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sbs 밤 11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던 <땡큐>가 당당하게 정규 프로그램으로 입성하였다. 지난번 파일럿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혜민 스님이 자신의 학교가 있는 뉴욕으로 떠나고 남은 박찬호와 차인표가, 만화가 이현세 씨와 사진작가 김중만 씨와 함께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서로 다른 연령의,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이 네 사람을 모은 <땡큐>는 이들의 공통점을 '아버지'로 잡고, 자신들의 딸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박찬호와 차인표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란 '의무'에서 벗어난 '힐링' 여행으로, 그리고 이 아버지들의 아버지에 대한 눈물어린 추억담까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시간여의 프로그램을 채워나갔다. 지난번 파일럿 프로그램이 이 시대의 '대표적 멘토' 혜민 스님과 함께 한 '힐링'이 주제였다면, 이제 정규 방송으로 돌아온 <땡큐>가 꺼내 든 것은 바로 이즈음 텔레비젼을 통해 부쩍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버지'이다.
<땡큐> 만이 아니다. 요즘 대세인 예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빠, 어디가?> 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들이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리얼 다큐로 꾸민 것이다. 그뿐인가? 가장 시청률이 높은 주말 드라마 <내딸 서영이>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부성애를 그려내고 있다. 한때 부모들의 상징이자 대표격이던 '엄마'는 한물 간 주제가 되어버리고, 아버지가 대세인 것이다. 그런 흐름에 따르기라도 하듯, <아빠, 어디가?>에 밀려버린 <남자의 자격>도 아버지의 사연을 모집하고 나섰다. 왜 새삼 아버지를 찾게 되는 걸까?
불쌍한 중년의 아버지
얼마 전만 해도 아버지라고 하면 신문 칼럼에서 조차 자식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늦게 들어오는 것이 장려되는 존재였었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그저 나가서 돈만 벌어오면 가족으로서의 임무가 완성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돈'으로 권위가 완성되던 시대의 아버지는 그 '돈' 덕에 집안에서 독재자처럼 말 한 마디로 군림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jtbc의 주말 연속극 <무자식 상팔자>의 독재자같았던 할아버지 이순재가 할머니의 이혼 소동 끝에 할머니의 눈치를 보는 처지로 전락하고, 한때는 대기업의 중책을 맡던 둘째 아들(송승환 분)이 알뜰한 부인 덕에 돈 한 번 제대로 못쓰는 꽁생원으로 전락한 것이 그 증거이다. 즉 '돈'으로 연명하던 권위는 세월에 따라 무색해 지고, 불경기가 계속되는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돈' 조차도 마음대로 벌어지지 않으니 거기에 의지해 권위를 행세하던 아버지들의 처지가 궁색해 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방송 속에 등장하는 중년 이후의 아버지들은 부쩍 불쌍해 졌다. <내딸 서영이>의 아버지도 아내와 딸도 나 몰라라 도박에 빠진 아버지였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던 공부까지도 포기했던 젊은 가장이었었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만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고,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자신의 아들과 딸이 자기 자신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가장 소중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에서 찬바람을 맞은 아버지들이 결국 믿고 의지할 곳은 가족 밖에 없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자신의 일과 그로 인한 성과에 매진하던 아버지들이, 거기서 상실감을 얻었을 때 그를 다시 붙잡아 세울 수 있는 곳이 가족이요, 살아갈 의미를 얻는 것도 역시나 가족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쩍 약해진 아버지들은 눈물을 흘리고 참회하며 가족들의 비위를 맞추며 가족의 일원으로 복귀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달라진 젊은 아빠들
중년 이후의 아버지들이 '돌아온 탕자'와 같은 위치라면, 젊은 세대는 가치관부터 다르다. 권위와 훈육 보다는 공감을 중시하고, 가족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 더구나 맞벌이가 보통이 된 요즘, 육아에서 아빠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아이들이 방과 후에, 혹은 주말에 무언가를 배우러 온 문화 센터 등에 아이를 기다리는 젊은 아빠의 모습이 낯설지 않고, 가족과 함께 현장 견학을 하는 적극적 부성애도 찾아보는게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즉, 아빠 육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빠들이다.
젊은 세대의 아빠들은 늘어나는 육아 휴직에서 알 수 있듯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의 일방적인 지시 위주의 자녀 교육에서 벗어나, 엄마 못지 않게 자녀의 교육 전반에 참여하는 적극성, 심지어, 엄마 못지 않은 바짓바람의 극성을 보이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최근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아버지 신드롬'은 꼼꼼하게 따져 보자면 세대를 두고 그 양상을 달리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달라진 세대의 모습을 방송 프로그램들은 발빠르게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즈음의 '아버지 신드롬'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내 딸 서영이>에서 내내 소 닭보듯 살던 부부가 이혼을 요구하며 가출한 아내로 인해 새삼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내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리무진을 동원하여 사랑 고백을 하는 에피소드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현실에서는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 아니 일 밖에 모를 수 밖에 없는 아버지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텔레비젼 시청권을 가진 여성 시청자들을 위한 위로의 판타지인 측면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텔레비젼 속의 아버지는 예전의 그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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