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용어 중에 '관심병자'라는 단어가 있다. 게시판에 튀는 사진이나 글을 자꾸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한 마디로 '주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과도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낸시랭'하면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대표적 관심병자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를 비롯해서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 장소에 특이한 옷차림으로- 고양이를 어깨에 거는 건 약과, 이젠 비키니까지- 나타나 옷차림 이상의 기가 막히는 행동을 해서 주목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게 만드니까.

 

낸시랭 본인은 자칭 행위 예술가라고 하지만, 남의 나라 여왕 즉위식에 나타나 여왕 코스프레를 하고, 선거에 대한 독려 행위라며 광화문 한복판에서 비키니를 입는 행동은 늘 본인의 의도랑 상관없이 대중적 이슈를 이용해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끌려는 행위 이상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가 주장하는 바 전위적 예술 행위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없었으며, <라디오 스타>에도 나왔듯이 등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적 평가가 뒤따르는 <인간 극장>의 출연조차 된장녀라는 숱한 악성 댓글로 프로그램 게시판이 도배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그런 낸시랭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혼자서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온 사람처럼 이질적이다못해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던 낸시랭이 <라디오 스타>에서는 그저 '희한한 사람' 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2월 27일과 3월 6일의 라디오 스타는 <희한한 사람들>의 특집으로 네 명의 게스트를 불러 모았다. 유세윤과 함께 uv의 멤버로 활동하는 뮤지션 뮤지, 외국인으로 독특하게 욕을 잘 하는 개그맨으로 샘, 아이돌이지만 아이돌같지 않은 인피니트의 성규, 그리고 설명이 필요없는 낸시 랭.

물론 성규의 출연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조합인 것처럼 나머지 세 사람에 비해 아이돌스럽지 않다는 성규의 '포스'는 나머지 세 사람에 비해 '멀쩡'했지만, 이 특집 자체로만 봤을 때, 두 손이 마구 오그라지다 못해 짙누르는 손톱 자국이 손바닥에 남도록 낸시랭의 '뱅의 해' 퍼포먼스나, '그때 그사람' 노래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낸시랭의 존재감은 다른 두 사람 뮤지나 샘에 비해서는 밀리는 편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이젠 낸시랭이 해왔던 퍼포먼스나 말들이 뻔한 것이 될 만큼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 되었다는 것일 수도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이 더 눈에 띨 만큼 사실은 낸시랭이라는 사람의 '돌출'이 어찌 보면 그저 그런 것일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제목이 아예 <희한한 사람들>인 것처럼 뮤지나 샘, 그리고 낸시랭과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 연예 미디어에서는 '깜짝 쇼'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 예전 서커스단 시절에 본 접시 돌리기나, 공중 그네 등의 본 공연에 앞서 얼굴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 몸이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을 내보이듯이 그저 관중들의 놀라움을 이용해 쇼에 집중을 시키던 그 방식 그대로인 것이다. 그 시절 똑같은 사람인데도 이상한 사람이 궁금해서 구경을 갔던 그 마음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희한한 연예인'을 구경하고 욕을 한다. 세상은 발전했다고 하지만 인간의 진화가 신석기 시대에 멈추었듯이 인간의 놀이 방식 역시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여전하다.

그러기에 그런 인물들의 등장은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놀라우면 놀라울 수록 '이용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오늘날 게시판의 악성 댓글이 어쩌면 그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낸시랭이 댓글이 크리에이티브 하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어쩌면 이제 대중들에게 낸시랭은 그 돌발 행위조차도 뻔한 사람이 되어간다는것이고 어쩌면 조만간 그 뻔한 돌출 행위조차도 주목받지 못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이제는 조금 뻔해져가는 낸시랭이라는 존재의 <라디오 스타>의 출연은 비록 쇼 프로가 가지는 이벤트 성의 측면에서는 이미 좀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낸시랭이라는 사람을 희한한 구경거리가 아닌 뱀띠해 퍼포먼스가 클럽에서의 춤과 다르지 않아보이지만 '제 멋에 겨워 어쩌지 못하는' 자칭 '행위 예술가'로 온전히 보아내는데는 순기능을 하게 된 듯하다. 그녀보다 더 기발하고 희한한 다른 두 사람으로 인해 그녀의 말들은 '희한함'을 넘어 그럴 수도 있다는 한 줄기 이해의 빛을 얻었고, 오그라들거나 오해를 샀던 의 행동들도 해명의 기회을 얻었다. 우리가 뮤지나 샘의 행보를 꼭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듯이, 낸시랭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저 그런 사람이 있다고 흔쾌히 인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유리벽 속의 구경거리가 숨쉬는 사람처럼 여겨졌던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3. 3. 7. 11:49

배우 생활을 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한석규가 예능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자신은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리스너'가 편하다던 한석규는 쭈뼛거리면서도 주섬주섬 마치 철학 강의에서나 들을 법한 23년차 내공을 풀어 놓아, mc들로부터 '리스너'이기보다는 '말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소크라테스 한석규

고대 그리스의 명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대화법'으로 유명하다. 상대방과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나아가 철학적 명제에 대한 깨달음을 유도하는 것으로, 명연설을 통해 대중의 귀를 현혹시켰던 당시 철학계에서는 획기적인 철학적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크라테스처럼, 한석규는,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후배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통해, 뻔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전개될 뻔한 토크쇼를 구제했다.

물론 <힐링 캠프>가 유도하고자 했던 메뉴얼은 있었다. 한석규란 배우가 어떻게 배우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천만 배우는 아니지만 그가 했다하면 대중적 흥행과 작품성을 담보하리라 믿어졌던 가자 잘 나가던 배우가 뜻하기 않게 오랜 칩거를 하게 된 이유,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예전의 그만큼 해내지 못했을 때 겪었을 마음 고생에 대해 꾸준히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말하기가 저어된다고 난색을 표하던 한석규가 '행복하시냐? 언제 행복하시냐?'는 질문을 역으로 던지며 mc인 이경규, 한혜진, 김제동을 초토화시켰을 때부터 <힐링 캠프>는 한석규 버전으로, 그리고 진짜 '힐링'이 되는 시간이 되어 갔다.

그저 후배들에게 연기를 왜 하느냐? 란 질문을 던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그 질문을 되묻곤하는 한석규는 힐링 캠프가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궁금해 하는 질문들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복', '일', '편안한 마음' 중 무엇을 고르겠냐고 3지 선다로 던진 질문에 엉뚱하게 '자연'이라는 기상천외의 답을 선택한 것처럼, 어쩌면 진짜 사람들이 토크쇼에 출연하는 사람들로 부터 듣고파했던 겉으로 드러난 구설 외의 '진실'을 힐링 캠프식의 '우문'과 한석규식의 '현답'을 통해 얻어 듣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한석규입니다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흔히 도용하는 한석규의 나긋하면서도 정감있는 그러면서도 설득력있는 목소리로 시종일관 휘감긴 <힐링 캠프>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어떤 아름다운 노래보다도 매력적인 '리스닝'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23년 만에 처음,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혹은 영원히 조우하기 어려울, 그래서 더 진솔했던 그의 속내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제는 흔해 빠진 '힐링'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생(生)철학'의 시간이었다.

젊은 시절 가장 잘 나갔던 배우가, 젊음을 그저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이 아니라, 앞날이 두려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불확실성의 시간으로 정의내린 것도 그러하거니와, 이제는 히끗히끗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내로라 하는 배우가 여전히 삶은 혼돈의 도가니이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신은 질풍노도의 격랑 속을 헤매인다고 말했을 때, 그런 한석규의 토로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는 김제동의 평가처럼 한석규가 궁금해 텔레비젼 앞에 모였던 사람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여전히 자신의 연기가 쓰레기처럼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견뎌내듯 내 하나의 문제가 버겁지만, 나란 존재가, 세상 속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러기에 '작아져버린' 나를 혹은 거대한 세계를 책임감있게 받아들이고, 또 그러에도 불구하고 남은 인생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파서 하는 사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자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한석규가 가진 '주체적 자아'는 위로 이상의 '살아보자'는 용기를 주는 시간, 그것이 바로 한석규에게 '접속'을 했던 <힐링캠프>의 시간이었다.

한 시간 남짓 때로는 나직하게 때로는 허허거리며 던져진 한석규의 말들 속에서 그가 살아온 시간들의 구체적 사실들은 잡히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진실한 삶'에 대한 희망이 돌아왔다.

by meditator 2013. 3. 5. 07:38

3월 3일 방영분 <남자의 자격>은 서울 시장 투어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투어 장소인 마장동 우시장에서 홀로 독박을 쓴 윤형빈은 흔쾌히 스탭을 위해 소고기 100만원 어치를 쐈다. 분명 문제 맞추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경규의 편이었던 윤형빈이 마지막에 홀로 남아 소고기값을 계산하는 과정은 문제가 푸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했지만, 마치 그 전주 윤형빈의 과도한 혼수 준비로 인한 구설수를 애써 봉합하려는 듯한 제스쳐로 느껴져 안타까웠다.

 

사실, 4년여 <남자의 자격>을 함께 해오던 막내가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형들이 혼수를 한가지씩 도와준다는 그 사실만 놓고 보면 '미덕'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무한도전>의 하하가 형들에게서 받은 축의금을 기부를 한데다, 고가의 커피 머신을 사는 등 무리수로 인해 흐뭇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구설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빠, 어디가?>의 상승세로 인해 위축되던 <남자의 자격>은 결국 '종영'이라는 아쉬운 카드를 꺼내들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 과연 <남자의 자격>의 종영이 적당한 카드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100%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남자의 자격>은 진부하다. 3월 3일자 서울 시장 투어라는 아이템은 <1박 2일>에서 꽤나 써먹었던 소재이다. 전국 방방 곡곡 어느 지역을 가던 그 지역의 전통 시장 먹거리 투어를 하던 방식은 출연진만 달라졌을뿐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더구나 잠자리 복불복이 달린 살벌한 게임 방식도 아니고 각팀 별로 나누어 먹거리를 맛보고, 그걸 다시 모아서 다함께 맛보고 그 중 가장 맛있는 거 고르기 하고 땡!해버리니 좀 맥이 빠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찾아간 경동 시장에서 온갖 남자에게 좋다는 약재 맛보기는 오래 전에 이경규가 했던 mbc <일요일 일요이 밤에>의 건강 보감 코너를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여전히 이경규가 그 특유의 너스레로 분위기를 잡고 만만한 김태원과 이윤석을 희생양 삼아 가학적인 재미를 뽑아내는 것으로 시간을 꾸려갔다.

이렇듯 최근 <남자의 자격>이 내세운 '죽기 전에 해보아야 할 101가지'들은 새롭지도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이경규와 그의 수족같은 몇몇 멤버들이 하는 만들어 내는 상황은 새로 들어온 김준호에게 콩트를 하지 말라는 이경규의 구박이 무색하게 콩트화되어 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그런 진부하고도 진부한 아저씨들의 뻔한 조합에 여전히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전통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반기는 이경규나 김태원을 봤을 때 그런 그들의 뻔함이 친근함으로 여전히 먹히는 부분이 있다는 것 역시 무시못할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들어온 주상욱과 김준호의 개인적 고군분투는 상투적인 <남자의 자격>에 꽤나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섣부르게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이 문을 닫으려는 결정에 우려를 낳게하는 요인이다.

<남자의 자격>의 종영이란 결국 이제 '아저씨들의 예능'이란 예능의 또 하나의 주제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건 다시 한번 '이경규식의 예능'이 막을 내리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연속으로 시청률 꼴찌를 하는 프로그램을 지속시켜야 하는 의무나 동기는 없다. 하지만 과연 지금이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없앨 시기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남자의 자격>을 보면 안타까운 것이 <무한도전>과 같은 장인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5년 전의 아이템을 다시 꺼내 그것을 자기와의 싸움으로 새롭게 버전업하여 내보여 찬사를 받은 <무한도전>에는 그 멤버만큼이나 유명한 pd가 있다. 하지만, 그간 <남자의 자격>이 내리막 길을 걷게 만든 장본인은 엄밀하게 이경규도, 멤버들도 아니라, 공무원처럼 때우듯 프로그램을 끌어왔던 제작진이었다. <무모한 도전>이 <무한도전>이 되어가는 시간처럼, 그 누구라도 <남자의 자격>에 대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했다면, 충분히 '아저씨들의 자격'이 '할아버지들의 자격'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그저 시청률과 허술한 제작정신으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다. 더 오랜 시간을 끌고온 <무한도전>이 진부하지 않은데 <남자의 자격>이 진부해져 버린 것,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인간의 조건>은 멤버가 신선하기는 했지만, 예능으로서는 모험인 개그 콘서트의 멤버들이었고, 프로그램의 내용도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 다큐에나 어울릴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건에서 멤버들의 캐릭터를 뽑아내고, 다큐를 예능을 넘어 '힐링'으로 승화시킨 것은 온전히 제작진이 이뤄낸 성과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8년 여의 전통을 가진 <놀러와>를 무 자르듯 없애 버리고 들어간 후속 프로그램은 또 한번의 종영을 맞이하고, <승승장구>를 밀어버리고 차지한 강호동의 예능 <달빛 프린스> 역시 또 한번의 변신을 한다고 한다. 때로는 존재감이 없어보이는 것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란 것도 무시못할 것들인데, 유행에 눈이 먼 사람들은 그나마 남은 전통마저도 싹쓸어 없애 버리려고 하는 듯하다. 마치 어릴 적 동네의 소박한 모습을 아파트가 밀어 버리듯이. 이경규는 뻔하지만 과연 그 시간 예능으로 이경규를 대체해서 지금 한참 흐름을 타고 있는 <아빠, 어디가?>를 이겨낼 대안이라니, 글쎄다. 때로는 바꾸고 걷어내는 것보다 지키고 견뎌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수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새로운 것으로 시선을 잡는 데 급급한다.

더구나 예능에서의 유재석-강호동 투톱 체제가 허물어지고, 대안으로 새로운 대세가 떠오르지도 않았으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시 한계에 봉착한 이즈음 하늘 아래, 귀여운 아이들을 제끼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을 새로운 것이 있을까?

by meditator 2013. 3. 4. 09:24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컴퓨터, 핸드폰, 텔레비젼 없이 살기, 그리고 쓰레기 안만들기를 거쳐 드디어 <인간의 조건>이 자동차 없이 1주일을 살기로 했다. 김준현의 말대로 '~없이 살기'의 생활을 떠올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해볼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바로 '자동차 없이 살기'이고 드디어 <인간의 조건>은 그 과제에 도전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조건>판 자동차 없이 1주일 살기는 만만치 않다.

 

느림의 미학? 아니 느림의 고행

'자동차 없이 1주일 살기' 미션 수행을 위해 제작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평지에 있던 아지트를 마을 버스도 다니지 않는 부암동 산꼭대기로 옮겨 자동차가 없는 생활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평지에서 부터 시작하여, 완만한, 조금 가파른, 심하게 가파른 4단계의 500여 m의 경사지를 올라가야 도착하는 새 아지트는 내려가는 것은 물론 올라가는 것은 거의 등산 수준이다. 어디 그뿐인가. 평지에 도착해서도 다시 버스를 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외진 동네는 그간 자동차 없인 절대 이동하지 않았던 삶에 익숙한 6 멤버들에겐 동네 지도와 지하철 노선도가 있어도 온통 헤매게 만드는 미로 그 자체다.

'느림의 미학'이라며 여유를 부리며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떠났던 멤버들이지만 온몸이 비라도 맞은 듯 흠뻑 젖어야 도착할 수 있는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을 때는 다들 방전이라도 된 듯 지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오로지 자가용이라는 이동 수단에만 의존하던 습관은, 버스 값은 얼마인지? 지하철은 어떻게 타야 하는지? 교통카드는 어떻게 사야 하는지까지 모든 것에서 어리버리하기만한 '서울 촌놈' 그 자체 였다.

더구나, 불규칙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연예인이기에 12시 정도는 훌쩍 넘어서는 하루 일과는 일보다 '귀가'라는 고민에 안절부절하게 만들었고, 겨우 꼼수로 생각해낸 세그웨이나 전기 자전거의 수단들도 생각만큼 만사형통이 아니니, 그 어느때보다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는 이들에게 자동차 없는 1주일은 버거운 과제일 수 밖에 없다.

 

 

함께 걷자 이 길을

하지만 벌써 세 번째 미션을 부여받은 멤버들은 불가능해 보였던 과제들을 수행해낸 그 저력으로 자동차없이 사는 일주일을 극복해 나가려고 한다.

모 케이블 방송에 출연하여 과도한 체중으로 인한 건강상의 적신호를 알게 된 김준현은 자동차 없이 살기의 1주일을 본격적인 '다이어트'의 실천 기간으로 삼기로 한다. 비록 힘들게 걷고 난 후 들이킨 한 대접의 물때문에 체중의 감소는 없었지만, 옷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걷는 김준현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의 1주일은 정말 그를 '호올쭉' 하게 만들 거라는 확신을 준다. 그만이 아니다. 그간 장시간 차에 쭈그리고 앉은 자세 때문에 생긴 요통과 목의 협착으로 고생하는 김준호에게 의사가 내린 처방이 '많이 걷기'라니, 김준호의 자동차 없는 1주일은 '일도 하고, 병도 고치는' 일거양득의 시간이 될 것이다.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책도 있듯이, 가파른 산비탈 위에 있는 집을 향해 오고가는 길은 고달프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한 것 하나는, 돈 들여 운동하지 않아도, 저절로 운동이 되니, 여섯 멤버 모두의 건강이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뿔뿔이 매니저가 기다리는 자신의 차로 돌아가 혼자 꾸벅꾸벅 졸며 돌아오던 길을, 애써 다른 동료가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함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 걷는 과정에서 차를 타고서는 그저 스치듯 지나치던 거리의 집들이 새삼스레 다가오는 것은 물론이고. 늘상 그렇듯이, 환경을 생각하며 시작하는 '미션' 이지만, 언제나 그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돌아오는 것은 '보다 인간다운 삶'이다.

김준현은 말한다. 어느덧 연예인이라고 지레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가는 게 어색해 했는데, 막상 사람들 속에 섞여보니 생각만큼 서먹하지 않았다고, 연예인이라는 삶에 갇혀 늘 보는 사람만 보다가, 몇 년 만에야 나이가 드신 분도, 어린 학생도 접하게 되었다고.

이런 김준현의 말은 굳이 연예인이라는 특정 직업의 특성상 두드러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동차라는 개인적 공간에 갇혀 '자폐적 삶'에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그리고 그런 삶을 지향하는 현대 문명의 지향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

by meditator 2013. 3. 3. 02:31

3월1일 sbs 밤 11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던 <땡큐>가 당당하게 정규 프로그램으로 입성하였다. 지난번 파일럿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혜민 스님이 자신의 학교가 있는 뉴욕으로 떠나고 남은 박찬호와 차인표가, 만화가 이현세 씨와 사진작가 김중만 씨와 함께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서로 다른 연령의,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이 네 사람을 모은 <땡큐>는 이들의 공통점을 '아버지'로 잡고, 자신들의 딸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박찬호와 차인표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란 '의무'에서 벗어난 '힐링' 여행으로, 그리고 이 아버지들의 아버지에 대한 눈물어린 추억담까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시간여의 프로그램을 채워나갔다. 지난번 파일럿 프로그램이 이 시대의 '대표적 멘토' 혜민 스님과 함께 한 '힐링'이 주제였다면, 이제 정규 방송으로 돌아온 <땡큐>가 꺼내 든 것은 바로 이즈음 텔레비젼을 통해 부쩍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버지'이다.

<땡큐> 만이 아니다. 요즘 대세인 예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빠, 어디가?> 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들이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리얼 다큐로 꾸민 것이다. 그뿐인가? 가장 시청률이 높은 주말 드라마 <내딸 서영이>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부성애를 그려내고 있다. 한때 부모들의 상징이자 대표격이던 '엄마'는 한물 간 주제가 되어버리고, 아버지가 대세인 것이다. 그런 흐름에 따르기라도 하듯, <아빠, 어디가?>에 밀려버린 <남자의 자격>도 아버지의 사연을 모집하고 나섰다. 왜 새삼 아버지를 찾게 되는 걸까?

 

 

불쌍한 중년의 아버지

얼마 전만 해도 아버지라고 하면 신문 칼럼에서 조차 자식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늦게 들어오는 것이 장려되는 존재였었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그저 나가서 돈만 벌어오면 가족으로서의 임무가 완성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돈'으로 권위가 완성되던 시대의 아버지는 그 '돈' 덕에 집안에서 독재자처럼 말 한 마디로 군림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jtbc의 주말 연속극 <무자식 상팔자>의 독재자같았던 할아버지 이순재가 할머니의 이혼 소동 끝에 할머니의 눈치를 보는 처지로 전락하고, 한때는 대기업의 중책을 맡던 둘째 아들(송승환 분)이 알뜰한 부인 덕에 돈 한 번 제대로 못쓰는 꽁생원으로 전락한 것이 그 증거이다. 즉 '돈'으로 연명하던 권위는 세월에 따라 무색해 지고, 불경기가 계속되는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돈' 조차도 마음대로 벌어지지 않으니 거기에 의지해 권위를 행세하던 아버지들의 처지가 궁색해 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방송 속에 등장하는 중년 이후의 아버지들은 부쩍 불쌍해 졌다. <내딸 서영이>의 아버지도 아내와 딸도 나 몰라라 도박에 빠진 아버지였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던 공부까지도 포기했던 젊은 가장이었었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만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고,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자신의 아들과 딸이 자기 자신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가장 소중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에서 찬바람을 맞은 아버지들이 결국 믿고 의지할 곳은 가족 밖에 없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자신의 일과 그로 인한 성과에 매진하던 아버지들이, 거기서 상실감을 얻었을 때 그를 다시 붙잡아 세울 수 있는 곳이 가족이요, 살아갈 의미를 얻는 것도 역시나 가족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쩍 약해진 아버지들은 눈물을 흘리고 참회하며 가족들의 비위를 맞추며 가족의 일원으로 복귀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달라진 젊은 아빠들

중년 이후의 아버지들이 '돌아온 탕자'와 같은 위치라면, 젊은 세대는 가치관부터 다르다. 권위와 훈육 보다는 공감을 중시하고, 가족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 더구나 맞벌이가 보통이 된 요즘, 육아에서 아빠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아이들이 방과 후에, 혹은 주말에 무언가를 배우러 온 문화 센터 등에 아이를 기다리는 젊은 아빠의 모습이 낯설지 않고, 가족과 함께 현장 견학을 하는 적극적 부성애도 찾아보는게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즉, 아빠 육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빠들이다.

젊은 세대의 아빠들은 늘어나는 육아 휴직에서 알 수 있듯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의 일방적인 지시 위주의 자녀 교육에서 벗어나, 엄마 못지 않게 자녀의 교육 전반에 참여하는 적극성, 심지어, 엄마 못지 않은 바짓바람의 극성을 보이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최근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아버지 신드롬'은 꼼꼼하게 따져 보자면 세대를 두고 그 양상을 달리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달라진 세대의 모습을 방송 프로그램들은 발빠르게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즈음의 '아버지 신드롬'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내 딸 서영이>에서 내내 소 닭보듯 살던 부부가 이혼을 요구하며 가출한 아내로 인해 새삼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내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리무진을 동원하여 사랑 고백을 하는 에피소드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현실에서는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 아니 일 밖에 모를 수 밖에 없는 아버지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텔레비젼 시청권을 가진 여성 시청자들을 위한 위로의 판타지인 측면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텔레비젼 속의 아버지는 예전의 그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3. 2. 02:19

아이리스2를 보다보면 바둑을 처음 배운 초년생이 떠오른다. 바둑을 배운지 얼마돼지 않은 사람은 자기 보다 수가 높은 사람을 상대로 하여 바둑판 여기저기에 바둑알을 몇 점 놓고 시작한다. 그런데, 아직 바둑을 많이 두지 않은 초짜는 자기가 놓은 그 몇 점에 연연하다, 정작 집중하여 집을 키우지 못한 채 패배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아이리스2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이리스2의 주인공은 정유건과 지수연이지만, 6회까지 온 <아이리스2>는 지수연의 고군분투에, nss내 배반자며, 백산의 과거며, 다시 돌아올 유중원과 김연화에, 이제 정유건의 일본 생활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나란히 나란히 열을 지어 서있다.

 

극적인 상황조차도 덤덤하게 만드는 전개

만약에 <아이리스2>가 정유건과 지수연의 피치못할 이별에 집중을 하고자 했다면, 지수연의 몸을 사리지 않는, 결국은 사라진 정유건을 찾고자 하는, 아이리스 추적 활동에 대비하여, 정유건의 느긋한 일본 생활을 배치해야 했을 것이다.

반면에, 이제는 거의 밝혀진 정유건과 백산 부자의 비극적 삶을 조명하고자 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백산으로 거듭나는 젊은 시절의 백산과, 기억을 잃고 아이리스의 암살자로 활동하는 정유건을 대비시켜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리스2>는 이 모든 사연들을 그저 병렬식으로 배치하여, 감동도 저하시키고, 개연성도 반감시키는 악수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아직도, 이 드라마를 무엇을 중심으로 끌고 갈 것인지, 제작진 측에서 확고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아이리스2>란 드라마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결정내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6회까지 온 지금까지도, 심지어 백산과 정유건이 부자 사이라는 복선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사라진 정유건이 아이리스의 암살자로 거듭난 충격적 상황도 그저 '그랬구나' 하며 덤덤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멜로가 장기라고 해도

또 하나 사실은 극적인 이야기를 긴장감없이 바라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전반적으로 늘어지는 스토리 전개이다. 5회와 6회를 거쳐서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주인공이 죽었을 지도 모르다는 것과, 그 주인공의 숨겨진 가족 관계가 서서히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6회 초반 상당 부분이 지수연의 상처와 고통을 설명하는데 할애하다보니, 드라마 전체가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늘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사이에 끼어든 nss의 배반자 색출 작전이나, 사제 폭탄 조직 제거가까지도 그녀의 감정선을 돕기 위한 보조 수단인 것처럼 배치된다. 마치 <아이리스2>가 멜로 드라마인 것처럼. 이 드라마의 연출자 표민수 피디가 지금까지 주로 멜로 드라마 연출을 많이 해왔던 것이 드러나기라도 하듯, 드라마에서 멜로적 내용이 나오면 필요 이상으로 집중하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정유건과 지수연의 회상씬에, 백산의 회상씬까지, 매회 반복되다 보니, 더욱 늘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매번 액션씬이 나오고, 총격씬이 나오지만, <아이리스2>의 정체성은 점차 모호해져 보인다. 물론 첩보 드라마라 하더라도, 그 드라마를 이끄는 인물들간의 감정선의 전개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감정선이 전체적인 드라마가 끌고가는 극적인 긴장감을 해치는 선이 되어서는 드라마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제 아무리 표민수 피디가 잘 하는 것이 멜로라 하더라도, <아이리스2>라는 첩보 드라마로 모험을 시도했다면 모험의 행로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어설픈 까메오나 아이돌의 연기 연습은 그만!

마지막으로, 아직 정착되지 않은 <아이리스2>에서 더욱 이 드라마를 어설프게 만드는 배역들이 있다. 6회 뜬금없이 개그콘서트의 김기열이 까메오로 등장했다. 안그래도 드라마가 자기 분위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끼어든 개그 콘서트 분위기라니! 까메오도 때와 장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드라마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은 아이돌 군단이다. 비스트의 윤두준은 이제 거의 지수연를 놓고 정유건과 삼각 관계라도 꾸릴 분위기로 매번 눈빛을 발사하는데, 정작 입만 열면 분위기를 깨는 그 대사 처리는 어쩔 것이며, 가끔씩 등장해서 자기가 여기 왜 있는 모르겠다며 투덜대는 요원 역의 이준은 정말 거기 왜 있는지 모르겠는 연기를 하고 있다. 안그래도, 세번 째나 조우하는 남녀 주인공조차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연인들이라기엔 어딘가 어색한데, 조연들의 연기는 '나 연기해요' 수준이니, 거기에 익숙해지기 까지 기다리기엔 아이리스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by meditator 2013. 3. 1. 02:23

윌리엄 새들러는 그의 책 [The Third Age(세번 째 인생)]에서 말한다.

'불과 백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세 안팍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 세대보다도 40여 년을 더 사는 평균 수명 80세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늘어난 시간이+ 일지, - 일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더해진 시간을 +로 만들기 위해서, 마흔 이후에도 살아가라. 나이가 들면서 죽어가지 마라. 나이가 들더라도 도전과 성장을 멈추지 마라!'

그리고 바로 그 세번 째 인생의 표본 사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2월 25일 힐링 캠프의 '주인공' 김성령이다.

 

많고 많은 토크쇼 중에 힐링 캠프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출연자가 바로 '힐링'을 내건 이 토크쇼의 목적에 적절하게 부합됐을 경우이고, 2월 25일의 힐링 캠프는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주연이 되기를 꿈꾸는 김성령이란 배우에게나, 그리고 그런 김성령을 흐뭇하게 바라본 시청자에게나 마음을 덥혀준 '힐링'의 시간이었기에 다시 한번 '힐링 캠프'는 반짝 제 빛을 발할 수가 있었다.

 

(사진은 야왕 갤러리에서)

 

주연을 꿈꾸지만,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용이 발톱을 보았는가?' 이래로 단 한번도 주연을 맡아보지 못했던 김성령이 주인공이 되어 이끌어 갔던 힐링 캠프를 보노라면, '나이듦'이 그닥 섭섭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미스코리아가 되고, 하고 싶은 mc가 되고, 주연 배우가 되었기에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한 줄 몰랐던 한 사람이, 나이가 들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자, 영화 캐스팅을 위해 소속사까지 옮기고, 연극을 하고 싶어 대학로를 기웃거리고, 제대로 연기를 배우고 싶어 대학까지 가게 만든 나이듦의 초조함이나 뻔뻔함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철없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허심탄회하게 하지만 냉정하게 직시할 줄 알고, 잘 나가는 배우이지만 가족들에게는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삶의 밸런스를 소중히 여기는 나이듦의 '밸런스'가 아줌마스런 수다 속에서도 진솔하게 전해져 온다.

그리고, 나이듦의 고정 관념에 갇혀서, 지레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주연'을 꿈꾸는 김성령에게서, 젊은이들은 가질 수 없는 정신적 성숙함과 심리적 안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도전을 하는 'Hot Age' 중년의 희망이 느껴졌다.

 

일찌기 단테는 중년이란 젊은이 다운 희망의 빛이 사라진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는 거라 했다지만, 21세기의 중년은 말 그대로 중년일 뿐이니, 지레 뇌로 부터 삶의 열정을 꺼뜨릴 필요는 없다는, 행복을 위해서는 여전히, 그리고 새롭게 꿈을 꾸어도 된다는 용기를 배우 김성령은 준다.

by meditator 2013. 2. 26. 02:35

드디어 검사에 임용된 이차돈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그간 그를 후원해준 독지가가 그를 만나겠다고. 동료들의 축하도 뒤로 하고 부랴부랴 이차돈이 찾아간 그곳엔 이른바 진고개 신사, 복화술이 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이차돈에게 복화술은 그간 그를 검사로 만들기 위해 들인 비용을 청구한다.

 

sbs 주말 드라마<돈의 화신>을 보는 시청자들은 '클리셰'라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씌여왔던 모든 설정들이 하나씩 깨져나가는 걸 보면서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나? 혼돈 속에 빠져들게 된다.

 

젊은 검사시보 이차돈(강지환 분)에게 작은 도둑을 잡으려다가 큰 도둑을 놓치게 된다며 단호하게 살인범 이관수를 포기하라고 다그치는 '정의의 화신' 지세광(박상민 분)은 알고보면 이차돈, 아니 이강석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비자금을 만들고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대통령의 측근이자 전 시장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고자 하는데 거칠 것이 없다. 그런데 또 한때는 살인자였어도 이제는 정의로운 검사로 살아가려나 했더니, 정해룡을 제거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정해룡이 실질적 대주주였던 신용금고를 인수하는 일이라니! 도무지 <돈의 화신> 속 인간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뻔하지 않은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돈의 화신>이라는 드라마의 매력이기도 하다.

 

(사진은 돈의 화신 갤러리에서)

 

큰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지세광 검사의 신념에 까마득한 후배 이차돈은 말한다. 자기는 신념 같은 거 없다고, 검사가 된 이유도 정의의 실현은 커녕 후원자가 되라고 해서 된 거라고. 그리고 거기에 걸맞게 이차돈은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넋을 놓고, 속내라고는 백지장으로 된 창문 들여다 보이듯이 얄팍하며 가볍기가 이를데 없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이 자칭 천재라고 하지만 수가 뻔한 이차돈이라는 인물이 회를 거듭할 수록 자꾸 매력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지세광의 신념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거 모른다고 할 때는, 마치 정의 사회 건설을 내세우며 자기 잇속을 채우던 세대에게, 솔직담백한 젊은 세대가 한 방 먹이는 거 같은 쾌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뻔한 젊은이인데, 이관수를 결국 감옥행으로 만들듯이, 그만의 정의 구현 방식이 궁금해 진다. 거창한 목적도 없지만 허위의식도 없는 새로운 인간형의 도래랄까?

 

<돈의 화신>의 사랑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복재인(황정음 분)과 이강석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흔히 만나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 인연이다. 그런데 그 인연이란게, <돈의 화신>에서는 역시나 한번 틀어준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느 드라마처럼 뽀얗게 등장하지만, 그 끝은, 이강석의 돼지 공주란 퉁명스런 반응과, 지금처럼 팔딱팔딱 뛰며 분노하는 복재인으로 현실감있게 마무리된다. 마치 언제나 '첫사랑은 아름다워'라는 정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지만 그렇다고, 또 첫사랑의 추억이 윤색되지는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분노를 해도, 여전히 외톨이인 재인의 곁에는 이강석이, 이차돈이 있으니까. 그러기에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재인의 설레발 끝에 드러나는 설레임이 시청자조차 미소짓게 만드는 것이 <돈의 화신> 식의 사랑 방식이다.

 

(사진은 돈의 화신 갤러리 에서)

 

물론 이런 첫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세광과 은비령(오윤아 분)의 다시 만난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의 빛깔이다. 이중만의 죽음의 공모자였던 두 사람이 지세광의 말대로 공모를 한 순간 사랑은 물 건너 가고 '이용' 만이 남게 되었지만, 정해룡의 제거를 위해서, 그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 두 사람은 다시 기꺼이 손을 잡는다. 지세광을 없애기 위해 칼을 갈았던 은비령은 그게 언제였냐는 듯 지세광에게 돌아가고, 다시는 안볼 것 같던 지세광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시 그녀를 찾는 식이다.

 

과연 돈 앞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역으로 돈 앞에선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돈의 화신> 식의 인간 관계 속에서 과연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일지? 돈 놓고 돈 먹기가 다인 더러운 세상일지?

by meditator 2013. 2. 25. 02:12

'쓰레기 없이 살기'의 일주일이 마무리 됐다. 6일차가 되는 날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을 끝내는 기념으로 <인간의 조건>의 여섯 멤버들은 쓰레기 배출량 '0'에 도전했다. 안타깝게도 라디오 방송의 작가가 건네준 종이컵에 담긴 차를 무심코 건네받은 허경환 덕분에 '0'의 달성은 실패했다. 그러나 주체하지 못하던 쓰레기를 이젠 '0'이라는 미션을 도전할 만큼 여섯 남자의 쓰레기 배출은 놀라보게 줄어들었다. 6일차의 실패도 의식적으로 만든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치면 엄밀하게는 실패가 할 수 없는 실질적 성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션의 성공 유무와 상관없이 여섯 남자들의 쓰레기 없이 살기 일주일은 그 여섯 사람만이 아니라, 방송을 함께 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함께 노력해볼 꺼리를 남겨준 시간이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등장한 <인간의 조건>이 내건 첫번 째 미션은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일주일 살기였었다. 단 한 시도 문명의 이기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거 같았던 여섯 남자들은 혹독한 문명의 금단 증상을 겪으며 '인간다운 삶'으로 되돌아 가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렇듯, <인간의 조건>이 내건 첫 번째 미션은 이 프로그램이 제목이 내거는 바, 이 프로그래이 지향하는 바를, 아주 단호하면서도 명쾌하게 증명해 냈다. 찌든 문명의 때를 벗어가면서 조금씩 잊었던 아날로그의 삶을 되찾아가는 여섯 남자의 일주일 간의 체험은 그 자체로 보는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두번 째 미션, '쓰레기 없이 일주일 살기'가 완료되었다. 첫 번째 미션이 인간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된 과제였다면, 두번 째 과제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들여다 보게 만든 미션이었다. 이렇게 <인간의 조건>은 '나'를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돌아보는 것으로 진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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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경쟁적으로 쓰레기 줄이기에 돌입한 여섯 남자들은 처음엔 가장 많이 쓰레기를 배출한 사람에 대한 벌칙으로 오밤중에 마당에 세워놓고 찬물 한 바가지 식의 여느 오락 프로그램에서 늘상 하던 식의 가학성 벌을 주었다. 하지만 차츰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퍼져가면서 벌칙을 위한 벌칙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거리에 나가 캠페인을 벌이거나,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방문하거나, 직접 쓰레기를 치워보는 식의 '논리적 인과 관계'를 가진 벌칙으로 자연스레 변화되었다.

또한 쓰레기 집하장을 가서 깨달은 바가 자연스레 가는 곳이 어디가 되었든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자발적으로 한 결과를 낳았고, 쓰레기를 줄이고자 마지 못해 쓰기 시작했던 '텀블러'를 나 하나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라는 '확산'을 낳았다. 그리고 꼼수이건 잔머리이건 쓰레기를 재활용한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인간의 조건>을 통해 소개되었다.

 

물론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일주일 동안 눈에 띄게 줄어든 여섯 남자들의 쓰레기 배출량이었다. 하지만 그건 한시적인 미션일 뿐이다. 미션을 마치고 발표한 소감에서 말했듯이 다시 돌아간 일상에서 경쟁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려고 했던 그 시간처럼은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쓰레기 줄이기'라는 과제가 이제는 그들 삶의 일부분으로 둔중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여섯 남자 모두가 공감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실질적 결과인 것이다. 즉, 이제 부터가 진짜 '쓰레기 없이 사는 삶'의 진짜 시작이 된 것이다.

 

그리고 여섯 남자들의 일주일을 보고 배운 시청자들도 먹을 것을 남기는데 '저어하고', 재활용의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는 우리 곁의 '쓰레기'에 대해 불편해 할 것이다. 김준현의 말처럼, 내 집안에 없으면 되는 줄 알았던 쓰레기의 '실존'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얼굴에 붙인 테이프를 지적하던 김준호에게 쓰레기 없이 미션이 공통 과제 였음을 따끔하게 지적했던 박성호처럼, 이것이 '우리가 함께' 해나가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심어졌다.

그저 매 주말 여섯 남자의 '쓰레기를 부등켜 안고' 쩔쩔 매는 일상을 들여다 보았을 뿐인데, 여섯 남자가 이뤄낸 일주일의 고군분투는, 김준호 회사나 개콘 회의실의 텀블러 사용처럼, 어쩌면 우리도 노력하면 할 수 있는, 해야 할 무엇에 대한 과제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과제가 안해가면 손바닥 맞은 엄격한 숙제처럼 다가오지는 않는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폐지로 투박한 종이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던 양상국의 무모한 노력처럼, 그 촌스런 집념이 괜히 한번 따라해 보고 싶어지니까.

by meditator 2013. 2. 24. 02:30

철원에서 낙산 해수욕장까지의 150km를 넘는 대장정의 6박7일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함께했던 사람들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장미란에게는 11명의 오빠와 한 명의 흥수 삼촌과 여동생이 생겼고, 자꾸만 계산기를 두드리던 인간 관계에 익숙해져 갔던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들국화'란 모임을 만들어, 인간적인 '행진'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6일차의 마지막밤, <행진>을 함께 하자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던 이선균은 토로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이것이 방송이라는 생각에, 이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고 너무너무 하기가 싫었다고, 하지만 어느샌가 함께 걸으며 방송을 한다는 생각도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한껏 웃으며 걷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선균만이 아니었다. 한때는 연극판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서로의 처지가 달라 자주 보지 못했던 유해진과 친구들도 다리가 다쳐 뒤떨어진 길을 느긋하게 함께 걸으며 그 예전의 함께 했던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노래도 부르고 결국은 눈시울을 적셨다.

 

 

단 2회의 프로그램이었지만, <행진>이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뜨근한 감동을 남긴 것은, 처음도 끝도 함께 한다는 그 취지를 다같이 살리고자 애썼고 그것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한때는 친구였지만 세월이 흘러 서로가 다른 위치에, 다른 직종에 종사하게된 친구들이, 혹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6박7일의 고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결국은 자연스레 어깨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절룩이는 옆 사람의 팔을 잡아주게 되었고, 헤어짐을 아쉬어 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도 했고, 경쟁도 있었다. 이어지는 터널을 도보로 걷기에는 너무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점심 지원을 내걸고 누가 먼저 히치하이킹을 해서 죽리 초등학교에 도달하는가를 편을 짜서 먼저 가기 내기를 했다. 물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혹시나 내가 꼴찌가 될까 안달을 하며 서로 먼저 도착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제작진이 시선은 재미를 위해서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셀프 카메라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까짓 점심 내가 하지 뭐 하며 눈길 위를 누워 보기도 하고, 동네 할머니랑 여유롭게 말도 건네는 유해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래 '까짓 점심'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사 모든 일이 다 그렇다. <행진> 사람들처럼 우리들은 살면서 어쩌면 점심 보다도 못한 일인데도 그저 남보다 뒤처질까 안달복달하며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까짓거' 하고 그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보니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하늘이 보이고, 맑은 눈밭이 들어오고, 노오란 견인차가 이쁘게 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한껏 여유를 부려도 토끼처럼 잽싸게 장미란팀이 맡아놓은 차까지 낚아채며 서두르던 이선균네 보다 먼저 도착하기까지 한 결과는 그저 지나치기엔 몹시도 보는 사람들의 되바라진 머리를 한 대 쿡 쥐어 박는 느낌이다.

행진을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애쓴 것은 이선균이지만, 사실 행진 내내 피로에 지치고, 그저 걷느라 땅바닥만 보고 가는 사람들을 다독인 건 유해진이었다. 엉뚱한 해석이지만, 왜 이 배우가 당대의 최고 여배우를 매료시켰는가를 한껏 보여준 시간이었달까?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고, 피로에 지쳐 경직된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로운 유머로 풀어 주었다. 좋은 건 좋다고,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는데도, 그것이 유해진의 입을 통해 나오면 괜히 '도'의 느낌조차 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여유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유가 마치 화선지에 풀어진 먹처럼 잔잔하게 <행진>의 6박7일을 통해 전체로 번져 나갔다.

 

물론 6박7일의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다리엔 결국 기브스가 채워졌고, 누군가는 '정밀진단'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것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보내고 그저 함께 한 그 모습들만에 클로즈업을 맞춘 것은 어쩌면 상투적인 감동 만들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해진이 얻어 탄 견인차 운전수 아저씨의 말처럼 살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요즘 시대에, 이 정도 감동은 그닥 넘치는 것이 아닐 듯 싶다.

함께 하기 위해 한계령 꼭대기에서 뒤쳐진 친구들을 기다려주고 마중나오는 모습, 힘들어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친구의 짐을 나누어 지는 모습, 만난지 며칠 되지 않은 장미란의 은퇴식을 위해 조마조마하며 작은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모습, 또 장미란을 위해 노래 부르며 울어주는 모습,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함께 끝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함께 해서 좋았다고 말하는 모습은, 이 살기 힘든 시대에 어딘가에 내 등을 두드려 줄 누군가가 있을 거 같은 위로를 준다. 단지 아쉽다면, 이 좋은 <행진>이 끝났다는 것, 그러지 말고 한 6박7일 만큼만이라도 함께 해주었으면 싶다. 그게 아니면 계속 쭈~욱 하던가.

by meditator 2013. 2. 23.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