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6층에서 '인간의 조건'의 연출 신미진PD와 출연자 6명(김준현 박성호 허경환 양상국 정태호 김준호)은 환경부로부터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환경부가 이날 '인간의 조건' 팀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것은 1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등 방송을 통해 친환경 생활 방식을 전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이렇게 환경부의 감사패까지 받은 것처럼 지금까지 <인간의 조건>이 수행해 왔던 미션들은 휴대폰, 텔레비젼, 컴퓨터, 자동차, 쓰레기 등 그 존재만으로도 환경에 대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과제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조건>은 '공익'과 '힐링'이라는 힘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 없이 살기'라는 부정적 미션은 그 화제성과 파급성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인간의 조건>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던 프로젝트이지만, 또 그만큼 단 1주일만에 미션 완료, 그리고 횟수로는 4회에 한해 방영되는 내용으로 인해 순환은 빠르지만 소재 고갈의 우려가 예측되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인간의 조건>은 그간 해왔던 '환경 프로젝트'와 같았던 파일럿을 포함한 3번의 미션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본격적으로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기 위한 '돈없이 살기'란 프로젝트로 방향을 전환했다.
돈없이 산다?
생각해 보면 그 옛날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김삿갓이 울고 갈 만큼, 마시는 맹물조차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돈 없이는 숨조차 쉬기 힘들 것같은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대한민국에서 돈 없이 살라니, 이게 가능한 미션일까?
다른 때와 다르게 아침부터 거하게 삼계탕을 먹인 제작진은 미션이 돈없이 1주일 살기라며여섯 멤버의 지갑을 강탈해 간다. 그리고 단 10분의 시간을 주면서 김준현의 결혼 준비 등 돈없이 사는 1주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란다. 심지어 자신들의 직업, 즉 개그 등을 이용한 돈벌이도 안된다고 못까지 박는다. 개인의 자동차는 이용할 수 있으되, 기름은 남아있는 거에 한해서만 가능하단다. 엄밀하게는 그간 자신이 벌어놓은 돈, 혹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없이, 홀홀단신으로 날품팔이로 돈을 벌어가며 살아가는 1주일이다.
이제는 척 하면 척!이라고 거저 주는 밥을 먹으며 혹시나 돈?이라며 예상했던 멤버들도 막상 정말 돈없이 1주일을 살라고 하자, 누가 목이라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한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당장 돈없이 어디를 갈 수 있겠으며, 무엇을 먹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덜컥, 허경환은 당장 다음 날 부산까지 가야한다고 하고. .
<인간의 조건>의 멤버들이 '~없이 살기'의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은 이제 제법 사이클을 그린다. 처음에 적응기, 그 다음에 가장 낮은 차원의 유치한 미션 모색기, 그리고 과제에 천착해 가며 본격적인 미션 수행기의 순서로.
언제나 미션 과제가 주어지면 ~ 없이 살기란 과제가 적응이 안되 머뭇거리며 멤버들은 그 과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당장 내일 허경환이 부산을 가야 했지만, 김준현 등은 지인이 부쳐 준 간장 게장만 껴안고 '난 이거만 있으면 돈 없어도 돼'라며 여유를 부린다. ~없이 살아가는 삶에 현실성을 쉽게 인지해내지 못한달까? 돈이 없으면 먹을 수도, 다닐 수도 없는데, 걱정은 늘어지지만 그간 자신의 삶의 리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가 하면 당장에 돈이 급한 상황을 가장 원시적으로(?) 돌파해 나가려고 한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던 자판기앞에서 혹은 철봉대 밑에서 동전 찾기처럼 말이다. 이제는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서 놀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른 체 놀이터의 흙더미를 뒤진다.
야무지게 물물교환을 노리거나, 유명인의 사인을 받아 한 몫을 잡아보려고 해보지만 성과가 눈에 보이진 않을 뿐더러, 그게 돈이 되기까기 기다리기엔 배가 너무 고프다. 돈이 없다는 건 13시간 만에 밥술을 떠넣게 되는 절실한 궁핍의 현실태이니까.
돈이 없이 사는 미션은 그 이전의 미션과는 다르게 난제이다.
핸드폰이나, 쓰레기나, 자동차는 '환경'이라는 눈에 보이는 분명한 주제가 보였다. 반면 '돈없이 산다'는 것을 분명한 과제를 제시함에도 그저 돈이 없다는 것 이상, 그저 돈을 벌기 힘들다는 것 이상의, 돈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규명해 내야 하는 철학적 미션이다. 또 막상 개그맨이란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외한 무언가로 돈을 벌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미션을 위한 미션, 그저 개그맨들의 아르바이트 해프닝으로 귀결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함정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미션을 통해 돈 없이도 살아가는 1주일을, 그것을 통해 '돈'의 의미를 천착해 낼 수 있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간 공익성 환경 프로그램의 틀을 벗고, 본격적인 '인간의 조건'으로서 자기 활로를 넓혀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려운 과제임에도 긍정적 신호가 보이는 것은, 그간의 미션을 통해 여섯 멤버들의 생존 지수가 한결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럼없이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는 여섯 멤버들은 허경환의 부산행을 개인의 과제가 아니라, 서로가 힘을 모아 해결해 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어렵게 번 돈을 흔쾌히 넘겨준다. 자동차 없이 살았던 1주일의 경험이 자연스레 자신의 차를 놔두고 함께 차를 이용하는 카풀로 이어지고. 돈을 아끼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는게 낯설지 않다. 왕발통을 이용하듯 물물교환을 생각해 낸 김준호 특유의 잔머리나, 한없이 다림질을 하며 재생종이를 만들듯 한 시간여를 놀이터에서 헤매며 20원을 찾아내는 양상국의 뚝심도 여전히 프로그램의 잔재미를 준다.
이 여섯 멤버의 시너지 속에서 모색된 '돈없는 생활의 맛'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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