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이켜 보면 <부활> 때도 그랬었다. 그리고 <마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른지도 모른다.

김지우, 박찬홍의 드라마들은, 조그만 구멍 하나가 결국엔 엄청난 봇물을 터지게 만들듯, 차곡차곡 쌓아져 가는 맛에 보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이른바 그걸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환호작약한다는 '매니아' 드라마의 원조이기도 했고, 드라마가 종영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없는 난해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른바 복수 시리즈의 완결판 <상어>를 만들려고 한 것이 무려 5년 전이었다고 한다. 5년이란 시간이 너무 긴 것이었나, 아니면, 겨우 5년이란 시간 동안, 세상이, 우리가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일까?

종종 <상어>를 보다보면 그 느린 호흡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실 남여 주인공을 주구장창 풀샷과 클로즈 업으로 잡아대기론, 얼마전 종영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힐링 캠프>에 출연한 윤여정이 그러려면 뭐 하러 야외 촬영을 했냐고 힐문을 했을까? 그런데, <상어> 역시 만만치 않다. 남여 주인공, 김남길과 손예진이 등장하면, 카메라는 늘 과할 정도로 두 사람에게 들이댄다. 마치 '치명적 사랑이야, 치명적 사랑이지?' 라며 강요하듯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해우(손예진 분)의 첫사랑 한이수(김남길 분)가 교통사고 이후에 실종이 되었다는 건 알겠지만,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 이미 결혼까지 하며 희희락락 살아가는 조해우와 그 앞에 자꾸 얼씬거리는 김준(한이수)이 그렇다고 해서, 치명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건, 작가와 감독이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갖은 공을 들였음에도, 그 사랑이 시청자의 마음에 깊게 아로새겨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또 한편에서 지금의 성인이 된 주인공들을 보며 첫사랑의 트라우마가 깊다는 게 공감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아온 김준은 해우를 만나기만 하면, 자신이 품고 있는 복수의 야망이 흔들릴 만큼, 그녀에게 다시 빠져든다. 앞서 걸어가는 그녀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고, 비오는 거리에서 다짜고짜 입을 맞출 만큼. 물론 지나온 시간 동안 12년 전의 그 사건에 매여져 있는 김준이니깐 더욱 해우에게 얽매여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14년 만에 만난 그녀가 정말 그렇게 똑같을까? 어린 시절의 해우는 지금의 해우와 비슷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늘 우울하고 퉁명스러운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의 해우는 늘 방실방실 웃음이 넘치는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다. 물론 얼굴이나 표정이 친숙함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그 못지 않게 그 사람의 분위기도 중요한데, 심지어 한이수의 실종까지 겪은 해우는 종종 무표정일 때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밝게 자라지 않았나? 그런 그녀에게 다짜고짜 '치명적'으로 빠져들 수 있을까? 만약에 그 조차도 김준이 된 한이수의 계략이라면 몰라도, 지금까지 흔들리는 모습으로 보아선 그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행복해 하고, 밝아진 그녀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게 먼저 보여질 반응이 아닐까?

 

김남길이 손예진에게 기습 키스하고 있다./KBS2 상어 방송 캡처

 

 

 

바로 이런 것들이다. <상어>가 어딘가 모르게 그 예전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돌아온 첫사랑, 그리고 한결같은 그의 감정, <상어>가 처음 시도된 그때로 부터 5년이 흐른, 그래서 가속도로 인간의 감정이 세속화된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주인공의 지고지순함에 쉽게 동조하지 못한다. 첫사랑의 그녀 해우를 기억해 내고, 해우가 저렇게 달라졌는데, 어떻게 한결같이 사랑해?

그리고 사랑한다면서 검사가 된 그녀에게 사건의 열쇠를 맡기는 이유는 뭐야? 더구나 이미 결혼까지 한 유부녀를 어쩌라고? 이렇게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끌고 가려는 전제들에 대해 되바랄질 대로 되바라진 시청자들은 자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떠서, 기억도 안나는 예전 드라마를 떠올리며, <부활>은 안그랬는데, <마왕>은 쩔었어. 하면서, 그 시간동안 자신의 눈이, 생각이 달라진 건 생각지도 않고.

<상어>의 사건 현장마다 그려진 붉은 원의 표식을 보면, 자꾸 미드 <멘탈리스트>가 떠오른다. 거기서 연쇄 살인범 레드 존은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그 현장에 웃는 얼굴을 그려 놓는다. 이렇게 상어가 던지는 의문의 표시를 비롯해서 이른바 많은 '떡밥'들을 시청자들은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다.

6회 무심히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서점 아저씨, 그리고 그의 손에서 똑딱이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한이수의 아버지를 죽게 한 그것이었다! )

작가와 감독은 의미심장하게 서점 아저씨의 숨겨진 신분을 던졌다 생각했겠지만, 솔직히, 그런 류의 작품을 좀 본 눈치빠른 시청자라면 그 아저씨에게 이미 혐의를 두지 않았을까?

이렇게 작가와 감독은 야심차게 시청자들에게 무언가를 하나씩 던지는데, 그것이 '혹시나' 였던 거였다면, 그 추측이 맞아서 좋은 거 보다는, 오히려, 기대했던 <상어>가 알고보면 시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감정선에, 어디선가 본 듯한 사건의 실마리들을 가지고, <상어>는 그 마저도 아주 물 속을 유영하듯 유유히 끌고 나간다. 조해우 주변에서 사건이 터지거나,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 하면, 늘 그와 대비되어, 김준의 의미심장한 표정이 등장하고, 그나마도 박진감있게 진행되어야 할 상황을 <상어>는 김준의 복수에 공감을 강요하며 한 템포 느리게 떨어뜨려 놓는다. 만화 책이나, 추리 소설이라면 후다닥 페이지 수를 넘겨 버리기라도 하지, 뭔가 이야기는 할 거 같은데, 막상 해버리면 좀 시시해 지는 <상어>, 안보자니 아쉽고, 보자니 답답하고, 그런 상황이다.

by meditator 2013. 6. 12. 10:07

광고가 끝나자 화면에 대뜸 송중기가 얼굴을 비췄다. 왜지?

그러자 송중기가 말한다. 개그 콘서트와 인연이 깊다고. 아하, 생활의 발견에서~ 송중기가 게스트로 나오자 신보라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그래서 송중기가 앙탈(?)을 부리며 안먹는다고 뱉어낸 음식까지 줏어 먹던 진짜 같던 그날의 개그가 기억에 떠오른다.

이어서 등장한 첫 코너 모처럼 돌아온 '꺽기도'에 이어, 정말 오랜만에 개그 콘서트에 등장한 '수다맨'에 진짜 수다맨 강성범이 등장했다. 어디 그뿐인가, '씁쓸한 인생'에선 개그콘서트 초창기 멤버였던 김영철이 텔레마케터인양 등장해서 예의 애드립 풍년을 이룬다. 심지어, 개그콘서트의 효시인 전유성은 '버티고' 코너에서 곰 탈을 뒤집어 쓰고 등장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뚱뚱했떤 정형돈이 인기와 반비례하듯 홀쭉해져 돌아와 '도레미 트리오'를 다시 선보이고, 아직도 개콘 멤버 같은 이수근, 신봉선, 김병만이 '키컸으면', '대화가 필요해', '달인' 등 추억의 코너에 등장한다. 물론 오랜만에 등장한 선배들의 호흡은 딸리고, 대사의 웃음 포인트는 빗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마,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700회, 단 90분 만에 개그콘서트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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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bm스타)

 

 

 

700회의 개그 콘서트가 잔칫집 같던 이유 중 하나는, '무한 도전' '개그야' 등 공중파 타 방송 개그 프로그램의 축하 인사는 물론, tvn의 'SNL' 을 거쳐, 심지어, '썰전(썰전이 개그 프로그램이었어?)' 멤버의 축하 인사를 집어 넣은 것이다. 그 느낌은 마치 환갑 잔치에 동네 방네 지인들을 초대하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방송국을 불문하고 모든 개그맨들이 하나된 듯한 묘한 일체감같은 걸 느끼게도 해주었다. 심지어, TVN의 '코미디 빅리그' 출연진들은 박준형, 안영미, 박휘순 등 거의 대부분 한때 개그 콘서트에 몸담았던 개그맨들로, 새삼 개그 콘서트의 저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700회지만 출연진의 면면도 새로웠다. 이미 다른 특집에서 등장했던 김미화나 심현섭이 아니라, 또 강성범이나, 김영철, 심지어 전유성을 초대한 것처럼, 선배들마저 순번으로 등장할 정도로 개그콘서트의 인력 풀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또한 자주 등장하는 선배이고, 코너인 이수근의 '키컸으면'과 '달인'은 특집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듯하다. 지난 번 '키컸으면'이 원조 장두석, 이봉원을 초대해 원조와의 콜라보레이션을 벌였다면, 이번에는 개그콘서트의 키가 비슷하게 작은 개그맨들을 동원해 일곱 난장이 버전으로 새로운 개그를 선보였다. 김병만의 '달인'도 지금 그가 잘 나가고 있는 SBS의 정글의 법칙를 그래도 이입시켜 '정글의 달인'으로 재탄생시켜, 또 다른 공감을 얻어갔다.

물론 모든 개그 콘서트 출신의 개그맨들이 여전히 개그 콘서트 팀과 사이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개그콘서트를 거쳐갔던 그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잔칫날 불러서, 심지어 지금 그들의 성과 조차 흔쾌히 박수쳐 가며 개그콘서트 버전으로 재 탄생시킨 것은 700호를 거친 개그 콘서트의 품이 그만큼 넓고, 깊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건, 결국 어떤 누가 와도, 혹은 누가 가도, 개그 콘서트의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진; tv리포트)

 

700회 특집에서 또한 돋보인 것은, 지금 <개그 콘서트>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이른바 최고참, 박성호, 김대희, 김준호 3인방의 활약이다. '애정 남보원', '대화가 필요해', 씁쓸한 인생' 등 이미 추억이 된 코너에서는 물론, 여전히 '화가 난다~', '쇠고기 사묵겄지' 하며 유행어를 들이대며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개그 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이들의 존재감이 새삼 특집에서 빛났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는 김준현, 정성호, 박성광 등 애정남 최효종의 정의처럼, 이제는 그의 이름도 알고, 그가 한 코너도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인기 개그맨이 된 개그맨들의 두툼한 인맥 풀도 이젠 든든하게 <개그 콘서트>를 빛내주고 있다는 걸 자랑하며 내보일 만 했다. 그리고 그에 질세라, 새내기 개그맨들의 의욕적인 재롱잔치도 700회 특집은 놓치지 않았다.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다고 하지만, 700회의 역사를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개그콘서트> 90분은 충분히 과식감이다.

by meditator 2013. 6. 10. 09:40

친구 찾기 미션의 3주차가 끝났다.

꼬박 미션 수행을 향해 달리던 4주차의 다른 미션과 달리, 3주 만에 막을 내린 '친구 찾기'는 그간 인간다운 삶을 향해 고되게 달려온 <인간의 조건> 팀에게는 장거리를 달려 가도, 기억을 더듬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또 되묻기를 반복해도 그 끝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친구가 있었기에 쉼표와도 같은 휴식 시간 같았다.

 

미션의 마지막 날, 과연 친구가 무엇일까? 란 제작진의 물음에,

'친구는 그저 친구'라는 선문답같은 대답에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족'같은 관계라는 매력적인 정의까지 다양한 대답이 등장했다. 그 어떤 대답을 했건, 그들에게 주어진1주일간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친한' 친구를 찾아다니며, 혹은 친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는 멤버 사이의 인기 투표 비슷한 친구 투표를 하면서, 과연 친구가 무엇일까를 되짚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동선을 쫓아가며 시청자들 역시 1년 가야 한번 볼까 말까한 하지만 만나면 내 흑역사까지 고스란히 알고 있어 더 이상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친구에서 부터 사회 생활 속에서 엇갈리는 '친구'들까지 다양한 친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사진; OSEN)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촬영 분량이 나오지 않은 탓이었는지, 아니면 결국 찍어놓고 보니, 친구를 만나서 하하호호 반갑다 하는 것 이상의 차별성을 둘 수 없는 내용 탓이었는지, 단지 3주차로 촉박하게 마무리된 '친구 찾기' 미션이 친구란 화두에 대해 조금 더 농밀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한편에선 남는다.

이제는 얼굴조차 서로 가물가물 하지만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던 박성호의 꼬꼬마 어린 시절 친구나, 오해로 인해 3년간 연락조차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만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그저 아집이었음을 확인시켜주었던 양상국의 친구 찾기는 이런 게 '친구'라는 정의를 내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굳기 이전의 어린 시절 친구들의 막연한 우정은 향수와도 같은 묘한 정취를 불러 일으켰지만, 그 못지 않게 인상깊었던 것은, 김준호가 친구라고 하자, 대뜸 <개그콘서트>를 함께 해온 김대희를 든 것이라던가, 그와 반대로 그를 따라 방송국까지 옮겼지만 잘 되지 않아서 한때는 원망하기도 했던,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드니 그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심현섭을 친구로 찾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겐 지금 혹은 한 때 내 옆에 있거나, 있었지만 정작 '친구'로써 인식하지 못했던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그들과 즐겁게 추억을 되짚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유재석이나 신동엽처럼 친구라고 우기기엔 낯 간지러운 선배들을 찾아가 입술 도장을 찍어 달라고 하는 대신에,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함께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들을 조금 더 깊게 다루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피 투게더>에 함께 출연하기까지 했던 박성호의 동기, 박준형 등을 찾아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또한 이제는 <개그콘서트>의 맏형이거나, 중진에 가까운 멤버들이, 정작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개그 콘서트> 팀을 좀 더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친구로 소개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가능성이 불투명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례가 될 수도 있는 이벤트 성 송강호, 최민식, 이나영, 김연아 만나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멤버들이 코너를 함께 하고 있는, 혹은 한때 했던 <개그콘서트>의 멤버들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나누었다면 조금 더 풍성하고 친근한 내용들이 나왔을 텐데, 그렇다면 <개그콘서트>도 좋고, <인간의 조건>도 좋은 '윈윈 전략'이 되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언제부터인가, 명망인을 목말라 하는 <인간의 조건>의 얄팍한 근시안이 아쉽다.

정성호가, 양상국이 처음 <인간의 조건>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좀 아는 개그맨이었듯이, <인간의 조건> 팀의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인재 풀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내 아이도, 내 부인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친구'에 대한 정의처럼, '친구 찾기'라는 주제를 통해 얼마든지 문어발 식으로 다앙하고 깊은 재미를 추구할 수 있었는데 제작진 자체가 주제에 대해 '쉬어가기'처럼 편하게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조차 들었다.

 

(사진; OSEN)

 

하지만, '친구 찾기'란 주제는 <인간의 조건>에게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미션이었다. 과연 '~없이 살기'란 전투적 미션이 아니라도 그 속에서 인간다운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가의 관건이 된 미션이었다. 그런 면에서, 객관적으로 <인간의 조건>에 주어진 상황과, 제작진이 미션을 대하는 온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나는 듯 하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이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각각 캐럭터를 구축하고, 그들이 함께 '먹방'을 하거나, '꽁트'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안정적 호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가끔은 안일하게 거기에 기대어 가려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예전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는 김준호가 '꽁트'식으로 하는 것을 질색을 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프로그램의 흐름을 깨거나,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무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개그콘서트>를 통해 단련되어 그 누구보다도 '꽁트'에 뒤질 자원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된다면, 금방 변덕스런 시청자들은 외면할 것이다. '먹방'도 마찬가지다.

 

'친구 찾기' 미션이 그랬다. 시청자들은 언제나 그랬듯, 이 프로그램이 친구란 주제를 통해 무언가 더 말하리라 기대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도 친구지 하면서 예의 꽁트와 먹방을 하며 즐기는 걸 보면서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쉼표 하나도 만만치 않다.

by meditator 2013. 6. 9. 10:19

'Bad Girl'로 돌아온 이효리가 예능을 순회 중이다.

이미 관계자들과 이야기가 된 것이라 하면서 음악 방송 출연은 2주차로 접었던 것과 달리, <라디오 스타>, <맨발의 예체능>, <해피투게더>를 시작으로 <화신>, <안녕하세요>, 그리고 케이블의 <스토리 우먼쇼>까지 줄줄이 출연할 혹은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물론 담당 피디의 오랜 읍소에도 불구하고 이효리의 출연이 고사해 가는 프로그램의 생명 연장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까 싶은 <맨발의 예체능>같은 프로그램도 있지만, <해피투게더>와 <라디오 스타>처럼 이효리의 출연 만으로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예능 대세 이효리를 진가를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예능인으로서의 이효리가 가진 Bad Girl'로써의 이미지를 일괄적으로 충실히 소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효리가 이번에 들고 나온 앨범의 컨셉이 똑같다 보니, 이효리는 이전보다 한껏 더 거침없고, 더 직설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Bad Girl'로써의 이번 앨범은 1위를 단번에 했든 그렇지 않든과 상관없이 이효리다운 아우라를 충분히 발산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수가 늘어나면서 도대체 사적인 자리인지, 방송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비난(?)'이 하나 둘 등장하기도 하고, 그녀의 도발적 발언과 행동들에 대한 호불호가 연일 인터넷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으로 치자면 꽤나 성공한 컨셉이라 하겠다. 하지만 한편에선 다시 예능으로 돌아올 이효리를 기대하고 있지만,출연을 거듭하면 할 수록, 제 아무리 기가 센 Bad Girl'로써의 컨셉도 그저 소비될 뿐, 오랜 예능 경험에도 여전히 길들여 지지 않은 혹은 때로는 통제되지 않은 듯한 이효리는 '뜨거운 감자'로, 그저 '해프닝 용'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 가운데 유독 예능인으로 Bad Girl 효리를 소모하지 않는 예능이 바로 <땡큐>이다.

지난 주에 이어 2회에 걸쳐 방영된 <땡큐>는 마흔 셋 한때는 가수였으나 이제는 잘 나가는 쉐프가 된 이지연에, 새로운 앨범을 가지고 돌아온 이효리, 그리고 원더걸스 였으나 연기자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예은 등 이른바 한때 우리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디바'들의 시간이었다.

기센 언니 효리도 한때는 이지연의 팬이었고, 그리고 다시 이효리보다 10년이 어린 원더걸스가 있듯이 흘러가는 디바의 시간은 <땡큐>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가수가 아닌 쉐프라도, 3년만에 다시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앨범을 들고 돌아와도, 세월이 흘러 '거울 앞에서 은은한 미소나 짓는 우리 누나'가 아니라 여전히 강풍기 앞에서 뒤질세라 앞자리를 탐내는 '기센 언니'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백하게 전해주었다.

 

누가 누가 더 기가 세나 자랑만 한 것도 아니었다.

100명의 미스코리아들을 모아놓고, 지나간 자신의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자신에게 '지금의 너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효리의 눈물어린 고백과, 처음 쉐프가 된 후 맡겨진 양파 튀김을 최고로 해내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던 한때 최고의 가수 이지연의 솔직한 속내는 '기가 센' 여자들로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 왔던 시간의 뒤안길을 슬며시 엿보며 애틋해지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오해도 풀었다.

이효리가 이상순을 만나 채식도 하고 소셜테이너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순이 이효리를 통해 달라졌다는 사실을 전해들으며 그간 우리가 얼마나 이효리를 얕잡아 보고 있었는가 뜨금하기도 했다. 이효리의 멘토가 없으면 안쓰는 그저 주어진 것에 행복해 하는 '윤영배'라는 사실에 달라진 이효리를 체감하게도 되었다. 한때는 '국민 나쁜년' 이었던 이지연의 노래를 하고도 할 수 없었던 , 혹은 낯선 땅에서 가진 것 없이 막막하기만 했던 수렁같은 시간을 통해 마흔 셋의 이지연을 용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효리의 눈물 어린 고백에, 지금 그 자체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환호하는 100명의 여성들의 박수는 그저 스타를 향한 우러름이 아니라, 진솔한 공감과 소통이었다.

소비하기 편한 이미지로 재단되어 있는 이효리와 그렇게 한때 소비되고 버려졌던 이지연을 통해 '디바'로 살아가는 삶의 속내를넘어,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여성의 삶을 느낄 수 있어 진짜 모처럼 '땡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3. 6. 8. 09:51

처음 <너의 목소리가 들려>란 드라마가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 픽!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장옥정을 패션 디자이너로 만들더니, 이젠 하다하다 초능력까지 등장하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웬걸, <너의 목소리> 첫 장면, 고성빈(김가은 분)이 친구를 골리기 위해 대걸레에 본드를 칠해 놓은 걸 안 박수하(이종석 분)는 대신 그 덫에 자청해서 들어가고 덕분에 반 일진이랑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날라오는 일진의 주먹을 그의 생각을 조금 더 먼저 읽은 덕분에 박수하는 가볍게 일진을 제압한다.

이 장면을 통해, 시청자에게 낯선 박주하의 초능력은 기껏해야 반 아이와의 싸움에서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친근한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2회 말 박주하의 말처럼 그저, 키가 좀 더 크거나, 머리가 좀 더 좋거나 처럼 남보다 조금 나은 능력으로.

초능력이란 비현실적 능력을 설명하는 방식을 그 대단함을 내보이면서도 더 낯설게 하기 보다는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기에, 고가은의 짝사랑하는 마음을 읽는거나, 지하철에 뛰어들려는 마음을 읽는 것이 오글거리거나, 무리한 설정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레 극에 안착하게 된다.

 

sbs의 새로 시작하는 수목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제 막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까지 익숙하게 봐왔던 드라마인 듯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초능력이란 낯선 소재도, 법정물이라는 딱딱한 형식도, 다짜고짜 첫 회부터 등장하는 살인과 무시무시한 살인범의 등장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란 드라마 안에서 튀지않고, 낯설지도 않게 익숙하게 잘 어우러져 있다.

남자 주인공 박수하의 초능력을 설명하는 것 외에도, 국선 변호인이 되기 위한 면접 장면에서 여주인공의 과거로 넘어가는 매끄러운 연결에 감탄이 나올 정도인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등장과 그들의 과거사, 그리고 그들의 관계 설정에 무리가 없다. 무리수 없는 아역들의 조우로 인해, 심각하게 나이차가 나는 두 주연, 이종석과 이보영의 어울림이 얼토당토해 보이지 않는다. 차관우(이종석 분)가 너를 지켜주겠다며 장혜성(이보영 분)을 찾아 헤매거나, 그녀 옆에서 서성이는 장면이 너무난 당연스레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속보이는 뻔한 무리수 없이 잘 차려진 드라마를 본 게 얼마만인가 감격스레 헤아려 보게 싶게 말이다.

 

(사진; 스타투데이)

 

물론, 등장인물 누구 한 사람 연기로 빠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박수하 역의 이종석은 어두운 과거가 있지만 무심한 듯 평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고등학생 역할로 얼마전 출연했던<학교 2013>의 캐릭터와 큰 진폭의 차이가 없지만, <학교 2013>의 호평에 힘입어서인지, 한결 연기에 자신감이 붙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순정 만화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한 외모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는 시청자에게 훈훈함까지 보너스로 얹어주는 느낌이다.

한때 서영이였던 이보영은 여전히 변호사이지만, 서영이가 아니다. 국선 변호 자리에서 싸가지 없게 틀에 박힌 변호문을 읽어내리는 이보영은, 그저 장혜성일 뿐이다. 그녀 못지 않게 최근 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만난다 싶었던 김소현 역시 그 과잉 출연 논란을 잠재울 만큼 장혜성스러웠다.

그리고 반가운 건, 윤상현의 귀환이다. 시크릿 가든의 성공 이후 일본 진출과 영화 등으로 본인은 바뻤을 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껴나가 있었던 그가 화신에서 보였던 실재 윤상현의 도플 갱어같은 차관우로 돌아온 것은 무엇보다 반길 일이다. 양복에 하얀 양말을 신고, 가방은 꼭 부등켜 안는, 한없이 착하고 의리있어서 바보같아 보이기까지 한 차관우의 매력은 단 2회만에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과연 이 사람이 한때 무게 잡으면서 뻗뻗하게 실장님 연기나 하던 사람이 맞나 싶게.

좋은 배우들의 적절한 연기, 그리고 주렁주렁 이야기 보따리가 달린 것처럼 풀어낼 꺼리가 많아보이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벌써 다음 주가 궁금해진다.

 

허기사,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전작인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털고 보면 굳이 먼지날 것이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발목을 잡았다. 반면, 초반부터 초능력이란 난해한 소재조차 가뿐하게 이해시키고, 법정물의 딱딱함을 흥미진진한 사건과 캐릭터의 대결로 말랑말랑하게 만든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게는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당당하게 2회 만에 수목극 1위 자리를 꿰어 찼다.

부디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초반에 벌려놓은 화려한 진수성찬을 마지막까지 잘 수습해 나가길 바란다. 막장이어야 시청률이 올라가는 아이러니를 단번에 깨부술 수 있게.

by meditator 2013. 6. 7. 09:29

상어가 본격적인 복수극으로써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한이수의 삶을 대신 살기 위해 검사가 된 해우는 신혼 첫날 밤 의문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장소에서 그 옛날 한이수 아버지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죽음을 목격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의문의 메시지들이 해우로 하여금 자꾸 12년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한이수!, 한이수를 느끼게 하는 사건, 남자가 그녀를 흔들기 시작한다.

또 한편, 결혼식에서부터 해우의 주변을 어른거리던 요시무라 준은 일본계 자이언트 호텔의 사장으로, 해우네 가족의 가야 호텔, 지금은 해우의 남편 오준영이 본부장으로 있는 호텔의 공격에 나선다.

양수겸장, 한때 한이수였던 요시무라 준은 한편에선 해우를 통해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또 한편에선 조상득 일가의 기반인 가야호텔을 무너뜨리려는 야심을 보인다. 제대로만 된다면 해우의 일가는 법과 경제,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 처절한 결말에 이를 것이다.

 

KBS수목드라마 상어

 

 

<상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손예진의 아역으로 등장했던 경수진은 찡긋거리는 표정 하나, 웃는 모습조차 너무도 손예진스러워 경악스럽기 까지 했다.

그런데 3회 본격적으로 성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후, 손예진은 역시 손예진이었다.

손예진이 손예진다운 것은 그녀의 표정이나 몸짓이 그녀답기 때문이 아니다. 손예진만이 낼 수 있는 사랑스러운 느낌, 그러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극의 캐릭터가 되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해우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염되었다. 김혜수가 김혜수인 것을 <직장의 신>을 통해 증명해 내었듯, 아마도 손예진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상어>를 통해 손예진을 증명낼 듯하다.

김남길도 마찬가지다. 남자 배우가 성인으로 등장하면서 콧수염을 기르고 나온다는 건 남자 주인공의 미모도 드라마의 경쟁력으로 꽤 작용하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콧수염이 좋고 나쁘고에 대한 호불호가 워낙 오고가니까. 그런데, 드라마 속 김남길은 김남길이 아니라, 그저 요시무라 준이었다. 3,4회 동안 그에게 주어진 것은 깊은 침묵과 짧은 대사들이었음에도 꽤 많은 정지 화면 속의 그가 답답해 보이지 않을 만큼, 다른 호텔 사장을 협박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더 소름이 끼칠 만큼 이미 김남길은 복수의 화신 요시무라 준이었다.

 

(사진; 시사포커스)

 

그래서 조금은 <상어>의 출발이 안타까웠다.

복수를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남여 주인공의 애틋한 첫사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3회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손예진과 김남길을 보며, 비로소 극이 제대로 시작되었음이 느껴지듯이, 차라리 이들의 등장과 과거 사건 담당 형사의 죽음까지를 첫 시작으로 했다면, 그게 아니라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조금 더 스피디하게 진행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역들의 등장이 그리고 첫사랑이 드라마의 밑밥을 까는 화제성의 한 품목으로 끼워넣곤 하는데, 과연 <상어>에서 아역부분이 그 밑밥을 제대로 깔았는가는 성인 분량이 시작되니 오히려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오랜 시간을 두고 공을 들인다고 해서 첫사랑이 낙인처럼 찍히는 게 아니다. 뻔한 빗속 키스나, 가출에 이은 술래잡기 보다는 한이수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온 조해우의 그 한 발자욱을 제대로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상어>의 밑밥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지 않은 설정으로 중언부언 덧붙이다 보니, 어설픈 아역들의 연기력이 구설이 되고, 진부한 첫사랑으로 남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모른다 해도, 손예진, 김남길이 이끌어 갈 <상어>가 기대가 된다.

언제나 그렇듯, 김지우 작가의 작품에서 인간은 참 모호한 존재다. 서로가 맞물리며 보이는 얼굴 외에 또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다. 물론 그러기에 늘 어려운 드라마이기도 하다.

해우가 준영이를 바라볼 때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환한 미소를 짓지만, 준영은 무표정이 되어 앞만 바라보는 해우의 또 다른 얼굴에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해우가 숨겨져 있음을 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아버지를 뿌린 장소에서 만난 박여사가, 그저 이수네 가족에 대한 호의가 아닌 아버지를 짝사랑했었다는 고백을 한 것처럼, <상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어느 누구하나 허투루 넘겨짚을 사람이 없다.

대표적으로는 자신의 말처럼 끝나지 않는 해원을 만들어 낸 장본인 조상득을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뿐만 아니다. 세상에 없이 착해 보이던 이수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숨겨진 존재가 몰고올 파장이 복수의 화신이 된 이수를 어떻게 끌고갈 지가 이 드라마의 숨겨진 포인트이다.

그러기에, 해우가 다시 만나러 간 목격자 소년의 냉담함이 과연 그전에 그 아이를 방문한 강력부 검찰 수사관 김수현과 혹시 무슨 관계가 있을지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는 요시무라 준의 비서로 등장한 장영희도 만만치 않다.

인간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그리하면 김지우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사의 또 다른 혜안을 얻을 지이니. 이것이 드라마 <상어>를 재미나게 보는 방법이다.

 

배우 김남길이 KBS 2TV 상어에서 3단 눈빛 연기를 선보였다. / KBS 방송화면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상어>의 호흡은 빠르지 않다.

미드식 케이블 드라마의 곳곳에서 치고 빠지며 떠들썩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드라마에 비하면 호흡도 빠른 편이 아니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김남길의 정지화면 같은 고정 숏 때문일까, 어딘가 정적이다. 하지만 마치 2D의 책이, 그 속으로 빠져들면 그 어떤 3D,4D 영화보다도 스펙타클하듯, 꼼꼼히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빠져들어가는 <상어>엔 김지우식의 또 다른 스펙타클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3. 6. 5. 10:00

힐링 캠프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는 아니다.

6월 3일자 <힐링 캠프>의 시청률은 7.1%로 동시간대 <안녕하세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하지만 달리는 말보다 빠른 게 사람의 세 치 혀라고 했던가, <힐링 캠프>를 통해 전해진 게스트의 '말'들은 시청률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lte급으로 대중들 속에 퍼져 나간다.

 

<안녕하세요>의 일반인 출연자는 그 프로그램에서 눌리는 버튼의 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반짝 검색어로 치솟았다 하더라도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그라들어 개인의 자존을 지켜낼 수 있다.

하지만, 유명인들은 이른바 '공인'이라는 미묘한 처지로 인해 한번 찍힌 낙인 여하에 따라 때론 그들의 생사 여탈권이 좌우되기도 하고, 전쟁의 상처보다 더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공식적 매체나, 인터넷의 뒷담화들도 그 사람의 사연을 제대로 풀어낼 생각은 안하고 그저 이런 '루머'가 있다는 사실만 퍼나르기에 급급하다. 속사정이니 배째고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자 회견이나, 공식 발표를 해봤자 믿어 주지도 않는다.

바로 그때 구원투수처럼 등장하는게 <힐링 캠프>다.

출연 요청만 들어온다면 만사 ok이다. 까칠하지만 언제나 해명할 꺼리의 물꼬를 거침없이 터주는 이경규, 무슨 말을 해도 호수같은 눈망울로 그저 '당신을 믿어요'라거나 가끔은 눈물도 흘려주는 한혜진, 심지어 그녀의 돌직구는 통쾌하게 가려운 데를 긁으면서도 교묘하게 출연자에의 공감을 도와준다. 거기다 적절하게 양념까지 얹어주는 김제동, 그 어떤 공식적 해명보다 진정성 있게 출연자의 사연을 세탁해 주는, 이보다 더한 '우군'이 어디 있겠는가.

 

(사진, 힐링 캠프에 출연한 박태환, 스포츠 조선)

 

6월 3일 <힐링 캠프>의 출연자는 박태환이었다.

여러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예고편에서 보여진 핼쓱해진 박태환의 얼굴만으로도, '수영할 곳이 없다'는 멘트만으로도, 저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를 시청자들은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불굴의 의지로 불가능하다 여겨져던 수영에서 그토록 많은 쾌거를 이룬 대한민국의 스포츠 영웅이 왜 저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정황의 옳고 그름을 떠난 분노부터 느껴졌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갑'이라 생각했던 박태환도 또 그의 위에 호령하려는 또 다른 '갑'에게 미운 털이 씌이면 저런 걸 겪는구나 싶으니, 더 감정 이입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힐링 캠프>의 진행 방식은 현명했다.

다짜고짜 박태환의 아픈 상처를 내보이지 않았다. 살이 쪼옥 빠진 한눈에 보기에도 마음 고생 한게 눈에 훤히 드러나는 박태환의 밝은 면을 우선 내보였다. 요리도 하고, 친구 기성용과 결혼하는 '제수씨(?)' 한혜진과 아웅다웅하기도 하고, 스물 다섯 살 아름다운 청년 박태환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마치 수영을 하기 전에 수영장 물로 몸을 적시듯 앞으로 다가올 사연에 대한 대비를 해두었다.

그 다음에 보여준 건, 대한민국의 스포츠 영웅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그의 아픔이었다. 겨우 15살 나이에 국가 대표 선수로 나아가 실격 처리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의 부진한 성적 이후에 모진 여론과 그것을 스스로 삭혀내야 했던 시간들을 토로하게 함으로써, 단지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을 뿐이지만, 혼자 견뎌야 하는 레이스의 시간 외에, 자신을 도와주는 스탭들의 마음에, 국민들의 변덕스런 정서까지 감내해야 하는 외로운 '스타'의 고뇌를 충분히 공감하게 해주었다.

그런 앞선 충분한 박태한에 대한 공감 적시기 덕분에, 그가 덤덤하게 '미운 털이 박혔다'는 그 말이 얄밉게 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태릉 선수촌에서 홀로 빠져나온 사건도, 항명으로 비춰진 홈쇼핑 출연도,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는 수영 연맹 행사 불참도 그럴 수 있는 것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물론 <힐링 캠프>를 통해서 박태환이 했던 이야기들이 박태환과 관련된 기사와 루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힐링 캠프>를 통해 그의 편이 된 사람들에겐 그 새로울 것없는 이야기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롭고 진정성 있게 들렸을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수영 연맹에 쓰는 영상 편지를 보면서 안쓰러움에 눈가가 촉촉해질 만큼.

 

(사진, 세계 일보)

 

물론 언제나 <힐링 캠프>의 구설수 세탁 방식이 먹히는 건 아니다.

얼마전 장윤정의 출연이 그녀에 대한 세간의 여론을 단번에 '호감'으로 역전시킨 홈런이었다면, 오랜 함구 끝에 출연한 설경구의 출연은 안타깝게도 또 한번의 병살타가 되버린 셈이었다. 그건 결국 빨아도 빨아도 깨끗해 지지 않는 세탁물이 있듯이, 인간적 면모를 밝히고, 마음 고생 했던 시간을 토로해도, 애초에 절벽처럼 돌아선 마음은 <힐링 캠프>식 세탁 방식으로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 예전 무르팍 도사가 시끄럽게 판을 벌렸던, 하지만 이제는 <힐링 캠프>가 인간적으로 풀어내는 해명의 시간, 그 시간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출연자의 선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출연자도 힐링 되고, 보는 시청자들도 공감하며 힐링 할 수 있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3. 6. 4. 09:54

절치부심 3년 만에 5집 '모노크롬'을 내놓은 이효리가 홍보차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순회 중이다.

그리고 '예능불패'라는 수식어처럼 이효리를 맞이한 예능들은 <땡큐> 자체 최고 1위, <라디오 스타> 역시 시청률 상승에 동시간대 1위라는 흡족한 성적표를 거둬들였다.

단지, 피디가 이효리네 집 앞에서 한 달동안 머물며 읍소했다는 <맨발의 친구들>만이 기대와 다르게 별다른 효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천하의 이효리라도 안되는 건 안되는가 보다.

 

<맨발의 친구들>에서 피디를 한 달이나 기다리게 했다는 이효리의 말을 듣고 강호동이 왜 그랬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자 이효리는 1초도 쉬지 않고, 강호동과 자신이 맞지 않아서 그런다고 대답을 한다.

아마도 그간 이효리가 나온 예능들이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은, 그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잘 했기 때무이기도 하지만 이효리가 자신을 잘 살려낼 프로그램만 잘 골라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피디의 인간적 부탁을 받고 나온 <맨발의 친구들>에서 이효리로 인한 기사들은 대부분 강호동과 이효리의 기싸움을 들먹이며, 강호동을 이기는 이효리라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간곡한 부탁을 해서 불러다 놓고 메인 mc랑 기싸움이나 시키다니!

 

(맨발의 친구들에 출연한 이효리, 뉴스엔)

 

 

이효리가 나와서 잘된 <라디오 스타>, <땡큐>와 <맨발의 친구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토크 내용의 진정성이나 솔직함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예능 쫌 하는 언니'가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을 벌려 준 게 아닐까.

<라디오 스타>에 등장한 이효리는 처음부터 기세등등했다. 누군가와는 동갑, 누군가보다는 한 살이 어리지만, 그 누구라도 그녀에게 쉽게 말을 놓기 힘들만큼 당당한 기세로 프로그램을 제압해 갔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그 누구도 감히 하기 힘든 솔직함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지만 지금 사귀는 그 사람에 대해 마지막의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당당함, 핑클 초창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가감없이 밝히는 담백함, 그 어떤 질문이나, 태클에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는 떳떳함이 '예능 불패'라는 것이 그저 시간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땡큐>와의 시간도 역시나 이효리가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에선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의 이효리가 '다 덤벼!'하는 'Bad Girl'의 거침없음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땡큐>의 그녀는 선배 가수 이지연의 팬이자, 그녀와 같은 길을 이제는 그녀보다도 더 오래 걸은, 그리고 후배 가수 예은의 선배인 여자 가수 이효리였다.

밭에 난 채소들을 툭툭 털고 입에 넣어 맛을 보듯, <땡큐>엣 이효리는 십오년을 지켜온 여가수의 삶을 가공하지 않고 보여주는 날 것의 대담함으로 프로그램을 장악해 갔다. 선배 이지연도 사랑에 대해서는 수줍어 하고, 후배 예은은 그저 여미기에 바쁜데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한 이효리는, 그것이 사랑이든, 광고이든, 먹거리이든 동일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진정성을 얻어갔고, 마치 욕을 들어먹으려고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가듯 색다른 공감의 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 캐릭터들은 전혀 달랐지만, <땡큐>이든, <라디오 스타>이든, 이효리에 의한, 이효리를 위한, 이효리의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땡큐에 출연한 이효리, 파이넨셜 뉴스)

 

하지만 <맨발의 친구들>은 달랐다.

도대체 '도와달라'는 피디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해외 맨발의 친구들 포맷을 하다가 그걸 접고 국내로 들어온 첫 회, 멤버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포맷조차 딱히 새로운 포맷을 결정된 바 없는 상황에서 대뜸 이효리만 불러다 놓으면 그녀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이효리도 처음엔 다 알아서 해보려고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자기(?) 프로그램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는데 익숙치 않은 강호동은 이효리가 나타가 판을 이끌어 가는 걸 참아내지 못했다.

웃자고 쓴 기사 강호동 vs. 이효리는 내내 강호동식 진행과 이효리식 진행의 불협화음이었고, 이효릭 이 프로그램의 고정이 되지 않는 이상, 결국은 강호동에 의한 프로그램으로 남아야 할 <맨발의 친구들>에서 깜짝쇼 이효리는 그다지 도움이라기 보다는 강호동식 진행의 피로감만 확인 시켜준 결과가 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이효리가 휘젖는 판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판에 즐겨이 휘둘려지는 대신에 삐진 아이 컨셉으로 호시탐탐 자신을 돋보일 기회만 노리는 강호동은 피곤하다. 이효리 조차 그걸 깨달았는지 어느 틈에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하니, 천하의 이효리를 데려다 놓은 들, 강호동의 예능은 달라지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데 어떻게 도와주겠는가.


 

물론 이효리까지 가세한 <맨발의 친구들>은 다른 때보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아빠와 아들들의 가족애와, 군발이들의 전우애를 넘길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연예인의 집을 찾아가는게 이제는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요, 유이 엄마의 남편감 고르기는 더더욱 흥미롭지 않다. 심지어 길고 지루한 동물 이름 알아맞히기 게임이라니!! 누구네 집이라는 장소의 특성은 하나도 살려내지 못한 채 악기를 다루고, 게임을 하는 방식은 이미 '패밀리가 갔다'시즌 1,2를 통해 흘러간 컨셉이다.

엉뚱한 김현중도, 한결같은 강호동도 재미가 없진 않지만, 그렇게 예능을 통해 이미 이미지가 소모된 사람들보다 유일하게 새로운 인물, 드러나지 않은 윤시윤의 열의가 신선한데도, <맨발의 친구들>은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는 대신여전히 강호동의 뻔한 진행과 새롭지 않은 한류 스타 놀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 샘 해밍턴이 군대에 가는 세상에, 이 뻔한 사람들이, 뻔한 캐릭터로 해외를 가든, 누구네 집을 찾아가든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by meditator 2013. 6. 3. 10:13

<출생의 비밀>은 김규완 작가의 작품이다.

김규완 작가는 '작가주의'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우리나라 작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특히, <피아노> 이래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진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욕망의 불협화음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작가이다. 김작가의 작품에서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의 그 평화로운 휴식처가 아닌, 인간사의 모든 모순의 응집처이자, 출발점으로써의 가족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곤 한다.

하지만, 2010년 야심차게 신데렐라 스토리를 전복시킨 <신데렐라 언니>를 통해 다시 한번 김규완 특유의 가족 해부를 통한 현대인의 욕망과 화해를 논해보려고 했지만, 그저 의도만 좋았던 작품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이제 어언3년 만에 들고 돌아온 <출생의 비밀>, 전혀 다른 캐릭터와 다른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김규완 특유의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신데렐라 언니>의 '용두사미'가 못내 아쉬웠던 듯,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 신데렐라 언니, kbs)

 

<신데렐라 언니>와 <출생의 비밀>이 비슷하다고?

이 말이 억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출생의 비밀>이란 드라마에서 처음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막되먹은 강봉두(유준상 분)의 '깨는' 존재감이었으니까,이 드라마를 처음 본 사람들은 마치 미녀와 야수처럼 강봉두와 정이현이 해듬이를 사이에 두고 남녀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강봉두의 깜짝쇼가 끝나고, 극이 진행이 되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정이현의 기억의 퍼즐들이 조금씩 맞혀져 가면서 드라마는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유일한 의지처였던 어머니마저 잃은 가난한 학생이던 정이현이 등록금을 한번만 대달라고 찾아간 아버지 최국은 예가 그룹의 적장자였던 것이다. 기억의 편린들을 잃었지만, 지금의 정이현은 작은 아버지가 이끄는 예가 그룹의 핵심 일원이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정작 신데렐라 효선(서우 분)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대성도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효선은 늘 외로움에 시달리며 애정을 갈구한다. 그리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대성도가를 노리는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그녀의 딸 은조(문근영 분)과 한 남자를 놓고 운명적인 사랑의 줄다리기를 펼치게 된다.

<출생의 비밀>의 이현도 마찬가지로 예가 그룹의 적장자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하지만 현실의 예가 그룹을 틀어쥐고 있는 건, 작은 아버지요, 이현은 혈통은 있으되, 실권은 없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적통의 이권을 노리는 자가 아버지와 피를 나눈 형제요, 효선과 다르게 이현은 의붓언니 은조만큼이나 능력자다. 그리고 은조처럼 이현은 성찰자로써 가족간의 혈투를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김규완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늘 콩가루 집안이다.

재혼에 의해 새롭게 이루어진 유사 가족이거나, 혹은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이른바 재물, 가업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이권을 놓고서는 남보다도 못한 격렬한 이전투구를 벌이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가장 애틋한 사랑의 상징이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가장 첨예한 욕망의 장이라는 설정은, 역으로, 가장 진지한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시간을 요구한다.

대성도가의 재산을 쟁취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않고 뱀처럼 구는 어머니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효선의 집착 앞에선 자신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에 고뇌하는 은조처럼, 이현 역시 잃어버린 기억의 단편들을 찾아가면서 그럴 듯한 예가 그룹의 일원이었던 자신이, 자신을 배반한 친구와 애인처럼 역시나 자신의 이해 관계 앞에선 가장 계산적인 인간임을 깨닫게 되고, 현재 자신이 누리는 부의 성채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언제나 방관자적인 은조의 시선을 통해, 부도, 욕망도 '인간'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허상에 불과하단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출생의 비밀>은 역설적으로 가장 무식하고, 가진 것없는 강봉두의 순정을 통해, 그를 야수처럼 징그러워하다가 다시 그 예전처럼 그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이현을 통해 이해에 빠르고, 욕망에 거침없는 예가 그룹 가족의 허상을, 진정한 행복을 논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동화 신데렐라 이야기는 욕망의 파노라마를 펼치며 끊임없이 다른 버전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가 제작 의도에서 누가 신데렐라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똑같이 아픈 두 여성들의 '동화'를 노렸듯이, 이전 드라마의 구조를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가족이란 제도를 통해 충돌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 충분히 서술되었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많은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훌륭한 시놉과 촉박한 제작 일정으로 말미암은 '용두사미식'의 전개로 인해, 명작으로 시작해서 범작이 되어버린 <신데렐라 언니>에 비해, <출생의 비밀>은 좀 더 야무진 포석을 여기저기 벌려 놓았다. 덕분에 회를 거듭할 수록, 드라마의 재미가 속속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부디 이 포석들에 탄탄한 집을 지어, 김규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속시원하게 해낸 명작으로 끝내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6. 2. 10:30

텔레비젼에 나오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물론 이 말이 맞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텔레비젼에 등장하는 많은 사랑이 첫사랑에 기대어 있는 건 사실이다. 1996년 최수종과 이승연의 <첫사랑>이 시청률 60%를 넘겨 전국민 드라마가 되어 사랑을 받던 그때도,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텔레비젼은 첫사랑의 홍역을 앓고 있다.

<상어>는 치명적 복수의 서막을 간절한 첫사랑의 떨림으로 장식함으로써 가족사의 비극에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얹는 치명적 운명을 완성시킨다. 하다못해 새로운 버전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 조차 알고보니 어린 시절의 인연이 있었다. <구가의서>는 또 어떤가? 강치의 잃어버린 첫사랑에 얼룩진 관계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인이다. 그러다 보니, 늘 그렇듯 사람들은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듯하다.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헤드폰을 낀 상대방에게 소심한 고백 한 마디를 남긴 채 쿨하게 상대방을 보내주는 방식이나, 쫌 징징거리다 어쩔 수 없어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는 방식은 안먹히기가 십상일 터이다. 삶은 뻘밭에 굴러도 마음만은 홀쭉~ 아니, 순수하고 싶은 딜레마랄까. 컴플렉스랄까.

어디 우리나라뿐인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일군 거대한 저택도 알고보면, 첫사랑의 쟁취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여기서, 첫사랑에 임하는 남자들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듯 하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 단편 소설 <소나기>의 남자 아이 유형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냇가를 가로 막고 앉아서 당돌하게 말을 건네는 하얀 도회지 아이에게 첫 눈에 반해, 그 소녀가 하자는 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는 지고지순한 유형.

또 하나는 역시나 단편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남자 아이처럼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지 어쩌는지 자신의 감정도 모르는 채 우격다짐 주먹질까지 해대고 마는 찌질한 유형.

'바운스, 바운스'하고 울리는 심장 박동 앞에 쿨함 따위는 도저히 지켜낼 수 없어, 드라마건, 영화건,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들은 이 두 유형 중 어느 것인가의 길에 들어서고 만다.

음악 드라마<몬스타>도 다르지 않다.

'나 스타야!'를 연발하는 윤설찬(용준형 분)은 <동백꽃> 스타일이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양'이라고 생각한다는 민세이(하연수 분)의 속내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직 그녀가 자신을 인지해주지 않는 사실에 씩씩거리느라 늘 헛발질을 해댄다. 그리고 <동백꽃>에서 소년과 소녀의 육박전이 묘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듯이, 대부분 윤설찬의 도발로 인한 투닥거림은 결국 윤설찬의 숨길 수 없는 감정의 축적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정선우(강하늘 분)는 안어울리게 전학생(민세이)를 챙긴다 했더니, 어린 시절 첫사랑이란다. 반에서 아버지와 함께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던 민세이에게 반했고, 전학생으로 다시 한 반이 된 지금, 정선우는 '키다리아저씨'처럼 호시탐탐 그녀를 돕느라 전전긍긍한다.

 

<몬스타>의 이야기나 전개는 다 어디서 한번쯤 본 듯한 것들이다.

윤설찬의 찌질함도, 정선우의 세이바라기도 새롭지 않다. 과연 정말 아이돌 스타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이요, 세상 물정에 어두울까 란 의문 하나 남기지 않고, 윤설찬은 전형적으로 스타이다. 반면 사실 그간 싸가지 없기론 윤설찬 못지 않았던 정선우가 세이의 등장 만으로 저렇게 지고지순하게 변한다는 아이러니도 그렇다. <몬스타>는 일찌기 <꽃보다 남자> 이래로 순정만화 클리셰를 답습했던 모든 드라마들이 그러하듯, 개연성이나 타당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때? 이런 스타일이 너네들한테 먹히지?'라며 납작한 캐릭터들을 들이댄다. 심지어, 윤설찬은 알고보니 가정적으로 고독하고, 민세이에게는 아버지라는 말만으로도 눈물을 흘릴만한 사연까지 아주 셋트메뉴로 그럴 듯한 것 투성이다.

 

뿐만 아니라, 번번히 신체적 접촉(?)을 통한 야릇한 분위기 형성을 빼놓지 않는다. 일찌기 감독의 전작 <성균관 스캔들>에서 선준(박유천 분)과 윤희(박민영 분)의 의도치 않은 신체적 접촉이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큰 몫을 해냈다는 걸 복기라도 하듯이, <몬스타>의 주인공들은 노골적으로 한 회에 한번은 의도치 않게 신체적 접촉을 한다.

단지 3회 차에 불과한데, 벌써 윤설찬의 '나 스타야'라는 자기 확인이 지루하듯이, 이런 게 있어야 청춘 드라마지 라고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신체적 접촉은 어색하다. 심지어, 낚으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 불쾌하기 까지 하다.

 

 

그런데도, <몬스타>는 신선하다.

스토리는 뻔하고, 캐릭터는 진부한데도, 그 진부함 사이를 메꿔주는 음악이 이 드라마의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민세이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한 윤설찬의 피아노 버전의 '무명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어린 시절의 뻔한 첫사랑이지만, 그것을 기억하며 아파트 계단에 앉아 부르는 정선우의 기억 속의 노래는 그 시절 그 감정에 흠씬 빠져들게 만든다. 첫 회 박규동(강의식 분)의 '바람이 분다' 이래로, 매회, 뻔한 클리셰의 위기의 순간마다 등장하는 뜻밖의 음악들이 <몬스타>를 구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뮤직 드라마인가 보다.

by meditator 2013. 6. 1.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