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느지막이 극장을 찾아온 납량 특집 영화들과 달리 tv에는 이렇다할 '공포'를 다룬 작품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포물'이 보고 싶은 시청자들이라면 굳이 멀리서 찾을 것이 없다. 죽은 어머니를 빙의한 딸이 어머니의 옷을 입고 온 집안을 휘젖고 다니거나, 비오는 날 죽은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산 사람이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협박하는 드라마라면 이 무더운 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주말 드라마의 진화는 이제 가족극의 형식을 호러와 스릴러의 영역까지 진화하기에 이른다. 바로 jtbc의 <품위있는 여자>와 sbs의 <언니는 살아있다>가 그것이다. 




재벌가 부조리극으로서의 주말 드라마
점찍고 돌아와 복수를 한다는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화끈한 복수의 방식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김순옥 작가는 <내딸 금사월(2015)>과 <왔다 장보리(2014)>에 이어 2회 연속 주말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로 돌아왔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악녀에 의존한 엉성한 구조로 질타받았던 전작에 대한 평가로 절치부심했다는 듯 고속도로 다중 충돌 사고로 시작된 드라마는 민들레(장서희 분), 강하리(김주현 분), 김은향(오윤아 분), 양달희(다솜 분)의 악연을 한 쾌에 조장한다. 그 그 배후로 공룡그룹 구필모(손창민 분) 회장의 딸 구세경(손여은 분)과 아들의 친모 이계화(양정아 분)를 얽혀들게 만든다. 한날 한 시에 일어난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된 사람들과 그 사건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만들어 낸 이들의 한 판 복수극은 공룡그룹이라는 재벌가를 중심으로 때론 스릴러로, 때론 블랙코미디로, 심지어 때로는 호러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엎치락뒤치락하는 50부의 레이스를 벌인다. 

<사랑하는 은동아>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인기 작가가 된 백미경 작가가 들고 온 작품은 뜻밖에도 전작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품위있는 여자>이다. <언니는 살아있다>의 시작이 다중충돌 교통사고였다면, <품위있는 여자>는 주인공 격인 박복자(김선아 분)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재벌가 대성펄프에 간병인으로 등장하여 숟가락을 들 힘만 있어도 여자를 마다할 수 없다는 안태동 회장의 아내 자리까지 등극하여 상류 사회 진입에 성공한 미스터리한 인물 박복자, 그녀를 중심으로 안태동 회장의 자녀들과, 자녀들 중 특히 그녀를 그 자리에 있게 해준 둘째 며느리 우아진(김희선 분)과의 갈등, 그리고 우아진이 몸담은 상류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며 '부조리극'이자 '스릴러'으로서의 이 드라마의 묘미를 한껏 살려나가는 중이다. 

두 드라마는 공히 재벌가, 혹은 준재벌가를 배경으로 삼은 전형적인 주말 가족극의 형태를 띤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주말 드라마에는 '가족'이 주인공이 되었고, 또한 그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재벌'이 없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품위있는 그녀>와 <언니는 살아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그 전통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회장님이, 그가 이룬 부가 결국은 이들 드라마가 벌이는 모든 갈등의 근원이 된다. <언니가 살아있다>의 양달희는 자신의 신분 세탁을 위해 사고 현장에서 도망치며, 구세경은 그룹 내에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설기찬(이지훈 분)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심지어 그를 없애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애꿏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회장의 아이를 낳은 이계화는 '미쓰리' 취급을 받는 자신의 수모를 자기 아들의 재벌가 승계로 보상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품위있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대성 펄프의 부를 통해 상류 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는 미스터리한 인물 박복자와 그런 그녀가 자신들이 물려받을 부를 훼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자식들이 벌이게 되는 갈등 역시 대성 펄프와 그것의 현신인 회장님과의 관계로 현실화된다. 대성 펄프만이 아니다. 우아진이 만나는 상류 사회 속 각 집안의 갈등은 결국 경제적 주도권과 그것을 가부장으로 승인받은 오늘날 한국 사회 가족의 문제를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여여 갈등'으로 드러나는 이들 드라마의 주된 갈등은 이전의 재벌가의 권력 승계와 관련된 재벌가의 드라마를 가족극의 형태로 질적 전환을 이뤄 가부장적 가족 제도와 재벌이라는 이중적 권위 속에서의 '아비규환'이 된다. 



특히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와, <언니는 살아있다>의 이계화가 극중 악의 최종 보스로 극중 모든 인물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존재로 등장하게 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극중 인물들이 아버지라던가, 시아버지라던가 혈연적 관계로 재벌가와 관계를 맺은 것과 달리, 단 한 방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완벽한 타인이다. 그런 타인들이 그저 자신들의 욕망 만으로 재벌가에 진입하여 여성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이용하여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그런 욕망은 이계화의 경우 재벌 회장의 아이를 낳았음에도 정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받지 못한 채 가정부 취급을 받는다거나, 박복자처럼 재벌가의 안주인이 되었음에도 그녀의 자리와 상관없이 그녀를 배척하고 하는 갖가지 장치를 주변인들이 제안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을 배쳑하는 주변인들때문에, 아니 끓어오르는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그녀들의 상승 욕구는 결국 여러 부작용을 안고 스스로 자중지난에 빠지고 만다. 

도발적인 하지만 순수하리만치 정확한 박복자와 이계화의 욕망, 그 대상이 되는 재벌가의 회장님들은 적극적인 그 욕망에 대해 무기력하다. 반신불수였던 안태동 회장은 심지어 그녀의 실체를 알고나서도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고서라도 박복자의 진심을 얻고 싶어한다. 그런가 하면 구필모 회장은 민들레와 이계화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딸 구세경의 비리에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마치 '부조리극'처럼 재벌이라는 부권을 가운데 놓고, 욕망하는 여성들의 매치를 통해 그 부권과 부를 흔들며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그들이 흔드는 그 반동이 커질수록, 시청자들의 흥미와 시청률은 따라 상승한다. 무기력한 가부장제와 부도덕한 부에 대한 조롱은 이런 식으로 드라마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그에 대한 열렬한 반응으로 시청자들은 화답한다. 



부도덕한 욕망의 결과는? 
물론 과정은 그렇지만 두 드라마의 결론은 다를 듯하다. 그리고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바로 실소와 썩소라는 두 드라마에 대한 평가를 낳을 것이다. 어쨋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자신의 능력만으로 상류 사회에 진입하려던 그 욕망은 2017년에도 실패할 것이다. 재벌가의 며느리로서 안락함을 누리던 우아진이 재벌가를 나와, 이제 재벌가를 상대로 돈을 벌며 자신의 인생을 찾았다고 하는 것처럼, 돈이 전부가 아닌 삶의 주제 의식으로 <품위있는 여자>는 돈이 전부인 사회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듯, 돈을 위해 자신을 던졌던 박복자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이다. 대성 펄프는 물론 극중에서 나름 상류 사회연했던 사람들이 쌓은 부의 성채는 공허한 허깨비로 남아 씁쓰레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닌 삶에 대한 위로를 주제 의식으로 남길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아진도, 박복자도 두 주인공은 사회적 신분 상승에서는 멀어졌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쾌감'과 현실적 결과의 괴리다. 



그에 반해, 늘 오락가락하던 구필모 회장이 드디어 이계화의 정체를 알아차린 <언니는 살아있다>는 부도덕한 승계자 이계화 모자를 처리하고, 부조리한 방식으로 부를 재편하려 했던 구세경을 제거하며,  잃어버린 아들 설기찬을 만나는 등의 과정을 통해 건강한 재벌가이자 가부장적 구조로 재편될 것이다. 실소를 자아내던 설정들의 납치, 불륜. 살인 등 드라마에서 보여질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들을 다 동원했던 드라마는 그럼에도 결국 착한 사람들은 부의 은총마저 받으며 행복해지고, 어긋난 욕망으로 계층 상승의 에스컬레이션을 꿈꾸던 이들은 처분될 것이다. 

올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브라운관을 갖가지 범죄와 욕망으로 달구었던 이들 드라마가 보여준 건, 결국 '가족'과 '부'라는 이 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두 가지 요소가 보이는 '막장'의 현실이다. 현실에서 벌어졌던 어느 집의 이야기다라는 소문이 회자되는 그 이야기들의 현실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족'과 그 '가족'을 지탱하는 부의 성채가 이루어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스릴러적 장치, 그 현실성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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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8.15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