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이 땡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 짧은 문장은 매번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클리셰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 헤어져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부모와 자식은 매번 핏줄이 땡기는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이른바 인지상정인 것이다. 부모 자식이라는 걸 몰라도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아껴주고 그리워 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가중시키고, 혈연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왔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드라마들은 그런 클리셰를 뛰어넘는 경우를 종종 보여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진 자식이 '에미에비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물론, 흔히 핏줄이 땡겨 내 자식에게는 남달라하던 부모조차도 자신의 자식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등장하는 것이다. <최괴다 이순신>의 미령(이미숙 분)은 자기 자식 순신(아이유)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원더풀 마마>의 복희(배종옥 분)는 자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의붓 딸 영채(정유미 분)와 친 자식 훈남(정겨운 분)을 결혼까지 시키려 한다. 물론 결국에는 자기 자심임을 알고 피눈물을 쏟아 내지만, 이전과 다른 설정들은 한결 덜 두터워진 혈연과 개개인의 이익이 앞서는 현실을 일면 반영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알아보지 못하거나 그저 괴롭히는 정도면 약과다. 
<스캔들>에 이르르면 드디어 아버지는 스스로 총을 들어 아들을 쏘려고 하고, 결코 자신을 쏘지 못할 거라는 아들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마지막 순간,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임을 깨닫는 아들을 향해. 
물론 우리 역사를 보면, 영조를 비롯해, 중종 등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한, 혹은 희생했을 것이라는 혐의를 받는 임금들이 있다. 하지만, 냉혹한 권력의 쟁투 현장에서 희생당한 세자들과 달리, <스캔들>의 장태한(박상민 분)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아들 바보라 자청하는 헛똑똑이이기에 그의 발사가, 의식적 아들 살해를 넘어선 징벌의 상징적 의미로써 더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슬픈 전설은 현대의 심리학적 분석의 프리즘을 통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취하는 남성의 성장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적인 메타포로 부각되곤 한다. 
하지만 애초의 그리스 신화 내용에 좀 더 천착해 보면, 오이디푸스는 희생자이다.
 아비인 테베의 왕 라이오스가 자신의 방만했던 사생활로 인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란 신탁을 피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를 낳자 마자 버렸던 것이다. 드러난 죄는 오이디푸스의 몫이지만, 원죄를 따지자면 라이오스로 부터 기인된 것이다. 

<스캔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오이디푸스의 비극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어쩌면 라이오스는 그저 아들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자신을 죽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도, 그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천륜을 어기게 되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속편하게 사라져버렸다. 죄는 자신이 짓고, 그 벌을 아들에게 떠넘기는 아이러니를 목도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태하 건설을 일구기 위해,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죽어가던 하명근의 아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장태하 회장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모자라, 스스로 총을 들어 아들에게 겨누고, 결국 방아쇠까지 당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사업을 일구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거두기를 개미 새끼 하나 죽이듯 쉽게 생각하던 '개발과 발전의 주역'이자, 고아로 자라나 자신의 핏줄에 그 누구보다 집착한 장태하에게 가장 처절한 응징인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만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눈물'이라는 전형적 한국적 권선징악의 효과이자, 그간 기업물 혹은 가족물에서 자신의 탐욕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던 가진 자에게 돌아간 처벌의 끝판 왕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스캔들>은 자식 세대에게 고통을 전가하지만, 오이디푸스의 수준까지는 밀어넣지는 않는다. 
부도덕한 경지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었던 장주하(김규리 분)와 하은중(김재원 분)의 계약 연애는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 되었다. 친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감옥에 보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타오르던 하은중의 시도는 오히려 그를 장태하의 제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예고에서도 보여지듯이 자신의 동생과 연애를 할뻔했다는 트라우마는 장주하를 내내 괴롭힐 것이며, 그보다 더한 건, 장태하가 총구를 들이민 그 순간, 바로 장태하의 입을 통해, 지금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하은중의 눈빛이다.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잘라, 자신의 자식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아버지, 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자신을 지키려는 아버지, 장태하,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현대사를 거침없이 달려온, 그리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왜곡시킨 자본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스캔들>은 그저 한낮 주말 드라마를 넘어 이 시대의 신화를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3. 9. 2. 10:07

이제와 새삼스레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의 문제를 꺼내는 것은 진부한 문제 제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수들이 자신의 곡이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가지고 '서바이벌' 무대에 오른다는 전제가 늘 가수의 의욕과 원곡의 가치 사이에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 가수들의 첫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래 기존의 곡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른 편곡 논란은 계속 있어올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논란은 김범수의 '희나리'였을 것이다. 
얼굴없는 가수로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내던 김범수가 '님과 함께'의 화려한 무대로 1등을 거머쥔 뒤, 더 이상 <나는 가수다>를 통해 오를 곳이 없다고 판단했던 김범수는 방향을 틀어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실험적 편곡을 선보인다. 
가장 애절한 노래 중 하나였던 구창모의 '희나리'를 파격적인 전자 음향을 입힌 테크노 버전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희나리'의 김범수 무대는 우리나라에서 테크노 음악을 소개하는데 앞장 선 구준엽이 디제잉까지 하며 합류하여, 파격적인 정서의 극치에 도달했다. 

(사진; 데일리 중앙)

하지만 테크노 버전 '희나리'의 무대 뒤 과연 '희나리'라는 노래가 가진 이별의 정서가 그런 편곡에 어울렸는가를 놓고 논란이 불붙었다. 
물론 김범수 이전에, 이미 이소라가 보아의 '넘버원'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불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이소라는 빠른 댄스 곡이었음에도 가사가 오히려 애잔한 정서를 내보이고 있는 '넘버 원'의 정서를 살려낸 것인데 반해, 김범수는 '희나리'가 가진 정서는 뒤로 한 채 테크노라는 실험 정신만이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편곡이라는 외줄 타기가 건너가야 할 양 극단의 강이다. 
때로는 너무 원곡과 똑같이 불러서 차별성이 없다는 모창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원고의 아우라를 해쳤다는 평가에 직면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이러이러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희나리'의 논란에서처럼, 적어도 원곡이 지니고 있는 정서와, 리듬은 보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 '편곡'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이제 <불후의 명곡>으로 돌아와서,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이 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가수들이 '전설'이라 칭해지는 선배 가수를 바로 앞에 모셔놓고, 그의 노래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광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늘 가수들이 말하듯, '누가 될 '수도 있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8월31일 <불후의 명곡>은 아이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그러면서 또 동시에 그의 인기에 눌려 빛을 덜 발하지만, '싱어 송 라이터'의 효시가 더 그의 진면목인 전영록이 전설의 자리에 등장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마돈나'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디바'라는 말이 그보다 더 어울릴 수 없을 정도의 무대를 선보인 '바다'의 '불티'에게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바다가 화려한 무대의 '불티'를 통해 410점을 넘은 높은 점수를 얻고, 이어서 다시 여러 가수들이 도전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도전은 요즘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아이돌 그룹, 'exo'였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exo'가 가지고 나온 곡은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였다.
역시나 'exo'답게 칼군문에 맞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 시청하던 아들이 한 마디 던진다. 
"원래 노래가 어떤거야?"
그도 그럴 것이, 'exo'버전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그들의 노래, '늑대와 마녀'나, '으르렁'의 분위기와 더 흡사한 반면, 전영록의 원곡,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전영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들리기는, 그저 'exo' 앨범에 실린 어느 한 곡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른바 편곡의 정의에 맞춰 따지자면, 장단조의 바뀜 등,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그간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수의 가수들이 김범수처럼, 탱고, 레게,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변화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exo'처럼 이 정도로 원곡이 어떤 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사만이 남은 편곡은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멋진 아이돌 그룹'exo'만의 분위기만이 있을 뿐이다. 

늘 전설들은, 후배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노래가, 저들의 열렬한 노력을 통해 재창조되는 것이 행복하다, 기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31일의 전영록도, 'exo'의 노래를 듣고 그랬을까?


by meditator 2013. 9. 1. 10:20

8월 23일 <슈퍼 매치> 파일럿방송에서 노익장의 양희은은 가수 인생 40년이나 어린, 데뷔한 지 두 달된 김예림과 '제주도의 푸른 밤'을 듀엣으로 불렀다.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이제는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 대접을 받는 양희은이 개인 콘서트가 아닌 노래 부를 무대를 얻기 위해서는 40여년이나 어린 김예림과의 콜라보레이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두 사람의 낭랑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화음만으로는 그 어느 세대에게서도 1위의 승인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등이다. 
이런 양희은의 모습은, 그리고 그 날 모처럼 오랜만에 무대에 선 이승환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시대 가수들의 현실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단면일 지도 모르겠다. 

(사진; 스포츠 월드)

굳이 그 시작을 까탈스럽게 걸고 넘어지자면 텔레비젼 속 가수들에게 부박한 선택을 강요하게 된 것은 <슈퍼스타 K>일지도 모른다. 
아직 데뷔를 하지 않은 가수 지망생들에 의해 불려지는 다양한 노래들에 사람들의 시선이 빼앗겼고, 서바이벌 속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불러왔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아 가수가 되고, 상금을 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지망생들의 모습은감정의 절정을 치달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자고로 한껏 고조된 지각은 다시 되물릴 수 없으니, 사람들은 프로패셔널한 가수들이 나와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무대를 심심해 하기 시작했다. <슈퍼스타K>를 통해 불려진 지난 시절의 노래들이 흥하면서 잠시 잠깐이나마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비슷한 무대가 각 방송국마다 만들어 졌지만,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그저 '노래'란 원조 평양 냉면처럼 심심할 뿐, 원조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을 남기고 다시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나는 가수다>가 등장했다. 
기존의 가수들도  더 이상 이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조건과, 프로패셔널한 가수로써의 자존심을 내걸고 '서바이벌'에 나섰다. 하지만 그 절박함은  금의환양을 꿈꾸는 전국의 무수한 가수 지망생들을 등에 업은 <슈퍼스타K>와 달리, 극강의 편곡과 가창력을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무리수가 되는 <나만 가수다>의 조건이 오히려 프로그램이 '조로'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오히려, <나는 가수다>의 절박함을 덜고, 거기에 프로패셔널한 가수들의 버라이어티함과 오락성을 덧붙인 <불후의 명곡>은 100회 특집을 하며 자신의 포지션을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지만 <불후의 명곡>의 분류는 어디까지나 오락프로이다. <불후의 명곡>의 특징은 이른바 그 프로그램이 낳은 가수로 불려지는 문명진의 무대를 통해 보여진다. 처음 무대에 선 문명진은 마치 국악의 고수가 산 속에서 피를 토하며 목소리를 갈고 닦았듯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갈고 닦은 그의 애절한 R&B창법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의 절실한 노래가 화제가 되었지만, 이미 <불후의 명곡> 스타일의 무대에 세련된 선배 출연진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회를 거듭할 수록 문명진의 무대에도 조금씩 무언가가 하나씩 더해지고, 그가 들고 나온 노래의 편곡도 화려해 지기 시작하면서 1등을 거머쥐게 되었다. 물론 늘 <불후의 명곡>에서는 1등이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기사가 되는 건 단 1승에 불과하더라도 1위이다. 가창력으로 날고 기는 가수들의 무대를 결국 결정하는 건, 오로지 노래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곡의 선정과 편곡, 무대 구성이 되는 것이 <불후의 명곡>의 불문율이다. 


결국 이미 가수로써 인정받은 프로패셔널들이라도 그들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는 '서바이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힙합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는 <Show Me The Money>를 통해야 하고, 이미 지명도가 있는 락밴드라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밴드 서바이벌>이나 <탑 밴드>의 출연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아니 그것 말고는, 이제는 아이돌에게조차 자리를 나눠주어,  1주일에 겨우 한 자리만 알려지지 않은 가수나 팀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인 것이다. 
하지만 자리는 얻었으되, 그 결과가 단비가 되었는지는 회의적이다. <Show Me The Money> 자체가 이미 시즌 2에 들어서는 대중적 관심도가 더 낮아졌고, 비록 거듭하면서 '노예 계약'이나 개인간의 인정 투쟁으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힙합퍼들의 디스전의 시작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 지명도와 실제 힙합계의 존재감의 불협화음을 평하고 했던 것처럼, 시즌 2 내내 여러 문제들이 돌출되어 역효과를 낳은 감마저 있었다. 

그래도 <Show Me The Money>나, <슈퍼 매치>, <불후의 명곡> 정도까지는 애교 수준이다. 
여기까지는 신인과 기성의 가수들의 경계가 분명했고, 선배와 후배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기존 정도의 수준으로는 관심을 끌 수 없기에 더 '센' 서바이벌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jtbc의 <히든 싱어>이다. 
기존의 가수와 그 가수를 모창하는 사람들이 장막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이 누가 진짜인지를 알아맞추는 게임까지 하게 된 것이다. 가수가 그저 자신의 노래가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누가누가 잘 부르나의 수준을 넘어, 내가 내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진짜야, 아니야 의 수준까지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에 열광한다. 심지어 '누가 더 잘해'의 소리까지 나온다. 존재감을 건 서바이벌이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하나의 노래를 가지고, 가수와 가수가 아닌, 혹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서바이벌을 벌이다 못해, 그 판정을 하는 <퍼펙트 싱어 VS>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30일 첫 방송을 탄 <퍼펙트 싱어 VS>에서 92점을 넘은 점수로 1위를 한 성진환은 '이제까지 감성보컬인 줄 알았는데 기계적인 보컬임을 깨달았다'는 촌철살인의 소감을 내보인다. 처음, 16세 여중생과 손승연이 대결을 할 때만 해도 그저 노래를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박완규도, 이정도, 그리고 가요를 자신 분야의 창법으로 해석한 성악가 서정학, 국악인 고금성의 절창도 소용없이 오로지 기계의 판독에 맞춘 정확한 창법만이 유효한 결과는, 제 아무리 박완규가 기계의 판정으로 가름할 수 없는 개성있는 노래라고 면피를 하려고 해도, 이 시대의 가수란? 음악이란? 질문을 허무하게 던져보게 만든다. 

자신의 노래를 제껴두고 남의 노래를 그럴듯하게 부르고, 그걸 관객들의 판정에 맡기는 것도 모자라, 이젠 그걸 기계의 판독에 맡기게 되는 상황, 이게 2013년 대한민국 가요계의 자화상이다. 


by meditator 2013. 8. 31. 10:32

예전에는 그랬었다.

그저 여름이면 납량 특집 <전설의 고향>정도는 봐줘야 하고, 거기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사연이 억울하건 어떻건 결국에는 귀신의 본연에 충실해, '내 다리 내놔~~' 정도의 대사에, 공중 뒤집기 두 바퀴 정도는 여유있게 해내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사람사는 세상이 하도 그악해진 탓일까. 이젠 사람보다 못한 귀신이 귀신이랍시고 텔레비젼을 메운다. 

엄마가 귀신이 됐는데 왜 슬프지?
<드라마 스페셜-엄마의 섬>의 엄마(김용림 분)에게는 네 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다. 하지만 네 명이나 되면 뭐하랴. 
드라마 초반 엄마를 만나러 온 둘째 아들 역의 유오성은 꽃무늬 장화를 엄마에게 드리며 '이런 이쁜 장화 하나는 신어주어야 한다'며 온갖 설레발을 떤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나머지 형제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둘째 아들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강도와 같은 태도로 엄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한다. 그간 엄마가 자신에게 못해주었던 과거까지 들먹이며 엄마의 숨통을 죄는 건, 차라지 강도가 낫지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다른 자식들이 나은 편도 아니다. 사업을 하고, 변호사를 하고, 재벌 짐에 시집을 갔다는 자식들도 각자의 복잡한 속사정 때문에 치매를 앓는 엄마를 모셔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결국 엄마는 홀로 죽어간다. 그리고 귀신이 되어 자식들 앞에 나타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식들이 스스로 느끼는 자식이 되어 해드리지 못했던 도리에 대한 죄책감이, 귀신의 모습으로 엄마를 불러들인다. 
하지만, 그런 귀신이 된 엄마를 물러나게 만드는 것도, 또한 '나야, 엄마'라는 자식의 목메인 한 마디이다. 
<엄마의 섬>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클라이막스에서 잠시 등장하는 귀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뻔히 엄마가 아픈 걸 알면서도, '깜빡깜박 잊어버리시기도 잘 한다'며 자신의 편의에 따라 엄마를 외면하는 자식들의 모습이다. 그렇게 엄마를 '고독사'로 몰아가는 인간 자식들의 모습이 더 무섭다. 그리고 그런 자식들에게 남은 땅뙈기를 팔아 돈과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남긴 엄마, 그리고 귀신은 가슴이 미어지게 슬프다. 

매회 눈물이 난다. 
<주군의 태양>이 방영 중반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홍미란, 홍정은 자매 특유의 허술한 플롯이라는 단점이 드러나지 않고 탄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찌보면, 눈 가리고 아웅일 지도 모른다. 거의 매회, 하나씩 등장하는 귀신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보면, 여전히 홍자매의 이전 작품과 다르지 않게 허술한 틈이 보인다. 특히나, 8회에 이르러, 갑자기 진전된 주군(소지섭 분)과 태양(공효진 분)의 사랑 이야기는 어차피 그렇게 될꺼였으니라는 이해(?)를 차치하고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다리를 건너가듯 어딘가 껄쩍지근하기가 이를데 없다. 
그럼에도 막상 <주군의 태양>을 시청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느끼는 이 두터운 밀도의 감동이, 주군과 태양의 러브 스토리의 탄탄함으로 인한 것인지, 귀신들의 억울한 죽음을 이끄는 사연때문에 그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그렇다. <주군의 태양>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공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귀신들의 이야기이고, 귀신들의 이야기는 매회 뭉클함을 지나 눈물이 나올 만큼 애절하고 안타깝다. 

(사진; 뉴스엔)

외국 호러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두 눈의 색깔이 다른 인형에, 그 인형과 함께 등장하는 아이들은 괴괴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아이들, 보호자의 방치, 혹은 유기로 인해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은 채 죽어갔던 원혼들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신처럼 외로운 아이를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태양이 제일 무섭다는 물귀신이란 전제를 깔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나꿔채는 메니큐어를 바른 여자 귀신은 알고보니, 호텔 이벤트에 당첨되어 너무나도 기뻐했던 고단한 삶을 혼수 상태에 빠진 주부였다. 
이번 주 만이 아니다. 8회에 이르도록 등장했던 귀신들은 늘 억센 인간사에 치여 이 세상을 하직한 억울한 귀신들이고, 그 자신의 억울함을 풀지 못해 태공실 앞에 등장해 칭얼거리는 것이다. 한을 좀 풀어달라고. <전설의 고향> 버전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던 구신들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게다가 한만 풀어주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 세상을 향해 연기처럼 날아버리기 까지 매우 '쿨'하기까지 하다. 

<드라마 스페셜- 엄마의 섬>과 <주군의 태양>을 보다보면,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귀신을 만들 정도로 인간 세상이 지독하게도 모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2013 납량 특집은 지나가는 인간도 다시 보게 만드는 '인간의 무서움'을 항시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무서운 효과를 낳을 거 같다. 


by meditator 2013. 8. 30. 10:09

녹화 방송 시청률이 잘 나왔으면 이런 짓까지 안했다. 평소 6~7% 애매하게 나오니까 이런 짓까지 하게 되는 거다"

 <화신>이 토크쇼에서 무리수라고 여겨지는 생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방송 초반 김구라의 멘트로 그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졌다. 
화제성을 띠며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우리 동네 예체능>의 시청률, 고군분투하지만 이미 안정정 궤도에 들어선 <라디오 스타>와의 차별성을 두기 힘든 <화신>은 마치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가 자신의 방송 생명을 걸고 (물론 결국 진짜 생명을 걸게 되었던)배수진을 치듯, 생방으로 토크쇼를 진행하는 모험을 시도했다.

(사진; 한경 닷컴)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생방송 진행을 하는 음악 방송과 달리, 첫 생방 토크쇼에 임하는 <화신>의 네 mc가 긴장감을 늦출수 없는 게 한 눈에 보이듯이, 토크쇼의 생방송 진행이 왜 위험할까? 
그런 바로 딱 우리 속담처럼 이미 한 번 입밖으로 나온 말을 줏어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신>과 같은 토크쇼의 성격 상 그간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처럼 게스트에게 부담이 되는 내용을 물어볼 수 밖에 없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게스트의 입장에서, 혹은 제작진의 편의에 의해 이른바 '편집'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안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생방송은 그런 거름 장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날 것의 싱싱함은 가능하지만, 생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들의 미처 익지 않은 부작용도 불가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모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화신>의 처지에서 '폐지'라는 벼랑에 몰린 처지에서 친 배수진, <The화신Live>는 어땠을까?
한 마디로 'Not Bad',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이다. 

우선 가장 분명하게  'Not Bad'한 지점은, <The화신Live>가 더 이상 <라디오 스타>의 아류같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방송의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신청한 관객을 부르고, 게스트가 들고 온 질문을 시청자들의 투표로 마무리짓는 방식은 분명 신선한 시도였다. 클라라의 선정성에 대한 호감, 비호감을 묻는 질문에 100원의 자비를 들인 문자 투표임에도 7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보인 것으로 보아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일정 정도 유도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적어도, 네 명의 mc가 게스트를 요리하는 토크쇼에서, 토크의 방향을 열어 그것을 시청자의 선택에 맡기는 방식은, 미국 토크쇼의 관객 투표에서도 조금 더 발전된, 지금의 지지부진한 쌍방향 토크쇼의 가능성을 열어보인 신선한 시도였다. 

하지만, 첫 회인 만큼, 너무도 당연하게 '첫 술에 배부르지 않은 '지점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동등한 게스트로 초청하고서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발언 기회를 10분을 할애하거나 아니면 그나마도 주어지지 않은 김준호, 김대희의 경우는 해프닝을 넘어 무례를 범한 결과를 낳았다. 
80분의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mc 자신들이 거듭 반복해 언급하면서도, 화제성이 있는 클라라에게 40여분이 넘는 시간을 제공하는 방식은, 첫 회의 미숙한 운영이라고 핑계를 대기에도 너무 노골적인 실수였다. 
그나마 김준호, 김대희 두 사람이 개그맨이기에, 거기에 mc들의 후배이기에 앙탈을 부리며 넘어갈 수 있었지, 다른 분야의 게스트들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런 화제성 여부에 따라 토크 할애 시간의 불평등이 지속된다면, 출연 대상이 될 게스트들이 순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거나, 아니면 아예 출연 자체를 부담스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더구나 생방송 토크라는게 게스트에게 이미 부담을 지고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무르팍 도사>가 1인 게스트 중심 토크쇼임에도 화제성을 잃자, 게스트의 충원에 어려움을 겪어 스스로 침몰했던 것처럼, 복벌복과도 같은 <The화신Live>의 게스트 배분 문제는 회를 거듭하면서 프로그램의 목줄의 죄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속 하정우처럼 배수진을 치다 본인이 고꾸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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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n 스타)


그런데 중요한 점은, <The화신Live>를 통해, 첫 술이 아니라, 두번 째, 세번 째가 되어가면서 운영의 묘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어쩌면 그간 <화신>에 내재되어 있던, 치명적 단점이 생방 진행을 확연히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80분의 촉박한 진행을 보면서, 네 명의 mc들이 게스트들보다 더 많이 비춰지는 화면을 보면서, 과연 저 네 명의 mc들이 <화신>에 다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네 명의 게스트들을 불러놓고, 마치 무슨 순위 프로그램처럼, 첫번 째 게스트는 40분, 두번 째 게스트는 30분, 세번 째 게스트는 10분, 마지막 게스트는 외마디의 시간을 할애하는 동안, 게스트가 한 마디 할 때마다 네 명의 mc 들은 빠짐없이 저마다 한 마디를 얹는다. 심지어, 김대희, 김준호가 자신들은 어떡하냐고 하소연을 할 때도, 시간이 없단 말도 네 명이 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한다. 
처음엔, 저런 식이라면 게스트들을 줄여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불러놓고 허수아비를 만드느니, 오프라 윈프리 쇼처럼 한 게스트당 딱 잘라 정해진 시간을 할애하고 퇴장시키는 방식이 낫지 않을까 라고 하다가, 문득 과연 저 네 명의 mc가 굳이 있어야 할까 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The화신Live>처럼 게스트가 자신의 질문을 가져오고, 그걸 mc 들이 풀어내 주고, 시청자들이 투표하는 방식이라면, 지금처럼 mc들이 북치고 장구치는 식의 진행이 필요하지 않다면, 네 명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그렇다면 지금까지, <화신>이란 프로그램에서, 네 명의 집단 mc체제가 과연 유효했었나 라는 의문까지 이어지고. 

생방송 진행은 그저 녹화로 하던 방송을 날 거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생방송이라면, 생방송의 포맷에 맡게, 프로그램의 운영도 보다 타이트하게 다이어트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록 첫 술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보인 <The화신Live>가 새로운 방식으로 잘 살아남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8. 10:07

요즘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방영된 사건은 거의 매번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주인공이 된 인물의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행각에 다같이 공분한다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 행각에 공포 영화를 본듯 두려움을 공유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하는 사건이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신문의 사회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건이,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방송 포맷을 통해 재탄생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몇 배로 끌어 올리는 전형적인 엔터테인먼트화 된 다큐의 극대화된 모습이다. 
다큐멘터리(이하 다큐)의 사실성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영화 <워낭 소리>와 <아마존의 눈물>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다큐를 통해 보여지는 '사실'의 질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사실은 사실이되, 그 사실이 그 이면의 진실과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인식 역시 늘 함께 병립하게 되는 것이 다큐 세계의 진실이 되었다. 

<mbc다큐 스페셜>이 인물을 다루는 방식 역시 이런 의심을 피해갈 수 없다. 602회 '지금 다시 김광석을 부른다' 편은 1996년에 운명을 달리한 김광석을 오늘의 문화 트렌드가 된 입장에서 회고하는 자리였기에, 정말 김광석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느낄 아쉬움을 뒤로하고, 김광석이란 그 사람 자체를 다시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감회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2013 인물'의 첫 회로 등장한 봉준호를 다루는 방식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603회 <mbc다큐 스페셜> 2013 인물, 첫 회 봉준호 편은 봉준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또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한 구석에 꿍친 혹은, 듣고 싶은 이야기의 포인트가 서로 달랐던 동문서답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단 네 편의 작품 만에 세계적 감독이 된 봉준호, <괴물>을 통해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마더>등을 통해 세계적 평론가의 찬사를 받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감독, <설국 열차>를 통해 이 시대의 한껏 뜨거운 화두로 올라 선 봉준호를 <mbc다큐 스페셜>은 2013 인물의 첫 번째 인물로 초대했다. 

당연히 화제가 되는 <설국 열차>인 만큼 다큐의 초반은 당연히 <설국 열차>란 영화를 통해 봉준호를 설명하고자 한다. 세계적 배우인 틸다 스윌튼이 그의 전 작품에서의 촬영 태도를 지양하고 늘 현장을 지키게 만들었던 매력적인 감독 봉준호,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로 떠오른 크리스 에반스가 천리길을 마다않고 직접 오디션에 참가하게 만든 대단한 감독 봉준호를 그리는데 치중했다. 
그리고 그런 봉준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혀간다. 감독이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회학과 출신이 어떻게 감독이 되어가는지의 과정과, <플란더스의 개>의 실패를 딛고 <살인의 추억>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낸 '봉테일'이라는 특징을 잡아내는데 다큐는 집중한다. 또한, 프랑스의 영화 잡지에서 '삑사리의 미학'이란 제목으로까지 소개된 봉준호 영화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다.
어떤가, 이 정도면 봉준호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겠는가?

<mbc다큐 스페셜>은 묘하다. 그의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이력을 훑고, 그의 영화적 특징과 매력을 샅샅이 설명해 가는데, 정작 다 보고 나면,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 이유를 다큐 속에서 <설국 열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홍대 앞 책방에서<설국 열차>의 원작을 찾아낸 봉준호는 꼬리칸 사람들이 끝없이 이어진 열차의 엔진 칸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빼놓고는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열차라는 공간의 현실감을 위해 트레일러 위에 세트를 놓고 흔들리는 열차의 공간감을 창조해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점은 <설국 열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아니다. 과연 설국 열차에서 꼬리칸 사람들이 엔진 칸을 향해 나아가는 지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를 두고, 봉준호가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열차라는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냉정하게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고, 허지웅은 꼬리칸을 민주당, 머릿칸을 새누리당에 비교하는 것에 반대하며, 오히려 새누리당은 열차를 둘러싼 세계적 재앙이고, 굳이 비교하자면 꼬리칸은 진보 세력, 머릿칸은 민주당에 가깝다는 정의를 내려 논란에 불을 붙였다. 

봉준호 다큐
(사진; tv데일리)

모두들, 봉준호가 <설국 열차>를 만든 진의를 궁금해 하는 가운데, 봉준호를 다루는, 그의 작품을 다루는 다큐에서,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디테일이 강한, 예측하지 못한 돌발적 운명을 강조한 감독이라는 식으로 봉준호를 정의내리고 있다. 
과연 <살인의 추억>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것이 범인이 잡히지 못해서, 80년대를 천연덕스럽게 되살려 냈기 때문만일까? 국민 엄마 김혜자를 굳이 자식 사랑에 살인도 불사하는 파렴치한 모성으로 되살려낸 영화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mbc 다큐 스페셜>은 마치 서울 소개 다큐가 서울에 가면 광화문도 있고, 경복궁도 있고 하는 식의 겉훒기식 소개를 하듯, 봉준호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봉준호는 이런 사람이예요 라는 소박한 소개는 될 수 있을 지언정, 봉준호의 영화를 보고, 그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갈시켜 주는데는 역부족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핫한 배우 김수현의 나레이션까지 얹어, 흥행 감독 봉준호를 그럴싸하게 보이게는 했지만, 외국의 유명 배우들이 달려와 함깨 하는 세계적 감독이 된 봉준호의 세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것이 2013 인물의 첫 회라는 점이다. 2013년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을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그것은 인물의 개략적인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에 대해서는 그 논란에 대해 눈 질끈감고, 화제가 되는 부분만 조명하는 왜곡의 가능성 조차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부디 2013의 인물 시리즈가 어릴 적 우리가 읽던 번드르르한 위인전의 수준을 뛰어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7. 10:22

<맨발의 친구들>은 '자작곡 프로젝트'에 이어 '집밥 먹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그 취지에 맞춰 맛있는 집밥을 소개한다며연예계의 숨은 요리 고수를 찾아다닌다. 처음 김나운을 찾아가 연입밥에 복분자 장어 구이 들을 먹었고, 다음 시간에는 홍진경 집에서 김치국밥, 물냉면, 시래기 국을 먹을 예정이다. 
김나운 집에서 밥을 먹는 중, 일찌기 1박2일에서부터 초딩 입맛으로 지적받았던 은지원이 김치을 집어 먹는다. 그러더니, 주변 동료들에게, 
'와, 이거, 대박이다. 이거 먹어 봐, 진짜 맛있어.'
라며 호들갑을 떨고, 그의 권유에 따라 먹은 주변 mc들도 그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장면 아주 평범한 장면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홍진경 집에 가서도 대뜸 김치 냉장고를 열어 맨 입에 김치부터 맛본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김나운도, 홍진경도 케이블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김치를 팔고 있는 연예인이라는 것을. 그런 그들의 집에 가서 그 집의 김치를 맛있다며 먹어보이는 건, 고도의  PPL이다. 과연 케이블을 통해 음식을 파는 연예인의 집에 가서 한끼를 먹는 걸 집밥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다, 다음엔 홍진경과 김치 전쟁을 벌인 오지호에, 연예인 요리 상품화의 원조 김수미의 집까지 갈까? 

  

어거지 집밥 프로젝트이거나 말거나, 웃픈건 그래도 <맨발의 친구들>의 시청률이 그 이전의 '자작곡 프로젝트'에 비해 올랐다는 사실이다. <우리 동네 예체능>을 따라 다이빙을 하고, <무한도전 가요제>를 따라 자작곡 프로젝트를 하고, 이제 요즘 대세인 먹방에 이르러 나름 성과라면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 <맨발의 친구들>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먹방'이 요즘 가장 인기있는 예능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먹방'만 하면 웬만큼은 먹고 들어가는 추세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너도 나도, '먹방'을 하느라, 텔레비젼이 온통 음식 먹는 장면으로 차고 넘친다. 텔레비젼뿐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개인 인터넷 방송에서도 오로지 '먹방'만 하는 채널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공교롭게도 그 누구도 구제할 수 없을 거 같았던 mbc예능의 침체기를 구제해 준 것이 바로 '먹방'이었다. 
<아빠, 어디가>에서 윤민수의 아들 윤후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고, 덕분에 윤민수 부자는 짜장 라면 광고의 주인공이 되었다. <진짜 사나이> 역시 먹방을 빼놓고는 그 인기를 논할 수 없다. 특히나, 군대 음식이라면 맛이 없을 거라는 선입관을 깨버리게, 군대로 간 연예인들은 고된 훈련 뒤에 나온 음식을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입맛이 다셔질 정도로 맛나게 먹어 주었다. 심지어, 류수영은 이른바 '짬밥'이라 폄하되던 군대 음식을 마치 4성급 호텔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음미하고 평가를 내림으로써, 군대판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존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사진; 아시아 투데이)


그렇게 죽어가던 예능도 살리고 보는 '먹방'때문일까? 요즘은 너도 나도 당연히 '먹방'은 당연히라는 추세다. <인간의 조건>은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라는 자막까지 넣어가며 30분 전에 멤버들과 함께 라면을 푸짐하게 먹은 김준현이 돈까스를 먹는 모습을 들이민다. 김준현은 얼마전 케이블을 통해 심각한 성인병 수치로 진단받아 절식과 다이어트가 절실할 위치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먹고  또 먹는다. 보는 사람이 다 포만감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자 사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 혼자 산다>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이미 아들 하정우의 먹방 장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걸 복기시키며, 아버지 김용건의 먹방을 들이민다. 그뿐 아니다. <인간의 조건>에 김준현이 있다면, <나 혼자 산다>에는 데프콘이 있다.  데프콘도 못지 않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지만, 가끔은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먹방'의 융성을 흔히들 '나 혼자'라는 현대인의 고독한 삶을 통해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작 먹방의 원조라고 하면, 상까지 받았던 배우 최불암이 함께 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다. 최근 새삼스레 <한국인의 밥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국인의 밥상>과 요즘 인기를 끄는 '먹방'의 차이는 무얼까? 인기를 끌고 있는 먹방치고 조금 먹는 걸 못보았다. 먹는 거랑 원수라도 진 듯이 와구와구 밀어 넣으며, 세상의 모든 음식을 삼킬 기세로 먹는다. 그리고 웬 음식들은 그렇게 지천으로 흥건하게 쌓아놓고 먹는 건지. <한국인의 밥상>에서 보여지는 소박하고 질박한 음식들이 낄 자리는 없다. 

인간의 쾌락을 단계별로 설명하는 '뇌과학'에서는 먹는 걸 통해 즐거움을 얻는 단계는, 성욕과 함께 쾌락의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아이들, 군인, 그리고 '먹방', 요즘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표제어를 이어보면, 가장 원초적이란 공통점이 떠오른다. 
이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한다?
아니, 삶에서 오죽 즐거움을 느낄 것이 없으면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혹은 가장 극한의 상황 속에 놓인 군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취하는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할까, 이런 것일까?


	강호동 설거지 먹방
(사진; 조선 닷컴)

땀을 뚝뚝 흘리며 입이 미어져라 가득 밀어넣는 음식을 보고 있노라면, 맛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슬며시 '욕구 불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편에서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극강의 다이어트를 하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맺힌 게 있다는 듯이 먹을 걸 밀어넣는 이 극와 극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 내야 하는 것인지. 산해진미를 먹고, 깃털로 목을 간질여 토해 내고 다시 먹었다던 로마인의 세기말적 식도락이 떠오른다. 

한때 예능이 몹시도 계몽적이던 때가 있었다. 
'책, 책, 책을 읽자'고 했고, 텔레비젼이 권장 도서 목록을 정해 주기도 했고, 그 여파로 도서관이 지어지기도 했다. 모범적인 시민이 되자며, 몰래 카메라로 정지선을 잘 지키는 사람을 찾아 냉장고를 덥썩 안겨주기도 했다. 
텔레비젼이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너도 나도 누가누가 잘 먹나를, 누가 누가 많이 먹나를 내기하는 요즘의 예능을 보고 있노라면, 책 한 줄의 향기를 논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긴 한다. 어떻게 세월이 점점 형이하학적이 되어가는지.....


by meditator 2013. 8. 26. 10:36

<꽃보다 할배>의 시청률이 7%를 넘었다.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 중 <슈퍼스타K>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가장 높은 시청률일 것이다. 더구나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할아버지들의 '황혼 배낭여행'이라는 어찌보면 심심할 수도 있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얻은 것은 수치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한 감마저 있다. 그 정도로 할배들의 여행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 일색이다. 
이렇게 <꽃보다 할배>가 붐을 이루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나날이 낮아지는 시청률로 인해 고전하는 또 하나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인간의 조건>이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런칭'한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두 프로그램의 엇갈리는 희비는 아이러니하다. 

나영석 피디는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본인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 였다고 슬그머니 발을 뺀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떠나와, 프로그램의 인기 여부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케이블이라는 전쟁터로 들어온 것에 대한 감회를 '도전'으로 대신했던 그의 소감을 기억에 떠올려 보면, <꽃보다 할배>가 나영석,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브랜드가 되어가는 아이디어 뱅크의 출사표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영석 피디가 <꽃보다 할배> 바로 전에 시도한 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은 이른바 <1박2일>이라는 리얼리티 예능의 해가 저무는 시점에, 관찰 예능으로서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꽃보다 할배>가 그저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담는 '관찰'에 집중하는데 비해, <인간의 조건>은 여섯 남자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측면에서는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띠지만, 4회 정도에 걸쳐 굵직한 대 미션과 매회 주어지는 소미션이 주어지는 점에서는 리얼리티 예능의 성격도 지니는 '과도기적'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똑같이 나영석 피디가 만들었음에도 이제 30회차를 넘어가는 <인간의 조건>은 처음만 못한 화제와 인기에 고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처음 <인간의 조건>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등장했을 때, 그 분위기는 <꽃보다 할배>와 유사했다.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네 할배와 한 명의 짐꾼처럼, 그저 웃기는 개그맨으로만 접했던 여섯 남자에게서, 문명의 이기를 빼앗자, 아날로그한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좀 비약은 있겠지만, 나영석 피디의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만들어 낸다 싶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개개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치중한다. 이서진이란 그저 잘 생겼던 남자 배우를 몰래 카메라를 통해, 그 예전의 허당 이승기 못지 않은 국민 짐꾼으로 돌변시키고, 직진 순재에, 로맨티스트 박근형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나영석 피디는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투자한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뚱뚱한 개그맨이었던 김준현을 아날로그한 감성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는 여백이 넘치는 인간으로, 온갖 웃기는 분장으로만 다가오던 정태호를 따뜻한 엄마같은 인물로 만들어 낸 것도 바로 <인간의 조건>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똑같이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던 두 프로그램인데,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의 조건>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30회 정도 되니 인기가 떨어질 때도 돼서? <1박2일>이 꽤나 오랜 시간 국민 예능으로 인기를 누렸던 것을 되돌아 보면, 겨우 30회차에 벌써 피로가 누적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인간의 조건>을 질리 새도 없이 매 달 새로운 미션이 들어가고, 더구나 최근엔 <꽃보다 할배>처럼 휴가 미션까지 했는데?

아마도 그 결정적 이유를 들자면 무엇보다, 캐릭터의 변주에 있어, <인간의 조건>이 그 깊이를 더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31회 '휴가의 조건' 4부에서 완성된 김준현의 피톤치드를 앞에 두고 여섯 멤버는 각자 자신의 닉네임을 호명한다. 김준호는 '호감, 호감, 비호감', 김준현은 '뚱이, 뚱이, 뚱뚱이'에 양상국은 '활동'을 담당하고, 박성호는 '불혹'이란 식이다. 여전히 허경환은 '얼굴'이요, 정태호는 '엄마'다. 처음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여섯 남자에게 주어졌던 캐릭터에서 30회차를 넘은 지금까지 이들의 캐릭터에 별 변화가 없다. 첫 회에 보았던 이미지랑, 지금의 이미지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납작한' 캐릭터로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느라 고군분투한다. 

반면에 <꽃보다 할배>는 겨우 8회만에 캐릭터들이 롤러코스터다. 직진 순재였던 이순재가 다리가 아픈 일섭을 위해 독일어까지 해가면서 길을 알아보기에 분주한 따스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드라마에서 엄격한 회장님이었던 박근형은 부인을 위해 사진을 찍어보내느라 바쁜 로맨티스트다. 사람 좋아보이기가 한량 없던 신구는 시즌 2에서 숨겨왔던 외국어 실력을 내보이며 짐꾼이 필요없단 말이 나올 만큼 리더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 어디 그뿐인가 영문과 출신 일섭은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가 최고요, 대화는 한국어로 완성된다. 게다가 떼쟁이일줄 알았더니, 정의의 화신이란다. 
사실 <꽃보다 할배>의 내용은 별거 아니다. 여행을 가서 무언가를 보고, 뭘 찾아 먹고, 잠잘 곳을 마련하고,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게 되는 것은, 그 속에서 찾아내지는 출연자들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매회 샘솟듯 솟아나는 출연자들의 색다른 면모에 젊은 사람들조차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분명 여섯 남자의 색다른 인간적인 면모였었다. 그런데, 30회를 지난 지금, 여섯 남자는 처음 그 자리에 아직도 서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정태호는 부지런히 음식을 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김준현은 열심히 시간만 나면 먹고, 뚱뚱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속내와 능력을 내보인다. 김준호는 여전히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잔머리를 쓰기에 바쁘다. 
미션도 해야하는 과도기적 성격이 <인간의 조건> 멤버들의 인간적 모습의 능력을 활짝 펼치는데 방해가 되는 걸까? 돌아가면서 미션 수행하는 모습만 줄줄이 나열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많은 걸 해내는데, 막상 기억에 남는 건 점점 드물어 진다. 

이번 <휴가의 조건>에서 박성호는 시간이 주어지자 용감하게 혼자 사이판 행을 감행한다. 대단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의 여행 과정은 다른 멤버들이 제주도를 가는 것과 다르지 않게 비춰진다. 그걸 보면 제주도를 가건, 사이판을 가건 무에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꽃보다 할배>에서 하듯이 잠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먹을 곳을 찾고, 여행을 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더더욱 <꽃보가 할배>와 비교된다. 할배들이 거리를 걸을 때, 화면을 결코 쉽게 지나친 적이 없다. 직진 순재가 길을 걸을 때마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하고 기가 막힌 배경 음악이 깔린다. 박성호가 사이판의 밤길을 동네 개들을 두려워하며 걷는 모습은 그저 맹숭맹숭 지나쳐간다. 사이판에서 박성호는 여전히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자 잘 노는 형일 뿐이다. 

(사진; tv리포트)

<꽃보다 할배>에서 한지민이 할배 일행과 조우할 뻔하다 엇갈린 일이 화제가 되었다. 결국 일정상의 조율 문제로 엇갈렸을 뿐인데, 인간의 도리까지 나오면서 갑론을박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였다. 그건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의 조건>에 아이돌 그룹 멤버인 이준이와서 하루 온종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뿐이다. 이미 이준이란 개인의 캐릭터 자체가 여기저기 온갖 프로그램을 다니면서 소진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멤버들의 모습도 새로울 것이 없었기에 화제를 끌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준과 함께 마빡이를 했다? 그건 화제조차 되지 못했다. 
한때 <남자의 자격>에 몸담았던 김준호가 프로그램에서 꽁트를 할 때마다 프로그램의 좌장 격인 이경규가 질색을 했다. 아마도 그것은 꽁트가 당장 인트턴트 식 웃음을 만들어 낼 지언정, 기본적으로 캐릭터로 깊어져야 하는 프로그램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를 거듭할 수록, 캐릭터는 여전한데, 꽁트만 늘어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을 보다보면, 무엇을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게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을 초대하기 보다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과 인간적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개그콘서트> 멤버들을 활용하란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의 조건>의 정체 혹은 하강은 미션의 호불호 때문이 아니다. 그 미션을 요리하는 방법과, 그것을 통해 새롭게 그려지는 여섯 남자의 매력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초심으로 되살리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5. 10:23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를 보기에 앞서,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를 보았다. 

40년차 양희은에서, 겨우 2개월의 김예림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선, 후배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말로는 즐기겠다고 하지만, 수차례 바뀌는 편곡의 리듬에, 화려한 물량 공세를 쏟아부은 무대 장치에, 한 사람 만으로도 꽉 차는 무대를 무려 두 팀이 어우러져 혼신의 노력을 해댔으니, 때로는 그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존재감있는 무대였다. 그걸 보면서, 조금 있다 보게 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떠올리며, 과연 이제 그 프로그램이 케이블의 사생결단 서바이벌과, 공중파의 다양한 대결 프로그램들 속에서 초라하지 않게 버틸 수 있을까란 회의가 불쑥 솟아 올랐다. 
그래도, 200회인데, <슈퍼 매치>의 우승자를 뒤로 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채널을 돌렸다. 아, 그런데, 초라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이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없을까? 나의 오산이었다. 여전히 200회를 맞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MC 유희열이 부른 마지막 노래 '여름날'처럼 푸르르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 뉴스24)

비록 이 지면은 아니었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을 감격해 하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 데,  200회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이 프로그램의 100회 특집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때도 그랬었다. 100회 특집의 이름은 'The Musician', 무대에서 화려하게 돋보이는 가수를 위해 무대 뒤에서 수십년 묵묵히 연주를 해왔던 연주자들에게 헌정하는 특집이었다. 기타의 대가 함춘호와, 하림과, 50여년을 아코디언을 연주한 심성락 선생의 연주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 특집을 위해 인순이, 루시드 폴 등 가수들은 무대의 중심이 아닌, 그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흥겨이 그들의 백댄서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무대의 감상을 묻는 시간, 함춘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기에, 그 프로그램이 100회 라는 시간을 건너왔기에 용기를 내어 마련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마련했었던, 루시드 폴과 함께 기존의 노래를 편곡하여 다시 부르던 포맷은 이제 <나는 가수다>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고, 아이유, 효린 등 신인 가수가 나와 선배의 노래를 다시 부르던 기획은 이제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전설을 노래하는 상시적 아이템이 되었다. 한때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진 mbc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늘상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해오던 일상의 숙제이다. 이제는 스타가 된 아이유와, 알리와, 존박 등이 떨리는 모습으로 조심스레 무대에 서던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으니까. 금요일 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요일 0시 반에 시작하여, 2시 정도가 되어야 끝나는 밤도깨비 같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화려하게 조명받지 않아도 꾸준히 우리의 음악을 다양한 시도로 시청자들에게 풍성하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세간에 그들의 이름과 음악만으로 회자되는 언더 그라운드의 밴드와, 인디 뮤지션들이 처음으로 무대를 서는 기회를 얻는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12년만에 첫 무대라며 눈물을 적시며 떨던 '바스코'에게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케이블에서도 조차 명멸해가는 고품격 음악 방송들 사이에서도, 늦은 시간이라도 감지덕지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간이 흘러 200회가 되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은 'The Fan'이다. 
이번 <슈퍼스타K>시즌 5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 '한경일'이다. 200년대 꽃미남의 가수로 반짝 등장했다 사라졌던 가수로, 이제 다시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한경일이란 기존의 가수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나와야 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 가수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마치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다는 듯이, 가수들의 가수, 가수들이 팬이 되어 좋아하는 가수,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미처 그들의 진가가 발휘되지 않는 가수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에 출연자를 보면, 물론 이승환이나, 이현도처럼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가수들도 있지만, 그 중 김태우, 윤도현, 바비킴 등은 타방송의 대결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가수들이다. 심지어 그 중 바비킴은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에 이어 <슈퍼 매치>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렇게 인기 가수들이 중복되어 몇몇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것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0회 특집의 자리를 내주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다운 기획이고, 그러기에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빛나고, 아직도 이 프로그램이 존속해야 할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시간이 되었다. 

(사진; osen)

이효리의 '콜'에도 '시간 나면 한번 생각해 볼게요'라며 시크하게 자신의 음악과의 어울림을 고민했다던 김태춘, 마이클 조던에게 농구를 배우는 기분이라며 감격해 마지 않지만, 그런 그들이 여전히 하드 롹을 고집해서 좋다는 윤도현과 로맨틱 펀치의 어울림, 장기하 보다 더 맛깔나게 가사를 음악에 맞춰 요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한 김대중, 지금까지 박정현과 함께 했던 임재범, 김범수 등에 견주어 결코 그 음색의 독특함이 뒤지지 않는 이이언, 그리고 까다로운 유희열이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극찬을 한 선우 정아까지,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해 각기 자신의 장기를 뽐내듯, 컨트리, 락, 발라드, r&b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실력자들이 있었어 라고 감탄하게 되는 특집의 시간이었다. 

마치, 당신들이 편식하는 음악 뒤에, 이런 또 다른 세상이 있어요. 우리는 이런 세상을 당신들에게 앞으로도 꾸준히 인도하고 싶어요 라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200회 '음악으로 전한 소감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남들은 거리를 싸돌아 다니며 불태우는 금요일 밤을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고 앉아 불침번을 서게 만드는 버거운 싸움을 계속하게 만드는 고단하지만 기대에 부푼 강요의 시간이다. 
Let's go 300회!


by meditator 2013. 8. 24. 10:03

<주군의 태양>이 나날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할 때마다 되돌아 오는 질문이 있다. 홍정은, 홍미란 자매님들(이하 홍자매) <빅>때는 왜그러셨어요? 

이제는 대세가 된, 연기돌 랭킹 1위에 빛나는 수지가 출연했음에도, 그녀의 작품으로 언급조차 회피되고 있는 <빅>과 <주군의 태양>은 동일하게 홍자매의 작품이지만, 과연 이 두 작품이 홍자매의 작품이 맞는가 싶게 다른 느낌의 드라마이다. 
같은 작가 작품이라고 꼭 같아야만 돼?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두 사람의 작품을 되돌아보면, <최고의 사랑>, <환상의 커플> 등 인기를 누린 것일 수록 <주군의 태양>과 거의 같은 포맷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히려 주인공들이 설정은 비정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였던, <빅>이 홍자매에겐 외도와도 같은 성격의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면, 이른바 홍자매의 작품답다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것일까? 그걸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자면 '병맛'이다. <주군의 태양>은 홍자매 특유의 병맛이 펄떡펄떡 살아움직인다. 그러니 재미없을래야 재미없을 수가 없다. 



"꺼져!", "꺼져, 꺼져!", '얼른 꺼져!" " 꼭 세번을 말해야 알아 듣는 군"
위의 대사를 글자로만 읽으면 굉장히 모욕적이다. '인격 모독'으로 고소를 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물론, 처음에 주중원(소지섭 분)이 어색한 손짓으로 저 대사를 칠 때, 뭐지, 이 작위적 대사는? 하면서, <최고의 사랑>의 '극뽁'처럼 유행어 하나 만드려는 거야? 하면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더구나 늘 정극의 연기만 하던 소지섭이 홍자매 특유의 리듬과 겉돌던 시기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게 몇 번 반복이 되면서,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중독성이 있는 거다. 이즈음에는 '꺼져' 한 번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면서, 이제 6회차에 들어, 소지섭조차 드라마의 리듬에 조금씩 몸을 맡기면서, 그 어색한 맛의 '꺼져'조차,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효진은 늦고 빠르고가 없이 이미 그녀 자신의 연기력으로만 초반부터 무리수일 수도 있는 이 드라마의 설정을 책임지고 가고 있다. 그녀만큼 말도 안되는 드라마 속 캐릭터 자체로 사랑스러운 여인이 또 어디 있을까 싶게. 

"한번만 만져봐도 돼요?"/"안돼, 꺼져!"
홍자매 드라마의 대사들은 흔히 아이들간의 대화 같다. 어른들이 듣고 있노라면 뭐 저리 막말을 하나? 싶거나, 쓸데없는 말만 하나? 싶은데, 지들은 그게 하냥 좋다고 하는. 언뜻 들으면 욕이 반이 넘는 막말인데, 그 속에서 정이 넘치고, 우정이 깊어지는 그런 묘한 맛? 그게 홍자매의 대사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홍자매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분명 어른인데도 아이들이다. 덩치만 어른일 뿐, 사탕을 빼앗기기 싫어서 앙탈을 부리고, 온갖 모험을 불사하는 그 아이들의 마음 그대로이다. 아마도 어른 들 사이에서 '꺼져'를 세 번 쯤 하면, 마음 속에 칼을 갈게 되겠지만, 아이들같은 어른들이기에 얼마든지 그 보다 더 심한 말도 가능하다. 아마도 그래서, 유치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아마도 그래서, 어른인 척, 혹은 멋있어 하는 가식이 없어서, 같은 젊은이들 사이에, 일단 홍자매 드라마는 보고 판단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일 것이다. 

<주군의 태양>의 주인공 혹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어느 하나 멀쩡한 사람들이 없다. 일단 쇼핑몰의 사장 주중원은 어릴 적 납치를 당했던 트라우마로 글을 읽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피하고 자신만의 성 속에 숨은 채, 주군처럼 행사한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만 억지로 웃음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는 그 주변엔 그를 이해하는 김비서 말고는 그 누구도 없다. 
태공실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설정부터 귀신을 본다는, 거기에 귀신이 들러붙어 자신의 사정을 해결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는 이 여자는 등장부터 잠도 못자고,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루저 그 자체이다. 
남녀 주인공만이 아니다. 조만간 태공실의 어설픈 연적으로 등장하는 태이령(김유리)은 전지현의 밥솥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한 냄비 광고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를 한껏 뽐냈다. 어디 그뿐인가, 제일 멋있어 보이는 강우(서인국 분)도 귀신 이야기만 나오면 쫀다. 
번듯한 어른이지만 속내를 알고보면 다 한 끝차이로 찌질하기가 이를데 없는 '병맛'어른 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아이들 수준 그대로다. 

대한민국 드라마답게 <주군의 태양>에서도 재벌이 나오고, 스타가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참 없어보인다. 권위는 허세요, 가진 건 스쿠루지 저리 가라게 짠돌이에, 정신 세계는 딱 아이 수준이다. 학창 시절 평가하던 어른들 딱 그 모습이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 그들이기에, 가진 것 없는 여주인공과 얽히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엮어져갈 그들의 사랑이 전혀 불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재벌이 한낫 루저녀를 사랑하는 것이 호의로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주중원과 태공실이 계약 관계로 동등하게 엮이듯, 그들의 사랑조차 동등해 보인다. 심지어 나중에는 오히려, 태공실이 더 많은 걸 줄 수도 있어 보인다. 
학창 시절 아이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렇다. 자신들보다 더 많이 알고, 가졌지만 자신들보다도 못한 사람이라는, 냉소어린 그 시각이 그대로 드라마로 연결된다. 
흔히 청소년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눈높이를 맞추라고 하는데, 홍자매의 드라마가 딱이다. 그들의 정서에 맞춘 어른들의 세계.  

흔히 '병맛'의 시초를 만화로 본다. 철 든 어른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낄낄거리며 한없이 빠져들게 하는 그 매력을 병신미, 혹은 병맛으로 정의한다. 혹자는 이걸 잉여력이 넘치는 루저들의 집합체인 젊은 층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에 반발해, 일찌기 조선시대 김삿갓에서부터 비롯된 해학과 페이소스의 유산이라고도 정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든, 홍자매 드라마는 재밌다. 그리고 그게 바로 '병맛'의 본령이다. 꼭 무슨 교훈을 남겨야 해? 의미가 있어야 해? 하하 호호 깔깔거리고 서로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면 그뿐. 


by meditator 2013. 8. 23.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