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예능들이 등장하고 있다. <땡큐>, <행진>, <인간의 조건>까지, 과연 이걸 예능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싶게 다큐인지, 토크쇼인지, 아니면 그저 여행 프로그램인지, 애매모호한 정체성의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저 목마를 땐 뭐니뭐니 해도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이 제격이듯, 맹숭맹숭한 이 프로그램들이 주는 위안, 재미가 은근 만만치 않다.

 

저물녁의 리얼 버라이어티

잠자리를 두고 복불복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에 지면 입수를 해야 한다거나, 우리나라도 아닌 해외 야생에 맨몸으로 던져져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묘미였다. 물론 여전히 주말이면 아이들은 '런닝맨'을 보고, 어른들은 습관처럼 '1박2일'에 채널을 돌리는 집들도 있지만 새롭게 등장한 '아빠, 어디가?'의 도전으로 그 조차도 녹록치 않게 되었다.

'1박2일'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교체되어 살아남았지만 '남자의 자격'은 '박수칠 때 떠나게' 되었고, 새로운 돌파구였던 '정글의 법칙'은 논란의 도가니에서 '진정성' 확보에 고심 중이다. 물론 강호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리얼 버라이어티가 만들어 진다고 하지만, 예전처럼 강호동이라는 이름만으로 그 프로그램의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신자본주의; 무한 경쟁주의'의 대한민국에서 그간 가장 잘 어울리는 예능이었다. 설사 상대방을 속이는 무리수를 써서라도 승부의 레이스에서 살아남는 것, 게임에서 졌을 때 한겨울이라도 찬물 속에 들어가는 혹독한 벌칙을 수행하는 것, 그리고 맨땅에 헤딩하듯 야생에서 살아남는 것은, 한동안 '~에서 살아남기'가 아이들의 베스트 셀러였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삶의 리듬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오락 프로였던 것이다.

그런데, '무한 경쟁주의'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이제 지쳤다. 어찌어찌 어찌어찌 IMF는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도 세상은 여전히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직장인의 삶은 맨날 백척간두요, 명퇴 후에 차린 사업들은 3년을 넘기기 힘들었으며, 젊은이들에게 희망찬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조차도 시들어 버렸다. 그렇게 삶에서 지치고 나동그라진 사람들이 다시 텔레비젼을 통해 삶의 리듬을 복습하는 것은 버겁다. 그래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힐링'이요, 아이들 재롱 잔치다.

 

 

 

맹물같은 예능

일주일의 피로가 몰린 금요일 늦은 밤, 뭘 해도 '땡큐'라는 심심한 <땡큐>를 보노라면 어느새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존다고 해서, 이 프로그램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건 없다. 누군가 뒤로 꿍친 꼼수도 없으며, 복잡하게 꼬인 복선은 더더욱 없다. 그저 집을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곳을 둘러보고, 맛난 것도 먹고, 신기한 것도 체험하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낯선 곳의 정취에 홀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스님이 자신의 첫사랑을 이야기 하고, 30여년을 숨긴 자신의 학력에 대한 거짓말의 댓가를 토로하고, 서로 다른 세 자녀를 준 여인들에 대해 덤덤히 회고한다.

그리고 비록 촉박한 일정으로 서둘러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 놓아야 했지만, 국민 요정 손연재가 아닌, 20살의 삶이 버거운 새내기와 현역 최고령의 프리마돈나의,그리고 자신의 길을 살아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고단함도 접하게 된다.

색다르지도 않고, 마구 엔돌핀을 발산하는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 분위기에 젖어들다 보면, 언젠가 선배와 친구들과 함께 갔던 여행지의 밤에 타오르는 촛불 앞에서 눈물을 적시며 털어놓았던 내 속내와 닮아 친근하다.

형식도 오묘하다. 그저 여행지를 걷는가 하면 제법 예능처럼 함께 체조도 하고, 찬물 입수나 행글라이딩 같은 도전도 한다. 또 그러다 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 또 영락없이 토크쇼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다. 물론 '아버지'처럼 주제는 정해졌지만, 각자의 삶에서 우러난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니, 요즘 문제가 되는 '정해진 각본'의 걱정도 없다. 심지어 하나의 주제가 끝나고 나면, <땡큐 버스>처럼 손에 잡히는 구체적 결과물을 남기니,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에 동참한 거 같은 우쭐함은 옵션이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땡큐>에 적셨다 일어나면 '나도 아버지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며 엉킨 마음이 풀어지는 듯하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다시 살기로 했다는 강수진의 말이 위로가 되어 오늘을 다시 살아낼 힘을 얻기도 한다. '하하호호' 배을 잡고 뒹구는 웃음 대신, 미적지근한 미소로 대신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by meditator 2013. 3. 9.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