버린 개인으로서의 삶을.

그럼에도 <나쁜 가족들>은 비관주의에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군대 내 폭력, 노조 투쟁, 그리고 섹스리스 부부 문제, 히키코모리에 가출 청소년의 문제 등 심각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김정국 씨 가족들을 통해 나열되지만, 오히려 드라마의 결론은 '불꽃놀이 축제'의 결말처럼 훈훈하다. 들여다 보면 비극이지만, 어쩌면 '가족'이란 테두리에서 해결을 모색해보면 안될 것도 없다며 드라마는 '사회가 끼워 준 색안경'을 벗어버린다. 애써 작아진 '가족이란 제도'에 끼워맞추기보다. 각자 자신의 현실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인정'하는 것으로 '가족'은 새로이 시작한다. 자식을 위합네 어거지 부장 역할 대신 원하던 노조로 돌아간 아빠, 잘 나가는 서울대생 아들, 군대 폭력의 트라우마을 떨친 채 이제 드디어 숟가락 얹는 생활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오빠, 원하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엄마, 그리고 자퇴를 하고 '방황'을 하기 위해 가방을 짊어진 딸, 그렇게 사회가 원하는 가족의 역할은 아니지만, 각자의 삶을 사는 것으로 이 '가족'은 '기사회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21세기'가족의 생존기'이다.

by meditator 2017. 10. 16. 14:00

새로운 작가의 등장은 반갑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 뻔하지 않은 설정이, '드라마'의 신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수식어에 어울리는 또 한 편의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kbs2  수목 드라마로 찾아온 <매드독>이다. 


ocn의 인기 시리즈였던 <특수사건 전담반; 텐>의 작가였다는 후광이 무색하게 최저 시청률을 갈아치웠던 <맨홀; 이상한 나라의 필>후속작의 자리는 거의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처지나 다름없다. 물론 아직은 수목 드라마 꼴찌이지만 그 '맨땅'에서 대번에 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건, 사실 '대박'에 가깝다. 그만큼, 첫 회를 선보인 <매드독>의 활약은 화려했다. 



'법이고 나발이고 물어 뜯어버려!'; 다크 히어로 매드독
드라마를 연 건 일명 '매드독', 보험조사 회사(?)의 활약상이다. 화려한 미모를 앞세워 병원의 환자로 위장잠입한 전 태양보험 보험 조사팀 대리 장하리(류화영 분), 그녀가 '베이글녀'의 특기를 앞세워 의사의 눈길을 끄는 동안, 전직 조폭, 전과 5범의 박순정(조재윤 분)이 컴퓨터 수리공으로 등장하여 병원 정보를 빼돌린다. 그런 그들을 아지트의 자칭 스티브 잡스 친구인 온누리(김혜성 분)가 돕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상대편 건물 옥상에서 전설의 보험 조사원 최강우(유지태 분)가 진두지휘한다. 태양 생명 보험조사원 박무신(장혁진 분)이 경찰들과 들이닥치는 일촉즉발의 상황, 장하리는 전직 체조 선수의 특기를 살려 건물 사이를 날아 안전하게 박순정과 함께 피신하고, 병원의 보험 사기 보상금은 '매드독'에게 입금된다. 박무신이 그들의 자화자찬 뒤풀이에 나타나 발을 굴러봐야, 이미 게임은 끝났다. 

이렇게 드라마는 한 해 보험 사기 적발 금액 7185억원, 보험 사기 공화국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보험 조사 어드벤처'의 서막을 연다. '차는 주차장에 조사원은 법 안에'라는 신념을 가졌던 최강우, 그러나 그는 항공사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고, 미친 개가 되었다. '법'의 테두리에서 보험 사기를 조사하던 성실한 직장인은, '안 걸리면 대박, 걸리면 사기 미수의 경미한 처벌'이라는 헐거운 그물의 보험 사기 법망을 무시하고, '법이고 나발이고 물어 뜯어버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험 사기를 조사하는 저돌적인 '다크 히어로'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의 곁엔, '어벤져스' 급의 동지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날뛰는 매드독'의 소개로 만족하지 않는다. 뜻밖에도 주인공인 '매드독'을 물먹이는 한 술 더 뜨는, 조물주 위의 건물주 사기꾼을 등장시키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전문가 김민준 씨?
전 직장 태양 생명사를 나오다 마주친 건물 붕괴 사고 피해자 부자의 사연을 풀어주기 위해 나선 매드독, 그들이 작전을 펼치는 곳곳에서 뜻밖에도 어리숙한 건축사무소 직원 김민준을 만난다. 

부실공사로 인한 건물 붕괴라 확신하는 매드독팀, 그런 확신에 여유롭게 사사건건 반론을 제기하는 전문가 김민준씨, 매드독과 건축사무소 비밀 문건을 내건 매드독과 김민준의 경쟁은 뜻밖에도 김민준의 승리로 끝난다. 아쉬움에 돌아온 사무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들을 맞이한 건 그들이 사건 조사 과정에 밝힌 건축주 안치환의 비리 서류가 경찰서 캐비닛에 있고, 그들이 패배한 보험금이 피해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지게 되었다는 사실, 황망해 하는 것도 잠시 그들 앞에는 매드독이 입주해있는 건물의 건물주로 등극한 전문가 김민준이 등장한다. 마치 배트맨 앞에 등장한 슈퍼맨처럼, 

그렇게 1회는 정체가 모호하지만 그 결과로 보건대 다크 히어로 집단 매드독과 그 길이 다르지 않은 전문가 김민준의 '매드독 소유권' 주장으로 흥미롭게 마무리된다. 과연 이들이 펼쳐보일 따로 또 같이의 '저스티스 리그'는 어떤 방식일지. '매드독' 그들의 어벤져스 급 활약도 흥미로운데, 거기에 화룡점정, ocn <구해줘>를 통해 눈도장을 찍은 신인 우도환의 '전문가 김민준'씨의 신선한 활약은 '보험 사기 조사극'이라는 생소한 소재에 대한 낯섬을 거뜬히 기대감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예고에서 보여지듯 최강우와 김민준의 항공사 사고로 인한 악연 혹은 인연, 거기에 JH 항공 운송 그룹 부회장 주현기(최원영 분)에서, 태양 보험 차준규(정보석 분)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악의 라인은 그 면면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큰 그림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하고 드라마 <매드독>의 기대치를 높인다. 
by meditator 2017. 10. 12. 14:33

kbs2의 월화 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상승세는 파죽지세다. 1회 6.6%에서 2회 9.5%로 시청률이 오르며 sbs <사랑의 온도>(10.3%,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를 바짝 쫓는다. 단 하루 만에 시청률 기근인 공중파에서 대번에 3%를 건너뛴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중심에 제목의 그 '마녀', 마이듬이란 전무후무한 캐릭터가 있다는 데 큰 이견은 없을 듯하다. 


나를 위해 싸운다
7년차, 이제 제법 짠밥이 붙어 검사 임명 8개월차 여진욱(윤현민 분)에게 '선배'라며 큰 소리 칠 경력의 마이듬(정려원 분). 드라마의 시작은 마이듬이 10살이었던 시절로 시작되었다. 국수집을 하는 엄마와 둘이 살지만 엄마가 있는 게 어디냐며 당당했던 아이, 하지만, 그 엄마는 잠시 나갔다 온다며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에서 엄마를 찾던 전단지를 나눠주던 소녀는, 훌쩍 시간을 건너 뛰어 지방 국립대 출신이지만 4대 지검을 두루 거치며 에이스 소리를 듣는 35살의 중견 검사가 되었다. 



그 엄마 잃은 소녀가 서울 지검 특수부를 바라보는 에이스 검사를 바라보며 살아내기 까지 어땠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35살 마이듬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싸운다', 겸손 대신 '제가 좀 잘났습니다'라고 하며, '양보'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가 하겠습니다'하며 나선다. 하지만 그렇게 나서고 능력이 있음에도 그녀에게 돌아온 건 성추행한 부장 검사의 뒷설거지, 피해자를 찾아가 '현실'을 들먹이며 '협박'까지 하고 돌아온 그녀의 눈에 띈 건 그럼에도 남자 후배를 자리 라인으로 끌어가는 부장 검사, 마이듬은 그 '부장 검사' 성추행의 목격자로 '속시원하게' 증언을 하고, 그 댓가로 최악이 기피부서, '여성가족부'로 발령이 났다. 

<샐러리맨 초한지>의 백여치에 이은 또 한번의 인생 캐릭터를 만난 정려원은, 그 특유의 매력으로 마이듬을 펄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검찰의 생리, 위계 질서, 그런 건 '나 자신을 위할 수 있을 때'만 유효한 듯, 필요에 따라 정보를 흘리기도, 이용하기도 하는 것에 거침없이, '법'을 혹은 '법' 이상을 활용할 줄 아는, 하지만 마이듬 특유의 '싸가지 바가지'는 결국 그녀를 '본의 아니게(?)' 출포검(출세를 포기한 검사)로 만든다. 그러나 마이듬이 누군가, 전셋집을 위해서는 '엮이지 맙시다'하던 여진욱에게 태세 전환이 유연하듯, 맘에 들지 않는다면 '사표'도 한 방법이라는 민지숙(김여진 분) 부장 검사에게 오래오래 공무원 생활을 하겠다며 다시 '성실히 복무'할 것을 맹세하는 현실적 유연성을 보인다. 

'마녀들의 쟁투장'; 참여 재판
그러나 마이듬의 성실한 복무는 중단없는 '나를 위한 싸움'이다. 이제 더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 없으니 포기하는 민지숙 부장의 말 따위, 이번에도 마이듬의 안중에 없다. 그녀는, 교수와 제사 사이에 벌어진 성추행 사건에서, 다시 한번 '마이듬 식'의 반전 카드를 쓴다. 

정려원에 의해 빛을 발한 마이듬이란 어쩌면 이 시대 나를 위해 고전(苦戰) 중인 젊은이들이,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가장 공감할 만한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마녀의 법정>이 수직 상승세를 이어가는 본질은 '재밌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 '재미'는 어설픈 미드 <크리미날 마인드>의 복사판이 아닌, 우리 현실에 기반한 성범죄를 다룬 이 드라마의 서사에서 기인한다. 

첫 회, 굳이 검찰이라고도 내세울 것도 없이 우리 나라 권위적 조직 내에서 흔한 술자리 성추행 사건을 마이듬과 전배수 부장 검사와의 갈등과 회유, 그리고 증언으로 이끌어낸 드라마는, 이제 여성아동범죄 전담부서로 발령받은 마이듬이 맡은 첫 번째 사건으로, 그 반대의 경우를 다룬다. 



논문 임용을 앞두고 여교수를 찾아간 대학원생의 교수 성추행 사건, 하지만 이를 수사하던 여진욱은 가해자 대학원생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선배임을 내세워 쉽게 넘어가려던 마이듬이 전셋집과 관련 여진욱에게 태세전환을 하며,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가 바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대학원생 남우성(장정연 분)의 동성애와 그 연인이 지녔던 녹취본 증거, 하지만 남우성은 그 사실을 끝내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피해자임에도 기꺼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참여 재판을 승락한 선혜영(강경헌 분) 교수는 법정에서 '여성'이라는 성적으로 불리하게 여겨지는 지위를 십분 이용하여, 여론에 호소한다. 그녀와 그녀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변호사 허윤경(김민서 분)의 변론에 따라 출렁이는 여론. 

물론 드라마는 마이듬이 부장 판사 성추행 사건에서 슬며시 기자에게 정보를 흘려주었듯, 화장실에 남겨둔 자신의 핸드폰에 남겨둔 남우성의 sns 관련과 그 이면의 성적 정체성 정보를 '떡밥'으로 흘린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덥석 문 변호사는 법정에서 증거로 그것을 폭로하고, 그와 더불어 남우성의 게이 연인 정체까지 까발린다. 이에 당혹해 하는 여진욱과 달리, 미소를 짓던 마이듬,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책략'이었다. 당연하게도 마이듬은 애초에 그녀가 하려했던 남우성 연인이 가졌던 성추행 과정이 담긴 녹취본을 법정 증거로 제시하고 재판을 승소로 이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을 가득 메운 언론들을 향해, '마이듬입니다'를 만면의 미소를 띠고 외치는 여주인공, 1회에 이어, 다시 한번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싸우는' 마이듬의 존재를 확고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드라마는 놓치지 않는다. 마이듬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여진욱은 묻는다. 누가 이겼냐고. 자신의 불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피해자의 인권은 고개를 떨군 남우성의 모습으로 상징된다. 

그래도 마이듬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법적 진실이 승리를 했지만, 2회를 통해 보여준 참여 재판의 과정은 '법정에 선 인권이 한편의 '쇼'와 같은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곡해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 자신을 언론을 통해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는 세상, 그 '포장'에 얼마든지 부화뇌동할 수 있는 '대중'들의 법정이, 오늘날의 참여 재판의 실례임을 드라마는 실감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현실에 기반한 <마녀의 법정>이 이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7. 10. 11. 14:31

<응답하라>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케이블 tvn에서 시작된 <응답하라>는 정작 그 본 시리즈가 후일을 기약하지 않은 것과 달리, 그 '추억'의 정서가 드라마의 '장르'가 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추석 전에 종영한 kbs2의 <란제리 소녀 시대>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더니, 이제 mbc에서 새로이 시작한 <20세기 소년 소녀>는 1990년대에 성장하여 이제 35살이 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추억'을 바탕으로 끌어가고자 한다. 




추억은 힘이 세다
뜬금없지만 추석 특집 sbs스페셜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해 본다. 추석 특집으로 sbs스페셜은 지리산 도마 마을의 정경을 다룬다. 그 중 2부는 도마 마을의 가장 웃어른인 90살 한두이 할머니, 평생을 도마 마을에서 나고 자라 일가를 이룬 그녀는 이제 삶의 전선에서 물러나 반 평 툇마루를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육신은 늙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정신이 육신을 따라 늙어지지 못한 그녀는 그 반 평의 툇마루에서 이제 하나 남은 일, 죽음을 기다려야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도마 마을 여기저기를 흘러다닌다. 시계에 맞춰 버스 오는 시간하며 고사리 캐러가는 일상을 놓치지 않는 한두이 할머니는 말한다. 지나온 평생 늘 굶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고생 밖에 안했는데, 돌아보니 그 시절이 다 꽃같다고. 그래서 자식들도 잠깐 다녀가는 고향, 구부러진 허리로 여전히 고향을 지키는 그곳을 다큐는 복사꽃이 지천이라 말을 맺는다. 

그렇다. 돌아보니 다 꽃같던 시절, '추억'의 정의로 이 보다 더 절묘할 것이 있을까? 더구나,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툇마루를 지키는 한두이 할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강팍한 현실을 꿋꿋이 밀고가야 하는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을 꿀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잔향은 그 어느 때보다 그윽할 것이다. <응답하라>라는 드라마가 '수작'이었던 이유를 차치하고, 번복되어 그 '추억'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유에는 아마도 현실의 강팍함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응답하라>와 달리, 공중파로 온 추억의 소환이 흡족치는 못하다. <란제리 소녀 시대>가 3~4%의 시청률로 고전했으며, 야심차게 연방을 하며 폭죽을 쏘아올린 <이십세기 소년 소녀> 역시 4~3%로 만족스런 출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란제리 소녀 시대>가 낮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올해의 좋은 드라마'로 손꼽히듯, 비록 이제 4회를 선보였지만, <20세기 소년소녀> 역시 '추억'의 훈훈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우정과 교감을 나누고, 같은 시대의 노래를 듣고, 같은 문화를 공감하며, 90년대의 문화가 된 '한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들은 이제 설마하던 서른 중반, 여전히 미혼의 '봉고파'가 되어 '동지애'를 나눈다. 그녀들의 동지애의 기반은 한 교실에서 서로 일기장을 나누어 가며 나누던 그 '교감'에서 비롯되고, 한 남학생으로 잠깐 금갔던 그 찰라의 이별을 제외하고는 늘상 한 동네에서 함께 살아왔던 '인생의 다르지만 같은 레일'의 시대성에서 이제는 변호사 취준생에, 비행기 승무원에, 스타라는 다른 삶의 궤적을 이어가는 공통 분모를 찾아간다. 거기에 여전히 다같이 '결혼하지 못했다는' 미혼의 딱지까지(극중 그 누구도 '비혼'을 내세우지 않는다)



21세기의 강팍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추억
하지만 그렇게 같은 노래를 듣고, 저마다의 꿈을 꾸며, 같은 남학생을 좋아하며 투닥거리던 소녀들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소녀시절부터 지금까지 울다가도 '뭐 먹을까?'란 소리에 눈물이 뚝 그치는 한아름은 사이즈 77과 뚱뚱한 승무원에 대한 컴플레인과 싸우는 전문직 여성이 되었다. 심지어 '자궁근종'과도 싸우는 처지. 
학창 시절 늘상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영재 소녀 장영심(이상희 분)은 겨우 11년만에 턱걸리로 사법 시험은 패스했지만, 로펌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 늘 이력서와 홀대하는 아버지와 싸우는 그녀에게 기회는 저 멀리에만 있는 듯. 겨우 그녀에게 기회가 오긴 왔는데, 원하던 로펌이 아니라 소파가죽마저 뜯어진 개인 변호사 사무실. 
세 소녀들 중에서 운좋게도 가장 잘 나가는 대한민국의 트렌디한 스타가 된 사진진, 아이돌로 시작하여 17년차의 관록있는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그녀, 그런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섹스 동영상 사건에, 아름이 문병차 간 여성 병원 사진까지 터지며 연예계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는다. 

이렇게 4회만에 드라마는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에 '결혼'과 '연애'는 커녕,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한 그녀들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사진진의 '섹스 스캔들'에서 보여지듯이, 세상은 보이는대로 믿고, 보여지는대로 손가락질하며 평가한다. 그렇게 강팍한 세파 속에 던져진 그녀들은 '개별적 존재'일 뿐. 

그러나 그녀들은 여전히 20년 '안소니' 팬심을 간직한 모태 솔로 혹은 그 비슷한 순정파의 '소녀'들. 드라마는 바로 이렇게 한두이 할머니처럼, 육신은 서른 다섯의 세파와 싸우지만, 정신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있는 서른 다섯의 20세기 소녀들의 '관점'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관점에 집중할 뿐 아니라, 서른 다섯의 삶을 그럼에도 여전히 20세기 소녀들의 의지로 헤쳐나가는 '정서'에 촛점을 맞춘다. 세상의 편견어린 시선에 상처받은 사진진을 위로하는 건,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오래된 기린 인형처럼, 여전히 그 시절처럼 그녀와 함께 자란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불현듯 그녀 앞에 나타난 그 시절 봉고남 공지원(김지석 분). 그 20세기의 정서가 그녀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오랜 인연의 소속사 사장마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세상은 각박해도 '관계'는 여전한 유대가 되어 세상을 버틸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를 <20세기 소년소녀>는 단 4회만에 설득해 버린다. 

그 이전의 세대가 고생하며 일군 '가족'이 그들의 방패였다면, 도시에 깃들어 핵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진 대가족들은 새로운 '도시의 가족(?)'을 이룬다. 이제 '추억'을 소환한 이 세대에겐 그 '추억'을 공유한 '관계'들이 새로운 방패로 등장했다. 그 시절 '가족'드라마와도 같은 장치다. 병원 입원 중에도 홀로 뒤척이는 사진진을 찾아와 함께 잠을 청해주고 라디오 공개쇼에 나타나 자신의 스캔들을 진솔하게 밝힌 사진진이 함께 부등켜 안고 웃고 운 건 가족이 아니라, 그런 '추억의 동지', 새로운 가족들이다. 그렇게 힘을 가진 '추억', 당의정처럼 달콤하다. 

by meditator 2017. 10. 10. 13:54

시즌 1(12부)보다 조금 길었던 <청춘 시대2(14부)>도 결국 또 이렇게 끝났다. 박연선 작가답게 마지막인듯, 마지막이 아닌듯 한껏 여운을 남기고 마무리를 지었고, '하메'들은 마치 오랜 친구에게 하듯, 카메라를 향해(시청자들에게) 또 보자, 다녀오겠다, 잘 지내라 인사를 남겼다. 시즌 1부터 '거짓말'을 밥먹듯했던 지원보다는 '쏭'이 더 익숙한 송지원(박은빈 분)의 '이명'까지 얹힌 곡진한 개인사 아닌 개인사는 시즌2의 대장정 끝에 비로소 매듭을 지었다. 하지만, 시즌1부터 남친인듯 남친 아닌 친구 사이 성민(손승원 분)과의 '진도'는 여전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이다. 흔한 미니 시리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하메'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몰입했던 대상에 따라 흡족하거나, 흡족하지 않은 채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결국 또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다음 시즌이라고 다를까? 청춘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듭이 지어지고 다시 풀어져 가는 것을. 




여전히, 그리고 다시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들
시즌 1에서의 캐릭터들 중 강언니(류화영 분)를 제외한 모든 하메들이 남은 가운데(은재 캐릭터는 배우는 바뀌었지만) 강언니의 빈자리를 조은(최아라 분)이 이제 시즌2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천양지차인 의뭉스러운 존재감으로 시즌을 열었다. 

키 만큼이나 정체성이 의심이 가던 조은의 존재에 대한 해프닝으로 시작했지만, 시즌2는 각 캐릭터별로 시즌 1에서 자신이 부딪쳤던 삶의 과제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시작한다. 시즌 1에서 집착을 넘어 데이트 폭력이 되고만 남친과의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해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예은(한승연 분), 가정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첫사랑을 시작했지만 이제 그 사랑의 아픈 기억만을 부등켜 안은 은재(지우 분), 그리고 스스로 동생의 목숨을 걷으려고 까지 하며 삶의 기로에 섰던 진명(한예리 분)의 첫 직장 생활, 그리고 가장 밝았지만 가장 뜻모를 이명에 시달리던 쏭, 그리고 거기에 또 다른 가정사의 짐을 진채 헌책방에서 발견한 쪽지를 따라 흘러온 조은까지.



시즌 1의 강언니나 진명에게 닥친 문제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접점과 맞닿아 보다 큰 공감의 진폭을 가진 반면, 이제 시즌2에서 각 하메들의 문제는 예은의 데이트 폭력이나, 그리고 시즌의 마지막 쏭이 과거의 기억에서 길어올린 아동 성추행 등은 여전히 '사회적'인 파장을 가진 소재이지만, 시즌 1에 비해 가벼운 소재가 아님에도 보다 '사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그건, 그 주제가 '보다 사적'이라서보다는, 시즌1의 진명이나 강언니가 맞닦뜨린 접점이 사회라면, 이제 시즌2의 예은이나 쏭의 문제들은 보다 '개인적'으로 '천착되어진 지점이 깊어서이기 때문이다.

예은이 겪은 데이트 폭력의 상흔이나, 쏭의 상실된 기억은 드라마의 과정에서 조은의 가정사로 부터 비롯된 자신감 부재와, 은재의 실연과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시즌 2를 채워간다. 마치 작가가 그들이 겪는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더하고 덜하다 말할 수 없다 하는 것처럼. 그건 어쨋든 지금 그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에겐 시즌 2의 <청춘시대>가 이도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결말일지 몰라도, 그러나 다섯 하메들은 저마다 각자의 실타래의 한 매듭을 풀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세상에 한없이 도망치던 예은은 친척들이 모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데이트 폭력을 겪었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녀를 돌보던 친구는 오히려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로 폭언을 퍼붓는 뜻밖의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과정을 통해 예은은 자신의 아픔을 객관화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한 뼘의 성장을 이루었다. 



저마다의 결자해지 
시즌 2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이 '객관화'가 아니었을까? 시즌1에서 알바를 하며 고달프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자기 껏만을 챙기던 진명은 시즌1의 그 진명이 맞나 싶게 해체된 아이돌 그룹 해임달을 뒷감당하느라 고전한다. 하지만, 그녀가 시즌 1에서 삶이 버거워 동생의 목숨까지 거두려했던 그 고통을 되짚어 보면, 이제 또 동생 또래의 한 청년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건 너무도 명확하다. 또한 한없이 낙관적으로 꿈을 이야기하는 이 가망없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진명의 복잡한 눈빛은 처절했던 자신의 지난 시간 또한 복기했을 것이라고 짚어진다. 해임담을 '처리'하라는 직책으로부터 시작된 진명의 수난기는 다른 이름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살아왔던 진명의 '자기 객관화'의 시간으로 시청자들에겐 읽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진명이 해임달을 통해 그랬듯이, 예은은 친구의 폭력적 메시지 폭력을 통해, 조은은 풋풋한 첫사랑을 통해, 은재는 바닥을 치는 처절한 사랑의 복귀 실패를 통해, 그리고 쏭은 문효진의 죽음을 통해 상실된 기억을 불러오며,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수동적이기만 하던 은재가 종열 선배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며 자존심이 무너져가며 사랑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서야 비로소 사랑의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듯이, 박연선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바라보고 받아들일 때 하나의 매듭이, 한 사이클의 성장이 마무리된다 시즌2를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는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어쩐지 스케일이 작다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세상과의 싸움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진짜 더 어려운 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지점에서 <청춘시대2>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깊다. 오히려 세상과의 전선은 더욱 분명해 질 수록, 나 자신과의 접점은 놓쳐버리기 쉬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작과 끝은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밝히는 청춘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건 이 시대 청춘들의 축복일 지도. 

그러기에 다시 또 감질나는 이 14부작의 다음 시즌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네버엔딩의 청춘 서사를 그리듯이. 하지만 그런 반면, 이제 한편으론 박연선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되기도 한다. 어쨋든 무엇을 그리든 박연선월드가 여전히 확고하다는 건 분명하니까. 
by meditator 2017. 10. 8. 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