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바보 엄마>란 드라마가 있었다.

하희라가 지적 장애인 엄마를 연기했고, 성폭행을 당해 낳은 그 딸로 김현주가 나와, 엄마와의 긴 세월 동안의 애증을 실감나게 보여주었었다.

그런 하히라처럼, 우리 동네에도 지적 장애인 엄마가 한 분 계시다.

커다란 남자 슬리퍼에, 옷 매무매도, 머리 스타일도 다듬지 않아 흐트러진 그런 한 눈에 보기에도 딱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분, 벌써 그 분이 우리 동네에서 눈에 띈 지 10여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10여년 동안 그 분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엔 혼자 다니다, 언제부터이나, 배가 불러오더니, 그 다음엔, 아장아장 이쁜 아가를 포대기에 둘러 업다, 걸리다, 그러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이 그 당시 나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휴, 저런 분이 어떻게 아기를 키우려고......그랬다. 두 팔, 다리, 정신까지 멀쩡한대도, 내가 낳아놓은 새끼 키우기가 이렇게 버겁냐던 시절이었으니, 멀쩡하지 않아(?) 보이던 그 분에게 '육아'란 더더욱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을 버스를 탔는데, 그 분이 거기 계셨다. 아주 이쁘게 다 자란 딸과 함께, 딸이 다듬어 주었을까, 외모도 그 예전 아기를 데리고 다닐 때보다 한결 깔끔해지고, 딸은 어디서 만들었는지, 멋진 종이 접기 작품을 손에 들고 엄마한테 자랑이 한참이었다. 그리고 그 분은 연신 밝은 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 훈훈한 모녀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무엇으로 키울까?' 내 자신에게 깊게 자문해 보았다. 그리고, <여왕의 교실>을 보면서, 모처럼 다시 그 질문을 던져본다.

 

고현정 감동의 엔딩 / 사진 : MBC '여왕의 교실' 방송 캡처

(사진; 더 스타)

 

 

마여진 선생은 분명 바람직한 교육의 롤 모델일 수가 없다.

때로는 감옥의 간수처럼 혹독하게 아이들을 몰아부치고, 때로는 강남 엄마처럼 그 어떤 실수도 용납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회를 거듭하면서, 그런 마여진 선생의 교육 방식이 그 예전 먼 길을 찾아온 한석봉에게 불을 끄고 글을 써보라며 떡을 썰던 석봉의 어머니의 교육 방식처럼 깊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인 것이다. 호시탐탐 누군가를 왕따로 만드는 아이들, 자기 밖에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돌려 세우기 위해 강력한 마법과도 같은 교육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6학년 3반은 어느덧 왕따도, 셔틀도 없는 반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엔 저게 어떻게 교육이야? 인권 유린이지 라며 분노하던 마음도, 미묘하게 스쳐가는 마여진 선생의 미소와 더불어, 그녀를, 그녀가 지향했던 교육방식을 이해하기에 이르른다.

마치, 어릴 때 그렇게 지긋지긋해 하던 엄마의 잔소리를 철들고 나니, 그게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듯이. 그리고, 마여진 선생의 교육 방식에 동의를 하건, 하지않건, 자신의 생활도 없이 아이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마여진 선생의 마음, 그 진심이 바로 교육의 핵심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학온 도진(강찬희)는 여러 번 파양의 경험을 당한 아이이다.

그리고 양부모님에게는 더 이상 파양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갖은 관심을 끌 행동을 해보이다가도, 친구들에게는 그 분풀이라도 하듯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교실의 제왕으로 등극하려 한다. 시험지를 고쳐 자기 꼬붕을 만들고, 대신 숙제 시키기에서부터, 아이들의 여론을 조작해 반장이 되어 갖은 편법을 일삼는 것까지, 도진의 행태와 그것을 지적하는 마여진 선생의 일갈은 마치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학적 논고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저 몰락하는 엄석대를 그려냄으로써, 권력의 속성과 거기에 쉽게 길들여지는 인간 군상을 비판하려 했다면, <여왕의 교실>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진정한 교유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으로 던진다. 교장 선생님이 걱정하듯이, 그리고 하나가 발견한 마선생의 목의 상처처럼 마여진 선생에겐 트라우마처럼, 도진이와 같은 아이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마여진 선생은, 그런 도진이의 행동을 '찌질하다고, 어리광이라'고 단정지으며, 상처받은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어쩔 줄 몰라, 자해하는 행동으로 이해하고 대처하려고 한다.

단지 다르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문제를 던져주고, 스스로 해결하게 만들었던 것과 달리, 스스로의 머리에 손가락 총을 쏘며 자멸의 길을 걷는 도진이의 손을 놓지 않는다. 가장 도진이가 원하던 것,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란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도진이를 죽음에서 구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우리에게도 메시지를 보낸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왕따를 하는 아이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구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런 따스한(?) 덕분에, 하나도, 은보미도, 오동구도, 서현이도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진; 뉴스엔)

 

 

 

마여진 선생의 방식이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이 고뇌하는 초짜 담임 양민희에게 고민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다보면 길이 열리지 않겠냐는 말이 아니었을까. 지난 번 학교에서 상처를 입고, 아이를 거두기에 실패했던 마선생이 이번엔 도진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상하다.

감옥처럼 무시무시하고 살벌하기만 했던 <여왕의 교실>이 중반을 들어서면서, 번번히 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아이들의 갸륵한 마음 때문에, 마여진 선생의 희미한 미소를 일으키게 하는 결과들 때문에. 그리고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하고. 뭐 정도가 있겠는가. 그저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고 놓치지만 않아도, 반은 간다. 그게 12회까지 <여왕의 교실>의 결론이다.

by meditator 2013. 7. 19. 09:55

이른바 일반인과 군인이라는 세상의 커다란 이분법이 존재하듯이, 군대는 사람사는 세상과 동떨어진 성역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바로 그 성역을 콩트의 소재로 끌고와, 이른바 예능의 소재로서의 '군대 붐'을 일으킨 주역 김기호 작가가, 여름에 걸맞는 16부작 판타지 옴니버스 시리즈를 들고 돌아왔다.

 

 

물론 판타지 시리즈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미국의 트와일라잇 존이라던가,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영국의 블랙미러처럼, 드라마 장르에서는 분명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아이디어 고갈과 함께 한국형 공포 영화가 점차 그 존재감을 빛을 일어가듯, 언제부터인가 여름이면 텔레비젼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던 이른바 '납량 특집' 시리즈 역시 어느샌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도 그렇듯이, 환상 거탑이 내걸고 있듯이, 미스터리, 스릴러, sf, 심지어 만화적 상상력까지 곁들인 영역들은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공중파에서는 감히 시도해 보기 힘든 이야기들이니까. 8월에 귀신을 보는 여자와 그 곁을 지키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주군의 태양>이 선보이기는 하지만, 그 작가진이 로맨틱 코미디로 유명한 홍미란 자매 작가인 한에서, 이 드라마 역시 애정물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고, 이 드라마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그런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tvn의 판티컬 드라마 <환상 거탑>은 여름이라면 한번쯤은 보아줄 만한 아니 여름이 아니라도, 푸른 거탑 못지 않은 드라마의 영역에서 기대해 볼 만한 시도이다.

 

 

 

옵니버스 식으로 엮어진 첫 회, 두 가지의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첫 화는 [인권 존중] 17명의 여자를 파렴치하게 죽인 살인마를 무기 징역 기간을 다룬 것으로, 마지막 판결이 내려질 때가지 일말의 반성이 없는 살인마가 죽여달라고 고통스레 외치는 그 순간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다음 2화는 [타임 은행], 만년 지각생인 김상진 대리가 타임 은행을 통해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천사같은 여자 친구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자신의 목숨을 놓고 딜을 할 수 밖에 없게되는 이야이이다.

물론 [인권 존중]과 [타임 은행]의 이야기들이 매우 새롭지는 않다. 더더구나, 이미 외국의 판타지 시리즈나 그 비슷한 류의 영화, 심지어, [타임은행]의 엔딩은 일찌기 사랑 영화 <이프 온리>를 떠오르게 조차 하는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찌기 셰익스피어 이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냉소적인 정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조합의 판타지를 즐기는 맛은 이런 류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씹고 즐길만한 꺼리가 되었다.

더구나 한 회에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20여분만에 기승전결 스토리를 진행시켜 버리고, 분명한 메시지조차 전달하는 쌈박함은 매력적이다. 꼭 같은 장르는 아니지만, 한동안 주말 저녁을 달구었던 김국진, 김진수의 전성기 시절, <테마 게임>을 떠올리게 조차 한다.

 

 

첫 회, 판디컬 드라마 <환상 거탑>이 더욱더 볼 만했던 것은 모처럼 제 몸에 맡는 역할을 맡아 존재감을 발휘했던 중견 배우, 강성진, 남성진, 조달환의 열연이었다.

최근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에 악역 정웅진의 존재감을 손에 꼽는 사람들이 꽤 되듯이,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연의 존재란 이제 드라마의 성공에 결정적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많은 배우들이 좋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어울리는 배역을 맡지 못한 채 세월을 타고 흘러간다.

조달환이라는 배우도 연기를 몇 년 째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엉뚱하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게 된 경우이다. [인권 존중]의 남성진 역시, 그저 간수로 슬쩍슬쩍 등장하기만 해도, 얼음장 같은 그의 프로필에 호화로운 독방이 그저 호화롭지만은 않을 거란 '스포'를 느끼게 만든다. 일찌기 '베스트 셀러 극장' 등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섬뜩한 연기가 모처럼 제 자리를 만난 거 같아 반갑기 까지 하다. 중견 배우들이 모처럼 자기 몫의 자리를 찾은 거 같아, <환상 거탑>이 또 다른 이유로 반갑다.

 

 

<푸른 거탑>에 이어, <환상 거탑>까지,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밀어부친 김기호 작가의 거탑 시리즈가 부디 <환상 거탑>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그래야 또 다른 '거탑' 시리즈를 볼 수 있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3. 7. 18. 09:45

'복수는 달콤하다'

복수에 대한 이 정의는 7월 16일자 한겨레 칼럼에서 전중환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 진화 심리학)가 내린 것이다.

복수가 달콤하다니? 그 이유는, 당할 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분노를 일으켰던 복수가 복수를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가는 순간, 뇌에는 초콜릿이나, 마약을 한 거 같은 짜릿한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래잡기의 술래가 되어 상대방이 숨어 있는 장소를 향해 나아갈 때 느끼는 그 긴박감같은 거랄까.

 

 

그런데 술래잡기의 술래가 다가가서 상대방을 잡으려다가 술래가 먼저 덜미를 잡힐 때가 있듯이, 복수란 꼭 계획을 할 때의 짜릿한 흥분을 일으키는 그 상황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수란 진화론적으로 볼 때, '복수심은 상대방의 공격을 사전에 억제한다는 뚜렷한 기능을 수행하고자, 나를 두 번 다시 건드리지 않게 하려면 상대로 하여금 앞으로 그 어떠한 도발도 털끝만한 이득조차 가져다주지 못할 것임을 똑똑히 각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라는 것이다. (마틴 테일리 & 마고 윌슨) '상대방의 순이익이 0이 되기 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되도록 갚아주려는 것인데, 그 과정은 대단히 소모적이고, 자기 파괴적이기 까지 하다'는 것이다. 즉 '엎질러진 우유를 다시 담을 수 없듯이, 내 가족을 죽인 원수에게 보복한다고 해서 가족이 살아돌아올리는 만무하'니까. 하지만, 진화론적으로, 그 어떤 나쁜 짓도 영원히 보존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류는 오늘도 자기를 내던지며 복수에 헌신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월, 화 드라마의 남 주인공들은, 이런 복수에 대한 진화론의 시뮬레이션 실행 모델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명횡사한 아버지의 복수를 갚기 위해 스스로 불나방이 되어 복수의 화신으로 살아간다.

<황금의 제국>의 주인공 장태주(고수)는 성진그룹의 건설 공사 과정에서 철거민으로서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갚기 위해 그 스스로 '황금의 제국'이라 일컬어지는 성진그룹을 향한 복수의 일전을 꿈군다.

<상어>의 김준 역시 마찬가지다. 조상국(이정길)회장이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킬러를 이용해 없애버린 자신이 아버지와 자신의 복수를 갚고자, 15년만에 김준이 되어 나타났다.

 

 

 

 

전중환 교수는 복수가 비록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이라고 해도 결코 복수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국가라는 공적 처벌 제도를 지닌 문명 사회는 바로 이 횡행하던 사적 복수를 '법'이라는 심판을 통해 제도화함으로써 안정화를 기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회란 사적 복수는 엄벌에 처하지만, 복수심에 몸부림치는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시 <상어>로 돌아와서, 납치당한 이현을 어렵게 구한 이수, 즉 김준에게 이현의 양아버지 변방진(박원상)은 내 손으로 너를 잡고 싶지 않다며 더는 복수를 진행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김준의 대답은 자신은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15년 전에 처럼 당하지는 않겠다고도 한다. 그런 김준에게, 변형사는 고개를 수그릴 수 밖에 없다. 미안하다고. 내가 15년 전에 조금만 더 진실을 밝히기에 노력했다면 니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상어>와 <황금의 제국>을 관통하는 복수는 공적 처벌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던 우리 근대사의 피해 사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상어>는한때는 친일파이다가, 전쟁 통에는 인민군이 되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했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범죄도 서슴치 않았던 조상국이라는 근대사의 전범이 오늘날의 지도층으로 살아가기 위해 저지르는 만행을 복수의 배경으로 삼는다.

<황금의 제국>은 고도 성장기의 대한민국, 돈이 되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거민의 목숨 따위는 가볍게 거둬들였던 자본 축적기의 대한민국 재벌의 파렴치한 범죄를 역시나 복수의 배경으로 삼는다.

즉, 복수의 진행은 사적 복수이지만, 그 배경이 되는 피해 사례는, 근현대사의 과정에서 단죄되지 않았던, 공적 범죄들인 것이다. 그것은, 전중환 교수의 말처럼, 피해자의 눈물을 제대로 닦아주지 못한 '국가 제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여전히 눈물 흘리고 있는, 공적 부조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사적 복수를 통해서만이 억울함을 풀 수 있는 피해자 김준과 장태주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짚고 있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3. 7. 17. 09:47

김석윤 피디는 7월15일부터 jtbc에서 <시트콩 로얄 빌라>를 시작하였다. 시트콩? 말 그대로 시트콤과 콩트의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래콘서트>의 달인팀 김병만, 노우진, 류담을 비롯한 개그맨 이병진과 신봉선을 비롯해, 안내상, 우현 등의 연기자 등이 출연해 로얄 빌라의 각 집을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미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시트콤의 대명사가 되었고, 이미 2011년 jtbc에서 <청담동 살아요>란 시트콤으로 jtbc를 궤도에 올리는데 공헌한 바 있던 김석윤 피디가 이번에 들고나온 것은 보다 실험적인 장르, 시트콩이다.

김석윤 피디만이 아니다. 이미 <1박2일>을 통해 그 이름을 보장받은 나영석 pd 역시 안주하지 않고, 할아버지들의 여행 리얼리티라는 <꽃보다 할배>를 들고 나왔고, <성균관 스캔들>이후 와신상담의 길을 걷던 김원석 피디가 들고 나온 것 역시 이른바 뮤직 드라마 <몬스타>이다.

 

 

대세를 거스르다; 나영석

흔히들 예능의 유재석, 강호동의 2강 체제니, 거기에 덧붙여 신동엽, 김구라의 4강 체제니 하는 말들을 한다. 강호동의 복귀 후 낮은 시청률로 인해 프로그램 이름조차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강호동만이 고고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강'이라 이름 붙여진, 스타 mc의 존재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영석 피디는 그 강호동과 함께 오랜 시간 <1박2일>을 이끌며 이 프로그램을 이른바 '국민 예능'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kbs를 퇴사하고 tvn에 들어가 내놓은 첫 작품이 <꽃보다 할배>이다.

<꽃보다 할배>는 여러보로 파격적이다. 이른바 예능에서 강호동, 유재석을 차치했다 하더라도, 예능이라고 하면 아이돌 몇 명 쯤은 끼워넣어야 하는게 요즘 예능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아이돌이 아이더라도 그저 젊은 사람들이 땀 흘리고 부대끼는 와중에 빚어지는 다양한 상황이 곧 예능이 진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예능의 '정석'을 나영석 피디는 보기 좋게 깬다. 할배들이 그 주인공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할배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단다. 그것도 배낭 여행. 그런데, 이미 예고편에서 할배들은 나피디가 하자고 하는 번지 점프 같은 건 가볍게 묵살해 버린다. 물병에 술을 담아 파리 한 가운데 까페에서 여유롭게 건배를 즐긴다. 삼겹살에 된장 찌개를 먹자며 앙탈을 부리는가 하며, 아픈 무릎 때문에 번번히 걷는 게 곤욕이 된다. 나이먹음으로 인한 딜레마와 나이에서 오는 자유로움 혹은 뻔뻔함이 고스란히 <꽃보다 할배>의 색깔이 된다.

시작 전부터 과연 할아버지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프로그램이 될까란 의미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가, 이젠 마치 네 할배들을 정말 '꽃' 처럼 각자 취향에 맞춰' 호불호를 가리며 좋아하는 붐을 일으킨 <꽃보다 할배>의 성공으로 '나영석'이란 이름은 ' 대세가 나와서 성공한 예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성공한 예능이 된다'는 새로운 신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본말을 전도시키다; 김원석

m.net, tvn, 올리브 tv등 cj 그룹 계열의 케이블 tv를 통해 금요일 밤 11시 광범위하게 물량 공세를 펴고 있는 <몬스타>는 묘한 드라마이다. 용준형, 하연수, 강하늘 등 이른바 청춘 남녀 배우들이 등장해, 청춘의 고통어린 성장담과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열심히 이 드라마를 '닥본사'하다 보면, 이 드라마의 실질적 주인공이 어쩌면 이 드라마가 내걸고 있는 '뮤직'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몬스타>의 주인공들은 음악을 매개로 조우하게 되고, 음악으로 인해 오해가 풀리고, 음악으로 인해 성장하게 된다. 심지어 여주인공의 부모 세대의 상처를 상징하고, 풀어내는 것조차 음악이다. 음악을 거둬내고 보면, 순정만화에서 흔히 보던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지만, 그것들이 음악을 만나는 순간, 그 어울림은 그저 더하기 이상의 감동을 전한다. 왕따 박규동(강의식)의 사연이 절절해지는 건,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불리워진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나,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때문이고, 김나나의 외사랑이 공감이 가는 건, 그녀의 어설픈 대사가 아니라, 토해내듯 부른 '사람, 사랑'때문이었다.

<몬스타>의 성공은 그저 또 하나의 청춘 드라마의 성공과는 다르다. 음악과 드라마라는 장르의 조합, 어찌보면, 거기서 더 결정적 요건이 된 음악의 존재감, 바로 새로운 실험의 성공이고, 거기에는 김원식 피디가 있다.

 

 

 

시트콤의 변주; 김석윤

시트콤의 존재 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된다.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일정한 공간을 활용하여, 보다 큰 재미를 낳을 수 있는 장르. 하지만 언제나 김병욱의 시트콤이 과연 시트콤인가 아닌가 라는 출생의 비밀(?)을 묻는 질문에 시달리는 것처럼, 시트콤은 코미디 콩트와 드라마 사이에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며 그 존재를 증명해 왔다. 하지만, mbc, sbs에 이은 kbs2의 잇다른 시트콤 폐지처럼, 시트콤의 존재는 이젠 증명 조차도 힘들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김석윤 피디의 전작 <청담동 살아요> 역시 초반에 시작 초기의 종편임에도 불구하고, <청담동 살아요>를 보기 위해 jtbc를 본다고 할 만큼 마니아들을 생성하기도 했지만, 방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늘어지는 스토리와 캐릭터의 피로도로 말미암아 '창대한 '끝으로 마무리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김석윤 피디가 이번에 들고 나온 것은, 공중파에서도 한 물 갔다고 치부하는 콩트와 시트콤의 결합이다. 로얄 빌라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귀신과 산다', '무덤덤 패밀리', '신세계', '형사 23시', '시티 헌터 리턴즈', '행복한 올드 보이' 등의 코너가 진행된다.

김석윤 피디의 작품은 '허무 개그'와도 같다. 현실에 기반한 상황들, 그리고 거기에 느리게게 혹은 엇나가게 반응하는 각종 군상들의 반응에서 오는 '썩소'가 바로 김석윤 피디만의 맛이다. <시트콩 로얄 빌라>의 각 코너들은, 귀신을 보지만, 그 여자 귀신이 바로 이상형이라든가, 집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상황에서 내일 이혼하려 가자면서도 느긋하게 과일을 까먹고 영화를 보러가는 부부라던가, 행복하다 하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존재감없는 50대 가장의 모습에서 가장 잘 김석윤 표 인물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시트콩 로얄 빌라>는 김석윤 표다운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만큼, 보다보면 중독성이 강하지만, 언제나 중독이 그렇듯,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그 코드에 맞춰져야 공감을 얻게 되는 마니아적인 한계 또한 가지고 있다. 이병진, 우현, 안내상 등, 김석윤의 정서를 제대로 잘 표현해낼 개그맨들과 연기자들의 조합으로 기대와 함께, 어쩌면 한 템포 그 느린 호흡이나 페이소스를 대중적 정서로 공감받을 수 있을까 지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영되는 곳이 아직은 시청률 사각지대로 인 jtbc라는 역설이다.

 

 

나영석, 김석윤, 김원석 피디들의 새로운 그리고 신선한 출발은, 안주하지 않는 아이디어 뱅크들의 힘찬 도약이기에 반갑다. 그리고 한편에선, 이들의 새로운 실험의 장소가 케이블이나 종편이라는 점에서, 섣부르게 '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은 제국' 공중파의 '지는 해'를 점쳐보게도 된다.

by meditator 2013. 7. 16. 10:19

'200회도 아니고, 20회를'

'하이퀄리티 예능 미디어 비평 '예능 심판자' 중 멘트를 하다 그만 20회를 200회라 잘못읽어버린 박지윤은, 그런 자기 자신이, 그리고 그 보다도 더 20회를 기념하는 <썰전>이 민망하여 썩소를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20회를 했다고 잔치를 벌이는 프로그램이라니!

 

하지만 강용셕의 tv출연에 대한 찬반론이 거세지는 이 즈음, 초기 <썰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만큼이나 겨우 20회만에 초창기(?)의 <썰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썰전>에게 있어서, 자화자찬이든, 20회 생존에 대한 의미 부여이든, 20회 기념식은 '주위 환기'에 있어서 꽤나 '발랄한' 발상이다.

 

(사진; 일간 스포츠)

 

 

1. 논란이 된 출연자를 <썰전>의 방식으로 구제하다

무엇보다 요즘 <썰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강용석이다. <예능 심판자> 코너의 미디어 분석 과정에서도 드러나듯이, <썰전>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강용석이기 때문이다. sbs아나운서 실장을 비롯하여 의식있는 많은 사람들이 최근 강용석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도가 높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대해 강용석이 보답이라도 하듯, NLL사안에 대해 그것을 문제 삼았던 여당 국회 의원의 책임론을 내세우자, 이른바 자칭 '남들이 다 너를 욕할 때도 너의 편이었다'던 사람들이 강용석을 질타하기에 이르른다. 11일 <썰전>에 출연한 강용석은 외양에서부터 숱한 구설수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게 등장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 보이는데 소심한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썰전>은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은 수혜를 얻은 강용석에 대한 대중들의 '뭇매'를 가감없이 고스란히 노출시킴으로써 강용석을 구제해간다.

그 전주에도, 이번주에도 <썰전>을 통해 강용석의 고뇌(?)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심지어, 20회 기념으로 안철수 국회의원을 목소리 출연시켜, 한때, 그리고 여전히 안철수의 저격수이고 싶어 하는 강용석을 더더욱 난처하게 만듬으로써, 역설적으로 강용석이란 희화화된 예능 캐릭터를 완성시키는데 일조한다. 또한 '빅 데이터'를 통해, '정치만 하지 않으면 괜찮을' 사람이요, 논란이 되고 있는 '세탁'조차 본인의 입으로 '긍정적'이다란 평가를 통해 강용석을 구제한다. 세간의 논란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하지는 않지만, 교묘하게 프로그램의 수혜자이자, 프로그램을 화제성있게 만들고 있는 강용석과 함께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논란이 되면, '하차'나 '사과 후 잔류'라는 두 가지 방식 밖에 없었던 출연자들의 해법을 '썰전'만의 방식으로 구제한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2. 앞으로 <썰전>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20회 자축쇼를 벌이는 <썰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은 늘 정치적 사안만 다루던 <썰전> 내의 '썰전' 코너에서 처음으로 정치적 사안이 아닌, 기성용 선수의 SNS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김구라는 농담식으로 이효리-이상순의 결혼도 다루고 싶었다고 했지만, 이어서 다루어진 기성용 선수의 문제는, 분명 지금까지 <썰전>이 추구해온 정치 중심의 지향과는 궤를 달리한다.

'예능 심판자' 코너에서 손석희씨의 JTBC사장 취임과 관련하여, '삼성을 깔수 있느냐 마느냐' 라는 허지웅의 평가를 가감없이 내보낼 수 있는 곳이 <썰전>이라는 자부심을 내보이고, <썰전>의 제작진들이 JTBC 내에서도 내놓은 자식이란 식으로, <썰전>의 청렴함(?)을 자부했지만, 분명 기성용 선수를 다룬 것은 그간 정치적 사안에 치중했던 썰전에게 있어서는 의미심장한 사안이었다.

더구나, <썰전>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초창기 날이 선듯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예리한 시각과 달리 회를 거듭할 수록, 정론보다는, 뒷담화, 혹은 가쉽성 내용에 더 힘을 실어가는 듯한 <썰전>이 이제, 사안마저도, 정치를 넘어 이른바 다양한(?) 문제를 다루겠다고 하는 것은 본인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기어가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접을수 없다.

 

거기에 더해, '예능 심판자' 코너에서, 김구라는 시청자들이 '재미'를 추구한다며, 라디오 스타에서 처럼 보다 '막 던지는' 즐거움을 전해드리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런데 사실 '예능 심판자' 코너의 빅 데이터를 통해 이 프로그램이 시청률에서 겨우 2%를 넘나들지만, 그외에 다운로드 등을 통해서는 무한도전이나, 라디오 스타를 따라갈 만큼의 관심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그 상당 부분은 <썰전> 중의 '썰전'코너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예능 심판자' 코너의 경우, 허지웅의 날선 표현들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고 자부했지만, 그의 비평은 단말마적 외침으로만 편집될 뿐, 아직도 '예능 심판자'의 내용은 다양한 기획에도 불구하고, 심판이라기 보다는 감상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거기에 '재미'까지 추구한다면, 예능 비평판 '라디오 스타'를 지향하겠다는 건지.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썰전>을 찾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난 대선을 통해 편협한 시각의 극을 달렸던 종편과 달리, 예민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나름 균형잡힌 시각을 전달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하이퀄리티하건, 그렇지 않건, 이른바 예능을 연예 가쉽 수준이 아니라, 비평의 입장에서 보려 했기 때문이었다. 재미는 그 다음에 발생하는 2차적 효과였다. 그런데, 20회를 맞이한 <썰전>의 각오는 무언가 핀트가 어긋난 듯하다.

낯부끄러운 20회, 혹은 살아남아 장하다 20회, <썰전>의 중간평가가, 이런 사람들이 <썰전>을 찾는 가장 본원적인 이유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3. 7. 12. 10:06

자숙의 시기가 언제인가 싶게 김구라가 약진 중이다.

월요일 밤 tvn의 <TAXI>, 화요일 밤 SBS의 <화신>, 수요일 밤 MBC의 <라디오 스타>, 목요일 밤 JTBC의 <썰전>, 그리고 얼마전까지 금요일 밤 TVN의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까지. 주말을 제외하고는 공중파, 종편, 케이블을 누비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복귀와 함께 빠르게 여러 프로그램에 투입된 것과 달리, 야심차게 기존의 캐릭터를 누른 채 착한 캐릭터로 복귀했던 KBS2의 <두드림>의 폐지 처럼, 여전히 텔레비젼 속 김구라의 캐릭터는 <라디오 스타>의 전형을 복제 혹은 변형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당연히 프로그램의 성격이 겹치는 <화신>과 <라디오 스타>에 연달아 나오는 김구라가 불편할 밖에. 융성은 하나, 실속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라는 요즘의 운세 형상이다.

 

 

(사진; 조이뉴스)

 

 

1. <화신> VS. <라디오 스타>; 옴메, 기죽어 VS 옴메 기살어?

<화신>에서의 김구라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은 9일 밤 <화신>에서 발생(?)했다.

여자들 머리의 염색 이야기로 비롯된 토크가 흘러, 김구라 자연스레 옆에 앉은 김희선의 머리가 과거 염색약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과산화수소수'로 염색한 거 같다고 농을 던졌다. 김구라는 그저 자연스레 토크의 흐름 속에 웃자고 한 마디 던진 것이었다. 다같이 하하호호 그래, 비슷하네 하고 넘어가면 될 정황이었는데, 김희선이 발끈한 것이다. 여배우의 외모는 논하는 것이 아니다에서 부터, 김구라가 자기를 두고 외모를 논할 자격이 없다까지, 웃음기는 띠고 있었지만, 내용인 즉슨, 니가 어디 감히 내 외모를!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순간 분위기는 싸~해졌지만, MC 중 누구도 두 사람을 중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게스트였던 안문숙이 김희선이 김구라한테 밀리지 않네 라고 눙쳤고, 김구라는, 이기려고 하지도 않아요 라며 넘어갔다.

 

얼핏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상황은 사실 <화신>의 딜레마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상황이다. <화신>의 주 아이템이 무엇인가, 맨날 '풍문으로 들었소'라며 게스트들의 온갖 루머를 들추며 그걸 가지고 씹고 즐기는 시간들 아닌가. 그런데, 게스트들을 상대로는 온갖 소리를 해대는 MC들이 상대 MC의 외모를 가지고 농을 쳤다고 정색을 하면, 너무 불공정한 시스템이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그런 상황에서, 신동엽이나, 봉태규가 전혀 그 상황을 다르게 이끌어 가지 못했다는 게 더 문제다. 안문숙이 마무리를 하자, 그때서야, 신동엽이 '사랑과 전쟁'이니 라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김희선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었다.

 

 

(사진; 파이낸셜 뉴스)

 

 

만약 이게 <라디오 스타>라면 어땠을까? 설사 김구라의 말에 상대 MC가 정색을 하더라도, 옆의 다른 MC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정색을 하면 정색을 한 거 같고 정색을 한다고 놀리며 분위기를 풀어갈 것이고, 만약 정색을 하지 않고 웃었다면, 맨날 김구라의 표현대로 '받아먹는' 에드립들이 양 쪽에서 한 마디 이상씩은 나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다음 날, '김희선 과산화수소수 머리라는 검색어가 뜰 정도로 이슈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요일이 다를 뿐, 기실 성격이 거의 비슷한 토크쇼임에도, 화요일 밤의 <화신>과 수요일 밤의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화신> 속 김구라가 각개 약진하는 MC 들 중 한 사람으로 정해진 풍문을 들먹이는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라디오 스타>의 김구라는 모든 토크의 시작이다. 질문을 누가 했든지, 게스트를 상대로 한 곤란한 질문의 시작은 김구라요, 그걸 옆에서 윤종신과 규현이 거들어 양념을 치고, 김국진이 마무리하는 식의 팀 플레이를 한다. 유세윤의 하차는 개인적으로 안타깝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라디오 스타>의 김구라는 물 만난 고기 같고, 동료들은 김구라라는 고기가 펄떡이며 뛰어놀 수 있는 물을 기꺼이 자청한다.

 

안타깝게도 <라디오 스타>로의 복귀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화신>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화신>과 <라디오 스타>는 MC진의 조화로움으로 인해, 그 차이가 두드러져만 간다. 불가피하게 동시에 두 프로를 함께 하는 김구라로써는 난감할 노릇이다. 신동엽이나, 김희선이 앞으로도 <라디오 스타>의 동료들처럼 김구라와 더불어(?) 호흡을 맞출 여지가 덜 보이니 김구라의 딜레마는 당분간 계속 될 밖에.

 

 

2. 김구라와 강용석, 따로 또 같이?

최근 강용석의 자질론이 불거지기 전까지, <썰전>에서 김구라가 즐겨 쓰던 표현이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이라는 김구라와 강용석을 한 묶음으로 하는 바로 그런 표현들이다.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왜 김구라는 자기 자신을 굳이 강용석과 같은 범주로 묶어 폄하하려고 할까 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용석의 이미지 세탁설이 화두가 되면서, 비록 단 한 회뿐이었지만, 김구라의 입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사라져 버렸다.

 

 

김구라의 생각으로는, 자신과 강용석이 말실수로 인한 구설수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생업 전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더구나 오랜 자숙의 과정을 거쳐 <썰전>이란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된 처지도 비슷하고, 역시나 말로써 망했지만(?), 말로써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에서 동병상련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그런건지, 제작진의 의도였는지, 공평한 진행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썰전>에서 김구라의 진행이, 강용석의 재기를 돋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적이 꽤 많았었다. 마치 형님 좋고, 아우 좋고 하는 식으로 한 묶음으로 같이 잘해보자는 식으로.

 

 

 

하지만 이른바 대중들은 다르다. 설사 두 사람이 지난 과정에서 했던 말 실수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고 해도, 두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전혀 달랐다.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을 하던 시절에 많은 연예인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막말 논란으로 인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를 했지만, 조금 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김구라의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했던 모 국회의원 후보자의 지지 연설 방송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 '나꼼수'로 인기를 끌던 국회의원 후보자의 흠을 잡을 게 없나 하고 뒤지던 여당 국회의원이 과거 김구라의 방송을 문제시하고, 그것이 이슈가 되어 졸지에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차와는 별개로, 이미 공중파에 나오는 그 순간부터, 김구라는 과거 자신이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말들을 기회가 되기만 하면 반성하고 사과를 했었다. 하차의 순간에도 언젠가 이런 일이 올 줄 알았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었다.

 

 

하지마 강용석은 전혀 반대의 경우다. 이른바 여당의 저격수로, 심지어 지금까지도 <썰전>에서 호시탐탐 야당의 주요 인물들을 못 물어 뜯어서 안달을 낼 정도로,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당의 유력 인사에게 '형님~'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에 여전히 충실한 사람이다. 그가 자숙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개그 소재로 삼은 개그맨에게 소송을 걸려고 했던 정도로 자신의 입장에 투철했던 그가, 그간 자신이 했던 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하거나, 회개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저 방송에 적합한, 혹은 방송을 통해 튀어보려고 애쓰는 재기 발랄한 인간으로 조명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여당 정치인으로의 리바이벌을 노리는 그가, 지난 날 자신이 이러이러해서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방송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주 썰전에서 NLL 문제를 제기한 여당 국회의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 한 마디로 그를 추종하던 보수 세력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을 만큼, 그동안 그는 '배신'의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밀하게 강용석의 문제는 그에게 돌아가는 수많은 방송을 통한 이미지 세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 그의 과오조차 제대로 해명하고 사과하지 않은 색깔 불변이 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와 김구라는 번번히 동료애를 나누려고 했으니! 사람들은 두 사람을 다르게 보는데, 본인이 자청해서 한 묶음으로 난처함을 자청한 경우랄까. 먹고 사는 게 제일 우선인 김구라와, 호시탐탐 정치인으로의 복귀를 포기하지 않는 강용석의 길은 엄연히 다르다. 사람들이 강용석을 새삼 경계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근묵자흑이라고, 괜히 옆에서 거들다 같은 놈이라고 귓방망이 또 한 대 얻어맞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by meditator 2013. 7. 11. 10:08

"제임스였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렛딧이 올라갈 때 비로소 정우성의 극 중 이름이 '제임스'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에선 크게 중요치 않았으니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설계자의 이름이 제임스이건, 샘이건, 그가 신발 수선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혹독하게 자신을 키웠다고 말하는 이면에 어떤 히스토리가 숨겨져 있건, 그래서 결국은 그의 목숨을 거둬들였건 그 사연이 중요치 않다. 그저 그가 설계했던 일과 그 일의 성공과 실패 사이에, 제임스라는 존재와 그 주변 인물의 사연은 그저 그림자처럼 깃들여질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존재치 않는다. 그것은 한효주가 하윤주보다, 꽃돼지로 존재하는 것이 더 당연해 보이는 감시자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은 은행 털이범을 잡는 단순한 사건이지만, 설계자와 감시자라는 임무의 선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영화적 재미가 깔끔하게 만들어지게 된다. 동료 다람쥐의 죽음으로 감시자들의 감정적 온도는 올라가지만, 피흘리는 동료를 두고 범인을 쫓아야 결국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감시자의 숙명처럼, 인간이기 이전에 '일'로써 자신을 증명해내야 하는 '현대적' 인간형을 추구한다.

 

 

 

 

'불법 사찰'

제임스를 잡기 위해 물고 물리는 감시의 포위망 속에서, 이 단어는 대사의 행간을 뚫고 몇 번이나 등장한다. 상대방이 범죄 모의와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을 보일 때, 감시자들이 그들이 가진 모든 도청 수단과, cctv를 총동원해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이 녹음이 되기 시작할 때, 그것을 감시자들에서는 '불법 사찰'과 그렇지 않은 정당한 '감시'의 기준선으로 잡는 듯하다.

그런데, 의 대사를 통해 번번히 여기서부터는 '불법 사찰'이 아니야! 라고 하는 그 대사는 오히려, 피노키오의 '거짓이 아니예요'라는 대사처럼, 자꾸만 영화를 보는 동안 귀에 걸린다. 그저 스쳐가는 뒷모습이었을 뿐인데, 그것을 요소요소의 cctv를 동원하여, 결국은 정면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라던가, 아파트 복도의 위장된 카메라를 통해 범죄자 주변 인물들을 샅샅이 훑는다던가, 심지어 그가 버린 쓰레기를 통해 설계자의 흔적을 찾아내는 과정은, 영화상에서는 범죄를 밝히는 도구이지만, 그 대상이 된 누구라도 감시자들의 수사망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감시'의 현실감이 다가오는 건 어쩔수 없다.

물론, 범인을 추적하는 건, 범죄 영화의 기본이다. 일찌기 탐정 소설의 원조 셜록 홈즈 이래로, 범인을 쫓는 자는 변장술에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회유와 협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범인을 밝혀냈다. 단지, 그것이 현대에 들어와서, <감시자들>이라는 영화처럼 감시 카메라와 cctv라는 첨단의 기술을 이용할 뿐이다. 그런데 건물 옥상에 서서 전지전능하게 범죄를 설계하던 제임스를 결국 지하철 기지에서 참혹하게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감시자들의 ' 능숙한 skill' 덕분에 '감시'의 마력은 더 대단해 보인다.

 

 

 

영화 속 감시는 오로지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만 씌여진다.

하지만, 상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클라이막스, 동료 다람쥐를 잃은 팀원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제임스를 쫓고, 이실장이 '이제부터 모든 상황은 나에 의해 통제되고, 그 책임은 내가 진다'는 그 대사는 영화 속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수단으로도 쓰여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만약, 이실장이 역시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전제 하에, 감시자들의 능력을 다른 곳에, 예를 들면 '대선 정국'의 특정 정당을 위해 쓴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최근 양심 선언 등을 불러온 '국정원 댓글' 사건처럼, 국가의 공기로 쓰여져야 할 공무원의 직무가 <감시자들> 영화에서 처럼, 사건 수사나, 동료 죽음의 복수라는 인정적 요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적 이해의 도구로 씌여진다면 그 위험성이 선거의 결과를 달리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지닌 수단이라는 걸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그것이 그들의 임무라는 것만 보여줄 뿐.

그런데도 영화가 진행되어 가면서 '감시'의 포위망이 좁혀들어 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자 제임스가 잡히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마음은 꼭 정우성의 멋진 외양으로 인한 1차적 감정의 발의만이 아닐 지도 모른다. 미로에 갇힌 쥐를 응원하는 마음처럼, 사이버 미로에 갇힌 인간의 탈출을 응원하는 막연한 호의일 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미국 정보국의 무차별 정보 수집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전직 정보 요원 에드워드 스노우든이 미국이 자국 내는 물론, 중국, 유럽 등 해외 각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에 앞장서고 있다고 밝혀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마치 그런 정보 수집을 불가피하다는 듯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아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치 평론가들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미국의 자구책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어, 이른바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는 정보 대전의 상시화의 단면을 노출시키고 있다. 즉 한 국가는 물론, 전 세계적 망을 가진 '감시'의 일상화이자, 시스템화 속에 우리는 무심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감시자>들은 가장 완변할 것 같았던 설계자조차도 경찰의 특수 감시 조직의 전능함 속에서는 무력하다는 절대 명제를 완성시킨다. 그래서, 자꾸 '불법 사찰'이란 가능성이 더 걸리는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3. 7. 10. 14:20

<힐링 캠프>가 2주년 중이다.

2주년이다 라고 단정 어미를 쓰지 않고, 중이다 라고 진행형을 쓴 것은, 말 그대로, 지난 번 '한혜진 특집' 이래로, 다음 주 '힐링 동창회'까지 쭈~욱 힐링 캠프가 2주년 특집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기성용과의 결혼으로 <힐링 캠프>를 떠나는 한혜진을 게스트로 모신 '힐링녀' 특집과 그간 <힐링 캠프>에 출연한 게스트들을 다시 한 자리에 모은다는 '힐링 동창회' 특집 사이, 8일자 <힐링 캠프>는 힐링 캠프판 먹방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취지는, 2주년을 달려오는 동안 애쓴 mc들과 스탭들을 위한 먹거리 잔치였는데, '방랑 식객' 임지호를 초빙하여 벌인 무진장 잔칫상은, 역시나 <힐링 캠프>다운 먹방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사진; 헤럴드 경제)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요'

방랑 식객 임지호의 요리 과정을 보며 한혜진이 말한다. 맞다. 요리를 그저 요리가 아니라, 우리의 인문학이라 말하는 임지호의 요리는 요리의 시작 부터 다르다.

일찌기 sbs스페셜을 통해 우리 산천을 누비며 그곳에서 나고 자란 온갖 풀과 자연 재료들을 이용하여,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위한 생명이 있는 요리를 선보였던 임지호는 <힐링 캠프>에서도 예의 그 특기를 선보인다. 힐링 캠프 게스트들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다짜고짜 경기도의 모처에 위치한 녹화장 주변의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임지호의 손은 두텁다. 그리고 손톱 끝에는 검은 물이 들어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리사의 날렵한 그 손매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검고 투박한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요리는 그 어느 요리사의 요리보다 섬세하다. 스스로 레시피가 없다고 장담하는 임지호의 요리는, 그 요리를 먹는 사람들을 위해 즉석에서 마련된 요리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아토피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요리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경규에 어울리는 삼색 나물 주먹밥과, 결혼을 앞둔 한혜진을 위한 꽃을 감싼 감자 범벅 요리가 만들어진다.

 

 

인문학이 달래 인문학이 아니다.

장 하나도, 장을 담그는 항아리를 자궁으로, 그 안에 담긴 물을 양수로,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 장을 만드는 메주를 수정난으로 상징하는 그의 요리 철학처럼, 그가 우리 곁의 자연을 통해 만들어낸 요리에는 사람을 살리는 기가 잔뜩 들어있다.

달큰하고 편안한 입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는 생초를 쑴벅쑴벅 썰어서 밥과 버무린 그의 요리가 투박해 보이고 입속에는 겉돌아 거칠지만, 마치 산사에 가면 그 기운에 절로 몸이 정화되듯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리 과정을 보고 낯설어 하던 사람들이 그의 음식을 씹으며 생전 처음 맛보는 맛이라며, 점점 밝아지는 얼굴에 마치 내가 먹은 것처럼 나조차 얼굴이 펴지게 된다. 그 요리 과정을 그저 보기만 했는데도, 이경규의 53년을 헛살았다는 앙탈이 괜히 공감이 되어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사진; 파이낸셜 뉴스)

 

 

먹방이 유행이다.

주말 예능에서 아이들이 한 입 미어지도록 쑤셔 넣어 먹는 것을 보며 입을 헤벌리고, <인간의 조건>멤버들이 날마다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는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킨다. 잘 나가는 예능의 필수 조건 중 하나가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공중파 예능 만이 아니다. 한 개인의 사적 송출인 '아프리카 방송' 중에는 그저 먹는 것만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vj들이 있기도 하다.

이런 먹방의 유행에 대해, 홀로 사는 가구들이 많아지면서, 혹은 개개인의 생활들이 바빠지면서 홀로 밥 먹는 시간들이 늘어나다보니, 철학자 강신주의 말 그대로, 밥을 먹는게 아니라, 사료를 흡입하다 보니, 먹는 즐거움을 잊다 보니, 먹방이 유행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대세이다.

 

 

그런데, 인간의 쾌락 본능 중 먹는 건, 이른바, 먹고 싼다라는 속어가 있듯이, 가장 원초적인 수준의 본응에 속한다. 먹거리가 지천에 널려, '과식'과 '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다이어트'가 생의 화두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 새삼스레, '먹방의 유행'이라니.

어쩌면 아이들이 사회 생활에서 트라우마가 생기면 아기 시절로 퇴행을 하여, 손을 빠는 등 어린 양을 부리듯이, 사회적 본는의 충족을 얻지 못한 현대인들이 퇴행하여 원초적 먹방으로, 정신적 허기를 달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정작 삶의 고달픔으로 밥맛을 잃은 자신을 누군가 정신없이, 정답게 음식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이라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먹거리를 통해 인간을 살리고자 하는 야심찬 의도를 가진 임지호를 통한 <힐링 캠프>의 먹방은, 말 그대로 힐링, 지친 사람들에게 치료제가 되는 먹방이 될 수 있겠다. 2주년 기념 잔칫상도 벌이고, 프로그램의 취지도 살리고, <힐링 캠프>다운 먹방이다.

 

by meditator 2013. 7. 9. 08:13

'맨발의 예체능'

이런 프로그램은 없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나는 mc강호동이 복귀와 함께 새로 시작한 <맨발의 친구들>과 <우리 동네 예체능> 두 프로그램의 명칭을 늘상 '맨발의 예체능'이라 헷갈려 주변 사람들에게 흉을 잡히곤 한다. 그런데, 7월 7일자 <맨발의 친구들>을 보면, 내가 헷갈린 게 아니었다. 난 그저, 예지력이 뛰어난 것일 뿐이었다. <맨발의 친구들>과 <우리 동네 예체능>의 '콜라보레이션' 딱 '맨발의 예체능'이지 않나?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대체 아직도 <맨발의 예체능>이 무엇을 하자는 프로그램인지 모르겠다.

처음에 외국에 나가 현지 체험 및 돈벌이를 하며, 한류 스타가 '앵벌이'를 한다면 이슈를 만들려고 하더니만, 반응이 없자, 예능 순회를 하는 이효리를 초빙해 각 출연자의 집을 돌며 용돈벌이를 하고, 촌으로 들어가 <패밀리가 떳다> 시즌 3 버전을 찍는가 싶더니만, 계곡에서 한 시간 내내 입수를 하다 '다이빙'을 한단다. 그러더니, 이젠 아이돌까지 연습을 시켜, 서로 경기까지 한다니!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거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로 어저께 까지 <맨발의 친구들>이 하는 건 하나도 새로운 게 없다. 처음 외국에 나간다고 했을 때, 그 아이템을 들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체험, 삶의 현장> 아이돌 버전이냐고 했을 때부터, 이제, <우리 동네 예체능>의 <아이돌 체육 대회> 편을 찍고 있는 이 시점까지, <맨발의 친구들>은 늘 어디선가 보던, 하지만 이젠 먼지가 풀풀나는 아이템들에, 하다하다 지금 강호동이 다른 방송사에서 주중에 하는 프로그램 아이템들을 꺼내든다.

 

게다가, 아이돌들을 급하게 훈련시켜 다이빙대에 세워 <맨발의 친구들> 팀과의 대결을 준비한 것처럼, <우리 동네 예체능>의 바로 전 포맷이 아이돌 장수 그룹 신화를 불러와 <우리 동네 예체능>팀이랑 대결을 펼쳤다. <아이돌 체육 대회>란 프로그램의 인기를, <신화방송>의 인기를 차용한 것이다. 심지어, 이젠 시청률마저, 동시간대 <맘마미아>와 힘겹게 꼴찌 탈출을 겨루고 겨루고 있는 <맨발의 친구들>과 <화신>에게 조차 밀리기 시작한 <우리 동네 예체능>이 비슷비슷해졌다.

(사진; tv 리포트)

 

 

그래, 포맷을 베껴도 좋고, 잘 나가는 아이템을 차용해도 좋은데, 프로그램의 '기승전결'마저 똑같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맨발의 친구들>이든, <우리 동네 예체능>이든 당연히 어떤 스포츠 종목을 들이댔을 때 mc진은 당혹스러워한다. 그리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해도 해도 안되는 구멍이 있고, 배움이 빠른 에이스가 나온다.

하지만 강호동은 두 프로그램에서 캐릭터가 똑같다. 처음 종목을 듣고 멘붕에 빠지다가, 못하다가, 하지만 결국을 어느 정도 해내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팀원들을 대하는 선생님을 대하는 리액션도 똑같다. 다그치다, 쩔쩔매다, 잘 하면 갖은 오버를 하다가, 아양도 떨다가......(아마도 강호동을 쫌 본 사람이라면, 내가 쓰는 이 문구에 자동적으로 오버랩되는 강호동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망의 대결을 통해 감동의 진검승부가 펼쳐지겠지. 예고에서 보여진 것처럼, 그 어려운 과정을 감내했던 자의 눈물도 있을 것이고.

 

 

유세윤의 음주 운전 해프닝으로 대신 투입된 은지원은 다이빙대에 올라가면서 말한다. 내가 사전에 모니터링한 <맨발의 친구들>은 이게 아닌데.......

어디 은지원뿐이겠는가. 김현중도, 유이도, 윤시윤도, 은혁도, 그리고 나이많은 윤종신까지, <맨발의 친구들>에 참여한자신들이 흐르고 흘러 어느 날 저 높은 다이빙대위에 설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래도 해외에 가서 현지인처럼 돈을 벌라고 하면 돈을 벌고, 내 집을 다짜고짜 개방하라면 개방하고, 수영을 못해도 다이빙을 하라면 다이빙을 하는, 출연진들이 안쓰럽기 까지 하다. 그건 많은 출연료로 감음하지 못한 안쓰러움이다. 심지어 단발 출연의 아이돌들은 더 안쓰럽다. 세 달에 걸쳐 훈련을 하는데도 물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는 mc진들인데, 겨우 1주일 훈련을 시키고, 경기를 벌이라니, 누가 더 멀리 뛰나하며 3m 의 다이빙대를 달려가는 모습은 더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짜 사나이>처럼 흘리는 땀 방울 하나하나가 시청률로 보답이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그저 안간힘처럼 보여지니 더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공과 과는 강호동으로만 돌려지니, 이것을 좋다고 해야 하나, 더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사진; 스포츠 월드)

 

 

강호동의 복귀 이후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섣부르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두 개나 런칭했다던가, 쉬는 동안 예능의 감을 많이 잃었다거나, 안일하게 거대 기획사에 기대어 그 기획사 소속 연예인을 끼워 팔기 하는데나 앞장선다던가...... 그런 모든 비난들이 거세게 일어도, 사실 강호동이 굳굳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면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호동은 안타깝게도, 그런 위기설들을 이른바 '진정성'으로 극복해 내지 못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실패로 이끈 mc가 바로 다음 프로그램의 mc로 살아남는 경우는 강호동 밖에 없다. 8년의 <놀러와>가, 그리고 101가지의 미션을 앞둔 <남자의 자격>이 사라진 곳에 유재석이나, 이경규는 없었다. 하지만, 화요일 밤의 <달빛 프린스>는 사라져도 강호동은 남아있고, <맨발의 친구들> 포맷은 공중에 떠도 강호동은 살아있다.

거대 기획사의 전횡이 어디 강호동뿐이냐고, 프로그램이 달라져도 살아있는 강호동은 여전히 그 기획사의 누군가와 함께 프로그램을 다시 꾸려간다. 심지어 개편을 빌미로 기존의 정든 멤버가 내쳐지고, 같은 기획사의 누군가가 들어가는 식이다.

그렇다고 그게 새롭기라도 하면, <우리 동네 예체능>의 강호동 이수근 콤비를 목요일에도 또 봐야 하는 식에, <1박2일>의 은지원이 <맨발의 친구들>에 등장하는 식이다. 강호동이 다중이가 아닌 한에서 그의 리액션은 뻔할 수 밖에 없는데,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조차 같으니, 더더욱 뻔할 수 밖에 없다.

강호동은 사람들이 자시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복귀 후 강호동의 짧은 행로를 보면서, 왜 사람들이 그에게 불평불만을 하는지 보인다.

 

 

한때 그 누가 와도 살려내지 못할 거 같은 mbc 일요 예능의 최근 승승장구를 보면, 예능 트렌드의 기복이야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장담치 못할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근에 보면, 그건 하난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강호동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by meditator 2013. 7. 8. 10:02

고령화 시대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세대 대결이니, 어른 세대가 대동단결해 젊은 세대를 물리쳤느니 하는 분석이 나오는 시대다. 더 이상 쪽수로 어른들이 밀리지 않는 세대, 평균 수명 80세를 넘는 시대다.

**알과 같은 비슷비슷한 종편의 프로그램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중장년층이요,젊은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한 중장년층 덕분에, 영화과 뮤지컬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진작부터 텔레비젼 시청률의 관건은 바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중장년층의 위치가 확고해져 갈 수록, 젊은이들은 그들이 즐기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진다.

<뮤직 뱅크>와 <쇼 음악중심>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가는 것을 걱정하지만, 일찌기 중장년층만의 리그였던 <가요무대>는 굳건한 고정 시청률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절대 젊은이들이 이 프로를 보지 않는다. 이른바 대놓고 '막장'의 코드를 내세운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집에 일찍 와서 그걸 보는 엄마랑 이야기하느라 앉아있다 함께 실소를 지을지언정, 그걸 찾아보게 되지는 않는다. 지난 선거 때 종편의 정치 프로그램에 심취한 아버지 곁에 앉았다가 심하게 싸워 본 경험, 그게 아니라도 뉴스를 보다 입바른 소리 몇 마디로 부모 자식이 얼굴을 붉힌 기억, 혹은 꿀떠 말을 삼켜버린 기억이 젊은 세대에겐 누구나 한번쯤 있지 않을까. 심지어, 젊은이들과 어른들은 리모컨을 누르는 순서조차 다르다. 심심풀이로 한바탕 리모컨 순회를 할 때도, 젊은이들이 절대 누르지 않는 번호가 있는 것처럼, 어른들이 절대 접근하지 않는 번호 역시 또 있다. 대화가 단절되지 않는 게 이상하고, 공감대의 소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던 젊은 사람들이 <꽃보다 할배>를 기대한다. '닥본사'를 하고, 심지어 어떤 할배가 괜찮더라며 열광하기 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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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파이낸셜 뉴스)

 

 

<꽃보다 할배>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장년층 연기자 네 분이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에 이르는 배낭 여행 과정을 담은 tvn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1박2일>을 이끌었던 나영석 피디의 케이블 첫 작품으로, 마치 <1박2일>의 장년판이요, 해와판 버전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텔레비젼에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프로그램이 젊은 층에게까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어르신들이 텔레비젼에 나와 하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그저 앉아서 그분들이 살아오신 경험을 '설파'하시는 포맷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강에 대해서, 부부 관계에 대해서, 고부 관계에 대해서, 자녀 양육에 대해서. 내 부모 이야기도 듣지 않는 젊은 세대가 남의 부모가 나와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걸 즐겨 듣겠는가. 당연히 어르신들이 이야기하고, 또 다른 어르신들이 '그래그래' 하면서 들어주는 순환적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43살의 젊은이(?) 이서진이 '배낭 여행은 2,30대나 가는 거지'라고 푸념을 하듯이 tvn의 <꽃보다 할배>는 네 분의 할배에게 젊은이들의 로망인 배낭 여행을 시킨다. 자기도 가고 싶은 배낭 여행을 할아버지 네 분이 간다니! 관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할배들 대단하다. 첫 회 이서진은 쩔쩔맨다. 물론 걸그룹과의 여행이라며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합류했던 여행에서 네 분의 어르신들을 만나니, 당연히 '멘붕'이요, 더구나 여행 경비를 비롯해, 모든 일정을 관리해야 하니, 더더욱 멘붕일 수 밖에 없겠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한때 다 잘 나가시던 분들이라 자존심이 대단하셔서, 쉽게 도와드릴 수' 조차 없어 더 이서진은 쩔쩔 매게 될 수 밖에 없다. 다리가 아픈 백일섭조차, 가방 속에 든 장조림을 지하철에 던져 버리고 발로 찰 지언정, 끝없이 이어진 지하철 경우지의 계단을 가방을 들고 오르는 것을 거부치 않는다. 네 할배들은 여행의 처음부터, 도착할 때까지 자신들의 가방을 스스로 챙기고, 스스로 걸어간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던 이순재의 출사표처럼, 어르신들은 스스로 뭔가를 보여줄 자세가 되어있다. 물론 어르신들이 등장해 전국의 맛집이나 아름다운 풍광을 여유롭게 찾아다니는 프로그램들은 꽤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된 할배들의 모습은 유유자적한 여행기와는 또 다른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뉴스 24)

 

 

거기에 어르신들의 여행에서 오는 페이소스도 만만치 않다. 첫 날 저녁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념하며 나누는 축배를 들며, 네 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첫 예능, 함께 하는 첫 여행, 그리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여행이라고. 남의 나라로 가는 여정에서 좌충우돌이던 할배들을 보고 깔깔대다 마지막에 던져진 그 삶의 현실에 울컥해지는 건, 굳이 나이를 따질 필요가 없겠다.

 

 

이제는 그 자신이 스타가 된 나영석 피디와, 이우정 작가가 왜 대단한 가를 보여주듯이, <꽃보다 할배>는 단 첫 회만에, 할배 네 분의 캐릭터와, 그들의 '집사'격인 이서진의 매력을 흠씬 보여주었다. 한 시간여, 방영시간 동안, 특별한 거 없이, 여행 가방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힘들게 머물 곳을 찾아가는 그 여정만으로도, 이 네 분의 할배와 한 사람의 집사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만들었다.

집사 이서진은 불쌍해서 또 보고 싶고, 직진 순재는 80이 넘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생기'에 감탄하게 만들고, 로맨티스트 박근형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구야형의 따스함은 더 무얼 바라겠는가. 그리고 막무가내 백일섭의 캐릭터는 화룡점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관건은 재미만이 아니다. 출연자들과 정이 들어 그들이 무엇을 해도 그들과 함께 할 마음의 자리를 시청자들에게 허락받는 것이 바로 관건이다. 그리고 나영석 피디의 <꽃보다 할배> 팀은, 명확하게 그걸 짚어내고 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3. 7. 6. 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