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미션을 눈 앞에 두고, 늙을 때까지 한 20년은 할 꺼 같다던(이윤석) <남자의 자격>이 97번째 미션만을 마친 채 사라졌다. 총성없는 전쟁터와 같은 일요 예능에서 아저씨들의 예능으로 4년 여의 '흥망성'을 거치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예능에 피격되어 이제 드디어 '쇠'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8년을 했던 예능도 자막으로 사라지는 비겁한 세상에서 <남자의 자격>만큼은 출연했던 멤버와 그를 지켜봤던 시청자들에게 마무리 예우를 해줌으로써, <남자의 자격>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소중하게 지켜주었다.

당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길 원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생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한다. 지난 몇 주 <남자의 자격>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는 듯했다.

 

'회자정리'라고 삶의 유한성은 우리로 하여금 시시때때로 뜻하지 않는 이별을 조우하게 만드는데, 그런 흔한 이별임에도 익숙한 무엇과 헤어짐은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분명 언제부터인가,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았음에도 막상 이 프로그램이 <아빠, 어디가?>에 밀려 침몰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막연한 분노가 느껴졌고, 막상 마무리를 한다니 서글프다. 아마도 한때는 익숙했던 그 무엇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멜랑콜리한 감정이요, 또 한편에서는 최고령 버라이어티를 자부했던 성은 다르지만 동년배의 고군분투가 역사의 한 켠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쓸쓸함이겠다.

그런 막연한 아쉬움과 쓸쓸함을 뒤로 한 채 <남자의 자격>은 씩씩하게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는 시한부 환자처럼 그동안 이 프로그램과 함께 했던 101명의 사람들을 만나 지난 날을 회상하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날며 그간 고마웠다고, 사랑했노라며 외치며 종영의 슬픔을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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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회의 마지막, 김태원은 자신의 편지를 낭독한다. 그는 말한다. <남자의 자격>이 한 편의 아름다운 어른들의 동화였다고.

되돌아 보니, <남자의 자격>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지막 회의 회고에서 밝혔듯이 개그계의 수장이었던 이경규는 그가 오랬동안 몸담았던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방출되어 그 직업을 계속 할 수 있을 지 여부가 불투명했고, 김태원은 자신의 말처럼 아름다움을 그저 자신의 속에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저게 예능이 될까 싶게, 당시 잘 나가던 왕비호를 제외하고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보이던 오합지졸 아저씨들이었다. 게다가 태도라고는 거리에서 쉽게 만나는 그 아저씨들처럼 꼼수에 대충에 늘어지기가 십상이었으니.

 

그런데, 이제는 시청자들이 뻔해졌다고 그래서 시시해졌다고 말하는 4년이 흐를 동안 그 아저씨들은 용케도 뻔하지도 시시하지도 않은 많은 걸 해냈다.

마라톤에, 철인 3종 경기의 극한의 스포츠에서, 몸짱에, 금연의 자기 극복 과정은 물론, 자격증에, 합창단에, 창극까지 무수한 영역에 도전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태원은 암이라는게 밝혀져 수술을 받게 되었고, 천하의 이경규는 자신이 '공황장애' 환자라는 사실을 고백할 시간을 얻기도 했다. 김봉창으로 불리던 김성민 등 여러 멤버가 오고 갔으며 9개월을 함께 한 주상욱과 김준호가 열정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함을 그 누구보다 아쉬워하며 마지막을 함께 하게 되었다.

 

김태원이 어른들의 동화라고 말한 바로 그 날 <드라마 스페셜>은 정말 '동화처럼'이란 제목의 4부작 드라마를 완결 시켰다. 동화처럼 하지만 알고보면 동화 속 주인공들이 온갖 희로애락의 과정을 거치듯이,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하던 주인공들은 결국 다시 조우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추억되는 <남자의 자격>은 헤어짐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던가,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남자의 자격>은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듯싶다.

by meditator 2013. 4. 8. 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