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개그콘서트를 봤다. 소파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몸을 베베 꼬면서 지루하게 시청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아이디어가 신선하다'며 감탄까지 하면서 연발 웃음이다. 이 두 사람의 차이가 뭘까? 나는 개그콘서트를 줄곧 시청해 오던 호청자이고, 남편은 간만에 텔레비젼 개그 프로를 본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이 <개그콘서트>의 현실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 아닐까 싶어 남편까지 팔아먹어본다.

 

<개그 콘서트>를 논하기 전에 다음 주면 끝날 <남자의 자격> 이야기를 해볼까?

종영을 앞두고 <남자의 자격>은 그간 남자의 자격이 만난 101명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중이다. 그런데 기존의 멤버들과 달리 개편 때 새로 들어온 김준호와 주상욱을 콤비로 붙여서 가애란 아나운서도 만나고 백담사도 다시 가는데 이건 '회자정리'라기 보다는 거의 새로운 미션 수준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반응이 없어서 종영하는 프로그램 맞나 싶게 두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서 벌이는 해프닝들이 이른바 빵빵 터진다. 저렇게 좋은 콤비를 보내다니! 란 생각이 절로 든다.

김준호와 주상욱이 만난 사람들 중에 새로운 멤버로 거론되었던 김준현도 있었다. 김준현 왈, 내가 남자의 자격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폐지가 되었을까? 라며 우스개를 하는데, 바로 그것이다.

지난 번 개편 때 만약 <남자의 자격>이 눈물을 머금고 과감하게 좀 더 많은 멤버들을 바꾸고 환골쇄신했다면 오늘과 같은 치욕을 맞보았을까 싶다. 더구나 최근 토요일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김준호, 김준현 두 사람이 모두 함께 한<인간의 조건>을 봤을 때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 이윤석은 아내를 만나 당신 때문에 나가라는 눈치도 참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지만, 그의 오랜 굴욕이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의 종영을 한참 앞당긴 건 아니었을까?

1박2일이 시즌2로 거듭났듯이, <남자의 자격>도 익숙한 관계와 거기에서 나오는 뻔한 리액션 등을 벗어던지는 과감한 리노베이션을 했다면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가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종영을 앞둔 아쉬움을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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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콘서트_2013-03-31_(1) "우행쇼 누가 모르는 사람이" 2013-03-31 방송. KBS 찜,  Powered by V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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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다. <개그 콘서트>도.

오프닝을 장식한 코너 '전국구'는 개그 콘서트가 그간 해왔던 패션에 음악을 곁들인 익숙한 아이템이다. 개그콘서트가 잘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미 여성 개그맨 세 명이서 의상학과 여대생이란 컨셉으로 했던 코너의 변종이다. 신사동 노랭이도 요즘 인기있는 작곡가 신사동 호랑이를 빌어 와 코너를 짰지만 내방한 진지한 상담자를 두고 말도 안되는 말 장난과 엉뚱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 역시 개그 콘서트의 특허 개그다.

물론 익숙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개그콘서트 특유의 익숙함 때문에 습관적으로 채널을 일요일 밤이면 kbs2에 고정하는 시청층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시청자가 개그콘서트에 익숙해 진 것과 익숙한 개그는 다른 문제이다. 지금의 개그 콘서트의 개그들은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다. 앞의 코너들은 물론, 말의 유희에 남다른 박영진과 한때 붐을 이루기 까지 했던 최효종은 여전히 그들이 잘 하는 무기로 무대에 서지만, 그들이 들고 나선 칼이 날 선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보면서 그래! 하며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던 느낌이 없다.

개그 콘서트의 큰 축은 콩트에 의존한 코미디와 언어를 통해 해학성을 높인 스탠딩 개그로 크게 나뉘어진다. 콩트가 일상 생활 속의 공감을 소재로 한다면, 스탠딩 개그의 비중은 아무래도 사회를 얼마나 냉철하게 반영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런데, 스스로의 방식에 익숙해져가는 <개그 콘서트>는 생활의 반영도, 현실의 비판에서도 상당히 무뎌진 느낌이다. 또한 코너들이 새롭더라도 그것을 채우는 구성원들의 개그 방식이 한결 같은데서 오는 지리함도 어쩔 수 없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네 가지'가 코너의 진부함을 새로운 네 가지 이원구의 등장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면서 색다른 긴장감을 조성한다거나, 여전히 같은 방식임에도 자신의 캐릭터를 극대화시키는 코너로 승부하는 황현희 등은 익숙함을 뛰어넘고 있다.

<개그콘서트> 시청률 여하에 따라 당장 <남자의 자격>처지가 되진 않겠지만 삶이 퍽퍽한 시대에 시청자들의 맘을 복수극이나 막장 드라마에 빼앗긴다면 직무 유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개그콘서트>만의 익숙함을 새롭게 리뉴얼할 때다.

by meditator 2013. 4. 1. 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