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sbs월화 드라마 야왕은 언제부터인가 하류의 복수를 보게 되는게 아니라 오늘은 또 주다해가 어떤 걸로 한 껀(?)을 하게 될까? 그녀의 악행을 기대하며 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분명 하류는 주다해의 악행을 저지하게 위해 전력투구하지만 언제나 주다해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처럼 하류의 복수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업그레이드 된 욕망을 위해 악행을 업그레이드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의 악행은 대통령후보 조차 그럴듯 하게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한낱 백학 그룹의 비리 뒷처리나 하던 석태일 변호사는 미래 창조당의 대통령 후보로써, 그것도 후보를 단일화하여 대선에 나서게 되었다.

3월 19일,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모색하려 했으나 벽에 부딪치게 되자, 석태일은 주다해를 닥달하고 주다해는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로 석태일을 진정시키고, 그 길로 백학을 찾아간다. 그리곤 용돈을 받으러 왔다며 백도경이 자신을 찔렀던 사실과, 백창학이 그의 매제를 살해해 자살로 위장했단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으로 50억을 뜯어낸다. 50억은 골프 가방에 나누어 담긴 채 미래 창조당에 전달됐고, 석태일이 당의 후광을 업고 단일화하여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데 밑거름이 된다.

그런 뒷거래를 알게 된 석태일의 딸 석수정은 아버지를 찾아가 절규한다. 이런 분이 아니지 않냐고, 자신의 이름을 '수정'이라 지은 것처럼 당당하고 깨끗한 분 아니셨냐고? 하지만 그런 우문에 석태일은 정치란 것이 그런 것이라고 현답을 내린다.

 

이전에도 석태일-백학의 커넥션을 통해 정치란 것이 돈, 이른바 정치 자금이 없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기업인의 커넥션이란 게 불가피한 것이다라는 <야왕>의 설정은 시청자들이 이미 수많은 실제 사례를 통해 확인했던 사실이니 새삼 덧붙일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드라마 상에서 이면에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석태일이라는 후보는 변호사 출신의 딸 조차도 오해를 할 정도로 청렴결백한 야당의 정치인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그는 대선 과정에서 '단일화'를 통해 야당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그런데 그 과정이 보여지는 것과 달리, 오로지 '돈' 에 의한 것이라는 게 드라마 <야왕>의 결론이다. 정치인의 색깔, 그가 내건 슬로건, 그가 하는 정치적 행위, 이딴 공적 행위는 쇼고, 결국 이면에 흐르는 돈이 핵심이며, 그런 돈의 커넥션을 위해서는 협박 정도 일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과 상자로 배달되는 돈은 순수한 '협찬(?)' 정도로 딸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건 주다해가 자기가 죽인 전남편의 집을 찾아가 돈을 요구할 정도의 악행을 눈깜짝 하지 않고 저지른다는 것이지만, 시청자들이 그 과정을 통해 암묵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것은 정치 = 돈이라는 교리이다.

 

 

 

더구나 얼마 전 선거 과정에서 야당은 대선 후보 단일화라 과정을 겪었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어렵게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 시켰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에게도, 후보를 넘겨준 사람에게도 좋은 평가만을 남기지는 않은 채 대통령을 여당의 후보에게로 넘겨 주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겪은 지가 얼마되지도 않아서, 이제 드라마에서, 야당의 대통령 선거 과정을 들먹이며, 마치 돈만 있으면 대통령 후보 단일화쯤이야 하는 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하필 하고 많은 사안을 놔두고, 돈을 가지고 단일화라니! 드라마의 내용상 굳이 '단일화'라는 걸 내걸지 않아도 됐는데.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설정을 통해 주다해의 악행을 설명하고자 했지만, 마치 얼마전 구설수에 올랐던 조선시대의 명장 이순신을 주말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으로 써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굳이 가져다 쓰지 않아도 될 정치적 사안을 들먹임으로써, 실제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을 담보해 냈던 과정을 지극히 '세속적인 딜'의 과정으로 폄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건 흔히 술자리에서나, 택시를 타면 만날 수 있는 정치에 대한 세속적인 편견, 까짓 결국 돈이야 라던가, 누가 돈을 덜 써서 그랬대라던가, 스폰까지 들먹이는 구설들의 연장 선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정작, 이번 선거를 결정지었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어설픈 피해의식이 불러온 섣부른 결론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주다해의 악행의 도구로 쓰인 '석태일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씁쓸하다.

by meditator 2013. 3. 20. 11:29

이중석의 숨겨진 재산이었던 100억이 넘는 금괴와 돈이 드디어, 이차돈(강지환 분), 아니 이강석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십여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그에게 잃었던 기억을, 그의 일가를 몰락시킨 장본인이 지세광(박상민 분)임을 숙지시켜준 채 세상을 떠났다. 죽은 박휘순(이차돈의 모) 앞에서 지세광은 자기 아버지의 원수 갚음은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돌아온 이강석의 복수는 이제 시작되었다.

 

 

지세광 카르텔에 대한 복수의 묘미

지세광은 이제 현직 부장 검사이다. 그리고 그를 눈감아 주었던 검사는 이제 검찰총장이 되었고, 은비령과의 스캔들을 덮어준 기자는 뉴스 앵커가 되었다. 한때 멀리했던 애인 은비령은 이제 상호신용금고 이사장을 넘볼 경제계의 주요 인사이다. 지세광을 중심으로 한 이들 네 사람의 제휴, 혹은 동맹은 고담시의 투페이스에 좌 캣우먼, 우 조커의 악의 완전체라도 되는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 악의 근원을 제시한다. 그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검찰 총장의 권력과, 부장 검사의 법과, 안젤리나의 돈과 고호의 언론이 그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간다. 몰려다니며 쏙닥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의 위상과 어울리지 않게 우스꽝스럽지만 그런 모의의 결과는 한 사람의 목숨을 쥐락펴락 할 만큼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에서 지세광 카르텔의 무시무시함은 배가된다.

따라서, 이차돈, 아니 이제는 자신이 이강석임을 자각한 이차돈의 복수는 이차돈 개인, 혹은 그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일가에서 비롯된 사적 복수이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입시켜 마치 그의 복수 행위가 '홍길동'의 의적 행위라도 되는 양 통쾌함을 느낀다. 이차돈이 아버지의 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물품 창고 앞에서 눈이 빠져라 이강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지세광 일행에게 한 방을 먹이는 과정은 <돈의 화신>을 줄곧 시청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처럼의 통쾌함을 느끼는 순간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론, 잊지말아야 지점은 이차돈이 현대판 의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가진 것 없는 지세광의 아버지를 이용해 먹고 죽어가도록 놔둔데 대해 지세광이 그의 지식과 벌률적 권한을 이용해 이강석의 일가를 무너뜨렸듯이, 이제 다시 이차돈이 사고의 트라우마로 좋아진 머리를 이용한 지적 행위와 변호사라는 대한민국에서는 꽤나 통하는 직능을 통해 복수의 사슬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가 복수를 통해 이 사회의 상징적 부패와 악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과 별개의 또 하나의 진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상징적 '악'들의 소거에서 법은 거들뿐, 사적 복수가 동인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정의'와는 '먼' 대하민국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진실이다.

 

 

 

강지환 화이팅

강지환이라는 배우는 세간의 사람들에게 그닥 좋은 인식으로 받아들여진 사람이 아니였다. 이제 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7급 공무원>이라는 영화를 제외하고는 팬이 아니고서는 그의 필모가 뚜렷하게 기억될 작품도 없었을 뿐더러, 그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었던 것은 그의 출연작 기사이기 보다도, 그의 소속사 문제로 불거진 여러 사건, 사고 기사에서 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의 화신>이라는 작품에 캐스팅이 된 이후에도 그런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주인공이 바뀌니 마네 하는 구설수의 주인공이기 까지 했으니, 드라마를 통해 조우하게 된 강지화이란 배우에게 굳이 따스한 눈길을 주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뻔한 얘기지만, '배우는 연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고 강지환은 <돈의 화신>이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개 이유를 설득해 내고 있는 중이다.

<돈의 화신>이란 작품은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진중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밀고가는 반면, 오로지 주인공만 상황에 따라 널을 띠며 캐릭터의 편차가 심하다. 어린 시절 부잣집 독불장군이던 이강석이 기억을 잃고 고아원의 천재로 자라나 신참 검사가 되어 나타났을 때, 이차돈은 어린 시절과 전혀 다르게 경박하기가 이를 데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얄팍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천박할 정도로 돈을 좋아하면서도, 어머니인 박희순의 석방을 위해 애쓰고, 선배 검사인 지세광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순수함도 놓치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검사직을 쫓겨나 돈을 위해 박희순을 찾다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걸 알고 지세광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면서는 다시 이차돈의 캐릭터는 진지하다 못해 눈에 불꽃이라도 튈 정도가 되어야 하는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제 소복을 입고 곱게 머리를 올리고 '조선의 국모다'를 외치던 코믹 캐릭에서 부터, 전기 감전을 맞으며 어머니를 그리는 절규까지 극과 극을 오고가는 무거움과 가벼움을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차돈 역에 강지환 말고는 대체제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제작진이 굳이 물의를 일으킨 강지환을 기다리면서 까지 이차돈 역을 맏겼을 때, 의문 부호는 강했지만 한 드라마에서 마치 손바닥 뒤집듯 변해가는 캐릭터를 그게 마치 원래 자신이었던 것처럼 연기하는 배우를 보면서, 그리고 그런 이차돈이란 캐릭터에 상당 부분 드라마의 색깔을 의지해 가는 <돈의 화신>이 지금까지는 꽤나 긍정적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지환'이란 믿음이 생겨난다

by meditator 2013. 3. 18. 09:52

'국민 가족', '국민 아빠', 국민 할아버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종편 드라마임에도 10%를 상회하고, 공중파 드라마를 '제낀' <무자식 상팔자>가 대단원의 막을 내려간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날 없다'는 속담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안호식 하아버지네 아들 삼형제와 그 가족들은 종영을 하루 앞둔 회차에서까지 아롱이 다롱이 저마다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다. 그래도 보는 시청들은 '사는 게 다 저렇지, 저 정도면 행복한 거야' 하며 푸근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끝나고 리모컨의 꺼짐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마법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섬뜩하다. '아, 우리에겐 저런 가족이 없구나!'

 

김수현 작가에겐 '대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다. 전성기의 작가들조차 일주일에 두 번 방영되는 피 말리는 방송 스케줄에 눌려 등산복을 자주 입었다 벗었다 하는데도 일흔이 넘은 김수현 작가에게 '드라마가 산을 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드라마에 '출연' 하는 밥상의 반찬 하나하나 까지도 섬세하게 '팁'을 제시한다는 무시무시한 '전설'까지 전해질 정도로 김수현 작가의 작품의 완성도는 이른바 '수미일관'의 모범적인 예이다.

 

뿐만 아니라,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트렌디'하다. 그저 인기를 끄는 젊은 배우들이 젊은이들의 삶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일찌기 70년대부터 시대를 앞서가는 혹은 그 시대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 이혼, 성공, 사랑, 그리고 이제는 동성애, 미혼모 문제까지- 담론들을 드라마를 통해 용기있게 제기하고 해결방향까지 제시하는 시의성을 담보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중파의 많은 드라마들이 '재벌'과 그의 재산, 그리고 그에 얽힌 인간 관계와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제를 붙잡고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반해, 김수현 작가는 '노익장'이라는 호의적 표현이 무색하게 당대성을 담보해 내는데 있어 그 어떤 젊은 작가보다도 '트렌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OLD'하다. 그것은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서 제기된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가족을 통해 해소되는 '가족 화해주의' 혹은 '가족 제일주의'로 회기되기 때문이다. <무자식 상팔자>에서 의지가지 갈 곳조차 없던 알바생 수미는 마치 '민며느리'처럼 안호식 할아버지네 가족의 일원으로 어우러져 들어간다. 심지어 그녀를 잘 본 누나는 그녀에게 방통대를 가라고 하고, 할아버지는 장학금을 하사하신다. 엄마는 도망가고, 외숙모한테 눈칫밥을 얻어먹던 고아나 다름없는 수미는 그녀 특유의 싹싹하고 밝은 성격으로 그녀에 대한 선입관을 눈 녹듯 논게 만들고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히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뭐 나쁘냐고? 아름다운 가족애 아니냐고?

그런데 상상해 보자. 만약 수미가 싹싹하지도 밝지도 이쁘지도 않았다면? 그녀에게 그런 행운이 데굴데굴 굴러 왔을까? 언뜻 보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속 사회 문제들은, 가족이란 속에서 용해되고 화해의 길을 걷곤 한다. 하지만 한편에서 보면, '잘난' 수미처럼 결국 '지 할 탓', ' 지 복 탓'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미혼모가 된 소영을 받아들이고 울타리가 되주는 가족이 없다면, 아니 애초에 소영이 대법원 판사까지 지낸 고학력의 미혼모가 아니라면? 대기업 이사까지 지낸 희명의 노년은 씁쓸하지만, 그가 아내에게 1억을 타내기 위해 넥타이까지 들먹이며 하는 자살 소동은 해프닝에 불과할 뿐이다. 퇴직금 남은 걸로 사업하다 들어먹고 진짜 한강 대교를 걷는 그 절박함은 안호식씨네 가족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거기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겨도 비밀이 없이 모두가 알 듯, 결국 '가족'들이 나서서 걱정해 주고 해결까지 해주니까. 그리곤 말한다. '뭐니뭐니 해도 가족이 최고야!'라고 . 그런데 어쩐다. 텔레비젼을 꺼진 우리 사회에는 그런 가족이 없다. 2년이 넘도록 '왕따'를 당해도 의논할 수 있는 가족이 없고, 혼자 아이를 낳아도 거둬줄 가족은 더더욱 없다. 1인 가구수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한 집에 살아도 가족들은 하루에 한 마디를 하기도 힘든데, 여전히 텔레비젼 드라마는 '가족'이 최고란다. 모든 문제는 '가족'이라면 풀 수 있단다.

 

얼마 전 우리 지식 사회에 '피로 사회' 신드롬이 불었었다. '피로사회'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책 제목으로,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는 한 개인, 한 개인을 원자화시키고, 그 각자의 성과로만 한 인간을 판단함으로써, 사회적 피로가 누적되다 못해, 우울증과 공황 장애등이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얇은 팜플렛에 가까운 이 책자가 신드롬이 될 정도라는 건, 그만큼 그 내용이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젠 연예인들이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 더는 수치나 낙인이 아닌, 공감의 대상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그래서일까? 최근 인기를 끌었던, 혹은 인기리에 방영되는, 영국 드라마 <셜록> 그리고, 그것을 미국판으로 옮긴 <엘리멘트리>를 보면, 주인공이 사회적 부적응자(소시오패스)이거나, 그로 인한 병리적 현상(약물 중독자)을 겪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그를 옆에서 돕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동거인'이거나, '약물 중독 치유사'이다. 그건 비단 드라마 뿐만이 안다. 베스트 셀러 [빅픽쳐] 저자의 또 다른 책 [위험한 관계]를 보면 위험에 빠진 미혼모를 도와주는 것은, 사회적 시스템에 따른 아동 보호사요, 변호사지, 가족이 아니었다. 이렇게 저쪽의 드라마 혹은 문화에서는 개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사회적 제도를 통해, 혹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데, 우리 나라 문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사회적으로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가족'을 붙잡고 늘어진다. 한때는 '엄마를 부탁'하더니, 이젠 그것도 모자라, '아빠'가 최고에, '가족'만이 최선이란다. 이혼율을 들먹일 것도 없이 우리 주변의 가족들은 급격하게 해체되어 가는데, 여전히 우리는, 우리 사회는 무슨 문제만 생기면 '가족'을 붙잡고 늘어진다.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문닫고 컴퓨터 하느라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혹는 저마다 바뻐서 늦은 저녁까지 누구하나 돌아오지 않은 거실에 엄마 혼자 앉아서 '무자식 상팔자'를 보며 행복해 하는 풍경. 굳이 매주 연재되는 한겨레의 쓸쓸한 '가족' 시리즈를 들먹일 것도 없이 대한민국의 가족은 더 이상 사회의 방탄조끼가 아니다.

 

'가족'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족이 우리 사회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원천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젠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 텔레비젼은 '가족'을 붙잡고 오매불망이다. 문제는 존재치 않는 이상적 가족이 아니다. 그런 과거 회귀적 문제 해결 양식에 매료되는 사람들의 취향이, 투표 같은 사회적 행위에서의 '퇴행성'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발전의 퇴행까지 낳게 되니,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3. 17. 09:52

강수진, 김미화, 지드래곤, 그리고 차인표, 거의 일면식이 없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최고, 혹은 제법, 그리고 한때 이름을 날린 네 사람이 제주도에 모였다. 이 이질적인 조합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48시간 '땡큐'가 될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 함께 하는 시간

동네에선 옆집 사람이랑도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않던 사람도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면 괜히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낯선 산장에서 이름 모르는 이들이 얼콰하게 어울려 너니내니 하면서 형제처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마력이리라.

15일자, <땡큐>는 발레를 시작하고 제대로 된 여행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는, 신혼 여행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며 아이처럼 설레여하는 현존하는 최고령의, 그리고 최고의 발레리나 강수진으로 문을 열었다. <땡큐>는 바로 이렇게 여행의 설레임에 들뜬, 새로운 이들을 만나는 긴장감에 달뜬 그 감정을 함께 공유하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함께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땡큐>란 프로그램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좁은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토크 프로그램이었다면, 아마도 첫 방부터 진부하다, 뻔하다는 평가가 나왔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해도, 물론 예능 프로에는 생소한 인물들이지만,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인 이상 뭐 그닥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기 십상이니까. '지드래곤'이 과거의 잘못을 자숙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이 오만했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과연 제주도 푸른 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나이많은 누님과 형을 위해 손을 떨며 요리를 한 다음이 아니었다면, 진실한 '공명'이 느껴질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제주도'의 푸르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짙은 먹빛의 바다와, 한없이 펼쳐지는 하늘, 그리고 대화의 배경이 되는 거대한 아쿠아리움에, 오붓한 저녁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외딴 집의 부엌들은 보는 사람조차 긴장의 끈을 늦추고, 여행지에서 정든 낯선 이의 사연에 귀 기울이듯 출연자의 토로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게 만든다.

 

 

 

 

 

주제가 있는 힐링

지금까지 파일럿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3회를 거쳐 온 <땡큐>의 가장 큰 장점은 우선 식상하지 않은 출연자의 조합을 들 수 있겠다. 첫 회 이 시대 대표적인 멘토 '혜민스님'을 비롯하여, 두번 째, 사진작가 김중만과 만화가 이현세에, 이제 세번 째, 강수진에 지드래곤, 김미화까지, 그 한 사람만으로도 '힐링 캠프' 2회분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는 출연진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존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함과 진지함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땡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저 중구난방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통 분모를 찾아내어, 하나의 주제로 프로그램을 끌고 간다. 아직 프로그램의 성격을 찾아가는 시기의 첫 회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땡큐>의 지향점을 찾는 시간이었다면, 늙수그레한 이현세와 김중만을 위해서는 '아버지'라는 주제를 끌어와,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리운 아버지와, 아버지가 되어가는 자신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풍부하고 깊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세번 째, 과연 강수진, 김미화, 지드래곤 이라는 이질적 조합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증을 자아냈던 <땡큐>는 그 주제로 '당신의 인생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제시했다.

한때 개그우먼임에도 불구하고 시사 프로까지 진행하는 저력을 내보이던 하지만 단 한 번에 그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일터에서 밀려나 3년의 시간을 보낸 김미화, 타의에 의한 김미화와는 다르지만 역시 단 한번의 실수로 무대에서 떠나 있어야 했던 지드래곤, 현존하는 최고의 발레리나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오랜 시련의 시간을 거쳐야 했던 세 사람에게서 <땡큐>는 시련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본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전혀 달랐던 세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하게 되니, 활동 영역의 차이, 나이의 많고 적음의 유무와 상관없이 공감대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에 끌려 들었고, 더불여 시청자들도 그들의 사연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돋보인 것은 MC격인 차인표였다. 최고의 배우는 되지 못했을 지 몰라도, 차인표로서 성실하게 살아낸 그의 삶이, 종교가 다르든, 나이가 많던 적던, 그 누구를 만나도 대화가 되고, 어우러질 수 있는 넉넉한 품새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땡큐>라는 프로그램을 여유롭게 이끌어 가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15일 방송에서도 보여지듯이, 강수진이라는 발레리나를 만나기 위해 실제로 주변 지인에게 부탁해 발레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떤가 알아보고, 강수진과 지드래곤의 책까지 읽어가며 만남을 준비해온 철저함이, <땡큐>라는 프로그램을 그저그런 토크쇼에서 출연자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결정적 견인차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3. 16. 09:20

200억 이란 엄청난 제작비로 홍보를 했던 <아이리스2>는 제작비가 무색하게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로 내리 시청률 하강 곡선을 탔다. 심지어 한 자리수에, 꼴찌까지 찍었다. 그러던 <아이리스2>가 남과 북의 갈등이 본격화 되면서, 또 사라졌던 남주인공 정유건(장혁 분)이 돌아오면서 조금씩 나아질 기미가 보인다.

 

핵- 현실적 긴장감

씁쓸한 개그지만 세계에서 가장 액션 영화를 찍기 좋은 곳은? 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 이유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대치, 이 보다 더한 현실적 긴장감을 주는 스토리가 없으니까이다. 헐리웃 액션 영화들이 한 김 빠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동서 냉전의 해체였고, 그래서 요즘 헐리웃 액션 영화들은 하다못해 뉴욕 거리의 시위 군중까지 끌어다 악의 세력을 구축하고자 애를 쓰고, 그 중 단골로 등장하는 세력이 바로 '북한'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게 우리나라 제작자들일진대, 막상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북의 대치란 소재는 너무나 현실적이라 그럴까,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영화 <베를린>은 정권 교체기의 북한 지배층의 이권 장악 과정에서 희생된 스파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소해진 남북의 문화처럼,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생경한 북한 말을 외국어처럼 알아듣기 힘들어 했고, 북한 권력층의 음모를 헐리웃 영화 속 음모보다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제작진 측에서는 이 정도만 던지면 당연히 '응' 하고 맞장구를 쳐올 것에서 '??' 하는 반응이 오니, 난감할 수 밖에.

<아이리스2>의 경우는 드라마 속 상황과 현실이 엇갈려 현실감을 살려주지 못한 케이스이다. 사실 어느 액션 영화든, 드라마든, 퍼즐 맞히듯 딱딱 들어맞는 스토리는 충분 조건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호강을 시원하게 해줄 액션 요건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허술한 스토리는 욕하면서도 눈감고 넘어가주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데 <아이리스2>는 방영하자마자 허술한 스토리가 우선 도마에 올랐다. 그렇다고 액션 장면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건 상당부분 <아이리스2> 속 남과 북의 상태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리스2> 속 남과 북은 늘 대화를 하려고 하고 평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아이리스'란 테러 집단으로 이해 남과 북의 평화협상은 늘 엇물리고 방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요즘 날마다 텔레비젼 뉴스를 통해 보는 남과 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저쪽에서 '불바다' 그러면, 이쪽에서 '맞대응'하면서 장군멍군 위기감을 고조하고 있는데, 드라마는 한가롭게 평화 협정 어쩌고 하고 있으니, 그런데 거기에 음모 세력이라니, 남의 다리 긁는 거 같은 것이다. <아이리스2>의 북한 정부는 그렇다 치고, 남한 정부는 '햇볕 정책' 중이다. 그 정권 물러간 지가 언젠데. 그러니, 드라마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던 <아이리스2>가 14일 방영분에서, 핵이 등장하니, 드라마가 달라졌다. 기본적 관계는 다르지 않지만, 북한쪽에서 자기쪽 참가자들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핵 미사일까지 발사 강행을 하려고 하고, 거기에 대해 남쪽 역시 숨겨진 핵을 들먹이며 '딜'을 하니, 날마다, '핵무기 개발'을 코에 걸고 남한을 협박하는 북한다웠달까? 버튼 하나에 대한민국의 상당수가 초토화될 수도 있는 현실적 긴장감이 되돌아 왔달까? 물론 씁쓸한 현실감이다.

 

 

 

 

돌아온 주인공

남자 주인공 정유건이 총에 맞아 기억을 잃고 아이리스의 '켄'이라는 암살자로 활동하는 동안, <아이리스2>는 여주인공 이다해의 시점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이다해를 옆에서 흠모하는 또 다른 아이리스 요원 서현우(윤두준 분)의 시점에서 전개되었다.

안그래도 초반에 남여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충분히 무르익지도 그로 인한 정서상 공감대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남자 주인공은 사라지고 뜬금없이 또 다른 사랑이 등장한 것이다. 장혁도 고전했는데, 윤두준이라니!

아이돌의 문제는 비단 그들의 준비되지 않은 어설픈 연기력만이 아니다. 아이돌이 왜 아이돌인가? 특정 팬덤을 기반으로 한 특정 연령층의 스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저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사람들 눈엔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처음 보는 신인 배우이기가 십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배우가 남자 주인공을 대신해 어설프게 여주인공과 사랑 이야기를, nss내에서의 활약을 하는 걸 꾹 참고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바로 리모컨만 돌리면 조인성과, 주원이 대기하고 있는데.

그런 시청자의 반응이 수렴이 된 것인지, 아니면 스토리 상 그럴 때가 된 것인지, 이번 주 <아이리스2>는 드디어 장혁이 남자 주인공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추노>에서도 그랬지만, 장혁이란 배우는 고난 속에 피어날 때 배우로서 진가를 발휘한다. 안타깝게도 <아이리스2>가 초반에 반응을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배우로서 장혁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심지어, 그가 기억을 잃자, 주인공임에도 5분 정도의 존재감으로 빛을 잃기 까지 했다.

14일, 그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진 리에(유민 분)라면, 지난 주 지루한 수연과 현우의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리에와 유건의 이야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좋은 드라마는 주인공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드라마이다. 이제서야 빛을 발하기 시작한 장혁의 연기를 보면서,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by meditator 2013. 3. 15. 09:47

sbs의 드라마 <야왕>이 연일 상승세다. 물론 회에 따른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방영하기만 하면 1등은 '따논 당상'이라는 <마의>와 백중지세에 있는 드라마는 아마도 <야왕>이 처음일 것이다. '대물 야왕전'이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야왕은 2012년 오랜만에 복귀해 <옥탑방 왕세자>로서 작가의 저력을 확인시켜준 이희명 작가에 의해 새롭게 각색된 드라마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중심에 '악녀' 주다해가 있다.

 

 

대한민국 드라마의 성공 요소 제 1번, 확실한 악녀의 존재

kbs2 의 주말 드라마를 제외하고 인기를 좀 끌었다싶은 드라마치고 '악인 본색'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은 드라마가 거의 없다. 그나마 mbc의 낯을 살려주는 드라마 <백년의 유산>이 무엇인가? 여러 그럴싸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고부갈등이요, 거기서 '트러블 메이커'는 바로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무지막지한 시어머니의 존재요, 그녀의 자기 아들 사랑아닌가 말이다. 작년 최고의 시청률 <해를 품은 달>은 물론, 하반기에 꽤 반응이 좋았던 <착한 남자>, 그리고 심지어 케이블 일일 드라마임에도 인기를 끌었던 <노란 복수초> 조차 말도 안되는 악행으로 치달린 악녀가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인기 좀 끌고 싶다 그러면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절대 악녀'이다. 오히려 인기가 좀 있었다 싶은 드라마 중에 그렇지 않은 드라마를 찾는 게 더 쉬울 만큼.

그 옛날 이야기 속 팥쥐 엄마나, 장화 새엄마처럼 드라마 속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에 도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남성은 상식적이며 이성적인데 비해, 여성은 감정적이며 충동적이라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선입견에 충실히 따라, 드라마 속 여성들은 마치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그곳이 어디든 뒹굴고 절규하는 아이처럼, 씩씩거리며 자신의 것을 향해 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 속 남성들의 욕망이 소외받은 존재의 신분 상승을 통하 자기 실현이라든가, 가족의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라는 이성적 수단인 반면에, 여성들의 욕망은 대부분 빼앗긴 사랑, 빼앗긴 가족 속의 존재 라는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판단에 근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왕>의 주다해는 꽤 신선한 캐릭터이다. 주다해는 자신을 위해 헌신한 남자 하류를 버리고 성공을 위해 백산이라는 엘리베이터를 거침없이 올라타고, 외려 버려진 남자 '하류'가 그녀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버둥거리니, 이전 드라마의 남녀 관계가 역전이라도 된 듯하다. 하지만 18회까지 온 <야왕>의 주다해가 제법 그럴 듯한 욕망의 화신인가라고 질문을 던져 보면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저 그녀는 욕망의 에스컬레이션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패스'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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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명 작가의 장기, 악녀 홀릭

그간 이희명 작가의 작품들을 훑어보면,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에는 대부분 '내로라하는' 악녀들이 있었다. 천사의 가면을 쓴 채 엄청난 질투심과 야심을 분출했던 토마토의 디자이너 '윤세라(김지영 분)', 악녀로 인기를 끌어 주연급으로까지 성장한 계기가 되었던 <미스터 Q>의 황주리(송윤아 분), 그리고 최근작으로는 <옥탑방 왕세자>의 홍세나(정유미 분)가 있다. 이들 악녀들은 주인공 못지 않은 '포스'를 내뿜으며 드라마를 지배해 간다. 오죽하면 <옥탑방 왕세자> 당시 '세나의 난'이라고 드라마 시청자들을 뿔나게 할 만큼 <옥탑방 왕세자>를 이끌었던 것이 바로 홍세나의 악행이었다.

악녀의 악행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건 매력적이다. 조금이라도 지루해 지는가 싶으면 바로 리모컨으로 손이 가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악행만한 볼거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대부분의 악인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덮기 위해 또 악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으니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정작 주인공들이 이야기의 외곽으로 밀려나가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마치 이번에는 그간 조연으로 밀려나 속시원하게 펼쳐보지 못한 악녀 이야기를 맘껏 해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이희명 작가가 이번에 택한 것은 악녀가 주인공인 <야왕>이다.

그런데 그간 악녀가 이야기를 지배했던 모든 한국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악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야왕>에서 조차 속시원한 악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려지는 것은 그저 수없이 되풀이되는 악행뿐이다. 아이가 죽어도, 그래도 한때 같이 살았던 남자가 죽어도 잠시 눈물을 흘리고 다시 또 사건을 벌이는 주다해를 보며, 그녀가 또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까 궁금해지기는 해도, 굳이 대통령 영부인까지 넘보는 그녀의 욕망을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건은 있되, 그 속에 사람은 없달까.

<야왕>이란 드라마가 끝나고 주다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욕망의 화신으로 오래 자리 잡을까?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하루의 피로를 피튀기는 게임 한 판으로 날리듯, 주다해의 악행을 보며 던진 욕의 배설로 그저 끝나는 드라마이기가 쉽지 않을까. <해를 품은 달>이나 <착한 남자>를 이제 좋은 드라마로 기억하지 않듯이. 문제는 이런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면 끌수록 되풀이 되는 악행처럼,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문 악행에 의존한 드라마들만 양산된다는 사실이다.

by meditator 2013. 3. 13. 11:31

지난 주 데뷔 후 예능 최초 출연 한석규에 이어, 이번 주 15년 만에 예능 출연 이병헌까지, <힐링 캠프>가 연일 게스트 초청 자체로 홈런을 날리고 있다. 동시간대 시청률과 무관하게 이런 '대박' 게스트들의 출연은 두고 두고 화젯거리를 낳으며 <힐링 캠프>의 존재 가치를 올려줄 것이다. 그 예전 <무르팍 도사>가 그런 것처럼.

그런데 대통령 후보들을 비롯한 정치인들로 시작하여, 물론 영화 홍보라는 거시적 목적이 있지만 오랜만에 예능 나들이를 하는 연예인들이 많은 토크쇼를 놔두고 굳이 <힐링 캠프>를 찾아드는 것은 왜일까? 심지어 대통령 선거 기간 공평성을 운운하며 모 정치인들은 힐링 캠프의 출연을 소망하기까지 했다. 까짓 다른 토크 프로에 나가면 될 것을.

그건 아마도 <힐링 캠프>가 언뜻 보기엔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출연자의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한석규 편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듯이 게스트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 가능한 프로이기 때문이다.

 

 

무르팍 도사 vs 힐링 캠프

1인 게스트를 데려다 놓고 그의 사정을 들어주는 토크 프로그램으로는 <힐링 캠프>뿐만 아니라 <무르팍 도사>가 있다. 한때는 <무르팍 도사>의 출연자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강호동의 복귀와 함께 다시 돌아온 <무르팍 도사>는 해외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는 등 화제성 있는 게스트 모시기에 애를 쓰고 있지만, 늘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리고 이른바 '대박'급 게스트들이 출연하는 곳은 <힐링 캠프>이기가 십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은 강호동의 복귀 이후, mc 자체에 의존성이 높은 <무르팍 도사>의 mc 강호동이 예전 만하지 못하다, 혹은 너무 예전과 똑같다 라는 평가는 받고 있는 것이 <무르팍 도사>의 큰 딜레마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게스트들 입장에서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르팍 도사>가 고민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찾는다 하지만 대뜸 큰 소리로 호통부터 치며 게스트를 혼비백산시켜 놓고, 그 와중에 게스트로 부터 이른바 '뜯어 먹을 거리'를 뺏어오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해명해야 할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방식을 통해 속 시원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일 기회를 노리려고 하겠지만 굳이 그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게스트라면 장시간 강호동이란 '시베이라 호랑이'와 세 대결을 펼쳐야 하는 피곤함을 무릎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힐링 캠프>는 제목부터가 힐링이다. 그런데 그 '힐링'의 주체 역시 게스트이다. 무르팍 도사의 '고민거리'와 힐링 캠프의 '힐링꺼리'는 게스트가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하는 점에서 같다지만, 해명과 치유라는 서로 다른 과정을 거치게 되니, 게스트의 선택은 달라질 밖에. 더구나 무르팍 도사가 고민거리를 파고들면서 시청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데 치중한다면, <힐링 캠프> 이경규의 돌직구는 출연자가 자기 이야기의 봇물을 터놓게 하는 계기가 된다. 무르팍 도사가 따지듯 이것은 이것이 아니냐 하는 동안, <힐링 캠프>는 한혜진이 맑은 눈을 가지고 게스트의 이야기를 공감해 주며, 이경규는 연륜에서 우러나온 응수를 해주고, 김제동의 그 특유의 해석을 곁들여 게스트 토크의 품격을 더해준다. 그 과정에서 같은 이야기라도 무르팍 도사에서는 마치 법정의 자기 변호 같던 것이, 힐링 캠프로 오면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병헌 편에서 보듯이 <힐링 캠프> 측에서 준비한 질문은 그 옛날 '도너츠' 사건부터 '시계'까지 온갖 구설수들이 다 등장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더 센 것들이 등장할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무르팍 도사>처럼 강호동의 호통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하지 말아야 할 수위까지 이야기를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세간이 잘못 알려진(?) 이병헌이란 사람의 온전한 제 모습을 그려내는 데 그저 필요한 도구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알고보면 이병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보여주기 까지 할 것이다. 게스트들이 <힐링 캠프>를 찾아드는 매력은 그것이다. 최선을 다해 게스트들의 '힐링'에 복무하고자 하는 거!

 

 

 

힐링 캠프의 함정

이렇듯 그럴듯한 돌직구성 질문을 던지는 듯 하면서 게스트의 논리에 휘말려주는 <힐링 캠프>는 게스트를 한 사람으로 충분히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역으로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발목을 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병헌 편에서 보듯이 스스로 '재밌는 놈'이라고 자평한 이병헌은 위트가 넘치는 화술로 자신에게 씌워진 편견들을 하나씩 벗겨 나갔다. 중간중간 이경규나 한혜진이 슬쩍 다리를 걸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툭 돌부리에 걸려 깨금발을 한번씩 해보는 정도의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이병헌이 하고자 했던 말의 취지를 방해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그의 설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다보면, 한석규 편에서 드러나듯, 특히나 '거물급' 게스트들이 등장했을 경우,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사실 보다는 게스트의 입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만이 강조되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김래원 편에서 보여지듯이 그의 입장에서 말하는 첫사랑이 어느 한 편의 윤색된 진실로 전달되는 경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기본적으로 '힐링'이라는 목적을 가진 이 프로그램은 가학적으로 게스트를 몰아세울 수 없고, 애초에 그럴 의도를 가지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이성민'이나 '김강우'나, '김성령' 처럼 시청자들에게 상대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게스트들이 등장했을 경우에는 그리고 '홍석천'처럼 솔직담백한 게스트들이 등장했을 때는 게스트도 힐링이 되고, 시청자들도 힐링이 되지만, 정치인이나, 예능감이 뛰어난 게스트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요리하고자 한다면, <힐링 캠프>는 얼마든지 그들의 홍보용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담백한 속내이든, 의도를 가진 '포장'이든 시청자들은 그것을 같은 무게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포장이 진실로 전달이 될 수도 있고, 포장에 질려버린 누군가는 진실조차도 위선이라 오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3. 12. 09:52

얼마전 전 배우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박상아씨와 현대 그룹의 며느리가 된 전 아나운서 노현정씨가 외국인 학교에 자녀를 부정 입학시켜 경찰에 소환된다는 기사가 떴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인 삼성가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는 이재용씨의 아들이 명망높은 사립고에 사회적 배려자 전형으로 합격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실 휴지로도 쓸래야 찾기 힘든)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밥말아먹은 지배층의 '도덕적 아노미'의 전형적인 예로도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또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아홉을 가지고도 열을 탐하는 것이 우리나라 가진 사람들이라지만, '자식이 뭐길래? 교육이 뭐길래?' 저렇게 까지 '추접한' 행태를 보이나 싶은 생각도 든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란 캐캐묵은 슬로건은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 절박한 소망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 예전 줄줄이 알사탕으로 낳아 하나가 죽어도 그를 대신할 수 있는 또 다른 많은 아이들이 있던 그래서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던 무사태평의 시대에도 우리나라 부모들은 오로지 입신양명의 기회를 교육을 통해 찾았는데, 하나 아니면 둘을 겨우인 이 시대에 자식은 부모의 체면과, 성공과, 부의 '재생산'의 관건이 되었다. 그러기에 사회 지도층이던, 그보다 못한 사람들이던 자식의 교육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드라마 스페셜-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그런 학부모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드라마 스페셜-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을 상회한다는 강남의 유명 유치원을 배경으로 네 명의 엄마들의 씁쓸한 '고군분투'를 4주에 걸쳐 '옵니버스식'으로 담았다.

4회에 걸쳐 주인공으로 등장한 엄마들은 유치원 같은 반의 학부모들이며, 학기초 개원에서 부터 크리스마스 발표회까지의 기간을 각 엄마의 시점에서 서로 다르게 조명해 나간다.

처음 시작은 대기업 마케팅 팀장까지 했던 일에 있어서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 자신의 딸을 하나 유치원에 보내면서 유치원 엄마 들 중 '루저'가 되어 겪는 그리고 거기서 벋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아파트에 상대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그녀가 보기에 그녀가 어울리고 싶은 나머지 엄마들이 사는 모습은 '캐슬'이라는 강남 모 아파트의 명칭에 걸맞은 다가가기 힘든 스트레스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가 흥미롭게 전개되는 건 바로 그 성과도 같이 견고한 강남 '진골'들의 삶의 균열을 다루면서 부터이다. 거기다, 유치원에서 사라진 예지와 그 엄마의 미스터리한 스토리에, 크리스마스 발표회에서 사라진 도훈이까지, '스릴러'적 요소를 갖추면서 다시 매회 한 엄마 별 에피소드를 색다르게 변주해가며 구성의 묘미를 살려낸다.

그토록 공고해 보였던 잘난 엄마들의 '카르텔'이란 것도 서로의 이해가 엇갈린 순간,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눈꼽만치라도 해가 돌아올 것 같은 순간, 예지와 예지 엄마를 내치듯, 가차없이 밀어내 버리는 주먹 세계보다도 냉혹한 이해 관계였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엄마들은 그녀들이 자신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는 반추없이, 내 아이를 내 뒤로 감추듯 '나만 아니면 돼'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 과정에서 카메라는 빈번히 강남 최고의 유치원에서, 그리고 최고의 교육 환경에서 결코 행복해 하지 않는 아이와, 그런 환경에 끝없이 아이를 내몰며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를 비춰준다. 마치 '그게 최선입니까?'라고 질문하듯이.

제목이 역설적으로 말해주듯, 그리고 예지 엄마가 마지막에 결론을 내렸듯, 그 누군가가 그들의 잘못을 단죄하기 전에 엄마들은 자신이 쌓아놓은 '허영'과, '위선'의 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다. 그리고 하나 유치원을 가야만 이 사회의 1%의 카르텔에 선착할 수 있는 그 허상을 낱낱이 드러내고야 만다. 그리고 네 명의 엄마들은 결국 모두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로 밀려나든 유치원을 떠나게 된다.

 

 

 

청년층의 우울증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 추세에 있고, 평균을 훨씬 상회한 분포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어려서 부터 그저 공부, 공부만 하고 자라났던 세대이다. 공부만 잘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부모에게 교육 받은 세대이다. 종일반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세대이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88만원 세대가 되었다. 그러니 우울증이 안오겠는가? 그러니 지금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세대들은 더 죽자사자고 달려든다. 내 아이는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되겠다고. 드라마는 네 엄마들의 참회의 눈물로 끝이 났다. 어쩌면 그녀들의 삶은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을지 몰라도, 역으로 그녀들과 그녀의 자녀들은 행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기사에서 만난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한 교육 비리를 보면서 침을 튀기며 욕을 한다. 하지만 가만 뒤돌아 서 생각해 보면, 과연 나는 다를까 싶다. 모두가 내 아이 하나 잘 살게 만들면 땡! 이라며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세상에서.

by meditator 2013. 3. 11. 09:39

새로운 예능들이 등장하고 있다. <땡큐>, <행진>, <인간의 조건>까지, 과연 이걸 예능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싶게 다큐인지, 토크쇼인지, 아니면 그저 여행 프로그램인지, 애매모호한 정체성의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저 목마를 땐 뭐니뭐니 해도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이 제격이듯, 맹숭맹숭한 이 프로그램들이 주는 위안, 재미가 은근 만만치 않다.

 

저물녁의 리얼 버라이어티

잠자리를 두고 복불복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에 지면 입수를 해야 한다거나, 우리나라도 아닌 해외 야생에 맨몸으로 던져져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묘미였다. 물론 여전히 주말이면 아이들은 '런닝맨'을 보고, 어른들은 습관처럼 '1박2일'에 채널을 돌리는 집들도 있지만 새롭게 등장한 '아빠, 어디가?'의 도전으로 그 조차도 녹록치 않게 되었다.

'1박2일'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교체되어 살아남았지만 '남자의 자격'은 '박수칠 때 떠나게' 되었고, 새로운 돌파구였던 '정글의 법칙'은 논란의 도가니에서 '진정성' 확보에 고심 중이다. 물론 강호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리얼 버라이어티가 만들어 진다고 하지만, 예전처럼 강호동이라는 이름만으로 그 프로그램의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신자본주의; 무한 경쟁주의'의 대한민국에서 그간 가장 잘 어울리는 예능이었다. 설사 상대방을 속이는 무리수를 써서라도 승부의 레이스에서 살아남는 것, 게임에서 졌을 때 한겨울이라도 찬물 속에 들어가는 혹독한 벌칙을 수행하는 것, 그리고 맨땅에 헤딩하듯 야생에서 살아남는 것은, 한동안 '~에서 살아남기'가 아이들의 베스트 셀러였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삶의 리듬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오락 프로였던 것이다.

그런데, '무한 경쟁주의'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이제 지쳤다. 어찌어찌 어찌어찌 IMF는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도 세상은 여전히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직장인의 삶은 맨날 백척간두요, 명퇴 후에 차린 사업들은 3년을 넘기기 힘들었으며, 젊은이들에게 희망찬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조차도 시들어 버렸다. 그렇게 삶에서 지치고 나동그라진 사람들이 다시 텔레비젼을 통해 삶의 리듬을 복습하는 것은 버겁다. 그래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힐링'이요, 아이들 재롱 잔치다.

 

 

 

맹물같은 예능

일주일의 피로가 몰린 금요일 늦은 밤, 뭘 해도 '땡큐'라는 심심한 <땡큐>를 보노라면 어느새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존다고 해서, 이 프로그램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건 없다. 누군가 뒤로 꿍친 꼼수도 없으며, 복잡하게 꼬인 복선은 더더욱 없다. 그저 집을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곳을 둘러보고, 맛난 것도 먹고, 신기한 것도 체험하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낯선 곳의 정취에 홀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스님이 자신의 첫사랑을 이야기 하고, 30여년을 숨긴 자신의 학력에 대한 거짓말의 댓가를 토로하고, 서로 다른 세 자녀를 준 여인들에 대해 덤덤히 회고한다.

그리고 비록 촉박한 일정으로 서둘러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 놓아야 했지만, 국민 요정 손연재가 아닌, 20살의 삶이 버거운 새내기와 현역 최고령의 프리마돈나의,그리고 자신의 길을 살아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고단함도 접하게 된다.

색다르지도 않고, 마구 엔돌핀을 발산하는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 분위기에 젖어들다 보면, 언젠가 선배와 친구들과 함께 갔던 여행지의 밤에 타오르는 촛불 앞에서 눈물을 적시며 털어놓았던 내 속내와 닮아 친근하다.

형식도 오묘하다. 그저 여행지를 걷는가 하면 제법 예능처럼 함께 체조도 하고, 찬물 입수나 행글라이딩 같은 도전도 한다. 또 그러다 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 또 영락없이 토크쇼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다. 물론 '아버지'처럼 주제는 정해졌지만, 각자의 삶에서 우러난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니, 요즘 문제가 되는 '정해진 각본'의 걱정도 없다. 심지어 하나의 주제가 끝나고 나면, <땡큐 버스>처럼 손에 잡히는 구체적 결과물을 남기니,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에 동참한 거 같은 우쭐함은 옵션이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땡큐>에 적셨다 일어나면 '나도 아버지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며 엉킨 마음이 풀어지는 듯하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다시 살기로 했다는 강수진의 말이 위로가 되어 오늘을 다시 살아낼 힘을 얻기도 한다. '하하호호' 배을 잡고 뒹구는 웃음 대신, 미적지근한 미소로 대신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by meditator 2013. 3. 9. 02:05

한때는 아이돌을 드라마에 넣는 것이 큰 화젯거리였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드라마에 아이돌 한 둘쯤 들어가는 건 예사인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아이돌이 투입되지 않은 드라마가 그걸 가지고 기사화시킬 정도로 연기란 아이돌이 해야 할 수많은 선택 중 가장 용이한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대세인 흐름과 달리 드라마 속 그들은 여전히 툭 불거진 채 드라마의 흐름을 깨는 경우가 빈번하다. 끼워넣기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세는 되었지만 아이돌의 명망을 뛰어넘는 연기자는 막상 쉽게 조우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리스2의 시청률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아이리스2>가 안타깝게도 이번 주 드디어 시청률 한 자리대로 떨어졌다. kbs측은 떨어지는 <아이리스2>에게 꺽인 날개가 홍보라고 생각한 듯 지난 주 일요일 <다큐3일> 시간에 창사 특집이라며 <아이리스2>의 제작 과정을 보여 주었다.

다큐는 진실했으며 고생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보자니 굳이 이범수의 시청률이 아니라 전 스태프들의 노력의 결과로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아니라도 <아이리스2>를 보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 뭐하겠는가? 그 다큐를 보고 마음이 울려 <아이리스2>로 채널을 돌린 시청자 중 과연 몇 명이나 30분을 넘길 수 있었겠는가?

 

 

이번 주 수요일에 방영된 <아이리스2>는 시작과 동시에 비스트의 멤버, 그리고 <아이리스2>에서 서현우 요원 역을 맡은 윤두준의 사랑 놀이가 한동안 방영되었다. ppl이 분명해 보이는 제과점에 레스토랑에 심지어 놀이공원까지, 주인공인 정유건 역의 장혁도 해보지 못한 온갖 낭만적인 상황의 주인공이 바로 윤두준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윤두준 차례가 끝나자, 이번엔 엠블랙의 이준 차례였다. 뜬금없이 신입 요원들이랑 도복을 입고 힘겨루기를 했다. 뻔히 이준을 배려한 분량 챙기기였다.

그걸 보자니, 저절로 한탄이 새어 나왔다. 지금 <아이리스2>가 그렇게 여유있게 아이돌 챙겨줄 처지인가? 라고. <풀 하우스>에서 젊은 남자 가수를 데려다가 좋은 호응을 얻었던 표민수 피디에겐 여전히 아이돌 가수에 대한 환타지가 남아있기라도 하는 건지.

정유건이 기억을 잃은 채 켄이라는 아이리스의 킬러로 활동하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극의 주도적 흐름은 nss요원들이 중심이 되어 끌고 간다. 이범수 쪽이나, 레이 쪽의 비중이나 파급력이 결정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이렇게 남자 주인공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은 상황에서 nss를 이끄는 것이 바로 아이돌 출신의 배우들이요, 그 중에서도 정유건을 대신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윤두준이다.

지수연 역의 이다해는 사실상 nss 팀장이라고 하더라도 '오로지 정유건'에 대한 상실감과 그를 되찾기 위한 열정으로 인해 nss의 활동과 흐름을 달리 한다.

그러고 보니 상사와의 지휘 체계도 윤두준을 통해서요, 정유건이 없는 틈을 타서 '꿩 대신 닭이 되어보려는' 사랑 이야기도 윤두준이다. 즉, 엄밀하게 지금의 nss의 실질적 리더는 윤두준이어야 하는 건데, 아쉽게도 배우 윤두준에게 그런 존재감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범수의 반전'이라며 화제를 만들려 해도 이야기는 뻔해 보이는데, 그걸 끌고가는 배우의 연기 조차도 설득력이 없으니 그걸 참아낼 진득한 시청자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장미인애 사용 설명서

얼마 전 인터뷰를 한 <옥탑방 왕세자>의 신윤섭 피디는 '연기는 타고나는'면이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탑스타라고 하는 배우들도 여전히 '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데 '아이돌'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랜 훈련도 없이 그 자리에서 그 배역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이 '아이돌 출신'이기에 가능한 일이므로 연기를 하는 한에서 불가피하게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이름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런 흐름이 대세가 되어간다면, 하지만 극중에 투입된 아이돌들이 함량 미달이라면 시청자들의 인내를 시험할 것이 아니라 제작진의 운영의 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2012년 말에 방영된 <보고싶다>는 그런 의미에서 모범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에서 문제가 된 인물은 '아이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 주인공 박유천이 아이돌이었고, 그의 에이전시가 그와 함께 '끼워넣어' 팬들의 반대 서명 해프닝까지 불러 온 인물을 배우 장미인애 였다.

장미인애가 맡은 역할은 애초의 시놉시스 상 죽은 김형사의 딸로 한정우와 같은 집에서 지내며 한정우를 짝사랑하는 꽤나 비중있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장미인애는 그전에 출연했던 아침 드라마에서 연기력 부족으로 주인공이었지만 결국 비중까지 조연 이하로 줄어든 검증되지 않은 연기력의 배우였다.

그런데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막상 <보고싶다>가 방영되었을 때 장미인애의 연기력으로 인한 논란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정상 비중있는 조연이었던 '김은주'는 마치 황금율이라도 되는 듯이, 한 회에 한 씬 이상을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절대 그 씬을 이끄는 적이 없이. 장미인애 개인으로 보면 안타까웠을 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드라마도 살고 배우도 크게 욕먹지 않고 끝낸 현명한 처사였다고 본다.

 

 

<야왕>의 백도훈 역의 유노윤호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주다해와 결혼을 한 '백학' 그룹의 왕세자 백도훈은 <야왕>이란 드라마에서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에서 백도훈은 언제나 극의 언저리에서 빙빙 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주 화요일 <야왕>에서 주다해의 비밀을 알게 된 백도훈이 절규를 하는데, 가장 비극적이어야 할 순간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삼켜야 했듯이, 백도훈 역의 유노윤호는 꽤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 사람을 아이돌 이상의 '배우'라 칭해주기에는 여전히 함량 미달인 것이다. 하지만 <야왕>이란 드라마에서 그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보니, 이 드라마의 시청률에 해가 되지는 않고 있다.

물론, <보고싶다>의 김은주가, 그리고 <야왕>의 백도훈이 원래 시놉대로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에게 돌아갔다면 우리는 더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수출 산업'이 되고, '제작 환경'이 핑계가 되는 세상에서 이제는 '하지마라'가 아니라 그나마 '운영의 묘'라도 살려보라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 되었다. <아이리스2>의 제작진 역시 '운영의 묘'를 더 늦기 전에, '운영의 묘'를 살리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3. 3. 8. 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