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변함없이 다행스럽게도 <드라마 스페셜>이 찾아왔다. 가을이라는 계절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낮은 시청률을 돌파하고자 하는 암중모색이었을까? '멜로의 법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찾아온 2017년의 <드라마 스페셜>은 그 부제 만큼이나 다종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하지만 부제가 어떻든 <드라마 스페셜>이라면 변치않고 담아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라 할 작품들이다. 올해도 변함없다. 지난 일요일 밤에 이어, 수요일 밤 다시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 혼자 추는 왈츠>는 드라마로 그려낸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2015년 <노량진 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이 여운이 긴 제목에서 지칭하는 지명만으로도 이젠 어떤 청춘의 이야기를 그릴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곳 노량진, 그렇다. 이 드라마는 '공시생'의 이야기이다. 2015년에도 그렇고, 이제 공무원 수를 늘린다니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어났다는 노량진 공무원 수험생의 사랑 이야기다. 세상에 시험 공부하기에도 빠듯한데 사랑이라니, 사랑이 사치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래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단 1 점차로 시험에 떨어져 공시생 5년차가 된 모희준(봉태규 분), 그 끝없는 좌절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노량진 철교 위로 올라갔다. 바로 그 나락의 순간에 그의 앞에 나타난 유하(하승리 분)는 그를 '강제적 연애'의 세계로 인도한다. 다짜고짜 그의 수험 생활에 쳐들어와 공원 데이트를 하게 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던 유하, 그러나 그런 만남이 늘 버거웠던 희준은 결국 시험을 두 달 앞둔 시점에 그녀와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드디어 합격! 당당하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자 그녀를 찾아간 희준이 받아든 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그녀의 소식. 그렇게 드라마는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마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2015년 청년들의 운명을 찰라의 사랑을 통해 담아낸다. 



2016년 <아득히 먼 춤>
드라마 속 연극이라는 실험적 도전을 했던 <아득히 먼 춤>, 하지만 정작 이 실험적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건 2016년 청춘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자화상은 '영정 사진'으로부터 시작되고 만다. 젊은 연극 연출가 신파랑(구교환 분), 그는 불모지인 연극판에서도 동료들에게조차 인정받기 힘든 sf연극<로봇의 죽음>을 무대 올리려 했다.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버린 그의 작품과 생애를 '졸업'을 위해 마지못해 무대에 올리는 후배 연출가 최현(이상희 분)을 통해 되짚어간다. 

무용극과 전위적 연극 무대를 통해 드라마가 담고자 하는 건, 2016년에도 순수 연극을 하고자 애쓰는 젊은 연극인의 현주소이다. 연극을 한 편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이 시대의 젊은 연출가에게 필요한 건? 정작 후배들이 기억하는 그는 술에 취해, 혹은 잠에 취해 디렉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불성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불성실은 연극을 포기하지 못하고 공연비를 마련하고자 철거 작업까지 뛰어야 하는 삶의 성실성이 잉태한 것이다. 보장되지 않는 예술로 고민하는 최현의 고뇌를 신파랑이 남긴 연극을 통해 신파랑의 실존적 절규로 까지 확장시키며 이 시대 예술가의 삶을 살려는 청춘들을 그려내려 한 드라마는, 영생을 포기하고 유한성의 '예술적 행위'를 선택하는 '안드로이들'들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될 수 없는 예술혼'으로 마무리된다. 



2017 <홀로 추는 왈츠> 
2015년에 미처 못다해서 안타까운 사랑과, 2016년에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래도 작품을 통해서나마 예술적 연대를 했던 청춘은 2017년에 오면 좀 더 처절해 진다. 

'왈츠의 이해'라는 대학의 강의, 이 수업에서 학점을 얻지 못하면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없는 김민선(문가영 분)은 다짜고짜 구건희(여회현 분)에게 사겨주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왈츠 수업 참가를 종용한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군대를 가고, 인턴 생활을 하며, 그렇게 8년의 시간을 보낸 오랜 연인을 드라마는 두 사람의 '왈츠'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낸다. 

하지만 삼박자의 온유한 왈츠 음악과 달리, 8년째 연애를 맞이한 두 사람의 처지는 그리 평화롭지 않다. 민선과 달리 지방 캠 출신의 건희는 대기업 하청업체 직원의 처지이고,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하지만 정작 민선에게 기회는 번번히 주어지지 않는다. 함께 만든 통장의 잔고로 신경전을 벌이고, 모텔비가 아까워지는 시간, 무엇보다 그들을 압박하는 건, 벼랑 끝에 서있는 그들의 존재이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 이들 연인, 결국 그럼에도 '너 밖에 없어'라고 했지만, 어렵사리 도전한 한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맞붙게 된 두 사람은, 그 애절한 사랑 고백도, 성대한 만찬도 뒤로 하고, 서로의 포기를 종용하는 치사한 처지가 되고 만다. 심지어 한껏 서로의 자존심을 긁고 대판 싸우고 난 다음날, 지하철 계단에서 실신한 민선을 건희는 모른 체 하고, 안심하는 건희가 무색하게, 민선은 피투성이가 된 채 면접장에 나타난다. 

애써 쾌활한 척 하며 오가던 덕담 몇 마디 후 명함만을 만지작거리던 두 사람이 이후 도망치듯 숨어 오열하던 두 사람의 엔딩은, 그 서정적인 왈츠와 비교대며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2015년의 연민도, 2016년의 예술적 각오도 무색하게 이제 2017년의 청춘은 전장의 적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로 작동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청춘들의 현주소를 드라마 스페셜은 담담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홀로 추는 왈츠>는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 이유를 강변해 낸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보는 혹자의 청춘은 그리 말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사람은 취직을 했지 않느냐고. 그래도 드라마는 알량한 미덕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언제나 드라마는 현실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by meditator 2017. 9. 2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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