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dle age, 중년은 어떤 나이일까? 일찌기 공자께서는 마흔을 불혹(不惑-마음이 흐려져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라 하셨고, 오십을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알게 된 나이)라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께서 정의를 내린 나이의 한계는 70세였다. 인간이 대략 70년 쯤 산다는 전제 아래서 불혹의 마흔이 등장하고, 지천명의 오십이 규정된다. 그렇다. 불과 십 여년 전만 해도, 마흔하면 인생을 제법 살아낸 나이였다. 하물며 오십은 노년의 문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백세 시대가 도래했다. 마흔에 혹하지 않고, 오십에 노년이라 하기엔 자기 앞가림하고 살아가야 할 날이 오십 년이나 남아 버렸다. 또한 88만원 세대가 등장했고, 젊은 세대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나이는 자꾸만 미뤄졌고, 그에 따라 결혼도 늦어졌다. 서른만 해도 '노'자라 붙던 시대가 무색하게, 이제 마흔 정도 되어야 안정을 찾고 결혼을 할 만한 시대가 되어간다. 그런 시대에, '중년'은 예전 시절에 안정적 불혹의 세대가 아니라, 한참 세상에 '미혹'될 수 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한참' 세상을 살아가야 할 중년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들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찾아왔다. jtbc의 <미스티>와 2월 20일 4회 연속으로 첫 선을 보인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이다. 이들 두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주제 의식을 통해 우리 시대 중년의 코드를 살펴보자. 



안개 속에 숨겨진 욕망 
케빈 리(고준 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테리 스릴러 <미스티>에는 욕망이 분출되고 충돌한다. 이미 케빈 리의 등장 이전부터 고혜란(김남주 분)은 '무의식'적으로 그와의 지난 욕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녀의 '숨겨진 욕정'은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과의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의 반증이다. 외려 막상 그녀 앞에 나타난 케빈 리에 흔들리지만 그녀를 더 애닳게 만든 건 지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그녀의 마지막 목표가 될 청와대 대변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중년의 남녀들이 몸과 몸으로 부딪치는 관계를 매개로 사건이 벌어지는 듯 보여지지만, 그 드러난 육체적 욕망 이면에 숨겨진 건 사회적 욕망이다. 아내와 남편이란 사회적 관계로서 제대로 정립되어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욕망, 9시 뉴스 메인 앵커 자리를 두고 벌이는 선, 후배 앵커 사이의 치열한 욕망, 그리고 사회적 상승 욕구, 그 각자의 이해 관계에서 배태된 사회적 욕망들이, 케빈 리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육체적 욕망으로 재조직되고 결핍되며, 분출되면서 진범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살인 사건으로 펼쳐진다. 

<미스티>속 중년의 남녀는 육체적 욕망 만큼이나, 이 사회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누리며, 쟁취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이들이다. 7년간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유지하고, 이제 조만간 청와대 대변인으로 승전하기만을 바라며 '가정'과 결혼마저 희생시킬 수 있는 고혜란이나,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며, 그녀의 전애인조차도 나꿔채고자 하는 한지원(진기주 분)나, 케빈 리를 남편으로 소유했지만, 그의 사랑에 결핍된 서은주(전혜진 분)나 모두 자신이 욕구하는 바에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바로 이 양보없는 욕망의 충돌, 그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그래서 <미스티>는 치정극 이상의 긴장감을 낳는다. 그곳에 미혹되지 않는 중년의 안정감이란 없다. 



상실의 세대, 중년
여전히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나이로 <미스티>가 중년을 그려냈다면,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반대의 지점에 자리잡은 듯 보인다. 이미 <애인있어요(2015)>를 통해 중년의 사랑을 현실감있게 그려내어 화제가 된 배유미 작가의 또 한번의 중년의 이야기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애인있어요>처럼 이미 상흔을 지닌 중년의 남녀로 부터 시작된다. 

마흔 다섯 갱년기를 걱정해야 할 나이, 파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면 '비아그라'라 오해 받기 딱 좋은 나이, 그 나이의 남녀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배유미 작가가 그려낸 마흔 다섯은 각자 마흔 해가 넘는 삶을 살아내면서 등이 휘어지도록 짊어진 버거운 개인사가 짊어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혹'하고 싶지 않은 나이, 하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 이 많아서 무서운 나이, 고독사가 걱정되고, 가진 것 없이 나이드는 게 무서워지는 나이다. 

그래서 그들의 만남은 그 '상흔'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의 강권 아닌 강권으로 시작된 소개팅, 하지만 '안순진(김선아 분)'이라는 이름 만으로 그녀를 만나러 나간 손무한(감우성 분)에게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떠올려지는 상실의 공감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앞에 나타난 안순진은 누수와 관련된 분란의 이웃이요, 가슴골이 보이는 옷으로 대놓고 그를 호텔방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뻔한 노림수의 소개팅녀이다. 이 현실과 기억의 골 사이에서 어긋나고 다시 만나지는 관계를 통해 드라마는 차근차근 그 상실의 역사를 치유하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한다. 상실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열정에 대한 모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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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미스티>와 상실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중년의 양 극단과도 같이 보여진다. 하지만, 이 서로 다른 주제 속에 풀려나가는 실타래가 그려내고 있는 건, 살 만큼 산 세대로써의 중년이 아니라, 아직 한참 살만한, 그리고 살고 싶은 나이 중년이다. 세상사 버리고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갈 만한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는 100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여전히 젊어야만 하는 우리 시대의 중년에 대한 강권과도 같은 명제를 대변한다. 단지 그 열심히 살아야 할 시대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를 뿐. 
by meditator 2018. 2. 21.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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