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을 피하고 싶지만,  한  나라에 있어 지정학적 위치는 운명적이다. 특히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세계의 제국이라자처하는 미국과,  또 다른 바다 황해, 심지어 날이 좋으면 육안으로도 마주할 수 있는 신흥강국 중국 사이에 위치한 그리고 북으로 한 민족이라 하지만 동상이몽 북한과 남보다 못한 이웃 일본 사이에 끼인 대한민국의 운명은 언제나 그 자신보다도 외적 동인에 의해 바람잘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교육을 통해 배워온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용비어천가'는 아니었지만 '현실'보다는 '민족적 대의'에 맞춰 편제된 역사 였다. 몽고에 대항한 고려의 대응은 '삼별초의 결사 항전'이었고, 조선 말기 고종 대에 겪은 외세의 침탈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등등,. 이에 1월 29일 부터 5부작으로 바영된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은 그런 기존의 역사에서 한 발 비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지나간 역사를 '반면교사' 하고자 한다.





투키디데스에 빠진 한국 

무엇보다 이런 '현실주의적 역사학'의 필요를 바로 지금 시점 '외교적 위기에 봉착한 한반도 정세'에서 길어 올린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 아테네와 스파르타 전쟁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기존 패권 국가와 신흥 강대국이 부딛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최근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는 미국과 그런 미국을 상대하며 자국의 패권을 확장 시켜 나가는 중국,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러시아,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용어다.

하지만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우리 역사에서 그리 생소한 상황이 아니다. 일찌기 삼국 시대 이래 한반도는 늘 위기와 선택의 함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당과 패권 타툼을 벌이고 있던 고구려,  그리고 일본 까지 그 영향력을 뻗친 백제 사이에 끼인 신라의 풍전등화 운명이 그러했고, 남하 정책을 벌이며 성장해 가는 거란과 국경선을 맞닿은 고려가 그랬고, 폭풍 성장하는 강국 몽골을 상대한 후기의 고려가 또한 그러했다. 명청 교체기에 갈피를 잡지 못한 병자호란 시기의 조선이 다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한반도를 판으로 이권 쟁투를 벌였던 개항기의 조선이 그러했다.

그리고 다큐는 바로 이런 위기의 한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그 첫 장을 연 건 김춘추의 신라이다. 624년 백제의 대야성 공격으로, 그리고 내부 정치의 혼란으로 위기에 빠진 신라, 그 위기를 당시의 리더 김춘추는 고려와의 외교적 연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당시의 적국이었던 고려로 솔선수범하여 찾아갔지만, 결과는 실패, 그 자신이 억류되었다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채 도망친다.

하지만 다큐는 국가적 위기에 빠진 리더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 타 국가와의 적극적 해결을 나선 점에 높은 평가를 한다. 고려에서 실패한 김춘추는 당시 고려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당을 차선의 해결책으로 택한다. 늘 육전으로 고전했던 당은 이에 적극적으로 신라와 제휴하여 바다를 건너 백제를 치고, 그 여세를 몰아 고려 정벌까지 하며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한 견인차가 된다.

물론 신라의 삼국 통일 그 자체는 최근 재야 역사 학계의 문제 제기와 함께 이론의 여지가 있다. 과연, 백제 왕국과 거대한 고려의 제국, 그 영토의 상당수를 잃은, 그리고 통일 신라 내내 백제 영토 내에서 있었던 부흥 운동 등으로 인해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해 재론의 여지는 남는다.

그러나 다큐는  가만히 있었다면 백제와 고려의 협공으로 국가적 존망이 위태로웠을 신라가 그 위기를 역으로 활용하여 현실주의적 외교 정책으로 오히려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거듭난 실리주의적 방식을 높이 산다. 뿐만 아니라, 백제를 패하고, 이어 고려까지 정벌하러 나선 당과의 관계에서 김유신이 이른바 오늘날로 치면 '군사 작전권'이라 할 수 있는  장수 김문영에 대한 보호는 제휴는 하되, 자국의 패권을 놓치지 않는 성공적 사례로 기록한다.

첫 회 신라의 사례를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열강의 사이에서 고립되기 쉬운 한반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리적 외교 정책이며, 그 실리적 외교정책을 뒷받침 하는 건 바로 '자강'의 국력이라는 것이다.




실리적 외교와 자강의 국력, 그 두 마리의 토끼 

그 첫 외교적 실리의 사례는 이미 우리도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는 서희의 외교적  승리이다. 하지만 고려가 처음부터 현실주의적이었던 아니다. 당시 남하 정책을 펼치고 있던 거란이 고려와의 유대를 위해 사신을 보냈을 때, 발해를 패망시키고 들어선 거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려는 사신을 죽였다. 그 결과는 거란의 침공.

하지만 남하 정책에 발목이 잡힌 거란의 속내를 읽은 서희가 나서  오히려 강동 6주을 얻는 혁혁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에 이르른다. 명분보다 실리을 앞세운 전형적인 외교전의 승리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이후이다. 서희는 그런 외교전에서 얻은 강동 6주 등 압록강 국경선을 구축하기 위해 과로사를 할 정도로 고려는 이후의 대비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20년 뒤 고란은 다시 침입을 강행했는데, 이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감찬의 살수 대첩으로 거란을 고려는 성공적으로 물리친다. 하지만 여기서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당시 현종이 수도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아가 방어선을 쌓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방어선'은 그 다음 회차인 몽골 침략 시 강화도 천도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고립과 대비된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강화도로 옮기려 했으나 그 조차 시간이 여의치 않아 피난처로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남한산성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를 포기하지 않고 앞서 나아가 방어선을 쌓는 것과 강화도로의 천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몽골이 침략해 왔지만 혹시나 군대가 다시 자신들처럼 쿠데타를 일으킬까 두려운 무신 정권은 군대를 내보내는 대신 수도만 강화도로 옮겼다. 수운을 이용하여 세금을 걷을 수 있고, 그 덕택에 왕과 귀족들은 유지할 수 있엇지만, 국토는 몽골에게 유린당했다. 바로 이 리더의 자세 차이이다. 그래서 병자호란 당시에도 앞서 방어선을 치면 설사 패배하더라도 온 나라가 짓밟히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하지만, 몽골의 무신 정권도, 병자호란 당시 인조도 그런 건 염두에 없었다.

다큐는 바로 그 지저에서 리더의 자세를 논한다. 오늘날 우리가 기리고 있는 '헤이그 밀사',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국가의 대표로서 나라를 지키기 보다는 언제나 외세의 힘을 빌어 자신의 '왕권'을 보존하려 했던 고종의 지극 히 타산적인 외교 정책이 있다고 다큐는 논박한다. 외교적 '균형자'도 자국의 기반이 우선되어야 가능하다는 당연한 결론 앞에 일본의 힘을 빌어 , 그게 안되면 러시아의 힘을 빌어, 또 그게 안되면 미국에 읍소하고, 유럽 열강에 기대려 했던 고종에게 ''망국'은 예정된 결과라 다큐는 짚는다.

각국의 석학과 국내의 유수한 역사 학자들의 입을 빌어 다큐는 말한다. '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 한국, 만약 한국이 아프리카나 유럽, 심지어 다른 아시아 지역에 있었더라면 한국은 지역적 패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지저악적 위치는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다큐는 오천년 한국사의 사례를 냉철하게 들며, 그 어느때보다도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적 관점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 외교적 선택에 '자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른바 '국뽕'을 배제한 한국사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 진짜 한국사인데, 우리는 여태 색안경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롭지 않은 현실인데, 그래서 새로웠던 역사 이야기이다. 특히, 현실주의적 외교와 그를 뒷받침한 자강 정책 강조도 그렇지만,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바라보는 청과 관련하여, 우리 안의 '중심과 타자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 제기는 오늘날 제국 미국과 여전히 우리에겐 '떼놈'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원론적인 '반면교사'라는 점에서 더더욱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8. 2. 8. 16:46

다시 또 한 집에 모여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바로 2월 5일 jtb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이다. 이제 시즌 2까지 완주한 <청춘시대>처럼 이들도 한 집에 모여산다. 그런데, <청춘시대>의 청춘들이 셰어 하우스를 찾아 각자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면, <와이키키>의 청춘들은 그들이 함께 모여 게스트 하우스를 차렸다. 한쪽은 세입자고, 또 다른 한쪽은 사장님인데, 어째 상황은 후자가 더 나쁘다. 물이 끊기고, 조만간 전기도 끊길 예정이란다. 


꿈을 잠시 유보한 청춘들의 고전기 -모던 파머, 그리고 으라차차 와이키키
<모던 파머>라는 작품이 있다. <으라차차 와이키키>에 참여한 김기호 작가의 2014년작이다.  sbs를 통해 방영되었지만, 평균 4%를 오르내리던 이 주말 드라마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드라마에 유한철 역으로 출연했던 이시언이 극중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다 물렸던 웃픈 에피소드가 예능을 통해 방영되며 괴작(?)으로 드라마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정도다. 



하지만 <모던 파머>는 '귀농'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사회적 화두인 시점에서 발 빠르게 젊은이들의 '귀농'을 담으려 했던 드라마다. 물론 '코믹'하게. 인디 밴드 '엑설런트 소울즈'을 꾸렸던 네 청년, 하지만 그들의 음악적 꿈을 도시는 품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귀농', 농사도 짓고, 다시 음악도 해보겠다던 청년들 하지만, 그들의 '귀농'은 그 시작부터 해프닝이다. 

이렇게 2014년 '꿈'을 위해, '꿈'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2018년으로 오면 그 대상이 '농촌'에서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뀐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의 꿈은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뛰어넘는 영화 감독을 꿈꾸는, 그러나 현실은 회갑 잔치 영상이나 찍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청춘 강동구(김정현 분), 믿고 보는 배우를 꿈꾸지만 역시나 현실은 주연 배우의 손가락질 하나에 그의 배우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단역 배우인 이준기(이이경 분), 말이 좋아 작가지 돈이 되는 글이라면 자소서 대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다하지만 현실은 편의점 알바인 봉두식(손승원 분), 이들 세 친구가 자신들의 꿈을 위해 벌인 사업이 바로 '게스트 하우스'다. 

이렇게 드라마는 '꿈'을 위해 '현실'을 택한 청춘들의 딜레마를 밑천으로 삼는다. 그리고 '귀농'을 했던 청춘들이 배추를 키우기도 전에, 시골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해프닝의 연속이었듯, <와이키키> 역시 하와이의 로망 와이키키 해변을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으로 작명했지만, 현실은 '중국 특수'가 끊겨 손님 구경한 지가 한참 되어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길, 거기에 남자 셋이 그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절절매는 '자가당착'의 상황이다. 

찰리 채플린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문구 그대로,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오랜 연인과의 커플링을 궁색하게 찾아 헤매고 팔까 고민하는 처지에 놓인 강동구를 비롯한 세 청년의 상황은 매 장면 웃긴데, 어쩐지 그 뒷맛은 99%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하다.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그려내는 청춘의 방식 
<청춘 시대> 시즌1,2는 셰어 하우스를 배경으로 그곳에 모인 청춘들의 이야기를 곡진하게, 감성적으로 그려내어 동시대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과연, 그 '감성'과 '사연' 대신, 해프닝과 웃픔을 택한 <와이키키>에 대한 공감은 어떨까? 

<모던 파머>를 회자시켰던 장면이 이시언의 가슴에 흐르는 우유를 핥아먹는 강아지였듯이, 첫 회 <와이키키>는 또 다른 수유 해프닝을 다룬다. 세 청년의 집에 몰래 아이를 놓고 도망쳤던 한윤아(경인선 분)가 우여곡절 끝에 같이 지내며 모유 수유의 고통을 토로하고, 유축기, 마사지 등 젊은이들에겐 문화적 충격을 주는 장면은 마치 <모던 파머>의 오마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즉,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선택한 젊은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웃픈 웃음'이다. 시트콤과 같은 웃픈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소동극이다. 

거기에 일찌기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를 비롯한 외국 영화에서 부터, 2008년 kbs2를 통해 방영된 <아빠 셋 엄마 하나>도 비슷한 설정인 '아기'와 아기 엄마를 둘러싼 육아 상황극은 익숙하지만, 언제나 대중적인 호감의 소재이다. 과연 이 '대중적'인 소재와 함께, <와이키키>가 2000년대 화제의 시트콤 <세 친구>만큼의 화제성을 얻을 수 있을 지. 김기호 작가 버전 청춘 시대가 2018년 청춘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를. 

by meditator 2018. 2. 6. 16:02

<나쁜 녀석들> 시즌 1의 최종회 11회의 시청률은 4.3%, 최고 시청률은 5.9%였다. 물론 <나쁜 녀석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마동석이 주연한 <38사기동대>에 의해 그 기록은 깨졌지만, 그 당시까지 ocn최고의 시청률이었다. 2월 4일 종영한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의 16회 최종 시청률은 평균 4.8%, 최고 5.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는가 하면, 시즌1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성과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유종의 미'에 도달하기 위해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는 수많은 희생을 치뤘다. 애초에 우제문(박중훈 분) 검사와 함께 의기투합했던 '나쁜 녀석들' 팀, 허일후(주진모 분), 장성철(양익준 분), 노진평(김무열 분), 한강주(지수 분), 그리고 신주명(박수영 분), 양필순(옥자연 분) 중 마지막 회 엔딩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3명, 우제문, 허일후, 한강주, 길고도 지리했던 16부의 서원 시 악의 세력 구축 작전에서 이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싸움을 해왔다. 

시즌 1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모아 더 나쁜 녀석들을 소탕하는 강력계 형사와 그의 휘하에 모인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내걸고 결국 남구현 경찰청장과 오구탁 형사, 오재원 특검의 사적 복수와 이정문, 박웅철, 정태수 사이에 얽히고 얽힌 구원을 엔진으로 시리즈를 밀어 붙였다. 그에 반해, 시즌 1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저 '서사'의 부실함으로 지적받았던 것에 심기일전했던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이하 악의 도시)>는 서원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나쁜 녀석들과 더 나쁜 녀석들의 충돌을 그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16부의 <악의 도시>는 서원시에 깊게 뿌리박은 악의 세력 척결을 위한 길고 처절한 싸움의 시간이었다. 검찰 내 아웃사이더 검사 우제문(박중훈 분), 그는 검찰 총장의 명을 받아, 다시 한번 오구탁 형사의 방식으로 악의 세력을 척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서원시를 장악한 채 재개발 사업을 독점하며 서원시민들에 기생하는 악의 세력 조영국(김홍파 분)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그가 끌어모은 건 동료 수사관의 죽음에 상처를 입은 신입 검사 노진평과 몇 년전 조영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 동료를 배신했던 전력이 있는 비리 형사 장성철, 피습을 당한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홀로 나선 '형받이' 한강주, 전직 동방파 주먹이었던 이제는 그저 식당 주인이 된 허일후 등이었다. 

조영국을 잡기 위해 전면전을 펼친 이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영국과 동방파를 척결하기 위헤 이들의 그물에 걸린 이는 시즌 1에서 처럼 이들을 모이게 했던 검찰총장 이명득(주진모 분)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돌아오고 '적폐' 세력으로 물러나게 된 이명득은 우제문을 앞세워 자신의 이권을 보존하는 한편, 새 시대의 세력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쁜 녀석들'을 이용했던 것,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를 희생시키며 적폐 세력 이명득을 몰아낸다. 

그게 겨우 7회였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이명득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반준혁(김유석 분)검찰 수뇌부가 새롭게 꾸려지고, 서원시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꾸려진 특수 3부. 그러나 새 시대는 쉽게 오지 않았다. 새 시대에 길을 비켜준 우제문과 달리, 기꺼이 특수 3부에 합류한 노진평 검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 과정에서 정작 새 시대의 도구였던 특수 3부가 의혹의 대상이 된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다시 모인 남은 자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새 시대를 등에 업고 여전한 이권의 수호자가 된 경찰 세력과, 그를 비호하는 새로운 검찰 권력과 대립하게 된다. 

일진일퇴, 그때마다 피칠갑을 하며 온몸을 던진 우제문을 필두로 한 '나쁜 녀석들'은 황민갑(김민재 분)형사를 중심으로 경찰 내 자리잡은 이권 세력들을 제거하고, 여전히 구악을 끊어내지 못했던 반준혁 검사장 조차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이제 정말 조영국만 제거하면 된다며 마지막 일전을 결심했던 '나쁜 녀석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친 건 조영국조차 하루 아침에 재개발 사업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배후'이다. 죽어가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usb칩을 삼켰던 장성철 형사의 살신성인 덕에 결국 시민이 뽑은 시장이라 자화자찬하며 재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배상도(송영창 분) 시장과 그의 스폰이었던 누나 배여사(김지숙 분)까지 구속시키며 서원시 악의 척결 작전,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이 장황했던 서원시 나쁜 녀석들의 작전은 동방파와 악덕 기업인 조영국을 주적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그 악의 세력의 구축 과정에서 그들이 만난 건 전현직 검찰 총장과, 각종 경찰 내 이권 세력, 그리고 시민의 손으로 뽑힌 민선 시장까지, '정치와 경제의 협잡 카르텔이었다. 시즌 1에서 단순했던 '악'의 실체는 시즌2에 오며 16작으로 늘어난 회차만큼, 길고 지난했던 그리고 뿌리깊은 악의 연대기를 밝혀낸다. 




투혼과 떼싸움, 시리즈의 본질 
그 연대기의 실체를 밝히는 방식은 '나쁜 녀석들'과 그들의 온몸을 던지는 투혼이다. 15회, 장성철 형사가 그의 수하들에게 모처럼 '과학 수사'라며 cctv를 따라 추적하는 장면이 '실소'처럼 <악의 도시>의 전 회는 사람과 사람이, 떼거리와 떼거리가 부딪치며 온몸으로 피터지게 맞고 싸우는 전쟁터였다. 길거리에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동료에 대한 트라우마로 사무실에서 펜대나 잡고 싶다던 노진평 검사의 소원이 무색하게.

그리고 그 싸움의 색채다게 16부의 싸움을 밀어붙인 건, 동료들의 희생이었다. 서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과거의 사연으로 인해 모래알같던 '나쁜 녀석들' 팀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의 죽음, 그리고 노진평 검사의 희생으로 동력을 얻는다. 드라마는 21세기 한 도시를 배경으로 했지만, 싸움의 방식과 논리는 일찌기 서부극이래 '동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그 원초적인 싸움, 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방식에 따라 드라마는 매회 화끈하다 못해 피칠갑의 액션씬이 서비스처럼 등장한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를 완주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나쁜 녀석들>의 본질은 기존 수사 드라마에서 할 수 없었던 법의 경계를 넘어선 '나쁜 녀석들'을 앞세운 이 무법의 폭력적 혈투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그런 감상을 더한 건, 시즌 1에 비해 공들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시즌 1에서 밀도높았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성에 비해, 여러 등장 인물들의 희생과 다양한 검찰, 형사, 범죄자 등 복잡한 군상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헐거운 등장인물간의 관계성 때문일 지도 모른다. 시즌 1에 김상중이 분한 오구탁 형사가 보여준 그 자신이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기꺼이 그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 이율배반이 시즌의 중심을 꽉 잡았다. 그에 비해 시즌 2의 우제문 형사는 끊임없이 그의 입으로 이렇게 살지 맙시다 했지만, 어쩐지 그의 구심력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제 시즌 1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출연료가 올라서 더 이상 시즌 2가 힘들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시즌 1의 마동석, 박해진 등의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빛났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까지 내세우며 자신의 형기를 딜하기 위해 때론 의심하고 미워하고 질시하며 결국은 싸움의 과정에서 한 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미묘한 인간애의 과정이 어설픈 서사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매력이었다면, 이미 모두가 '악'의 척결이라는 공통의 목표에서 확실했던 시즌2의 주인공들은 시즌 1에 비해 인간적 매력이 덜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시즌 2의 동인이 된건, 그들 각자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동네 식당집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죽은 동료의 복수를 구하기 위해 라는 '미담'이 시즌을 이끌어 가는 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쁜 녀석들에 의한 보다 더 '나쁜 녀석들'의 소탕 작전이라는 고유의 설정과, 이제는 클리셰가 된 듯한 몸과 몸이 전면으로 부딪치는 떼 싸움의 액션은 여전히 <나쁜 녀석들> 시즌 3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정의가 완성되지 않은 한에서. 
by meditator 2018. 2. 5. 16:30

햇수로 무려 6년만이다. '능력있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차윤희로 분했던 김남주가 다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선 게.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김남주가 분한 차윤희는 사회에서의 성공을 삶의 모토로 삼고, 그를 위해 '외조'가 가능한 남편을 원했다. 그러나, '행운'이라 생각했던 그 이상형 방귀남(유준상 분)에게 잃어버린 가족이 나타나면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 차윤희에게는 층층시하 시집살이의 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6년만에 돌아온 김남주는 그때처럼 다시 한번 '일'로 승부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녹록치않다. 모두가 호시탐탐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해 도발한다. 서른 중반 삶이 무르익을 나이에 그녀는 위태로운 공공의 적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문득 깨달은 듯이 전한다. 학교 수업 시간, 사회 각 내노라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쥔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강단에 선 사람들 중 여성 거의 대부분이 '싱글'이었다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그저 한 두 사람이었다면 아이는 '취존'이라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서 사회에 진입한 여성들이 겪는 일과 사랑, 결혼의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를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강단에 선 '선배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른바 '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번듯하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허용하는 듯하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만든 천장'이 번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용어는 드러낸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며 이른바 성공을 일궈나가기 위해 여성들은 몸을 던져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숴야 한다. 



다시 한번 커리어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 
그렇다면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수기 위해 요구되는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극단의 예를 다시 한번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가 분한 <미스티>의 고혜란이 보여준다.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편을 향해 '배부른 자들의 한담'이라 퍼붓는 고혜란의 모습에서, 그녀의 지난 삶이 여유롭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난리를 치며 그녀를 요양원으로 불러들인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서른 중반의 그녀를 여전히 이십대 중반으로 착각한 채 다그친다. 잠시라도 자신에게 틈을 내어주지 말라고. 관리하라고. 그래서 성공하라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냉담했지만, 그녀는 그 어머니의 말처럼 살아온 듯하다. jbc 사회부이 말단 기자로 입사했던 그녀는 이제 명살상부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어찬 지 어언 7년 최장수의 여성 앵커로서 매년 올해의 언론인 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그녀의 삶은 위태롭다. 

말단 기자로 출발했던 그녀는 선배 앵커 이연정(이아현 분)을 밀어내고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는 뱃속의 아이와 남편을 희생시켰다. 아이를 그녀 스스로 지운 그 날부터 남편은 한 집에서 살뿐 남이 되었다. 그녀가 필요로 할때까지는 남편의 자리에 머무르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하는 남편. 남들이 보기엔 검사, 그리고 변호사와 앵커의 황금 조합이지만, 그녀의 집엔 냉기가 흐르고, 배란일마다 시어머니는 한약을 지어들고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아이까지 희생하고 얻은 자리, 이제 그 자리를 발판으로 좀 더 큰 물에서 노닐고 싶었던 그녀에게 뜻밖에도 방송가의 젊은 물 운운하며 후배 기자 한지원(진기주 분)가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드라마는 이제 방출 위기에 놓인 여성 앵커 고혜란을 중심에 세운다.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에게 밀려나 그녀의 뒷담화를 즐기며 그녀를 괴롭히는 선배 아나운서 이연정과 사회부의 신망을 얻으며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을 내세워 여성vs. 여성의 대립각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드러난 건 고혜란에 밀려나서 그녀가 쓰러질 것을 '고소원'하는 패자 이연정과 호시탐탐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유망주 한지원의 '여여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들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하는 시청률 지상주의자 국장 장규석(이경영 분)과 역시나 그녀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긴 채 한지원을 무기로 그녀에게 복수를 절치부심하는 오대웅의 연합 세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건 사회만이 아니다. 묵묵히 한약을 지어오는 시어머니, 남들이 보기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한 여성이 되기 위해 그녀가 감내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첫 방송을 보인 <미스티> 속 고혜란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한다. 5년째 수상할 언론인상의 수상이 여의치 않자 그녀의 표정은 굳어진다. 7년째 그녀가 선배를 밀어내고 차지한 그 앵커의 자리가 위태롭자 그녀는 밀려나는 대신 당당하게 승부한다. 그리고 나가도 스스로 나가고 싶을 때 나간다고. 분명, 앵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이를 지운 여자,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후배를 짓밟는 고혜란의 태도와 방식은 틀렸지만, 유리 천장 아래 허덕이는 이 시대에서 묘하게 고혜란에게 마음이 열어진다. 그런데 심지어 그녀가 살인 혐의까지, 이 이율배반적인 동질의 감정 속에 드러나는 진실에서 드라마는 이 시대 여성들의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by meditator 2018. 2. 3. 15:26

역시나 신원호란 감탄사를 불러온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신드롬 덕분에 주춤했던  sbs의 <리턴>, 그러나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종영과 함께 시청률은 매회 상승세, 조만간 20%를 찍을 기세다. (12회 16.0%,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리턴>의 인기 비결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매해 벽두를 열었던 ,이른바 sbs식 장르물의 성과를 우선 살펴보면 흥기롭다. 2015년에서 2016년을 이은 히트작 <리벰버>, 그리고 2017년을 연 <피고인>은 모두 장르 드라마를 표방함과 동시에 20%를 넘는 '대중적 인기 몰이'에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그 '성공'에 불을 지핀 건 바로 드라마 속에 저마다 개성넘치는 연기로 강력한 악의 축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오랫동안 단골 서브남 전문이었던 남궁민 배우에게 그 자신의 새로운 면을 각인시켜 이후 <김과장>의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건 바로 <리멤버>의 남규만이었다. 그리고 <피고인>하면 감옥에 간 주연 지성 못지 않게, 일인이역으로 때론 순정파로, 때론 끝없이 야비했던 차민호, 차선호 역을 소화해낸 엄기준의 열연이 떠오른다. 

<리턴>의 질주 
그리고 이제 2018년을 연 <리턴>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들은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은 고현정이나, 물의를 빚은 후 잠시의 공백기를 가졌던 이진욱이 아니라, 그들의 맞은 편에서 범죄를 모의하고 촉발시키는 펜트 하우스 황태자 친구들 강인호(박기웅 분), 김학범(봉태규 분), 오태석(신성록 분)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봉태규의 밑도 끝도 없는 또라이식 폭력성이나, 사이코패스란 이런 것이다의 정의를 새롭게 갱신하고 있는 신성록의 연기는 마치 이들이 주인공인 양 발군이다. 의중이 모호한 변호사 최자혜로 분한 고현정의 미묘한 연기와 다혈질 형사 이진욱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리턴>을 보는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건 이들의 '난장'이다. 그리고 그 '난장'에 도를 더하며 이제 대놓고 공중파에서 사람 사냥까지 하는 것으로 드라마 <리턴>는 '크레센도 몰토'(극히 큰 크레센도)로 시청자를 유인한다. 

이렇게 방송 심의를 넘나드며 일단 시청자의 관심 끌기에 성공한 드라마 <리턴>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걱정스러운 건 공중파 드라마로서 치달리는 자극적 전개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극적 전개'라는 과한 조미료의 근원으로 유추될 수 있는 '표절'이 진짜 <리턴>의 문제다. 



'가족, 명예, 돈 모든 것을 충족한 친구들에게는 단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공간이 필요했던 것. 그래서 그들은 비밀스런 펜트하우스를 만들고 서로 열쇠를 나누어 가지고 즐기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과 그곳에서 밀회를 즐겼던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저 위의 줄거리는 <리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작품이라고 할 만한 드라마의 주요 설정이다. 매회 드라마시작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바로 저 친구들의 펜트 하우스와 그곳을 공유했던 염미정의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청자들은 안다. 그리고 드라마는 바로 그녀를 누가 죽였는가? 그리고 그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끌어 진다. 

같고도 다른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 
그런데 저 '줄거리'는 <리턴>의 것이 아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청소년 관람 불가의 스릴러물인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줄거리이다. 심지어 영화 속 빈센트(칼 어번 분)의 내연녀는 그의 부인에게 질투를 하며 접근하려고 하고, 심지어 빈센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친구들이 모인 파티에 불청객으로 나타난다. 이에 빈센트는 그녀와 이별하기 위해 펜트 하우스에 그녀를 데려가 혼자 나온 이후 그녀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빈센트 그리고 친구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과 반전, 이 진실과 반전을 추격하는 여형사. 

런닝 타임 100 여분의 영화와 32부작(16부작)의 드라마의 호흡은 다르다. 영화 속 여형사는 드라마로 오면 여자 변호사로 변화되었고, 영화와 동일했던 설정은 이제 의사 김정수(오대환 분), 형사 김동배(김동영 분), 안학수(손종학 분)의 등장으로 사건의 각이 넓혀진다. 그렇다면 <리턴>은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표절이 아닐까? 

이는 마치, 음악 작업 가운데에서 두 마디 이사이면 표절이고, 두 마디 이하면 표절이 아니라는 '법률적 경계'와도 엇비슷하다. 분명 두 작품을 본 사람들은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유사점을 당연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는 영화가 가진 애초의 설정을 변주시키며 아니 우리 드라마는 영화와 달라요라고 주장 할 수 있다. 이는 얼마전 좋은 드라마란 평가를 받으며 종영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표절인 듯 표절 아닌 관행? 
88만원 세대의 여주인공은 머물 곳을 얻기 위해 한 남자의 집에 세를 살게 된다. 집에서 결혼 독촉을 받는 남자는 자신이 하던 일에서 마저 실패한 채 실의에 빠진 채 낙향할 처지에 놓인 여주인공에게 계약 결혼을 제의하고 두 사람은 한 집에서 계약 부부로 살게 된다. 한 집에서 살며 계약 부부라는 이 설정은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일명 니게하지)>와 유사함으로 논란이 됐다. 

건물에 글자를 새겨넣은 포스터에서 부터, IT 직원이며 사회성이 떨어지며 타산적인 남자 주인공에,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집에 살면서 '계약 결혼'을 하는 이야기는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표절'을 인정하는 대신, 결혼도 포기하고, 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세대 공감과 수평적 남녀 관계에 대한 시도로 그 논란을 돌파했다. 

그러나 15.6회에 들어서 내내 그 누구보다도 성숙한 자존감 넘치는 캐릭터였던 여주인공이 돌변한 듯 자기 중심적 해프닝을 보인 것이 일본 원작과는 다른 주제 의식에대한 과도한 천착이 부른 '과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표절'이라는 부담을 가진 드라마는 그 부담을 탈피하기 위해 표절작과는 다른 무리한 시도를 보인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보여진 여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 변화는, <리턴>으로 오면 매회 점층되는 '자극적 설정'과 '폭력성'으로 대응된다. 애초에 청소년 관란 불가였던 영화의 설정을 드라마에 옮겨 온 것부터 무리수였지만, 그 설정의 표절을 피해가는 드라마의 전략이 화제성의 주인공인 봉태규와 신성록의 악행 에스컬레이션인 듯해 아쉽다. 

물론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결국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갔듯, <리턴> 역시 아마도 '표절' 논란을 변주된 서사를 통해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찜찜한 표절 푯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와 관련된 소감이 돋보인다.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설원 위 열차라는 설정말고는 많이 달라진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 하지만 봉감독은 설원 위 열차라는 그 모티브가 위대한 거라 단언한다. 이렇게 표절인 듯 표절이 아닌 듯한 작품이 매번 되풀이 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중국 콘텐츠들의 우리 작품 베끼기를 가지고 갑론을박할 처지가 될 수 있을지. 콘텐츠의 가치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존중에 대한 절차적 예의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8. 2. 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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