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터널>, <쌈마이웨이>, <품위있는 그녀>, <죽어야 사는 남자> 이들 드라마들은 최근 '화제'의 드라마들이다. 그리고 화제의 드라마들답게 시청률면에서도 동시간대 1위를 거뜬히 낚아챈 드라마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입봉의 신인이거나, 입봉작이 아니더라도 드라마화한 작품이 몇 개 되지 않은 '신인'이라 말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공중파, 케이블, 종편을 넘나들며 새로운 작가군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이들 신진 작가군의 활약은 그저 '신인'이라는 점에만 방점을 찍어서는 아깝다. 신인다운 패기와 신선한 기획과 서사, 그리고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구성으로 이들 드라마에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는 점이 진짜 놀라운 점이다. 이렇게 드라마의 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 




장르물의 약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타임 슬립을 통해 풀어낸 구성으로 방송 초반 <시그널>과 비교되던 <터널>은 극이 중반을 넘어서며 더 이상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터널>이라는 드라마 자체만으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구었으면, 과거에서 온 형사와 현재에서 그의 과거 인연으로 얽힌 인물들과의 공조 수사만으로, 그리고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악행을 멈추지 않는 연쇄 살인마의 귀추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범죄의 종식을 응원하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계에서 장르물은 희귀했다. 그러기에 2011 <싸인> 이래 장르물의 김은희는 독보적이었다. 늘 '장르물'이 작품이 등장하면 과연 김은희의 작품을 넘어설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김은희 작가를 불러내기엔 장르물이 너무 잦아졌다. 거의 2년에 한번씩 작품을 선보이는 김은희 작가를 '학수고대'하지 않아도 장르물 애청자들의 마음을 쏙 빼앗을 장르물들이 빈번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신인 그룹'의 작품들이다. 

신인 작가 그룹에 의한 드라마계 지형도의 변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드라마 장르의 변화이다. 위의 검찰청을 '숲'으로 상징하고 그 속에서 직업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낸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는 한국 장르물을 비밀의 숲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보적인 영역을 단 한 작품만에 구축했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복수'를 매개로한 정의 실현이 한국 장르 드라마의 일반적 양상이었던 그 '한계'를 단 한 개의 사건으로 16부을 뚝심있게 이끌어간 <비밀의 숲>은 그 흔한 '미드'와의 비교에서도 우리의 어깨를 우쭐하게 할 만큼 주제 의식과 구성에 있어 시청자들의 자부심을 한껏 만족시켰다. 

<비밀의 숲>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터널>역시 과거와 현재의 인연이 바탕이 되었지만, 형사라는 직업군의 책임 의식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면서도, 장르물 특유의 묵직한 정서를 대중적 호흡으로 적절하게 순화시킨 <터널>은 ocn 드라마로는 드물게 6%를 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6.490% 16회,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동시간대 1위는 아니었지만, 화제성에 힘입어 시즌2를 예약한 kbs2의 <추리의 여왕>은 '추리'를 전문가만큼 잘 하는 동네 아줌마와 열혈 형사 콤비의 신선한 조합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며 묵직한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풀어나가면 <추리의 여왕>만의 정서를 구축한다. <피고인(sbs)>의 최수진, 최창환 작가나, <피고인(mbc)>의 김수은 작가 역시 공모전 출신으로 장르물로 작가 입문의 시작을 열었다. 



기존의 장르라도 이들이 쓰면 다르다. 
그러나 이런 장르물만이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종영한 <품위있는 그녀>는 <비밀의 숲>과는 또 다른 화제성으로 인기를 몰았다. 대성 펄프라는 가상의 재벌가를 중심으로 상류 사회와 그 주변의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며 인기를 모은 <품위있는 그녀>는 주말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고스란히 수용하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하고, 그것을 '부조리극'으로 승화시키며 퀄리티있는 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이 드라마를 저술한 백미경의 작가의 경우 죽음을 사이에 둔 연상연하 남녀의 순애보 넘치는 사랑 이야기 <강구 이야기(2014)>가 20여년만에 만난 톱스타와 작가의 우여곡절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은동아(2016)>로 업그레이드 되더니, 천하장사 여성과 재벌남의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힘센 여자 도봉순(2017)>의 변주를 통해, <품위있는 그녀>에 이르렀다. 순애보 러브 스토리에서 막장 스릴 부조리극에 이르기까지 장편 드라마로는 불과 3작품에 이르를 동안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작품을 이기는 기묘한 역전극을 벌이고 있는 백미경 작가의 다음 작품은 예측 불허라서 더 기대가 된다. 



청춘물도 이들이 쓰면 다르다. 이미 <백희가 돌아왔다>로 단막극으로서는 드물게 인기를 끌었던 임상춘 작가의 <쌈 마이웨이>는 재벌가 없이, 88만원 세대의 현실감넘치는 사랑 이야기로 공감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죽어야 사는 남자>의 김선희 작가는 헤어진 모녀 상봉이라는 '가족 드라마'를 기상천회한 코믹물로 업그레이드 시켜 땜빵 드라마의 승리를 거머쥐었고, <자체 발광 오피스>의 정회현 작가는 '오피스'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도전했다. 

장르도 신선했지만, 그간 시간에 쫓기는 촬영 일정으로 완성도에 있어 문제 제기가 되왔던 고질적 문제점들에 있어서도 진일보한 성과를 보였다. 한 여름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의 겨울옷, 하지만 결코 그 설정과 의상이 답답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서늘한 분위기로 압도했던 <비밀의 숲>과 <품위있는 그녀>는 작품성만 보장된다면, 굳이 시의성있는 피드백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전 제작'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22부작의 <죽어야 사는 남자>가 보인 속도감있는 전개 역시 16부작, 20부작의 관성에 대한 반문이 되었다. 

이렇게 신진 작가군의 등장과 그들의 신선한 작품에 의한 드라마계의 수혈은 시청자들에게는 뻔하지 않은을 넘은 올드 미디어로서 tv의 가능성을 다방면에 걸쳐 열었다. 미드 등을 통해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며 젊은 층들에게도 호응을 얻으며 노령화된 시청층의 벽을 허무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여전히 스타 작가의 아성은 공고하지만, 이들 신진 그룹의 활약으로 좀 더 다양하고 재밌는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었다. 
by meditator 2017. 8. 29.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