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으로 인해 결방에 이어 시간대를 변경하며 방영된 <황금빛 내 인생>, 비록 그간 45%를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밤 10시로 바뀐 변경된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30%를 넘는 안정된 시청률로 '인기 드라마'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2월 17일 방영분 34.7%,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달리, 2워 17,8일 방영된 46, 47회에 대해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폭력적 가부장 노양호의 실각 
1주일만 '연애'하기로 했던 주인공 최도경(박시후 분), 서지안(신혜선 분) 커플, 하지만 이들은 '한시적 계약 연애'조차 여유롭게 마무리할 수 없었다. 스키장으로 보내진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한 최도경은 지안에 대한 감정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할아버지 병실로 달려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해성가의 후계자 최도경에 대한 찌라시에 이어, 최도경이 보낸 창업 성공 문자를 받은 노양호 회장은 쓰러지고야 만다. 응급 수술 끝에 위기는 넘겼지만, 정작 그에게 닥친 위기는 '건강'만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연이어 터지는 서지수 실종과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들이 칼을 겨눈 것은 바로 노명희와 최도경, 그리고 그들을 내세운 노양호였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노양호 대표 이사에 대한 해임안 상정,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노양호'는 예의 그 만의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건, 바로 손녀 딸을 바꿔치기한 서태수를 불러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 아니 협박한다. 여전히 20년 전 자신의 딸 노명희의 실수로 벌어진 손녀 딸 유괴 사건을 덮기에 자신의 권력을 십분 이용하는 노회장, 서태수의 희생에 대한 대가로 그가 제시한 건 '돈', 그게 아니면 그가 서태수의 집을 찾아가 뺨을 때리듯 무지막지한 '폭력적 처사'가 기다릴 뿐이라 강변한다. 


소현경 작가가 '노양호 회장'을 통해 그려내고자 한건, '끝물'인 '가부장제'의 허황한 잔해이다. 대표 이사 해임안에 대해 건재한 자신이 회의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사태가 일단락 될 것이라 확신하는 그의 '믿음'처럼,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에서 나오는 '권위'에 대한 굳건한 '자존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부장적 자존감'은 자신을 거역하는 대상에 대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단'이다. 자신의 초상권만을 보호해 달라는 서태수에게도 일말의 자비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권위'는 허망하게도 바로 자신의 둘째 딸과 사위의 '모의'에 의해 대번에 '거세'된다. 그는 '아버지'였다. 두 딸은 물론, 두 딸의 식솔들, 그리고 나아가 '해성'이라는 그룹의. 노양호의 '아버지됨'의 방식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일궈온 '가부장'의 방식이다. 자신의 '가솔'들을 '보호'하는 대신, 그들에게 '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또한 그 '보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하지만 그 '자신'이 곧 '해성 일가와 해성 그룹의 '보호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양호의 '가부장'은 유일한 후계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최도경의 '일탈'을 시작으로, 정작 그의 둘째 딸이 끊임없는 아버지의 편애를 이유로한 '반란', 그에 발맞춘 이사들의 '반기'로 마무리된다. 그는 힘있는 아버지이고 싶었으나 그 '아버지'는 자식들과 자신을 따르는 '가솔'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결국 '노양호'는 현대사 속에 '한국'을 산업 근대화 시킨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며, 이제 이 시대 '지는 해'가 되어버린 그들에 대한 순리로써의 '거세'이다.



죽음을 불사한 영웅이 된 아버지
그런 노양호에게 빰을 맞고, 이제 무릎까지 끓며 자식들의 삶을 읍소하는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노양호'와 같은 '가부장'은 아니지만, '상상암'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자리에 그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노양호가 산업화 시대를 일군 '성공'의 표상이라면, 서태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불도저같은 산업화의 열기가 사라져간 imf 이후의 가장을 대변한다. 

한때는 상사맨으로 세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가족들을 호위호식하도록 만들었던 서태수이지만, 불황을 넘지 못한 그의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이제 그는 맏아들이 결혼조차 포기할 만큼 무능한 가장의 처지에 놓여있다. 그 '무능'과 실패'의 색인을 자신의 몸에 아로새겨 '상상암'이란 기상천외한 병을 앓게 된 서태수,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많이 섭섭했던 그는 평생의 로망이었던 기타를 치며 '자신'으로 충실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가족에게 아픈 그가 필요하다. 

자신의 암 보험금을 타서 지안의 유학 학비에 보태려고 했던 서태수는 이제 자신의 가족에게 다시 닥친 딸 바꿔치기와 관련된 '찌라시'에 자신을 던진다. 노양호 회장의 강요어린 요구에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읍소했던 서태수는,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셜록' 못지 않는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딸 지안과, 지수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소현경 작가는 <황금빛 내 인생>의 악의 축을 노양호 회장으로, 그에 맞선 '선의'의 아버지의 대표적 인물로 서태수를 설정하며, 두 '아버지'들의 서로 다른 '아버지' 되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논한다. 전권을 행사하던 노양호 회장에 대한 둘째 딸 내외의 쿠테타를 통해 그를 실각시킴으로써 '폭력적 가부장'의 자중지난을 그려내는 동안, 그 공격의 예봉을 피하는 '수호자'로 또 다른 아버지 서태수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력적 '가부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족'의 중심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복권'을 시도하는 것이다. 


'
무리수'가 되어가는 아버지의 복권
덕분에 모든 서사의 중심에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딸바보였던 그를 딸들은 수시로 그리워하고, 그의 무능으로 인해 외면했던 아들들도 결국 '상상암' 이후 아버지를 다시금 이해하게 되어간다. 비록 지금은 날개를 꺾였지만, 그들이 지금 이자리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 서태수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자식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확신하는 방식으로. '상상암'을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할 정도로 그 개연성 여부에 갑론을박이 시끄러웠던 아버지 서태수 복권은 그럼에도 '오죽 죽고 싶었으면 암이 걸렸다고 생각했을까'란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거기서 더 한 발 더 나아가, 47회 서지안, 서지수와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에 대한 서태수의 활약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긴급성을 넘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비록 재계 서열 10에 못든다지만, 그럼에도 재벌가라는 해성의 정보 능력과 대응력이 '전직 상사맨' 서태수에 미치지 못한다는 웃픈 설정은 애교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셜록' 급으로 서태수가 활약을 하는 동안, 주인공 최도경과 서지안 등의 그간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젊은 세대는 뒷전으로 물러서 관망하는 상황은 결국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논란마저 불러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애'를 재구성하기 위해, 정작 성인이 된 자녀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아버지' 처분만 바라는 여전한 피보호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 도움을 주지 못한 딸에게 이제 암보험금으로 유학비를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설정을 과연 '가족애'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건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유학을 가겠다는 딸에 대한 여전한 가족이란 이름의 '지체'가 아닐까? 마치 한때는 가장 아름다운 동화였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시대와 함께 '이기적인 우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덧대여 지듯이, 아낌없는 부성애의 서태수는 어느 틈에 드라마의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는 화제작이었던 전작 <내딸 서영이>에 이어 다시 한번 갸륵하고 극진한 '부성애'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애를 복원시키고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금빛 내 인생> 방영 내내 서태수의 존재감은 '작가'가 비중을 주고 '방점'을 찍으려 하면 할수록 개연성에 대한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내딸 서영이>의 극진한 부성애는 비록 몇 년이지만 달라진 시절에 자충수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는 그저 소현경 작가의 필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미 2018년 소현경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시대는 저물어 버리고 말았다는 반증처럼 여겨진다.  서태수를 설득하고 그의 부성애를 포장하려 하면 할수록 서태수에 대한 개연성이 떨어지는 묘한 상황은, 이미 이 시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가부장제'의 유효 기간이 종료되었음을 <황금빛 내인생>이 보여주고 있다. 

소현경 작가는 그간의 '가족지상주의'를 내세운 타 주말 드라마와 다른 서사로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를 짚어왔지만, 이제 종반을 향해 달리는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부성애'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복원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작가 자신도 그런 시대 역행적인 상황에 부담을 느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47회 엔딩 부분에서 '상상암'이 '진짜 암'이었다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드린다. 그래서 오히려 묻게 된다. 과연 이 시대의 '가족'은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 세대의 아낌없는 헌신을 통해서만 복원되어야 할 것인가 라고. 서태수가 극진해 지면 질수록 '가족'을 회의하게 된다. 

by meditator 2018. 2. 19.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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