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가의 등장은 반갑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 뻔하지 않은 설정이, '드라마'의 신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수식어에 어울리는 또 한 편의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kbs2  수목 드라마로 찾아온 <매드독>이다. 


ocn의 인기 시리즈였던 <특수사건 전담반; 텐>의 작가였다는 후광이 무색하게 최저 시청률을 갈아치웠던 <맨홀; 이상한 나라의 필>후속작의 자리는 거의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처지나 다름없다. 물론 아직은 수목 드라마 꼴찌이지만 그 '맨땅'에서 대번에 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건, 사실 '대박'에 가깝다. 그만큼, 첫 회를 선보인 <매드독>의 활약은 화려했다. 



'법이고 나발이고 물어 뜯어버려!'; 다크 히어로 매드독
드라마를 연 건 일명 '매드독', 보험조사 회사(?)의 활약상이다. 화려한 미모를 앞세워 병원의 환자로 위장잠입한 전 태양보험 보험 조사팀 대리 장하리(류화영 분), 그녀가 '베이글녀'의 특기를 앞세워 의사의 눈길을 끄는 동안, 전직 조폭, 전과 5범의 박순정(조재윤 분)이 컴퓨터 수리공으로 등장하여 병원 정보를 빼돌린다. 그런 그들을 아지트의 자칭 스티브 잡스 친구인 온누리(김혜성 분)가 돕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상대편 건물 옥상에서 전설의 보험 조사원 최강우(유지태 분)가 진두지휘한다. 태양 생명 보험조사원 박무신(장혁진 분)이 경찰들과 들이닥치는 일촉즉발의 상황, 장하리는 전직 체조 선수의 특기를 살려 건물 사이를 날아 안전하게 박순정과 함께 피신하고, 병원의 보험 사기 보상금은 '매드독'에게 입금된다. 박무신이 그들의 자화자찬 뒤풀이에 나타나 발을 굴러봐야, 이미 게임은 끝났다. 

이렇게 드라마는 한 해 보험 사기 적발 금액 7185억원, 보험 사기 공화국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보험 조사 어드벤처'의 서막을 연다. '차는 주차장에 조사원은 법 안에'라는 신념을 가졌던 최강우, 그러나 그는 항공사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고, 미친 개가 되었다. '법'의 테두리에서 보험 사기를 조사하던 성실한 직장인은, '안 걸리면 대박, 걸리면 사기 미수의 경미한 처벌'이라는 헐거운 그물의 보험 사기 법망을 무시하고, '법이고 나발이고 물어 뜯어버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험 사기를 조사하는 저돌적인 '다크 히어로'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의 곁엔, '어벤져스' 급의 동지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날뛰는 매드독'의 소개로 만족하지 않는다. 뜻밖에도 주인공인 '매드독'을 물먹이는 한 술 더 뜨는, 조물주 위의 건물주 사기꾼을 등장시키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전문가 김민준 씨?
전 직장 태양 생명사를 나오다 마주친 건물 붕괴 사고 피해자 부자의 사연을 풀어주기 위해 나선 매드독, 그들이 작전을 펼치는 곳곳에서 뜻밖에도 어리숙한 건축사무소 직원 김민준을 만난다. 

부실공사로 인한 건물 붕괴라 확신하는 매드독팀, 그런 확신에 여유롭게 사사건건 반론을 제기하는 전문가 김민준씨, 매드독과 건축사무소 비밀 문건을 내건 매드독과 김민준의 경쟁은 뜻밖에도 김민준의 승리로 끝난다. 아쉬움에 돌아온 사무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들을 맞이한 건 그들이 사건 조사 과정에 밝힌 건축주 안치환의 비리 서류가 경찰서 캐비닛에 있고, 그들이 패배한 보험금이 피해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지게 되었다는 사실, 황망해 하는 것도 잠시 그들 앞에는 매드독이 입주해있는 건물의 건물주로 등극한 전문가 김민준이 등장한다. 마치 배트맨 앞에 등장한 슈퍼맨처럼, 

그렇게 1회는 정체가 모호하지만 그 결과로 보건대 다크 히어로 집단 매드독과 그 길이 다르지 않은 전문가 김민준의 '매드독 소유권' 주장으로 흥미롭게 마무리된다. 과연 이들이 펼쳐보일 따로 또 같이의 '저스티스 리그'는 어떤 방식일지. '매드독' 그들의 어벤져스 급 활약도 흥미로운데, 거기에 화룡점정, ocn <구해줘>를 통해 눈도장을 찍은 신인 우도환의 '전문가 김민준'씨의 신선한 활약은 '보험 사기 조사극'이라는 생소한 소재에 대한 낯섬을 거뜬히 기대감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예고에서 보여지듯 최강우와 김민준의 항공사 사고로 인한 악연 혹은 인연, 거기에 JH 항공 운송 그룹 부회장 주현기(최원영 분)에서, 태양 보험 차준규(정보석 분)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악의 라인은 그 면면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큰 그림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하고 드라마 <매드독>의 기대치를 높인다. 
by meditator 2017. 10. 12. 14:33

소설 <남한산성>이 지난 6월 5일 100쇄를 찍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와 함께 김훈 작가의 역사 3부작으로 불리우는 이 작품은 2007년 출간 이래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무려 100쇄, 총 누적 판매수 59만부에 이르렀다. 우리 소설계에서는 진귀하고도 소중한 성과다. 하지만 영화로 온 <남한산성>은 그와 달리 고전 중이다. 손익분기점 500만이 무색하게 액션 영화 <범죄도시>에 추격을 당하며 11일 현재 누적 관객수 331만으로 초반의 흥행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장고한 스테디셀러 소설 <남한산성>과 영화 <남한산성> 사이에 이 갭, 그건 그저 만듬새나 지루함의 문제일까? 과연, 59만부가 팔린 소설 <남한산성>을 산 사람들은 김훈의 필설을 다 마무리했을까? 혹 김훈의 명망에 기대어 샀다가 서가에서 먼지를 맞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100쇄 출간에도 불구하고 실용서가 아니고서는 쪼그라져만 들어가는 우리의 독서 시장의 현실과 맞물려 비유하는 것이 더 적확할 듯 싶다. 영화를 통한 '사유', 아니 '사유' 그 자체가 낯설어가는 세상에서 어쩌면 애초에 영화 <남한산성>은 무모한 도전이었을 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영화 <남한산성>에는 그저 김훈 원작 이상 2017년의 황동혁의 '언어'가 유려하게 담겨있으니, 그저 손익분기점을 못넘은 영화로 기억되기엔 안타깝다. 



소설<남한산성> 그리고 영화 <남한산성>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대군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머문 47일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 자막에서도 알려주다시피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았던 그 겨울, 어쩌자고 퇴로가 막히면 도망갈 곳도 없는 산성으로 살자고 도망온 왕과 군주들의 행보에서부터 소설은 탄식을 이어간다. 그리고 채워가는 살아감의 엄정함, 그 속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지속되는 하던대도 지속되는 정사. 이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아무런 결론도 없는 소설'이라 정의한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 인간의 야만성, 인간의 삶이 빚어내는 풍경들을 묘사하려 했을 뿐'이라 한다.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장군의 언어로 전쟁터의 풍경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간략하게 전한 <칼의 노래>를 통해 그래서 더 비감하게 임진왜란을 실감했듯, 가감없이 묘사해 내려간 47일 피폐해져만가는 배수진 남한산성 역시, 병자호란 풍전등화 속 조선의 모습을 절실하게 전한다. 

그리고 영화는 소설의 그 기조를 이어받아, 1636년 남한산성의 풍경과 인간들을 그려나간다. 역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지만, 하지만 그 과거를 기억하는 주체가 오늘의 사람이라, 언제나 거기엔 오늘의 색채가 덧칠해 질 수 밖에 없다. 트럼프의 미국과 김정은의 북한 사이에서, 입지가 좁은 우리의 처지는 절묘하게도 선택의 여지가 별로없는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처지와 오버랩되며 회자될 수 밖에 없는 시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안타깝다. 영화 <남한산성>이 저어가는 사유의 깊이는 이미 우리가 배워서 알고 익힌 역사, 남한산성에 갇혀 주화파나 주전파냐를 놓고 싸우고, 결론 내려진 그 뻔한 역사의 결론을 한 발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안다. 당시 조선이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에서 얼마나 무지했는지, 최명길이 제시한 청과의 휴전이 얼마나 자명한 결론이었는지. 하지만 이미 '안 자', 혹은, 방관자, 혹은 목격자의 관점을 넘어, 황동혁 감독이 애써 그려낸 1636년 남한산성에 있다면 과연 나는 어땠을까 되돌려 질문을 던져보면 과연 그때도 그럴까?

소설이 '남한산성'이라는 지역성을 배경으로 그 속에 담겨진 인간들을 수사를 아낀 문장으로 담백하게, 그래서 서늘하게 묘사해 나갔다면, 영화는 그런 원작의 묘사에 더해, 인조를 중심으로 그들 앞에서 조선의 운명을 둔 '인간군상'들에 조금 더 방점을 찍는다. 걸출한 두 배우, 김윤석, 이병헌이 분한 김상헌과 최명길,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게 고뇌하는 인조 박해일, 그리고 사실은 그 못지않게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을 분노케한 영상 김류의 송영창, 이들의 설전과 팽팽한 긴장감이, 마치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보듯 관객을 끌어들인다. 
 
경계에 선 자들에게 그 해 겨울은 냉혹했다. 조선 강토를 짓밟으며 청병이 다가오고 있었고 조선의 임금은 두려워 도망가는 백성들 사이를 뚫고 남한산성에 다다랐다. 성벽을 두고 대치하는 것들의 성격은 명백했다. 조선과 청이 대치하고 있었고 조선의 임금 인조와 청의 황제 칸이 대치하고 있었고 조선의 병사와 청의 병사가 대치하고 있었다. 쫓겨온 자와 쫓아온 자의 대치였고 굶주린 자와 배부른 자의 대치였고 말과 말, 문장과 문장의 대치였다.......대치는 성벽을 사이에 둔, 성 밖와 성 안의 것이 아니었다. 성 안에서 군과 신이 대치하고 있었고, 병과 병이 대치하고 있었으며, 병들의 목숨과 성첩을 덮는 추위가 대치하고 있었다......어디도 대치를 피할 곳은 없었다. 


<남한산성>, 국가를 묻다. 
아마도 영화 <남한산성>이 지루했던 이들이라면, 그 이유의 상당수가 이들의 사실은 '절체절명'의 설전 그 행간 속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에는 너무도 분명한 결론이지만, 김훈이 그러했듯, 감독 황동혁 역시, 애써 그 결론에 의거치 않고, 그 시대를 산 그들의 입장 각각에 힘을 실어준다. 사대의 나라 조선, 이미 그렇게 몇 백년을 이끌어 온 조정에서, 적페가 되어가며 기득권이 된 영상과, 적폐는 아니지만 여전히 유교의 국가 조선의 신하가 자신의 정체성인 김상헌, 그리고 그럼에도 국가의 생존을 우선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주장은 각각 명징하게 자신의 길을 갖는다.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서 쟁투하는 오늘날의 인간들에 굳이 비교할 것도 없다. 

'경계에 선 인간들',  김훈은 그리 표현했다. 하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는게, 지구가 멸망해도 희망을 심고자 해서가 아니라,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걸 알지 못해서이듯, 과연, 몇 백년을 사대의 유교 국가로 살아온 조선에게, 청과의 화친이 '수긍'될 수 있을까?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 압록강 주변까지 도망쳐, 명의 도움으로(?) 나라를 구했다 하는 인식을 가질 지도 모르는 사대부들에게, 최명길의 '혜안'은 얼마나 멀고도 아득한 이야기일지. 

보름달이 뜨면 봉화가 올려질 것이라 기대하는 김상헌과, 보름달이 뜨기 전 항복을 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절박한 설득은 바로 그런 경계에 대한 공감에서부터 절절해진다. 하지만 이미 역사적 혜안의 최명길과, 역사적 고집불통의 대명사가 된 김상헌이란 결론을 알고 있는 후대의 관객들에겐 싱거운 선택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안 자'가 되어 그 '선택'의 감별사가 되어버린 관객이 영화 <남한산성>의 손익 분기점을 위협할 것이다.



소설은 그 답을 그들이 아닌 조선의 백성들에게서 찾았다. 영화 역시 김상헌의 눈에 밟힌 산성의 군인들과 서날쇠, 소녀 나루에게서 찾는다. 영화는 최명길을 청과의 경계에 서게 한 반면, 뜻밖에도 고루한 김상헌을 나룻터에서 부터 산성에 이르기까지 그들 진짜 조선의 주인들과 접점을 가지도록 만든다. 그래서일까? 분명 이병헌과, 김윤석 두 배우의 백중지세로 이어지는 영화 속 두 인물의 입장에서 결코 그 저울이 흔들리지 않지만, 그 접점에서 오늘날 역사가 '남한산성 그 치욕의 공범자'로 기록하고 있는 김상헌의 처지와 생각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 

심지어 굳이 역사적 사실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이, 김상헌의 마지막을 사실과 다르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다른 선택이 오히려 묻는다. 과연, 1636년 조선이 그 치욕을 감당하면서 지킬 가치가 있는 국가인가? 라고. 소설은 남한산성의 그 피할 곳없는 풍경에서 자명한 진실에서 비껴간 정사의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드러냈다면, 영화는 오히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킬 가치가 없는 국가의 존속을 묻는다. 그렇게 많은 백성을 희생하고,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지켜낸 조선이 그 이후에 어땠던가?, 돌아온 인조는 어땠던가? 과연, 그 곳에서 조선이 살아돌아올만한 가치가 있었던가? 사료와 달리, 최명길은 김상헌에게 자기 대신 돌아가 조선을 책임져 달라 하지만, 그 가치와 명분을 가지고 조정을 지키고자 애쓰던 김상헌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거의 '혁명적'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이 던진 진짜 질문은 이것일 지도 모른다. 1636년 청 앞에서 풍전등화의 조선, 굴복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쩌자고 임진왜란에도 그랬듯이 백성은 내팽개쳐두고 그 산성으로 도망친 것에서 부터, 그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도 왕조, 아니 왕의 운신만이 여전했던 그 국가, 과연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할 가치가 있는가 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이다. 여전히 '국가'의 존재가 크고도 엄정한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이 질문은 그래서 낯설고, 도발적이다. 그리고 이 묵직할 질문이 바로 영화 <남한산성>의 가치다. 

by meditator 2017. 10. 11. 17:22

kbs2의 월화 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상승세는 파죽지세다. 1회 6.6%에서 2회 9.5%로 시청률이 오르며 sbs <사랑의 온도>(10.3%,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를 바짝 쫓는다. 단 하루 만에 시청률 기근인 공중파에서 대번에 3%를 건너뛴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중심에 제목의 그 '마녀', 마이듬이란 전무후무한 캐릭터가 있다는 데 큰 이견은 없을 듯하다. 


나를 위해 싸운다
7년차, 이제 제법 짠밥이 붙어 검사 임명 8개월차 여진욱(윤현민 분)에게 '선배'라며 큰 소리 칠 경력의 마이듬(정려원 분). 드라마의 시작은 마이듬이 10살이었던 시절로 시작되었다. 국수집을 하는 엄마와 둘이 살지만 엄마가 있는 게 어디냐며 당당했던 아이, 하지만, 그 엄마는 잠시 나갔다 온다며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에서 엄마를 찾던 전단지를 나눠주던 소녀는, 훌쩍 시간을 건너 뛰어 지방 국립대 출신이지만 4대 지검을 두루 거치며 에이스 소리를 듣는 35살의 중견 검사가 되었다. 



그 엄마 잃은 소녀가 서울 지검 특수부를 바라보는 에이스 검사를 바라보며 살아내기 까지 어땠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35살 마이듬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싸운다', 겸손 대신 '제가 좀 잘났습니다'라고 하며, '양보'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가 하겠습니다'하며 나선다. 하지만 그렇게 나서고 능력이 있음에도 그녀에게 돌아온 건 성추행한 부장 검사의 뒷설거지, 피해자를 찾아가 '현실'을 들먹이며 '협박'까지 하고 돌아온 그녀의 눈에 띈 건 그럼에도 남자 후배를 자리 라인으로 끌어가는 부장 검사, 마이듬은 그 '부장 검사' 성추행의 목격자로 '속시원하게' 증언을 하고, 그 댓가로 최악이 기피부서, '여성가족부'로 발령이 났다. 

<샐러리맨 초한지>의 백여치에 이은 또 한번의 인생 캐릭터를 만난 정려원은, 그 특유의 매력으로 마이듬을 펄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검찰의 생리, 위계 질서, 그런 건 '나 자신을 위할 수 있을 때'만 유효한 듯, 필요에 따라 정보를 흘리기도, 이용하기도 하는 것에 거침없이, '법'을 혹은 '법' 이상을 활용할 줄 아는, 하지만 마이듬 특유의 '싸가지 바가지'는 결국 그녀를 '본의 아니게(?)' 출포검(출세를 포기한 검사)로 만든다. 그러나 마이듬이 누군가, 전셋집을 위해서는 '엮이지 맙시다'하던 여진욱에게 태세 전환이 유연하듯, 맘에 들지 않는다면 '사표'도 한 방법이라는 민지숙(김여진 분) 부장 검사에게 오래오래 공무원 생활을 하겠다며 다시 '성실히 복무'할 것을 맹세하는 현실적 유연성을 보인다. 

'마녀들의 쟁투장'; 참여 재판
그러나 마이듬의 성실한 복무는 중단없는 '나를 위한 싸움'이다. 이제 더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 없으니 포기하는 민지숙 부장의 말 따위, 이번에도 마이듬의 안중에 없다. 그녀는, 교수와 제사 사이에 벌어진 성추행 사건에서, 다시 한번 '마이듬 식'의 반전 카드를 쓴다. 

정려원에 의해 빛을 발한 마이듬이란 어쩌면 이 시대 나를 위해 고전(苦戰) 중인 젊은이들이,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가장 공감할 만한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마녀의 법정>이 수직 상승세를 이어가는 본질은 '재밌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 '재미'는 어설픈 미드 <크리미날 마인드>의 복사판이 아닌, 우리 현실에 기반한 성범죄를 다룬 이 드라마의 서사에서 기인한다. 

첫 회, 굳이 검찰이라고도 내세울 것도 없이 우리 나라 권위적 조직 내에서 흔한 술자리 성추행 사건을 마이듬과 전배수 부장 검사와의 갈등과 회유, 그리고 증언으로 이끌어낸 드라마는, 이제 여성아동범죄 전담부서로 발령받은 마이듬이 맡은 첫 번째 사건으로, 그 반대의 경우를 다룬다. 



논문 임용을 앞두고 여교수를 찾아간 대학원생의 교수 성추행 사건, 하지만 이를 수사하던 여진욱은 가해자 대학원생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선배임을 내세워 쉽게 넘어가려던 마이듬이 전셋집과 관련 여진욱에게 태세전환을 하며,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가 바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대학원생 남우성(장정연 분)의 동성애와 그 연인이 지녔던 녹취본 증거, 하지만 남우성은 그 사실을 끝내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피해자임에도 기꺼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참여 재판을 승락한 선혜영(강경헌 분) 교수는 법정에서 '여성'이라는 성적으로 불리하게 여겨지는 지위를 십분 이용하여, 여론에 호소한다. 그녀와 그녀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변호사 허윤경(김민서 분)의 변론에 따라 출렁이는 여론. 

물론 드라마는 마이듬이 부장 판사 성추행 사건에서 슬며시 기자에게 정보를 흘려주었듯, 화장실에 남겨둔 자신의 핸드폰에 남겨둔 남우성의 sns 관련과 그 이면의 성적 정체성 정보를 '떡밥'으로 흘린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덥석 문 변호사는 법정에서 증거로 그것을 폭로하고, 그와 더불어 남우성의 게이 연인 정체까지 까발린다. 이에 당혹해 하는 여진욱과 달리, 미소를 짓던 마이듬,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책략'이었다. 당연하게도 마이듬은 애초에 그녀가 하려했던 남우성 연인이 가졌던 성추행 과정이 담긴 녹취본을 법정 증거로 제시하고 재판을 승소로 이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을 가득 메운 언론들을 향해, '마이듬입니다'를 만면의 미소를 띠고 외치는 여주인공, 1회에 이어, 다시 한번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싸우는' 마이듬의 존재를 확고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드라마는 놓치지 않는다. 마이듬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여진욱은 묻는다. 누가 이겼냐고. 자신의 불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피해자의 인권은 고개를 떨군 남우성의 모습으로 상징된다. 

그래도 마이듬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법적 진실이 승리를 했지만, 2회를 통해 보여준 참여 재판의 과정은 '법정에 선 인권이 한편의 '쇼'와 같은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곡해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 자신을 언론을 통해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는 세상, 그 '포장'에 얼마든지 부화뇌동할 수 있는 '대중'들의 법정이, 오늘날의 참여 재판의 실례임을 드라마는 실감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현실에 기반한 <마녀의 법정>이 이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7. 10. 11. 14:31

<응답하라>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케이블 tvn에서 시작된 <응답하라>는 정작 그 본 시리즈가 후일을 기약하지 않은 것과 달리, 그 '추억'의 정서가 드라마의 '장르'가 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추석 전에 종영한 kbs2의 <란제리 소녀 시대>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더니, 이제 mbc에서 새로이 시작한 <20세기 소년 소녀>는 1990년대에 성장하여 이제 35살이 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추억'을 바탕으로 끌어가고자 한다. 




추억은 힘이 세다
뜬금없지만 추석 특집 sbs스페셜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해 본다. 추석 특집으로 sbs스페셜은 지리산 도마 마을의 정경을 다룬다. 그 중 2부는 도마 마을의 가장 웃어른인 90살 한두이 할머니, 평생을 도마 마을에서 나고 자라 일가를 이룬 그녀는 이제 삶의 전선에서 물러나 반 평 툇마루를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육신은 늙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정신이 육신을 따라 늙어지지 못한 그녀는 그 반 평의 툇마루에서 이제 하나 남은 일, 죽음을 기다려야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도마 마을 여기저기를 흘러다닌다. 시계에 맞춰 버스 오는 시간하며 고사리 캐러가는 일상을 놓치지 않는 한두이 할머니는 말한다. 지나온 평생 늘 굶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고생 밖에 안했는데, 돌아보니 그 시절이 다 꽃같다고. 그래서 자식들도 잠깐 다녀가는 고향, 구부러진 허리로 여전히 고향을 지키는 그곳을 다큐는 복사꽃이 지천이라 말을 맺는다. 

그렇다. 돌아보니 다 꽃같던 시절, '추억'의 정의로 이 보다 더 절묘할 것이 있을까? 더구나,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툇마루를 지키는 한두이 할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강팍한 현실을 꿋꿋이 밀고가야 하는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을 꿀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잔향은 그 어느 때보다 그윽할 것이다. <응답하라>라는 드라마가 '수작'이었던 이유를 차치하고, 번복되어 그 '추억'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유에는 아마도 현실의 강팍함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응답하라>와 달리, 공중파로 온 추억의 소환이 흡족치는 못하다. <란제리 소녀 시대>가 3~4%의 시청률로 고전했으며, 야심차게 연방을 하며 폭죽을 쏘아올린 <이십세기 소년 소녀> 역시 4~3%로 만족스런 출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란제리 소녀 시대>가 낮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올해의 좋은 드라마'로 손꼽히듯, 비록 이제 4회를 선보였지만, <20세기 소년소녀> 역시 '추억'의 훈훈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우정과 교감을 나누고, 같은 시대의 노래를 듣고, 같은 문화를 공감하며, 90년대의 문화가 된 '한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들은 이제 설마하던 서른 중반, 여전히 미혼의 '봉고파'가 되어 '동지애'를 나눈다. 그녀들의 동지애의 기반은 한 교실에서 서로 일기장을 나누어 가며 나누던 그 '교감'에서 비롯되고, 한 남학생으로 잠깐 금갔던 그 찰라의 이별을 제외하고는 늘상 한 동네에서 함께 살아왔던 '인생의 다르지만 같은 레일'의 시대성에서 이제는 변호사 취준생에, 비행기 승무원에, 스타라는 다른 삶의 궤적을 이어가는 공통 분모를 찾아간다. 거기에 여전히 다같이 '결혼하지 못했다는' 미혼의 딱지까지(극중 그 누구도 '비혼'을 내세우지 않는다)



21세기의 강팍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추억
하지만 그렇게 같은 노래를 듣고, 저마다의 꿈을 꾸며, 같은 남학생을 좋아하며 투닥거리던 소녀들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소녀시절부터 지금까지 울다가도 '뭐 먹을까?'란 소리에 눈물이 뚝 그치는 한아름은 사이즈 77과 뚱뚱한 승무원에 대한 컴플레인과 싸우는 전문직 여성이 되었다. 심지어 '자궁근종'과도 싸우는 처지. 
학창 시절 늘상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영재 소녀 장영심(이상희 분)은 겨우 11년만에 턱걸리로 사법 시험은 패스했지만, 로펌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 늘 이력서와 홀대하는 아버지와 싸우는 그녀에게 기회는 저 멀리에만 있는 듯. 겨우 그녀에게 기회가 오긴 왔는데, 원하던 로펌이 아니라 소파가죽마저 뜯어진 개인 변호사 사무실. 
세 소녀들 중에서 운좋게도 가장 잘 나가는 대한민국의 트렌디한 스타가 된 사진진, 아이돌로 시작하여 17년차의 관록있는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그녀, 그런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섹스 동영상 사건에, 아름이 문병차 간 여성 병원 사진까지 터지며 연예계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는다. 

이렇게 4회만에 드라마는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에 '결혼'과 '연애'는 커녕,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한 그녀들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사진진의 '섹스 스캔들'에서 보여지듯이, 세상은 보이는대로 믿고, 보여지는대로 손가락질하며 평가한다. 그렇게 강팍한 세파 속에 던져진 그녀들은 '개별적 존재'일 뿐. 

그러나 그녀들은 여전히 20년 '안소니' 팬심을 간직한 모태 솔로 혹은 그 비슷한 순정파의 '소녀'들. 드라마는 바로 이렇게 한두이 할머니처럼, 육신은 서른 다섯의 세파와 싸우지만, 정신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있는 서른 다섯의 20세기 소녀들의 '관점'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관점에 집중할 뿐 아니라, 서른 다섯의 삶을 그럼에도 여전히 20세기 소녀들의 의지로 헤쳐나가는 '정서'에 촛점을 맞춘다. 세상의 편견어린 시선에 상처받은 사진진을 위로하는 건,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오래된 기린 인형처럼, 여전히 그 시절처럼 그녀와 함께 자란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불현듯 그녀 앞에 나타난 그 시절 봉고남 공지원(김지석 분). 그 20세기의 정서가 그녀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오랜 인연의 소속사 사장마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세상은 각박해도 '관계'는 여전한 유대가 되어 세상을 버틸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를 <20세기 소년소녀>는 단 4회만에 설득해 버린다. 

그 이전의 세대가 고생하며 일군 '가족'이 그들의 방패였다면, 도시에 깃들어 핵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진 대가족들은 새로운 '도시의 가족(?)'을 이룬다. 이제 '추억'을 소환한 이 세대에겐 그 '추억'을 공유한 '관계'들이 새로운 방패로 등장했다. 그 시절 '가족'드라마와도 같은 장치다. 병원 입원 중에도 홀로 뒤척이는 사진진을 찾아와 함께 잠을 청해주고 라디오 공개쇼에 나타나 자신의 스캔들을 진솔하게 밝힌 사진진이 함께 부등켜 안고 웃고 운 건 가족이 아니라, 그런 '추억의 동지', 새로운 가족들이다. 그렇게 힘을 가진 '추억', 당의정처럼 달콤하다. 

by meditator 2017. 10. 10. 13:54

시즌 1(12부)보다 조금 길었던 <청춘 시대2(14부)>도 결국 또 이렇게 끝났다. 박연선 작가답게 마지막인듯, 마지막이 아닌듯 한껏 여운을 남기고 마무리를 지었고, '하메'들은 마치 오랜 친구에게 하듯, 카메라를 향해(시청자들에게) 또 보자, 다녀오겠다, 잘 지내라 인사를 남겼다. 시즌 1부터 '거짓말'을 밥먹듯했던 지원보다는 '쏭'이 더 익숙한 송지원(박은빈 분)의 '이명'까지 얹힌 곡진한 개인사 아닌 개인사는 시즌2의 대장정 끝에 비로소 매듭을 지었다. 하지만, 시즌1부터 남친인듯 남친 아닌 친구 사이 성민(손승원 분)과의 '진도'는 여전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이다. 흔한 미니 시리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하메'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몰입했던 대상에 따라 흡족하거나, 흡족하지 않은 채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결국 또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다음 시즌이라고 다를까? 청춘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듭이 지어지고 다시 풀어져 가는 것을. 




여전히, 그리고 다시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들
시즌 1에서의 캐릭터들 중 강언니(류화영 분)를 제외한 모든 하메들이 남은 가운데(은재 캐릭터는 배우는 바뀌었지만) 강언니의 빈자리를 조은(최아라 분)이 이제 시즌2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천양지차인 의뭉스러운 존재감으로 시즌을 열었다. 

키 만큼이나 정체성이 의심이 가던 조은의 존재에 대한 해프닝으로 시작했지만, 시즌2는 각 캐릭터별로 시즌 1에서 자신이 부딪쳤던 삶의 과제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시작한다. 시즌 1에서 집착을 넘어 데이트 폭력이 되고만 남친과의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해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예은(한승연 분), 가정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첫사랑을 시작했지만 이제 그 사랑의 아픈 기억만을 부등켜 안은 은재(지우 분), 그리고 스스로 동생의 목숨을 걷으려고 까지 하며 삶의 기로에 섰던 진명(한예리 분)의 첫 직장 생활, 그리고 가장 밝았지만 가장 뜻모를 이명에 시달리던 쏭, 그리고 거기에 또 다른 가정사의 짐을 진채 헌책방에서 발견한 쪽지를 따라 흘러온 조은까지.



시즌 1의 강언니나 진명에게 닥친 문제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접점과 맞닿아 보다 큰 공감의 진폭을 가진 반면, 이제 시즌2에서 각 하메들의 문제는 예은의 데이트 폭력이나, 그리고 시즌의 마지막 쏭이 과거의 기억에서 길어올린 아동 성추행 등은 여전히 '사회적'인 파장을 가진 소재이지만, 시즌 1에 비해 가벼운 소재가 아님에도 보다 '사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그건, 그 주제가 '보다 사적'이라서보다는, 시즌1의 진명이나 강언니가 맞닦뜨린 접점이 사회라면, 이제 시즌2의 예은이나 쏭의 문제들은 보다 '개인적'으로 '천착되어진 지점이 깊어서이기 때문이다.

예은이 겪은 데이트 폭력의 상흔이나, 쏭의 상실된 기억은 드라마의 과정에서 조은의 가정사로 부터 비롯된 자신감 부재와, 은재의 실연과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시즌 2를 채워간다. 마치 작가가 그들이 겪는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더하고 덜하다 말할 수 없다 하는 것처럼. 그건 어쨋든 지금 그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에겐 시즌 2의 <청춘시대>가 이도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결말일지 몰라도, 그러나 다섯 하메들은 저마다 각자의 실타래의 한 매듭을 풀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세상에 한없이 도망치던 예은은 친척들이 모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데이트 폭력을 겪었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녀를 돌보던 친구는 오히려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로 폭언을 퍼붓는 뜻밖의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과정을 통해 예은은 자신의 아픔을 객관화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한 뼘의 성장을 이루었다. 



저마다의 결자해지 
시즌 2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이 '객관화'가 아니었을까? 시즌1에서 알바를 하며 고달프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자기 껏만을 챙기던 진명은 시즌1의 그 진명이 맞나 싶게 해체된 아이돌 그룹 해임달을 뒷감당하느라 고전한다. 하지만, 그녀가 시즌 1에서 삶이 버거워 동생의 목숨까지 거두려했던 그 고통을 되짚어 보면, 이제 또 동생 또래의 한 청년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건 너무도 명확하다. 또한 한없이 낙관적으로 꿈을 이야기하는 이 가망없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진명의 복잡한 눈빛은 처절했던 자신의 지난 시간 또한 복기했을 것이라고 짚어진다. 해임담을 '처리'하라는 직책으로부터 시작된 진명의 수난기는 다른 이름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살아왔던 진명의 '자기 객관화'의 시간으로 시청자들에겐 읽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진명이 해임달을 통해 그랬듯이, 예은은 친구의 폭력적 메시지 폭력을 통해, 조은은 풋풋한 첫사랑을 통해, 은재는 바닥을 치는 처절한 사랑의 복귀 실패를 통해, 그리고 쏭은 문효진의 죽음을 통해 상실된 기억을 불러오며,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수동적이기만 하던 은재가 종열 선배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며 자존심이 무너져가며 사랑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서야 비로소 사랑의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듯이, 박연선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바라보고 받아들일 때 하나의 매듭이, 한 사이클의 성장이 마무리된다 시즌2를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는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어쩐지 스케일이 작다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세상과의 싸움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진짜 더 어려운 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지점에서 <청춘시대2>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깊다. 오히려 세상과의 전선은 더욱 분명해 질 수록, 나 자신과의 접점은 놓쳐버리기 쉬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작과 끝은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밝히는 청춘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건 이 시대 청춘들의 축복일 지도. 

그러기에 다시 또 감질나는 이 14부작의 다음 시즌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네버엔딩의 청춘 서사를 그리듯이. 하지만 그런 반면, 이제 한편으론 박연선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되기도 한다. 어쨋든 무엇을 그리든 박연선월드가 여전히 확고하다는 건 분명하니까. 
by meditator 2017. 10. 8. 04:28

<남한산성>, 이어 <범죄 도시>로 그 흥행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엇갓린 평에도 불구하고 <킹스맨; 골든 서클>은 청불 최단 기간 400만을 돌파하며 우리나라에서 1편에 이어 흥행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시즌을 '스타일'이 이어가다. 
<킹스맨>은 등장은 그 유래부터 007과는 다르다. 영국 정보부라는 국가 조직의 관리 하에 첩보원이 아닌, 영국 테일러 산업의 이익을 환원하기 위한 조직으로, 테이러 산업이 만들어낸 슈트를 '갑옷'처럼 입은 '원탁의 기사'들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가장 '신사적'인 것이 요구되는 훈련 과정은 '왕실에 의한 작위'가 아니라, 그 '신사복'을 만드는 협회에 의해 주도된다는 '장인적 설정'이 이 '시리즈'의 관건이다. 그러기에 원작이 없는 2편에서 미국의 위스키 협회, '스테이츠맨'이 그들의 동지로 등장한 건 시리즈의 연장 선상에서 개연성을 갖는다. 



이렇게 협회가 만들어 낸 '킹스맨'에 1편을 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온갖 신사 가문의 자제들이 지원한다. 하지만 정작 '킹스맨'이 된 건, '동지애'를 실천한 사투리를 쓰는 하층민 에거시(태런 에저튼 분)이다. 취지야 진정으로 '신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킹스맨'의 자격이 있다는 말로써 '문화'의 본질을 짚는다. 

하지만 해학적으로 해석하되, 테일러 협회 수장과 재단사, 그리고알고보니 '나비 연구가',  뒷골목 소년에 의해 완성된 킹스맨은 그 어떤 '신사'보다 더 '신사스러운' 정서와 스타일을 선보인다. 안경, 우산, 가방을 활용한 무기하며, 007보다 더 007스러운 신사들이다. 2편에서 신사복을 벗은 에거시가 동네 친구들과 예의 사투리같은 자신의 언어를 쓰다가도, 킹스맨의 복장을 장착하면 어엿한 '신사'로 전투에 임하는 장면은 본투비 신사였던 007과 차별성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한 편에서 '신사'들이 무게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1편에서는 그런 '신사'의 반대 편에 지구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바이러스같은' 인간들을 절멸시키겠다는 야욕을 가진 발렌타인(샤무엘 L잭슨 분이 등장한다. 그런데 '인간의 뇌'에 칩을 작동시키는 천재적 발상의 과학자 악인의 모습이 반전이다. 힙합 보이 복장에, 힙합스러운 어투로 '맥도널드' 햄버거를 대접하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2편에서 캄보디아 정글 속에 자신만의 '포피랜드'를 포진한 빌런 포피 역시 발렌타인에서 시대를 거슬러 7,80년대 미국 팝음악을 배경으로 현란한 색채를 덧입혀 그 시절 미국 거리를 재현한다. 거기에 그녀가 오만불손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살려준 인질이 바로 그 시절 대표적 팝스타 '엘튼 존'의 등장이 화룡점정이 된다. 

이렇게 1편에 이은 2편에서 <킹스맨>은 '전통적 영국의 신사 문화'에 힙합 문화와, 7,80년대의 파퓰러한 미국의 대중 문화를 대비시키며 '스타일'의 격전지로서 시리즈를 이어간다. 2편에서도 영화의 정점이라 하면 뜻밖에도 장엄한 '존던버'의 노래가 울려퍼진 가운데 멀린의 장렬한 죽음이었다. 영화 시작부터 빈번하게 에거시의 현란한 액션이 이어지지만 정작 공을 들여 보여주는 건 '스타일'의 전시이며, 그 '스타일'의 활용에 관객 역시 <킹스맨>을 다른 스파이물과 다르게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작품의 호불호, 혹은 성패와 상관없이 적어도 <킹스맨>은 1편에 이어, 2편까지 '스타일'의 계보를 순조롭게 이어갔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며, 그런 의미에서 과연 3편의 '스타일'은? 이라는 궁금증을 덧붙이게 만든다.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1편의 클라이막스에서 벌어진 인간 폭발의 '카니발'은 두고 두고 회자되었다. 심지어 가장 잔혹스런 장면에서 울려퍼진 위풍당당 행진곡은 이후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서의 차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될 만큼, 신선하고도 충격적이었다. 

그런 '충격파'에 대한 부담이었을까? 마치 1편만큼 쇼킹한 '인간 살육'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의 소산이기라도 하듯, '인간 분쇄기'가 2편에 등장한다. 1편과 같은 화려한 배경 음악도, 연출도 없이 가감없이 '인간'을 '햄버거 패티'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 심지어 꼭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인증이라도 하듯, 두 다리는 남겨두는 그 처단에 눈을 질끈 감은 관객들이 많을 듯하다. 

'가감없이 잔혹하다', 이런 평가에서 어쩌면 우리는 1편에서 간과했던 질문을 이제 다시 해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1편의 발렌타인의 방식이나, 2편의 포피의 방식이나, 사실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생명에의 경시'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2편에서 그것이 전면적으로 드러남으로써, 1편의 그 '잔혹했던 살상'을 오버랩하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1편에서 각국의 지도층 인사들이면서도 자신들의 안위 이상 지도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살상에 대한 살인에 대한 묘한 대리만족과 그럼에도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이제 2편에서 애꿏게도 그 대상이 된 '약물중독'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은 정작 포피를 제거하자, 등장하여 사랑했던 연인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킹스맨 일행이 해독제 버튼을 누르는 걸 저지하려고 했던 스테이츠맨이나,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이처럼 <킹스맨>이 내세운 '정의'는 모호하다. 

마치 제국주의 시대 '신사'복을 입고 제국주의 영국의 첨병이 되었던 그들이 이제 영국 문화의 전통이 된 것처럼, 1편에서 인간 카니발의 제물이 된 각국 수뇌부의 목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려야 하는 임무나, 이제 2편에서 걷잡을 수 없는 필요악이 되어가는 약물 중독자에 대한 구급 버튼의 수호처럼, 현대의 신사들의 임무는 그 자체에 '딜레마'를 안고있다. 하지만, 그건 햄버거 패티가 되는 인간에 대한 반작용이 곧 '정의'가 되는 임무에서 '킹스맨'의 고민은 깊지 않다. 나비 연구가가 되는 대신 나라를 위한 길을 선택했던 해리의 고민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식이다. 신사복을 입은 에거시에게 주어진 임무는 뜻밖에도 상대편 여성의 질 속에 첩보용 칩을 이식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가 고민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반응을 보인 '여성의 도구화'가 아니라, 자신의 약혼자에 대한 순결 여부이다. 어쩌면 가장 신사입네 하면서 그 신사적인 면을 숱한 '여성 편력'을 증명하는 007 시리즈와 차별성은 에거시의 결혼으로 마무리지은 소박한 순애보라 영화는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는 '아이러니한' 설정들의 집합체이다. 전통을 가진 문화의 수혜자가 된 청년은 이제 신사의 제복을 입고 정의의 사도가 되어, 하지만 여느 스파이물 못지 않은 혹은 더 적나라한 액션과 살극을 펼친다. 그의 정의는 분명하지만, 그 결을 따지고 들어가면, 어쩌면 우리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 투성이다. 이 모호한 시대 속에서 '정의'을 외치는 시도 자체가 가진 본원적 딜레마일지도. 

by meditator 2017. 10. 8. 02:01

그 어느 때 보다도 긴 추석 연휴, 그래서일까 새롭게 선보이는 몇몇 예능들과 달리, '특선 영화'로 즐비한 편성표는 이렇다할 추석 특집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예년과 다르게 '단막극'들이 긴 추석 연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청자들을 찾으며 연휴의 긴 편성표의 빈틈을 메웠다. 물론, 시청률이란 성과면에서는 만족스럽지 않다. 대부분 2% 대의 시청률에서 고전했으며, 그 중에서 화제가 되었던 라미란이 출연한 <kbs드라마 스페셜-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도 3.7%에 불과했다. 하지만 뒤집어 정규 편성된 kbs2의 미니 시리즈<맨홀>이  1%대에서 고전하고, 화제의 청춘 시대도 2%대를 종종 오르내리는 상황에 비교하자면 추석 특선 <변호인>과 <밀정>과  정규 미니 시리즈 사이에서 단막극이 성취한 2,3%의 시청률을 비관적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특선 영화와 미니 시리즈가 아닌 선택을 한 2,3%의 시청자들의 개성에 주목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멜로의 계절, 그 정점을 찍다-<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강덕순 애정 변천사>
최근 추석이든 설이든 그 절기를 위해 마련된 특집극이 준비된 적이 없었던 가운데, 10월 4일과 5일에 걸쳐 방영된 <kbs드라마 스페셜> 두 편 <정다맘의 마지막 일주일>과 <강덕순 애정 변천사>는 드라마 스페셜의 시리즈 중 일부로 방영되었지만, 추석 특집극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작품들이다. 

'멜로의 법칙'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시작했던 드라마스페셜은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가며, 흔히 '자본주의 시대 남녀간의 통속적 사랑 이야기'라는 '멜로'의 본원적 정의를 보다 확대해나간다. 10월 4일 방영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에서의 사랑은 남녀를 떠나, 공소 시효 일주일을 앞둔 정마담(라미란 분)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 가버린 맞은 편집 딸 은미(신린아 분)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다. 부산 조폭의 돈가방을 탈취하여 오로지 공소 시효가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두문불출 살아왔던 정마담은 어린 시절 계모의 학대로 잃었던 자신의 동생을 연상케 만드는 맞은 편집 계부에게 학대당하는 은미를 본의 아니게 납치하기에 이른다. 드라마는 추석답게 교도소에 들어가 비로소 두 다리 뻗고 자는 정마담과 납치가 학대의 폭로로 이어진 훈훈한 인연의 해피엔딩으로 그 어떤 추석 특집극에 손색없는 따스한 사랑의 미담으로 완성된다. 

그런가 하면, 5일 방영된 사랑은 보다 스케일이 커진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정혼시킨 정혼자와의 일편단심에 마음 설레던 덕순(김소혜 분)은 독립 운동에 헌신하겠다는 석삼(오승윤 분)을 찾아 경성으로 향한다. 하지만, 덕순이 애닳아 찾던 석삼의 주소는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는 석삼의 쪽지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덕선은 그 황망함을 '한글'이라도 배우겠다는 결심으로 대신하는데. 하지만 한글이라도 배우고자 의탁한 '모녀 주막' 모녀들의 수상한 동정은 시골처녀 덕순의 일부종사 애정을 '모녀 주막'의 동지로 성장하게 한다.

'사랑'이라고 쓰고, 측은지심과 애국심으로 확대 해석한 <kbs드라마 스페셜>의 두 편은 추석이라는 풍성하고 넉넉한 수확의 계절에  '내 가족'혹은 '고향'이라는 의미를 보다 근원적으로 해석한, 그 어떤 드라마보다 어울리는 단막극이 되었다.



역주행한 단막극들
파업의 여파가 가장 큰 mbc 30일, 2일 그리고 다가올 7일,8일 드라마의 공백을 구원해 준건 , 지난 1월에서 3월, 그리고 2015년 12월 화제리에 방영된 <세가지 색 판타지>와 <퐁당퐁당 러브> 초미니 드라마들이다.  

파업은 아니지만, 추석 연휴 jtbc 2,3일 그리고 다가올 8일 방영될 드라마는 이미 네이버 캐스트와 jtbc 온라인을 통해 '웹 드라마'의 형식으로 방영되었던 <알 수도 있는 사람>, <힙합 선생>, 그리고 <어쩌다 18>이다. 

이들 드라마들은 tv를 통해, 혹은 다른 채널을 통해 방영된 '단막극'과 흡사한 형태의 드라마들이라는 점과, 이들이 타임 슬립 <어쩌다 18>, <퐁당퐁당 러브>, 신선한 설정 <알수도 있는 사람>, <생동성 연애> 등 다양한 구도를 이루고 있지만, 일관되게 이들 드라마들이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순정 만화- 로맨스 소설- 순정 웹툰'의 계보를 잇는 '기승전 '사랑'이야기라는 점이다. 

이야기의 구성 속에서 '힙합'을 좋아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좋아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려는 점이나, 좌절한 스타가 다시 음악을 하게 되는 등 젊은이의 좌절과 성장을 다루지만, 그 매개가 '사랑'이라는 점에서 '당의정'에 싸인 고뇌라는 한계를 답보하고 있다. 연애와 사랑, 결혼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대리 만족'인 것일까, '포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솔깃한 로망인 것일까? 그런 면에서 mbc와 jtbc 단막극은 '땜빵용'이라는 구성의 한계 이상의 숙제를 남긴다. 
by meditator 2017. 10. 6. 17:20

올해도 변함없이 다행스럽게도 <드라마 스페셜>이 찾아왔다. 가을이라는 계절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낮은 시청률을 돌파하고자 하는 암중모색이었을까? '멜로의 법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찾아온 2017년의 <드라마 스페셜>은 그 부제 만큼이나 다종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하지만 부제가 어떻든 <드라마 스페셜>이라면 변치않고 담아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라 할 작품들이다. 올해도 변함없다. 지난 일요일 밤에 이어, 수요일 밤 다시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 혼자 추는 왈츠>는 드라마로 그려낸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2015년 <노량진 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이 여운이 긴 제목에서 지칭하는 지명만으로도 이젠 어떤 청춘의 이야기를 그릴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곳 노량진, 그렇다. 이 드라마는 '공시생'의 이야기이다. 2015년에도 그렇고, 이제 공무원 수를 늘린다니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어났다는 노량진 공무원 수험생의 사랑 이야기다. 세상에 시험 공부하기에도 빠듯한데 사랑이라니, 사랑이 사치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래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단 1 점차로 시험에 떨어져 공시생 5년차가 된 모희준(봉태규 분), 그 끝없는 좌절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노량진 철교 위로 올라갔다. 바로 그 나락의 순간에 그의 앞에 나타난 유하(하승리 분)는 그를 '강제적 연애'의 세계로 인도한다. 다짜고짜 그의 수험 생활에 쳐들어와 공원 데이트를 하게 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던 유하, 그러나 그런 만남이 늘 버거웠던 희준은 결국 시험을 두 달 앞둔 시점에 그녀와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드디어 합격! 당당하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자 그녀를 찾아간 희준이 받아든 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그녀의 소식. 그렇게 드라마는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마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2015년 청년들의 운명을 찰라의 사랑을 통해 담아낸다. 



2016년 <아득히 먼 춤>
드라마 속 연극이라는 실험적 도전을 했던 <아득히 먼 춤>, 하지만 정작 이 실험적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건 2016년 청춘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자화상은 '영정 사진'으로부터 시작되고 만다. 젊은 연극 연출가 신파랑(구교환 분), 그는 불모지인 연극판에서도 동료들에게조차 인정받기 힘든 sf연극<로봇의 죽음>을 무대 올리려 했다.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버린 그의 작품과 생애를 '졸업'을 위해 마지못해 무대에 올리는 후배 연출가 최현(이상희 분)을 통해 되짚어간다. 

무용극과 전위적 연극 무대를 통해 드라마가 담고자 하는 건, 2016년에도 순수 연극을 하고자 애쓰는 젊은 연극인의 현주소이다. 연극을 한 편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이 시대의 젊은 연출가에게 필요한 건? 정작 후배들이 기억하는 그는 술에 취해, 혹은 잠에 취해 디렉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불성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불성실은 연극을 포기하지 못하고 공연비를 마련하고자 철거 작업까지 뛰어야 하는 삶의 성실성이 잉태한 것이다. 보장되지 않는 예술로 고민하는 최현의 고뇌를 신파랑이 남긴 연극을 통해 신파랑의 실존적 절규로 까지 확장시키며 이 시대 예술가의 삶을 살려는 청춘들을 그려내려 한 드라마는, 영생을 포기하고 유한성의 '예술적 행위'를 선택하는 '안드로이들'들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될 수 없는 예술혼'으로 마무리된다. 



2017 <홀로 추는 왈츠> 
2015년에 미처 못다해서 안타까운 사랑과, 2016년에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래도 작품을 통해서나마 예술적 연대를 했던 청춘은 2017년에 오면 좀 더 처절해 진다. 

'왈츠의 이해'라는 대학의 강의, 이 수업에서 학점을 얻지 못하면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없는 김민선(문가영 분)은 다짜고짜 구건희(여회현 분)에게 사겨주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왈츠 수업 참가를 종용한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군대를 가고, 인턴 생활을 하며, 그렇게 8년의 시간을 보낸 오랜 연인을 드라마는 두 사람의 '왈츠'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낸다. 

하지만 삼박자의 온유한 왈츠 음악과 달리, 8년째 연애를 맞이한 두 사람의 처지는 그리 평화롭지 않다. 민선과 달리 지방 캠 출신의 건희는 대기업 하청업체 직원의 처지이고,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하지만 정작 민선에게 기회는 번번히 주어지지 않는다. 함께 만든 통장의 잔고로 신경전을 벌이고, 모텔비가 아까워지는 시간, 무엇보다 그들을 압박하는 건, 벼랑 끝에 서있는 그들의 존재이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 이들 연인, 결국 그럼에도 '너 밖에 없어'라고 했지만, 어렵사리 도전한 한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맞붙게 된 두 사람은, 그 애절한 사랑 고백도, 성대한 만찬도 뒤로 하고, 서로의 포기를 종용하는 치사한 처지가 되고 만다. 심지어 한껏 서로의 자존심을 긁고 대판 싸우고 난 다음날, 지하철 계단에서 실신한 민선을 건희는 모른 체 하고, 안심하는 건희가 무색하게, 민선은 피투성이가 된 채 면접장에 나타난다. 

애써 쾌활한 척 하며 오가던 덕담 몇 마디 후 명함만을 만지작거리던 두 사람이 이후 도망치듯 숨어 오열하던 두 사람의 엔딩은, 그 서정적인 왈츠와 비교대며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2015년의 연민도, 2016년의 예술적 각오도 무색하게 이제 2017년의 청춘은 전장의 적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로 작동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청춘들의 현주소를 드라마 스페셜은 담담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홀로 추는 왈츠>는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 이유를 강변해 낸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보는 혹자의 청춘은 그리 말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사람은 취직을 했지 않느냐고. 그래도 드라마는 알량한 미덕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언제나 드라마는 현실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by meditator 2017. 9. 28. 16:47

9월 26일 종영한 tvn월화 드라마 <아르곤>은 생소한 원자 기호 18번의 기체 아르곤을 제목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산소가 다른 물질들을 산화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기체 Ar야말로, 8부작의 이 드라마가 가진 의의를 절묘하게 드러낸다. 


촛불 항쟁과 함께 시작한 새로운 시대, 그 시대의 과제 중 하나인 '적폐'를 철페하기 위해, 지난 보수 정권 10년간 '훼절'한 언론을 되살리기 위해 mbc를 비롯한 각 언론사들의 '파업'이 시작되는 즈음에 시작된 '사실을 통해 진실을 보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탐사 보도팀 아르곤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시의적이었다. 

드라마 속 탐사 보도팀 아르곤이 소속되어 있는 HBC의 상황은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기자들은 파업으로 '해직' 당하고 한때 대표적 탐사 보도팀이었던 아르곤은 마감 뉴스로 밀려난 처지. 팀장 김백진(김주혁 분)은 여전히 사실을 통한 진실 보도에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보도 내용까지 사건에 '검열'당해야 하는 팀의 처지는 늘 마감 뉴스의 자리조차 위태롭게 한다. 그런 아르곤에 해직 기자를 대신한 막내 이연화(천우희 분)가 들어와 '용병'이라 눈칫밥을 먹게 되고, '미드 타운 붕괴'사건이 전 사회를 덮친다. 

8부작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르곤>은 세월호 혹은 그 이전에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을 연상시키는 '미드 타운 붕괴'사건을 다루며, '사실'을 통해 진실을 향해 고전하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프레임'; 사실의 안과 밖
우리는, 이른바 시청자들, 혹은 독자라는 이름의 '대중'들은 '언론'을 통해 전해진 기사, 혹은 보도들을 '사실'이라 믿는다. 아니 믿기 쉽다. 설사 의심을 하더라도 전 언론이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하면 자신의 의심을 거두고, 그곳으로 눈과 귀가 쏠린다. 보수 정권 10년 동안 정권이 그토록 공을 들여 기자들을 해직하고, 운영진을 물갈이하며 '언론을 장악'하고자 애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아르곤>은 다시 한번 그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사실이, '프레임' 이란 틀 속에 얼마든지 날조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미드 타운 붕괴 사건을 접한 아르곤 팀은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이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을 빼앗아간 비극이라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르곤이 그곳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이, 권력의 하수인이 된 보도국장 유명호(이승준 분)는 '특종'이라는 이름 아래 미드 타운 붕괴 사건의 프레임을 '사라진 현장 소장'의 책임으로 돌린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했던 미드 타운 보도는 김백진의 책임이란 프레임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유명호가 던진 특종을 받아든 각 언론들은 너도 나도 현장 소장을 희생양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사람들이 현장 소장의 가족들에게 몰려가 집단 린치를 가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드라마는 아이를 살리고 현장에서 숨져간 현장 소장의 희생을 통해, 그 '집단적 히스테리'와도 같은 프레임을 전복시킨다. 

비록 짧은 8부였지만, <아르곤>의 고군분투는 바로 이 권력과 거기에 야합한 언론, 그들이 마든 '프레임'에 미혹되는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된다. 현장 소장에게 뒤집어 씌워진 프레임, 섬영 식품 안재근 연구원의 자살과 관련된 이중 언론 플레이, 거대 교회 권력 성종 교회의 손해 배상 소송 등등 '보도되는 사실'과, 그 사실 이면의 진실을 향한 싸움이다. 

이는 결국 진실을 향해가는 사실 탐사 보도 아르곤의 '정의로운 언론 행위'를 빛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의 모든 보도되는 사실들이 '편집된 사실'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한다. 심지어 <아르곤>은 김백진이 놓친 선광일의 진실과 미드 타운의 실체를 들어 '정의'란 이름의 진실조차 의심하고 판단하기를 요구한다. 

김백진은 말한다. 진실조차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의롭다고 믿어지는 그 누군가에 의해 가져다 줘서 받아먹는 진실이 아니라, 각자 '프레임'의 틀을 벗고 나와 사실을 통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이성의 시대에 대한 요구가 <아르곤>이 말하고자 하는 숨겨진 주제이다. 광야에서 온 초인을 기다리고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정신차리고 제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채워갈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아르곤, 영웅의 결연한 퇴장
<아르곤> 8부의 여정이 빛나는 건 그래서, 그 '프레임'에 갇힌 사실 아닌 사실을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싸움의 과정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도달한 '정의'보다 더 이 드라마가 그간 거대 권력을 향한 싸움을 다룬 드라마들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발하는 건, 그들과의 싸움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철저했다는 점에서이다. 

용병으로 들어온 이연화에게 김백진은 그로 인해 기자가 되고 싶어서였던 그 '로망'만큼이나 거대한 우상이다. 그리고 그 우상은 '진실을 알리고 싶어' 기자가 되고 싶었다던 그의 말 만큼이나 영웅적이다. 진실을 보도하는데 있어 물러섬이 없다. 

하지만 그와 그의 팀이 추구하는 진실은 늘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매년 만우절이면 그를 찾아와 아내가 성추행당했다며 행패를 벌이던 선광일의 진실을 자신을, 자신이 선택한 사실을 믿었던 김백진은 쉽게 무시했다. 그가 느지막히 도달한 진실은 죽은 선광일을 구원할 수 없었다.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한 김백진의 9시 앵커 도전은 10년동안 동거동락한 육혜리(박희본 분)의 희생을 발판삼으려 한다. 오합지졸이 될 뻔한 아르곤을 구하기 위한 신철(박원상 분)의 섬영식품 특종은 한 연구원의 죽음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미드 타운에 대한 진실 보도가 결국 3년전 자신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아르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웅의 탄생대신,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언론의 자세를 말한다. 늘 정의 앞에 떳떳한 영웅이 아니라, 늘 의심하고 진실을 추구하지만,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구르고 엎어지고 고뇌하는, 과정 속에서의 언론을 말하고자 한다. 영웅 대신 인간이 하는 일로서의 '언론'이다. 

그런 면에서 <아르곤>을 새로운 시대 정신을 추구한다. 우리는 늘 영웅을 갈구한다. 그리고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듯, 어려운 시절 속에 우리들은 새롭게 탄생되는 각 분야의 영웅들에 열광한다. 하지만, 이제 <아르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 누군가 몇 사람의 탁월한 영웅 대신, 인간의 일로서 만들어 가는 '정의'를. 

아르곤의 우상, 김백진은 그래서, 결국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정의로운 언론의 수호자로서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용병이었던 그러나 김백진의 실수조차 기사화할 수 있는 용기를 냈던 이연화는 정규직 사원이 된다. 정의는 몇몇의 영웅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깨어있는 포기하지않는, 그리고 책임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상을 받는 대신, 자신을 앞서간 많은 선배 동료 언론인에게 공을 도린 김백진의 마무리 수상 소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by meditator 2017. 9. 27. 15:30

제목이 곧 '메이커'가 된 <응답하라> 시리즈, 이 시리즈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된 핵심 코드 중 하나는 '낭만적인 복기'일 터이다. 마치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예전이 좋았어 라며 과거를 회상하는 '과거부심'인 것이다. 그런 '낭만적 복기'의 시리즈 <응답하라>가 가장 '과거'로 간 시대는 1988. 어쩌면 그건 '낭만'의 마지노 선이 1988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른바 '민간인 코스프레'였어도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직선제'의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던 1987년 이후에야 우리의 현대사는 '낭만'이라는 걸 그래도 논할만한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란제리 소녀시대>는 저돌적이게도 낭만적이어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79년의 한 시절로 시청자들을 이끈다. 아마도 4%의 콘크리트 시청률 기여하는 것 중 하나는 혹시나 또 한 편의 <응답하라> 일까 하고 봤다가 생각외로 심각한 그 시절의 공기가 부담스러워 질겁한 시청자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바로 이 낭만적이지 않은 암울했던 시절의 공기가 바로 유신시대를 마무리해가던 79년의 정서다. 



79년 비극적 정서를 잉태한 첫사랑 
<란제리 소녀 시대>는 <응답하라>처럼 전형적인 '첫사랑'의 삼각 관계 구도로 설정된다. <응답하라>의 덕선이처럼, 나정이처럼, 시원이처럼 '천방지축 유쾌발랄한 소녀' 정희(보나 분), 그리고 그녀가 흠모하는 전교 회장 교회 오빠 손진(여회현 분), 그리고 첫 미팅에서 정희에게 반해 일편단심 정희 바라기인 동문(서영주 분), 동네 총각 영춘(이종현 분), 그리고 다크호스로 등장하여 영춘과 손진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혜주(채서진 분)가 그 주인공들이다. 여느 청춘물처럼 서로 얽히고 섥혀 사랑하고 질투하고 갖은 해프닝을 벌이던 이들의 사랑에 <란제리 소녀 시대>는 '시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전학온 혜주는 여학생들의 '브래지어 끈'을 당기는 모욕감어린 체벌을 하는 오만상(인교진 분)에게 부당함을 제기하는 당당한 여학생이다. 공부는 물론 오자마자 모의고사 전교 1등을 할만큼 발군이다. 전교 회장 손진의 시선을 한 눈에 나꿔챌만큼의 청순한 미모에, 방송반 아나운서를 맡을 만큼 재능까지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혜주, 하지만 손진은 그녀를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빨갱이'였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동하고 도피한 학생을 숨겨준 혜주의 아버지는 그 연루자가 되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경찰서장인 손진의 아버지는 혜주의 아버지를 빨갱이라 낙인찍으며 혜주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말 것을 강요한다. 

그 시절 '빨갱이'는 그랬다. '호환마다'보다 더 무섭다고 극장의 '대한뉴스'는 주입을 했고, 6.25전쟁의 레드 컴플렉스를 교묘하게 이용한 정권은 그를 확대 재생산하여 반정부 세력에게 그 '호환마다보다 더한 빨갱이 낙인'을 거침없이 찍어버렸다. 제 아무리 이쁘고 공부 잘하고, 아버지 교수라도 그 아버지가 빨갱이이면 아무 것도 아닌 것보다 더한 것이 되어버린 시절. 



사라진 아버지의 향방을 몰라 혜주는 노심초사하지만, 그런 혜주의 동정을 보고하라 교감 선생이 담임에게 지시를 내리는 시절, 그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담임은 그 불편한 심정을 학생들의 체벌에 항의하는 혜주에게 운동장 100바퀴라는 화풀이로 표출해 내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 혜주가 걱정되어 그 집앞에서 얼쩡거리는 것만으로도 경찰서장 아버지에게 뺨이 날아가도록 맞던 시절의 비극을 <란제리 소녀시대>는 첫사랑의 불온한 공기로 담아낸다.

마치 조선 시대의 사랑이 '역적'으로 몰려 하루 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비극'을 잉태하듯이, '난사람'이었던 혜주는 하루 아침에 동네 사람들의 소리없는 외면과 입방아의 대상이 되어 '배척'받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사랑'조차 그 흔한 선남선녀의 꽃길 대신, 그 어려운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영춘에게 의지하는 곡진한 순애보에 기대는 뜻밖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애증의 여성 연대 
그렇게 혜주가 시대적 비극을 사랑의 비극으로 잉태해 가는 동안, 그 사랑의 경쟁자였던 정희는 혜주와 미묘한 우정의 관계로 전환된다. 제목에서부터 상징되듯 평범한 런닝과 끈 런닝으로 대변되는 '패션'의 갈림길에서 늘 '평범함'의 처지에 아둥바둥거리던 정희는, 그러기에 혜주는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아버지는 말끝마다 '가시나'를 달고 살며 딸을 타박했지만, 그 공기와는 다르게 심지어 공부를 잘해도 쌍둥이 오빠 앞 길을 막는다고 대놓고 차별을 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 그 당연한 '차별'에 안간힘을 쓰는 정희는 선생님 앞에서 당당하게 모욕적인 체벌에 항의하는 혜주의 운동장 100퀴의 동반자가 된다. 

혜주가 선뜻 친구가 되자 했지만 좋아하는 손진 오빠야의 마음을 빼앗은 혜주에게 늘 불편했던 정희의 마음은 같이 운동장을 달리지만 그래도 혜주를 앞지르고 싶던 그 복잡한 마음으로 드라마는 절묘하게 엇갈린 우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오빠에겐 메이커 옷을 사주면서도 정희는 독서실도 안보내주던 엄마가 정작 오빠 대신 독서실을 가는 정희에게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같이 죽자라며 우산대로 정희를 때라다 결국 정희 방으로 베개를 들고 오는 장면에서, 우리 시대 질긴 모성 연대의 지난한 역사를 고증한다. 

그렇게 <란제리 소녀시대>는 '낭만'이라기엔 무겁고 짖눌려진 79년의 시대상을 절묘하게 드라마로 담는다. <응답하라> 시리즈 뺨치게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 'feeling'을 비롯한 '파파', 'sing' 등 당시의 유행 음악은 이런 시대의 사랑에 아이러니한 낭만을 제공하며 그 운명의 정서를 극대화시킨다. 비록 시청률은 응답하지는 않지만 극소의 시청자라도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 여운이 긴 음악들만큼 오랜 잔향을 잊지 않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7. 9. 26.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