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의 시작은 그랬다.

이미 <7급 공무원>이 선점하고 있는 수목드라마의 제왕 자리를 노리기 위해 sbs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를 수요일에 시작하고, 하루에 1,2회를 몰아서 방영하는 편법을 썼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드라마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전달했던 2회에 힘입어, 작품성 위주라서 시청률을 얻기 힘들꺼라던 예상과 달리 노희경 표 < 그 겨울>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 승승장구 동시간대 1위의 쾌거를 달성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안그래도 <그 겨울>의 편법 편성으로 원성을 얻었던 sbs가 또 그 방법을 쓸 수는 없었다. (물론 다른 방식을 쓰기도 한다. kbs의 <상어> 첫 방송 날,  이른바 72분 룰을 어겨서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10%를 넘기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덕분에 목요일에 첫 방송을 시작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낮은 시청률의 일정부분은 기대작 <그 겨울>의 편법 편성의 탓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이제 심기일전, 일대 반전을 노리고 있는 sbs 수목 드라마가 또 다시 목요일 첫 방이라는 악수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등장한다. 만만하니, 단막극!

 

mbc도 그랬었다.

4부작으로 담을 이야기를 20부작으로 늘렸다 하여 차마 연장은 꿈도 꾸지 못했던 <아랑사또전>이 종영하고 <보고싶다>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못난이 송편>을 방영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 보편적으로 아역들 중심의 이야기들은 시청률이 떨어진다지만, <보고싶다>는 <아랑사또전>의 그나마 간당간당했던 시청률마저 반토막이 난채 아역 시절을 마무리 해야만 했었다.

과연 그간의 편법 편성으로 일그러졌던 sbs 드라마의 순배를 되돌려 놓기 위한 <사건 번호 113>의 편성이 과연 효자 노릇을 할지 다음 주를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정말 얄미운 건(?) 그나마 kbs2는 <드라마 스페셜>이라고 근근이 이어가는 단막극 시리즈라도 있지, mbc와 sbs는 <베스트 셀러 극장>과 <오픈 드라마 남과 여>가 각각 2007년과 2004년 막을 내리 이후 단막극이라고는 <못난이 송편>처럼 땜방용이라던가, <널 기억해>처럼 설날 특집극으로 겨우 1년에 한 편 만들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죽은 아이 뭐 만지기는 아니지만, 한때는 명작 드라마를 보고 싶으면 단막극을 찾아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kbs를 제외한 양 방송사의 단막극은 땜방이나 특집이 아니고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house.jpg

(사진; g벨리)

 

 

단막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다양한 실험작, 더 많은 연출과 출연의 기회들이 기존 드라마의 질을 배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잘 나갔던 시트콤 작가와 케이블 인기 작가들을 수혈해야만 하는, 일본 원작이 빈번하게 번안되는 그럼에도 여전히 어설픈 작품들이 비일비재하게 만들어지는 공중파 드라마의 경쟁력 떨어지는 현실은 한때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던 모 방송국만의 현실은 아니니까.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 할 주제들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겨우 이런 땜방용 특집극에서나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왕따와 학교 폭력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던 <못난이 송편>은 제목처럼 추석 특집극으로 만들어 졌지만 추석에 내보내기에는 부적절하다 하여 창고에 묻혀 있다, 땜방의 기회를 얻어 그나마 빛을 보게 되었었다.

<사건 번호 113>도 마찬가지다.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 시체 실종 사건을 뒤쫓아간 곳에는 고등학교 시절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연이 있었고, 그것을 자기 희생으로 덮으려는 애끓는 모성이 있었다.

왜, 가장 첨예하게 다루어 져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특집이나, 땜방이 아니고서는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직설'로 다루어 질 수 없는 것일까? 시청률이라는, 이제는 믿을 수조차 없는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었던 단막극의 전통을 뭉개버리고, 그나마 남은 kbs 단막극조차 광고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치이게 되는 처지를 만들었다.

드라마가 냉철하게 짚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은 늦은 밤이나, 땜방이 아니고서는 제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이러고도 텔레비젼이 공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런지. '공중파'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런지.

 

<사건 번호 113>으로 돌아가 보자.

이제는 세련되어가는 케이블의 수사드라마들에 비해 어딘가 밑도 끝도 없이 함께 하는 검사와 형사(이분들도 검경 합동 수사반 텐인가요? 어떻게 함께 수사하지요?)의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수사 과정도 단막극이려니 이해가 된다. 추격 장면만 나오면 '예술'을 만들고픈 의욕도 단막극만의 매력같아 보인다. 기태영, 김민서,두 배우의 새로운 모습도 신선했다. 김미숙의 미묘한 모성의 결은 언제나 탁월하다.

무엇보다 하나의 주제로 뚝심있게 밀어부친 실험작에 온전히 배려된 두어시간을 함께 한 것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본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by meditator 2013. 5. 31. 09:55

소설가 김영하는 말한다.

베스트셀러와 베스트셀러가 아닌 소설의 차이는 그저 운일 뿐이라고, 인기리에 잘 나가는 자신의 소설과 도서관 서가에 꽂혀 먼지가 쌓여가는 소설 사이에 더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가 없다고, 단지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당대 사람들의 선택을 당대의 시민 정신이라 치환해도 될까?

올해 들어 sbs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sbs의 <야왕>이었다. 전체 드라마 중 가장 높은 것은 <백년의 유산>이다. 작년에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해를 품은 달>이었다.

<야왕>이나, <백년의 유산>, <해를 품은 달>에 2012,3년의 시민의 정서를 대변할 그 무엇이 있을까? 출충한 대본과 탁월한 연출력, 빼어난 연기가 있었을까?

김영하의 솔직한 고백이 다시 한번 적용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괜찮은데' 하다가, 막상 시청률이 낮게 나오면 그걸 보는게 창피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툴툴 털어대려고 난리다.

 

<내 연애의 모든 것>도 그랬다.

털어 먼지 안나오는 드라마 없듯이, 신하균의 초반 설정의 과도함, 국회의원이라기엔 너무 이쁜 이민정,정치를 말하는 건지, 연애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는 내용에, 잔잔하기 이를데 없는 국회에서 연애하기 등, 양파 껍질 까듯이 까고 또 깔 것들이 투성이들이었다.

하지만, 16회, 여전한 정치 판세에서도 편가르기가 아닌 정책으로 다시 만나게 된 김수영(신하균)과 송준하(박희순)가 하나의 당을 꾸려가고, 초심이 중요하다는 김수영의 연설은 여전히 신선하고 뭉클한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그건 내가 그런 희망을 공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랑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접두어처럼, 우리가 그것을 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상관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는 그 메시지는 뜨끔할 정도였다.

바로 그것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위치한 지점이, 시청률이 낮다니까 지레 외면하고, 이렇다 저렇다 품평을 하면서, 쉽게 리모컨을 돌려 버리고, 이 드라마가 진득하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허긴 요즘 이 드라마처럼 진득하게 무언가를 말하는 드라마들이 드물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주 적은 사람들이 들어주어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주인공 김수영이나, 노민영처럼 결코 자신이 할 바를 주저하거나, 목소리 낮추지 않고 뚝심있게 하고픈 말을 다해내고야 말았다.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다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작가든, 배우든, 연출이든 너무나 즐겁게(?)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6회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가 마치 '대박'을 쳐서, 지금 연일 화제가 되는 드라마 같다. 화면의 때깔이나 구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쪽대본의 흔적도 없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무에 그리 신이 나는지, 좋아 죽겠는 표정이다.

제작진도 사람인지라, 기자 간담회에서 모 배우가 말하듯이 논란이 되거나,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다고 한다. 그리고 시청자도 사람인지라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 감정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자, 원래 하고자 했던 의도를 버리고, 이러면 잘 나올까, 저러면 잘 나올까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전해질 때가 많다.

그런데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다 보면 행복해 진다.

마치 이미 떨어진 시청률 따위! 라고 하듯이, 누군가를 낚기 위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와 함께 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그 어느 히트 드라마 못지 않게 화면도, 색감도, 줄거리도, 연기도 손색이 없다. 아니 즐겁게, 행복하게 하는 '엔돌핀'에 전염된다.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며 회마다 누군가를 핍박하고, 악다구니를 벌이고, 개연성없는 전개에 피곤해 하던 그 마음조차 '힐링'이 되게, <내 연애의 모든 것>에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없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등장인물들도 연애도, 삶도 모두 합리적으로 풀어간다.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뼘 더 나아가려고 하듯, 삶도 그렇게 조금 더 나아지게 노력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일찌감치 구제불능이었던 시청률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숨겨진 명작으로 남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공중파가 아니라, 케이블의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의 구미를 맞춰야만 하는 공중파가 아니라, 누군가의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찾아보게 만드는 케이블 드라마였다면 지금처럼 찬밥 취급은 안당했을까? 이런 신선한 이야기도 다루네? 하며 호청자들이 즐거이 시청하는 드라마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랬다면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텐데 아쉽기 까지 하다.

누군가 처음 시청률이 떨어졌을 때 제작진의 정치적 성향을 비난했던 것처럼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노민영으로 상징되는 진보 진영의 도덕적 우위에 정서적 본진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건, 현존의 누군가와 비슷하지만, 현존의 누군가를 꼭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겨레 신문 5월29일자 이원재씨의 칼럼처럼, 일종의 '사회적 상상력'이었던 것이다.

사회학자 프레트 폴락의 말처럼, 사회 변화는 미래와 과거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일어나고, 거기에 진보란 미래의 이미지를 끌고가는 사회적 상상력이었을 때, <내 연애의 모든 것>이 말하고자 한 것은 그 사회적 상상력으로 품어 낸 미래의 진보 이미지였다.

하지만 몇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보궐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치뤄내며 정치권에서 진보 세력이 사그라 들었듯이, 이제 스펙에 골몰하고, 내 살기에 바쁜 사람들은 미래를 함께 할 사회적 상상력으로의 '진보'에 냉소를 보낸다. 물론 거기에는 진보 진영 스스로의 패덕도 크다.

그저 그런 시기에 여전히 꿈에 부풀어 순진하게 다른 너와 내가 손을 잡는 방법, 심지어 사랑을 하는 상상을 했으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참담한 결과는 자초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꿋꿋하게 5% 내외를 넘나들며 이 드라마를 지켜 본 누군가들로 인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순수한 상상력은 짓밟히지만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5% 시청률은 소중하다. 폄하될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잔존한 우리 사회 희망의 싹같기도 하다.

 

(사진; 뉴스엔)

 

섣부르게 연애와 정치의 콜라보레이션이 어설펐다 어쨌다 논하지 않겠다.

그렇게 따지면, <야왕>은 복수와 정치의 콜라보레이션이 훌륭해서 시청률이 좋았는가. 그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박수쳐 줄 때가 아니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을 뿐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흔들림없이 최선을 다해준 <내 연애의 모든 것> 제작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짝짝!!!!

배우도, 제작진도 다음 작품에서 또 봐요~~~

by meditator 2013. 5. 30. 10:06

결국 이야기쇼<두드림>이 폐지의 수순을 걷는다.

상대적으로 한가했던 토요일 밤에서 겁도 없이(?) <라디오 스타>가 버티고 있는 수요일로 격전지를 옮기고 차별화되지 않는 연예인 게스트 모시기에 신선하지않은 포맷으로 개편을 하더니, 결국 몇 회를 견뎌내지 못한 채 종영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어설픈 <두드림>의 무모한 도전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범람하는 연예인 게스트 쇼의 당연한 결론이기도 하다.

 

공중파에서만 아침 방송을 제외하고 연예인이 토크 게스트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라디오 스타>, <힐링 캠프>, <무르팍 도사>, <해피 투게더> 등이 있다. 각 방송국 별로 집단 토크쇼 하나, 개인 토크쇼 하나인 셈이다. 홍보 등으로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연예인은 한정되어 있고, 토크쇼는 넘쳐나다 보니, 이번에 복귀한 2pm처럼 방송마다 닉쿤이 나가서 심각하게 음주 운전과 관련된 해명성 방송을 남발한 것처럼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연예인 게스트 토크쇼가 10%를 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전의 <화신>이나 지금의 <무르팍 도사>처럼 3% 대의 치욕스런 시청률을 보이는 경우조차 생기는 것이다.

반면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안녕하세요>나 <짝>처럼 일반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두드림>의 폐지는 현명한 판단이라 보여진다. 단지, 한국어판 'TED'(유명인사들이 멘토링의 취지하에 십여분의 짧막한 연설을 하는 프로그램)에 토크쇼를 합체한 본래 표방했던 '멘토링'이 강조된 포맷은 제대로만 했다면 좋은 프로그램이 되었을 텐데, 그저 그런 연예인 토크쇼로 전락한 <두드림> 제작진의 협소한 안목이 안타깝기는 하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쇼-두드림이 다음 달 5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폐지된다. / KBS 제공

 

 

여기서 문제는 야심차게 공중파로 복귀한 mc김구라가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1패의 전적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호동처럼 프로그램은 망해도 강호동은 살아남아 리뉴얼할 수 있는 권력자라면(?) 모르지만, 김구라의 경우는 애초에 자숙의 사안이 다른 만큼 아직까지 그에 대한 호불호가 오고가는 상황에서 , 복귀 후 그의 성적 여하에 따라 '공중파는 무리다' 라는 섣부른 결론이 도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모르는 일이긴 하다. 김구라도 강호동처럼 smc&c로 들어가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또 일어나는 힘을 득템할 지)

<두드림>으로 합류한 김구라는 예외였지만, 막말의 대명사가 아니라, 조영남이란 변칙 플레이어와 함께 온건한 메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이고 싶을 거라는 그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결론은 '폐지'요, 그보다 더 지금 김구라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은, <화신> 역시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신>이 상승세이긴 하다.

3%대의 치욕을 딛고, 김구라가 합료한 이래 계속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는 중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1위를 <우리동네 예체능>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확실히 김구라가 합류한 이후, <화신>은 재미있어졌다.

어정쩡한 꽁트를 없애고, 김구라의 특기(?)에 봉태규의 열의를 살린 듯한 '풍문으로 들었소'도 회를 거듭할 수록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한줄의 요약'도 종종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위트있게 끌어가려고 mc들이 고군분투하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런데, 풍문으로 들었든, 한 줄로 요약을 하던, <화신>을 보다보면, 자꾸 <라디오 스타>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지금 그의 자리는 <화신>이지만, 김구라를 김구라로 인정받게 만든 대표적 프로그램이 공중파에서는 <라디오 스타>인 만큼, 복귀 후 그가 예전 <라디오 스타>만큼 해낼 수 있을까(지금의 라스가 잘 하던 못하던 상관없이)란 암묵적 비교가 자꾸 드는 건 어쩔수 없는 일인 것이다.

김구라가 예전의 <라디오 스타>처럼 출연자들을 물고 늘어지려는 의욕은 여전하다. 그의 옆에서 받쳐주는 봉태규의 '봉기자'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김희선과 아웅다웅하는 모습도 생각보다 어울리고. 문제는 신동엽이다.

 

 

심하게 말해서 <화신>은 두 개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신동엽의 19금 판 <화신>이랑, 김구라의 <라디오 스타>, 두 사람은 프로그램 내내 몇 마디를 나누지 않는다. 같은 화면에 잡히는 적도 거의 없다. 신동엽은 자신이 잘 하는 것만 던지고, 김구라도 역시 자신만의 직설로 게스트를 끌고 가려고 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일인자이지만, <화신>에서 두 사람은 그저 신동엽, 김구라일 뿐, 그로 인한 시너지는 없다.

물론 <화신>을 보다 보면 웃기다. 하지만, 화요일 밤, 동네 사람들의 땀 흘리는 진정성을 이겨낼 웃음은 아직 아니다. 다음날 <라디오 스타>를 보면 되지, 굳이 채널을 돌릴 충성도는 약하다.

 

<화신>이 그저 그런 <라디오 스타>의 아류가 아니기 위해서는, <화신>만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은 김구라 혼자서도 안되고, 신동엽 혼자서도 안된다. 두 사람이 합을 맞춰 이룬, 새로운 미지의 그 무엇이 발생될 때, 그때가 비로소 <화신>이 神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 친해지는 것부터 할 필요가 있다!

by meditator 2013. 5. 29. 10:09

5년만에 돌아온 김지우 작가, 박찬홍 연출의 복수 시리즈 완결판 <상어>는 복수의 첫 단추를 '첫사랑'이야기로 끼우기 시작하였다.

아련함이 물씬 묻어나는 화면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해우(경수진)와 이수(연준석)는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교실에서, 한 집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그 만남의 끝에는 빗물 속의 두근거리는 이마키스와 '죽을 때까지 너를 찾겠다'는 이수의 고백이 헤어날 수 없는 추억의 도장을 찍는다.

 

 

아이러니하다.

치명적인 복수의 시작이 '첫사랑'이라니, 아니 어쩌면 가장 당연한 수순인가. 죽을 때까지도 가슴 한 구석에서 지워낼 수 없다는 첫사랑, 그 감정의 잔인한(?) 집착이, 전복되었을 때 가장 잔인한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건.

'복수'는 사랑의 가장 반대편에 자리잡은 상대어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선 가장 순수하게 누군가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원한다는 측면에선 사랑과 아주 유사한 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복수'는 동음이의어라 볼 수도 있고, 그랬을 때 그 맞은편에 자리잡은 상대어는 욕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순수한 감정이 또 다른 불순한 욕망에 의해 훼손되었을 때 그 순수함은 또 다른 경지의 순수함으로 자연스레 질적 승화(?)되어 욕망을 깨부수기 위한 복수의 수레바퀴를 가열차게 돌리게 된다는 것일까.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감정에서 부터 시작된 <상어>가 무시무시한 복수극으로 진전되어 갈 것이라는 건, 언제나 그랬듯 인간 본연 심리의 결을 따라 극을 전개시키며 시청자들을감탄시켰던 김지우, 박찬홍 작가의 의도적인 첫 포석이라 하겠다.

얼굴을 징그리고, 눈웃음을 치는 하나하나가 젊은 시절 손예진을 고스란히 빼어닮은 어린 해우(경수진)의 등장은 영화<클래식>이나 드라마<여름향기>의 손예진만큼이나 시청자들을 첫사랑의 감정에 풍덩 젖어들게 한다.

첫 만남부터 해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아이를 위해 겁없이 주먹을 내지르는 소년 이수 역시 멀쓱한 순정 만화 속 그 남자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1회 마지막,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상어를 좋아하는 이수의 말은 곧 이수 그 자신을 상징하는 문구가 될 것이고, 그런 상어가 가장 좋은 이유가 불쌍해서라는 이수의 말은 고스란히 해우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란 건 무시무시한 제목에서 잔인한 복수극의 냄새를 맡은 시청자라면 쉽게 눈치 챌 전형적인 대사들이다.

사실 두 주인공에 홀려있던 감정을 차치하고 <상어>의 1회를 냉정하게 돌아보면, 온통 첫사랑의 클라셰 뻘밭이다. 첫 눈에 반하고, 여자아이는 당돌하고, 남자아이는 모범생이고, 부자인 여자 아이는 외롭고, 엄마가 없이 여동생과 아버지와 사는 남자 아이는 그런 여자 아이의 외로움을 가슴으로 공감한다거나, 자신을 이해해 주면서도 단호한 남자아이에게 여자아이는 빠져든다거나, 가정의 문제로 잠깐의 가출 중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거나. 아주 전형적인 에피소드 투성이이다.

그러기에, 1회를 본 누군가는 너무도 첫사랑스러운 두 주인공과 더불어 그 예의 익숙한 첫사랑 스토리에 덜컹 빠져들어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뻔하고 지루하다며 채널을 돌릴 것이다.

1회 마지막, 가출한 해우를 찾으러온 이수를 죽을 때까지 너를 찾겠다는 대사는 <상어>라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축과도 같은 대사이지만, 1회 동안 진행된 첫사랑의 세뇌당하지 못한 누군가에겐 개연성도 떨어지고 뜬금없는 복선을 위한 복선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복수를 위해, 가장 순수했던 첫사랑을 <상어>는 주춧돌로 삼았다. 하지만, 전형적인 첫사랑 클라셰와 풋풋한 첫사랑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두 주인공, 약간은 일그러진듯한 주춧돌이 무시무시한 복수의 개연성을 튼튼하게 버티어 줄 수 있는지는 애석하게도 미지수다.

by meditator 2013. 5. 28. 09:42

<인간의 조건>의 외연은 확장 중이다.

처음에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로 시작해서, '자동차없이 살기', '돈없이 살기' 등의 ~없이 살기로 시작된 미션은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를 넘어 '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으로 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처음 ~없이 살기란 부정적 미션을 앞에 내걸은 <인간의 조건>이 그로 인해 캠페인성 성격은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제한된 미션 영역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운명 자체가 시한부가 아니겠느냐는 중론이 일었을 때, <인간의 조건>은 과감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미션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로 '건강한 먹방'의 신세계를 도출해 냈다.

즉, 그저 맛있게 먹어대는 것이 '먹방'이 아니라 - 도무지 어디서 만들어 졌는지, 어떤 원료로 만들어 졌는지 정체 불명의 음식이 아니라, 믿고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 진 것이 진짜 맛있게 먹기 위한 - 전제 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그저 서로 먹어대기 급급했던 '먹방' 경쟁에 일침을 놓았달까.

이런 산지 음식만으로 먹고 살기를 통한 건강한 먹방을 만들어 냄으로써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이 꼭 ~없이 살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내었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어쩌면 어느 프로그래에선가 보았던 것같은 상투적인 듯한, 하지만 사실은 막연하기도 한 '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이 부여되었다.

 

 

(사진; 매일경제)

 

그런데 지금까지 그래왔듯 <인간의 조건>의 친구 찾기 미션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꽤나 보았던 그 친구찾기인데도 색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늘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이 주어진 미션의 영역을 넘어 늘 진지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란 미션에서 부터 그랬다. 문명의 이기를 없앤 불편함도 불편함이었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문명에 길들여진 삶을 들여다 보는 반사 효과가 더 컸었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된 '아날로그적 삶'의 온기는 '자동차 없이 살기'를 통해 더더욱 확산되어 갔다.

문명의 이기가 없어진 순간 삶은 불편해 지지만 예상 외로 소박해진 삶 속에서 잃어가고 있던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잠시나마 되찾게 되는 시간을 함께 누리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리를 걷다 문득 눈물을 흘리던 김준현의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조차 낯설지 않게.

'돈없이 살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보면 자신의 직업을 통해 먹고 사는 방법을 빼앗는 어거지 미션 같아 보였지만, 그 과정을 통해 힘들고 지겨워졌을 자신들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가를 역으로 깨닫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100인의 입술 도장을 받아내야 하는 우격다짐 친구찾기가 또 어떤 깨달음을 줄까 자연스레 궁금해 지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데 벌써'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이 주어진 1회 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친구'에 대한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진짜 친구를 찾으라니까, 진짜 친구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란 질문을 꼼꼼한 박성호는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일생을 쭈욱 적어보고, 시기별로 진짜 친구들의 목록을 작성해 본다. 그에 반해 친구가 진~짜 많다는 김준호는 명쾌하게, 진~짜 친한 친구, 친한 친구, 그저 친구의 영역이 분류되어 있다. 이렇게 멤버 별로 진짜 친구에 대해 다르게 접근해 가는 모습 자체 만으로도 '친구'에 대한 화두는 충분히 제시되기 시작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친구를 찾으라니까 다들 어릴 적 친구를 찾느라 연연한다. 심지어 허경환은 멤버들은 사회 생활로 만난 것이니 친구가 아니라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그러면서, 박성호가 누굴 찾지 하니까 이구동성으로 그의 매니저 '준석'을 불러댄다. 옆사람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친구를 찾으라니까 일년 가야 한번 볼까말까한 사람들과 연락하느라 쩔쩔매는 아이러니라니!

물론 이 미션을 통해 그간 연락이 안되는 추억의 친구도 만나게 되고, 소원했던 친구와의 오해도 풀어가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어쩌면 이번 친구 찾기의 여정도 저 멀리 돌고 돌아, 결국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깨닫는 소박한 삶의 철학으로 귀결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착각일까?

by meditator 2013. 5. 26. 10:22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

아마도 이 속담만큼 <땡큐>의 고민을 잘 보여준 표현도 없을 것같다.

2013년 3월 혜민 스님과 박찬호, 그리고 차인표가 여행을 떠나 길동무가 되어 하룻밤을 보내며 속내를 풀어놓기 시작한 <땡큐>는 어느덧 대표적인 힐링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만화가 이현세, 사진작가 김중만, 발레리나 강수진 등 사회저명인사에서 김지수, 하지원, 장서희 등 오락프로그램에서는 만나기 힘든 연예인에, mbc방송국을 그만두고 첫 방송을 시작하는 오상진 아나운서에, 야구를 그만두고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박찬호,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지드래곤까지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까지, 겨우 12회 남짓 기간 동안 <땡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속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인 건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에 나온 누구라도 그간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 상관없이 그 시간을 함께 한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사 하나를 심어놓은 건 따논 당상이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게스트를 모셔놓고 그에 관해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무르팍 도사>나 <힐링 캠프>같은 프로그램들도 게스트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한 회에 사회 각 분야에 나름 인지도 있는 인사를 모셔야 하는 <땡큐>는 10회를 넘어선 즈음 이미 다녀갈 사람은 꽤 다녀간 느낌을 준다. (그만큼 텔레비젼 오락 프로에 나와서 허심탄회하게 속을 내보일 저명인사가 희박하단 의미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매회 '아버지' 등 주제를 가지고 접근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10 여회 내내 <땡큐>의 이야기들은 '동어반복'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처음 말했던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라는 그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습 계획서에 맞추어 또박또박 공부하는 범생이처럼 꼭 '힐링'을 하고야 말테야 하는 의욕이 앞선 듯이 보일 때도 있었달까.

 

 

처음 <땡큐>를 시작할 때만 해도 꼭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곤 하였다.

처음 만나서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그리고 다음 날 다함께 그곳의 풍광을 즐기고. 그런데 그 내용을 다 담으려고 하다보니, 늘 한 팀의 게스트로 만들어낸 분량이 애매했었다. 2회는 너무 늘어지고, 1회 반? 이러다 보니, 프로그램의 흐름이 끊어지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땡큐>의 여행은 여행지의 멀고 가까움과 상관없이 '긴~'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덕분에 한 팀의 게스트로 한 회라는 쌈박한 분량이 정해지고. 하지만, 여행이란 게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1박2일을 보내면서 친해지고 나누는 이야기랑, 그저 하루를 함께 지내는 거랑 깊이가 다르듯이, <땡큐>가 전해주는 이야기의 깊이도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서로 즐겁게 지내면 그게 '힐링'이지 '힐링'이 뭐 별건가? 싶게.

 

12회 <땡큐>는 '기혼자들'이라는 주제로 배우 염정아, mc 지석진, 쉐프 강레오가 차인표와 함께 춘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마도 초창기의 <땡큐> 였다면 차인표가 춘천으로 가는 길에 게스트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거나, 게스트끼리의 만남을 이뤄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 팀의 게스트에 할애된 분량이 적어지면서 프로그램은 대뜸 춘천 닭갈비의 먹방으로 왁자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소리 큰 사람이, 말많은 사람이 초반의 기세를 잡아갈 수 밖에 없었고, 지석진, 염정아 중심의 프로그램은 내내 마지막 까지 그 흐름을 이어갔다. 심지어 가끔은 지석진이 mc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만큼.

짧은 여행의 <땡큐>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답게 '먹방'과 함께 '즐길거리'에 치중한다. 그래서 '기혼자들' 팀은 함께 닭갈비를 먹고, 검술 대련을 하고, 장을 보고, 각자 먹거리를 만들고 먹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기혼자들인 만큼 대부분이 부부들이 사는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가 오고 갔고. 오늘 하루 검색어에 오를 만큼 지석진의 이상한 부부 생활이 줄곧 문제가 되었다. 결혼 8년차 염정아와 이제 막 신혼인 강레오, 그리고 십여년이 넘어도 한결 같은 차인표는 본인은 '노멀'하다고 주장하지만, 지극히 부부 중심의 생활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 자리에선 전혀 '노멀'하지 않은 지석진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고, 결국 그의 부부의 '사랑해'를 나누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했다.

 

 

가수 김창완이 예전에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부에 대해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김창완네 부부는 서로의 동선을 알아서, 가급적이면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피해다니며 생활한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꼭 부부가 함께 지내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부딪쳐서 소리가 나기 보다는 지혜롭게 서로의 영역을 지켜줄 필요도 있다고.

아마도 <땡큐>의 그 자리에서 김창완이 나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다들 뒤로 넘어갔을 것이다. 김창완이 옳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예전의 <땡큐>같으면, 그래 그렇게 살 수도 있지 하고 바라볼 여유를, 짧아진 여행만큼 <땡큐>가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하는 말인 것이다. 어거지로 '사랑해'를 입에 담는다고 더 사랑이 깊어진 것도 아니고, 꼭 지석진 부부가 잘못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조급한 여행은 그럴 듯한 엔딩을 향해 '사랑해' 한 마디를 재촉하는 듯 했다.

 

또 예전 같으면 그리도 강레오가 궁금했다는 염정아가 강레오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궁금하다던 강레오의 말은 몇 마디 듣지도 않고 주구장창 지석진과 부부 관계를 둔 수다만이 넘쳐났던 <땡큐>는 어쩐지 동네 아줌마들이랑 잔뜩 먹고, 수다를 떨고 돌아온 뒤, 어쩐지 허탈한 그 심정같달까. 말은 넘쳐나고,음식은 충만했으나, 염정아네 오글거리는 '이번트'말고는 기억에 남는 것도 내 마음에 두고픈 것은 없는 허탈한 힐링이다. 아니 오히려 남들은 저렇게 사이좋게 사는데 그러며서 부부싸움나기 십상일 트러블 메이컬일 수도.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 다른 채널에서 여섯 남자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즐기며 먹어대는 분위기를 <땡큐>의 느린 호흡으론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희희락락한 여행을 모색해 보았을 수도 있다.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해서 조금은 지루했던 <땡큐>가 두터운 겨울 옷을 벗어던지듯 가벼워졌는데, 웃고 즐기는 그 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어쩐지 허전한 건, 무슨 아이러니일까

by meditator 2013. 5. 25. 10:08

공교롭게도 라고 해야 할까? 약속이나 한듯이 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까?

하여튼 mbc와 sbs의 저녁 일일 드라마가 5월 20일 동시에 시작되었다. mbc는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칩거에 들어갔던 임성한 작가가 모처럼 작품을 재개한 것으로 소위 '임성한 월드'라고 칭해지는 특유의 '막장식' 색채가 두드러진다. 반면, sbs는 <가문의 영광>의 정지우 작가와 신윤섭 피디가 다시 합을 맞춰 만든 작품으로 화면에서부터 따스함이 넘쳐흐르고,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감동적인 가족애를 지향하고 있다. 빗대어 말하자면 <오로라 공주>가 극사실주의라면, <못난이주의보>는 낭만주의랄까? 그리고 시청자들은 지금까지는 <오로라 공주>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청률과, <못난이주의보>가 아직 성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로라 공주, 자신의 이혼을 위해 아버지를 협박하는 아들  사진; 뉴스엔)

 

막장을 보는 이유는?; 오로라 공주

재미있는 사실이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오로라 공주>를 검색했을 때 드라마 소개에 피디가 아예 들어있지 않았다. <오로라 공주> 홈페이지를 클릭하고, 제작진 소개에 들어가서야 피디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흔히 어떤 작품이 들어간다고 하면, 작가가 누구냐? 피디가 누구냐?가 셋트처럼 따라 붙게 마련인데,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는 그게 없다. 오로지 임성한이란 이름으로 필요 충분조건이 다 갖춰지는 듯한 작품, 그게 바로 '임성한 월드'다.

흔히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따라붙는 수사는 '막장의 대가' 혹은 '욕하면서 보는' 등이다. 그런데 다들 '어이없는'데 재밌단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로라 공주>에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빚어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설정을 임성한 작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르르 늘어 놓는다. 마치<사랑과 전쟁> 특별판처럼.

계모임이나 동네 찜질방에서 들었을 법한 누구누구네 막가는 이야기들을 가장 번듯한 지위와 부의 계층을 배경으로 포진시켜 놓는다. 그뿐 만이 아니다.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면서나 할 수 있는 대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마치 '가족'이라서 참고 넘겼던 그 모든 것들을 임성한의 드라마에선 화끈하게 건드려 준다. 속씨원~하게.

그런데 또 웃긴 게, 그렇게 건드려 놓고서는 결론은 '우리 엄마 스타일'이다. 속물이라고 욕했던, 하지만 '본데있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던 우리네 엄마 잔소리가 고스란히 드라마에서 재현되니, 참 익숙하다. 짜증을 내면서도 적응이 되는 묘한 중독성. 언제나 그렇듯, 주구장창 '무쇠솥' 찬양을 하고 있어도, 제일 어린 게 손위 시누이들 데리고 남자는 짐승과 사람의 중간 단계라느니, 그저 잘 먹여주고 잘 해줘야 한다느니, 이런 따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고 있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임성한의 드라마는 불편하면서도 편하다.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된다 욕하면서도, 엄마 잔소리 듣다가 나도 나이 들어보니 엄마 같은 속물이 되어가듯, 그런 편안함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기자 사칭에, 이혼을 위한 아버지 협박에, 법에만 안 결린다 뿐이지 사건사고가 LTE급이다. 인간에 대한 환상도 없고, 환타지도 없는 거 같은데, 거기서 또 홀리고 낚이고 사랑을 한단다. 굳이 요즘 검색어 순위를 장악하는 모 여가수네 가족을 들 것도 없이 딱 요지경 속 대한민국 가족, 고대로다.

 

 

(못난이주의보   사진; tv리포트)

 

따뜻하지만 진부한 걸; 못난이주의보

<못난이주의보>의 연관 검색어에는 <피아노>란 드라마가 뜬다.

<피아노>는 2001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못난이 주의보>처럼 사회적으로 못난 아버지와 잘난 엄마가 재혼을 하며 빚어지게 된 형제들의 이야기이다. 더구나, <피아노>에서도 못난 아버지의 아들은 의붓동생을 위해 그의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쓰는데, <못난이주의보>의 형 준수(임주환 분) 역시 동생을 위해 그럴 예정이란다. 이처럼, 간호사인 엄마(신애라 분)가 어린 시절 첫사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는 한때 사기꾼이었던 아버지(안내상)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안고, 그의 아들을 품어주는 이야기는,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신선하지 않다.게다가 재혼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과정 역시 어디선가 보던 그대로이다. 아버지는 생활고에 못이겨 다시 그 예전 사기꾼으로 돌아가려다 오히려 가족을 궁지에 몰아넣고 착한 엄마는 어린 동생을 낳고 역시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이 스토리는 <피아노> 보다 더 오래 전 6,70년대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스토리이다.

못난이주의보는 화면을 가득차 내리는 벚꽃비처럼 아련하다. 사기꾼인 남편만큼, 새로 생긴 아들을 품어주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의 사랑에,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행복해 무한 애정을 베풀려고하는 어린 준수, 마치 골목에 튀어나온 과속 방지턱에 걸리듯이 드라마를 보다 울컥울컥 눈물이 솟는다. 악다구니같은 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순애보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가슴은 먹먹하지만 한편에선 모락모락 현실과의 괴리감 역시 어쩔 수 없다.

분면 <못난이주의보>가 착한 드라마인 것도 안다. 동생을 위해 시험지를 숨긴 형의 마음을 감싸안아주는 엄마의 미소처럼 감동도 있다.그런데, 그 감동을 엮어내는 틀이, 아직 초반이지만 너무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다. 그 따스한 메시지 만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기엔, 저쪽 방송국의 스토리가 너무 기상천외하다. 나도 모르게 리모컨에 손이 간다.

by meditator 2013. 5. 24. 09:58

요즘 sbs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세상에서 월화수목금토일, 아침, 저녁, 밤 10시대 미니 시리즈까지 단 한 편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이 없으니까. 새로운 해석이라며 조선판 패션디자이너라고 야심차게 시도했던 장옥정은 본래의 악녀 장옥정으로 리턴하는 강수를 뒀지만 집나간 청률이는 좀 처럼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년 <옥탑방왕세자>, <더 킹 투 하트>, <적도의 남자>가 격돌한 수목드라마 대전에서 결국 <옥탑방 왕세자>를 승리로 이끌었던 신윤섭 피디가 정지우 작가를 만나 따스한 가족애를 내걸며 일일 드라마로 돌아왔지만 막장의 대가 임성한 작가와 맞물리면서 진가를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무리한 설정에, 퓨전이라고 용서하기에도 무리한 역사 해석, 그리고 연기 논란까지 잇달아 문제가 되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제외하고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들이 꼭 문제가 있어서 시청률이 나쁜 건 아니라는 거다. mbc주말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스토리는 개그콘서트의 패러디 대상이 될만큼 '막장'의 본류라는 건 누구나 다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드라마가 항상 주말 1위를 차지하였던 kbs주말 드라마를 제끼고 1위까지 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털 먼지가 있든 없든 애꿎은 상대편 드라마들만 탈탈 털리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청률은 하늘의 계시'라, 지금 단지 sbs드라마의 손을 들어주시지 않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단지 시청률이 낮다고 폄하되는 몇몇 작품들에서 유독 안쓰러운 배우들이 있다. 유준상과 신하균이다.

 

 

 

 

유준상과 신하균은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두 사람 모두 작년에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브레인>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두 사람 모두 sbs드라마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에 출연하는 중이고,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 모두, 5~6%의 치욕적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시청률만 낮은 게 아니다. 한때는 그가 표현해낸 캐릭터가 하도 사랑스러워 '국민 남편'이었고, 얼마나 연기를 잘했으면 '하균신'이란 별칭을 얻었던 이 두 사람이 단지 몇 개월만에 다른 드라마에서 연기력 논란 혹은 과도한 설정의 불명예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전작의 그림자 따위는 단호하게 지워버리고 전혀 다른 캐릭터로 돌아온 두 사람의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부적응이 클 것이다.

<출생의 비밀>에서 유준상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잘 배운 미국 교포 출신의 엘리트 의사는 싹 지워버리고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말끝마다 '이 잡녀르~~"를 달고 사는 단순무식한 애기 아빠로 등장하는 것이다.

반면, 차갑기가 동짓날 저리가지만 그 속에서 연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던 브레인의 이강훈 쌤은 가운데 가리마의 대뜸 첫회 부터 비호감의 말들만 골라하는 싸가지 여당 국회 의원으로 등장해 그의 호청자들을 식겁하게 만들었다.

연극과 영화로 다년간 경험을 쌓은 두 사람은 이전 캐릭터의 영광에 기대는 것 혹은 이미지메이킹 따위는 개나 주어버리고, 새로운 드라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로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어불성설 연기력 논란에 비호감 딱지 뿐이다. 연기를 잘 했을 뿐인데 새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의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앉게 된 처지가 된 것이다.

요즘은 제 아무리 전작 드라마가 40%가 넘는다 해도 전작의 후광 따위는 없는,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시간에도 수십번씩 채널을 돌리는게 여사된 세상에서, 시청자들은 그들이 제 아무리 전작에서 좋았다 하더라도 비호감 캐릭터로 돌아온 두 배우들이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두 배우는 톡톡히 배워갈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이 현재 출연하고 있는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렇게 낮은 시청률로 폄하할 만큼 형편없는 드라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김규완 작가가 모처럼 집필한 <출생의 비밀>은 제목에서 보여지는 상투적 '출비' 스토리가 아니라, 김규완 작가가 언제나 그래왔듯 가족이,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인 것이다.

또한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이미 탄탄한 원작으로도 검증이 끝난 작품으로, < 보스를 지켜라>의 권기영 작가와 손정현 피디가 시청자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작품의 질에 있어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원작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담 초반에 지나치게 과한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빼앗긴 배우들의 패착에 모든 것을 돌려야 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지긋이 비호감 캐릭터가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가 없는 이 시대 시청자들에게, 개콘 패러디가 딱 맞듯이 극적이지 않으면 참고 보아지지 않는 막장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기호의 탓이 더 클 것이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드라마를 지켜내고, 연기를 보여준 두 사람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 낮은 시청률이더라도 좋은 드라마는 좋게 평가받을수 있는 여유있는 환경을 덧없이 바래보기도 하고.

by meditator 2013. 5. 23. 10:02

<직장의 신>이 종영되었다.

마지막회는 소위 말하는 막판 반전없이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미스 김은 3개월의 시한이 끝나자 과감히 와이장을 떠나고, 떠나는 그녀를 모든 직원은 아쉬워하고, 물러터져서 사회 생활 어찌할까 싶은 무정한 대리는 주변 사람들을 품은 그 성격 덕에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여전히 창고 관리직으로 남은 장규직에게 미스 김은 다시 돌아가는 걸로 여운을 남기는 것까지. 굳이 이변이라면 그렇게도 와이장의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정주리가 스스로 재계약을 거부한 것?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무도 간절했기에 오히려 떠나려는 복선이 아닐까 의심을 충분히 둘 수 있는 정도였었다.

 

474,510

(직장의 신 종영 메시지)

 

반전도 없고, 장규직을 미스 김이 구하는 해프닝 외에는 딱히 극적인 결말도 없었음에도 <직장의 신> 마지막은 가슴을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장규직의 어머니가 미스 김이 그토록 못잊었던 계약직 선배였다는 설정은 지극히 도식적이었지만, 그 어머니를 불길 속에서 구해내지 못해, 그 어머니 혼자 놔두고 살아남아 오랜 시간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미스 김에게 고해 성사를 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번복할순 없지만, 얼마나마 갚았다는 마을을 들게 한 창고 화재씬은 어설펐지만 따스했다. 더구나, 장규직의 그 마지막 한마디, '당신 잘못이 아니야'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전구 운운'하는 정주리의 나레이션은 반갑기 까지 했다. 정주리는 말한다. 그저 '수많은 전구 중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구가 없으면 불을 밝히지 못한다'고. 그리고 미스 김은 정주리에게 말했다.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 자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팀장이 된 무정한 대리는 예의 그 모습을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은 채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우리 사회 내의 뿌리깊은 사회적 갑을 관계를 직접적으로 들고 나온 <직장의 신> 결말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체계가 달라졌다는 말은 없고, 그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빛나는 전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산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그저 장규직의 희생으로 정주리의, 마케팅 지원부의, 무정한의 기획안의 성공을 거둔 것, 오래도록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미스 김이 장규직의 '너의 죄를 사하노라'와 같은 그 한 마디로 인해, 그의 사랑으로 인해 오랜 상처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구조와 조직의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막막한 세상에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상투적이지만 또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끈을 붙잡고 다시 살게 만드는 용기를 북돋는 환타지랄까.

 

(학교 2013 마지막 촬영 현장)

 

그런데 <직장의 신>만이 아니었다. 2012년 12월부터 방영된 <학교 2013>의 주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회 돌아오지 않는 학생을 기다리는 끝나지 않는 종례의 여운은 내내 <학교 2013>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걸 말하는 방식 역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여전히 입시 전쟁 속에서 질식해 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튕겨져 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부대끼기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었다.

<직장의 신>의 현실성이 희화화되어 통쾌함을 주었던 것과 달리, 너무도 그 아픔이 현실적으로 다가와 보기가 저어된다 할 정도로 '모사'에 다가갔던 학교의 모습은 또 학교 시리즈의 답습이냐던 힐문을 닫게 만들었었다.

비록 <직장의 신>이나 <학교 2013>에 비하면 불발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3년 2월부터 방영된 <광고 천재 이태백>이 지향하는 '착한 드라마' 역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지방대 출신으로 세계 광고계에서 인정을 받고, 센세이셔널한 공익 광고로 주목을 받은 이제석이란 실존 인물을 밑그림으로 하고 진행된 드라마가 지향한 것도 우리 사회 루저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하는 건강한 문제의식이었다. 단지, 두 드라마와 달리 <광고 천재 이태백>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 문제의식은 건강하되, <직장의 신>과 <학교 2013>이 정확히 천착했던 우리 사회 현실에 제대로 가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광고 천재 이태백 마지막 촬영 현장)

 

혹자는 이제 텔레비젼은 디지털 시대의 아나로그처럼 다면화되고 쌍방향이 되어가는 문화 시대에 과거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중장년층이 쥐고 있는 리모컨의 향배에 좌우되는 시청률에 목매는 공중파의 프로그램들은, 장옥적이 악녀 본색을 드러내자 올라가는 시청률처럼, 시청률 상승을 위한 막장식의 스토리를 쏟아내며 시선끌기에만 몰두하다보니, 건강한 시청층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경향 속에서, <학교 2013>에서 <직장의 신>의 계보로 이어지는 월화 드라마의 건강한 현실주의는 신선하다. 더구나, 젊은 층 사이의 회자되는 이들 드라마의 이슈성은 시청률로만 다할 수 없는 방송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막장식 궁중비사나, 환타지가 아닌, 텔레비젼을 보고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드라마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권의 전통이 내내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막장이나 뻔한 러브 스토리가 아닌 개인적 자족이든 환타지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나누는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흘러간 매체가 아닌 동시대를 숨쉬며 살아가는 살아있는 매체로 텔레비젼이 생명 연장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후속작으로 5년간 절치부심의 칼을 갈았다는 김지우, 박찬홍의 <상어>가 시작된다. 과연 이 드라마도 짧은 시기나마 이어져온 kbs월화 드라마의 전통을 이어갈까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3. 5. 22. 09:57

언제부터인가 연예인을 '공인(公人)'이라 지칭한다.

국가로부터 어떤 공적인 임무를 띤 임명장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사람들은

하지만 공인이라 부르면서, 그 어떤 공적 자리에 있는 사람보다도 냉혹한 잣대로 평가하며, 그 누구보다도 그들을 사적으로 소비한다.

사람들이 두어서넛만 모이면 처음엔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자식 이야기를 하다가, 집, 재테크, 돈 버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 지면 그때부터 요즘 보는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해서 '누가 어떻드라'라며 연예인들의 카더라 통신으로 넘어가기가 십삽이다. 그리고 그 카더라 통신은 청와대 대변인 만큼이나 확신에 차고 공식적인 듯 전달된다.

 

20일 밤 sbs <힐링캠프>의 장윤정과 tvn의 <택시>의 유정현은 공교롭게도 그 카더라 통신으로 인해 오랜 마음 고생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렇다. 장윤정이 말하듯 언제부터인가 장윤정을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일까, 그녀와 관련된 온갖 루머들이 세상에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힐링 캠프>를 통해 밝히기를 세상의 제 멋대로의 해석에 장윤정은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닫아 걸었었다고 한다.

유정현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통해 모 여배우와 관련된 자신의 루머를 선거를 바로 몇 일 앞두고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내는 물론, 장모님까지 밖으로 다니지 못하실 정도의 마음 고생을 겪었다는 것이다.

 

(사진; 스포츠 동아)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유정현은 그 루머를 신고했고, 경찰은 수사해서,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이게 왜 놀라운 사실이냐고? 이 자리를 빌어 사과컨대, 그 당시 하도 당연하게 인터넷 기사로까지 도배되었던 그 루머의 결과를 몰랐던 나 역시 그러려니 했었다는 것이다. <택시>에서 유정현이 안타깝게 밝혔듯이, 카더라로 돌 때는 모든 언론이 꿍짝이 되어 한 목소리로 떠들어 대더니, 정작, 그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한 두 매체를 빼놓고는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는. 그러니 나처럼 여전히 유정현은 그런 놈(?) 이려니 하고 살게 되는 것이다.

장윤정의 해명 과정은 더 극적이다. <힐링 캠프> 출연과 관련하여 장윤정의 최근 가족사가 언론에 기사로 뿌려지기 시작했었다.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더니, 빛이 있대!'

덕분에 수전노처럼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처럼 퍼지던 온갖 소문은 하루 아침에 장윤정을 가족을 위해 밸도 다 꺼내주는 속없이 착한 딸로 버전이 바뀌었다.

빛만 남고 다른 가족들과 헤어진 상태의 장윤정은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 여겼는데 오히려 이번 일을 겪으며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아 좋은 점도 있다고. 그간 오죽이나 사람들로 세치 혀로 인해 마음 고생을 했으면 저렇게라도 위로를 할까.

 

물론 여전히 의심이 많은(?) 사람들,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고 마음을 돌린 우리를 보고 순진하다 하는 누군가는, 저런 결과를 놓고 또 다른 해석을 들이대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마음가는 대로 저 사람들을 이렇게도 평가했다. 저렇게도 평가했다 그런다. 그리고 그 풍문의 말들이 굴러굴러 누군가의 국회의원직을 빼앗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꽁꽁 닫아 걸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족쇄는 검찰 수사를 거쳐도 잘 풀려지지 않고, 쫄딱 망해야 그때서야 아 그랬어? 하고 다르게 생각해 주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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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경제)

 

연예인이 공인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한없이 만만하게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가족이 해체되고, 동네가 사라지면서 부터일지도 모르겠다. 풍문으로 떠돌던 옆집 누구네 이야기, 건너 마을 누구네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없게 되면서, 가족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대신에 저마다 텔레비젼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면서, 어느 틈에 텔레비젼 속의 그들은 정겹게 우리 가족과 이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텔레비젼 악역을 거리에서 만나면 한 대 후려치는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것처럼 소비하는 '현대판 고독'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고독의 해소 때문에 그들을 '날라온 돌에 맞은 개구리'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힐링 캠프>의 교훈은 '나쁜 년(?)'었던 장윤정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라, 만만하게 누군가를 세치 혀의 잣대로 목조르지 말자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제 버릇은 쉬이 개 주지 못하니, 찜질방, 식당, 커피숍 구석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나쁜 년놈으로 또 씹어지고 있는 중이리라.

by meditator 2013. 5. 21.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