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 보다도 긴 추석 연휴, 그래서일까 새롭게 선보이는 몇몇 예능들과 달리, '특선 영화'로 즐비한 편성표는 이렇다할 추석 특집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예년과 다르게 '단막극'들이 긴 추석 연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청자들을 찾으며 연휴의 긴 편성표의 빈틈을 메웠다. 물론, 시청률이란 성과면에서는 만족스럽지 않다. 대부분 2% 대의 시청률에서 고전했으며, 그 중에서 화제가 되었던 라미란이 출연한 <kbs드라마 스페셜-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도 3.7%에 불과했다. 하지만 뒤집어 정규 편성된 kbs2의 미니 시리즈<맨홀>이  1%대에서 고전하고, 화제의 청춘 시대도 2%대를 종종 오르내리는 상황에 비교하자면 추석 특선 <변호인>과 <밀정>과  정규 미니 시리즈 사이에서 단막극이 성취한 2,3%의 시청률을 비관적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특선 영화와 미니 시리즈가 아닌 선택을 한 2,3%의 시청자들의 개성에 주목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멜로의 계절, 그 정점을 찍다-<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강덕순 애정 변천사>
최근 추석이든 설이든 그 절기를 위해 마련된 특집극이 준비된 적이 없었던 가운데, 10월 4일과 5일에 걸쳐 방영된 <kbs드라마 스페셜> 두 편 <정다맘의 마지막 일주일>과 <강덕순 애정 변천사>는 드라마 스페셜의 시리즈 중 일부로 방영되었지만, 추석 특집극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작품들이다. 

'멜로의 법칙'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시작했던 드라마스페셜은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가며, 흔히 '자본주의 시대 남녀간의 통속적 사랑 이야기'라는 '멜로'의 본원적 정의를 보다 확대해나간다. 10월 4일 방영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에서의 사랑은 남녀를 떠나, 공소 시효 일주일을 앞둔 정마담(라미란 분)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 가버린 맞은 편집 딸 은미(신린아 분)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다. 부산 조폭의 돈가방을 탈취하여 오로지 공소 시효가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두문불출 살아왔던 정마담은 어린 시절 계모의 학대로 잃었던 자신의 동생을 연상케 만드는 맞은 편집 계부에게 학대당하는 은미를 본의 아니게 납치하기에 이른다. 드라마는 추석답게 교도소에 들어가 비로소 두 다리 뻗고 자는 정마담과 납치가 학대의 폭로로 이어진 훈훈한 인연의 해피엔딩으로 그 어떤 추석 특집극에 손색없는 따스한 사랑의 미담으로 완성된다. 

그런가 하면, 5일 방영된 사랑은 보다 스케일이 커진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정혼시킨 정혼자와의 일편단심에 마음 설레던 덕순(김소혜 분)은 독립 운동에 헌신하겠다는 석삼(오승윤 분)을 찾아 경성으로 향한다. 하지만, 덕순이 애닳아 찾던 석삼의 주소는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는 석삼의 쪽지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덕선은 그 황망함을 '한글'이라도 배우겠다는 결심으로 대신하는데. 하지만 한글이라도 배우고자 의탁한 '모녀 주막' 모녀들의 수상한 동정은 시골처녀 덕순의 일부종사 애정을 '모녀 주막'의 동지로 성장하게 한다.

'사랑'이라고 쓰고, 측은지심과 애국심으로 확대 해석한 <kbs드라마 스페셜>의 두 편은 추석이라는 풍성하고 넉넉한 수확의 계절에  '내 가족'혹은 '고향'이라는 의미를 보다 근원적으로 해석한, 그 어떤 드라마보다 어울리는 단막극이 되었다.



역주행한 단막극들
파업의 여파가 가장 큰 mbc 30일, 2일 그리고 다가올 7일,8일 드라마의 공백을 구원해 준건 , 지난 1월에서 3월, 그리고 2015년 12월 화제리에 방영된 <세가지 색 판타지>와 <퐁당퐁당 러브> 초미니 드라마들이다.  

파업은 아니지만, 추석 연휴 jtbc 2,3일 그리고 다가올 8일 방영될 드라마는 이미 네이버 캐스트와 jtbc 온라인을 통해 '웹 드라마'의 형식으로 방영되었던 <알 수도 있는 사람>, <힙합 선생>, 그리고 <어쩌다 18>이다. 

이들 드라마들은 tv를 통해, 혹은 다른 채널을 통해 방영된 '단막극'과 흡사한 형태의 드라마들이라는 점과, 이들이 타임 슬립 <어쩌다 18>, <퐁당퐁당 러브>, 신선한 설정 <알수도 있는 사람>, <생동성 연애> 등 다양한 구도를 이루고 있지만, 일관되게 이들 드라마들이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순정 만화- 로맨스 소설- 순정 웹툰'의 계보를 잇는 '기승전 '사랑'이야기라는 점이다. 

이야기의 구성 속에서 '힙합'을 좋아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좋아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려는 점이나, 좌절한 스타가 다시 음악을 하게 되는 등 젊은이의 좌절과 성장을 다루지만, 그 매개가 '사랑'이라는 점에서 '당의정'에 싸인 고뇌라는 한계를 답보하고 있다. 연애와 사랑, 결혼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대리 만족'인 것일까, '포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솔깃한 로망인 것일까? 그런 면에서 mbc와 jtbc 단막극은 '땜빵용'이라는 구성의 한계 이상의 숙제를 남긴다. 
by meditator 2017. 10. 6. 17:20

올해도 변함없이 다행스럽게도 <드라마 스페셜>이 찾아왔다. 가을이라는 계절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낮은 시청률을 돌파하고자 하는 암중모색이었을까? '멜로의 법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찾아온 2017년의 <드라마 스페셜>은 그 부제 만큼이나 다종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하지만 부제가 어떻든 <드라마 스페셜>이라면 변치않고 담아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라 할 작품들이다. 올해도 변함없다. 지난 일요일 밤에 이어, 수요일 밤 다시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 혼자 추는 왈츠>는 드라마로 그려낸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2015년 <노량진 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이 여운이 긴 제목에서 지칭하는 지명만으로도 이젠 어떤 청춘의 이야기를 그릴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곳 노량진, 그렇다. 이 드라마는 '공시생'의 이야기이다. 2015년에도 그렇고, 이제 공무원 수를 늘린다니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어났다는 노량진 공무원 수험생의 사랑 이야기다. 세상에 시험 공부하기에도 빠듯한데 사랑이라니, 사랑이 사치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래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단 1 점차로 시험에 떨어져 공시생 5년차가 된 모희준(봉태규 분), 그 끝없는 좌절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노량진 철교 위로 올라갔다. 바로 그 나락의 순간에 그의 앞에 나타난 유하(하승리 분)는 그를 '강제적 연애'의 세계로 인도한다. 다짜고짜 그의 수험 생활에 쳐들어와 공원 데이트를 하게 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던 유하, 그러나 그런 만남이 늘 버거웠던 희준은 결국 시험을 두 달 앞둔 시점에 그녀와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드디어 합격! 당당하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자 그녀를 찾아간 희준이 받아든 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그녀의 소식. 그렇게 드라마는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마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2015년 청년들의 운명을 찰라의 사랑을 통해 담아낸다. 



2016년 <아득히 먼 춤>
드라마 속 연극이라는 실험적 도전을 했던 <아득히 먼 춤>, 하지만 정작 이 실험적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건 2016년 청춘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자화상은 '영정 사진'으로부터 시작되고 만다. 젊은 연극 연출가 신파랑(구교환 분), 그는 불모지인 연극판에서도 동료들에게조차 인정받기 힘든 sf연극<로봇의 죽음>을 무대 올리려 했다.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버린 그의 작품과 생애를 '졸업'을 위해 마지못해 무대에 올리는 후배 연출가 최현(이상희 분)을 통해 되짚어간다. 

무용극과 전위적 연극 무대를 통해 드라마가 담고자 하는 건, 2016년에도 순수 연극을 하고자 애쓰는 젊은 연극인의 현주소이다. 연극을 한 편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이 시대의 젊은 연출가에게 필요한 건? 정작 후배들이 기억하는 그는 술에 취해, 혹은 잠에 취해 디렉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불성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불성실은 연극을 포기하지 못하고 공연비를 마련하고자 철거 작업까지 뛰어야 하는 삶의 성실성이 잉태한 것이다. 보장되지 않는 예술로 고민하는 최현의 고뇌를 신파랑이 남긴 연극을 통해 신파랑의 실존적 절규로 까지 확장시키며 이 시대 예술가의 삶을 살려는 청춘들을 그려내려 한 드라마는, 영생을 포기하고 유한성의 '예술적 행위'를 선택하는 '안드로이들'들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될 수 없는 예술혼'으로 마무리된다. 



2017 <홀로 추는 왈츠> 
2015년에 미처 못다해서 안타까운 사랑과, 2016년에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래도 작품을 통해서나마 예술적 연대를 했던 청춘은 2017년에 오면 좀 더 처절해 진다. 

'왈츠의 이해'라는 대학의 강의, 이 수업에서 학점을 얻지 못하면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없는 김민선(문가영 분)은 다짜고짜 구건희(여회현 분)에게 사겨주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왈츠 수업 참가를 종용한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군대를 가고, 인턴 생활을 하며, 그렇게 8년의 시간을 보낸 오랜 연인을 드라마는 두 사람의 '왈츠'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낸다. 

하지만 삼박자의 온유한 왈츠 음악과 달리, 8년째 연애를 맞이한 두 사람의 처지는 그리 평화롭지 않다. 민선과 달리 지방 캠 출신의 건희는 대기업 하청업체 직원의 처지이고,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하지만 정작 민선에게 기회는 번번히 주어지지 않는다. 함께 만든 통장의 잔고로 신경전을 벌이고, 모텔비가 아까워지는 시간, 무엇보다 그들을 압박하는 건, 벼랑 끝에 서있는 그들의 존재이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 이들 연인, 결국 그럼에도 '너 밖에 없어'라고 했지만, 어렵사리 도전한 한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맞붙게 된 두 사람은, 그 애절한 사랑 고백도, 성대한 만찬도 뒤로 하고, 서로의 포기를 종용하는 치사한 처지가 되고 만다. 심지어 한껏 서로의 자존심을 긁고 대판 싸우고 난 다음날, 지하철 계단에서 실신한 민선을 건희는 모른 체 하고, 안심하는 건희가 무색하게, 민선은 피투성이가 된 채 면접장에 나타난다. 

애써 쾌활한 척 하며 오가던 덕담 몇 마디 후 명함만을 만지작거리던 두 사람이 이후 도망치듯 숨어 오열하던 두 사람의 엔딩은, 그 서정적인 왈츠와 비교대며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2015년의 연민도, 2016년의 예술적 각오도 무색하게 이제 2017년의 청춘은 전장의 적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로 작동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청춘들의 현주소를 드라마 스페셜은 담담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홀로 추는 왈츠>는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 이유를 강변해 낸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보는 혹자의 청춘은 그리 말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사람은 취직을 했지 않느냐고. 그래도 드라마는 알량한 미덕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언제나 드라마는 현실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by meditator 2017. 9. 28. 16:47

9월 26일 종영한 tvn월화 드라마 <아르곤>은 생소한 원자 기호 18번의 기체 아르곤을 제목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산소가 다른 물질들을 산화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기체 Ar야말로, 8부작의 이 드라마가 가진 의의를 절묘하게 드러낸다. 


촛불 항쟁과 함께 시작한 새로운 시대, 그 시대의 과제 중 하나인 '적폐'를 철페하기 위해, 지난 보수 정권 10년간 '훼절'한 언론을 되살리기 위해 mbc를 비롯한 각 언론사들의 '파업'이 시작되는 즈음에 시작된 '사실을 통해 진실을 보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탐사 보도팀 아르곤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시의적이었다. 

드라마 속 탐사 보도팀 아르곤이 소속되어 있는 HBC의 상황은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기자들은 파업으로 '해직' 당하고 한때 대표적 탐사 보도팀이었던 아르곤은 마감 뉴스로 밀려난 처지. 팀장 김백진(김주혁 분)은 여전히 사실을 통한 진실 보도에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보도 내용까지 사건에 '검열'당해야 하는 팀의 처지는 늘 마감 뉴스의 자리조차 위태롭게 한다. 그런 아르곤에 해직 기자를 대신한 막내 이연화(천우희 분)가 들어와 '용병'이라 눈칫밥을 먹게 되고, '미드 타운 붕괴'사건이 전 사회를 덮친다. 

8부작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르곤>은 세월호 혹은 그 이전에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을 연상시키는 '미드 타운 붕괴'사건을 다루며, '사실'을 통해 진실을 향해 고전하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프레임'; 사실의 안과 밖
우리는, 이른바 시청자들, 혹은 독자라는 이름의 '대중'들은 '언론'을 통해 전해진 기사, 혹은 보도들을 '사실'이라 믿는다. 아니 믿기 쉽다. 설사 의심을 하더라도 전 언론이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하면 자신의 의심을 거두고, 그곳으로 눈과 귀가 쏠린다. 보수 정권 10년 동안 정권이 그토록 공을 들여 기자들을 해직하고, 운영진을 물갈이하며 '언론을 장악'하고자 애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아르곤>은 다시 한번 그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사실이, '프레임' 이란 틀 속에 얼마든지 날조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미드 타운 붕괴 사건을 접한 아르곤 팀은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이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을 빼앗아간 비극이라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르곤이 그곳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이, 권력의 하수인이 된 보도국장 유명호(이승준 분)는 '특종'이라는 이름 아래 미드 타운 붕괴 사건의 프레임을 '사라진 현장 소장'의 책임으로 돌린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했던 미드 타운 보도는 김백진의 책임이란 프레임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유명호가 던진 특종을 받아든 각 언론들은 너도 나도 현장 소장을 희생양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사람들이 현장 소장의 가족들에게 몰려가 집단 린치를 가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드라마는 아이를 살리고 현장에서 숨져간 현장 소장의 희생을 통해, 그 '집단적 히스테리'와도 같은 프레임을 전복시킨다. 

비록 짧은 8부였지만, <아르곤>의 고군분투는 바로 이 권력과 거기에 야합한 언론, 그들이 마든 '프레임'에 미혹되는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된다. 현장 소장에게 뒤집어 씌워진 프레임, 섬영 식품 안재근 연구원의 자살과 관련된 이중 언론 플레이, 거대 교회 권력 성종 교회의 손해 배상 소송 등등 '보도되는 사실'과, 그 사실 이면의 진실을 향한 싸움이다. 

이는 결국 진실을 향해가는 사실 탐사 보도 아르곤의 '정의로운 언론 행위'를 빛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의 모든 보도되는 사실들이 '편집된 사실'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한다. 심지어 <아르곤>은 김백진이 놓친 선광일의 진실과 미드 타운의 실체를 들어 '정의'란 이름의 진실조차 의심하고 판단하기를 요구한다. 

김백진은 말한다. 진실조차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의롭다고 믿어지는 그 누군가에 의해 가져다 줘서 받아먹는 진실이 아니라, 각자 '프레임'의 틀을 벗고 나와 사실을 통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이성의 시대에 대한 요구가 <아르곤>이 말하고자 하는 숨겨진 주제이다. 광야에서 온 초인을 기다리고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정신차리고 제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채워갈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아르곤, 영웅의 결연한 퇴장
<아르곤> 8부의 여정이 빛나는 건 그래서, 그 '프레임'에 갇힌 사실 아닌 사실을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싸움의 과정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도달한 '정의'보다 더 이 드라마가 그간 거대 권력을 향한 싸움을 다룬 드라마들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발하는 건, 그들과의 싸움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철저했다는 점에서이다. 

용병으로 들어온 이연화에게 김백진은 그로 인해 기자가 되고 싶어서였던 그 '로망'만큼이나 거대한 우상이다. 그리고 그 우상은 '진실을 알리고 싶어' 기자가 되고 싶었다던 그의 말 만큼이나 영웅적이다. 진실을 보도하는데 있어 물러섬이 없다. 

하지만 그와 그의 팀이 추구하는 진실은 늘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매년 만우절이면 그를 찾아와 아내가 성추행당했다며 행패를 벌이던 선광일의 진실을 자신을, 자신이 선택한 사실을 믿었던 김백진은 쉽게 무시했다. 그가 느지막히 도달한 진실은 죽은 선광일을 구원할 수 없었다.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한 김백진의 9시 앵커 도전은 10년동안 동거동락한 육혜리(박희본 분)의 희생을 발판삼으려 한다. 오합지졸이 될 뻔한 아르곤을 구하기 위한 신철(박원상 분)의 섬영식품 특종은 한 연구원의 죽음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미드 타운에 대한 진실 보도가 결국 3년전 자신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아르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웅의 탄생대신,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언론의 자세를 말한다. 늘 정의 앞에 떳떳한 영웅이 아니라, 늘 의심하고 진실을 추구하지만,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구르고 엎어지고 고뇌하는, 과정 속에서의 언론을 말하고자 한다. 영웅 대신 인간이 하는 일로서의 '언론'이다. 

그런 면에서 <아르곤>을 새로운 시대 정신을 추구한다. 우리는 늘 영웅을 갈구한다. 그리고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듯, 어려운 시절 속에 우리들은 새롭게 탄생되는 각 분야의 영웅들에 열광한다. 하지만, 이제 <아르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 누군가 몇 사람의 탁월한 영웅 대신, 인간의 일로서 만들어 가는 '정의'를. 

아르곤의 우상, 김백진은 그래서, 결국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정의로운 언론의 수호자로서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용병이었던 그러나 김백진의 실수조차 기사화할 수 있는 용기를 냈던 이연화는 정규직 사원이 된다. 정의는 몇몇의 영웅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깨어있는 포기하지않는, 그리고 책임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상을 받는 대신, 자신을 앞서간 많은 선배 동료 언론인에게 공을 도린 김백진의 마무리 수상 소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by meditator 2017. 9. 27. 15:30

제목이 곧 '메이커'가 된 <응답하라> 시리즈, 이 시리즈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된 핵심 코드 중 하나는 '낭만적인 복기'일 터이다. 마치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예전이 좋았어 라며 과거를 회상하는 '과거부심'인 것이다. 그런 '낭만적 복기'의 시리즈 <응답하라>가 가장 '과거'로 간 시대는 1988. 어쩌면 그건 '낭만'의 마지노 선이 1988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른바 '민간인 코스프레'였어도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직선제'의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던 1987년 이후에야 우리의 현대사는 '낭만'이라는 걸 그래도 논할만한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란제리 소녀시대>는 저돌적이게도 낭만적이어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79년의 한 시절로 시청자들을 이끈다. 아마도 4%의 콘크리트 시청률 기여하는 것 중 하나는 혹시나 또 한 편의 <응답하라> 일까 하고 봤다가 생각외로 심각한 그 시절의 공기가 부담스러워 질겁한 시청자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바로 이 낭만적이지 않은 암울했던 시절의 공기가 바로 유신시대를 마무리해가던 79년의 정서다. 



79년 비극적 정서를 잉태한 첫사랑 
<란제리 소녀 시대>는 <응답하라>처럼 전형적인 '첫사랑'의 삼각 관계 구도로 설정된다. <응답하라>의 덕선이처럼, 나정이처럼, 시원이처럼 '천방지축 유쾌발랄한 소녀' 정희(보나 분), 그리고 그녀가 흠모하는 전교 회장 교회 오빠 손진(여회현 분), 그리고 첫 미팅에서 정희에게 반해 일편단심 정희 바라기인 동문(서영주 분), 동네 총각 영춘(이종현 분), 그리고 다크호스로 등장하여 영춘과 손진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혜주(채서진 분)가 그 주인공들이다. 여느 청춘물처럼 서로 얽히고 섥혀 사랑하고 질투하고 갖은 해프닝을 벌이던 이들의 사랑에 <란제리 소녀 시대>는 '시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전학온 혜주는 여학생들의 '브래지어 끈'을 당기는 모욕감어린 체벌을 하는 오만상(인교진 분)에게 부당함을 제기하는 당당한 여학생이다. 공부는 물론 오자마자 모의고사 전교 1등을 할만큼 발군이다. 전교 회장 손진의 시선을 한 눈에 나꿔챌만큼의 청순한 미모에, 방송반 아나운서를 맡을 만큼 재능까지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혜주, 하지만 손진은 그녀를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빨갱이'였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동하고 도피한 학생을 숨겨준 혜주의 아버지는 그 연루자가 되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경찰서장인 손진의 아버지는 혜주의 아버지를 빨갱이라 낙인찍으며 혜주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말 것을 강요한다. 

그 시절 '빨갱이'는 그랬다. '호환마다'보다 더 무섭다고 극장의 '대한뉴스'는 주입을 했고, 6.25전쟁의 레드 컴플렉스를 교묘하게 이용한 정권은 그를 확대 재생산하여 반정부 세력에게 그 '호환마다보다 더한 빨갱이 낙인'을 거침없이 찍어버렸다. 제 아무리 이쁘고 공부 잘하고, 아버지 교수라도 그 아버지가 빨갱이이면 아무 것도 아닌 것보다 더한 것이 되어버린 시절. 



사라진 아버지의 향방을 몰라 혜주는 노심초사하지만, 그런 혜주의 동정을 보고하라 교감 선생이 담임에게 지시를 내리는 시절, 그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담임은 그 불편한 심정을 학생들의 체벌에 항의하는 혜주에게 운동장 100바퀴라는 화풀이로 표출해 내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 혜주가 걱정되어 그 집앞에서 얼쩡거리는 것만으로도 경찰서장 아버지에게 뺨이 날아가도록 맞던 시절의 비극을 <란제리 소녀시대>는 첫사랑의 불온한 공기로 담아낸다.

마치 조선 시대의 사랑이 '역적'으로 몰려 하루 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비극'을 잉태하듯이, '난사람'이었던 혜주는 하루 아침에 동네 사람들의 소리없는 외면과 입방아의 대상이 되어 '배척'받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사랑'조차 그 흔한 선남선녀의 꽃길 대신, 그 어려운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영춘에게 의지하는 곡진한 순애보에 기대는 뜻밖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애증의 여성 연대 
그렇게 혜주가 시대적 비극을 사랑의 비극으로 잉태해 가는 동안, 그 사랑의 경쟁자였던 정희는 혜주와 미묘한 우정의 관계로 전환된다. 제목에서부터 상징되듯 평범한 런닝과 끈 런닝으로 대변되는 '패션'의 갈림길에서 늘 '평범함'의 처지에 아둥바둥거리던 정희는, 그러기에 혜주는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아버지는 말끝마다 '가시나'를 달고 살며 딸을 타박했지만, 그 공기와는 다르게 심지어 공부를 잘해도 쌍둥이 오빠 앞 길을 막는다고 대놓고 차별을 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 그 당연한 '차별'에 안간힘을 쓰는 정희는 선생님 앞에서 당당하게 모욕적인 체벌에 항의하는 혜주의 운동장 100퀴의 동반자가 된다. 

혜주가 선뜻 친구가 되자 했지만 좋아하는 손진 오빠야의 마음을 빼앗은 혜주에게 늘 불편했던 정희의 마음은 같이 운동장을 달리지만 그래도 혜주를 앞지르고 싶던 그 복잡한 마음으로 드라마는 절묘하게 엇갈린 우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오빠에겐 메이커 옷을 사주면서도 정희는 독서실도 안보내주던 엄마가 정작 오빠 대신 독서실을 가는 정희에게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같이 죽자라며 우산대로 정희를 때라다 결국 정희 방으로 베개를 들고 오는 장면에서, 우리 시대 질긴 모성 연대의 지난한 역사를 고증한다. 

그렇게 <란제리 소녀시대>는 '낭만'이라기엔 무겁고 짖눌려진 79년의 시대상을 절묘하게 드라마로 담는다. <응답하라> 시리즈 뺨치게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 'feeling'을 비롯한 '파파', 'sing' 등 당시의 유행 음악은 이런 시대의 사랑에 아이러니한 낭만을 제공하며 그 운명의 정서를 극대화시킨다. 비록 시청률은 응답하지는 않지만 극소의 시청자라도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 여운이 긴 음악들만큼 오랜 잔향을 잊지 않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7. 9. 26. 16:55

젊음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이라지만, 정작 청춘의 시절 자신이 꽃보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지했던 청춘이 얼마나 있으랴. 오히려 자신이 한창 아름답다는 사실보다도,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주체하지 못한 채 얹혀서 한 시절을 보내곤 하는 것이 청춘의 실상이기가 쉽다. 그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이 시대의 청춘들은 '자존감'이란 대명사로 명명한다.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되어버린 자신의 무게는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는 정의만큼이나 묵직하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늘상 부딪치는 건 그 반대의 현실, 그 현실로 인해 상당수의 청춘들은 '낮은 자존감'을 자신의 고민 중 하나로 꼽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청춘시대2>는 주목한다. 




시즌1의 시절을 함께 보낸 '하메'들, 12부작의 시간만큼 각자 많은 일들을 겪어 왔다. 밥 먹을 틈도 없이 알바를 전전하던 윤진명(한예리 분)은 이제 정규직 사원이 되어, 자신이 겪었던 그 '을'의 시간을 겪는 해임달의 '목격자'가 된다. 어렵게 첫사랑을 얻었던 유은재(지우 분)는 실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투명 유리창처럼 모든 것이 드러나보였던 송지원(박은빈 분)은 그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숨겨진 기억 속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건 예은, 얄밉도록 똑부러지던 그녀는 시즌1에서 겪은 데이트 폭력의 트라우마와 여전히 고전 중이다. 그리고 강언니가 나가고 대신 선머슴애 같지만 그 누구보다 여린 조은(최아라 분)이 합류했다. 

자신으로부터 발화
시즌1의 발화점이 하메들 그들과 부딪치는 세상이었다면, 시즌2 역시 여전히 그녀들은 세상 속에 있지만, 그 발화점의 시작이 자신으로 부터 비롯된다. 늘 갑질의 대상이었던 윤진명이 정규직 사원이 되어 겪는 세상, 여전히 그녀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선 신입 사원이지만, 경영 지원팀으로서 그녀는 아이돌 '아스가르드'에게는 회사를 대변하는 '갑'의 존재가 된다. '갑'이지만, '을'의 잔상이 그득한 그녀가 바라보는 '해임달'을 통해, 진명의 또 다른 변화가 움트는 중이다. 시즌 1에서 '당하던' 그녀가, 그녀의 또 다른 버전같은 '해임달'에 자꾸 걸려버리는 모습은, 그러면서도 경영 지원팀으로서의 일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습은, '사회'라는 곳에 첫 발을 딛은 그 누군가의 자화상이다. 

알바 한 사람으로서 '을' 개인의 고통에 침몰하고 부유하며 버텼던 윤진명이, 이제 '조직' 화 되어 가는 과정은, 존재감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이다. 또 다른 질문은 가장 인간 친화적인 송지원에게서 비롯된다. 휴학을 하고 취준생이 된 그녀는 가장 스스럼없이 예전의 대학 신문사를 드나들지만 그곳이 자신이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진명과는 또 다른 존재의 고독을 맛본다. 졸업반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해피엔딩만을 꿈꾸던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하던 예은에게 대학은 하루 하루 한 시각 한 시각이 자신을 뱉어내는 듯한 세상과의 싸움이다. 은재 역시 지나간 사랑의 그늘과 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신의 키만큼 세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조은이야 말할 것도 없고. 



7회의 소제목이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제 또 훌쩍 커버린 그녀들이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점을 포착한다. 무리 동물인 인간, 그들은 그 '무리'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지 않음을 절감하며 '자존감'의 바닥을 친다. 
8회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세상의 중심도 아닌데, 심지어 내가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니! 류적 존재이면서도 인간의 아이러니한 점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나르시즘'이 강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미모에 홀려 물에 빠져죽었다는 그 신화의 dna는 모든 이에게 유전되어 아닌 것같지만 알고보면 모두 한 '자뻑'을 해야 '자존'이 된다고 살아가기가 쉽다. 그런데 <청춘 시대2>의 박연선 작가는 그런 '자뻑의 자존감'에 발을 건다. 

바닥으로 부터 시작되는 자존감
8회 <나는 나를 부정한다>에서 순둥이 은재는 가장 편협한 시선에서 예은을 몰아붙인다. 물론 떠나는 예은의 손을 잡은 건 은재이지만, 첫사랑의 상흔은 예은의 또 다른 사랑에 한없이 옹졸해졌다. 예은이라고 다를까. 자신의 트라우마를 기꺼이 감싸주는 하메들의 친절에 감사하면서도 반발한다. 해임달의 1인 시위는 신입 사원 윤진명에게는 그저 해내지 못한 업무로 불편하다. 찾아온 아버지에게 조은은 너그럽지만도, 까칠하지만도 못하다. 그렇게 하메들은 각자 '이기적인'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고 만다. 

우리 사회에선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흔히 '칭찬'을 든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한없이 칭찬하고, 잘했다고 해야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라고 <청춘 시대2>는 묻는다. 어린 시절 내가 잠들면 세상도 다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던, 즉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 생각했던 그 착각에서 깨어나오는 것이 '자존감'있는 어른으로서의 첫 발이 아닌가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나를 향한 칭찬이 '환타지'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새는 알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그 얇은 알 껍질이지만, 알 속의 어린 새에게는 고통스러운 '투쟁'의 과정이다. 엄마의 산도를 머리를 틀어 나와야 하는 신생아의 출산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듯 '탄생'은 '고통'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더는 '보호되어야 할' 미성년이 아닌, 진정한 성년이 되는 과정은 자신을 세상 속의 '한 존재'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각'으로 부터 비롯된다고 <청춘시대2>는 7,8회를 통해 냉정하고 제의한다. 

더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건 더더욱 아니면, 심지어 자신이 어쩌면 그리 좋은 사람이지만은 않다는,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수용하고, 그런 '모자란'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을 <청춘시대2>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내가 중심이고 잘나서 사랑하고 칭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라서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 그 과정으로서의 '청춘이다. 여전히 이 드라마가 청춘의 교과서이기에 모자람없는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7. 9. 17. 02:57

mbc에 이어 kbs로 이어진 파업의 여파로 <추적 60분>이 연 2주 결방했다. 그 빈 자리에 '어부지리'의 혜택을 입은 건 뜻밖에도 2017 드라마 스페셜이다. 애초 일요일 밤 10시 40분이 정규 편성이었던 <드라마 스페셜>은 평일 수요일 밤 11시 다시 시청자들과 만남을 갖게 되었다. 지난 주 <우리가 계절이라면>에 이어, 이번 주 <만나게 해주오>가 다시 찾아왔다. 




1930년대 경성의 혼인 정보 회사라니
드라마의 배경은 1930년대 경성, 지금의 서울이다. 정치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배'하였지만, 그 '식민지배'의 체제 아래, 일본을 통한 서구적 문화가 조선, 그 중에서도 경성을 강타했다. 서구의 문물의 상징인 '백화점'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나날이 새로운 문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두발과, 의상, 언어, 의식에 있어서 그 이전의 젊은 세대와 다른 이른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7 드라마 스페셜 두 번째 작품 <만나게 해주오>는 바로 이런 '모던 보이'가 활보하는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경성의 모던 보이들은 전통의 관습과 풍속 대신, 서양의 문화에 매료되어 '적극적' 실천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실천의 양식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자유 연애'다. 일찌기 이광수의 소설을 통해 그 시절 젊은이들의 고뇌로 등장한 자유 연애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강제된 계약 관계인 결혼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대를 선택하고 사랑에 빠지는 '개인주의적' 삶으로의 도약(?)이었다. <만나게 해주오>는 바로 이런 '자유 연애' 지상주의 경성을 배경으로, 오늘날의 결혼 정보 회사가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으로 드라마를 연다. 

얼룩진 얼굴에 치마 저고리를 입고 결혼 정보 회사를 찾은 수지(조보아 분), 아니 사실은 숙희는 '모던 보이'와의 결혼을 목표로 하는 여성이다. 그 야심찬 목표에 따라 경성 혼인 정보 회사 주최 쌍쌍파티에 난입한 그녀는 막춤을 추며 파티장의 수질(?)을 흐리다 대표 차주오(손호준 분)의 눈에 띤다. 10전 상점 점원인 그녀를 10전 상점 여주인으로 오해한 차주오와 그녀를 아끼는 10전 상점 여주인의 배려로 '모던 걸'로 수지로 변신한 숙희는 차주오의 적극 응원에 힘입어 여러 모던 보이와의 맞선 자리에 나선다. 

1930년대 자유 연애가 부르짖던 그 시대에도 결국 결혼은 '돈과 집안과 외모에 따라 결정된다는 만고불변의 속물주의를 내세운 결혼 정보 회사와 그들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선 수지를 통해 드라마는 당시 '모던 보이'의 실상을 들여다 본다. 와세다 대학이란 허울좋은 간판, 고위직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축첩의 시도 등이 매번 '헛물'을 키게 만드는 숙희의 맞선 작전의 실체다. 

결국 맞선 자리의 해프닝으로 총독부까지 끌려가, 정보 회사가 문을 닺게 될 위기에 빠지며 뚜쟁이와 속물 모던 걸이었던 두 사람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저 모던 걸의 결혼 작전이었던 드라마 역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두 청춘의 고달픈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우선 수지라고 이름조차 세련되게 바꾼 숙희는 사실 제천 출신의 가난한 아가씨, 아픈 어머니를 경성에 있는 큰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한 채 잃은 그녀는 아버지가 강제로 권하는 결혼에 반발하며 스스로 결혼을 통해 성공하고자 경성으로 온 사연이 있다. 그런가 하면, 경성 혼인 정보 회사 대표 차주오는 넉넉한 형편이었지만, 독립군 자금을 대주는 바람에 집안이 온통 빨간 딱지 투성이가 된 집안의 청년으로 아버지가 살아가는 방식에 반발하여 '돈'을 쫓아 혼인 정보 회사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알고보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은 혼인 정보 회사 대표와 고객이라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으며 가까워져 간다. 



뜻밖의 만주행
그렇게 가까워지던 두 사람 사이에 장벽은 뜻밖에도 총독부 공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중국 정복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 100명의 만주행을 결정한다. 총독부 관리에게 이자를 주러 온 주오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되고, 혹시나 끌려갈까 주오의 여동생을 강제 결혼시키려 하다 동생의 가출 사건으로 이어진다. 동생의 가출 사건은 두 사람을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지만, 주오는 그 만주행 명단에 숙희가 있음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일본인과의 결혼을 서두른다. 그런 주오가 섭섭한 숙희는 그녀의 로망이었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 대신 만주행을 택하게 되는데,

달콤쌉싸름한 연애사였던 드라마는 여성 100인의 만주행 공지문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로 냉큼 발을 딛는다. 부푼 꿈을 안고 만주로 향하던 숙희는 실상을 알게되지만 강제로 기차에 태워지고, 그녀를 찾아온 주오는 쌍쌍파티를 이용하여 숙희를 구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나 애초에 전형적인 '로코'의 형식을 띠었던 드라마는 위기의 만주행 기차를 주오와 아버지의 화해를 도구로, 만주로 잡혀갈 뻔했던 100명의 조선 여인들의 탈출 작전으로 변모시킨다. 결국 총독부 관리들의 실패와 실수로 만주행은 없었던 일이 되고 주오와 숙희는 행복한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로 끝나게 되는 드라마. 



시대적 고통을 담아내는 진지한 접근이 아쉽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한 드라마는 전통적 결혼에 반발하는 여성과 독립 운동을 하는 아버지에 반발하는 청년이라는 시대적 청춘의 고통으로 일제 시대라는 배경의 깊이를 더한다. 거기에 뜻밖에 숙희에게 닥친 만주행은 2017년에도 끝나지 않는 시대적 고통을 절묘하게 극적 긴장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문제다. 21세기에도 끝나지않는 민족적 고통, 그 일제 시대 여성들의 강제 공출의 문제를 '로코'의 형식을 드라마가 '절정'의 갈등으로 차용한 지점에 대한 고민이다. 드라마에서 강제로 기차에 태워진 숙희를 구하기 위해 주오는 애를 쓰고, 그런 주오를 발견한 총독부 관리는 총을 든다. 그런 그를 주오의 아버지가 가격하고, 주오가 구한 여성들은 총독부 군인들을 함께 물리친다. 

바로 이 지점이 과연 역사적 비극을 '환타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라라는 '로코'의 소모적 갈등 도구로 소비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모호하다. 그런데 그 모호한 지점에서 주오가 자신의 혼인 정보 회사의 쌍쌍 파티를 활용하여 총독부 경무 국장 요시다를 희롱하고,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만주로 갈 처녀들을 구하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대의 억압적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조악'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의도'는 알겠지만, '안이하고, 편의적'인 구성이라는 생각 역시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강제 수용소를 '단체 게임'으로 속인 아버지의 거짓말은 아들을 구하지만,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는 현실성에 기대어 울림을 가진다. 과연 , <만나게 해주오>가 숙희의 위기로 등장시킨 만주행 강제 징집은 그 역사적 무게감에 비해 드라마 속 장치로 너무 가볍게 처리되었다는 점이 걸린다. 물론 시대적 비극에 상상력이 짖눌릴 필요는 없다지만, 그래도 그 상상력의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 더 비극의 무게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려 애써야 하지 않았을까? 두 주인공의 행복하게 사랑했어요란 결말조차 불편해 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by meditator 2017. 9. 14. 15:54

<응답하라> 시리즈는 드라마계에 새로운 시대극의 조류를 형성하게 했다. 1988, 1984, 1994란 특정 연도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살아낸 세대에게는 추억을,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는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과거'라는 추억을 바탕으로 한 '순정'의 코드가 사랑의 진정성을 더하며 '열광'을 불러왔다. 그 이전에 시대극이라고 하면 '사극'이거나, '일제 시대' 혹은 '6.25'를 배경으로 한 협소한 범주를, <응답하라> 시리즈는 확장, 계발하였다. 물론 <응답하라>시리즈가 처음은 아니었다. <tv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kbs에서 꾸준히 방영되었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중장년층의 향수에 주로 기댄 이들 아침 드라마와 달리, 전 연령대에게 적극적 호응을 얻어 '시대극'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응답하라>의 70년대 확장판 
그리고 9월 11일 방영된 kbs2의 <란제리 소녀 시대>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확장된 시대극의 70년대 버전처럼 찾아왔다. 대구를 배경으로 70년대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한껏 흐드러지게 풀어내며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그때 그 시절로 이끈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길의 정서를 두고,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와 갑론을박한 적이 있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자란 두 사람은, 드라마 속 1988년이란 배경을 그려낸 제작진에 대해 호와 불호의 의견을 나누었다. 왜 같은 시대를 공유했음에도 그 '추억'에 이견을 보였을까? 그건 아마도 같은 서울 하늘을 이고 살았어도, 가스 렌지와 석유 풍로로 대변되는 삶의 다른 층위가 가져온 다른 반응일 것이다. 그건 아마 언젠가 2017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 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남 타워 팰리스와, 변두리 반지하방의 경험이란 한 시대, 하나의 지역적 추억으로 뭉뚱그려 그려 낼 수 없는 차별적 층위를 가진다. 그런 시대적 다른 경험의 층위가 내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시대'를 내세운 드라마들은 '시대'를 대변하는, 그 그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문화적 코드'에 집중한다. 새로이 방영된 <란제리 소녀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여학생도 '교련'을 배워야 하던 그 시절의 여고생이다. 조남주 작가의 <82년 김지영>을 통해 이제 하나의 시대적 코드가 된 82년 김지영 세대, 그 시대의 여성들이 제삿상도 차려줄 수 없어 차별을 당연하게 당하며 자랐던 그 시절에서 한 발 더 과거로 드라마는 발을 담근다. 같은 반의 공부도 잘 하고, 심지어 시도 빼어나게 쓰던 친구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여상'을 가던 시절, 군복을 입지는 않았어도 교련 선생님이던 수학 선생님이던 이제는 '성희롱'이 될 수도 있는 벌을 받는 게 당연하던 그 시절을 <란제리 소녀 시대> 충실하게 복기해낸다. <란제리 소녀 시대>가 방영되고 드라마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처럼 '여자도 교련을 했어?'라는 그 신기한 시절이었다. 

70년대만 해도 융성하던 섬유 산업의 중심지였던 대구, 당시에는 흔했던 가내 수공업 수준의 메리야스 공장과 체벌이 시스템처럼 갖춰져 횡행했던 교실을 드라마는 충실하게 구현한다. 그리고 제목의 란제리 답게, 하얀 백런닝과 끈 달린 런닝으로 대별되는 당시 소녀들의 '속옷 로망'을 드라마는 놓치지 않고 그려내며 시대의 세밀화를 완성해 간다. 여주인공과 같은 이름의 기자 역시 무심하게 드라마를 보던 중 그 '끈달린 런닝'에서 움찔하고야 말았다. 여고 시절, 교복 사이로 드러난 그 두 줄의 끈은 정말로 당시 여학생들에게는 '여성성'의 로망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드라마 속 '사물'들은 아마도 그 시절을 살아온 그 누군가의 추억 속의 '어떤 것'들을 자극하며 이 드라마 앞으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응답하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등장하는 주인공들, 전교 회장 교회 오빠 손진(여회현 분)과 그런 오빠를 흠모하게 되는 여고생 정희(보나 분), 그리고 그런 정희에게 미팅 자리에서 첫 눈에 반해버린 순정파 동문(서정주 분)에, 다크호스처럼 등장한 서울에서 온 혜주(채서진 분), 그리고 그 시절 있음직한 동네 총각 영춘(이종현 분)까지, 70년대 시대극의 전형적 요소를 빠짐없이 채워넣었다. 



추억은 여전히 힘이 세다?!
이런 주인공들의 면면은 이미 아침 드라마 <TV 소설>을 통해 되풀이 반복 학습되다시피한 70년대 인물의 전형적 갈등 구조이다. 그리고 <란제리 소녀 시대> 역시 다르지 않다. 첫 회, 교회 오빠 손진과 문학의 밤을 통한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 첫사랑의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먼 도서관까지 손진을 보러 가는 해프닝 과정은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그런 시대극에서는 '클리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내용이다. 

하지만 뻔한 클리셰의 중복이라 해도 아침 드라마 <TV 소설>이 계속 되풀이 될 수 있듯이, 모처럼 미니 시리즈로 찾아온 70년대의 복기는 70년대스러운 화면과, 그보다 더 70년대의 추억을 끌어오는 음악이란 양수 겹장의 장치로 인해, 추억을 찐하게 자극한다. 그리고 그 '맞춤 양복'처럼 잘빠진 70년대의 추억은 신기한, 그래서 새로운  콘텐츠로 젊은 세대를 솔깃하게 만든다. 적어도 첫 방송의 <란제리 소녀 시대>는 '추억'의 힘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적인 듯보여진다. 

과연 79년 여름 대구라는 구체적 시간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가 그저 '추억'의 복기만으로 끝날까? 10.26를 코 앞에 둔 79년의 그 여름의 끝에서 어떤 성장통을 보여줄 것인지, 8부작이라는 실험적 형식을 통해 그 주제 의식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비록 시청률면에서는 미비했지만 신선한 시도였던 <완벽한 아내>의 홍석구 연출과 윤경아 작가 등 제작진의 그 여정이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7. 9. 12. 19:02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킨 근대의 시작은 '사랑'의 시작이다. '의지'와 상관없는 관례 결혼으로'사랑'의 존재를 무용하게 했던 전근대의 종식은 연애 지상주의, 사랑 지상주의 시대의 도래였다. 그러기에 이 시대 고달픈 삶에 짖눌린 젊은이들이 '결혼'과 '연애'를 포기한다는 건, 결국 시대의 재앙이 된다. 그렇게 우리가 몸담고 사는 시대의 대표적 정서가 된 '사랑', 하지만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칭송받는 사랑은 그것을 수호하는 신이 변덕스럽고 심술궃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듯이 불가해하고 변칙적인 감정으로 사람들을 혼돈에 빠져들게 하고, 그 이타의 감정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형벌도 다가온다. 많은 철학자들은 '사해동포주의'로 사랑의 승화를 외치지만, 대부분 비극은 '너와 나', 혹은 '우리'라는 협소한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첫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이렇게 장황하게 '사랑학 개론'을 줏어 올린 것은 9월 3일 첫 방송을 탄 2017드라마 스페셜의 스타트를 연 작품이 바로 <우리가 계절이라면> 때문이다. 대문을 나란히 한 이웃집에서 태어나 함께 자라다시피 한 해림(채수빈 분)과 기석(장동윤 분)의 '학교물'의 외형을 띠고 진행된다. 전교 1,2등을 나란히 하며 자전거를 함께 타며 학교 생활을 하는 두 사람. 이제 청소년기의 통과 의례처럼 첫사랑의 홍역을 앓게 된다. 방과 방 사이를 줄로 이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인 두 사람. 이제 기석은 수행 평가 과제로 친구들이 장난스레 쓴 해림과의 첫키쓰를 중대 과제로 여길만한 처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찌기 <겨울 연가> 이래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담타기에 이어, 담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 동경(진영 분)은 순탄할 것만 같던 소꼽친구의 첫사랑 전선에 균열을 가져온다. 

우연히 아빠의 핸드폰을 통해 아빠의 외도를 직감한 해림은 아빠의 뒤를 쫓고 그곳에서 동경을 만나게 된다. 결국 외도에 대한 추적은 오해로 드러나고, 해림과 동경은 동병상련 아닌 동병상련으로 서로의 벽을 조금씩 허물게 되고, 반면 해림과의 첫 키쓰에 집착한 기석은 자꾸 해림과의 관계에서 엇박자를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만남과, 오누이같은 관계의 성장통은, 엄마의 생일날 당연하게 여겨졌던 선물의 엇갈린 행방으로 전혀 다른 질감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아빠가 해림의 오해를 받으며 어렵사리 구한 악보, 해림은 그게 당연히 엄마의 선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당사자는 엄마의 피아노 학원에 새로온 젊은 여선생, 눈물가득 추궁하는 해림에게 아빠는 그런게 아니라면서도, 그냥 주고 싶었고, 좋았다며 사랑의 불가역성에 손을 들고 만다. 

아빠를 한껏 원망해야 할 해림, 하지만, 해림 역시 자유롭지 않다. 당연히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보아와 준 기석의 첫 번째 고백을 들어줘야 할 처지, 하지만 정작 해림 역시 새로온 전학생 동경에게 마음을 흔들리고 만 것이다. 



사랑의 아포리즘, 그러나 
뻔한 사랑의 성장통같았던 이야기는 아빠의 외도 아닌 외도(?)를 통해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으로 변모한다. 뻔한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라는 속된 경구 대신, 여전히 가정에 성실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어른 아빠를 등장시켜, 해림의 뜻하지 않은 두근거림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설명'을 통한 '사랑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했던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헷갈리는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구르리 그린 달빛>의 조연출답게 청량한 젊음을 서정적으로 한껏 분위기로 자아냈지만, 과연 목적한 바가 해림과 기석의 성장통인지, 아니면 사랑의 불가역성에 대한 담론인지, 정작 '절정'의 순간에 머뭇거린다. 아빠의 불가역적인 사랑도, 해림 앞에 등장한 동경의 존재로 '단막극'이란 핑계를 대기에는 '소모적'으로 사용한 드라마는, 성장통 그 자체를 '도구'로 삼아, 청춘의 한 시절을 그저 시각화시키는데 천착하고만 만듯한 결과에 이른다. 아름다운 화면만으로 사랑의 불가역성을 설득하기엔 화면은 너무 단편적 나열이었고, 그렇다고 그게 아닌 그저 성장통을 그려내고 싶다기엔 너무 뻔했다. 아니 뻔하다고 하기에도 불친절했다. 가슴 떨림, 그저 좋아함의 감정은 그저 한 컷처럼 지나치기엔 너무 묵직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한 계절이 지나고, 동경은 스리슬쩍 사라져 버리고, 이제 청소년의 터널을 지나버린 해림과 기석은 우정인 듯 사랑인 듯 기차역에서 해림이 원하던 포옹을 하며 끝이 아닌 이별을 하지만, 지난 과정에서 해림과 기석의 감정을 충분히 설득해 내지 못한 드라마는 그 엔딩조차 눈물로 포장된 아름다운 청춘에 대한 장식처럼 여겨진다. 

오히려 도발적이라도 아빠와 해림의 불유쾌하지만 불가피했던 감정에 좀 더 솔직하게 파고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스치듯 지나쳐버린 기석의 잔인한 목격 장면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구르미 그린 달빛>처럼 시청률이 필요한 미니 시리즈도 아니고, 비록 '멜로의 법칙'을 내세웠지만 '실험작'으로서의 단막극에 대한 기대를 부푼 채 맞이한 첫 번째 2017 드라마 스페셜의 작품치고는,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좀 안이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매년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단막극 시리즈가 가진 한계를 손쉬운 '멜로의 전략'으로 통과해 보려는 야심이었을까? 

그러기에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다시 원점에서 단막극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과연 매년 없는 편성을 쪼개어 단막극이 방영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뻔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화면에 담아,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일까? <다큐 3일>을 뒤로 제친 채 끼어든 시리즈라면, <다큐 3일>의 목소리를 제칠만한 특별한 존재감을 기대해 보는 건 무리일까?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도 해줄 이야기가 많아서 좋았던 드라마 스페셜이 '멜로의 법칙'으로 돌아와, 단막극의 생존을 위한 '연성화'가 아닐까란 우려가 드는 가운데, 첫 작품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그 고민의 깊이를 더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멜로는 어찌보면 '근대'와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치명적 상흔이다. 그 상흔을 내세워, 심지어 법칙이란 말까지 등장시켰다면 그래도 최소한 드라마 스페셜이라면, 좀 더 치명적인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저 녹록하게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한 잔이 아니라. 

by meditator 2017. 9. 4. 19:38

14%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려하게 종영한 <죽어야 사는 남자> 후속으로 '하지원'을 앞세운 <병원선>이 찾아왔다. 1회 10.6%, 2회 12.4%의 동시간대 1위 순조로운 출발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지원'이 주인공 불패 신화가 다시 한번 시작된 것일까? 


[TV성적표] <병원선> 드디어 출항! 허탈한 죽음은 이제 그만 이미지-3



하지원의 건재
<병원선>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믿고보는 배우'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는 캔디형 캐릭터에 가장 맞춤형인 하지원은 '생존의 신호음'을 제외하고는 눈물을 사치고 여기는 소녀 가장 외과 의사 송은재 캐릭터로 다시 한번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연기에 도전한다. 그리고 <병원선>이란 드라마를 극 초반부터 가장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가는 건, 이러니 저러니해도 하지원이다. 종종 그런 하지원조차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병원 용어가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럼에도 극적인 상황에서 '제가 그 수술합니다'라고 당차게 외칠 때, 심지어 도끼를 내려 칠때조차 그 대사와 행위에 믿음이 가도록 하는 건 역시 하지원 때문이다. 

<병원선>은 심하게 하지원에게 의존한다. 여주인공 하지원을 제외하고는, 남자 주인공이라지만 어쩐지 그와 같이 병원선에 트러블 메이커로 등극한 이서원, 김인식과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강민혁은, 이 드라마가 이른바 '역하렘물'이라지만, 그 꽃이될 남자들의 존재감은 하지원 한 명에 비해 현격하게 부족해 보인다. 드라마는 회차마다 내과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인 그들의 사연을 풀어놓을 예정인 듯하지만, 그 사연은 그저 양념처럼 여겨질 뿐이다. 남자 캐릭터들뿐만이 아니다. 하지원에 맞서 그녀의 발목을 걸고 들어설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 역시 그다지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그녀가 근무했던 병원의 외과 과장도, 이제 새로이 그녀를 응급실에서 맞이하려다 내치는 종합 병원장도 하지원의 존재감에는 한참 못미친다. 

그런 면에서 <병원선>은 본의인지, 혹은 본의 아니게인지, 결국 '하지원'의 드라마가 된다. 물론 <태양의 후예> 등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의사로 나와 '휴머니즘'을 실현했지만, 그 누구도 <태양의 후예>의 강모연(송혜교 분)에 비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지원이 분한 송은재로 치면 이전 남자 배우들이 의사로 분해 드라마를 끌고 가던 의학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명불허전>에서 최연경으로 분한 김아중과 비슷하지만, <병원선>엔 김남길만큼 원맨쇼를 벌이며 여주인공을 보완해줄 그 누군가가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 수없는 건 비단 극중에서만이 아니다. 

 하지원, 차화연 죽음에 ‘자책’··· 강민혁에 이어 병원선 탑승 완료! 이미지-2


촌스러워 보게 되는 드라마?
하지만 단지 <병원선>이 하지원으로 인해서만 시청률이 잘 나올까?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 중 '촌스럽다'는 반응이 상당수가 있었다. 파업의 여파때문인지 연출이나 편집, 화면, 구성에 있어서 상당히 '올드'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의 배경이 2017년이지만 마치 70년대의 어느 시절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의료 사각지대인 섬을 돌아다니며 '의료 봉사'를 하는 병원선. 실제 병원선에 비해서 심지어 수술실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설정으로 한결 조촐하게 설정된 병원선의 세트하며, 70년대 낙도 봉사 활동의 어느 시절로 돌아간듯한 기시감조차 주는 컨셉이다. 
올드한 장치만이 아니다. 실제 드라마의 내용도 이제는 도시에는 가볍게 여기는 맹장 수술이 응급 상황이 되는 설정에서 부터, 단 한 순간의 외면으로 어머니를 잃게되는 사연까지 21세기의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 드라마의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하여 '휴머니즘의 인술'의 도구로 작동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사극'은 아니지만, '시대극'처럼 시청자들을 향수처럼 이끌며 끌어앉힌다. '안되도 되게 하는' 응급 상황과, 그 속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의학 드라마'의 본령으로 시청자들을 솔깃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세련된 맛이라고는 없는 투박한 연출과 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서사가 오히려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21세기에 안락한 아파트에서 느긋하게 리모컨을 쥐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에겐 여전히 힘들고 고달프게 이겨왔던 그 시절의 정서가 지배적일 지도 모르기에. 어쩌면 <병원선>의 이 방식은 서투름이 아니라, 의도된 촌스러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죽어야 사는 남자>가 여전히 가장 호소력있는 '가족애'를 주제로 내건데 이어, <병원선>이 도시의 성장주의에서 탈락한 여의사를 내세워 다시 한번 가장 근원적인 '휴머니즘 인술'을 내세워 시청자들을 이끄는 이 전략은 이제 중장년층이 대세가 된 공중파 tv에서 어쩌면 가장 영리한 전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21세기의 시대를 살지만, 7,80년대를 살아왔던 그 세대에게 <병원선>은 그럼에도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정서를 복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증거는, 시간을 거스르는 기발한 설정의 <맨홀>과 역시나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 <다시 만난 세계>가 고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병원선>의 전략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엔 이르다. 상대작인 <맨홀>이나 <다만세>가 공정한 경쟁작이라기엔 완성도면이나 연기면에서 너무 수준 미달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분간 안정적인 시청률 호조세를 보일 <병원선>의 진검 승부는 이종석, 수지를 앞세운 트렌디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방영과 함께 이루어질 전망이다. 


by meditator 2017. 9. 1. 14:45

<비밀의 숲>, <터널>, <쌈마이웨이>, <품위있는 그녀>, <죽어야 사는 남자> 이들 드라마들은 최근 '화제'의 드라마들이다. 그리고 화제의 드라마들답게 시청률면에서도 동시간대 1위를 거뜬히 낚아챈 드라마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입봉의 신인이거나, 입봉작이 아니더라도 드라마화한 작품이 몇 개 되지 않은 '신인'이라 말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공중파, 케이블, 종편을 넘나들며 새로운 작가군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이들 신진 작가군의 활약은 그저 '신인'이라는 점에만 방점을 찍어서는 아깝다. 신인다운 패기와 신선한 기획과 서사, 그리고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구성으로 이들 드라마에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는 점이 진짜 놀라운 점이다. 이렇게 드라마의 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 




장르물의 약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타임 슬립을 통해 풀어낸 구성으로 방송 초반 <시그널>과 비교되던 <터널>은 극이 중반을 넘어서며 더 이상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터널>이라는 드라마 자체만으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구었으면, 과거에서 온 형사와 현재에서 그의 과거 인연으로 얽힌 인물들과의 공조 수사만으로, 그리고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악행을 멈추지 않는 연쇄 살인마의 귀추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범죄의 종식을 응원하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계에서 장르물은 희귀했다. 그러기에 2011 <싸인> 이래 장르물의 김은희는 독보적이었다. 늘 '장르물'이 작품이 등장하면 과연 김은희의 작품을 넘어설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김은희 작가를 불러내기엔 장르물이 너무 잦아졌다. 거의 2년에 한번씩 작품을 선보이는 김은희 작가를 '학수고대'하지 않아도 장르물 애청자들의 마음을 쏙 빼앗을 장르물들이 빈번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신인 그룹'의 작품들이다. 

신인 작가 그룹에 의한 드라마계 지형도의 변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드라마 장르의 변화이다. 위의 검찰청을 '숲'으로 상징하고 그 속에서 직업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낸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는 한국 장르물을 비밀의 숲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보적인 영역을 단 한 작품만에 구축했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복수'를 매개로한 정의 실현이 한국 장르 드라마의 일반적 양상이었던 그 '한계'를 단 한 개의 사건으로 16부을 뚝심있게 이끌어간 <비밀의 숲>은 그 흔한 '미드'와의 비교에서도 우리의 어깨를 우쭐하게 할 만큼 주제 의식과 구성에 있어 시청자들의 자부심을 한껏 만족시켰다. 

<비밀의 숲>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터널>역시 과거와 현재의 인연이 바탕이 되었지만, 형사라는 직업군의 책임 의식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면서도, 장르물 특유의 묵직한 정서를 대중적 호흡으로 적절하게 순화시킨 <터널>은 ocn 드라마로는 드물게 6%를 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6.490% 16회,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동시간대 1위는 아니었지만, 화제성에 힘입어 시즌2를 예약한 kbs2의 <추리의 여왕>은 '추리'를 전문가만큼 잘 하는 동네 아줌마와 열혈 형사 콤비의 신선한 조합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며 묵직한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풀어나가면 <추리의 여왕>만의 정서를 구축한다. <피고인(sbs)>의 최수진, 최창환 작가나, <피고인(mbc)>의 김수은 작가 역시 공모전 출신으로 장르물로 작가 입문의 시작을 열었다. 



기존의 장르라도 이들이 쓰면 다르다. 
그러나 이런 장르물만이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종영한 <품위있는 그녀>는 <비밀의 숲>과는 또 다른 화제성으로 인기를 몰았다. 대성 펄프라는 가상의 재벌가를 중심으로 상류 사회와 그 주변의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며 인기를 모은 <품위있는 그녀>는 주말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고스란히 수용하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하고, 그것을 '부조리극'으로 승화시키며 퀄리티있는 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이 드라마를 저술한 백미경의 작가의 경우 죽음을 사이에 둔 연상연하 남녀의 순애보 넘치는 사랑 이야기 <강구 이야기(2014)>가 20여년만에 만난 톱스타와 작가의 우여곡절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은동아(2016)>로 업그레이드 되더니, 천하장사 여성과 재벌남의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힘센 여자 도봉순(2017)>의 변주를 통해, <품위있는 그녀>에 이르렀다. 순애보 러브 스토리에서 막장 스릴 부조리극에 이르기까지 장편 드라마로는 불과 3작품에 이르를 동안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작품을 이기는 기묘한 역전극을 벌이고 있는 백미경 작가의 다음 작품은 예측 불허라서 더 기대가 된다. 



청춘물도 이들이 쓰면 다르다. 이미 <백희가 돌아왔다>로 단막극으로서는 드물게 인기를 끌었던 임상춘 작가의 <쌈 마이웨이>는 재벌가 없이, 88만원 세대의 현실감넘치는 사랑 이야기로 공감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죽어야 사는 남자>의 김선희 작가는 헤어진 모녀 상봉이라는 '가족 드라마'를 기상천회한 코믹물로 업그레이드 시켜 땜빵 드라마의 승리를 거머쥐었고, <자체 발광 오피스>의 정회현 작가는 '오피스'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도전했다. 

장르도 신선했지만, 그간 시간에 쫓기는 촬영 일정으로 완성도에 있어 문제 제기가 되왔던 고질적 문제점들에 있어서도 진일보한 성과를 보였다. 한 여름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의 겨울옷, 하지만 결코 그 설정과 의상이 답답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서늘한 분위기로 압도했던 <비밀의 숲>과 <품위있는 그녀>는 작품성만 보장된다면, 굳이 시의성있는 피드백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전 제작'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22부작의 <죽어야 사는 남자>가 보인 속도감있는 전개 역시 16부작, 20부작의 관성에 대한 반문이 되었다. 

이렇게 신진 작가군의 등장과 그들의 신선한 작품에 의한 드라마계의 수혈은 시청자들에게는 뻔하지 않은을 넘은 올드 미디어로서 tv의 가능성을 다방면에 걸쳐 열었다. 미드 등을 통해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며 젊은 층들에게도 호응을 얻으며 노령화된 시청층의 벽을 허무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여전히 스타 작가의 아성은 공고하지만, 이들 신진 그룹의 활약으로 좀 더 다양하고 재밌는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었다. 
by meditator 2017. 8. 29.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