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3%로 출발했던 <미스티>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8회 6.324%에 도달했다. 6회 7.081%의 최고 시청률에는 못미치지만 여전히 화제성 면에서 압도적이다. 이제는 청와대 대변인을 바라보는 고혜란(김남주 분)의 전 애인 케빈 리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치정 미스터리의 외피를 입은 <미스티>는 하지만 그 내부에서 고혜란을 비롯한 각자의 욕망과 이해가 첨예하며 부딪치며 '치정' 그 이상의 '심리 스릴러'로써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건 당연히 고혜란이다. 이미 첫 방송부터 시청자의 시선을 대번에 빼앗아 버린 김남주에의한 고혜란은 그 존재로부터 탁월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메인 뉴스의 앵커라는 존재감을 목소리 톤부터 달리하며, 거기에 덧입힌 패션으로 완성한 '아우라'로 대번에 설득시킨 고혜란으로 <미스티>는 필요 조건을 완성한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가 내연남과의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뜨림으로써 반전의 관전 포인트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치정의 주인공'으로써의 여주인공이라는 코드 역시 김남주에 의해 설명된다.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여전히 섹슈얼한 여성으로서 욕심나는 이 이중적 코드를 배우 김남주의 준비된 캐릭터로 설득해 내며, <미스티>는 그 비밀의 화원에 성큼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를 지우면서까지 뉴스 앵커가 되고 싶은 여성,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앵커이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이 완벽한 여성, 하지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버린 이 '치정의 트랩'에 걸린 여성이 안개 속에 갇힌 비밀을 파헤치며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 늘 버거웠던 한 여성의 삶이다. 



소녀 고혜란, 자신의 과거로 부터 도망치다. 
은주(전혜진 분)를 만나고 온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이 혜란이 좋아했던 음악이라며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를 들려주자 혜란은 사색이 된다. 그리고 그 음악이 울려퍼지는 혜란의 꿈속, 어린 시절 명우(임태경 분)는 혜란에게 '너 이일과 상관 없다'며 혜란의 등을 돌려 세운다. 피를 묻힌 채 달려나가는 혜란, 그런 혜란을 바라보는 명우, 그 뒤에는 전당포 주인으로 추정되는 쓰러진 시체가 있다. 

그리고 아마도 혜란 대신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된 명우, 하지만 혜란은 그 시절 그 사건으로 도망쳐 나왔듯, 명우의 바램처럼, 그 때 그 사건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살았고, 태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고, 이제 그녀가 바라던 정치의 입문만이 남았다. 그런데 케빈 리의 아내로 그녀와 얽힌 은주는 남편 태욱을 통해 그 과거의 음악을 전해온다. 마치 <태양은 가득히>에서 요트에 묶여 나오는 시체처럼, 현재의 살인 사건은 과거를 물고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가 도망을 제대로 쳤던 것일까?



과거를 덮기 위해 그녀가 도망친 곳은?
검찰로 송치된 케빈 리의 사건, 그 수사의 키가 될 블랙박스 메모리 칩을 가지고 있는 서은주는 그걸 들고 고혜란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그 날의 영상을 남편 태욱에게 보여주고 사랑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그 칩을 검찰에 제시하고 살인죄에서 벗어나는 대신 치정의 치욕을 택할 것인가.

그런 은주의 '딜'에 혜란은 답한다. 자신이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케빈을 만난 그날,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라고. 그런 그녀의 후회는 7년 동안 진행했던 뉴스 앵커 자리가 위태로웠던 그 시간을 오버랩 시킨다. 마치 '공로상'처럼 다시 그녀에게 쥐어진 올해의 언론인상, 하지만 상의 부상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메인 앵커 자리에서의 '퇴출'이었다. 물러나도 자신이 원하는 때,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생각한 고혜란, 이렇게 나이든 여성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보도국의 '현실주의'에 그녀는 '케빈 리'라는 카드로 대응한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달려간 그곳에서 만난 건, 한때 그녀와 열정을 나누었던 이제는 케빈 리가 된 이재영(고준 분), 그리고 그의 곁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은주가 있었다. 

지나간 연정과 지금의 과업 사이에서 냉정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녀에게 케빈 리는 도발했고, 심지어 위협했고, 협박했다.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지탱해줄 카드이자, 동시에 그 쌓아올린 것을 한번에 허물어 버릴 폭탄같은 남자 케빈과의 딜을 위해 고혜란은 블랙 박스 메모리칩에 남겨진 비겁한 선택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이제 그녀를 케빈 리의 살인범으로 옭죄어 온다. 



고혜란의 마지막 승부처, 고혜란의 뉴스 나인
은주의 협박 아닌 협박, 다시 그녀를 옭죄어 오는 위기에 복도에서 주저 앉아버린 고혜란이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건 바로 '초심'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보도국이라며 청와대 영전을 만류하는 장규석(이경영 분)에게 고혜란은 반문한다. 그래서 나를 메인 뉴스 앵커자리에서 내쳤냐고. 그리고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막으려는 방해 공작에 고혜란은 바로 자신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유가 외압이 없는 보도를 하고 싶었던 그 언론인의 자세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피력한다. 

나이들어 아침 뉴스 등으로 밀려나는 처지 대신,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고혜란은 바로 그런 그녀의 방식으로 청와대 대변인 내정에도 불구하고 옭죄어 오는 체포의 압박을 고혜란의 뉴스 나인의 앵커로서 본분을 다함으로써 돌파한다. 정치권의 영전을 위해 정재계 커텍션에 대해 눈을 감으라는 국장의 회유도 아랑곳없이 그녀가 했던 대로, '뉴스는 팩트다'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앞에 나타는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폭로한다. 

고혜란이 살아오며 맞이한 위기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환기되고 있는 '미투' 운동처럼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이 살아가며 끊임없이 맞이하는 위기의 결집체이다. 소녀였던 고혜란은, 그리고 앵커 7년차임에도 고혜란은, 그리고 청와대의 영전을 앞두고서도 고혜란은, 늘 약자였던 고혜란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린 시절의 운명에서 도망쳐 온 그날 부터 고혜란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선택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자신의 은인을 외면했고, 아이를 포기하고, 남편을 이용했다. 고혜란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보다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닥쳐온 그 '운명의 미션'에서 도망치거나, 우회했다. 어쩌면 고혜란에게 닥친 미션은 고혜란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여성들이 매번 부딪쳤던 '미션'들의 집합체이다. 드라마는 고혜란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여전히 고난한 삶을 논한다. 


하지만, 이제 서은주를 만난 고혜란은 그날 케빈 리를 죽이지 못했던 자신의 선택을 분노하며, 자신의 어긋난 회피와 선택이 오늘날 자신의 위기를 자초했음을 절감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한 세 번 째 선택은 말 그대로 '정면승부'이다. 청와대를 가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대신, 그녀가 자신의 앵커 자리를 지켜왔던 그 원칙적 방식으로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도망치던 그녀가 선택한 이 방식으로 인해 살인용의자 고혜란의 국면은 전환된다. 살인 용의자 한 여성 고혜란은 이런 선택을 통해 그녀가 살아가고자 했던 인간 고혜란으로 거듭날듯하다. 
by meditator 2018. 2. 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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