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개봉한 <아이언맨3>는 1000 만 관객을 바라보면 역대 개봉 영화 흥행 8위를 기록하는 파죽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칸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위대한 개츠비> 역시 주말 박스 오피스 순위 3위를 기록하며 흥행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철갑을 두르고 미국을 위협하는 적들과 싸우는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와 <위대한 개츠비> 영화화 사상 가장 화려한 대저택에서 결국 정비공의 총에 맞에 숨을 거두는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전혀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성격이 두 인물이다. 그런데도, 두 영화를 보고 나면 묘하게 두 사람 사이의 동질감이 느껴진다. 왜?

 

히어로? 그딴 건 없다!는 <아이언 맨3>의 영화 카피처럼,

세번 째 시리즈의 토니 스타크는 철갑 옷을 입고 활약하는 시간보다, 인간 토니 스타크로서 종횡무진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즉, <어벤져스> 활동 이래 히어로로써의 삶에 혼란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생긴 육체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토니 스타크에게는 다시 아이언맨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고, 적은 적절하게도 그런 토니에게 개인적 고뇌의 시간을 오히려 벌어주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1편을 복기해 보면, 아이언맨은 영웅이었을지 몰라도 일찌기 토니 스타크는 영웅이라기엔 쫌 그런 인물이다. 그가 아이언맨이 된 계기는 그가 회장으로 있는 방위산업체의 무기들이 테러범들에게 역으로 이용되어 무고한 양민과 미국에 위협이 되었던 데서 비롯된 '시민적 자각'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아이언 맨이 되어 미국을 구하고 다니면서도 토니 스타크란 인물에게 그 '애국적 활동'은 마치 초등학생이 우연찮게 도둑을 잡고 난 뒤의 '소영웅주의'에 물들어 뻐기듯, 일관된 '자뻑 모드'였었다. 겉멋에 들린 영웅이었음에도 순탄하게 영웅놀이를 수행하던 그가 영웅들간의 연합 작전 어벤져스를 겪으며 혼란에 빠진다. 놀이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그게 꽤 심각한 인생이었던 것이다. 놀이동산을 빠져나온 아이가 놀이동산의 잔영에서 벗어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듯, <아이언맨3>의 초반 토니 스타크는 철갑을 벗어던지지 못한 채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던 토니 스타크를 구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와의 오래된 사랑조차도 늘 희화화시키며 진지하게 다가서지 못하던 토니는 그녀가 납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구하고자 달려든다. 부상을 당하고 에너지가 방전된 아이언맨을 놔두고 홀몸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러 적진으로 들어간 토니는 그 과정에서, 철갑이 없더라도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러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자신에게서, 아이언맨의 진정한 정체서을 발견해 내고.

<아이언맨3>는 여전히 여느 영웅물들처럼,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 집단이 나오고, 가공할만한 위력의 적들이 나오지만, 그들의 존재 차체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이 납치를 당하지만, 토니 스타크가 구하려고 한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었을 뿐, 미국 대통령이나, 미국을 절체절명에 빠뜨리는 위기는 곁다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애국 군인 로디 역의 돈 치들이 필요했다)

즉, 토니 스타크는 여전한 영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회 관계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라기 보다는, 그와는 별개의 실존주의적 인간으로써의 고민이고, 그런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한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을 것같은 순정남의 캐릭터의 원조는 바로 위대한 개츠비이다.

보잘 것 없는 집안의 가진 것 없는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뉴욕 외관 신흥 부자들 의 저택 단지에 불야성의 저택을 이룬 것은 오직 그녀, 그의 집 맞은 편에 사는 데이지를 위해서였다. 그가 울프심의 수하로 들어가 온갖 불법을 일삼으며 그럴 듯한 부를 축적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던 것도 역시 그녀, 데이지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물신이 춤추는 1920년대의 뉴욕, 그 누구보다도 거기에 가장 부화뇌동 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세속적 물욕에 찌들지 않고, 그 속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고 했던 개츠비에게 영화 속 저자 닉은 여왕이 선사하는 작위처럼 'The Great'란 수사를 붙여준다. <위대한 개츠비>는 심지어 3D라는 눈을 혹사시키는 첨단의 기법까지 동원해 가며 거대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시간들을 현란하게 재연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개츠비의 순애보를 돋보이고자 하는 장치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파티가 화려하면 할 수록, 저택이 거대하면 할 수록, 개츠비가 드러내는 부가 거창할 수록, 데이지를 향한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할 것처럼.

<위대한 개츠비>가 고전이 되었을 시간에도 여전히 다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영화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어느 시즌보다도 철갑맨의 활약이 적었던 <아이언맨3>가 인기를 끄는 것은 무엇일까?

21세기의 실존주의자 토니 스타크와 1920년대의 순정주의자 개츠비가 전혀 다른 시대의 사람임에도 '사랑'을 그들 삶의 동인으로 삼았다는 소박함때문일까? 단지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이 있다면, 토니 스타크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의 저택 아래 숨겨두었던 수십명의 아이언맨을 동원할 정도의 재력이 있다는 것과 호텔방에서 데이지의 남편이 폭로했듯, 그 예전 데이지를 처음 만났을 때나, 그리고 다시 데이지를 만났을 때나, 개츠비에겐 그녀를 얻을 만큼의 '진정한 부' 가 없었다는 사실 아닐까.

 

 

그런데 두 사람의 모습에서 묘하게도 그 예전에 보았던 서부 영화들이 떠오른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도는 총잡이, 그에게는 딱히 삶의 목적도 이유도 없어보이고, 오로지 내 일신의 안위 뿐. 그러던 그에게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기고, 그 때문에 적과의 목숨을 내놓은 일전도 마다하지 않게 되고, 어부지리로 마을도 구하고. 어쩌면, 위대하단 접두사를 붙이고, 여전히 사랑의 화신으로 되살아나는 개츠비나, 사랑을 위해 다시 한번 영웅이 되는 토니 스타크는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본원적인 인간 유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서 '사랑'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좀 더 깊게 규명해 볼 수도 있겠다. 굳이 진화생물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본원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개츠비에게 사랑이라고 쓰고, 그것을 다른 의미로 집착이라고 읽어도, 그 아래 숨겨진 것은, 그가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고 누리고 얻고 싶은 개인적 행복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토니 역시 마찬가지다. 매달린 대통령 따위 무시한채 사랑하는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그의 마음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마지막 여전한 미국의 위기에도 일체화된 아이언맨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의 실존주의가 미국으로 건너가, 탈정치적 과정을 겪으며 정치적 자유가 배제된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기에 자신 만의 실존을 획득해야 한다'는 개인주의적 실존주의자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도, 민족도, 나의 일도 모두 내 자신의 행복에 우선할 수 없다는 개인주의적 전제가 바로 오늘날 미국적 인간형의 기본에 깔린 게 아닐까 하는. 그러기에, 우리로서는 전혀 이해 할 수 없지만, 대통령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정서가 저들에게 여전한 것이다.

 

그러기에, <아이어맨3>가 빠른 시간 안에 좋은 흥행 성적을 보이는 것을 딱히 영화의 만듬새만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경제적 위기가 거세어지는 시점에,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공적인 부조를 얻을 수 없는 실존적 위기감이 사람들로 하여금 토니 스타크의 실존주의와, 개츠비의 일장춘몽에 공감케 하는 게 아닐까 싶으니 말이다.

by meditator 2013. 5. 20. 14:49

<더 바이러스>의 후속 드라마는 예상 외로 청소년 드라마 <몬스타>이다.

음악 드라마임을 내걸은 첫 회 예고편, 유재하의 <지난 날>이 흘러나온다. 90년대의 음악들과 90년대 청춘들의 성장사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한편의 아름다운 후일담을 완성했던 <응답하라 1997>이 연상되면서, 음악의 힘을 빌어 또 한편의 청춘의 감성을 전해줄 드라마가 탄생될까? 기대를 해보게 된다.

 

하지만, 뮤직드라마 <몬스타>는 빈번하게 음악이 흐르고, 주인공들이 공연을 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마지막 장면 눈물의 듀엣,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외에는 음악이 들어오진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은 입술에서 시작되었다'는 노골적으로 로맨스를 상징하는 소제목처럼 드라마는 십대 청소년 일부가 인터넷에서 즐겨 찾아보는 로맨스 소설의 품새에 더 가까웠다. 2004년 개봉된 귀여니의 소설 <늑대의 유혹> 예고편, 여주인공의 우산 안으로 스윽 들어와 싱긋 미소를 짓던 미소년 강동원처럼, <몬스타>의 주인공 윤설찬(용준형분)은 1회 엔딩, 다짜고짜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여주인공 민세이(하연수 분)에게 '내 짝 해라'는 뜬금없는 대사를 날리고 드라마는 다음 회를 기약한다. <직장의 신>의 장규직의 '내 정규직 해라'라는 대사는 오글거려도 십 여회를 통해 다져온 밑밥이라도 있지. <몬스타>는 예고편 내내 교실로 다짜고짜 들어가 앉아있는 여학생에게 입술을 들이대는 윤설찬의 키스씬으로 낚더니, 이번에는 뜬금없는 '내 짝 해라' 라니!

 

 

그런데 1회를 통해 <몬스타>가 보여준 윤설찬과 윤세이, 그리고 거기에 얽혀드는 정선우(강하늘)의 러브 스토리 서사는 인터넷 소설을 좀 찾아보거나, '팬픽' 좀 봤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환타지들이다.

잘 나가는 남자가 보잘 것 없는 여자에게 성큼 다가오는 환타지는 할리퀸 로맨스의 전형 '프리티 우먼'에서 일본판 로맨스의 절정 '꽃보다 남자'에서 익히 써먹어 왔던 스토리들이다.

단지 이번엔 음악을 매개로 하기 위해 아이돌 스타 윤설찬이 자신이 다니던 학교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거기에는 '라디오'라 칭해지며 대놓고 왕따를 당하는 박규동(강의식)과 그 누구도 규동의 눈물어린 노래에 반응하지 않았을 때 그와 함께 눈물을 흘려가며 노래를 해준 전학생 윤세이가 있다. 아마도 이들은 윤설찬과 함께 음악을 통해 조우하고, 성장하고,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 편엔 우등생 정선우가 속해있는 오케스트라 동아리 '올포원'이 있다. 어라, 이런 음악적 대립 구도는 <드림하이>에서 이미 한번 경험해 봤는데?

이렇게 <몬스타>의 구도는 어디선가 봤던 거 같은 스토리와 캐릭터들을 답습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십대들의 로맨스 환타지를 건드리며 이 드라마에 대한 접근성을 쉽게 만드는 <몬스타>의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정적 트라우마까지,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뻔한 클리셰가 되어 단점으로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

1회 낯선 배우들이, 각자의 사연을 풀어놓으며 신선한 첫 만남을 이루어 가는데도 어쩐지 70여 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몬스타>의 1회가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진 측면이 강하단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청소년 드라마라 하더라도 <응답하라 1997>처럼 첫 주연임에도 연기력의 논란없이 윤재같았고, 시원이 같았던 서인국과 정은지의 연기를 경험했던 시청자들이, <학교 2013>을 통해 이종석과 김우빈의 외모적 훈훈함을 경험했던 시청자들이 과연 아직은 이도 저도 아닌 듯한 <몬스타>에 열광해 줄런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1회 뻔한 클리셰의 남발 속에서 건물 옥상에 올라가 죽음을 고민하던 왕따 박규동이 반 아이들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눈물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토해내듯 부르다, 윤세이가 함께 한 순간, 치유의 미소를 지을 때, 그리고 이 둘이 함께 남은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부를 때 그저그런 청소년 환타지 로맨스같았던 <몬스타>는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또 다른 지점에 도달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발군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하지만 그 이후 그의 연출을 슈퍼스타k 에피소드 드라마에서나 만나게 돼 안타까웠던 김원석 피디가 그의 저력을 제대로 펼쳐 줄 지 기대를 해본다.

<별순검> 시리즈를 통해 매니아들의 환호를 받다, <아랑사또전>으로 그 명예를 잃고 만 정윤정 작가의 절치부심도 또한 기대가 되기도 한다.

십대의 환타지 로맨스 드라마를 만든다면, 십대들은 고정 시청자층으로 먹고 들어갈 것이란 안일함을 넘어, '상처받은 10대 청소년들을 음악으로 치유하겠다는' 제작의도를 잘 살려줄 드라마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5. 18. 09:53

8회에 이른 <천명>은 시청률 조사 기관과 지역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동시간대 1위이거나, 1위를 놓친 성적을 보인다. 하지만 수치상으로만 보면, 아직 10%를 밑도는 시청률은 1위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천명>이란 드라마가 품은 욕심에 비하면 보잘 것없다 하겠다. 더구나, 기사로는 연일 여자 주인공 송지효의 배신이 부각되지만, 실제 드라마를 보면, 홍다인의 이중첩자 역할이 극중에서 그다지 부각되거나 극의 흐름 상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도 않으니, 기사에 낚여 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에이, 시시해~' 하기가 십상일 언론플레이만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쯤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운명에 빠진 세자(임슬옹)에 대해서라든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의술을 펼치는 최원(이동욱)에 대해 왈가왈부가 좀 나와줘야 하는데, 그러기는 커녕 의도적인 기획사의 기사이거나, jyj의 준수가 부른 ost말고는 화제성이 없으니, 제작진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하다.

 

 

첩첩산중의 사건들, 어찌 풀어낼꼬

드라마 <천명>에서 가장 두드러진 스토리는 내의원 민도생의 살해와 그 용의자로 도망자의 신분이 된 최원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 뒤에는 대비인 문정왕후와, 그의 소생이 아닌 오랜 기간 세자 신분으로 아픈 중종을 대신해 정사를 돌보고 있는 이호의 대립이 있다. 여기에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겠다는 직접적 욕망이 두드러지지만, 그 이면에는 후에 인종이 될 이호를 옹립하는 대윤과 문정왕후의 아들을 옹립하고자 하는 소윤의 외척간의 갈등, 나아가 을사사화의 원인이 되는 권신내부의 권력 독점에 대한 쟁투가 깔려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문정왕후를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는 악녀처럼 묘사하면서, 자신의 핏줄로 대를 이으려는 전형적인 왕가의 세습을 둘러싼 갈등으로 하나의 축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에 반해, 후에 인종이 될 이호를 조광조 이래 끊임없이 정권에 도전하다 희생된 아직은 재야 세력에 불과한 사람 세력의 일원이라는 개혁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으로 캐릭터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렇게 내의원 살해 사건의 실질적 배경은 권력 혹은 왕좌를 쟁취하기 위한 쟁탈전이다. 거기에 최원은 엄한 희생양이 된 것이고, 희생양에 걸맞게 아픈 딸이 있다는 비극적 요소가 강화된 사연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러기에 <천명>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궁중 내부의 권력 쟁투와, 최원의 도망, 혹은 의술, 그리고 사연이 평형이 된 시소처럼 팽팽하게 진행되어야만 드라마의 제목처럼 <천명>의 주제가 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명>은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요리 경험이 없는 요리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준비한 것처럼, 저렇게 복잡한 구도에다가, 임꺽정이 몸담고 있는 흑석골 도적패의 이야기를 덧붓이고, 궁녀 홍다인의 개인사에, 최원과 홍다인, 그리고 흑석골의 소백의 삼각관계 까지 얹었다. 어디 그뿐인가 양념처럼 이정환의 무대뽀 캐릭터에 최원 동생과의 로맨스까지. 아니다. <허준> 뺨치게 극적인 최원의 의술 깜짝 쇼도 종종 빼먹지 않고 등장한다. 정치에, 궁중 암투, 의학, 로맨스, 추격까지, 사극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천명>에서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부페에 가서 이것저것 잔뜩 집어 먹었는데 헛배가 부르고 뭘 먹었는지 모르겠는 것처럼 70여분 동안 한 바퀴 휭~ 돌면서 많은 일이 일어났음에도 보고 나면 뭘 봤는지 모르겠다. 기사에선 송지효가 이중첩자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지도 모르겠고, 세자는 손을 부들거리며 고뇌하는데, 그 고뇌가 다가오지도 않는다. 심지어 최원은 번번히 사건의 중심에 서는데, 뭐 어찌 또 도망가겠지 싶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만 <뿌리깊은 나무> 와 <천명>

여기서 뜬금없지만 <뿌리깊은 나무>란 드라마를 거들떠보자.

이 드라마에서도 <천명>처럼 권력을 둘러싸 심오한 담론도 있고, 권력 내부의 암투도, 거기에 배경이 되는 재야 세력의 도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추격씬도 만만치 않았고, 러브 스토리도 빠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가 <천명>과 전혀 다르게 시청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던 것은 <추노>를 통해 연기력 하나는 인정받은 장혁 보차도 연기를 못해보이게 할 만큼, '우라질!' 욕설 한 마디로 압도해 버린 세종 역할의 한석규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적할 만해 보이는 정기준 역의 윤제문이 있었다. 사실 <뿌리깊은 나무>가 말하고자 했던 담론은 상당한 사상적 지식을 요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 배우들의 연기는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기본적 주제를 충실히 전달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천명>의 한계는 안타깝게도 욕심껏 내지른 스토리를 끌고나갈 힘있는 배우들이 없다는데 있다. <천명>이란 드라마을 시청하다보면,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 김유빈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눈밑까지 시커멏고, 얼굴을 누르끼기한 아이가 잘 보이겠다고 이정환(송종호)의 신발을 닦아주는데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그런데 어쩌랴, 유빈이가 주인공이 아니니.

<천명>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부각된 주인공은 최원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드라마를 뒷받치고 갈 사람은 세자 이호이다. 이호는 끊임없이 도망을 치고 드러나는 의술로써 드라마를 이끌어 가지만, 세자는 자신의 신념과 왕권 사이에서 고통받는 젊은 개혁가의 모습을 그려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임슬옹의 연기는 노력은 가상하나 수준인 것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세자의 클로즈 업을 자제해 주셨으면, '나 연기해요'라는 임슬옹의 연기를 보느라 손발이 남아나질 않으니까)

주인공 최원도, 세자 이호도, 모두 연기를 못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시청자들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킬 내공은 없다는데 한계를 드러낸다. 적어도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특히나, 세자의 경우, 조금 더 내공있는 배우가 문정왕후 와의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면 아마도 <천명>이 조금 더 재밌지 않을까 라며 자꾸 드라마를 보면서 욕심을 내게 만든다.

그나저나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산더미에, 배우들 연기는 그럭저럭이니, <천명>이야 말로 1등을 해도 등두릴 여유는 없어 보인다.

by meditator 2013. 5. 17. 10:26

올가을 은퇴 공연을 앞둔 패티김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대 공중파와 케이블의 두 방송에 출연했다. 바로 kbs2의 <이야기쇼 두드림(이하 두드림)>과 m.net의 <음악 이야기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이하 숲)>이다. 더구나 <숲>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 mc가 되어 아트스트를 초대해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이야기쇼로 15일이 첫 방송이었다. 하지만 <두드림>도 mc진이 조영남, 김구라, 조우종, 조주희로 mc진이 개편되었지만, 수요일 11시대로 시간을 옮겨 방송된 건 처음이니, 나름 개편된 첫 방송이나 다름없다. 은퇴를 앞둔 거장 패티김을 모신 두 방송은 어땠을까?

 

 

 

 

<두드림>; 김구라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아침 방송 분위기 어쩔거야!

제 아무리 부인을 해도 <두드림>에겐 원죄가 있다. 바로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어 왔던 전통의 프로그램 <추적 60분>을 주말로 밀어내고, 꿰어 찬 그 자리에서 그 이상의 성과를 내어야 하는. kbs2는 개편을 통해 <추적 60분>의 자리를 변경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와야 할 프로그램으로 처음 오르내렸던 것은, 일요일 밤의 <드라마 스페셜>이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두드림>이 수요일 밤을 차지하고 들어 앉았다. 물론, sbs의 <짝>과, mbc의 <라디오 스타>가 시청률의 수위를 다투고, 상대적으로 보도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이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각해낸 고육지책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결과, 수요일 밤 시청자들은 kbs2를 틀거나, mbc를 틀어도 똑같이 연예인 누군가가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신변잡기식 토크 프로그램을 봐야할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주말 밤 11시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vs. <추적 60분>이란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률 확보를 위한 맞불작전이라지만, 볼모가 된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은 어느 곳에서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두드림>을 신변잡기식 토크 프로그램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제작진들은 반기를 들 수도 있겠다. 다양한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시대의 청춘들과 교감을 나누는 프로그램이 <두드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한창 유행하던 '멘토링' 프로그램을 본따 만들어진<두드림>의 초창기 방식일 뿐이다. 오글거리던 어쨌든 멘토가 나와, 짧은 강연을 하고, 그에 이어 mc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은 그래도 형식적이라도 '멘토링'의 모양새를 갖추어 보였다. 더구나, 영화감독 이해영, 가수 김c 등의 mc는 이질적이었지만, 각자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로써, 틀에 박힌 멘토링을 벗어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왔었다.

그런데, 새로 바뀌어진 <두드림>은 나름 구색을 맞추느라 출연자가 자신의 강점과 약점 등을 제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지만, 그 내용은 그 예전 이상벽이 진행하던 아침 프로나, 조영남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과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푸근하지만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은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 그나마 멘토링이라는 <두드림>의 일말의 미덕마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시간들이다.

복귀한 강호동의 무르팍 도사도 안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늘어진 런닝같은 분위기의 <두드림>으로 수요일 밤의 시청률을 노려볼 수 있을까?

 

 

<숲>; 아티스트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

<두드림>을 통해 패티김의 이혼이야기, 유방 이야기, 외국 가서 싸운 이야기를 설레발치는 조영남의 오버 액션을 통해 뻔하게 듣다가, 선배 패티김에서 봉여름가을겨울을 지나, 후배 조현아에, 기타리스트 박주원까지 어우러진 <숲>으로 채널을 돌리니, 이게 바로 아티스트를 제대로 예우하는 방송이 아닐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한 사람의 가수가 과거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접근하는 방식은 그가 한때 얼마나 이뻤으며, 잘 나갔는가를 후일담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역사를 함께 즐기는 것이다.

<두드림>이 장황하게 외국 공연의 후일담을 줏어 담는 시간, <숲>은 이제는 보기 조차 힘든 패티김의 첫 번째 앨범, 붉은 LP를 걸어 놓고, 차근차근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어보았다. 명작은 시간의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듯, 그 예전 종이에 또박또박 연필로 글씨를 쓰는 듯한 LP의 음색은, 비록 텔레비젼이라는 또 다른 매개를 통해서였지만 충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뿐만이 아니라, 출연자 패티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은 한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에 <두드림>과 <숲>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두드림>이 한때 잘 나가던 왕년의 가수라는 느낌이 더 진하게 다가온 반면, <숲>의 마지막, 김종진의 눈물에서 하염없이 흐른 눈물처럼 이제는 추억이 되어갈, 하지만 끝내 명작으로 남을 전설의 아티스트의 시간이 공감되었었다.

교훈은 굳이 이러이러하다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가슴을 울리는 교훈, <숲>의 첫 회가 우리에게 남겨준 멘토링이었다. 또 다음의 감동의 멘토링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3. 5. 16. 08:13

불과 1년 여전 4.11 총선에 나선 김용민을 지지한 동영상을 계기로, 10여년 전 두 사람이 함께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막말로 인해 김구라는 당시 모든 방송 활동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물러남에 대해 세간에서는 김용민을 잡기 위한 포석이라는 둥, 10년 전 19금 인터넷 방송 아니냐, 그래도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등 갑론을박 많은 시시비비가 오고 갔지만, 김구라는 마치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기라도 한듯 모든 활동을 중단했지요.

그리고, 자숙과 소리없는 봉사로 참회의 시간을 보내던 김구라가 슬슬 케이블을 통해 복귀의 시동을 걸 무렵,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공중파에서 그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자, 김구라란 mc의 캐릭터가 두드러진 <라디오 스타>에 언제 복귀할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었습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mbc의 김재철 사장은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했고, 여저히 그의 원죄로 인해, 김구라의 공중파 복귀는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부터 불과 반년이 지난 지금, 김구라는 그가 나올 일은 없을 거라던 <라디오 스타> 대신 <화신>의 mc자리를 꿰어찼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kbs2의 힐링 프로그램<이야기쇼 두드림>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mc도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원래 그가 했던 <화성인 바이러스>는 물론, tvn의 <현장토크쇼 택시>에서는 운전대를 잡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썰전>에서 정치, 연예 비평의 양대 코너를 유유히 이끌어 가는가 하면, 금요일 밤 tvn의 <더 지니어스>에서는 들었다 놨다하는 두뇌 플레이로 여러 사람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월요일에 <현장 토크쇼 택시>, 화요일에 <화신>에 이어, <화성인 바이러스>, 수요일에 <이야기쇼 두드림>목요일에 <썰전> , 금요일에 <더 지니어스>까지, 아버지로 인해 방송 활동을 하는 어린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던 김구라가 맞나 싶게, 케이블과 공중파를 1주일 내내 종횡무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구라가 복귀와 함께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라디오 스타>가 그를 목놓아 기다렸듯이, 그리고 그가 없는 <라디오 스타>가 웃기기는 하지만, 어딘가 각본에 의해 잘 짜여진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바로 그 지점에 있을 듯합니다.

그 스스로 '변칙 파이터'라고 평한 것이 어울리게 김구라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메뉴얼이 아니라, 그 상황을 치고나가는 임기응변으로 예외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mc입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오늘에 충실한다'는 그의 좌우명은 그가 자신이 속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의 것을 뽑기 위해 좌충우돌 돌진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심지어 이경규조차 김구라에게는 그가 언제 자신의 말을 방송에서 이용해 먹을 지 몰라 함부로 말을 못한다고 할 정도로, 방송의 재미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스타일입니다. 꼭 몸을 던지지 않더라도, 방송의 재미를 위해 저런 거 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은, 새롭게 단장한 <화신>의 출연자 봉태규의 '이런 것도 해요!'라는 놀라움에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돌직구'가 인기를 끄는 세태에서, 호불호가 분명한 김구라의 스타일은 보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시원하게 해주는 카타르시스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주는 스타일이지요.

 

돌아온 김구라가 전과 다른 지점은,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하 것이든, 이전에는 <세바퀴>나 <붕어빵>등을 통해 보편적인 mc로서의 색깔을 유지해 갔었다면, 복귀 이후에는 <현장 토크쇼 택시>, <썰전>, 그리고 <더 지니어스>, <화신>에 이르기까지 그의 색깔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선택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현장 토크쇼 택시>나 <화신>은 <라디오 스타>의 변형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현무나, 신동엽, 혹은 김희선 등은 워낙 자신들의 색깔이 두드러져 누군가와 어우러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화신> 첫 회에서 쉽게 친해질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벌써 김구라는 마치 현대 음악처럼 불협화음 속에서 묘한 시너지를 발휘하듯, 그 누구와도 자신의 색깔을 놓지 않은 채 새로운 재미를 뽑아 내고 있습니다. 그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조용남과의 어울림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이유도, <더 지니어스>의 모래알 같은 출연자들 사이에 묘하게 이합집산을 만들어 내는 능력도 알고보면 김구라의 숨겨진 '친화력(?)'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복귀 이후 김구라의 영역에서 가장 큰 발전(?)을 보인 것은 바로 정치, 연예 비평 프로그램 <썰전>입니다. 과연 김구라가 아닌 그 어떤 mc가 이 양자의 영역에 걸친, 비평 프로그램을, 예능적 성격을 살려가며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강용석이란 대한민국 대표 나쁜 놈이었던 사람에게 캐릭터를 만들어 주고 그의 색다른 면을 발견해 주었으며, 밋밋한 이철희 소장조차 강용석의 대항마로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은, 그저 제작진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라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통일 등 가장 심각한 정치적 사안에서부터, 정치인 개개인의 뒷담화까지 다양한 영역을 자유자재로 끌어낼 수 있는 mc가 김구라 말고 누가 있을까요? 이 독보적 영역에서 김구라의 활동은 능력만 있다면 때는 다시 온다는 <화신>에서의 멘트처럼, 그 이전의 김구라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김구라의 재발견이 되었습니다.

 

그 예전 중국의 '와신상담('거북한 섶에 누워 자고 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이르는 말)이란 고사처럼, 칩거 기간 동안 자신이란 칼을 다듬고, 한껏 벼려진 칼로 이전 보다 더 다양한 김구라란 mc의 아우라를 펼쳐내고 있는 중입니다. 단지 우려가 되는 것은, 그 예전에도 과하다 싶은 활동으로 세간의 싫증을 불러와 미움을 더 사지 않았나 싶었듯이, 이번에도 복귀다 싶으니까, 월화수목금토일을 채우는 활발한 활동이 또 한번 김구라란 메이커를 평범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by meditator 2013. 5. 15. 10:02

장규직(오지호 분) 팀장은 이미 계약 해지가 결정된 정주리(정유미 분)의 일을 부장님(김흥수 분)께 한번 더 간청하겠다고 하는 무정한 대리(이희준 분)을 말리며 말합니다. '안그래도 고과장님을 회사에 잔존하게 한 것 때문에 부장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는데, 정주리씨 일까지 문제를 일으키면 찍힌다'고.

이렇게 무정한 대리처럼 이름과는 다르게 모든 일을 '정'에 이끌려, 무정한 대리식 표현에 따르면 살면서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을 흔히 조직 내에서는 '온정주의자'라고 하지요. 조직 내에서 무능의 상징으로 손가락질 받는 '온정주의'지만,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또 다릅니다. '情(정)'을 광고 캐치프레이드로 내건 모 제과 회사는 중국에서 까지 대박이 났다지요.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걸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었던' '情(정)도 이젠 말해야 한다며 광고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무능력하다며 술 취해 자조를 내뱉던 무정한 대리의 온정주의 덕분에, 그리고 거기에 마음이 울린 미스김 덕분에 모처럼 정이 넘친 회사가 된 <직장의 신>은 시청률이 떨어졌구요. 착한 캔디에서 권력을 향한 악녀로 돌변한 장옥정의 시청률 상승과 대조적이게도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情(정)보다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인가 봅니다.

 

(사진; e스타)

 

1위인 <구가의서>의 뒤를 바짝 쫓던 <직장의 신> 시청률이 전회(14%) 대비 0.9% 하락, 13.1%를 기록했습니다(닐슨 코리아). 반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전회(8%) 대비 1.2% 상승했네요. 그러데 재밌는 건, 지난 주 고과장님의 명예 퇴직 사건이 벌어진 회차에서도 <직장의 신> 시청률은 떨어졌습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기에 현실적으로는 당연히 짤리는 계약직 정유미씨와, 만년 과장 고정도 씨가 동료 직원, 그 중에서도 특히 미스 김의 발군의 노력을 통해, 기사회생하는 미담이 보기 껄끄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비현실적인 신파처럼 다가왔겠죠.

그렇다면 <직장의 신>을 왜 보는 걸까요? 모 정당이 '을'을 위한 정당이라고 당의 슬로건 내걸듯이 갑과 을로 고착화된 사회에서 능력자 을인 미스 김을 통해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는 그 '페이소스'를 즐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마치 샌드백을 대신 두들겨 주듯한 쾌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스 김이 눈물을 흘리고, 갑과 을의 관계를 넘어 사무실의 사람들이 '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환타지를 넘어 비현실로 다가와 재미가 적어졌겠지요. 그러면서 거침없던 미스 김 대신에, 마치 점이라고 찍고 나타나듯이, '다 부숴버리겠어!'라고 덤비는 장옥정으로 리모컨이 돌아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비정규직의 연명을 부장님과의 유도 대련 한 판으로 해결한다는 설정은 어이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진짜로 어이없는 것은 계약직 매니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정주리씨의 계약 해지 사안이지요. 그런데 현실에서 정주리씨와 같은 일을 비일비재하게 겪는 우리의 뇌는, 어느 틈엔가, 정주리씨의 계약 해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유도 한판으로 그녀의 계약 해지가 취소된 일만을 비합리적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원작의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유도 대련 한 판으로 오고갈 만큼 보잘 것 없는 계약직의 생명줄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능하다고 자책함에도 불구하고, 미스 김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한 무정한 대리의 자세입니다. 계약직 정주리 씨가 회사를 떠난다고 할 때 무심하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모든 사무실 사람들이 아쉬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래 저러면 짤려' 라며 정주리의 퇴사를 인정하듯이, 사무실 사람들도 그저 안타까워 할 뿐이었지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해서 정주리를 위기에 몰아넣은 무정한은 무언가를 할 수 없었음에도 동아줄을 잡듯 애타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런 그의 노력이 누군가인, 미스 김의 마음을 돌려놓아, 정주리씨를 회사에 머물게 해주었습니다. 영웅은 꼭 영화관에서 주인공 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만 나타나주는 게 아닙니다. 갑을 컴퍼니 와이장의 영웅 미스 김을 불러온 건 무정한 대리의 '온정주의' 였습니다. 어쩌면 사회를 개혁시키는 과건은 분노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에 개봉할 영화에, 칸 영화제 심사위원 수상작인 <엔젤스 셰어The Angels' Share>가 있습니다. 여기서 엔젤스 셰어란, 위스키를 발효시킬 때 사라지는 1%로, 사회 부적응자 청년 네 명의 좌충우돌 성공 스토리를 통해 사회의 하층 1%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취지를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직장의 신>의 정주리씨와 고정도 과장의 스토리의 또 다른 우리 사회의 엔젤스 셰어와 같은 이야기 아닐까요? 정에 호소한다. 온정주의다 하지 말고, 무정한 대리처럼, 우리가 조금만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본으로써 마음을 연다면 어쩌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천사의 몫이지만, 노력하면 사람이 만들 수도 있다고, 영화처럼 <직장의 신>도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파라 외면하지 말고, 한번 마음을 열어보자구요.

by meditator 2013. 5. 14. 09:36

kbs2의 주말 예능 <맘마미아>는 4월에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불과 한달 정도된 이 시기에 mc를 맡고있는 샤이니의 민호가 물러난다고 한다. 이유는 해외 공연 스케줄.

무슨 해외 공연 스케줄이길래, 불과 한달전에는 예측할 수도 없었던 일일까? 샤이니의 소속사 sm은 그만큼 주목구구식으로 일처리를 했기에 생각지도 못한 스케줄이 갑자기 생긴 것일까? 그도 아니면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버거워서 못하겠다는 것인가?하지만 어떤 이유를 댄다해도, 불과 한 달만에 프로그램의 mc자리를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엄밀히 <맘마이아>란 프로그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마도 다른 만만한 기획사 사람 같았으면 '찍혔다'느니, '퇴출'이란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찍히기는 커녕? 후임이 '규현'이란다. 아니, 그 자리는 SM 아이돌들 전용석이었나?

 

 

그런데 방송가에서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MBC의 <라디오 스타> 역시 군대에 간 '슈퍼 쥬니어'의 희철 대신에 규현을 영입했다. 이번에도 규현? 이 친구는 SM에서 제일 만만한 땜빵 전문 아이돌인가?

현재 공중파 예능만을 놓고 봤을 때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정적으로 활약하는 아이돌 중 SM 소속 아이돌의 숫자가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다. <라디오 스타>의 슈퍼주니어 규현, <우리동네 예체능>의 동방신기 최강 창민, <맨발의 청춘들>의 슈퍼쥬니어 은혁, 그리고 물러난다고 하는 <맘마미아>의 민호까지. 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예체능>의 경우, 다루는 게임 종목에 따라 게스트가 바뀌는데, 탁구를 할 때는 샤이니의 민호에, 이제 볼링에 최시원까지, SM 아이돌들이 단골이다. 더구나, 이들 중 두 프로가 SM의 방계 회사, SMC&C에 소속된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강호동을 비롯해서, 신동엽, 김병만, 김수로 등 다수의 연예인들을 영입하고 있는 SMC&C의 상황을 볼 때 앞으로 시청자들이 텔레비젼을 통해 더 많은 SM 아이돌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면 놓아졌지 낮아지지는 않을 듯하다.

 

까짓 거 능력있는 기획사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기 소속사의 아이돌들을 끼워넣는 게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고, 굳이 예능이라고 해서 문제가 될 게 있냐 할 수도 있겠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아이돌 한 두 명 들어가는게 예삿일이 된 상황에서. 하지만, 그래도 그게 정도가 있는 것이지, 저렇게 대놓고 대물림까지 하는 상황은 좀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재벌집 자제라 하더라도 대놓고 큰놈 앉았던 자리에, 작은 놈 앉히는 이런 일을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하다못해 상속을 해도 눈치껏 상속세라도 낸다. 그게 아니면 법정에 서거나, 지탄을 받는 세상이다. 어떤 '상속'의 댓가가 오고가기에 예능 MC자리를 대놓고 대물림할까?

작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일반 고등학교였다. 그런데 워낙 특성화 고교로 아이들이 몰리다 보니, 작은 아이가 입학 할 때 이과 중심의 특성화 고교로 전환을 했다. 순진한 엄마는 설사 그렇다 해도 문과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지는 않겠다는 학교 측의 말만 믿고 문과인 아이를 그 학교에 보냈었다. 그런데 웬걸, 학교 측에서 이과 학생들에겐 온갖 외부대회나 실험 실습 기회를 제공하며 이른바 입학 사정관제를 위한 스펙을 쌓아주고, 그것도 모자라,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문과 학생들을 제물로 내신까지 이득을 챙겨주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고의 평범한 성적으로는 현 대학 입시의 변칙적 입학 사정관제란 시스템을 뚫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없으니까.

JTBC의 <썰전>에서 3대 기획사 아이들을 평가하며, SM아이돌들을 이런 특성화 고교 아이들과 같다고 했다. 학교에서 알아서 공부시켜주고, 스펙 쌓아주며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해주는. 그렇게 어른들이 챙겨주는 학생들이 쌓은 스펙으로 대학을 여유만만하게 갈 때 순진하게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피해를 입듯, 거대 기획사의 압도적 영향력 틈에서 또 어떤 mc꿈나무가 스러져 갈 지 모를 일 아닌가.

 

1박2일을 통해 국민 남동생의 이미지를 쌓아 드라마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승기가 어쩌면 예능에 진출하고 있는 SM아이돌을 비롯한 대다수 아이돌들의 이상형일 수도 있겠다. 더구나, 샤이니의 민호나,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처럼 드라마에서 '발연기'라며 혹독한 비난에 직면했던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장대한 포석이 아니라도, 이제는 저물고 있는 아이돌의 시대에, 나이가 들어가는 아이돌들의 재취업이 시급한 과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입학 사정관제 조차 불공적이라 낙인찍혀 없어질 것이 분명한 즈음에서, 공공재인 방송에서 대놓고 불공정 거래가 있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3. 5. 13. 09:47

<불후의 명곡2>가 100회를 맞이했다.

100회를 맞이한 <불후의 명곡2>는 전설로 '들국화 형님'들을 모시고, 2회에 걸쳐 하동균, 김동욱, 박재범, 유미 등이 출연해 그들의 노래를 헌정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처음 <불후의 명곡>이 시작되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첫 방송을 하던 2011년 6월은 mbc의 <나는 가수다>의 인기가 여전하던 때였다. 그러니 당연하게 말이 선배 가수를 모셔다 놓고 그들의 노래로 경연을 벌인다고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자신의 노래가 아닌 걸로 경연하는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이 달라보이지 않았었다. 그게 그건데 선배 가수를 앞에 모셔다 놓은 것이 오히려 어줍잖은 꼼수처럼 보이기 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20113년 5월, 신드롬까지 불러 일으키며 이 사회를 흔들어 놓았던 <나는 가수다>는 온데간데 없고, 아빠와 아이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반면 짝퉁이라 욕먹으며 시작하던 <불후의 명곡>은 시즌 1은 걸쳐, 시즌2로 넘어왔고,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이끌어 가던 mc중 한 명인 김구라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구성으로 폭발적 인기는 아니지만 토요일 저녁의 고정 시청자층을 가진 터줏대감이 되어가는 중이다.

 

(사진은 헤럴드 경제에서)

 

100 특집 대기실에서 가수들은 오늘 '출연자 면면을 보니 오늘은 '나가수'대 '불우의 명곡' 같다며 우스개 소리를 해댄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때 <나가수>를 통해 인기를 누렸던 '더 원', '김동욱', '바비킴'등이 이젠 자연스레 <불후의 명곡>에서 사랑받는 가수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가수>출신이 그들이 <불후의 명곡>에 나오는 것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분명 처음 <불후의 명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융성에 발맞춰 또 하나의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을 도입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관객 판정단의 점수에 따른 승과 패가 가려지기도 하고. <나는 가수다>는 이제는 대중들의 시선에서 조금은 벗어난 기존 가수들이 탈락이라는 벼랑에 몰려 절박함을 노래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져 사회적 이슈를 끌었고, 역설적으로 그 '서바이벌'의 비장함이 출연진의 고갈과, 승리를 위한 천편일률적인 편곡으로 대중들의 싫증을 불러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장수를 누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얼핏 짝퉁처럼 시작된 <불후의 명곡>은 프로그램을 거듭하면서 <불후의 명곡>만의 색깔로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갔다. <불후의 명곡>에서는 무대 위에 올라가서 벌이는 경연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경연 후 mc 신동엽의 야릇한 코멘트를 곁들인 선배 가수의 후일담과, 후배 가수와의 교감도 프로그램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100회 특집에서 출연한 가수 들이 또 하나 <나가수>와의 다른 점이라고 꼽았던 것처럼, <불후의 명곡>은 대기실에서의 가수들끼리의 즐거운 어울림이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한때 <나가수>에 출연했던 가수들이 이것이 바로 <나가수>와의 차이점이구나라며 무릎을 쳤듯이, <불후의 명곡> 대기실은 서바이벌에 나서는 절박함 대신 동료 가수들이 어울려 무대 위와는 또 다른 한판 예능의 잔치가 벌어진다.

처음 나오는 가수의 긴장감도, 실제로 친구 사이인 전혀 다른 장르의 가수들도, 혹은 때로는 핑크빛 연서를 전해질 것같은 로맨스까지, <불후의 명곡> 대기실은 바로 예능으로서 이 프로그램의 색깔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당연히 자신의 실력을 자부하는 가수로써 무대 위에 나간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1승 이상을 노리지만, 무대 위에서 내려온 그 순간, 긴장을 풀고 빵을 앞에 둔 채 모창에 뒷담화까지 하면서 마지막까지 함께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이다. 시작은 서바이벌의 모방이었지만, 이제 <불후의 명곡>은 마치 명절날 어른들 모셔 놓고 대청 마루에선 정중하게 절을 드리고 뒷방에 모여선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동기들끼리 히히덕 거리던 우리네 잔치 분위기를 고스란히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100회 특집 들국화의 전설을 노래하는 시간, 첫 출연자는 5년 만에 텔레비젼에 나온 하동균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 전주에는 더 포지션의 임재욱도 오랜만에 화면에 얼굴을 비췄다. 뿐만 아니라 숨겨진 재야의 고수로 요즘 화제가 되었던 r&b의 귀재 문명진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도 바로 <불후의 명곡>이다. 처음엔 <나가수>와 차별성을 가지려고 기존 가수와 아이돌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을 이슈로 내밀었던 <불후의 명곡>이 회를 거듭하면서, 진짜 노래 잘하는 좋은 가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저 춤 잘추는 아이였던 박재범이 이젠 등장하기만 해도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매력덩어리로 재탄생한 것도, 알리라는 이름이 가창력의 보증수표가 된 것도 바로 이 <불후의 명곡>이란 무대에서 이다. 실력만 있다면 대중들의 환호와 사랑을 받을 가능성을 언제든 열어 놓은 것이다.

또한 기존 가수와 아이돌만이 아니라, 정성화 등 처럼 당대 최고의 뮤지컬 가수들의 카리스마 있는 무대를 접할 수 있는 것도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1승 2승이 중요한 것이 아닌, 언제든 나와서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낸 <불후의 명곡>만의 결실이다.

by meditator 2013. 5. 12. 10:48

'취미가 뭐예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 당신은 대답할 말이 있을까?

대한민국 남자들, 그 중에서도 중년 즈음의 남자들을 기가 막히게 해부하기로 평판이 자자한 김정운 교수는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의 취미는 '정치'라고 정의내린다. 그런데 이게 안쓰럽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만 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야근을 밥먹듯이하며 돈을 버느라 번듯한 자신의 취미 생활 하나 가져보지 못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그저 가능한 취미라는게 정치인들 보면서 씹어대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선 기간 동안 종편의 시사 토크 프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렬한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데 중년 남성들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죽어라 학원만 보낸 젊은이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심지어 그 아이들은 야구도, 줄넘기도 학원에서 배운 세대다. 이 아이들이 자투리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게임 정도다.

늙수구레한 아버지는 맨날 텔레비젼을 끼고 침을 튀기며 누군가를 욕하고, 아들 녀석은 방문 꽉 잠그고 눈이 벌개져서 화면 속의 누군가를 쳐부수고, 살아오면서 취미를 만들 시간도, 여유도 없는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취미다.

 

혼자 사는 사람은 좀 다를까?

하지만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드러난 독거남들의 사는 모습도 대한민국 평균에서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이미 바이크를 타거나, 배드민턴,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이성재나 김광규, 노홍철 회워님도 있지만, 취미가 누워서 자기(혹은 쉬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태원이나, 취미에 대한 미션이 주어지자 그때부터 무얼할까 고민하는 멤버들을 보면, 그들도 대한민국 평균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취미를 떠나서, 젊은 시절 서울로 상경한 이래 십 여년을 쭈욱 혼자 살아왔던 데프콘이 할 수 있는 음식이 '계란 후라이'라는 사실은 취미 이전에, 혼자 살아내기의 열악한 생존 과정을 슬쩍 엿보게 되는 듯해, 비감하기 까지 했다. 크림 소스는 싫어하는 알고보면 상당히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인 그가 집에서 먹는 식사는 3분 카레에, 계란 후라이, 컵라면이라니. 덕분에, 그의 취미 생활의 결과인 스파게티는 그 어느 음식보다 성대한 만찬으로 보였다.

 

 

 

어떤 게 취미지?

그가 등장하기만 하면 언제나 빵빵 웃음을 터트려주시는 김광규 회원님은 이번 취미 미션에서도 예외없이 영어배우기를 선택해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반치 않았다. 그런데 이분의 영어 취미 생활 선택 이유는 웃기지만은 않다. 전직 택시 운전사 시절부터 항상 그를 자신없게 하는 영어, 즉 자신의 컴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한 투자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취미가 맞나?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 생활 이외의 시간에 자신을 투자하는 것 중에 많은 것이 외국어 습득이란다. 그런데 직업이 연기인 김광규 회원님이야 좋게 봐서 취미라고 할 수 있지만, 직장인들에게 외국어 습득은 '승진'이나, '전직'을 위한 '방과후 학습'이나, '과외'같은 항목에 더 어울리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건 그저 재밌거나, 즐기자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취미 생활하면 빠짐없이 들어가는 외국어 배우기, 여전히 학습 컴플렉스에서 놓여나지 못한 대한민국 현실의 편린이다.

 

10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는 자기계발로 영어를 배웠다. / MBC방송화면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앞에서 대한민국 남자들 운운한 김정운 교수의 취미 중 하나는 만년필 모으기란다. 신상 만년필을 자랑하는 그를 유치하다 비웃는 동년배들에게 오히려 김정운 교수는 니네들은 좋아하는 거라두 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텔레비젼을 끄고 하다못해 만년필 나부랭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모으기라도 해보라고. 어린 시절 새 우표를 사서 행여라도 손자국이라도 날까 조마조마하며 우표첩에 끼워 넣던 그 마음을 되살려 보라고 충고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서도 돈없이 취미 즐기기라는 미션이 등장했었다. 그때 멤버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한강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새삼 자신들이 생활에 치여 손쉽게 할 수 있는 그 좋아하던 것조차 생활에 치여 하지 못하고 사는 자신들의 삶을 반추했었다. 반면 <나 혼자 산다>는 각자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미션 자체가 더 부각된다.

하지만, 삶의 반추든, 무엇을 즐기고자 애쓰던, 대한민국에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삶의 조건이 선행이 되어야 한다는 건 두 말 하면 입 아픈 전제이겠다

by meditator 2013. 5. 11. 10:01

요즘 사회면에 날마다 이슈가 되는 기사 중에 **우유와 관련 기사가 있다. 50대 대리점 점주에게 재고를 넘기다 못해 막말까지 해대서 물의를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점주는 이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녹음을 했고, 인터넷에 올려 대중에 회자가 되면서 **우유 불매 운동에, 본사 압수 수색까지 사건은 확장 일로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당연히 막말을 한 30대 본사 영업 사원은 해고가 되었다.

여기서 막말을 한 30대 영업 사원은 정말 나쁜 놈이라서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대리점 점주에게 대리점 계약까지 들먹이며 막말을 해댔을까? 단지 그 영업 사원 한 사람의 해고로 불을 끄려던 사건이 본사의 불매 운동으로 퍼져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은 그가 그저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왜, 멀쩡한 사람이 위아래도 없는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12회까지 진행된 <직장의 신>을 보고 있노라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그 본성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가 만들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직장의 신>이 처음 시작되었을때 이름마저 장규직인 장규직은 천하에 간 쓸개도 없는 전형적인 회사 딸랑이로 그려졌었다. 비정규직들을 '언니'라고 부르며, 니들은 3개월이면 사라지기때문에 이름을 부를 가치조차 없다고 일갈하며, 비정규직인 '미스 김'이 자기 보다 잘 난 것을 못견뎌 하며 폭주하는 마케팅 영업부 팀장 장규직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나쁜 놈'이었다. 반면, 그와 동기이지만,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가족처럼 잘 지내보자고 하고,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덮어주려고 애쓰며, 직원들 하나하나를 감싸안으려는 마케팅 영업 지원부 '무정한 팀장'은 당연히 좋은 놈이었다.

그런데, 선악의 구도가 분명해 보이던 드라마가 중반을 들어서면서 <직장의 신>은 사람들의 선입관과는 조금 다른 변주를 시작한다. 그 싸가지 장규직이 알고보니 대학 시절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집안의 몰락을 겪은 사람이요, 이제 다시는 어머니의 시레기 된장국을 먹지 못해 눈물 흘리는 사연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 무식한 싸가지였던 장규직의 인간적 면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심지어 이제는 미스 김을 좋아하는 무정한과 삼각 구도를 이루는 것이 전혀 빈정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직장의 신>은 대표적인 악역처럼 보였던 장규직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무실의 병풍같던 고정도 과장의 역사와, 톰과 제리같던 정규직 구영식과 비정규직 박봉희의 사랑 이야기까지 그저 조직의 일원일뿐인 그들의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다른 드라마 같으면 대사 몇 마디 하며 지나쳐갈 조역들조차 어느 틈에 <직장의 신>에선 사람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 좋아 보이던 무정한 팀장이 한때 전투 경찰로 복무하며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기억을 통해 <직장의 신>은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가 속한 조직에 의해 얼마든지 나쁜 사라이 될 수 있다고. 사원 체육 대회에서 박봉희의 임신 사실을 알고 축하는 커녕 윗선에 알려야 한다고 방방 뛰던 장규직, 포장마차에서 왜 일부러 씨름을 져줬냐는 질문에 회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악역이 필요하다고 애잔하게 말하는 장규직의 모습은, 이제 선의에 의해 정주리를 돋보이려고 기획안을 그녀의 이름을 올렸던,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정주리의 생명줄과도 같은 비정규직의 그 자리 마저도 빼앗게 되는 결과를 낳은 무정한의 결단과 겹쳐지면서, 조직적으로 '나쁜 갑'을 조장하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예전 어른들의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있나? 세상이 나쁜 놈을 만드는거지'라는 그 말씀처럼.

 

일본의 유키지루시 유업이 불매 운동을 통해 파산한 사례가 언급되면서, ** 기업의 불매 운동이 확산되는 것이라던가, 최근 <무한 도전>을 통해 방영된 무한 상사 정준하의 해고가 많은 공감대를 얻어가거나, <직장의 신>이 생각 외로 다수의 공감을 얻으며 선전하는 것처럼, 뿌리깊은'갑을'의 문제가 자조적 회한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해결해 낼 힘을 얻어가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의 정주리 해고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지, <직장의 신>의 또 다른 화두를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3. 5. 8.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