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의 <굿닥터>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예언자가 되어간다. 

월요일 방영 중반 차윤서(문채원 분) 선생이 모처럼 노는 날 어디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박시온(주원 분)은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대답한다. 
당연히 차윤서와 박시온은 동물원에 놀러가고, 거기서 차윤서는 수의사가 되어도 좋은 만큼 동물의 마음을 읽는데도 탁월한 박시온의 능력을 알게 된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회분 방영 말기, 등장하는 환자가 개들 사이에서 방치되어 길러진 '늑대 소녀'였다. 물론 강력한 진정제 말고는 제압할 수 없는 그 늑대 소녀를 환자로 제대로 대우하는 것은 박시온 뿐이다. 



<굿닥터>를 보다보면 어떤 장면이 나오거나, 혹은 누군가 등장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구나 예측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드라마는 십중팔구 그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약혼자 채경에게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좀 이해해 주면 안되겠냐고 말하던 김도한은 채경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호, 혹시 차윤서를 불러내는 거 아냐? 하니 아니나 다를까 차윤서를 불러낸다. 그러고는 채경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자신의 속 이야기, 자신의 정신지체3급 동생이 자기로 인해 죽게 되었다는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 놓는다. 박시온이 차윤서를 만날 때마다 딸국질을 해대는 것에 버금가는 노골적인 속내다. 
어디 그뿐인가, 박시온의 엄마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역시나 병원 드라마답게 아파서 쓰러진다. 그것도 차윤서와 박시온 앞에서, 게다가, 엄연히 맡은 과가 정해져 있는 종합병원임에도 소아외과 차윤서가 차트를 들고 그녀를 담당한다. (바로 지난 주 다른 과 환자를 데려갔다고 멱살잡이를 하더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의 사연을 가장 박시온을 안쓰럽게 여기는 차윤서가 알게 된다. 병원과 엄마의 전형적인 클리셰이다. 

<굿닥터>를 보고 있노라면 신선한 줄거리가 아니다. 어디서 한번쯤 보던 것이나, 혹은 '늑대 소녀'처럼 충격적이어 보여도. 그로 인해 박시온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고, 또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다음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굿닥터>는 재미있다. 그건 뻔한, 혹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이 <굿닥터>를 이루는 하나의 씨실이라면,  그 씨실을 얽어가며 그림을 만들어 내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캐릭터들이 어느새 공감을 얻어가며 '내'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굿닥터>에서, 말 그대로 좋은 의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세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은 서번트 증후군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생활을 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는 박시온이다. 그의 의사로써의 재직 자체가 병원 원장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만큼, 장애인의 경계에 서있는 박시온 선생은 말 그대로 화약고이다. 이 드라마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그로 인해 생겨나고, 그로 인해 해결되는 말 그대로 좋은 의사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분명 20일자 엔딩에서처럼 자신의 환자를 위해서라면 그 옆의 경호원을 밀치고 나자빠지게 할 만큼 맹목적이고 불온한 박시온이지만, 작가의 인터뷰에서 보여지듯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그는 나타난 결과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매력을 내보이고 있다. 맹목적인 그의 행동들이 체계와 시스템에 억눌린 요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힐링'이요, 때로는 눈치없이 내뱉는 그의 말들이 속시원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박시온은 아직 절름발이다. 그만으로는 좋은 의사와 의학 드라마는 완성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를 성장시켜 줄 '멘토'이다. 
처음에 최우석 원장(천호진 분)이 그를 데려왔을 때, 그가 박시온의 멘토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 외로 회를 거듭하면서, 박시온의 뒷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것은 정작, 그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김도한 선생(주상욱 분)이다. 
차윤서에게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섣부른 욕심으로 인해 동생을 홀로 거리로 내몰아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김도한 선생은 박시온에게 섣부른 기회를 주는 것보다, 그를 제 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동생 때문에 훌륭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적자인 소아외과에 남아있는 김도한은 박시온을 볼 때마다 동생이 떠올라 힘들어 한다. 
그럼에도 무능력한 과장 아래 김도한은 소아외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위치이고, 본의 아니게, 박시온의 일들을 수습하게 되고, 묘하게도 박시온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봉쇄하게도 되는 긴장감있는 '멘토'의 위치에 놓인다. 
<굿닥터>라는 드라마가 기존의 드라마와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은, 서번트 주인공인 박시온이 주인공인 것도 있지만, 거기에 덧붙여, 주인공인 박시온에 적대적이면서, 그에 대해 애증을 지니는, 그리고 위치상 멘토가 될 수 밖에 없는 애증의 인물 김도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도한은 김도한 자체로 늘 병원을 집어 삼키려는, 혹은 의료 행위를 입신 양명의 수단으로만 삼는 세력들에게 비타협적이다 못해 적대적이면서, 자신의 직업의 이유를 자부심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념이 뚜렷한 정의로운 존재이자, 그 자신의 사연때문에, 입장 때문에 박시온과 대립하는 양면성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사건만 생기면 그의 눈빛과 안색을 살피게 되어 버렸다. 
<굿닥터>는 말 그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성장담을 다루는 이야기이고, 거기에서 외면적으로 드러난 성장담이 박시온이 의사가 될 수 있는가 여부이지만, 사실 드라마 속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며 고뇌하는 실질적 견인차 역할은 김도한에게 맡겨져 있다. 그의 선택, 그의 의지에 따라, 박시온을 비롯한 드라마 전체가 요동친다. 

김도한이 궁극의 해결책을 쥐고 있는 결정적 멘토라면, 차윤서는 그 자신이 때로는 김도한의 표현처럼 박시온처럼 의지만이 앞서는 맹목적이고 불완전한 펠로우 2년차이면서, 또한 어린 아이 같은 박시온을 곁에서 보살피고 도와줄 수 있는 실질적인 멘토이다. 박시온이 하는 모든 일에 끼어서 때로는 그를 꾸짖고, 때로는 그를 편들며서, 그리고 그런 박시온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자신을 투영하고 반성하며 커나가는 중간적인 존재이다. 

<굿닥터>는 박시온이라는 어찌보면 그저 선명한 하나의 빛깔 밖에 없는 캐릭터를 그보다 조금 성숙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박시온같은 차윤서와, 보기엔 냉철한 이성밖에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그로 인해 고뇌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김도한이란 캐릭터로 두텁게 덧칠해 간다. 그리고 이 세 사람 모두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응원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굿닥터>가 예측 가능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골든 타인>을 제외한 많은 드라마들이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에 발목을 잡혔던 전례를 <굿닥터>가 극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미 차윤서만 보면 딸국질을 하는 박시온에, 약혼자 대신 차윤서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김도한을 보면 그런 바램은 불가능할 듯 하지만, 사랑 이야기에 발목잡히지 않는 좋은 의사들의 성장담을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3. 8. 21. 10:18

"미리 좀 좋아해 주시지, 사람 속 다 태워버리고....."

한때 김광석과 함께 동물원의 멤버였던, 그리고 아직도 동물원의 김창기로 남은 김창기, 옆에 있어줄 친구가 필요하다고 뒤늦게 '광석이에게'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김창기가 인터뷰 말미에 속내를 비추다 끝을 맺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사람들이 김광석을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그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김창기의 저 말과 비슷한 감정이 살짝 밀고 들어온다. 그리고 거기에 둔중한 부채감마저 얹어진다. 나 역시 그랬다. 화려한 댄스 음악이 텔레비젼 화면을 메울 때 거기에 초라하게 구석을 차지하던 김광석을 보고, 저렇게 한 사람의 시대가 가는구나 하고 쉽게 단정지으며 외면해 버렸다. 현란한 새 음악의 조류에 눈과 귀를 빼앗겨 버렸었다. 바로 그의 속을 태워버린 일인이다. 쉽게 그의 노래가 좋다라고 말하기 미안하다. 미안해 하면서도 자꾸 그의 노래를 읊조린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그렇게 유행에 홀려 그의 노래를 외면한 대중 덕분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 그는 가고, 여전히 그의 노래는 불리운다. 
그의 노래를 가지고 만든 뮤지컬만 3편, 그리고 그 작품들이 다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오디션 프로에서는 하도 많이 들고 나와서 이젠 암묵적 금지곡이 되었을 정도요,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란다. 그는 가고, 그의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 남아있다. 
그리고 <mbc스페셜>은 외국에서 살다온 젊은 가수 존박을 내세워 이제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가는 '김광석'을 조명한다. 

평론가 임진모는 김광석을 9번 타자라고, 더 이상은 다음 타자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9번 타자, 황당하지 않은 이야기로 노래 부르는 마지막 가수라고  단정짓는다. 더 이상 다음 타자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9번 타자 김광석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꼭 그와 시대를 공유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나지 않은 존박임에도 김광석의 노래가 좋단다. 존박은 약과다. 빅마마의 멤버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프랑스 남편도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다. 외국인이 들으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슬퍼지는 노래란다. 김광석만이 표현할 수 있는 '한'이 있다고 정의내린다. 
친구였던 박학기는 하회탈같던 김광석의 웃음을 기억해 내며, 그는 늘상 웃었고, 웃었는데도 슬퍼보였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웃음 속에도 남아있는 슬픔이 바로 그의 노래의 '한'이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와 함께 그룹 동물원을 했던 김창기는 당시 동물원의 노래를,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를 보통 사람들의 보잘 것업는 일상, 서글픈 상념을 공유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보통 사람들의, 바로 자신의  보잘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통해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 운동을 하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에서 활동하기 했던 김광석이기에, 평론가 강헌씨의 말대로, 그의 노래에 '스트레이트'한 운동적 이념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더라도 '시대성'을 노래하는 그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중략)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물론 90년대 초반 서태지 등이 대중 가요 시장을 장악하며 tv에서 그를 마주치기는 점점 힘들어 졌다. 친구 박학기의 말대로 그의 노래는 패셔너블하지 않기에 유행가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 가슴에 푹 들어오는, 삶의 고개마다 만날 수 있는 진실한 울림이다. 
뮤지컬 <그날들>을 만든 감독 장유정은 김광석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드는 작업이 흡사 잘 만든 영화의 속편을 만드는 것처럼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청춘의 골목길에서 자신의 등을 두드려 주었던 그의 노래에 빚을 갚는 마음으로 뮤지컬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의 노래로 만들어진 뮤지컬은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 16번을 보러 온 관객들로 인해 성황이다. 그가 통키타랑 하모니카 하나로 두 시간 여의 공연을 하던, 학전 소극장 그의 부조 앞에는 아직도 종종 그가 좋아하던 술과 음식들이 놓여져 있다. '나 노래 잘하지'가 아닌, ' 내 마음 알지'라며 노래로 소통하던 김광석은 20살의 김지향이 2013 김광석 따라 부르기에 나서게 할 정도로, 존박과 같은 젊은이도 듣고만 있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한 위로가 되고 있다. 

바람이 불어 오는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길 그길에 서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 오는곳 그곳으로 가네

1996년 33세의 나이로 김광석은 생을 마쳤다. 그와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반백이 되어 그를 회고하는 지금에서 되돌아 보면, 참 '젊은(?) '나이다. 2013년의 대표적 문화 콘텐츠가 되었고, 여전히 그의 노래가 많이 불리는지 그는 알까. 
19일 <굿닥터>에서는 하늘나라가 있는지 유뮤를 두고 현실적인 김도한 선생과, 아이같은 박시온의 대립(?)이 있었다. 그렇다. 나이가 든 나에게 현실은 김도한 선생의 하늘 나라 따위는 없어 이지만, 더 이상 내가 설 자리는 없어 하고 몸을 날린 김광석을 생각한다면, 박시온 선생 말처럼 하늘나라에 닿는 마음의 문이 있어, 김광석이 하늘에서 온 나라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무지무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by meditator 2013. 8. 20. 10:14

"어떻게 다 자기 감정, 자기 입장만 생각해요!"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화를 속으로만 삭이던 금만복(기태영 분), 아니 장은중이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그럴 만도 하다. 이십여년을 내 엄마라, 아빠라 믿고 왔던 사람들이 사실은 친부모가 아니라더니, 엄마의 친아들을 유괴한 사람의 재판에 엄마가 앞장선단다. 어디 그뿐인가. 사실은 배다른 오빠인 사람에게 여동생은 좀 더 사귀어 보고 싶다고 하고.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드라마 <스캔들>의 관계 구도는 따지고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유괴범에 연민을 느끼는 엄마, 배다른 오빠와 여동생의 계약 연애, 심지어 조미료처럼 쳐진 장태하의 첩 고주란(김혜리 분)과 강주필(최철호 분)전무의 불륜아닌 불륜까지. 장은중(김재원 분)이어야 할 아이가, 하은중으로 자라났다는 것만으로, 완전 콩가루 집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동생의 꺽이지 않는 연애 방식을 빗대 장은중이 아버지 장태하(박상민 분)와, 어머니 윤화영(신은경 분)에게 말하듯이,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의 욕심때문이다. 

(사진; 뉴스엔)

장태하는 부실 시공을 한 건물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그걸 덮기 위해 88올림픽을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하명근(조재현 분) 형사의 아들 하건영이 죽어갔다. 그리고 하명근 형사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리고 비리를 권력으로 덮으려는 장태하를 해치려 그 집에 갔다가 얼떨결에 그의 아들을 유괴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다 그의 아들을 돌려주려 그 집에 갔지만, 이미 그 집엔 다른 장은중이 있었다. 그래서 진짜 장은중은 하은중이 되어야 했다.
진짜 장은중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엄마 윤화영이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아버지의 사업체를 강탈한 남편 장태하에 대한 복수를 자신의 아들이 그의 뒤를 잇게 하는 것으로 하려던 윤화영은 아들이 유괴되어 죽었다는 쪽지를 보고, 가짜 금만복을 장은중으로 만든다. 
18일 방송에서, 하명근 형사가 병원에 드나들던 이유가 밝혀졌다. 췌장암이다.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남았다고 한다. 자식 바보인 하형사는 그 소식을 듣자, 남은 개월 수를 손으로 꼽다가, 남겨진 아이들 김장 걱정을 한다. 처방전을 버리고 홀로 벤치에 앉아 오열하는 하명근 형사에 시청자들의 가슴도 미어진다. 그리고 그런 하형사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윤화영이다. 그녀 역시 오랜 시간 밤잠을 못이루고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신세다. 하명근의 애끓는 부정이, 윤화영의 채워지지 않는 모성이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저질렀던, 그래서 이제 그들의 죄로 인해 아이들까지 고통받는 업보가 덮어지지는 않는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전래 동화를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의붓딸과, 계모의 관계를 실제 모녀 관계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성장하는 딸과, 그 딸의 성장을 원치 않은 엄마의 존재로, 서양의 오이디푸스 신화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등장하는 아버지 살해는 실질적인 아비의 살해가 아니라, 아버지의 존재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는 남성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스캔들>의 부모 세대 역시 상징적이다. 비리로 부와 권력을 세운 장태하는 원시적 자본주의 축적의 원형이다. 그렇다면 윤화영과 하명근은 무엇일까? 윤화영은 그의 비리를 알면서도, 그의 비리의 희생자이면서도, 그의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그것을 통해 자신도 그 부과 권력의 대열에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있던 많은 투항자들을 의미한다. 현대사에서 적당한 지위와 부를 누렸던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명근은 그 반대의 위치이다. 현대사의 제물이었지만, 힘이 없어, 옹졸한 사적 복수 밖에 하지 못했던 그리하여 그 자신도 피해를 입고 살아가야 했던 희생양을 상징한다. 
지난 시절 윤화영과 하명근은 장태하의 비리를 알았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이 우선해, 그리고 힘이 없어, 시절이 하수상해 만천하에 그의 비리를 폭로하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적인 보복뿐.  그 시절이 윤화영과 하명근이 장태하의 비리를 덮어둠으로써 다시 오늘에 이르러 아파트는 여전히 부실 시공으로 다시 붕괴될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공기찬이 죽고, 그의 아내는 아이를 잃었다. 
드라마는 말한다. 정죄되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더 큰 고통을 돌려주며. 심지어 그 고통은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자식 세대까지 침식할 것이라고. 


스캔들 시청률
(사진; tv데일리)

그런 의미에서 장태하를 향한 윤화영과 하명근의 재판은 상징적이다. 결국은 또 다른 고통만을 만들어 놓은 사적 복수를 벗어던지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장태하를 징벌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화영은 선언한다. 이제라도 자신이 나서서 장태하의 질주를 막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비록 상대가 아들이라고 해도 멈추지 않고 재판을 맡겠다고. 
하명근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의 아들을 유괴했던 옹졸한 사적 복수가 아니라, 자신이 희생양이 되더라도 그때 하지 못했던 장태하의 비리를 만천하에 밝히는 내부 고발자가 되어 정죄를 완성하려 하는 것. 
나빴던 어른들이 뒤늦게 하는 '결자해지', 하명근 형사에게 남은 시간이 3개월 남짓,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제라도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돌려놓으려는 그와 윤화영의 노력이 부디 원하는 결과로 마무리지어 지길 바란다. . 


by meditator 2013. 8. 19. 10:16

8월 17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에서는 각자 휴가를 즐기던 멤버들이 모처럼 한 집에 모여 늦잠에 빠져있는 아침, 느닷없이 엠블랙의 이준이 방문을 한다. 이유인즉, 자신의 그룹이 활동을 끝내고 휴가라, <인간의 조건>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생뚱맞은 아이돌 게스트의 출현에 멤버들은 조금은 낯을 가리거나, 남의 집에 찾아오면서 빈 손으로 왔다고 타박을 하며 경계를 허물어 가면서, 예의 그 가족적인 따스함으로 게스트 이준을 <인간의 조건>안에 녹아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날 하루 이준은 <인간의 조건> 멤버들과 함께 긴 하루를 보낸다. 

(사진; sstv)

<인간의 조건>에는 종종 아이돌 게스트들이 방문한다. 17일 방영분의 이준이 그랬고, 그 이전에 전기 없이 살기 미션 중에는 2pm이 단체로 혹은 친구의 자격으로 개인 멤버가 방문을 하기도 했었고, 뜬금없이 예은이 자신의 강아지와 함께 <인간의 조건>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와 먹방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같은 아이돌들이지만 그들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 멤버들의 반응 혹은 멤버들과의 합이 달라진다. 여자 아이돌이었던 예은은 남자들만 드글거리는 집에 말 그대로 '꽃'처럼 등장해, '공주'처럼 대접을 받다 갔고, 2pm은 전기 없이 모시 옷을 입고 버티는 미션에 합류해 땀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 이준도 멤버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던 일 하는 휴가 미션에 도전을 한다. 

아이돌이건, 그렇지 않건 게스트의 첫 등장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의 관건이 되는 것은 '개연성'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아이돌 게스트의 등장은 17일 방영분의 이준의 등장처럼, 이유불문, 뜬금없이 나오니까,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처음 <인간의 조건>을 시작하고 집을 떠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게 낯설던 시절 개그맨 후배 신보라한테 놀러오라고 하다가, 그녀와 같은 소속사인 이유로 등장했던 에일리는 그나마 기승전결이 있는 셈이다. 허경환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임슬옹의 등장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넘어선 아이돌 게스트의 등장은 대부분 안타깝게도 프로그램의 흐름을 깨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이 나오면 어느 프로그램이던지, 아이돌이란 프리미엄을 인정하고 대접하면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멤버들의 접고 들어가는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까지 공유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가에 있어서는 회의적인 면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나 누가 누군지 이름을 기억하기기조차 어려운 아이돌이 범람하는 이즈음엔. 더더욱 아이돌의 프리미엄이란 냉소의 대상이기가 십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조건> 박성호처럼 낯을 가리는 멤버는 생경한 아이돌의 등장으로 얼음이 되어버려 원래의 활약조차도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게스트의 존재가 기존 멤버와의 시너지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 반대의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젠 화제성도 그닥이다. 결국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것은 그들을 통해 1회성이라도 화제를 끌어모으려고 하는 것인데, 김준호의 자평대로 닉쿤이 모시옷을 입었지만 화제는 되지 않았고, 분홍색 미션 티를 리폼해 입은 이준 편의 시청률이 그걸 증명한다. 


(사진; 마이데일리)


비단 이런 경우는 <인간의 조건>만이 아니다. sm 소속의 신생 아이돌 그룹 exo는 sm 소속 연예인들이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면 어느 곳이나 얼굴을 비춰 자신들을 알리기에 분주하다. <불후의 명곡> 게스트는 애교일 정도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태민과 함께 등장하는가 하면, <나 혼자 산다>에서 강타의 소속사 후배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룹 exo 팬들이야 우리 오빠가 자주 나와서 좋았겠지만, 그들의 출연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태민과 강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을 낳는다. 
<우리결혼했어요>의  exo처럼 지금의 남편보다 태민보다 멋있어보이게 등장하는 후배들은 역효과도 이런 역효과가 없다. 
더구나 최근 <나 혼자 산다>의 경우는 애초에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독거남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당초의 취지와 달리 넘쳐나는 게스트들로 인해 프로그램의 방향 조차 모호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결국 exo는 그런 분위기를 몰아가는데 일조한 셈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최근 생각보다 여의치 않는 시청률을 1회성 게스트의 출연으로 만회해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건 외려 <인간의 조건>의 본연의 취지를 흐뜨러뜨리는 꼼수가 되어버리는 듯 하다. 

이제 와 새삼 당연한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아이돌 게스트의 출연을 문제삼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그리고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이미 출연진들의 합이 이루어져 있고, 그들간의 시너지가 우선이 되어야 할 프로그램에서 섣부른 게스트의 출연은 심사숙고 해봐야 할 지점이다. 왜냐하면 생각만큼 홍보도 되지 않고, 멤버들의 합마저 흐트려뜨리고, 프로그램의 흐름마져 깨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테니까. 이제 더 이상 아이돌 게스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3. 8. 18. 10:07

솔직히 고백한다. 

<땡큐>같은 프로그램을 없애고, 그 자리를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이 차지할려나? 이런 고까운 심정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의 첫 방송을 지켜보았다. 게다가, 이미 <나는 가수다>의 명멸을 지켜보았고, <불후의 명곡>의 선전을 박수치는 입장에서, 또 하나의 서바이벌의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선후배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때, 이젠 하다하다 별 걸 다 궁리해 낸다고 궁시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슈퍼매치>의 첫 방송을 본 느낌은, 어라, 이 프로그램,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하는 거다. 

무엇보다 <슈퍼 매치>란 프로그램이 새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날 것의 생경한 느낌 대신마치 여태껏 꽤나 해왔던 프로그램인 듯 익숙한 느낌을 주는 건(물론, 이 문장엔 상대적으로 신선하지 않단 의미도 내포할 것이다) 이휘재, 김구라 두  MC에 기인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구라가 원치않던 구설수로 인해 모든 방송을 그만두기 이전까지 두 사람은 MBC의 <세바퀴>를 통해 호흡을 맞춰왔던 사이이다. 그러기에 다른 방송사, 다른 프로그램임에도 두 사람의 호흡은 자연스러웠다. 거기에, 이휘재는 2008년 이래 붙박이로 <도전 1000곡>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오고 있고, 김구라 역시 칩거 이전에 KBS2의 또 다른 서바이벌 <불후의 명곡>의 MC였었다. 
이미 호흡을 맞춰 본 경험에, 음악과 관련된, 그것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해본 경험을 지닌, 게다가 나이에 맞게 폭넓은 연예계 인맥을 자랑하는 두 MC는, 아마도 양희은을 모시라고 나를  MC를 시켰을 거라는 이휘재의 너스레에서, 이제 막 데뷔 2개월차의 김예림이 첫 인상 투표에서 그 누구의 선택을 받지 않자, 자신도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다며 솔직하게 토닥이는 김구라까지, 그 어떤 게스트의 등장도 낯설지 않게 프로그램에 어우러내는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진; 리뷰스타)
 

결국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슈퍼매치>는 가수들의 경연이란 본질을 내세우기 보다는, 선후배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들간의 콜라보레이션을 하기 위한 과정을 부각시킴으로써 또 하나의 서바이벌이란 진부한 컨셉을 피해간다. 
마치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첫 인상 투표에서부터, 목소리 궁합에, 후배에 대한 선배들의 인기투표와 후배의 선택, 그에 이은 선배의 답 멘트의 선택까지, '콜라보레이션'이란 틀을 살리기 위한 제작진의 묘수가 도드라진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살려냈다. 
그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프로그램에 몰입하여 이 선배와 저 후배의 조합을 예상해 보고, 마지막에 선택된 조합의 콜라보레이션에 기대를 가지게 된다. 분명 또 하나의 가수들의 경연임에도 <슈퍼매치>의 첫방을 보다보면, 그런 선입관을 사라지고,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낼 시너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불후의 명곡>이 <나는 가수다>의 아류를 운영의 묘를 통해 살렸듯, <슈퍼 매치> 역시 잘만 운영해 나간다면, 꽤나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될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파일럿 첫 방송의 성적은 저조하다. 이미 공중파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나 혼자 산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슈퍼 매치>가 낯설기도 하거니와, 이제 막 시작한 신인들의 감동 신화 <슈퍼스타K5>의 신선한 기적을 넘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프로들의 콜라보레이션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파일럿을 넘은 <슈퍼매치>의 존속도 기대해 볼 만 하다. 


by meditator 2013. 8. 17. 09:37

자, 여기서 역사 문제 하나 내보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다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과연 이 정의는 타당한 것일까?
흔히 역사는 마치 DNA 의 나선구조처럼 우연과 필연이 어우러져 이루어 내는 결과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클레파트라의 코는 그 중 우연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우연도, 필연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역사적 결과를 놓고 클레오파트라라는 역사적 인물을 '폄하'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들이댄 잣대에 불과하다. 저녁 무렵 술 자리에서 술 한 잔에 끼얹은 농지꺼리처럼. 왜냐하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역사적 결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줄 우연적 사건도 아니요, 필연적 귀결도 아니니까. 하지만, 증권가 정보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해석에 귀를 기울인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그리고 <썰전>의 강용석이, 그가 주장하는 해석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일베'와 "강용석'은 지난 번 강용석의 'NLL문건'과 관련한 여당 인물의 사퇴 무리수 운운 이후, '일베'나 혹은 그와 입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실망했다', 심지어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에서 보이는 것처럼 동일한 궤적을 지닌다. 
친척 중학생이 재미있어서 들여다 보게 된다는 '일베'가 그 돌출적인 입장(?)으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지만, 전혀 다른 포지션으로 그것을 교묘하게 위장하는 강용석이다. 

(사진;tv리포트)

처음, 강용석이 텔레비젼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아나운서'와 관련된 말도 안되는 언급과 그와 관련하여 '개그맨'을 고소하겠다는 등, 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켜 그가 소속된 집단에서 조차 방출된 '또라이' 정도로만 보였었다. 더구나, 그가 처음 'TVN'에서 진행한 '고소한 19'는 그의 캐릭터에 맞게, 제작진에 의해 자의적으로 편집된 요지경 세상사로, 그가 보여준 캐릭터와는 유사성을 지니되, 탈정치적 프로이기에 큰 무리없이 방송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변호사 출신에, 서울대에, 유학까지 화려한 스펙에 걸맞는 화려한 입담과 박학다식함은 곧 그를 돋보이게 했고, 결국 그를 JTBC의 시사 프로<썰전>에 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처음 <썰전>에서 그가 안철수를 물어 뜯고, 박원순을 발목 걸을 때만 해도 '팽'당한 주제에 이른바 여당 저격수로 활동하던 시절을 잊지 못한 채 '지 버릇 개 못준다'는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썰전>의 회가 거듭될 수록, 강용석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즐기는 이철희 소장과 달리, 강용석은 허겁지겁 그가 가진 지식을, 그가 준비한 정보들을 즐비하게 나열했고, 시청자들은 부지불식간에, 그를 '전문가'로 받아들이기에, 그가 제시하는 의견들을 전문가적 견지의 식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호시탐탐 정치인으로 '리바이벌'을 꿈꾸는 강용석은 <썰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수복'하기를 노렸고, <썰쩐> 앙케이트에서 '이미지 세탁'이란 평가조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전환을 야곰야곰 진행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 <썰전>에서의 강용석의 발언들은 이미 얼마간 이루어진 대중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막무가내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물론,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보이는 입장이, 과연 그가 지향하는 '건강한 보수'의 이미지와는 거기가 멀 뿐만 아니라, 이제 <썰전> 등을 통해 인기를 얻은 그의 입장은 더 이상, <썰전>의 자막처럼 '상상의 나래' 정도의 파급력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주 <썰전>에서, 강용석은 국정원을 규탄하기 위해 시청 앞에 모인 촛불 시위자들을 '동원'이라고 했다. 자기가 여당을 해보았는데, 동원을 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모일 수가 없다고 장담을 얹었다. 어디서 들어봤던 언어의 스타일 아닌가? '내가 해봤는데.....' 이 더위를 무릎쓰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인 진심들을, 관광버스를 타고 돈을 받아 동원된 알바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이번 주 <썰전>에서는 안철수의 멘토로 나섰던 최장집 교수의 <내일> 포럼 이사장직 사퇴를 두고, 내 돈 내고 하기 싫어서, 잘못하면 내가 뒤집어 쓰게 될 것 같아서, 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철희 소장 표현대로, 재야 학계의 거두를 '돈'을 중심으로 행보를 달리하는 속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딱 증권가 찌라시에나 실릴 법한 해석이다. 그걸 보수라고? 보수는 정치적 입장이지, '클레오파트라 코가 높아서 세계가 바뀌었다'는 식의 루머는 아닌 것이다. 이철희 소장이 화를 낸 것은 강용석의 입장이 자기와 달라서가 아니라,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상대방을 낮잡아 보거나, 폄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나와 다른 입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중심으로 사안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상대방을 '속물'이나 '찌질이'를 만들어 버림으로써, 은연 중에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인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가장 비열한 수법을 번번히 강용석은 유지해 간다. 
예전같으면 '찌질한' 강용석이 하는 말이기에 우스개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이제 야금야금 이미지 세탁을 통해, 어느덧 '전문가'의 견지에 오른 강용석이 하는 말은, 그저 웃고 넘어가기엔 불쾌하고, 불편하며, 위험하다. 

(사진; tv리포트)

처음 <썰전>이 시작되었을 때, 종편의 여당 위주의 편파적 입장 전달과 달리, 여, 야 각 정파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정치, 사회적 현안을 다룬 기획이었기에 반가웠다. 하지만 이제 24회차에 이르른 <썰전>이 과연 공정한 정치 비평 토크쇼가 되고 있는지 제작진은 준엄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듯하다. 
아마도 지금쯤 강용석은 재야에서도 '야당 저격수'로 불철주야 헌신하는 그를 어느 분인가 알아주어 정치에 복귀할 날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용석의 비평이라는 명목을 내세운 야당, 혹은 야당 인물의 루머성 흠집 내기를 '상상의 나래'라는 표현으로 눈 감아주기에는 도를 넘었다


by meditator 2013. 8. 16. 10:12

박근형 할배는 드라마 촬영 때문에 신구 할배에 이어 지난 주 먼저 <꽃보다 할배>의 여행에서 빠져 나왔다. 마지막 방송분에서 지금까지의 출연 소감을 붇는 제작진에게 수십년의 연기 생활을 해온 박근형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늘 근엄하고 위압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왔는데, 형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풀어져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이 너무 드러나, 다음에 연기를 할 때 사람들이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70이 넘은 노익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은 박근형 옹의 고뇌는 그가 해온 연기의 세월의 무게를 더해 진중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박근형 옹의 고민이 기우가 될 만큼 요즘의 대세는 기존에 쌓여진 자신의 이미지를 부숴가며 스스럼없이 속내를 보여줘야 환영을 받는 시절이다. 물론 꼭 그 스스럼없는 속내가 망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사나이>의 멤버들은 고된 훈련 속에서도 변치않는 순수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나, 노래 이미지와 다른 자상한 아빠의 마음으로 사랑받고 있으니까.

바로 그런 이 시대 대중들이 연예인에게 바라는 진솔한 속내라는 갈증의 지점에, <방송의 적>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 생겨난다. <방송의 적>은 이적과 존박이라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좀 있어보이는 뮤지션 두 사람을 데려다, 이적은 여자밖에 모르는 철면피에, 존박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보를 만들어 버린 리얼리티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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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쇼'라는 단어가 이미 그 이름에서 부터 논리적 모순을 담고 있는 것처럼, <방송의 적>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기존의 이적과 존박의 이미지를, 마치 잘 빗질된 머리를 보면 한번 엉크려 뜨리고 싶은 사람들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뒤틀어 보인다. 분명 그것 역시 쇼이지만, <방송의 적>을 통해 보여진 모습이 너무도 또한 그럴 듯하다보니, 사람들은 거기서 만들어진 이적과 존박을 <방송의 적> 1회 이용권이 아니라, 자유이용권 정도로 활용하고 싶어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본인조차 생뚱맞아 한 이적의 <힐링 캠프> 출연이요, 존박의 '예능 대세론'이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은 결국 만들어진 세트를 탈출하는 감동 드라마를 보여주었지만, <방송의 적>이 이 모든 것이 결국 이적의 '일장야몽(一長夜夢)'이었음을 보여주었음에도 여전히 시청자들은 <방송의 적>의 존박과 이적을 '리얼'로 소비하고자 한다. 

<방송의 적> 마지막 회 존박은 그 예의 태연한 얼굴로 말한다. '자신의 신곡 순위는 자꾸 떨어지는데, 예능 섭외는 물밀듯이 들어온다'고.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박은 <무한도전> 예능 기대주 특집에 나와 한껏 웃음을 주었고, 지지부진하던 <우리동네 예체능>조차 화제의 중심에 오르게 만들었다. 
시쳇말로 잘 될 때는 그가 그저 숨만 쉬어도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 것처럼, 이제 존박이 나와서 눈만 멀뚱하니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채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청자들을 떼굴떼굴 굴러갈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에서 존박 방송분의 상당 양이 그렇다)
그와 함께 <슈퍼스타 K>에 출연하여 1등을 거머쥔 허각이 노래만 나오기만 하면 음원 1위는 따논 당상인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그 시절 미국 유학생 출신의 엄친아 같던 존박이 '바보', '덜덜이', '냉면 덕후' 캐릭터로 예능을 종횡무진 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그런 존박의 행보에는 그의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첫 미니 앨범을 김동률이라는 프로듀서의 색깔을 진하게 입힌 채 가지고 나왔던 존박은, 이번에 들고 나온 정규 앨범에서는 그 누구의 색깔도 아닌 존박 자신의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곡에 따라 그루브가 강하기도, 목소리가 담백해지기도 했지만, 이젠 그 누구가 떠올려지기보다는 존박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심지어 음악 방송에 출연해 부르고 있는 'baby'가 본인은 가장 오그라든다고 말할 정도로, 존박 자신은 기존에 <슈퍼스타k>의 과정에서 기획된 '말랑말랑한 발라더'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재정립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그의 예능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오랜 칩거와 고민 끝에 얻어진 또 하나의 해결책이요, 선택인 것이다. (GQ인터뷰 중)

(사진; 뉴스엔)


<방송의 적> 마지막 회 게스트 중 유희열은 예의 그 감성 변태 캐릭터로 등장해, <방송의 적> 리얼리티 쇼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화려한 여자의 힐을 들이마시고, 채찍을 즐겨 이용하며, 존박의 무릎에 걸터앉는 등, 자주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줄 모르면서도 '감성변태'로서의 모든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었다. 물론 유희열의 화룡점정이 무색하게 그간 이 방송을 통해 이적이 보여준 '속물'의 경지는 거의 레전드 급이다. 하지만, 유희열과 이적이 제 아무리 푼수를 떤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들의 음악적 세계의 공고함을 인정받았으니까. 
하지만, 아직 존박은 미지수다. 그가 기존에 자신을 인식했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길들이, 과연 그의 음악적 영역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을지, 폄하하지 않을지는 단박에 예능 기대주가 되어버린 존박에게는 좀 버거운 과제같다. 

재미있는 놀이처럼 시작한 <방송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예능 불루칩 존박을 낳고 종영되었다. 이러다 혹시 한여름밤의 꿈처럼, 야리꾸리하면서고, 은근히 공감되었던 <방송의 적>이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진짜 <존박쇼>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by meditator 2013. 8. 15. 09:51

서양 문화에서 팜므 파탈(프랑스어로 '치명적인 여자'.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악녀(惡女)의 캐릭터로 통한다. 화려한 외모와 선정적인 몸매의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감미롭게 유혹한 후 파멸로 이끈다-네이버 지식백과)의 전형적인 인물로 받아지는 대표적 여성 중 한 사람이 유디트이다.

유디트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홀로페르네스가 이끈 앗시리아의 부대가 이스라엘을 점령하자, 과부였던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육체적으로 유인해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목을 잘라 성벽에 걸어놓아 앗시리아을 물리친 여성이다. 그녀가 적장의 목을 자른 그 모습은, 그 본질적 의미에서 임진왜란 당시에 적장을 부등켜 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와 같지만,  유디트는 그 이후 많은 미술가들을 통해 명작의 한 장면으로 남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으며, 팜므 파탈의 전형은 물론, 프로이트 의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상징적 인물로 재해석되며 서양 문화의 여성 캐릭터의 한 전형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디트라는 여성 캐릭터의 정의는 두 가지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신의 성을 목적,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 하나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생은 숭고한 가치를 위해 씌여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찾아보자면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우리의 역사 행간에 수많은 유디트들이 존재하겠지만,  이글의 원활한 설명을 위해, 상징적인 존재로 서양 문화의 유디트를 모셔온다)

그리고 바로 그 유디트와 같은 인물들이 공교롭게도 최근 화제를 끌고 있는 드라마들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매우 충격적이도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부제를 가진 <스캔들>에서 직접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주범은 하은중을 유괴한 하명근이지만, 사실 그 못지않게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빌미를 제공한 것은 윤화영(신은경 분)이다. 
윤화영은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장태하와 결혼을 하게된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토록 신임하던 장태하는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윤화영의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하고, 그가 감옥에서 죽어가게 만들어 버린다.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장태하를 애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윤화영은 그와 결혼을 할 때부터 한결같이 장태하를 무시하고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심지어 그가 아버지를 죽였으니, 받아들이기는 커녕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쓴 것이 바로 윤화영 자신이 낳은 아들 은중이었다. 하지만, 은중이가 유괴되어버리고, 장태하에게 버림을 받게 된 윤화영은 생면부지의 금만복을 장은중으로 둔갑시켜 지리하지만  무시무시한 복수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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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하지만 알고보면 더 무시무시한 복수로 치자면, <황금의 제국>의 한정희(김미숙 분)도 못지않다. 그녀 역시 자신의 남편 배영완이 성진 그룹 최동성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하여 복수의 칼을 간다. 최동성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며, 배동완의 아들인 배성재를 최동성의 아들로 키워냈으며, 한결같은 현모양처로 처신하며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만을 노려왔다. 최동성의 목숨이 경각에 놓인 순간, 비로소 본색을 드러내며,  복수를 실행하고자 한다. 

윤화영과 한정희의 공통점은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위해 자신의 '성(性)'을 이용한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남편의 복수를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살아가며 복수의 시기를 노린다. 윤화영의 복수의 끝은, 기고만장한 장태하의 뒤를 자신의 핏줄, 혹은 대리 핏줄로 잇게 만드는 것이며, 한정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들이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복수 자체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찌기 유디트가 그녀가 속한 공동체 이스라엘을 위해 자기 한 몸을 헌신하듯, 윤화영과 한정희 역시 그녀 자신의 권력이 아니라, 그녀가 속했던 남자들에 대한 복수로 일생을 보낸다.  지고지순하다는 말로 대신하기엔 집요하고, 퇴행적이다. 

이렇게 여성의 성을 도구로 이용한 방식은 엄밀하게 '약자'의 방식이다. 정정당당하게 권력을 놓고 한 판 붙어낼 수 없는 , 그런 수단을 가지지 못한 여성들이 편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식인 것이다. 잘 나가는 로펌의 대표 변호사이지만 건설 재벌이 된 장태하에게는 역부족인 윤화영이, 최동성의 사랑 외에는 자신의 남편의 억울함을 풀 그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정희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권력을 쟁취하기엔 미약한 한정희, 윤화영 세대들의 복수법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 세대인 최서윤 역시 자신의 성을 무기로 삼는다. 장태주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방식은 이전 세대들의 맹목적 복수와는 좀 다르다. 일종의 '제휴'이다, 

(tv리포트)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드라마 속 유디트들의 복수는 별로 성공적이지 않다.
윤화영이 벌인 복수극은, 그녀가 자신의 아들 대신 금만복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고, 이제 그녀의 친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은 핏줄의 복수 대신에, 아버지로 인해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르는 위기에 빠지게 되어 있다. 
한정희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긴 세월 한결같은 최동성의 사랑을 외면하며 복수의 칼날을 세워왔던 그녀의 복수는 허무하다. 아들을 성진 그룹의 후계자로 만들지도 못했고, 이제와 알고보니 정작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최동성도 아니요, 어쩌면 자기 자신일 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진실에 맞닦뜨리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디트가 성녀로 받아들여지며 구원의 팜므 파탈로 명화 속을 유람할 때, 우리의 드라마들은, 윤화영, 한정희 세대의 '도발적' 복수 방식을 용인하지 않는다. 적장의 목을 성문 밖에 건 유디트는 존경 받으며 105살까지 살지만, 우리 드라마 속 유디트들에게 돌아온 것은 자기 파멸 뿐이다. 아직도 남성들의 권력은 우월하며 견고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서윤의 계약 결혼의 행보가 궁금하다. '성'을 무기로 한 최서윤 세대의 흥정은 과연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그 앞선 세대의 실패를 뛰어넘은 성취를 보일까. 하지만 잊지말아야 할 것은, 여전히 최서윤 역시 성진 그룹의 최서윤이란 사실이다. 


by meditator 2013. 8. 14. 10:17

<꽃보다 할배>(tvn)가 인기를 끌자 나이든 여자 배우들을 주축으로 하는 <마마도>(kbs2)를 만들고,  <아빠 어디가?>(mbc)와 비슷한 <아빠의 자격>(kbs2), <나는 가수다>(mbc)의 포맷을 이어받은 <불후의 명곡>(kbs2)에, 이제 다시 그것을 비스무리하게 본딴 <슈퍼매치>(sbs) 그리고, <진짜 사나이>(mbc)가 없었으면 결코 만들어 지지 않을 <심장이 뛴다>(sbs)까지, 시청률 지상주의가 되어버린 지상파 방송국에서 이제 케이블이든, 공중파 타 방송국이 되었든 남이 만든 포맷을 베끼는 건 특별하지 않은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맨발의 친구들>은 지난 번에는 강호동 본인이 진행하는 <우리동네 예체능>의 포맷을 거의 그대로 베낀 듯한 다이빙 대회 미션을 하더니, 이번에는 무한도전이 거의 해마다 진행해 왔던 가요제가 연상되는 'my story, my song'미션을 진행중이다. 
마치 베끼기라도 좋다. 뭐 하나만 터져다오! 이런 심정인 것처럼. 매주 보는 시청자조차도 <맨발의 친구들>이 무슨 프로그램인가 헷깔려 할 정도로 다이빙을 하더니, 이젠 랩을 만들고 무대를 꾸린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일찌기 <남자의 자격>이 저물녁까지 그래도 울궈먹었던 것이 합창 대회였던 것처럼, 흥이 좋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관심을 끌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데, 검색어에서 <맨발의 친구들>과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강호동의 랩은 훌륭했고, 그의 랩이 얹힌 음악은 완성도가 높았으며, 심지어 요즘 대세라는 '에이핑크'의 정은지가 피처링을 하기 까지 했는데.

(사진; tv리포트)

정말 안쓰러운 것은 <맨발의 친구들>의 멤버들이 참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강호동을 비롯하여 꾀부리기로 유명한 은지원에, 아이돌 김현중에, 유이에, 은혁에, 배우 윤시윤은 물론, 윤종신의 노익장까지, 모두가 미션이 주어지면, 그것이 돌멩이를 지고 바다로 뛰어드는 거라 하더라도 다 해낼 것 같을 정도로 우직하게 열심히 한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다이빙을 하고, 다이빙을 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아, 수십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린다. 2주도 남지 않은 촉박한 시간 앞에 가사를 만들고 무대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시선은 쉽게 그들을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르팍 도사>보다 <맨발의 친구들>이 먼저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심지어 모두가 다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도, <맨발의 친구들>을 보다보면 안타깝게도 왜 이 프로그램이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형국인지 느껴지니 어쩌랴. 

8월 11일자 <맨발의 친구들>은 'my song'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데, 첫사랑의 추억을 그리겠다던 강호동은 마라톤을 하고, 슈퍼맨이 되고 싶다던 은지원은 워터 제트팩을 체험했다. 
은지원이 'my song'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슈퍼맨같은 상황이 있지 않느냐는, 그러니 기운을 내라 뭐 그런 취지였다. 그런데, 그 가사를 쓰기 위해 워터 제트팩? 마치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방 청소부터 하거나, 맛난 걸 잔뜩 찾아먹는 모양새 아닌가? 
더구나, 은지원이 가사를 쓰기도 전에, 그와 함께 하는 타블로는 피처링을 구한다며 대뜸 일면식도 없는 수지에게 전화를 걸다, 그도 여의치 않자 수지 어머님께 부탁을 한다. 아무리 수지가 대세라지만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그렇지, <꽃보다 할배>에서 미리 스케줄을 알아보지 않은 채 역으로 한지민에게 마중나오라고 했던 해프닝이랑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섭외 가능성이 낮은 수지에게 전화 거는 걸로 시간을 때우는 시간에, 강호동의 피처링을 맡은 정은지와 강호동이 함께 연습하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이 더 충실한 내용을 채우는 길이 아니었을까? 정작 가사를 수첩 한 가득 써온 윤시윤의 성의와,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열의가 넘치는 그의 시도는, 과도한 행동으로 제껴버린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무엇보다 <맨발의 친구들> 'my story, mysong'에서 멤버들이 공연한 작품은 그들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한도전>으로 돌아가서, 싸이와 함께 곡을 만든 노홍철은, 그의 컴플렉스인 'th' 발음이 되지 않아 애을 먹는다. 박치인 노홍철이 완벽주의자 싸이와 만나 몇 마디 되지도 않는 랩 구절의 리듬을 따라하지 못해 반복을 거듭한다. 박명수는 나이든 그가 추구하는 음악 세계와 전혀 다른 지드래곤을 만나, 음악적 혼란을 겪는다. 유재석도 다르지 않다. 흥겨운 댄스곡을 하고 싶은 유재석과 진지한 음악을 추구하는 이적은 서로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곡에 다가가기 까지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정작 음악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음악으로 무대에 서기 까지의 과정이, <무한도전>을 통해서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박자를 못맞추던 노홍철이 무대에서 그것을 무사히 완수했을 때, 박명수가 다른 장르의 음악을 거슬리지 않고 따라할 때 시청자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참았던 숨을 토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맨발의 친구들>에는 그게 없다. 은지원은 곡을 쓰지도 않았는데, 다음 장면에서 녹음을 하고, 랩을 자신없어 하던 강호동은 녹음실에 들어가 너끈히 해낸다. 수많은 가사를 적어놓았던 윤시윤은 정해진 가사를 읊는다. 음악을 한다면서, 정작 음악을 만드는 고통의 시간은 보여지지 않는다. 가사를 못외우는 거, 주어진 시간이 촉박한 걸로 채워지지 않는 창작의 고통이 <맨발의 친구들>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를 찾아간 것과, 아버지에 대한 가사를 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랩으로 탄생시키는 행간이 비어있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멤버들이 고생한 건 알겠지만, 그의 무대에 공감할 수는 없는 것이다. 

8월 10일자 <무한도전>은 새로울 것도 없는, 늘상 가끔은 하던 예능 기대주들을 모아놓고,여름 캠프를 벌였다. 거기서 한 게임도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었다. 그런데 2회에 걸친 프로그램으로, 출연했던 8명의 멤버들은 모두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맨발의 친구들>의 my song에 합류한 게스트들은 그런 게 없다. 이단 옆차기는 그저 여전히 이단 옆차기이고, 타블로는 타블로다. 심지어, 정은지는 잠깐 나타나 노래만 부르고 사라진다. 어디 게스트 뿐이랴. 강호동이 살아야 <맨발의 친구들>이 살아나는 건 맞지만, 강호동과 그와 잘 맞는 은지원이 철지난 호흡을 보여주는 동안, 신선한 다른 멤버들의 캐릭터는 사장되는데, 게스트 챙길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잘 나가는 남의 포맷을 베끼고, 궁여지책 mc가 하는 타 방송의 포맷을 가져와서 잘 하기라도 하면, 그런데 어쩌랴, <맨발의 친구들>을 보다보면, <무한도전>이 대단하구나 라고 느껴지니. 포맷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이러다 정말 조만간 강호동 <맨발의 친구들> 폐지 소식이 들려올 것만 같다. 


by meditator 2013. 8. 12. 01:49

휴가, 한자로 하면, 休暇, 

여기서 休는 쉴 휴자로, 쉬다. 작업이나 일을 그만두다 라는 뜻인데, 재밌는 것은 거기에 그만두라는 명령의 취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참 적절하다, 강제적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라. 暇는 겨를, 짬을 의미한다. 느긋하게, 여유있게 지내는 것이다. 이 의미들을 모아서 다시 해석해 보면, 무조건 강제적으로라도 일을 쉬고, 느긋하게 지내는 것, 그게 휴가다. 그런데 우리의 휴가는 어떨까? 
그간 한 여름에 '물없이 살기', '전기없이 살기' 등 가혹한 미션을 달려왔던 <인간의 조건>이 이번엔 제대로 쉬어가 보기로 한다. 바로, <휴가의 조건>, 여섯 남자에게 미션으로 휴가를 주고, 그들이 '휴가'를 누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네 삶의 휴가 문화를 짚어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한겨레 신문>에는 휴가를 대하는 부부의 서로 다른 자세로 인한 갈등의 에피소드가 올라왔었다. 휴가라면 어디를 가서 아침 댓바람부터 부지런히 그곳의 볼 거리를 보고, 이름난 먹거리도 빠짐없이 먹어야 하는 아내, 청정 지역으로 휴가를 다녀오라는 미션에, 동트기도 전에 일어나 한라산을 종주하고, 이름난 해변을 다니고, 맛집도 빠짐없이 탐방한 정태호, 허경환의 스타일이 그것이다. 
반면, 남편은 그냥 좀 어디를 가더라도, 느긋하게 쉬다 오면 안되냐는 주의다. <인간의 조건>에서 보자면 김준현의 입장이다. 잘 먹고, 잘 쉬는게 남는 거라는 식이다. 언제나 어떤 미션에도 여유로운 자세를 견지해오던 김준현은 이번에도, 휴가를 가지 못해(?) 초조해 하는 김준호에게 집에서도 편하게 즐기는 방법을 전파하고자 애쓴다. 
이렇듯 휴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은 겨우 결혼 3년차의 부부를 냉정과 부부싸움으로 몰라갈 정도로 성격이나 취향으로 몰아붙이기엔 입장의 차이가 확연한 노선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은 휴가에 대해 다른 양상을 보이는 여섯 남자들의 모습을 통해  양립하기 힘든 '휴가'의 다양한 면들을 고찰한다. 

"난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르겠어. 미션 중에 이번 미션이 제일 힘든 거 같아"
세상에, '휴가의 조건'을 겪고 있는 김준호의 고백이다. 짬짬이 일이 있어 멀리 떠나지 못하는 , 지금까지 줄곧 일을 하느라 휴가다운 휴가를 누려보지 못했던 김준호는 처음 '휴가'를 준다고 했을 때 좋아했던 것도 잠시, 점점 이른바 '멘붕'에 빠져간다. 여행을 가는 것 말고는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놀아본 놈이 논다'는 속어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많은 미션을 받고 미션 중에 어려움을 겪던 그의 모습과 달리 묘하게 애잔하다. 그 이유는 그런 그의 모습이, 휴가라고 하면 죽자고 가족들 데리고 이름난 휴양지나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엔 그 어떤 대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바로 지금 전국의 유명 휴양지를 메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일 것 같아서이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휴가라 하면, 느긋하게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휴가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와 달리, 치뤄야 할  또 하나의 미션같은 경우가 많을 테니까. 김준호처럼 휴가기간에 어딘가를 떠나지 않고 시간을 그저 보낸다는 것에 적응하지 못할 '시간의 노예'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성호가 사이판에서 만난 한 달짜리 휴가를 보내는 필리핀의 가족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휴가도 전투적으로 치뤄내야 하는 2013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박성호의 놀라움은 그대로 반사된다. 김준호의 혼란과, 박성호의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조건>은 슬며시 질문을 던진다. 쉬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사진; 스포츠 월드)

휴가에 대한 고찰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늘 그렇듯 김준호의 대척점에는 박성호가 있다. 박성호는 '휴가'가 주어지자, 대뜸, 무조건, 가보고 싶었던 해외 여행을 떠난다. 급작스럽게 주어진 미션인 만큼 당연히 미리 예약 따위는 할 수 없는 상황을 '떠나자!'라는 의지 하나로 극복해 가며 해외로 떠난다. 개 짖는 소리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이국의 낯선 마을에서 짧은 영어로 방을 얻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박성호의 모습에시청자들은 엄두가 나지 않으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휴가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예약이다 뭐다에 시다린 사람들은 저게 진짜 휴가다 싶다. 더구나, 아무도 없을 거 같은 해변에 뛰어들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와, 역시 휴가는 친구와 함께 가야 돼라고 말하는 허경환의 입장과는 또 다르게 매혹적이다. 늘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숙제처럼 치루는 가장이라면 더더욱 공감이 될. 

'휴가의 조건'의 첫 번째 과제 '청청 지역 돌아보기'는 이렇게 휴가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쉼'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과제, 해보지 못했던 일 하기를 통해, 그저 쉬는 것 이상의 휴가의 의미를 덧붙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11.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