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니?"

<출생의 비밀>의 주제를 단 한 마디로 농축해야 한다면, 아마도 이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여러분,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대답할 것이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래? 밥 안 먹고 다니는 사람도 있나?

<출생의 비밀>의 여주인공, 정이현(성유리 분)도 그랬다. 당장 회사가 뒤집혀 난리를 치고 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홍경두(유준상 분)가 이 말을 했을 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마도 속으론 육두문자를 날리지 않았을까?

 

21일밤 <나 혼자 산다>에는 함께 워크샵을 떠난 무지개 회원 들 앞에 2교시 선생님으로 철학자 강신주씨가 등장해, 밥의 철학을 논했다. 강신주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날 그날 하루를 때우기 위해 먹고 사는데, 이건 밥이 아니다, 사료다 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사료가 밥이 되기 위해서는, 밥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와,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고 부연 설명을 붙인다.

이런 강신주 철학자의 설명에 의거해, 사료를 흡입하고 사는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이라면, <출생의 비밀>의 "밥은 먹고 다니니?"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바쁜 우리에게 '사료'가 아닌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울림이 허왕하듯이, 함께 나누는 '밥'의 의미를 반추하고자 의도했던, '밥' 이상의 욕망의 무가치함을 논하려 했던 <출생의 비밀>은 '사료'의 물결에밀려 허겁지겁 18부작으로 종영하는 성급한 마무리로 종결되었다.

 

(사진; 노컷뉴스)

 

18회, 아마도 이 마지막 회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홍경두와 정이현의 화해의 입맞춤이 아니라, 파킨슨씨 병에 걸려 어린 시절로 돌아간 최석(이효정 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최국(김갑수 분)의 모습일 것이다.

한때 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형을 죽이려 했던 동생, 그리고 그 동생에 의해 반신불수에 어리버리해져 버린 형과, 모든 것을 차지하려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육신조차도 돌보지 못할 처지가 되어버린 동생이 함께 동화책을 읽고, 로봇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더 선명하게 욕망의 무기력한 끝을 정의내리고 있다.

 

'백년의 유산에는 유산이 없고, 출생의 비밀에는 비밀이 없다'는

세간의 우스개처럼, <출생의 비밀>에는 그 어떤 막장의 요소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야수같은 홍경두와 천사같은 정이현 사이에서 이쁜 해듬이가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출생의 비밀이겠지만, 그 드라마 제목에 낚여서 들여다 볼 시청자들이 흡족할 만한 롤러코스터의 극적 흥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차근차근 잃어버린 정이현의 기억을 따라가며, 정이현의 주변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반추해 봐야 하는, 마치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와도 같은, '속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김규완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선명한 '욕망'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접근을 가지고, 종교적이리만큼 집요하게,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늘 김규완 작가가 하고자 했던 바였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주제를 초반에 분명한 방점으로 찍었다, 대성도가와 사랑을 둘러싼, 은조 모와 은조, 효선, 그리고 기훈의 욕망의 파노라마를 적나라하게 제시함으로써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모았다.

반면, 똑같이 인간의 거침없는 욕망에 대해 논하면서도, <출생의 비밀>은 뜻을 알 수 없는 제목처럼,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바를, 홍경두의 기행에, 정이현에 기억 상실 뒤에 숨겨 놓음으로써 이 드라마의 정체를 오리무중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추리적 요소를 가미하여 알고보니 천사같은 정이현이 바로 그 욕망의 도가니에 스스로를 재물로 던져넣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고자 했겠지만, 극의 구조만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결국은 제 풀에 되돌아 오는 기억이라는 어설픈 설정으로 재미도, 추리의 묘미도 살려내지 못했다. 아마도 굳이 시청률의 패인을 따지자며, 그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극의 중반에 이르도록, 이현의 기억 상실의 비밀을 아껴둔 채,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를 헷갈리게 만든 난해함이 극의 발목을 잡았다.

 

(사진; 리뷰스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언니>가 초반에 짜하게 욕망의 잔치상을 벌려놓고, 후반에 수습을 제대로 못해, 초반 시놉만 그럴 듯한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출생의 비밀>은 오히려, 마지막 회의 70여분이 아쉬울 정도로, 줄여버린 2회 분량이 섭섭할 정도로, 끝으로 갈 수록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던 드라마이다. 용두사미였던 전작의 아쉬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해야 할 말을 비축한 주제 의식이 살아있는 드라마였다는 점에서 작가의 성취를 인정해 줘야 할 드라마인 것이다. 적어도 시청률이라 편한 잣대만으로 폄하될 드라마는 아니다.

 

홍경두의 캐릭터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시청률을 깍아먹는 불손한 캐릭터이다.

돈도 없죠, 무식하죠, 다짜고짜 행동부터 하고 보는, 하지만, 마지막 회, 박본부장이, 홍경두의 여름에는 수박, 겨울에는 고구마라는, 뜬금없는 '밥' 타령에 자살을 거둬들였듯이, 김규완 작가는, 욕망을 향한 계산만 넘쳐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처방은, 홍경두와 같은 단순무식한 바보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국민 남편이 되었던 유준상이 탐낼만한 치유의 캐릭터다. 하지만 역설적이고, 난해하다.

줄어버린 2회 때문일까, 홍경두의 바보같은 사랑은 이해가 되지만, 경두와 이현의 다시 되찾은 사랑이 100%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상당히 작위적이다. 하지만, 최석이 구축하려고 했던 욕망의 성채에 아버지 보차 외면한 채 자신을 던지려고 했던 이현의 치료제로 조건없는 사랑을 주는 홍경두가 있는 그림이 그리 싫지는 않다. 그래도 머리 속에 팽팽 계산기가 돌아가는 이 세속적인 세상에, 저 구도가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건 미지수다.

by meditator 2013. 6. 24. 10:06

22일 <불후의 명곡>이 방영되는 시간 이후로 검색어에 '핫젝갓알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혹시 아시는가? '핫젝갓알지'가 무얼 의미하는지?

이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저 멀리 에돌아, 일본의 대표적 만화 중 하나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 대한 설명부터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 <20세기 소년>은 30대가 된 친구들이 다시 만나 그들이 소년이었던 60년대와 현재를 오고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SF 추리물이다.

케이블 QTV에서는 '삼십대가 된 친구들이 다시 만난다는' 만화의 상징성을 따와, 이제는 삼십대 중반이 된, 1세대 아이돌들을 모아놓은 이른바 '기억의 예능' 리얼리티 쇼를 만들고, 그 명칭을 <20세기 미소년>이라고 붙였다. 프로그램의 멤버로는 H.O.T의 문희준, 토니안, 젝스키스의 은지원, 지오디의 데니 안, NRG의 천명훈이 모였다.

이른바 아지트 리얼리티를 지향한 이 프로그램은 한 집에 이들을 모아놓고 같은 시절에 활동을 했지만 사실은 서로 서먹서먹한 면면들을 익혀가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던 멤버들은 어느새 의기 투합하여, 90년대의 자신이 하던 것들을 다시 되새겨 보다, H.O.T, 젝스키스, 지오디, NRG 의 이름을 합친 '핫젝갓알지'라는 기기묘묘한 그룹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고, 그 결실로 <불후의 명곡> 무대까지 서게 된 것이다.

 

 

조만간 슈스케3의 정준영도 등장한다고 하고, 이제 <불후의 명곡> 무대에 허각과 같은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수가 서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던 가수들에게 <불후의 명곡>이란 그 어느 무대보다도 그들의 장기를 뽐내기에 이물감이 없는 곳일테니까. 하지만, '핫젝갓알지'란 이 기묘한 이름의 그룹은 성격이 다르다.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의기투합하여 그룹을 만들자고 하며 '핫젝갓알지'라고, 그들이 속했더 그룹 명을 모아 만들 때만 해도, '장난해?' 라며 넘겨버렸는데, 농담이 진담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오디션도 아니고, 일종의 프로그램의 기획인 프로젝트 그룹인데, 그 그룹이 공중파 무대에 서다니! 기획은 케이블이 하고, 그 과실은 공중파가 따먹는 모양새다. 물론 그 과실 덕분에, 핫젝갓알지가 출연한 <20세기 미소년>은 어부지리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홍보한 셈이다.

 

공중파의 화제가 된 인물들이 케이블 등에 불려다니며 토크쇼에 출연하고, 각종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인기를 번식시키는 것이 그간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케이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만들어 지면서, 이젠 슬슬 그 과정이 역류되는 조짐이 보이는 중이다.

20일 <해피투케더>에는 케이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스터 쉐프 코리아>의 강레오 쉐프와 <올리브 쇼>를 비롯한 각종 요리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레이먼 킴과 그와 함께 <두 남자의 캠핑 쿡>에 출연하고 있는 JK김동욱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해피 투게더>가 케이블의 인기 출연자들을 모신 것이 이때만이 아니다. 이미, <2013 테이스티 로드>의 박수진, 김성은이 출연자로 등장해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야간 매점을 꾸려낸 경험이 이미 있었다.

 

(사진; 스포츠 월드)

 

<해피 투겓더>만이 아니다. <우리 동네 예체능> 역시 그룹 신화를 초빙해, 우리 동네 예체능 멤버들과 볼링 대결을 벌였다. 여기서 그룹 신화는 그저 장수 아이돌 신화라기보다는, 이미 몇 년에 걸쳐 JTBC에서 <신화 방송>을 이끌었던 예능 고수 신화 버전이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라디오 스타>를 통해서도 당신 누구요? 했던 케이블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젠 당당하게 공중파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화요일, 수요일에 걸쳐 <화신>, <라디오 스타> 등 토크 프로그램의 MC로 복귀해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것 같은 김구라의 귀환도 사실, JTBC의 <썰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MBC의 <진짜 사나이>나, KBS2의 <가족의 탄생>, <맘마미아> 역시 TVN의 <푸른 거탑>이나, <동치미>, <황금알>과 같은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케이블의 약진, 그리고 저변을 넓혀가는 종편, 공중파는 그저 시청률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면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케이블과 종편의 프로그램에게 이미 한 수 접고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른 설레발을 쳐본다.

by meditator 2013. 6. 23. 09:48

브로맨스란?

BROTHER와 ROMANCE가 합해진 말로, 작품에 등장한 남성들 사이의 애정 모드를 말한다. 그렇다고 이게 노골적인 동성애 코드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마치 '안되요, 되요, 되요'라는 듯이, 겉으로는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도, 미묘한 정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것이, 요즘 자주 화면을 통해 조우하게 되는 브로맨스의 실체이다.

 

(사진; 뉴스 핌,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 중)

 

알고보니, 니가 진짜 사랑이야!

6월 19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2013 단막극 시리즈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는 전형적인 브로맨스 스토리의 구조를 띤다. 불치병에 걸린 친구 경숙(이기광 분)이 등장하고,(여기서 경숙은 남자 고등학생이다) 그의 죽기 전 소원인 첫사랑을 구해주기 위한 친구 치현(이주승 분)의 고군분투가 중심 스토리이다.

치현은 경숙이 한눈에 반한 여고생 국화(전수진 분)에게 경숙을 대신해 사랑의 메신전 역할을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는 치현 역시 경숙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6개월 만에 죽을 거라던 친구가 죽지 않고, 그래서 함께 하던 또 다른 친구마저 손을 놓는 상황에서도 지고지순하게 경숙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치현이 국화라는 여자의 등장으로, 친구 경숙을 미워하고 외면하기에 이르는데....... 하지만, 자신의 마음조차 숨기고 죽을 지도 모를 친구의 첫사랑을 이어주고자 했지만, 그 보람도 없이 친구 경숙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자신이 첫사랑과 함께 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은 다 너와 함께 했었다고, 니가 나의 첫사랑이라는 쪽팔리는 고백과 함께.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경숙이 마련해 놓은 정장을 입고 첫 소개팅 자리에 나간 치현, 왜 여자 친구가 없냐는 질문에, 배시시 미소를 띠고 대답한다.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해서요'라고.

 

애타게 첫사랑을 구했는데, 정작 알고보니 내 옆에서 한결같이 나를 지켜주던 네가 바로 나의 사랑이었다. 단지 그 네가, 남자였을뿐! 이것이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의 요지인 것이다. 이걸 동성애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아직 이성과의 사랑이 성숙되지 않은 시점의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랄까.

사춘기 청소년들의 경우, 분명 2차 성징까지 분명하게 나타난 상황임에도, 정서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혹은 사회적으로 조성되지 않은 이성과의 관계로 인해, 동성에 대해 친숙한 감정 혹은 관계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학교 2013>에서 고남순(이종석)과 박흥수(김우빈)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 내에서, 자신때무에 꿈을 접어버린 흥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고남순의 박흥수 해바라기는, 브로맨스의 또 다른 전형이다.

또 다른 유형도 있다. <몬스타>의 설찬(용준형 분)과 선우(강하늘 분)의 경우이다. 세이(하연수 분)가 애증이라 오해를 할 정도로 두 사람은 심하게 사사건건 대립한다. 성격도, 환경도, 지금의 위치도 다른 두 사람은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하염없이 세이를 기다리던 선우와 함께 했던, 그리고 나란히 피아노를 연주하던 친구 사이였다. 드라마는 세이에 대한 설찬의 마음을, 세이가 오해한 것으로 에피소드를 엮었지만, 분명, 설찬과 선우의 깊은 해원을 미묘한 감정으로 양념치듯 가져가려고 한 의도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성장물에서 이성간의 사랑과 함께 혹은 최근에 들어서는 그 보다도 훨씬 더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브로맨스'이다.

 

(사진; 미디어스, <학교 2013> 중)

 

<몬스타>에서 팬픽을 열심히 쓰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심은하(김민영 분)가 브로맨스의 존재 이유를 설파한다. 아이돌 팬픽에서 브로맨스 물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오빠'들이 다른 이성과 사귀는 것은 차마 용납할 수 없고, 하지만 뭔가 로맨스는 만들고 싶을 때, 그 대체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브로맨스'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채널권과, 시청률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들을 위해 등장하는 브로맨스라는 결론이 무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한때,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후회하지 않아>와 같은 게이 애정물에 여성들이 열렬하게 호응했던 반향으로 보건대 최근 빈번하게 등장하는 '브로맨스'의 설정의 노림수가 번지수가 아예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조폭 영화 <신세계>의 관객 중 상당수가 여성이었고, 그 영화를 보고 나온 상당수가 폭력을 둘러싼 암투보다도, 정청(황정민 분)과 이자성(이정재 분)의 미묘한 관계를 더 많이 언급한다는 점이나, <신세계>의 텔레비젼 버전 <무정 도시>에서 역시나 박사 아들이라는 김현수(윤현민 분)과 정시현(정경호 분)의 미묘한 감정들이 남녀 주인공의 애정 관계 보다 더 회자가 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노골적 게이물은 아니지만, 사랑인 듯, 우정인 듯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브로맨스 설정이 어느덧 중요한 흥행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노정하지 않은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브로맨스 물이란, 다른 한편에선 아직 감정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청소년기의 상태를 그대로 이어가는 미성숙한 청소년기를 이어가는 오늘날의 키덜트들의 감정의 반향일 수도 있고, 취업과 생존의 틈바구니에서 사랑 따윈 귀찮아 라고 하는 88만원 세대의 생존적 번거로움의 도피처일 지도 모르겠다. 주변 환경에 따라 암수가 구분되는 파충류들이 환경 오염으로 인해 수컷만이 잔뜩 생성된다는 오늘날의 변칙적 생태계처럼 말이다.

by meditator 2013. 6. 22. 09:44

따단 따단~"하고,

상어의 OST '천국과 지옥 사이'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8회까지 본 시청자들은 이제 다음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안다. 조해우 역의 손예진이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이수를 그리워 할 것이고, 카메라는 한껏 그런 그녀를 훑을 것이라는 것을, 물론 그 자리에 이수 역의 김남길이 있다면 예의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바라볼것이다. 또 정동하의 '슬픈 동화'가 나오는 장면은 어떤가. 그 음악이 흘러나오면 김남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같은 표정이 마구마구 들이대질 것이다.

 

이러단, 스타급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클리셰가 생길 듯하다. 아니, 이미 만들어 졌나?선수를 친 것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였다. 오죽하면 선배 윤여정이 흉을 볼 정도로, 한 회의 상당 부분을 두 남녀 배우의 풀샷에서 클로즈 업에 할애했다. 후보정이 드라마의 계약 조건이었단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던 송혜교는 그녀가 선전하는 화장품들의 매진 사태를 불러오는 완판녀가 되었다. 제대 후 한동안의 공백기를 가졌던 조인성 역시 슬글슬금 고개를 쳐들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켜 버렸다.

물론 멜로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것은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이다. 거기에 어떤 직업에, 어떤 상황이건 상관없이 남녀 주인공은 이쁘고 멋있어야 인기를 끄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는 더더욱 주인공이 돋보이도록 드라마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경우는 근자에 보기 드문 멜로 드라마의 성공 사례를 보여줌과 동시에, 뮤직 비디오 같은 화면으로, 과도한 두 주인공의 편애라는 부정적 클리셰의 등장으로도 사례를 남긴 경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상어>가 고스란히 그 전철을 밟고 있다. 마치 할 말이 없을 때마다 옛날 이야기를 꺼내듯, <상어>는 적어도 한 회에 한 두번 남녀 주인공이 감정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물론 이런 과도하게 아름다운(?) 감정씬들에 이유가 없지는 않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경우, 공식적으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남매 사이이고, 하지만 남자 주인공의 목적은 여자를 이용하여 돈을 뜯어 내는 것이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사건 보다 두 사람이 맞부딛치며 빚어내는 미세한 균열을 콕 찝어 내는 것으로 설명해 내려 했고, 그 지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즉, 상식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관계인데, 사랑하게 되는 그 '아이러니'의 미학을 섬세하게 다룬 것이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상어> 역시 마찬가지다. 해우와 이수는 청소년 시절에 서로 좋아하던 사이였지만, 이제 12년이 흘러, 해우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이수는 해우의 가족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더구나 그 수단으로 해우를 이용하려고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상대방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고 눈빛이 흔들린다. 더구나, 드라마가 진행되어 해우가 이수가 누구라는 걸 알고,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면, 그 마음은 진정성이 있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불륜이 되는 것이다. 이 위험한 설정의 당위론을 만들기 위해, 드라마 <상어>는 해우와 이수의 12년을 무색하게 만드는 감정들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데 공을 들인다. 마치 불륜이라고 설정은 해놓았는데 막상 그렇게 벌여놓으면 욕을 먹을 게 두렵다는 듯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넘치는 주인공의 편애를 통해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과 달리, 아직까지 상승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어>의 시청률을 보건대 <상어> 제작진의 이 의도가 성공한 듯 보이지 않는다. 아니, 역으로 이제 8회에 걸쳐 여전히 똑같은 표정, 똑같은 흔들림이 반복되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고, 심지어 12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저렇다는게 좀 오바아냐? 라며 반항심까지 밀려오기 시작한다.

 

<상어>를 이끌어 가는 건,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으로 봤을 때 크게 두 가지이다. 그것은 해우와 이수의 세간의 도덕이나 법률적 제도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사랑 하나와, 이수의 복수이다.

복수는 정해 놓기라도 한 듯 한 회에 하나씩 사건을 던진다. 7회에 뜬금없이 배달된 사진을 찾아 갔더니, 이수같은 소년이 튀어나오는가 했더니, 8회엔 그 소년이 이수가 아니란다. 하지만, 영악해진 시청자들은 안다. 7회에 뜬금없이 등장한 사진의 장소라는게 이 드라마의 협찬을 위해 등장한 일본의 모처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장황한 시간을 드라마가 허비하고, 8회에 이수가 아니라는 그 엔딩 역시 얼굴을 다친 이수라는 사실이 또 숨겨져 있음을.

그러면서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다음 회면, 다음 회면 뭔가 짜~하게 무시무시하 복수가 시작될 거 같은데, 이렇게 한 회에 하나씩 시시껄렁한 떡밥이나 던지는 거 보니, 뭐가 아예 없는 거 아냐? 그게 아니라, 12년을 절치부심했다며 해우를 보자마자 저렇게 흔들리는 걸 보니, 이수는 복수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 아냐? 라는.

 

<상어>의 제작진은 폼나게 복수도 하고 싶고, 멋들어지게 멜로도 해보이고 싶은데, 8회를 건너온 지금, 멜로는 하냥 하는 소리요, 복수는 심드렁해지는, 그래서 호청자들 조차 이 드라마 내가 기대한 그 <상어> 맞나 라는 의심이 스멀스멀 솟아나기 시작하고 있다.

손예진의 사랑스러움과, 김남길의 치명적 매력만으로 버텨가기엔 복수극 <상어>에 대한 기대가 크다. 부디 숨겨진 카드가 있다면, 아끼지 말고 확확 속시원하게 풀어내시길~

by meditator 2013. 6. 19. 09:51

kbs2에 <밴드 서바이벌 탑밴드>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첫 시즌에 신예 밴드 <톡식>이 아이돌 팬덤과도 같은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 무난하게 우승을 차지하고, 게이트 플라워즈처럼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위용을 떨친 데 힘입어, 시즌2에 돌입, 칵스, 몽니에서 내 귀에 도청장치 까지 내로라하던 우리나라의 명품 밴드들이 출격했었지만, 결국 늦은 밤, 늦은 시간에 편성되어 대중적 관심을 유도해 내지 못한 채 낮은 시청률로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게 된 프로그램이다. 한다하는 밴드들을 끝판왕처럼 모아놓고, 정말 끝판이 되어버린 <탑밴드>를 보면서, 새삼 대한민국 공중파의 존재 이유를 되새김질 해보게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2012년 10월에 종영된 이후 더 이상 명맥이 이어지지 않은 밴드의 음악을 듣고, 아니 보고 싶으면 이제 매주 화요일 밤 m.net을 보면 된다. 밴드들의 진검 승부, <밴드의 시대>가 방영되니까.

 

1. 다양한 장르 음악이 듣고 싶나?

공중파에서 사라진 밴드 음악이 m.net을 통해 부활한 것은 어느모로 봤을 때 꽤나 적절한 자리 찾기인 듯하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만큼 공중파의 한계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틈에 공중파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방송에서, 누군가(예를 들어 중년의 아줌마라거나)가 보아야 살아남는 방송이 되어간다.

 

(사진; 밴드의 시대에 출연한 브로콜리 너마저, 옥상달빛; 스포츠 월드)

 

낮은 시청률로 밀려났던 밴드 음악은, 윤도현 밴드가 mc를 보는 <밴드의 시대>로 되살아 났다. 우리가 기사로만 미국에서 아이돌만큼 인기를 끌었다던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화려한 음악도, <응답하라 1997>을 통해 전설이 되어버린 델리스파이스의 매력적인 그리고 대한민국 대중 음악상에 빛나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 발품을 팔아 홍대 클럽이나, 페스티벌을 찾지 않아도 그들이 무대에서 만개하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공중파의 <탑 밴드>나 <밴드의 시대> 모두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탑밴드>가 어설픈 멘토 시스템을 통해 기성의 밴드조차 아마츄어로 대접해 시즌1에 참가한 이미 널리 알려졌던 게이트 플라워즈의 참여 논란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혹은 시즌 2에 그저 많은 밴드를 모아놓는 것만으로 화제성을 끌어내려 했던 것과 달리, <밴드의 시대>는 매회 주제에 어울리는 밴드들을 초빙하여 서바이벌을 벌임으로써 각 밴드의 특색을 충분히 알릴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18일, 오늘 예정된 밴드들은 '청춘 힐링 밴드'로 대표되는 '브로콜리 너마저'와 '옥상 달빛'이다.

<밴드의 시대>만이 아니다. 힙합 음악이 듣고 싶으면 시즌2에 접어든 <SHOW ME THE MONEY>를 보면 된다. 신예 래퍼와 기성 래퍼가 합을 이뤄 서바이벌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은 시즌 1을 통해 가리온 등 다양한 힙합 래퍼들의 참여를 통해힙합 음악을 널리 알리는 한편 더블 케이와 로꼬의 스타 탄생을 이뤄냈다.

시즌 2는 심도 깊은 힙합의 대결을 만들어 내기 위해, D.O크루와 메타 크루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고, 양 크루의 대표격인 이현도와 MC메타가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해 프로그램을 멤버를 뽑고 음악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밴드와 힙합이란 장르들이 M.NET이라는 음악의 본령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자신만만하게 펼쳐보이고 있는 중이다. 아, 진짜 노래 잘 하는 사람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시즌2까지 안착시킨 <SHOW ME THE MONEY>이전 프로그램 <VOICE OF KOREA>를 찾아보면 된다. M.NET엔 슈스케랑 엠카운트 다운만 있는 게 아니다.

 

(사진; 봄,여름, 가을, 겨울의 숲에 출연한 한대수; 스타 투데이)

 

2. 뮤지션이 궁금하다면?

물론 뮤지션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M.NET의 프로그램이라면 우선 알려진 것으로, <비틀즈 코드>가 있다. 이른바 '병맛'이라 하여 이 프로그램 우습게 여길 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라디오 스타>가 거기에 출연한 사람들 띄워 줄 수 있다 한들, 그들의 음악에 대해 희화화시키든, 우격다짐으로 갖다 붙이든, 출연자의 음악을 이만큼 훑어서 다뤄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제목 그대로, 이 프로그램은 그 특유의 코드가 맞아야 방영되는 시간 내내 리모컨을 집어 던지지 않고 지켜볼 수 있다. 또 가면 갈수록, 시즌이 거듭하면 할 수록, 음악 보다는 뒷담화와 스캔들에 방점을 찍으며 <라디오 스타>의 아류로 스스로 내려가는 아쉬움 역시 어쩔 수 없다.

그에 반해 지그시 자신이 좋아하는, 좋아했던 누군가의 삶과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면,

수요일 밤 12시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김종진, 전태관과 함께 음악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프로그램 제목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숲>이듯 나들이라도 나온 듯 게스트와 함께 조촐하게 펼친 화면은 소박하지만, 프로그램의 내용만은 대한민국에 딱 하나 밖에 없는 초청한 게스트의 음악 본령을 심도깊게 따라가는 음악 토크쇼이다.

초청한 게스트가 패티김이 되었건, 한대수가 되었건, 김완선이 되었건, 그들은, 그저 연예인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선배이자, 동료로 대접받으며 자신들의 음악을 노래하고 논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의 음악이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멋들어진 연주를 통해, 요즘 대세라는 '어반자카파'의 조현하의 목소리를 통해 재탄생되는 것도 맛볼 수 있다. 뮤지션을 뮤지션이 대우받는 시간, 당연한 거지만,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예능 프로그램을 나가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아주 드문 소중한 시간이다.

by meditator 2013. 6. 18. 10:39

"군대리아라는 거 알아?"

"그럼, 그걸 왜 몰라?"

""너도 빵 안에 쨈이랑, 다른 거랑 막 섞어 넣어서 먹어?"

"어휴, 아무리 군대라도 난 그건 못먹겠더라."

"우유에다 적셔 먹기도 하던데?"

"응, 그건 맛있어."

그렇다. 이 대화는 군대 간 아들과 엄마가 <진짜 사나이> 매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아들이 군대 간지 어언, 5개월이 지나가고, 야, 이제 16개월만 더 하면 돼! 하고 저도 나도 화이팅을 외치지만, 올 한 해를 보내고도, 고스란히 내년을 헌납해야 민간인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안쓰러움과 달리, 군대의 생활을 잘 모르는 에미는 매주 엄마를 생각하며 전화를 걸어주는 아들과 이야깃꺼리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맨날 해봐야 휴가 언제 나오냐? 아프지는 않냐? 그러던 엄마였는데, <진짜 사나이>를 보고 나서 자꾸자꾸 할 이야기가 생긴다. 엊저녁에도 아들 녀석이 전화를 했을 때 마치 <진짜 사나이>에서 유격 훈려을 할 때라 졸지에 작은 아들 녀석은 전화통에 대고 텔레비젼 중계를 하고, 군대에 간 녀석은 그 틈을 타서 자신의 유격 경험을 뽐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대화가 가능했겠는가.

 

하지만, 이제 와서 이 프로그램 덕분에 아들과의 대화가 풍성해 졌다고 해서 처음부터 <진짜 사나이>를 즐겨 보았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386세대인 이 사람은 고등학교 다닐 때 여차하면 선착순부터 시키거나 출석부가 반으로 부러져라 두들겨 패는 선생님한테 교련 수업도 좀 받아봤었고, 대학에 들어와, 남학생들의 이른바 '병영집체 훈련' 반대를 지켜보기도 했었던 세대다. 그러기에, 군사적 훈련 시스템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목도한 세대로, '군'자가 들어간 그 무엇에도 저항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세대인 것이다.

그러기에, tvn의 <푸른 거탑>을 시작으로 해서, mbc에서 <진짜 사나이>를 방영한다고 했을 때, 그 잠재되어 있는 거부감이 불쾌감의 형태로 우선 드러났던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이성을 가장 느슨하게 만드는 예능의 형태로 '군사 문화'가 '침투'한다는 사실에 막연한 분노조차 느꼈었다. 게다가, <푸른 거탑>이 흥하자, 얼른 그 과실을 따먹기랃 하듯 만들어진 <진짜 사나이>란 프로그램에는 더더욱 '아류'이상의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386이니, 민주화 세대니 버팅겨도, 세월은 가고, 정작 내 아들조차도 군대를 가는 상황은, 언제나 그래왔듯, 내 아들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해 다르게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고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자꾸 <진짜 사나이>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사진; 동아일보)

 

물론, <진짜 사나이>를 함께 보는 고3짜리 우리 아들이, 군대 가서 유격 훈련을 잘 하려면 어느 정도 체력은 키워야 겠다고 다짐을 하듯,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진 병영 생활은 생소하고, 때로는 저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데 어느 틈에 우리는 그걸 보고 웃고 있다.

'강제 징집'이라는, 군대가 대학생 제재의 한 형태이던 시대로 부터, 이제 군대가, 군대 생활이 희화화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다.

6월16일 <진짜 사나이>에서 유격 훈련 중 웅덩이에 꼿힌 상대방의 깃발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다른 팀의 아홉 명의 군인들이 아비규환의 육박전을 벌이는 모습은 생소하지만 전혀 이질적인 정서는 아니다. 이제 이 사회에서 무언가를 쟁취하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번번히 뉴스에서 여름방학 때마다 해병대 훈련에 합류하는 수험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을 보여주겠는가. 해병대 정신 정도는 있어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상징 아니었는가 말이다.

번번이 훈련만 하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몸이 따라주지 못해 낙오를 하는 샘 해밍턴의 모습 역시 낯설지만은 않다. 전체가 '갑을 컴퍼니'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을'의 존재는 시간이 가도 진급하지 않는 이등병이나 마찬가지니까. 훈련을 제대로 숙지하지못해 머리를 박는 샘 해밍턴이나, 잘 할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신병 박형식의 모습은, 그래도 언젠가 고참이 될 수 있는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의 신>에서, '내가 왜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는지 알아?'라며 장규직에게 모멸을 받았던 정주리의 삶은 오히려 보장된 진급이 대기하고 있는 군대보다도 못하지 않나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제 맘 편하게 주말 저녁 <진짜 사나이>를 시청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군대가 우리 곁으로 친근하게 다가와서가 아니라,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삶이 군대 곁으로 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에 군대로 간 연예인들을 마치 내 사회 생활의 동료처럼 호불호를 가지고 재단하고 있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장담한다. 남자가 군대 다녀오면 사회 생활은 잘 할 꺼라고.

<정글의 법칙>으로 부터, 이제 <진짜 사나이>까지, 이른바 '야생 리얼 체험 버라이어티'는 한편에선 보다 자극적인 것을 찾아가는 예능 모색의 극한치이지만, 또 한편에선 그 정도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야생'보다 더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글픈 오락거리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3. 6. 17. 09:38

멤버들의 집을 찾아간 제작진은 다짜고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모습에서부터 카메라를 들이댄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이를 닦는 박성호, 알뜰하게 비누칠을 하는 동안은 샤워기를 잠근 김준현, 옷을 벗고 있다 민망하다 하는데도 들이민 카메라는 집요하게 화장실에서 물을 소비하는 멤버들을 찍어댄다. 그러자, 눈치빠른 김준현이 말한다. "세살 먹은 애도 알겠다. 이번엔 물이지? 물없이 살기지?"

그간 원산지 알고 먹기를 통해 푸짐한 먹방을 즐기고, 친구 찾기를 통해 모처럼 하하호호 친구들과의 여가를 즐겼던 <인간의 조건>이 다시 그 본연의 '~없이 살기' 미션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 더운 여름에, '물없이 살기'

굳이 '물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을 멤버들이 다 모인 오프닝에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지난 번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에서 하루를 쫓아다니며 쓰레기를 모아 보여준 것만으로도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이 설명되었듯이, 그저 아침 나절 멤버들의 준비 과정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우리가 물을 얼마나 하염없이 낭비하고 사는가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이를 닦는다든가, 물을 틀어놓고 샴푸 거품을 낸다든가, 얼굴에 비누칠을 한다던가, 그 '물'이란게 내가 쓰면 '줄줄줄' 새어나가는 걸 모르다가도, 남이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고 쓰는 걸 보면, 몹시도 아까운 요물이다. 그래서 두 말할 필요 없이 <인간의 조건>이 내건 '물없이 살기' 미션엔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하루에 생활을 하면서 물이 얼마나 필요할까?란 제작진의 질문에, 멤버들은 처음엔 그저 마시는 물만 생각하다가 하나하나 자신들이 소비하는 물을 꼽아보고는 깜짝 놀란다. 역시나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도 그랬듯이 당장에 걸리는 건, 화장실 문제 부터다. 하지만 그것을 뺀다해도, 우리 생활 속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각자 필요한 물을 말하라고 했을 때, 김준현이나, 김준호처럼 자신들은 안씻고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부풀려 대며 많은 양을 요구한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제작진이 제시한 물의 양은 단, 20 L 뿐이다. 이것은 2006년 UN(국제연합)이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의,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의 양이다. 그리고 등장한 물통을 보고 멤버들은 경악한다. 겨우 이걸로 하루를 버티라니!

그저 최대한 마시는 걸 줄이면 되겠거니 했던 '물없이 살기' 미션이었지만, 미션 수행에 들어가면서 이 미션이야 말로, 미션의 진검승부 같은 것이라는 걸 멤버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우리가 생활 하는 그 모든 곳에 물이 없는 곳이 없으니 말이다.

식당에 들어가 외식을 해도 기본적으로 6L 물이 차감당한다. 거기에 먹는 음식에 따라, 하다못해 동치미나, 음료수를 먹으면 양이 추가되는 건 물론이다. 먹는 건 괜찮겠거니 했는데, 물이 없으면 당장에 밥도 지을 수 없고, 어떤 음식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기발하게 물없는 카레를 해보는데 먹기는 먹지만 뻑뻑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뻑뻑함의 갈증을 오이로 달래는 밖에.

먹는 건 약과다. 먹고 나서 설거지도 아끼고 아끼니, 한 통의 물로 해결했다 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샤워는 어쩔 것인가, 멤버별로 거품이 안나는 비누 사용하기에서, 물수건으로 닦아내기, 얼굴 씻은 물로 발 닦기 등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그나저나, 세탁은 빼주는 건가? 보고 있는 시청자들 머릿 속에 제 먼저 이런 저런 물이 필요한 곳이 떠오른다.

그러나, 1월부터 시작해서, 5개월 여 달려온 <인간의 조건>은 이제 각자 캐릭터가 구축이 되고, 여섯 개그맨들의 가족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어떤 미션을 들이대도 여유롭게 받아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듯 하다.

이 더운 여름에 꾸질꾸질해 질 수 밖에 없는 '물없이 살기'란 미션을 받아들고도, 이젠 여섯 멤버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여유를 부린다. 처음, 돈없이 살거나, 쓰레기 없이 살기 때만 해도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떤 기발한 방법이 있을까 각자 궁리하느라 바쁘다. 김준호처럼 난 물을 안마셔도 돼, 하면서 버티기 방법을 쓰는 우격다짐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정태호처럼, 미션의 취지를 생각해 보며, 그저 안쓰는 게 아니라, 쓰되 쓰는 방식을 달리하는 모범 답안형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이 여름에 '물없이 살기'란 미션은 꽤나 버겁고 지난한 미션임에도 그것을 받아든 여섯 멤버들은 이제 그간의 미션의 내공으로 지혜롭게 모색해 나간다. 물없이 머리 감을 수 있는 샴푸나, 손 세정제에서, 언젠가 1박2일에서 봤던 물없이 만들 수 있느 카레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돌출한다.

그런가 하면, 각자 20L의 물이 주어지자, 대뜸 누가 얼마나 쓰는가에 따라 '왕'을 정하자며 게임을 벌이고는, 미션의 결과를 유쾌한 '왕 놀이'로 마무리 짓는다. 미션이 고난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도전하는 즐거운 게임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사진; osen)

 

물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 맛이 한결 상실된 그 예전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을 보며 느꼈던 묘미를 <인간의 조건> 미션 수행을 통해 맛보게 된다.

처음,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공익 광고'같은 모습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면, 5개월 여를 지내면서, 이제는 '예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재미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이젠 그들이 개그콘서트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석에서 환호가 울려나올 만큼, 그들이 그저 먹기만 해도 정겹고, 어울려 부등켜 안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5개월의 숙성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돈없이 살기' 등 ~없이 살기 미션을 통해, 난감한 미션을 수행하는 내공이 생겼다면, '원산지 알고 먹기'나, '친구 찾기'를 통해 멤버들이 합을 이뤄내는 시너지에 대한 확인을 한 듯하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없이 살기' 미션은 분명 목적은 '공익'이되, 그 내용은 한결 여유롭고, 풍성한 '예능'이다.

by meditator 2013. 6. 16. 09:52

변함없이 금요일 밤 찾아드는 <땡큐>의 6월14일 방송 예고는 심상치 않았다.

배우 김성령, 방송인 김성경 자매, 2년 만에 만나다! 최근 제 2의 전성기를 누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배우 김성령과 그녀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한때 sbs뉴스 앵커까지 했던 방송인 김성경이 싸웠었나? 낚시였든 아니든 예고를 본 시청자들은 당연히 그들의 가족사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요즘, 연예인들의 시끌벅적한 가족사로 인해 연일 기사가 올라오는 시점이라 이건 또 뭐지? 라는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고.

 

2년만에 아니 정확하게 세자면 1년 7개월 만에 강원도 산골짜기 외나무 다리, 아니 외징검다리에서 만난 자매의, 아니 언니의 첫 마디는 다분히 감정이 실린 '야!" 였다. 하지만 그런 언니가 무섭다는 동생도 얼굴 표정으로만 보면,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다며 버팅기는 거 같았다.

 

mc차인표가 자리를 피해주며 두 사람이 '결자해지' 하라는 사연인 즉 그렇다.

동생 김성경이 mbc<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는데, 애초에 나갈 때는 전혀 언급할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언니와의 불화, 2년간 연락 두절을 <라디오 스타>mc들의 낚시에 의해 까발리게 된 사연이다.

이 사건(?)에 대해 동생은 오늘 만나서 이야기 하려고 했다. 본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로 오히려 자신에 대해 사람들은 소탈하고 솔직하다고 이야기해 주더라 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하지만 언니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너랑 나랑 사이가 안좋아도 그렇지, 방송에서 할 이야기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이야기가 있지, 언니라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불쾌한 건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무려 4개월 동안 그에 대해 해명 한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며 조곤조곤 따진다.

이런 사연을 보다보면,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자기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일이 일어난 양, 감 놔라, 배 놔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에이그, 그저 내리 사랑이라고 동생들은 지 생각 밖에 안해' '언니란 사람 저 꽁한 것 좀 봐, 섭섭했으면 먼저 전화해서 풀면 되지, 이날 이때껏 저러고 있냐?'라는 식으로.

 

(사진; osen)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지극히 사적인 생활의 일부분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방송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시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송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공인'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숙명같은 것이다.

<땡큐>에서 보여준 <라디오 스타>의 자료 화면은, 김성경이 자신도 모르게 확 내뱉은 언니와 사이가 안좋다, 안만난다 라는 말에 환호작약하며 드디어 한 껀 했다라며 좋아하는 mc들이었다. 그리고, <땡큐>에 섭외가 들어왔을 때 김성령이 동생 김성경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은 세상에 까발려진 자매의 불화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역시나 방송이라는 '동네방네 확성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젼이 우리 거실 가운데를 따악 차지하고 들어앉은 시점부터, 그리고 이제 내 손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 폰 덕분에 더더욱, 사람들은 내 친구나 내 이웃의 속내 보다 연예인들의 속사정에 더 빤하게 됐다.

아침 방송만 틀면 한다하는 연예인들이 번갈아 나와 그들의 자서전을 줄줄이 읊고, 밤늦은 시간 예능에선 기사로만 보았던, 혹은 풍문으로 들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해명된다. 그래서 친구랑 만나 할 얘기가 끊어져 서먹한 시간을 채워주는 풍성한 이야깃 거리를 제공,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친구를 만나, 그의 안부 대신 모 연예인의 사연을 줏어담기에 바쁘게 되었다. 방송들은 발빠르게 출연한 연예인이 실수로 흘렸건 그 사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건 말건 상관없이 새로운 소식 하나라도 건져 프로그램의 낚시밥으로 시청자들에게 던져주기에 바쁘고, 그걸 해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송 프로그램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화요일 밤 <화신>에는 결혼을 앞둔 장윤정이 출연했다. 제 아무리 결혼을 앞둔 신부라지만, 그녀의 불편한 가족사를 훤히 아는 시청자가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온전히 즐기기엔 불편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 말미에, 이런 이야기 하는 거 자신은 싫어한다. 하지만 이거 밖에 할 이야기가 없다라며, 다른 이야기에는 그저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라는 언급에, 어쩌면 장윤정이 <화신>에 출연한 이유는 바로 저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동생과의 불화가 먼저 기사화되고, 그걸 해명하기 위해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그걸 본 어머니와 동생이 종편 프로그램에서 그걸 반박하고, 다시 그걸 마무리하기 위해 장윤정은 <화신>에 출연하고.

 

연예인 한 사람의 개인사를 해명하고 반박하는데, '공적'인 방송 매체가 이용이 되고, 우리는 그에 대해 그 어떤 불쾌감 없이, 마치 알 권리를 누린다는 듯 그걸 소비한다.

하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누군가의 속사정에 우리의 귀와 눈이 기울여져 있는 동안, 마치 어떤 정치적 사건을 덮기 위해 누군가의 가십을 풀었다는 음모론처럼, 미래의 내 일이 될 지도모를, 누군가의 가슴 아픈 속사정들이 덮어 질지도 모른다는 진실이다.

by meditator 2013. 6. 15. 09:48

<여왕의 교실>은 어려운 드라마이다.

학교 체육 시간, 형식적으로 행해지는 호신술 교육을 무의미하다고 일갈하는 마여진 선생(고현정 분)에게 학생 오동구(천보근 분)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러자, 마여진은 당당하게 말한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도망가는 것이거나, 상대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그러자 다시 오동구는 묻는다. 도망가기도 싫고 굴복하기도 싫으면 어떻게 하냐고? 마선생은 대답한다. 도망가기도 싫고 굴복하기도 싫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굴복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마선생의 단호한 이 결론에 늘 중학생 형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오동구는 주먹을 그러쥔다. 그리고 알고보면 자기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오동구를 괴롭혔던 형들의 실체를 깨닫고, 그들이 질려 달아날 때까지 덤벼 그들을 물리친다.

드라마가 이렇게만 되면 그래도 마선생의 방침을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신이 난 오동구는 마선생을 존경한다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자고 반 아이들을 독려한다. 그런데, 그런 오동구에 대해, 마선생은 가차없이 그의 실체(?)를 폭로한다. 오동구를 낳은 10대 엄마가, 그를 낳은 것을 저주하며 도망갔다는 사실, 그런 자신을 잊으려고 자꾸 옛날 개그맨들 흉내나 낸다는 사실을.

여기까지 되면 마선생은 영락없이 또 '사디스트'에 가깝다. 그런데 또 거기서 끝이 아니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며 오동구를 몰아가자, 울먹이던 심하나(김향기 분)가 일어서서 오동구의 편을 들어준다. 자기가 오동구를 좋아한다며, 오동구는 좋은 아이라며.

 

 

텔레비젼을 볼 때 가장 편한 방식이 선악 구분이 분명하게 되어 있고, 시청자는 선한 자의 입장에 이입해서 드라마를 따라갈 때이다. 그저 그가 위험에 빠지면 어쩔 줄 몰라하고, 고난을 겪으면 같이 아파하고, 그가 이기면 내가 이긴 듯 신이 나서 박수를 보내면 된다. 그런데 <여왕의 교실>은 그게 안된다.

. <여왕의 교실>을 보며, 주인공인 마여진 선생의 그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대신에,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시대에 수많은 멘토링이 범람하면 할 수록, 젊은이들은 더 갈 곳 몰라하는 것 같듯이, 혀에 단, 어린이를 향한 많은 선의에 입각한 교육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말이 교육이지, 아이든, 선생이든, 학부모이든, 궁극에는 대학 잘 가기란 목표로 일심동체되는 제도 교육에서, 차라리 딱 깨놓고 현실은 이래? 니들 부모들이 원하는게 이런 거잖아 하는 마여진 식 방식이 솔직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솔직한 현실에의 접근이라도, '공포'와 '위협'을 무기로 인간을 길들이는 그 수법에는 동조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이 어떻든, <여왕의 교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고질적 문제인 교육에 대해 직설을 던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언제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 좋게 만든다면서, 하면 할 수록 나빠지는 교육 정책의 문제는, 어쩌면 마여진 선생이 말하듯이, 현실을 외면한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그 우리의 현실에 대해 첨예한 문제 제기를 하는 이 드라마의 원작이 일본 꺼라는 것이다. 2005년 일본 NTV에서 방영된 동명의 <여왕의 교실>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심지어 얼마전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던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를 다뤘던 <직장의 신>역시 2007년 일본 NTV에서 방영된 <만능 사원 오오마에>가 원작이다. 좋은 작품이라면, 사실 어느 나라 꺼가 되었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현재 우리 사회를 현실적으로 다루는 드라마의 원작이 외국 작품이라는 것에서는 적어도 우리 드라마계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 작품이 사회 문제에 완전히 무심했다는 말은 또 아니다.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추적자>도 있었고, 비록 용두사미가 되긴 했어도 사회적 멜로의 장을 연 <보고싶다>의 시도 역시 훌륭했다. 법과 돈의 카르텔을 풍자했던 <돈의 화신>의 시도 역시 신선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가장 화제가 된, 혹은 화제가 될 것같은 드라마가 잇달아 일본 리메이크 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물론 이전에 <꽃보다 남자> 라던가, <아름다운 그대에게> 처럼과 같이 로맨스물에 치우쳤던 리메이크 물이, 이른바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장르물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리고 <직장의 신>에서 보였듯이, 리메이크였어도 일본 드라마의 흔적을 상당히 지운 채 우리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도 있다.

그래도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정서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이다. 겨우 2회이지만, 과연, 마여진의 역설적 교육 방식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이, 온전히 교육 방식의 문제일까? 란 생각이 든다. 일본 사무라이식의 훈련 방식, 혹은 가학적 방식이 쉽게 용인되는 일본식의 정서 혹은 이런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우리 식의 정서였다면, 오동구가 도망치거나 굴복하기 싫다고 했을때, 목숨을 걸라고 했을까?

이렇게 드라마를 보면서, 이게 방식의 문제일까, 국민 정서의 차이일까 고민없이 질좋은 우리 드라마를 보고 싶은 거? 지나치게 편협한 국수주의일까?

by meditator 2013. 6. 14. 10:06

류수영이 떠서 다행이야"

돌아온 <kbs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2013>을 보며 내가 한 말이다.

도대체 출연하는 류수영과 단막극이 수요일에 들어간 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데도, 마음이 그런 걸 어쩐다. 그렇게라도 화제성이 조금 더 있으면, 1%라도 시청률이 더 나올까? 하는 <kbs 드라마 스페셜> 애청자의 마음이다.

그런데 웬걸, 역시나, 그 전에 종영한 <두드림>의 3.7% 보다도 못한 3%가 나왔다. 일요일 밤, 내일 출근하려고 잠자리에 들고도 남을 11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한 자리 잡는가 싶더니, 쬐금 승격시켰다는게 <라디오 스타>와 <짝>이 떠억하니 들어앉아있는 수요 예능 사이라니! 더구나, 김구라가 <라디오 스타>에 돌아오는 날, 첫 방송이라니!

이런 게 단막극의 팔자려니 싶다. 나 또한 <라디오 스타>의 애청자로서, 갈등에 시달렸다. 돌아온 김구라를 볼 것인가, <드라마 스페셜>을 볼 것인가, 나의 선택은, 안쓰러운 <드라마스페셜>이었지만, <드라마 스페셜>에 맛을 들이지않은 시청자라면 익숙한 그 무엇을 선택했으리라. 그래도, 열강 사이에서 버텨온 우리의 역사까지 되새김질 해서라도, 강 예능 사이에서 근근히 버텨갈, <드라마 스페셜>의 존립을 kbs는 책임져 주길 바란다. 방송 시간대가 바뀌어도 찾아드는 나같은 개근 시청자도 있으니까.

 

(사진; tv리포트)

 

 

3% 밖에 나오지 않는 <kbs 드라마 스페셜>의 존립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아마도, <드라마 스페셜>은 그것이 생긴 이래, 늘 이런 생존의 질문을 끊임없이 달고 다녔을 것이다. 좋은 작가와, 훌륭한 제작진의 개발, 그리고 장편 드라마에선 다룰 수 없는 시의성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시도. 이런 말을 되새기기 조차 구차할 정도로, 숱한 대답을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만능 세상에, 많은 사람에 의해 회자되지 않는 작품은 늘 그 존재 자체가 위기이다.

고3 수험생을 자식으로 둔 주제에도 맨날 텔레비젼만 들여다 보는 뻔뻔한 엄마를 둔 덕에,오며가며, 심지어 벽 뒤에 서성이며 함께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고 3 아들이 역시나 함께 돌아온 <드라마스페셜>을 시청했다.

"어, 웬만한 드라마보다 나은데?"

물론 그 말에, 저 고3은 지가 뭘 안다고, 공부는 안하고 저러고 드라마 품평이나 하고 섰나 라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말인즉, 옳은 말이다. 지하고 나하고, 그간 얼마나 숱한 드라마를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며 흥분을 했었는가. 심지어, 엄마가 그래도 그건 이런 의미가 있어, 라고 한편 좀 접어주기라도 하면, 냉혹한 10대 아들은 말도 안된다며 더 거품을 물며 반론을 제기했었다. 그런 아들이, 괜찮단다. 그래, 정말 괜찮다.

홍시가 홍시이지, 홍시 보고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면?이라고 했던 어린 장금이의 반문처럼, 드라마는 다같은 드라마인데, 단막극이라고 무에 그리 다른 맛이 나겠냐고? 물론 때로는 너무 실험적이다 못해 날 것같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진득한 근성같은 게 느껴진다. 마치 영화에 첫 입봉하는 감독들 작품에서 느껴지는 진솔한 주제 의식과,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이리저리 공들인 화면 등, 그런 것들이 <드라마 스페셜>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주제, 어떤 계절이 드라마 안에 담겨도, 늘 <드라마 스페셜> 자체는 초 여름의 생기같은 게 느껴진다.

 

 

단막극은 짧다.

긴 드라마의 호흡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그 다음을 기대하며 막 책장을 넘기다, 여운만을 남긴 체, 이만 총총 해버린 단편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 당혹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운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처럼, 긴 드라마의 호흡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 받는다.

첫 작품으로 등장한 <내 낡은 지갑 속의 기억>은도 그랬다. 추리 소설 마니아인 엄마는, 마지막에 순탄하게 남자 주인공이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시시했지만, 그 사랑 이야기가 흐뭇했던 아들은, 그런 엄마에게 이상한 걸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고 쯧쯧거렸듯이, 제목처럼 서정적인 한 편의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다음에 언젠간 엄마가 좋아하듯이, 찾아갔더니, 그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더라든가, 알고 보니,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죽였다던가 하는 인생을 허무하게 만든다든가, 괴기스럽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시청률 때문에 원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상투적 선악 구도로 만든다거나, 클리셰를 남발하지 않는 재기발랄한 그 무엇들이 될 것이라는 건, 장담한다.

일단 한번 보시라니까요, 이렇게 단막극에 대한 글은, 언제나 호객 행위로 마무리된다.

by meditator 2013. 6. 13. 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