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인기있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이라는 질문에 정답은 1박2일도, 런닝맨도, 정글의 법칙도 아니다. 서글프게도, 높은 출연료를 받은 전문 예능인들이 뛰고 달리고 고생하는 프로그램들이 아니라, 천진난만한 동심들의 마음이, 풋풋한 행동이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아빠, 어디가?>이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여자 아이를 위해서는 눈물을 꾹 참으며 김치를 두 그릇이나 쓱싹 비우는 어린 남자 아이 윤후를 기다리느라 일주일이 길다고 말한다. 방학이 끝나면 어쩌냐고 지레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가장 직접적인 희생자는 바로 다름아닌 아저씨들의 예능 <남자의 자격>이다.

 

지난 회 <남자의 자격>은 한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한 2013년판 흥부전을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지만, 어린 윤후에게 빠진 세간의 관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한 달이란 기간의 강행군을 하며 올린 <남자의 자격>판 흥부전에 가혹하게 상을 준다면 노력상 정도? 창극이란 기본적 패러다임을 무색하게, 주인공 놀부 역을 맡은 이경규는 대사를 외는데 급급하여 뒤의 국악 반주팀과 한번도 제대로 음이 맞은 적이 없었다. 흥보 역의 김준호도 엄밀하게 말하면 창극 수준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가애란 아나운서의 소리가 무척이나 빼어나게 보일 정도였으니.

애초에 창극을 한 달 정도의 연습을 통해 무대에 올리겠다는 시도가 무리였다고 본다. 거기에 주연을 맡은 이경규나, 김준호 모두 개인적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연예인들이기에 한 달이란 기간을 더더욱 무리였었다. 하지만 이경규가 야심차게 놀부 역에 도전하면서 합창을 하면서 둘러리를 서느라 고역이었다고 말했듯이, 그래도 사람들을 불러놓고, 국립극장 무대에 설 정도였다면, 살을 빼는 외면적 모습이나, 개그맨들이 그간 보여주던 연기력 이상의 '창극'이란 장르에 맞는 특성을 조금 더 살려주어야 하는 프로 정신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남자의 자격>이 아저씨 예능이기에, 조금은 늘어진 고무줄같은, 무엇을 해도, 악발이 같은 헝그리 정신을 좀 덜 보여도, 아저씨니까 하고 넘어가주는 그런 미묘한 느슨함이 자꾸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 전체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2월 18일자 '2013년 트렌드 미리 살기'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2013년에 걸맞는 트렌드를 맛보기 위해 제일 처음 <남자의 자격>이 찾은 곳은 spa패션 매장이었다. 싼 가격에 빠른 회전을 통해 트렌드를 앞서가는 패션 매장에서 20 만원 내에서 각자 자신에 맞는 의상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요즘 젊은이들이 까페에서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라운징' 따라하기. 이를 위해 강남의 까페를 찾은 멤버들은 한 시간 동안 각자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시간을 보낸다.

그 다음엔, '프로슈머', 제품 개발과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가 되기 위해 다양한 '제모제'를 가져다 놓고 멤버들의 제모 실험을 했다.

마지막으로, sns를 통해 각 멤버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깜짝 만남과 식사로 마무리 되었다.

 

요즘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는 조금은 더 깊게 들여다 보기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길을 걸어도, 여행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 겉훑기 식이 아니라 조금 더 깊게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고, 정이 들도록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놀러다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이 한 두 개도 아니고,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웬만한 이야기들을 다 나왔으니 새롭거나, 진정성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힘들다. 그러기에 오죽하면 아이들 노는 걸 다 들여다 보고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남자의 자격> 2013 트렌스 미리 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부한 미션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얼마의 돈 한도 내에서 한 매장 안에서 옷을 고르는 것은 이미 케이블 패션 정보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반복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에서도 옷을 고르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패션 전문가가 평가를 하고 가혹한 평점이 매겨진다. 그저 돈 주고 옷 고르고, 나 어때? 그런 정도로 사람들이 남자의 자격 멤버들의 새로운 패션에 와~하는 탄성을 지르진 않는다.

라운징은 한 술 더 떴다. 뜬금없이 한 시간 앉아있으라니! 그래도 그 한 시간에 각 멤버는 나름 각자의 소회를 말했지만, 그 정도를 하고 '라운징'을 체험했다고 하면 젊은이들이 웃는다. 즉석 만남 역시 주제를 가진 만남의 의미는 탈색된 채 그저 '만남'으로만 남았다.

 

이런 어설픈 체험하기에는 여전히 아저씨들이 이런 것도 하네! 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미 그 비슷한 아이템을 <남자의 자격>에서 여러 번 했었는데도, 여전히 해가 바뀌면 또 이런 것도 하네 이다. 그러기에는 <남자의 자격>의 역사가 너무 길다.

차라리 정말 트렌드를 체험해 보겠다면 한 시간안에 훑어 지나간 트렌드 하나하나를 장기 미션 사이에 하나씩 집어 넣어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 보는 게 어떨까? 실제 그런 트렌드를 즐기는 사람이 보기에 '썩소'가 나오는 겉훑기가 아니라.

특히나 이경규는 새로 들어온 멤버 김준호에게 '콩트'를 하지 말라고 번번히 타박을 하지만, '프로슈머'로서 제모제 체험을 하는 과정은 이경규 버전 만만한 윤형빈, 이윤석을 희생으로 한 콩트가 아닐지.

이경규 식의 익숙하다못해 피로감이 느껴지는 콩트에서 벗어나는 것, 아저씨니까 그러려니 혹은 아저씨니까 이런 것도 하네! 라는 감탄사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이들에게 빼앗긴 시선을 <남자의 자격>이 되찾아 올 수 있는 길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3. 2. 18.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