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컨대, 그랬다. 글을 쓰는 기자도. 청춘시대의 조은 역에 최아라라는 키가 훤칠한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했을 때, 심지어 이 캐릭터가 선머슴애처럼 짧은 쇼트 머리에, 검은 색으로 아래 위를 도배한 옷을 입고 등장했을 때, 아하 저 친구는 이 드라마에서 '레즈비언'의 캐릭터로 '소모'되지 않을까, 연상했었다. 그리고 2회를 보고, 내 '얼토당토'않은 선입견에 정곡을 찌른 박연선 작가 앞에 새삼 부끄러웠다. 바로 이 '안일한 편견'에서 비롯된 차별에 대해 새로 시작한 <청춘시대2>는 문을 열었다. 




이른바 '연선내'의 징후
동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 실감나고 공감가게 그렸던 <청춘 시대1>을 보고, 드라마의 대본집대신 당시 따끈따끈했던 박연선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쳬가>를 찾아 읽었다. 드라마와 소설, 장르는 달랐지만, 2016년 청춘의 이야기를 '당대성'을 살려 구현해내 칭송을 받았던 <청춘시대>처럼,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무시무시한 제목과 달리, 어쩌면 <청춘 시대>보다 더 '당대성'을 살린 청춘들의 이야기다. 단지 그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청춘 시대>가 벨 에포크라는 대학가 셰어하우스를 배경으로 했다면, <여름, 어디선가 시쳬가>는 이제는 쇄락한 첩첩산중 마을 두왕리를 배경으로 한다. 

<청춘시대2>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이토록 장황하게 박연선 작가의 <청춘시대1>과 그녀의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 대해 구구절절 풀어놓는 건 박연선 작가의 '스타일'와 '주제 의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막장 드라마를 보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런운 죽음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할머니 홍간난 여사네 집에 떨어진 백수 강무순의 뜻하지 않는 보물찾기 대작전으로 부터이다. 그러나 보물을 찾아나선 강무순이 건드리게 되는건 15년전 온 마을 사람들이 최장수 노인 백수 잔치로 마을이 비었을 때 이 동네 소녀들 4명이 한 날 한 시에 사라진 사건, 그때부터 드라마는  본격 미스테리 스릴러로 장르를 변경한다. 즉,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할머니 집에 떨어진 손녀의 엉뚱한 보물 지도 해프닝을 '과거'로 번져 사라진 4 소녀들의 비밀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처럼 독자를 끌어간다. <청춘 시대>에서도 그랬지만, 박연선 작가는 '셰어 하우스'라던가, 가장 일상적인 공간, 거기에 모인 청춘들을 통해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괴상한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 혹은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죽음이나 귀신조차도 무색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보면, 그곳에선 거기 사는 사람들의 가장 진솔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편의적 편견은 배제를 낳는다
그랬기에 <청춘 시대2>의 시작은 셰어 하우스답게 헤어짐과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벨 에포크에 등장한 최아라. 하지만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쉽게 말조차 붙이기 힘들고, 송지원의 너스레나 농담까지도 '반사'라도 하듯 무안함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그녀의 등장은 <청춘 시대> 그 서막에서 저마다 쉽게 정가지 않을 것처럼 등장했던 주인공들의 면면을 회상케 만든다. 그런데 그저 싸기지 없거나 비밀에 잔뜩 쌓였던 시즌1의 등장 인물들을 넘어 최아라는, 그의 행위나 태도, 심지어 방문객을 통해 혹시나 그녀가 '레즈?'라는 의심을 유도하고야 만다. 

조은을 제외하고 신입 주제에 자신들에게 만만하게 굴지 않아 전전긍긍했던 윤진명(한예리 분), 정예은(한승연 분), 송지원(박은빈 분), 유은재(지우 분)는 '쿨을 넘어선 조은의 태도를 '남성성'으로 오해하고 지레 그녀를 혹시? 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심이 가기 시작하자 그녀의 모든 태도는 그 의심하는 내용에 딱딱 들어맞기 시작한다. 최아라가 감기약을 사들고 안 열려지는 은재의 방을 억지로 열고 은재를 쫓는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시즌 1에서 각자 청춘의 통과 의례를 혹독하게 겪었던 네 명의 하우스메이트들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그런 경험에서 배운 깨달음따위는 흘려버리고, 자신들의 앞에 등장한 이질적인 한 인물에 대해 쉽게 '편견'의 색안경을 끼어버린다. 타인이 저어하는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 지나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은재가 이제 가장 쉽게 조은의 편견에 거침없는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나, 정작 말로는 공정한 잣대를 운운하면서도 하우스 메이트들의 편견을 방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윤진명에 이르기 까지 손쉽게 조은을 그녀의 예상되는 성적 정체성으로 '따' 시켜버리는 그녀들의 속단은 근거없이 확신에 차있다. 

의심이 곧 배제로 이어지는 <청춘 시대 2>의 서막은 그래서 가장 동 시대적인 출발이 된다. '혐오 사회'라고 칭해지는 이 시대에서 그 편견과 혐오의 시작이 저리도 어이없이 그저 자신들이 가졌던 편견을 바탕으로 손쉽게 이루어지며, 그 편견의 결과가 불편으로, 그리고 배제에 대한 고려로 이어지는 과정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혐오의 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말은 달리 하지만, 네 명의 하우스 메이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인지적 능력이 무색하게 조은이 '레즈'라는 편견에, 그리고 그런 자신들과 다른 성적 정체성에 거침없이 불편해 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생각은 상대방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낳고,그 것은 결국 한 여름 거리의 질주로 마무리된다. 알고보니 그저 키 큰애라서 늘 오해받고 불편했던 조은, 그저 키크고, 남성적으로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잠시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받은 그 편견과 그로 인해 벌어질 뻔한 결과는 어처구니없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편견과 혐오의 과정을 까발린다. 

물론 여전히 조은을 바라보는 친구 안예지(신세휘 분)의 모호한 눈빛으로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의심'은 또 다른 갈래롤 펼쳐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2회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레즈건, 게이건 혹은 성적 정체성이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타인을 쉽계 예단하고, 그들을 우리의 울타리 밖으로 내치는데 편의적인가 하는 지점이다. 하우스 메이트 한 명의 등장이란 에피소드 만으로 우리 사회에 현재 만연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그 결과로서의 배제의 '기제'를 드라마는 대번에 설파해 낸다. 그렇게 박연선 작가는 자신의 장기를 뽐내며 가장 묵직한 주제 의식을 가장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래서 가장 설득력있게 풀어내며 <청춘시대2>에 대한 기대를 2회만에 업그레이드 시켜낸다. 
by meditator 2017. 8. 27. 04:00

도발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이제 종영한 수목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이하 죽사남)>가 수목 드라마 대전에서 거둔 성과는. 22회 기준 12. 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라는 이제 이 정도면 공중파에서는 중박이라고 치는 시청률을 전제로 하지만, 시청률 이상 '공중파 미니 시리즈'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문제 제기의 기회를 '도발'했다. 



'근본이 없는'이 아닌 근본이 제대로 있었던 죽사남
마지막 회, 딸을 찾고 가족을 이루어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이룬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최민수 분)은 자신의 친지들을 이끌고 전세 비행기를 동원하여 보두안티아 공화국을 향해 떠난다. 신이 나서 비행기에서 원맨쇼를 벌이던 백작, 하지만 기상 변화에 흔들리던 비행기는 끝내 엔진에 불이 붙고 뜻하지 않은 곳에 불시착을 한다. 뻘에서 겨우 목숨만을 건진 채 살아남은 백작과 그 가족, 친지들, 그들을 맞이한 건 괴수의 음성같은 효과음이 들리는 무인도로 추정되는 섬이다. 



내내 가족드라마인 줄 알고 '화목한 해피엔딩'을 꿈꾸던 시청자는 종영을 10분 남겨놓고 나타난 백작의 또 다른 아들 때문에 아버지에게 '죽빵을 날리는' 존속 상해의 현장을 목격한 것도 모자라, 어떻게 전재산을 날릴 뻔했던 해프닝에서 벗어나 희희낙락 딸과 함께 헐리웃 생활을 즐기는가 싶더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무인도 행으로 마무리짓는 드라마에 '어이상실'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되돌아 보면, 이게 과연 어이상실할 일인가 싶다. 애초에 가상의 보두아티아 공화국에서 나타난 석유 재벌 바람둥이 아빠란 이 '희귀한' 설정에서 시작된 드라마는, 바람난 남편을 아내 바보로 개과천선을 시키는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안되는 것이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 전형적인 악녀의 딸 코스프레라는 막장 가족극의 소재와, 남편의 바람, 그리고 헤어진 친딸 찾기, 심지어 치매 등 한국 드라마에서 그간 전형적으로 등장했던 소재를 차용했지만, <죽사남>은 이중 어떤 클리셰에도 천착하지 않고 단 1분의 진지함을 넘기지 못하는 코믹하고 엉뚱한 서사로 드라마를 반전에 반전으로 이끌어 갔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이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첫 장소가 '헌팅'을 위한 클럽이었다는 기가 막힌 설정에서부터 시작된 코믹한 반전들만을 가지고 <죽사남>을 평가하면 아쉽다. 오히려, 진짜 이 드라마의 매력은 동시간대 드라마들이 어설픈 사랑 놀음에 16부작 혹은 32부작의 이야기를 늘이고 있는 동안, 짤막한(?) 24부의 쾌속 정진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천착해 들어갔다. 

클럽에서 만난 아빠와 딸이 서로의 존재를 알기 전에 '인간적' 교감을 나누고, 딸의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서로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보다듬고, 가족으로서의 교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죽사남>은 그 어떤 가족 드라마보다 정갈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내조의 여왕>, <파스타>의 고동선 피디 특유의 섬세한 정서의 교감이 때론 어수선할 수 있는 '코믹' 드라마의 정조를 따스하게 감싸며 드라마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던 점이 무엇보다 <죽사남>의 장점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 가족 드라마이면서, 그 풀어가는 서사에 있어서는 기존 드라마들이 의존했던 진부한 설정 방식에 단 한번도 기대지 않았던 김선희 작가의 뚝심있는 전개는 한류에 의존하여 어설픈 소재와 연기, 혹은 작가의 명망에 기대어 안일한 소재와 더 안일한 연기로 매 회를 인공호흡하는 타 미니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더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가족을 전면에 내세웠기에 우리 사회 가족을 여전히 이상향으로 그려내지만, 드라마는 결코 '가족'이란 이름으로 개인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아버지는 딸의 아버지로 돌아왔지만 그 특유의 '유아독존'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고, 심지어 바람둥이 기질조차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남편의 불륜은 곧 이혼이 되어버린 드라마의 공식에서 응징과 개과천선이라는 모색은 수긍은 둘째치고라도 신선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갑인 '부'의 문제에 있어서도 '환타지'를 버리진 못했지만, 사람을 그에 굴복시키지 않고자 노력한다. 무엇보다 '악인'의 처리에 있어서조차 '인간적'인 기조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심지어 중동 진출 일꾼이었던 장달구, 현 알리 백장의 과거을 추적하는 '국정원' 직원을 통해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졌던 산업 일꾼의 역사까지 헤아리는 내공을 드러낸다. '가족'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다루지만, 그 다루는 방식은 '인간 친화'적이었던 <죽사남>의 패기넘치는 도전은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만든다. 

최민수, 그리고 신성록, 강예원의 절묘한 삼각 편대 
또한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문제점에 대한 <죽사남>의 가장 큰 도발 중 하나는 다름아닌 <죽사남>의 출연진이다. 최민수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란 단언을 하게 만든, 거의 원맨쇼에 가까웠던 그의 보두아티아 백작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런 최민수의 연기만이 있었다면 <죽사남>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드라마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최민수의 무대를 충실하게 받쳐준, 아니 사실은 최민수가 앞서나가서 그렇지, 그 연기의 내공에 있어서는 만만치 않다 싶었던 강호림의 신성록과 딸 이지영의 강예원의 연기 역시 이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다. 가짜 딸 이지영의 이소연과 비서 앞달라의 조태관은 눈이 즐거운 감초로서 드라마를 넘기게 했다. 갈수록 그의 몸짓 각도가 커져만 가던 최민수와 그걸 흥겹게 받아쳐준 신성록과 강예원의 연기는 마치 '변검'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가장 감동적인 가족애의 현장으로 시청자를 이물감없이 이끌며 드라마의 수목 1등이 되도록 하는데 헌신한다. 



이 처럼 드라마는 그간 그의 연기 내공이 무색하게 주인공 아버지로서 소모적으로 소비되던 한때 잘 나갔던 배우 최민수에게 새로운 대표작을 제공했다. 최민수에게 대표작이 <모래 시계(1995)> 만이 아니라, <사랑이 뭐길래(1991)>와 영화 <미스터 맘마(1992)>와 <결혼 이야기(1992)>도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죽사남>, 무엇보다 '왕년'의 배우가 아닌 현역의 최민수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와 함께 한류 스타가, 젊은 청춘 스타가 아니라도 연기를 맛깔나게 하는 배우들의 조합이라면 거뜬히 주중 미니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신성록, 강예원 불패 신화로 증명해냈다. 이런 <죽사남>의 선전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최근 부진의 늪에 시달리는 공중파 드라마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by meditator 2017. 8. 25. 02:24

올 여름 느지막이 극장을 찾아온 납량 특집 영화들과 달리 tv에는 이렇다할 '공포'를 다룬 작품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포물'이 보고 싶은 시청자들이라면 굳이 멀리서 찾을 것이 없다. 죽은 어머니를 빙의한 딸이 어머니의 옷을 입고 온 집안을 휘젖고 다니거나, 비오는 날 죽은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산 사람이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협박하는 드라마라면 이 무더운 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주말 드라마의 진화는 이제 가족극의 형식을 호러와 스릴러의 영역까지 진화하기에 이른다. 바로 jtbc의 <품위있는 여자>와 sbs의 <언니는 살아있다>가 그것이다. 




재벌가 부조리극으로서의 주말 드라마
점찍고 돌아와 복수를 한다는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화끈한 복수의 방식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김순옥 작가는 <내딸 금사월(2015)>과 <왔다 장보리(2014)>에 이어 2회 연속 주말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로 돌아왔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악녀에 의존한 엉성한 구조로 질타받았던 전작에 대한 평가로 절치부심했다는 듯 고속도로 다중 충돌 사고로 시작된 드라마는 민들레(장서희 분), 강하리(김주현 분), 김은향(오윤아 분), 양달희(다솜 분)의 악연을 한 쾌에 조장한다. 그 그 배후로 공룡그룹 구필모(손창민 분) 회장의 딸 구세경(손여은 분)과 아들의 친모 이계화(양정아 분)를 얽혀들게 만든다. 한날 한 시에 일어난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된 사람들과 그 사건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만들어 낸 이들의 한 판 복수극은 공룡그룹이라는 재벌가를 중심으로 때론 스릴러로, 때론 블랙코미디로, 심지어 때로는 호러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엎치락뒤치락하는 50부의 레이스를 벌인다. 

<사랑하는 은동아>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인기 작가가 된 백미경 작가가 들고 온 작품은 뜻밖에도 전작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품위있는 여자>이다. <언니는 살아있다>의 시작이 다중충돌 교통사고였다면, <품위있는 여자>는 주인공 격인 박복자(김선아 분)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재벌가 대성펄프에 간병인으로 등장하여 숟가락을 들 힘만 있어도 여자를 마다할 수 없다는 안태동 회장의 아내 자리까지 등극하여 상류 사회 진입에 성공한 미스터리한 인물 박복자, 그녀를 중심으로 안태동 회장의 자녀들과, 자녀들 중 특히 그녀를 그 자리에 있게 해준 둘째 며느리 우아진(김희선 분)과의 갈등, 그리고 우아진이 몸담은 상류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며 '부조리극'이자 '스릴러'으로서의 이 드라마의 묘미를 한껏 살려나가는 중이다. 

두 드라마는 공히 재벌가, 혹은 준재벌가를 배경으로 삼은 전형적인 주말 가족극의 형태를 띤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주말 드라마에는 '가족'이 주인공이 되었고, 또한 그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재벌'이 없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품위있는 그녀>와 <언니는 살아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그 전통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회장님이, 그가 이룬 부가 결국은 이들 드라마가 벌이는 모든 갈등의 근원이 된다. <언니가 살아있다>의 양달희는 자신의 신분 세탁을 위해 사고 현장에서 도망치며, 구세경은 그룹 내에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설기찬(이지훈 분)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심지어 그를 없애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애꿏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회장의 아이를 낳은 이계화는 '미쓰리' 취급을 받는 자신의 수모를 자기 아들의 재벌가 승계로 보상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품위있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대성 펄프의 부를 통해 상류 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는 미스터리한 인물 박복자와 그런 그녀가 자신들이 물려받을 부를 훼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자식들이 벌이게 되는 갈등 역시 대성 펄프와 그것의 현신인 회장님과의 관계로 현실화된다. 대성 펄프만이 아니다. 우아진이 만나는 상류 사회 속 각 집안의 갈등은 결국 경제적 주도권과 그것을 가부장으로 승인받은 오늘날 한국 사회 가족의 문제를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여여 갈등'으로 드러나는 이들 드라마의 주된 갈등은 이전의 재벌가의 권력 승계와 관련된 재벌가의 드라마를 가족극의 형태로 질적 전환을 이뤄 가부장적 가족 제도와 재벌이라는 이중적 권위 속에서의 '아비규환'이 된다. 



특히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와, <언니는 살아있다>의 이계화가 극중 악의 최종 보스로 극중 모든 인물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존재로 등장하게 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극중 인물들이 아버지라던가, 시아버지라던가 혈연적 관계로 재벌가와 관계를 맺은 것과 달리, 단 한 방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완벽한 타인이다. 그런 타인들이 그저 자신들의 욕망 만으로 재벌가에 진입하여 여성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이용하여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그런 욕망은 이계화의 경우 재벌 회장의 아이를 낳았음에도 정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받지 못한 채 가정부 취급을 받는다거나, 박복자처럼 재벌가의 안주인이 되었음에도 그녀의 자리와 상관없이 그녀를 배척하고 하는 갖가지 장치를 주변인들이 제안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을 배쳑하는 주변인들때문에, 아니 끓어오르는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그녀들의 상승 욕구는 결국 여러 부작용을 안고 스스로 자중지난에 빠지고 만다. 

도발적인 하지만 순수하리만치 정확한 박복자와 이계화의 욕망, 그 대상이 되는 재벌가의 회장님들은 적극적인 그 욕망에 대해 무기력하다. 반신불수였던 안태동 회장은 심지어 그녀의 실체를 알고나서도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고서라도 박복자의 진심을 얻고 싶어한다. 그런가 하면 구필모 회장은 민들레와 이계화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딸 구세경의 비리에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마치 '부조리극'처럼 재벌이라는 부권을 가운데 놓고, 욕망하는 여성들의 매치를 통해 그 부권과 부를 흔들며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그들이 흔드는 그 반동이 커질수록, 시청자들의 흥미와 시청률은 따라 상승한다. 무기력한 가부장제와 부도덕한 부에 대한 조롱은 이런 식으로 드라마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그에 대한 열렬한 반응으로 시청자들은 화답한다. 



부도덕한 욕망의 결과는? 
물론 과정은 그렇지만 두 드라마의 결론은 다를 듯하다. 그리고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바로 실소와 썩소라는 두 드라마에 대한 평가를 낳을 것이다. 어쨋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자신의 능력만으로 상류 사회에 진입하려던 그 욕망은 2017년에도 실패할 것이다. 재벌가의 며느리로서 안락함을 누리던 우아진이 재벌가를 나와, 이제 재벌가를 상대로 돈을 벌며 자신의 인생을 찾았다고 하는 것처럼, 돈이 전부가 아닌 삶의 주제 의식으로 <품위있는 여자>는 돈이 전부인 사회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듯, 돈을 위해 자신을 던졌던 박복자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이다. 대성 펄프는 물론 극중에서 나름 상류 사회연했던 사람들이 쌓은 부의 성채는 공허한 허깨비로 남아 씁쓰레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닌 삶에 대한 위로를 주제 의식으로 남길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아진도, 박복자도 두 주인공은 사회적 신분 상승에서는 멀어졌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쾌감'과 현실적 결과의 괴리다. 



그에 반해, 늘 오락가락하던 구필모 회장이 드디어 이계화의 정체를 알아차린 <언니는 살아있다>는 부도덕한 승계자 이계화 모자를 처리하고, 부조리한 방식으로 부를 재편하려 했던 구세경을 제거하며,  잃어버린 아들 설기찬을 만나는 등의 과정을 통해 건강한 재벌가이자 가부장적 구조로 재편될 것이다. 실소를 자아내던 설정들의 납치, 불륜. 살인 등 드라마에서 보여질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들을 다 동원했던 드라마는 그럼에도 결국 착한 사람들은 부의 은총마저 받으며 행복해지고, 어긋난 욕망으로 계층 상승의 에스컬레이션을 꿈꾸던 이들은 처분될 것이다. 

올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브라운관을 갖가지 범죄와 욕망으로 달구었던 이들 드라마가 보여준 건, 결국 '가족'과 '부'라는 이 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두 가지 요소가 보이는 '막장'의 현실이다. 현실에서 벌어졌던 어느 집의 이야기다라는 소문이 회자되는 그 이야기들의 현실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족'과 그 '가족'을 지탱하는 부의 성채가 이루어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스릴러적 장치, 그 현실성말이다. 

by meditator 2017. 8. 15. 16:55

시간을 건너뛰는 '타임 슬립'은 이제 드라마에서는 울궈먹을 대로 울궈먹은 단물이 거의 나올 것도 없는 소재다. 하지만, 그 '시간'의 환타지는 얼마전 <너의 이름은> 흥행에서도 보여지듯이 또 여전히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대중적 공감대를 배가시킬 '마법'의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비슷한 시기 두 편의 '타임슬립'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두 편 찾아왔다. kbs2의 <맨홀; 이상한 나라의 필(이하 맨홀)>과 tvn의 <명불허전>이 그것이다. 


시작은 두 드라마 모두 미미했다. 수목 공중파 3사 드라마에서 부진했던 전작 <7일의 왕비>의 후속작이란 부담때문이었을까? 첫 회를 방영한 <맨홀>은 3.1%(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했다. <명불허전>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도 화려한 <비밀의 숲>의 후광은 순식간에 사라진듯, 2.715%(닐슨 코리아 케이블 전국 기준)로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숫자로 보면 2%나 3%나 라고 보여지지만 공중파의 3%와 케이블의 2%는 사실 하늘과 땅의 차이다(2%대에도 불구하고 <명불허전>은 케이블 시청률 1위다). 하지만 두 드라마가 더욱 간격을 넓힌 건, 이어진 2회이다. <맨홀>이 2회 2.8%로 kbs2의 10년 내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달리, <명불허전>은 2회 3.995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앞날에 서광을 스스로 펼친다. 무엇이 이 '타임슬립' 두 드라마의 궤적을 달리하도록 만들었을까?




대략난감의 고난을 타임슬립으로 
왜 타임 슬립을 해야할까? 그건 아마도 '환타지'임에도 시간을 거스르는 개연성을 설명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전제 요건이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해 <맨홀>과 <명불허전> 두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의 대략 난감 현실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명불허전>의 주인공 허임(김남길 분). 그는 그에게 병을 고치려는 환자들이 줄을 서는 혜민서의 뛰어난 침술을 가진 의원이다. 하지만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밖의 환자들을 핑계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그는 혜민서를 찾은 민초들이 우러러 마지않는 신의가 아니라, 천출로 인한 만년 참봉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고관들의 비밀 진료를 통해 얻은 부로 보상받으려는 '속물'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편두통에 시달리는 왕에게 침으로 시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방에 나타난 뜻밖의 침통을 들고 어전으로 달려간 그의 손이 떨렸다. 혜민서의 신의에서 하루 아침에 어심을 거스르는 죄인이 된 그, 쫓기던 그는 그만 화살을 맞고 다리 아래로 떨어지고, 그가 눈을 뜬건 2017년 청계천 한복판이다. 

<맨홀>의 봉필(김재중 분)이라고 해서 나을 게 없다. 하음 봉씨 집안의 3대 독자라고 하나, 공시생 2년차에 동네 대표 백수 그의 부재에 부모님은 안부조차 궁금해 하지 않는 처지가 되었다. 심지어 같은 산부인과 병동에서 태어난 인연으로 28년째 짝사랑을 해오던 수진(유이 분)가 겨우 만난 지 3개월된 남자와 결혼을 한다니. 봉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 앞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술의 기운을 빌려 진심을 토로해 보려 하지만, 보여지는 건 그저 '진상', 그런 그를 외계의 기운을 받은 '맨홀'이 집어 삼켜 버린다. 맨홀을 토해낸 그가 도착한 곳은 수진과 그의 인연이 꼬이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 

비슷한 타임슬립 고난기? 하지만 그 극과 극의 차이를 낳은 건 개연성. 
얼핏 보면 2%나 3%라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숫자 같지만 공중파와 케이블이라는 매체의 차이로 극과 극의 결과가 된 <맨홀>과 <명불허전>, 하지만 더 심각한 건 <맨홀>이 2회만에 자체 최저 시청률을 찍었음에도 앞으로 그다지 시청률 회복의 기미는 커녕, 더 낮아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 것과 달리, 단 한 회만에 1%대의 상승률을 보인 <명불허전>은 의학 드라마 불패의 신화까지 얹은 채 <비밀의 숲>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이다. 

똑같이 난처한 처지에 빠진 남자 주인공인데 무엇이 두 드라마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극중 초반 많은 비중을 가지고 활약을 보이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의 개연성과 연기력이 아닐까 싶다. 




이미 허준이라는 조선의 걸출한 명의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같은 '허씨 집안'인가 싶은 허임의 등장에 솔깃해진다. 심지어 극 초반, 이 허임이란 자가 허준못지 않은 명의같아 보이니 더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명불허전>은 반전으로 천출의 만년 참봉이란 새로운 설정을 들이민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 거기서 제 아무리 침술이 뛰어난다 한들, 신분제의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없는 허임은, 대체적으로 신분제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그 벽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비탄의 세월을 보내는 것과 달리, 그런 자신의 처지를 역으로 이용하여 이재 축적에 몰두한다. 

신분제의 처지에 절망하는 대신 고위층 상대로 의술을 팔아먹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신선하지만, 또한 이전 사극과는 다른, 현대적인 그 속물 캐릭터로 인해 그의 타임 슬립 이후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 바탕이 된다. 무엇보다, 그의 이중적 속물 캐릭터가 그런 이면의 모습으로 인한 갈등과 사건을 만들어 내며, 어전 침술의 해프닝에 대한 개연성을 뒷받침하게 되는 것이다. 뜻밖에 그에게 나타난 신비의 침통, 마치 하늘이 내린 그 침통은 진정한 의술의 길에서 비껴간 그에게 벌을 주듯이 '타임 슬립'을 선사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스른 이곳에서 만난, 과거와 똑같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소녀, 그 소녀로 인해 인술은 천술 대신, 재물 축적의 기회로 삼았던 속물 의원에겐 새로운 개과천선의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라는 걸 1,2회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설득한다. 

그에 반해 일본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의 갖가지 설정을 고스라히 빼다박은 듯한 <맨홀>의 문제점은 바로 그 드라마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 주이공의 캐릭터와 시대와의 불화로 인해 덜커덕거리기 시작한다. 3포 세대, 5포 세대, 9포 세대라며 취업이 안되면, 설사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결혼은 사치가 된 세상에서 동네 대표 백수 봉필의 캐릭터는 너무나 유유자적이다. 공시생 3년만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는 다큐 속 주인공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취업이 하늘에 별따기인 세상에서 '자존감'의 무너짐을 청춘의 댓가로 알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28년을 짝사랑했다고 그녀의 결혼 앞으로 돌진하는 봉필의 패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또한 패기 잃은 설득력을 설득해 내는 방식도 매번 화를 내는 건지, 진심을 말하는 건지 모를 악다구니와, 술의 힘을 빌린 진상이라니, 그 조차도 그렇다 치더라도, 시간의 힘을 빌린 그의 타임 슬립에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봉필이며, 그럼에도 그런 그에게 변화하는 여주인공의 설정은 이해를 불가하게 한다. 아니 결정적으로 이 드라마가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선, 혹은 28년 짝사랑 앞에 선 여주인공의 비주체적 설정이다. 2007년의 일본 드라마를 2017년의 대한민국에 어떤 고민도 없이 베끼듯 들여놓은 설정에서 여자 주인공은 비중을 말하기 전에 너무도 극중 설정에서 '대상화'되어 있다는 점이 굳이 당찬 <명불허전>의 최연경(김아중 분)을 비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상 남자 주인공과 함께 젊은 층의 외면을 받는 두 번 째 패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설정이 시대착오적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주인공들의 연기로 호흡기를 달고 기사회생하는 드라마가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맨홀>에서의 김재중과 유이의 연기는 주인공으로 극을 끌고 가기에는 너무도 안이하다. 특히 극중 80%의 활약을 보이는 김재중의 경우, 감독의 디렉션이 있었는가가 의심스러울 만큼 그의 소란스러운 연기와 소통안되는 대사 처리로 인해 지레 채널을 돌리게 만든다. 후에 이 드라마의 패인에서 남자 주인공의 책임을 결코 피해 갈 수 없을 만큼. 

그에 반해 김남길이 연기하는 허임은 절묘하다. 사실 극중 진상짓이라고 하면 봉필에 못지 않다. 심지어 음식을 앞에 두고 침까지 질질 흘린다. 하지만 그런 진상짓조차 순간 순간 진지해지는 의원으로서의 그의 연기와 절묘하게 합을 이뤄가며 속물 의원의 타임 슬립기를 그저 가볍지만은 않게 무게 중심을 잡는다. 거기에 이제 김아중이 선택한 작품이라면 믿고 보게 만든 김아중의 작품 선택과, 그 선택이 아쉽지 않은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역시 <명불허전>을 믿고 다음 회를 기다리도록 만든다. 



사실 두 남자 주인공의 연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잘 되는 집은 모든 것이 다 이유가 되고, 안되는 집은 지푸라기 하나도 핑계가 되듯이, <명불허전>의 과하지 않은 연출과 신선한 스토리, 하물며 기가 막힌 배경 음악까지 아직은 섣부르지만 2회에 이르러서까지 이 드라마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그런 반면 <맨홀>에 이르러서는 무엇보다, 한류 스타를 앞세운 안이한 외화 벌이 드라마의 기획을 다시 한번 질타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작가가 기대주였던 <텐>의 작가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타까움을 남긴다. 설사 이 드라마가 국내에서 최저의 기록을 세우고, 해외 판매에서 호조를 보인다 한들, 과연 이런 식의 영업 방식이 안그래도 위기를 맞이한 한류에 도움이 될까?
by meditator 2017. 8. 14. 16:20

'베짱이', '생기가 다빠진 죽은 생선' 이건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퇴근 후 자신들의 모습이다. 퇴근 후에 하는 가장 많은 일이 tv 시청, 인터넷, 그리고 술이기가 십상인, 그러다 내일을 위해 '자자'는 삶. 문제는 없지만 답도 없는 직장 생활, 하지만, 그 직장 생활보다 어쩌면 더 답이 없는 퇴근 후의 삶, 그게 현재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삶이 아닐까? 그런 쳇바퀴같은 대한민국 직장 문화에 2017 새로운 핫 키워드가 등장했다. 바로 워너벨, work & life balenced가 그것이다. 




60;40? 아니 40; 60? 퇴근 후의 삶
그 시작은 오밤중에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로 부터 시작된다. 동호회나 직장인들이 아닌 달리기가 좋아서 만난 사람들의 '야밤 런닝', 그들은 각자의 직업을 가졌지만, 이렇게 밤을 달린다. 너무 힘들어 다음 번에는 안나가겠다 하면서도 결국은 또 다음 대회를 준비하게 되는, 좋아서 달리다보니, 이젠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대회까지 참여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직장 생활 60%, 러닝 40%라고 하고 싶지만, 종종 그 균형 비율이 헷깔리는 사람들은 그저 달리며 조금씩 자신의 기록이 단축되는 그 '단순한 즐거움'에 퇴근 이후의 시간을 헌납한다. 

8월 10일 mbc스페셜이 주목한 2030 세대의 새로운 트렌드 워너벨의 현장에는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취미라고 내세우는 등산, 축구, 종교 활동의 경지를 넘어서 새로운 삶의 영역을 개척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에서 보호대를 찬 발목을 치켜세우며 턴을 하는 이 사람은 어떨까? 31살 항공사 사무직인 손인하 씨가 선택한 워너벨은 '발레'이다. 아마츄어 발레단의 일원으로 그녀는 이제 곧 공연을 앞두고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대학병원 응급실 경력 간호사 16년차 김효선 씨는 간호사 파이터로 방송을 탈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격투기에 빠져있다. 다이어트로 시작한 격투기는 이제 당당하게 그녀를 프로 무대에 세웠고, 휴가조차 태국에 가서 무에타이를 배울 정도로 자신의 '취미'에 빠져있다. 
그 '취미'를 위해 3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주말마다 바다를 건너는 이도 있다. 대학병원 원무팀장 유주형씨는 50세의 최고령 해녀학교 학생이다. 1000km의 통학 거리를 마다않고 제주도 한림읍 앞바다 물로 달려가는 그는 이제는 퇴직 후 제 2의 인생으로 '물질'을 고려 중일 정도다. 

성공 신화가 깨어진 대한민국,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이렇게 저마다 각양각색의 '퇴근 후'의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삶의 변화가 트렌드로 등장한 2017. 그 저변엔 이제 더 이상 '성공 신화'를 쓸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가 있다. 자신의 욕구를 짖누르며 일에 매달려가며 평생 직장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 선배 직장인들의 삶이었다면, 더 이상 평생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보장되지 않는 직장에서의 성공 대신, '나'의 행복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직장인들, 그런 고민에서 바로 특별한 존재 이유로서의 사생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저마다 다르다. 유주형씨와 같이 해녀 학교를 다니는 정규환씨. 43살의 그는 해녀 학교의 열혈 학생이다. 이제는 제주도에 와서 때로는 현재의 자신이 삶이 허하다고 까지 느낄 정도는 그는 한때 서울의 잘 나가는 병원의 소아 외과 의사였다. 퇴근을 하고 집 앞에 주차를 하는 순간 다시 호출을 받아 병원으로 돌아가는 식의 삶을 되풀이 하던 그, 아이들의 자는 모습이라도 보며 산다고 했지만 정작 조금씩 '번아웃 증후훈'을 보이며 '활화산'이 되어가던 그에게 '버킷리스트'로서 해녀가 되고팠던 아내가 이곳을 권유했다. 그리고 아내와 그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이곳 제주로 내려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과 위치를 가졌지만, 그것을 행복이라 느낄 수 없었던 그, 하지만 이제 해녀학교 상군으로, 퇴근이 보장된 제주에서의 의사 생활로 삶의 행복을 '만족'할 줄 아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해녀 학교의 이주혜씨, 이른바 '애기군'으로 아직 잠수조차 못하는 초급생에 불과한 처지다. 지금은 잠수가 안되서 쩔쩔매는 그녀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역사 선생님을 꿈꾸는 임용 고시 준비생이었다. 하지만 지난 3년 시험을 준비하면 준비할 수록 길을 잃었던 그녀가 퇴근이 보장된 유통업계의 일을 하며, 해녀 학교 일원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삶을 통해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워너벨의 등장은 지금까지 '일'과 삶이라는 균형추가 '일중독'이라는 쪽으로만 기울어진 불균형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이다. 원해서 간 직장이라 하더라도 직장에서의 삶이 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 혹은 '호구지책'이 나의 욕구를 우선할 수 밖에 없는 현실, 하지만 한 취업 포탈 사이트의 조사 결과, 20대 청년 층 89.7%가 '취미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행복하다'는 현실에서 '직장'을 뛰쳐나오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고자 하는 '균형추'의 모색이 워너벨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때론 이 워너벨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 함께 학원을 다니다 뒤늦게 대학에서 만난 친구 구은혜, 조유진씨는 회사원과 선생님이라는 직업 대신 이젠 스타트업 기업을 이끈다. 그녀들이 하는 일이란 '취미'를 배송하는 일, 매월 다른 취미를 개발하여, 쳇바퀴같은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삶의 활력을 제공한다. 이번 달 그녀들이 고안한 취미는 집에서도 바캉스 기분을 낼 수 있는 냉족욕기. 어느날 직장 의자에서 녹아내릴 것같았던 그 순간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된 이 엉뚱한 사업이야말로, 자신의 행복을 회사라는 공간에만 가둘 수 없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욕구를 '즉자적'으로 반응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물론 늘 워너벨이 이상적일 수는 없다. 워너벨을 지향하여 퇴근이 보장된 직장을 얻었던 손인하씨는 막상 퇴근 후 지쳐 쓰러지기가 일쑤였다고 고백한다.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고 직장인 10명 중 8명이 퇴근 후 '번아웃 현상'을 경험하는 현실. 현실은 일과 삶의 조화이지만,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55.5%가 상사 눈치를 안보는 퇴근을 원하는 갑갑한 환경이 현실이기도 하다. 또, 최저 임금이 내년 올해보다 16.4% 늘어나 7530원이 되었지만 이는 oecd 32개 회원국 중 15위 수준, 경제적 조건 역시 워너벨의 균형을 저해한다. 

하지만 늦깍이 해남이 된 유주형씨의 말대로 한번 뿐인 인생은 이제 '성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소모품이 되기 싫은 사람에겐 절실한 화두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화두의 해법 중 하나가 '워너벨'이다. 


by meditator 2017. 8. 11. 18:05

청춘 스타의 요람이라 여겨지는 <학교> 시리즈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전통의 명문 <학교>가 무색하게 8회를 맞이한 <학교 2017>의 중간 성적표는 시원찮다. 아직도 첫 회 5.9%가 최고 시청률이며, 야곰야곰 오른다 해도 4%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8회 4.7%) 


새로운 스타 탄생인가 했지만, 이미 각종 예능과 광고를 통해 이미지가 소진된 라은호 역의 김세정의 연기가 극과 어우러지지 않는다 질타를 받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논하기에 앞서 학교 시리즌데 과연 작가가 학교를 다녀본 적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현재의 학교 현실과 괴리된 해프닝으로 점철된 초반의 설정들이 이 시리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8회를 맞이한 <학교 2017>은 초반의 우려와 달리, 원래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본 궤도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과장된 연기, 혹은 만화같은 해프닝을 넘어서 현재 학교 현실의 문제점을 드라마 속에 담아내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생기부란 이름의 계급 사회 보고서 
사립 금도고등학교, 점심 시간 배고파 달려온 학생들에게 성적 순으로 밥을 먹을 것을 종용하는, 성적 지상주의의 학교, 그리고 사립학교답게, 이 사립 학교의 운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돈 있는 아이들의 원만한 학교 생활과 진학 지도에 매진하는 학교. 이런 학교의 현실을 단 하나로 증명하는 건, 현재 대학 입시 시스템에서 '생기부', 생활기록부라는 미명 하에, 학생들의 학창 시절의 기록을 일일이 나열하여, 입시에서 유불리한 증거 자료로 작동하는 이 서류가, 오늘날 대학 입시에서 학생들의 목을 조여온다. 

그 '생기부' 지옥도의 현실은 전교 1등 송대휘(장동윤 분)에게조차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이미 1등이 정해진 수학 경시 대회의 시험지를 훔치기 위해 교무실에 잠입케 하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든다. 전교 1등조차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스펙이 필요한 오늘날 입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즉 생기부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기록하지만, 그 기록의 대부분은 학교 생활의 상당 부분은 학생들이 딴 교내, 교외 각종 수상 실적으로 채워지고, 학내 실적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위주로 재편된다는 것이 이미 현재의 입시 현실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돈과, 돈에 뒷받침된 정보로 선점된 교외의 수상 실적은 결국 오늘날 생기부가 빈익빈 부익부의 대한민국 계급 사회의 보고서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 (지난 5월 ebs 다큐 프라임 <대학 입시의 진실> 6부작을 통해 통렬하게 지적된 바 있다) 

그러기에 가난해서 오로지 공부 밖에 할 수 없는 송대휘는 공부를 잘함에도 불구하고 생기부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고, 더구나 사립학교인 금도고에서 재단 이사장의 아들인 현태운(김정현 분)의 1등이 따논 당상으로 사전 모의된 상황에서, 공부만이 유일한 동앗줄이던 대휘는 불법과 학칙의 경계를 넘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드라마는 공부만 잘해서도 대학을 갈 수 없는 오늘날 대학 입시, 아니 철저하게 금권 계급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을 담는다. 그리고 거기에 7회에서 8회에 걸쳐 등장한 유빛나(지헤라 분)와 서보라(한보배 분)의 음악실 난투극을 통해 그 금권사회의 아이러니에 색을 더한다. 학교 운영위원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빛나의 집안, 그런 상황에서 빛나는 안하무인 격으로 자신이 없어진 볼펜을 찾는다는 명목 하에 보라의 필통을 뒤엎고, 이는 두 아이의 난투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빛나의 엄마는 변호사를 동원하여 학교 폭력 위원회를 열어 보라의 응징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상황에 이미 1학년 때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선생님의 묵살로 억울한 징계를 당한바 있던 보라는 가해자로써의 처분을 감수하려 하고. 결국 학생을 폭력의 위험으로 부터 구해줘야 할 학교 폭력 위원회라는 제도조차 가진 자들의 아이들을 구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어가는 과정을 드라마는 에피소드로 더한다. 








생기부 지옥도를 살아가는 아이들
x라는 어설픈 히어로 해프닝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차근차근 회를 거듭하며 오늘날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며 받는 고통의 현실로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발을 디뎌나간다. 오죽하면 어설픈 교육 개혁 대신, 그냥 성적대로 한 줄로 대학을 가는 것이 가장 공평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현실은 송대휘의 절박함으로, 체벌은 없어졌지만, 벌점이 체벌보다 더 가혹한 낙인이 되는 현실은 라은호와 보라의 아득함으로 드라마는 현실을 담는다. 덕분에 아이들은 꿈을 꾸는 대신 꿈을 이루기 위해 교무실을 침범하고, 가진 자의 순서대로 배열된 학교 사회에서 운수 회사 딸로 자신을 코스프레하는 홍남주(설인아 분)처럼 부의 그늘에 자신을 숨긴다. 

그리고 이제 절반의 궤도를 넘어가는 드라마는 그 억압적 현실 속에 신음하던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매듭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교무실에 들어가 시험지를 훔쳤던 대휘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대신 막아서는 은호와 태운으로 인해 비로소 당당하게 자신의 잘못을 세상에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 시인과, 그에 따른 처벌은 뜻밖에도 늘 가파른 사다리를 오르느라 숨가빴던 대휘가 모처럼 한숨을 돌리는 안식으로 돌려받는다. 홍남주의 위선은 뜻밖에도 거리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전혀 스스럼없이 대하는 라은호의 당당함에서 무너진다. 

서울대를 향한 가파른 사다리에 몸을 맡긴 전교 1등 송대휘의 사연도, 자신의 가난함을 부잣집의 그늘에 숨긴 홍남주의 위선은 새로울 것 없는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들이 '생기부' 지옥도와 만나 현실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 지옥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 속으로 들어가 해결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시청률과 상관없이 여전히 <학교>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그려내는 그 전통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순항 중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여전히 많다. 보라의 학폭위 사건에서 무기력해 책임감을 절감했던 선생님이나 전담 경찰관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희희낙락 애정 전선에 몰입하는 상황은 마치 여러 편의 단편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듯 극의 통일성을 해친다. 또한 신인들의 어설픔이나, 과잉된 감정과  틀에 박힌 중견 배우들의 연기가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초반의 난맥을 헤치고, 여전히 2017년 청소년 드라마로서 <학교 2017>의 미덕은 유효하다. 




by meditator 2017. 8. 9. 15:49

15회, 드디어 첫 회 박무성의 살해 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이 거대한 '음모'의 배후가 비로소 드러났다. 하지만, 드디어 배후가 밝혀졌다는 통쾌함도 잠시, 그 배후는 16회가 시작하자마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선배라는 말이 좋다는 이창준은, 마치 그것마저도 '결자해지'라는 듯, '밥 한 끼'로 시작되었던 그 '적폐'의 대가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그 해결의 젯밥으로 던지며 생을 마무리했다. 괴물이 되어버린 그와, 그런 그가 만든 토양 속에서 자라 그가 남긴 것들을 법대로 처리할 황시목이 그 방식을 두고 '설전'조차 제대로 벌이지 못한 채 당혹감과 후일담 속에서 깊은 여운과 물음을 남긴 채 드라마는 마무리되었다. 




법 앞에 선 사람들
이창준(유재명 분)이 시작하고, 스스로 마무리한 듯이 보인 비밀에 쌓였던 숲의 거사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영일재(이호재 분)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가장 강직했던 법관, 그래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었던 그가 대한민국 경제의 30%를 책임진다는 재벌 '한조'의 불법 재상 증여에 대해 손을 대려고 하자, 장관이던 그는 하루 아침에 불법적으로 자금을 받은 죄인이 되어 법 앞에 끌려나왔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영일재는 '가족의 안녕'을 대가로 '전직 비리 장관'이 되어 '침묵'을 택했다.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적폐 앞에 개인 영일재는 무기력했고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를 후배들은 목도했다. 가장 강직한 그의 후배였지만 이제 재벌가의 사위가 된 이창준은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연수원의 새싹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은 물론 그에게 배웠던 검사들은 존경하던 스승님의 몰락을 잊지않았다. <비밀의 숲> 내내 되새기고 또 되새겼던 영일재의 몰락,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영일재의 시작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창준이 남긴 유서의 첫 마디, '대한민국이 썪어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극단에서 법의 저울을 든 이들은 정권의 '가이드라인'이나 지키는 하수인이 되어가는 상황에 대한 뼈저린 자각으로 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으로 영일재는 무기력했다. 



그런 스승의 몰락을 배웠던 이창준, 적당히 썪었다면 가진 것을 누리고 살고 싶었던 그였지만, 그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 앞서 몰락한 선배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괴물'이 되었다. 법의 저울을 쥔 사람이, 기꺼이 '살인을 교사'하고 '납치를 지시'하며, 불법 도청과 녹음을 감행하고, 끝내 자신을 재벌의 개로써 낙인찍어 재벌을 옭죄는 증거가 스스로 되었다. 기꺼이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킬 '젯밥'으로 자신의 피를 뿌릴 각오를 했고, 그걸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피의 제물이 되고자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힌 이창준이 펼쳐놓은 그물에 후배 강원철과 더 어린 후배 황시목이 걸어들어왔다. 설계는 그가 했지만, 이들은 스스로 걸어들어왔다. 한직으로 밀려나면서도 증거 수집을 포기하지 않았던 강원철, 그리고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수 없더 '괴물'이라 손가락질하는 자신이 기대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식을 '법'이라 선택한 황시목, 그들은 오래오래 자신들을 기다린 이창준의 퍼즐을 맞출 결정적 인물로 스스로 간택당한다. 

그렇게 이제 그 누구도 공감할 대한민국, 적폐의 사회, 그 폐부에 감히 도전하는 법의 삼대, 혹은 사대는 이렇게 도전하고 깨지고, 피흘리며 겨우 저들을 법의 심판 앞에 끌어다 앉혔다. 영일재, 이창준, 그리고 강원철, 황시목, 그들의 실패와 성취는 어쩌면 선택과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청산'의 역사라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마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영일재가 틀리고, 이창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도로를 밟고 이제 황시목이 기꺼이 적페 청산의 땔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무가 아닌 법의 숲을 그렸던 드라마
더위가 몰려올 무렵 찬 겨울 공기를 몰고왔던 드라마, 그리고 그 찬 공기만큼이나 우리의 답답한 가슴에 서늘한 의문과 함께, 그 보다 더 속시원한 황시목, 한여진 등을 사이다처럼 선사해준 드라마, <비밀의 숲>

주인공의 이름은 황시목, 한자로 땔나무(땔나무 시柴 나무 목木), 그리고 그는 정말 땔나무처럼 기꺼이 '한조'라는 재벌로 시작되어 우리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져나간 부정부패의 뿌리를 끊어냈다. 하지만 그런 땔나무 시목을 위해서는 영일재와 이창준의 전사가 필요했다. 

<비밀의 숲>이 빼어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직무'에 엄정하고 헌신적인 '프로페셔녈'한 존재들의 활약상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흔히 장르물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검사'나 '형사'들, 하지만 부정부패가 시스템화된 시대에 이들의 '정의'를 설득하기 위해 곧잘, 그들을 '피해의 당사자'이자, 정의의 사도로 그려왔다. <피고인(sbs)>이 그랬고, <시그널(tvn)>이 그랬다. 

물론 <비밀의 숲>에서도 그런 당사자들이자, 그래서 물불 가리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던진 영은수 검사(신혜선 분)나 윤세원 과장(이규형 분)도 있었지만, 결국 드라마는 마치 '검사' 혹은 형사라는 '공공재'여야 할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에 대해 묻는다. 촛불 정국을 통해 밝혀들어가며 드러난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참상은 몇몇 권력을 쥔 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시스템으로 만들어 주며 거기에 복무한 수많은 '공공재'들의 문제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사전 제작된 <비밀의 숲>은 눈밝게 그 지점을 포착한다. 



민주주의의 시초가 청교도적인 부르조아 체제를 기반으로 융성했듯, 헌법을 근간으로 하여 건강한 법질서를 근간으로 설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자리에 있는 각자의 제 몫의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드라마는 역설한다. 자기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도모했던 영일재 장관에서 참담한 존속의 상실이 도래한 것이며, 자신이 한번 눈감은 결과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을 좀먹는 거미줄같은 적폐가 되어 스스로의 피로써만이 그걸 저지할 수 있었던 이창준의 역설이 그걸 강조한다. 

그리고 그렇게 앞서간 선배들의 실패를 이제 후배 황시목, 한여진 등은 가장 프로페셔널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써 다가간다. 그들의 정의는, 그들의 직업적 존재에서 비롯된다는 이 평범한 원리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가진 시스템의 붕괴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해답이다. 물론 그건 쉽지 않다. 마지막 회 최근 국정 농단의 주범들의 재판 형량과 이창준이 유서에서 언급한 가난으로 인해 죄를 지은 이들의 형량 비교가 인터넷에 떠돌듯, 어렵사리 법정으로 끌고 간 그들의 형량은 죄질에 비해 가벼웠고, 그 마저도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조만만 세상의 빛을 볼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던 서동재와 같은 이들은 다시 원래의 방식대로 살아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한여진의 말처럼, '선택을 빙자한 침묵'에 거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아니라, 특별한 정의감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당신들이 바로 황시목이고, 한여진이어야 한다'며  주어진 숙제처럼 드라마는 주제를 내보인다. 



박무성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이창준의 죽음으로 마무리된 <비밀의 숲>은 장르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대부분 장르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전체적으로 굵직한 하나의 사건을 깔고 매회 소소한 사건들을 터트리며 극의 엔진을 삼는 것과 달리, <비밀의 숲>은 결국 오직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16부의 장정을 달려왔다. 뿐만 아니라, 사전 제작이었던 이 드라마는 조급하게 시청자의 시선을 잡기 위한 자극적이거나 인스턴트같은 잔꾀를 부리지 않았다. 겨울의 공기처럼 차갑게 이성적으로, 조금은 느리더라도 차분하게 사건의 본질을 향해 시청자와 함께 고민하며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늘상 소리치고 절규하고 터트리는 장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겐 무감정해서 오히려 신뢰가 갔던 황시목이라는 캐릭터만큼  신세계였고, 그래서 말없이 고뇌하는 황시목과 함께 고민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하는 드라마'에 환호했다. 

입봉 임에도 드라마 사에 한 획을 그은 이수연 작가, 숨은 보석이었던 안길호 피디, 그리고 말을 덧붙여봐야 입이 아픈 조승우, 배두나, 그리고 무엇보다 이분이 동룡이 아빠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젠 밑겨지지 않은 유재명 배우, 그가 살해범이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던 이규형 배우, 그 누구보다 안타까웠던 신혜선, 끝까지 변치않아 오히려 좋았던 이준혁 등등, 등장했던 그 모두가 드라마의 개연성이자, 감동이 되었던 제작진으로 인해, <비밀의 숲>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래서 당연히 시즌2를 소원하게 되는 드라마로 남았다. 
by meditator 2017. 7. 31. 12:57

리메이크' 작품은 어쩔 수 없이 '원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다니엘 헤니'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시즌 13을 앞두고 있는 미국의 장기 시리즈 <크리미널 마인드>라면 더더욱. 그런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제작발표회의 제작진과 배우들은 입을 모아, '한국적 정서'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제 1,2회를 마무리한 <크리미널 마인드>는 과연 미드의 한국적 토착화에 안착했을까?




친숙해진 프로파일링
평가에 앞서, 최근 범죄 수사 드라마라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짐없이 등장하는 '프로파일링'에 대해 짚어보아야 한다. 범죄 심리 분석, 혹은 범죄자 프로파일링(offender profiling, criminal profiling )은 심리학, 사회학, 범죄학 등의 인문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 및 행동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범인상을 추정, 범죄 유형 분류, 피의자 신문 전략을 지원하는 수사 기법이다. 사건 현장 조사와 추적에 더해, 그 증거를 가지고 '인문사회학적' 분석으로 범죄자에 보다 용이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수사 방식인 것이다. 이런 프로파일링 기법의 가장 극단적인 반대 방향에 <살인의 추억> 식의 '감'으로 잡아, '족치면' 다불도록 하는 '전근대적'인 수사 방식'이 있을 터이다. 

프로파일러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표창원 의원 등의 빈번한 언론 접촉은 물론, 영드<셜록>, <시그널> 등을 통해 이제는 매우 익숙한 분야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 프로파일링 기법이 수사에 도입되기 시작한 건 2000년 권일용 경위 한 사람에서 부터, 2004년 경찰청 과학 수사과 내에 폭력적 범죄 분석팀이 설치되고, 2005년에서야 김리학, 사회학 전공자 중 범죄 분석 요원을 뽑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2015년 현재 40여명의 요원이 있고, 각 지방 경찰청에 1~2명 정도의 인원이 배치되어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토록 장황하게 대한민국 프로파일링의 현실을 구구절절 설명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 '한국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는 '한국적'인 이런 현실에서 바로 건너 뛰어 미드와 동일하게 국가 범죄 정보국(nci)와 그 소속 범죄 분석팀의 정예화된 프로파일러 집단을 내세운다. 그리고 미드와 거의 유사한 캐릭터의 등장인물군을 배치한다. 



곡진한 사연으로 포문을 연 드라마
첫회 드라마를 연 것는 폭발물 범죄 현장에서 마주친 강기형(손현주 분)과 김현준(이준기 분)이다. 이제 폭발을 앞두고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할 순간, 자신의 프로파일링에 근거하여, 예측된 결과를 뒤집으려는 강기형을 현장의 윗선이 저지하고, 결국 폭발을 막지 못한다. 그리고 그 폭발로 인해 가장 아끼는 후배를 잃게된 김현준, 그 자신도 프로파일러 출신이지만, 잘못된 프로파일링에 대한 불신을 쌓게되고...... 이렇게 '이성'을 무기로 범죄자와 싸우고자 하는 드라마는 한국 범죄 드라마에서 가장 익숙한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와 사연으로 포문을 연다. 그리고 당연히 그 '상처'를 입은 주인공 김현준은 사건을 통해 자신의 후배를 죽인 것이 강기형의 판단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 프로파일링이 자신이 사랑하는 후배의 여동생을 구할 때까지 '반항적'으로 폭주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김현준의 반항은 그가 가는 곳곳마다 nci 범죄 분석팀과 그 중에서도 하선우(문채원 분)와 부딪치며 결국 공동 작전 하에 범인을 검거하고, 진실을 깨닫게 된 김현준은 강기형 측의 청을 받아들여 nci에 합류하게 된다. 1, 2회에 여성 연쇄 납치 살인 사건이 등장하지만, 드라마가 전면에 부각시킨건 바로 김현준이 합류한 범죄 분석팀의 합체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과정은 이미 우리나라의 범죄 드라마에서 조금 보태 한 열 번도 넘게 보아본 흔한 설정이다. 오해와 불신, 하지만 수사 과정을 통한 합류, 이 과정말이다. 그렇다면, 이 뻔한 한국 수사 드라마의 클리셰를 넘어, 리메이크 작으로 <크리미널 마인드>가 새로운 지점을 제시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지점에서 1,2회의 드라마는 시청자들 설득하는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앞서도 구구절절 설명하듯, 프로파일링은 기존 범죄 수사학에 심리학, 사회학의 도입이듯이,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수사 방식이다. 예를 들어 <셜록>에서 셜록의 프로파일링이 설득을 얻는 것은, 그의 소시오패스적인 '무감정'이다. 즉, 범죄자나, 범죄 사실에서 '거리를 둔', 그의 객관성이, 그의 프로파일링에 설득력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셜록>의 예를 따라, <시그널>에서도, 혹은 <너를 기억해>에서도 프로파일러로 등장한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이성적이며, 그래서 그들의 분석의 객관성에 신임을 얻게 된다. 비근한 예로, <비밀의 숲>에서 오로지 법에 의하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황시목이 설득력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갓쓰고 오토바이 탄 프로파일링 드라마 
그런데 <크리미널 마인드>는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한국적 정서'를 내세우며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수사관들의 사연을 전면에 배치한다. 아끼는 후배와 그 동생마저 잃을 뻔해 폭주하는 수사관, 수사 현장에서 자신의 주저함으로 현장을 멀리하지만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는 자상한 가장인 수사관, 그리고 여전히 한 소녀의 살인 사건으로 밤마다 악몽을 꾸는, 이런 장황한 '인간적'인 설정은 각자의 인물에 대한 설명을 풍성하게 할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프로파일링 수사극'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을 설득해 내는데는 미흡하다. 

그렇게 사연에 집중하는 반면, 드라마는 마치 누르면 나오는 프로파일링 자판기처럼 범인과 관련된 '프로파일링' 내용들을 줄줄이 읊는다. 분명 미드에서도 이런 식으로 하고, 그 만능의 능력치들이 <크리미널 마인드>의 결정적 매력일진대, 어쩐지 태평양을 건너온 <크리미널 마인드>에선 그 '프로파일링'이 선무당의 말처럼, 아니 마치 컨닝한 답안지를 외워되는 수험생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 신뢰가 가지 않는 프로파일링이라도 범죄와 결합되면 좀 나을 수도 있으련만, 안타깝게도 범죄 수사 드라마의 가장 기본 요건인 범죄와, 그 추적, 검거의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크리미널 마인드>는 전혀 살려내지 못한다. 덕분에, 소년원 출신의 범죄자 박재민과 그들의 보호 관찰자이자, 최종 보스인 안상철(김인권 분)의 존재감은 휘발되고 만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이, 주인공들의 곡진한 사연인지, 폼나는 프로파일링인지, 아니면 범죄 수사인지.

김영철, 손현주, 이준기, 문채원, 그 이름의 면면 만으로도 쟁쟁한 출연진,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의 조합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원작을 본 이들이라면, 원작의 인물들과의 비교에서, 아니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이라도, 이미 타 작품에서 각자 너무도 강하게 각인된 이 주인공들의 연기가, nci 범죄 분석관으로서 이들에게 집중하는데 방해가 된다. 차라리 조금 더 낯이 덜 익은 배우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 정도로. 손현주, 이준기, 문채원의 연기가 너무도 낯익다. 

그래도 이 정도에서는 제 몫이나마 성실하게 해낸다. 팀장 강기형의 포스는 강력하고, 이준기의 성실함이나, 무미건조한 문채원의 연기는 김현준과 하선우에 이질감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작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의 인기 요소 중 하나인 꽃미남 리드 의 배역을 맡은 이한이나, 정보화 요원 페넬로페 역의 나나황에 이르면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어버린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정작 한국적 정서를 고려한다면서, 이런 손도 발도 펼 수 없는 캐릭터의 나열이라니!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캐릭터의 접선은 이미 <안투라지>를 통해 혹독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고질적으로 도용되고 있다. 

진짜 심각한 건, 남용되는 총기 사용
하지만 그 뻔한 한국 드라마의 사연팔이나, 싱크로율 제로에 육박하는 캐스팅, 혹은 전작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연기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건의 전개이다. <크리미널 마인드>는 미국의 드라마이다. 미국은 '총기 규제' 법안을 매번 상정시키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총기 자유화의 국가이다. 그러기에 <크리미널 마인드> 속 대다수의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범죄 수단에서 '권총'의 사용이 하등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1,2회, 한국으로 온 <크리미널 마인드>는 어땠을까? 뜻밖에도 보호 감찰관 안상철도, 그리고 이제 다음 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열차 살인범도 범죄 수단으로 '권총'을 자연스레 들고 등장한다. 

아마도 다른 드라마에서라면, 범죄자의 프로파일링 만큼이나 그가 어떻게 총기를 취득하게 되었느냐 여부가 중요한 수사 내용일텐데, 정작 '프로파일링'에 방점을 찍은 <크리미널 마인드>는 이 지점에 너무도 안일하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온 범죄 드라마가 신경써야 할 지점은 '한국적 정서'라는 명목의 사연 팔이가 아니라, 프로파일링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현실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 사회의 범죄는 어떤 유형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크리미널 마인드>의 '한국화'는 갓쓰고 오토바이 탄 격처럼 보인다. 

by meditator 2017. 7. 28. 14:24

새로운 수목 대전이 시작되었다. kbs2의 <7일의 왕비>가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지만, sbs의 <다시 만난 세계>와 mbc의 <죽어야 사는 남자>가 동시에 방영을 시작했다. sbs의 <다시 만난 세계>는 <옥탑방 왕세자>, <냄새를 보는 소녀>, <공심이>로 신선하고 대중적인 스토리로 시청률은 따논 당상이라 말할 수 있는 이희명 작가의 작품이다. 이미 <냄새를 보는 소녀>, <공심이>로 호흡을 맞춘 백수찬 피디와의 작품이니, 당연히 '기대작'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본 결과가 무색하다. 당연히 1위를 하리라 믿었던 이희명 작가의 작품을 가뿐히 누르고 1위를 차지한 작품은 그 이름조차도 생경한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한국명 장달구, 최민수 분)이 주인공으로 나선 <죽어야 사는 남자>다.(<죽어야 사는 남자> 9.6%, <다시 만난 세계> 7.2%,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심지어 <죽어야 사는 남자>는 기존 미니시리즈와 달리 24부작(기존 12부작) 작품이다. 




그렇다면 당연했던 기대작이었던 <다시 만난 세계>와 <죽어야 사는 남자>의 희비를 엇갈리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을까?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던 일본 에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처럼 <다시 만난 세계>는 시간을 거슬러 만나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소년, 하지만 그 소년은 자신의 생일날 뜻밖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바로 그 소년이 31살 첫사랑 소녀 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로부터 드라마는 시작된다. 그런데, 소녀가 31살이 되도록 여전히 19살 소년인 성해성(여진구 분)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연기와 달리, 이제는 중견이라 말할 수 있는 여주인공 정정원(이연희 분)과 최근 구혜선과의 신혼일기로 예능에서 화제성을 얻은 차민준의 안재현의 연기가 누가 더 어색한가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인공들 중 한 사람이라도 문제가 되는데 무려 두 사람의 연기가 문제가 되고 보니, 이희명 작가가 잔뜩 차려놓은 <옥탑방 왕세자> 못지 않은 아련한 서사도, 백수찬 감독의 감성어린 연출도 무기력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1위 <죽어야 사는 남자>, 그 매력은? 
그에 반해, <죽어야 사는 남자>는 생뚱맞은 스토리로 시작된다. 중동에 있는 가상의 이슬람 왕국 보두아티안 왕국의 백작이 된 남자 장달구, 이 어색한 설정을 드라마는 외국 로케 한번 없이 사막의 모래 바람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 내더니, 최민수의 연기로 개연성을 설득해 버린다. 이제는 그 존재 자체로 '기인'인 되어버린 최민수가 거기에 연기를 입혀 중동 국가 백작이 된 장달구를 설명해 내는 것이다. 




그런 희한한 설정을 최민수가 설득해 버리고, 그 위에 그의 딸일지로 모를 이지영 1(강예원 분),과 이지영2(,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남편과 불륜남으로 얽힌 익숙한 치정사가 토핑처럼 얹히는데, 이를 강예원, 이소연, 신성록이 또 기가 막히게 살을 입힌다. 이미 2회만에 신성록은 <별에서 온 그대>의 사이코패스 이재경보다 더 얄미워졌고, 강예원은 <백희가 돌아왔다> 이래 또 한번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보인다. 거기에 '그래 내가 유부남 사귄다'는 이소연의 '이 구역 미친 년은 나야'라는 당당함이라니! 심지어 백작의 비서(조태관 분)에서 부터, 호림의 동창 저축은행장 최순태(차순배 분), 지영의 친언니같은 한방병원장 왕미란(배해선 분)까지 등장인물들의 연기 하나 놓칠 것이 없다. 

거기에 그저 백마 타고 온 왕자님 만나기를 벤틀리 타고 온 석유 재벌 아버지로 바꾼 듯한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명이인 이지영으로 인한 해프닝으로 이야기의 갈래가 풍성해진다. 사생사 이지영 2에, 아버지 실종 이지영 1의 서사는 각자의 사연으로 '오해'를 더욱 그럴듯하게 풀어놓는다. 또한 그저 한 남자를 둔 치정극일 것만 같던 이야기는 시댁의 갖은 갑질에도 불구하고 방송 작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접지 않는 이지영 1의 '캔디'같은 스토리로 '신데렐라'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제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수목극 전체 시청률 파이가 20%를 웃돌 정도로, 1위가 9%를 겨우 넘는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위상은 초라하다. 충분히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24부작이라는 바튼 일정에도 벌써 2회만에 되풀이되는 서사는 20부작이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을 감칠맛나게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호연은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죽어야 사는 남자>라는 색다른 이야기를 설득해 낸다.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두어 미니 시리즈라면 기존의 16부작, 20부작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뜬하게 1위로 시작한 <죽어야 사는 남자>를 통해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좀 더 자유로운 형식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미니 시리즈'라는 시간을 통해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7. 7. 21. 16:01

비록 1위는 아니지만 sbs의 수목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사극인 <군주>에 이어 2위를 수성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했다. (9.5%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지하철 치한과 피해자, 검사와 검사 시보, 그리고 변호사와 변호사, 그리고 검사와 변호사라는 해프닝과 다양한 직업을 오가며 성장하고 사랑하는 두 주인공의 신선한 이야기가 궁금해 작가가 누굴까 하고 혹시나 찾아봤던 사람이라면 권기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자신이 전에 재밌게 봤던 그 작품들, <너를 기억해>, <내연애의 모든 것>, <보스를 지켜라>의 그 작가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에 반가움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장르' 드라마가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이 '특별'할 것이 없는 시절, 혹은 '사이코패스'란 말이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시대, 하지만 일찌기 권기영이란 작가가 그것을 시도할 때만 해도 '장르물'이나, 구체적 정신병력을 가진 등장인물은 생소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기에 권기영의 작품은 늘 그 앞서가는 덕분에 '대중적'이기 힘들었고, 그래서 '눈밝은 호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개성강한 남자 주인공
만약에 내가 남자 배우의 팬이라면 아마도 내 배우가 권기영 작품을 한번쯤 하기를 원할 듯하다. 이른바 '대박'은 아니지만, 남자 배우라면 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매력적인 캐릭터를 하나 남기는 셈이니. 그렇듯, 권기영의 작품 속 남자 주인공들은 그 어디서도 다시 보지 못할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배우 지성에게 '연기파'란 명예를 안겨준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킬미힐미(2015)>이다. 무려 일곱 명의 다중 인격을 가진 주인공이라니! 하지만, 번듯하고 정의로운 주인공 역할의 단골이었던 지성이란 배우에게 '연기'의 스펙트럼을 열어준 계기가 된 정확한 작품을 꼽으라면, 2011년작 <보스를 지켜라>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거기서 지성은 어린 시절 엄마를 잃어버린 트라우마로 인해 일종의 공황장애라 말할 수 있는 '광장 공포증'을 가진 차지헌으로 등장한다. 물론 차지헌은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의 주인공 단골인 재벌 2세다. 하지만, 좀 부족하긴 해도, 혹은 가끔가다 신체적 질병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래도 재벌 2세에게 히키코모리일 수 밖에 없는 대인 공포에 발작까지 포함한 '가오'라고는 1도 없는 찌질한 캐릭터를 부여한 것은 신선함을 넘어선 시도였다. 



2013년 정치적 상황이 암울할 당시,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보수정당 남성 국회의원과 진보정당 여성 국회의원의 연애 이야기 <내 연애의 모든 것> 주인공 김수영(신하균 분) 역시 막말 작렬에 결벽증이 극심한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로코의 주인공이었다. 
2015년 <너를 기억해>는 한 술 더 뜬다. 드라마 초반 <셜록>의 분위기를 잔뜩 내며 등장한 이현(서인국 분)은 범죄학 교수 출신으로 뉴욕 경찰 범죄 컨설팅해주던 전력으로 이제 특수범죄 수사팀의 조력자가 된다. 셜록 뺨치게 프로파일링을 하고 사건 현장을 분석하지만, 김수영 저리가라 할 오만함에 독설을 장착,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알고보니 니가 사이코패스'일 지도 모를 어린 시절 아버지로 부터 잠재적 살인마란 평가를 받고 감금되었던 '경력(?)의 소유자다. 

그렇게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차지헌, 김수영, 이현에 비하면 <수상한 파트너>의 노지욱(지창욱 분)은 제법 멀쩡해 보인다. 물론 검찰 내 평가 꼴찌지만 현직 검사니까. 하지만 권기영이 그저 그런 뻔한 설정에 만족할리가. <너를 기억해>를 통해 '니가 사이코패스냐 내가 사이코패스냐?' 헷갈리며 주인공과 주인공의 동생을 두고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했던 권기영은 이제 <수상한 파트너>의 절정에서 검사인 노지욱과 연쇄 살인범 동하의 과거 트라우마로 인한, 기억 장애, 그리고 기억 조작을 엇물리며 '기억에의 상흔'을 주목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노지욱이 당시 검사였던 장무영(김홍파 분)에 의해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불면증에 시달렸다면, 역시나 좋아했던 또래 여고생의 죽음에게 무기력한 방관자였던 동하는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조작하여 법망을 피해간 당시 가해자들의 '처단자'로 살인을 저지른다. 

이렇듯 권기영의 남자 주인공들은 늘 너무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여 막말을 내뱉어 주로 주변과 불화하며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로 인해, '애정'보다는 '의심'을 사기 쉬운 캐릭터들이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보다는 '미드'에서 본듯한 트러블메이커들이다. 그래서 낯설고, 그래서 신선하여 그 캐릭터의 이름으로 호청자들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 한 사람이다.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기억에 남을 그 사람, 혹은 그들
<수상한 파트너>에서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가장 크게 기억이 될 한 사람을 꼽자면 아마도 이 드라마를 본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연쇄 살인범으로 나왔던 동하 역의 정현수를 꼽을 것이다. 그가 까페 벽에 붙어있던 메모를 이용하여 기억을 천연덕스럽게 만들어 내 법망을 피해가는 장면은 아마도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 못지않은 전율을 주었다. 눈빛 하나, 표정은 더더욱 천연덕스러운 이 이십대 청년이, 자신이 학창 시절 연모했던 소녀를 그리워하다, 다음 순간 자신의 범행에 방해가 되는 그 누구라도 얼굴빛하나 변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가차없이 제거해 버리는 그 모습에 이젠 그 뻔하다는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알고보니 자신이 그 범행의 조력자였다는 것을 분노하며 부인하다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한 순간'은 아마도 <수상한 파트너>란 드라마의 백미 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하라는 사이코패스는 <너를 기억해>의 이준호(최원영 분) 앞에서 한 수 배우겠습니다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배우 지성이 <보스를 지켜라>을 통해 연기파의 지평을 넓혀갔듯이, <백년의 유산>을 통해 최원영이란 이름 석자를 알렸던 그에게 역시나 '이런 면'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건 <너를 기억해>에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미 <쓰리데이즈>에서 소시오패스 재벌 역을 했던 최원영, 그러나 <너를 기억해>에서 그는 <터널>의 범인처럼 법의학자로 여주인공 차지안의 든든한 조력자로 등장하지만 이현과 정선호(박보검 분) 형제의 어린 시절부터 때로는 그들의 보호자로, 때로는 그들이 가진 '잠재적 범죄 성향'의 보스로서 다양한 얼굴을 매력적으로 표현하여 때로는 주인공보다 더 멋진 '악역'으로 기억을 남긴다. 또한 일찌기 될 성부른 나무였던 박보검의 또 다른 모습 역시 그가 분한 정선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권기영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그저 악역'이 없다. 그렇다고 '악역'에 빙의하여, 그의 사연에 천착하지도 않는다. 물론 극의 중심에 악행이 있고, 그 악행의 근원에는 매력적인 악인이 있지만, 전지전능한 심판자연했던 동하가 알고보니 방관자이듯, 최종 보스 사이코패스였던 이준호 역시 어린 시절 학대의 결과물이지만, 결코 그것을 '천착'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매력적인 악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권기영 속 등장인물들은 그저 그런 뻔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 <수상한 파트너>에서는 주인공 두 명과 그 들의 연적, 사무장, 로펌 대표이자 의붓아버지까지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극중에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보스를 지켜라>의 찌질하기 그지없던 재벌가 사람들이 그러했고,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주인공보다 때론 더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던 문봉식(공형진 분), 고동숙(김정난 분)의 다이내믹했던 연애 역시 마찬가지다. <너를 기억해>의 허우대만 멀쩡했던 팀장을 비롯한 특수수사 팀원들의 개성강한 모습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아쉽다면 이렇게 개성강한 남자 주인공들에 비해, <너를 기억해>의 차지안(장나라 분),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분),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노민영(이민정 분), 그리고 <수상한 파트너>의 은봉희(남지현 분)는 묘하게도 다들 하나같이 씩씩하고 형사로서, 국회의원으로, 변호사로 제 몫을 해내지만, 어쩐지 종종 '복제인간'같은 개성강한 남자 주인공에 비해 평범한 캔디형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늘 범죄와 사랑, 성장과 사랑, 정치와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의 포석을 야심차게 벌여놓은 권기영 작가의 작품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주제로 인해 대중성에서 딜레마를 안는 것과 함께, 이 두 마리의 토끼의 회수에 '고전'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권기영의 작품을 접하는 건 마치 얼리어답터가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늘 다음이 더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7. 7. 16.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