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8회에 이른 <천명>은 시청률 조사 기관과 지역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동시간대 1위이거나, 1위를 놓친 성적을 보인다. 하지만 수치상으로만 보면, 아직 10%를 밑도는 시청률은 1위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천명>이란 드라마가 품은 욕심에 비하면 보잘 것없다 하겠다. 더구나, 기사로는 연일 여자 주인공 송지효의 배신이 부각되지만, 실제 드라마를 보면, 홍다인의 이중첩자 역할이 극중에서 그다지 부각되거나 극의 흐름 상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도 않으니, 기사에 낚여 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에이, 시시해~' 하기가 십상일 언론플레이만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쯤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운명에 빠진 세자(임슬옹)에 대해서라든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의술을 펼치는 최원(이동욱)에 대해 왈가왈부가 좀 나와줘야 하는데, 그러기는 커녕 의도적인 기획사의 기사이거나, jyj의 준수가 부른 ost말고는 화제성이 없으니, 제작진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하다.
첩첩산중의 사건들, 어찌 풀어낼꼬
드라마 <천명>에서 가장 두드러진 스토리는 내의원 민도생의 살해와 그 용의자로 도망자의 신분이 된 최원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 뒤에는 대비인 문정왕후와, 그의 소생이 아닌 오랜 기간 세자 신분으로 아픈 중종을 대신해 정사를 돌보고 있는 이호의 대립이 있다. 여기에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겠다는 직접적 욕망이 두드러지지만, 그 이면에는 후에 인종이 될 이호를 옹립하는 대윤과 문정왕후의 아들을 옹립하고자 하는 소윤의 외척간의 갈등, 나아가 을사사화의 원인이 되는 권신내부의 권력 독점에 대한 쟁투가 깔려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문정왕후를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는 악녀처럼 묘사하면서, 자신의 핏줄로 대를 이으려는 전형적인 왕가의 세습을 둘러싼 갈등으로 하나의 축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에 반해, 후에 인종이 될 이호를 조광조 이래 끊임없이 정권에 도전하다 희생된 아직은 재야 세력에 불과한 사람 세력의 일원이라는 개혁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으로 캐릭터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렇게 내의원 살해 사건의 실질적 배경은 권력 혹은 왕좌를 쟁취하기 위한 쟁탈전이다. 거기에 최원은 엄한 희생양이 된 것이고, 희생양에 걸맞게 아픈 딸이 있다는 비극적 요소가 강화된 사연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러기에 <천명>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궁중 내부의 권력 쟁투와, 최원의 도망, 혹은 의술, 그리고 사연이 평형이 된 시소처럼 팽팽하게 진행되어야만 드라마의 제목처럼 <천명>의 주제가 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명>은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요리 경험이 없는 요리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준비한 것처럼, 저렇게 복잡한 구도에다가, 임꺽정이 몸담고 있는 흑석골 도적패의 이야기를 덧붓이고, 궁녀 홍다인의 개인사에, 최원과 홍다인, 그리고 흑석골의 소백의 삼각관계 까지 얹었다. 어디 그뿐인가 양념처럼 이정환의 무대뽀 캐릭터에 최원 동생과의 로맨스까지. 아니다. <허준> 뺨치게 극적인 최원의 의술 깜짝 쇼도 종종 빼먹지 않고 등장한다. 정치에, 궁중 암투, 의학, 로맨스, 추격까지, 사극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천명>에서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부페에 가서 이것저것 잔뜩 집어 먹었는데 헛배가 부르고 뭘 먹었는지 모르겠는 것처럼 70여분 동안 한 바퀴 휭~ 돌면서 많은 일이 일어났음에도 보고 나면 뭘 봤는지 모르겠다. 기사에선 송지효가 이중첩자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지도 모르겠고, 세자는 손을 부들거리며 고뇌하는데, 그 고뇌가 다가오지도 않는다. 심지어 최원은 번번히 사건의 중심에 서는데, 뭐 어찌 또 도망가겠지 싶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만 <뿌리깊은 나무> 와 <천명>
여기서 뜬금없지만 <뿌리깊은 나무>란 드라마를 거들떠보자.
이 드라마에서도 <천명>처럼 권력을 둘러싸 심오한 담론도 있고, 권력 내부의 암투도, 거기에 배경이 되는 재야 세력의 도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추격씬도 만만치 않았고, 러브 스토리도 빠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가 <천명>과 전혀 다르게 시청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던 것은 <추노>를 통해 연기력 하나는 인정받은 장혁 보차도 연기를 못해보이게 할 만큼, '우라질!' 욕설 한 마디로 압도해 버린 세종 역할의 한석규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적할 만해 보이는 정기준 역의 윤제문이 있었다. 사실 <뿌리깊은 나무>가 말하고자 했던 담론은 상당한 사상적 지식을 요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 배우들의 연기는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기본적 주제를 충실히 전달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천명>의 한계는 안타깝게도 욕심껏 내지른 스토리를 끌고나갈 힘있는 배우들이 없다는데 있다. <천명>이란 드라마을 시청하다보면,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 김유빈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눈밑까지 시커멏고, 얼굴을 누르끼기한 아이가 잘 보이겠다고 이정환(송종호)의 신발을 닦아주는데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그런데 어쩌랴, 유빈이가 주인공이 아니니.
<천명>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부각된 주인공은 최원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드라마를 뒷받치고 갈 사람은 세자 이호이다. 이호는 끊임없이 도망을 치고 드러나는 의술로써 드라마를 이끌어 가지만, 세자는 자신의 신념과 왕권 사이에서 고통받는 젊은 개혁가의 모습을 그려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임슬옹의 연기는 노력은 가상하나 수준인 것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세자의 클로즈 업을 자제해 주셨으면, '나 연기해요'라는 임슬옹의 연기를 보느라 손발이 남아나질 않으니까)
주인공 최원도, 세자 이호도, 모두 연기를 못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시청자들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킬 내공은 없다는데 한계를 드러낸다. 적어도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특히나, 세자의 경우, 조금 더 내공있는 배우가 문정왕후 와의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면 아마도 <천명>이 조금 더 재밌지 않을까 라며 자꾸 드라마를 보면서 욕심을 내게 만든다.
그나저나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산더미에, 배우들 연기는 그럭저럭이니, <천명>이야 말로 1등을 해도 등두릴 여유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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