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에서 낙산 해수욕장까지의 150km를 넘는 대장정의 6박7일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함께했던 사람들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장미란에게는 11명의 오빠와 한 명의 흥수 삼촌과 여동생이 생겼고, 자꾸만 계산기를 두드리던 인간 관계에 익숙해져 갔던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들국화'란 모임을 만들어, 인간적인 '행진'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6일차의 마지막밤, <행진>을 함께 하자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던 이선균은 토로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이것이 방송이라는 생각에, 이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고 너무너무 하기가 싫었다고, 하지만 어느샌가 함께 걸으며 방송을 한다는 생각도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한껏 웃으며 걷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선균만이 아니었다. 한때는 연극판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서로의 처지가 달라 자주 보지 못했던 유해진과 친구들도 다리가 다쳐 뒤떨어진 길을 느긋하게 함께 걸으며 그 예전의 함께 했던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노래도 부르고 결국은 눈시울을 적셨다.

 

 

단 2회의 프로그램이었지만, <행진>이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뜨근한 감동을 남긴 것은, 처음도 끝도 함께 한다는 그 취지를 다같이 살리고자 애썼고 그것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한때는 친구였지만 세월이 흘러 서로가 다른 위치에, 다른 직종에 종사하게된 친구들이, 혹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6박7일의 고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결국은 자연스레 어깨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절룩이는 옆 사람의 팔을 잡아주게 되었고, 헤어짐을 아쉬어 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도 했고, 경쟁도 있었다. 이어지는 터널을 도보로 걷기에는 너무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점심 지원을 내걸고 누가 먼저 히치하이킹을 해서 죽리 초등학교에 도달하는가를 편을 짜서 먼저 가기 내기를 했다. 물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혹시나 내가 꼴찌가 될까 안달을 하며 서로 먼저 도착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제작진이 시선은 재미를 위해서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셀프 카메라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까짓 점심 내가 하지 뭐 하며 눈길 위를 누워 보기도 하고, 동네 할머니랑 여유롭게 말도 건네는 유해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래 '까짓 점심'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사 모든 일이 다 그렇다. <행진> 사람들처럼 우리들은 살면서 어쩌면 점심 보다도 못한 일인데도 그저 남보다 뒤처질까 안달복달하며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까짓거' 하고 그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보니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하늘이 보이고, 맑은 눈밭이 들어오고, 노오란 견인차가 이쁘게 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한껏 여유를 부려도 토끼처럼 잽싸게 장미란팀이 맡아놓은 차까지 낚아채며 서두르던 이선균네 보다 먼저 도착하기까지 한 결과는 그저 지나치기엔 몹시도 보는 사람들의 되바라진 머리를 한 대 쿡 쥐어 박는 느낌이다.

행진을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애쓴 것은 이선균이지만, 사실 행진 내내 피로에 지치고, 그저 걷느라 땅바닥만 보고 가는 사람들을 다독인 건 유해진이었다. 엉뚱한 해석이지만, 왜 이 배우가 당대의 최고 여배우를 매료시켰는가를 한껏 보여준 시간이었달까?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고, 피로에 지쳐 경직된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로운 유머로 풀어 주었다. 좋은 건 좋다고,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는데도, 그것이 유해진의 입을 통해 나오면 괜히 '도'의 느낌조차 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여유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유가 마치 화선지에 풀어진 먹처럼 잔잔하게 <행진>의 6박7일을 통해 전체로 번져 나갔다.

 

물론 6박7일의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다리엔 결국 기브스가 채워졌고, 누군가는 '정밀진단'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것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보내고 그저 함께 한 그 모습들만에 클로즈업을 맞춘 것은 어쩌면 상투적인 감동 만들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해진이 얻어 탄 견인차 운전수 아저씨의 말처럼 살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요즘 시대에, 이 정도 감동은 그닥 넘치는 것이 아닐 듯 싶다.

함께 하기 위해 한계령 꼭대기에서 뒤쳐진 친구들을 기다려주고 마중나오는 모습, 힘들어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친구의 짐을 나누어 지는 모습, 만난지 며칠 되지 않은 장미란의 은퇴식을 위해 조마조마하며 작은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모습, 또 장미란을 위해 노래 부르며 울어주는 모습,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함께 끝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함께 해서 좋았다고 말하는 모습은, 이 살기 힘든 시대에 어딘가에 내 등을 두드려 줄 누군가가 있을 거 같은 위로를 준다. 단지 아쉽다면, 이 좋은 <행진>이 끝났다는 것, 그러지 말고 한 6박7일 만큼만이라도 함께 해주었으면 싶다. 그게 아니면 계속 쭈~욱 하던가.

by meditator 2013. 2. 23.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