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라디오 스타>는 '강추' 특집의 자리를 마련했다. 

즉 4명의 mc가 밀고 싶은 예능 기대주 네 명을 이른바 '강력 추천' 해 마련한 자리였다.  늘 누군가를 추천하는 자리면 어김없이 김국진이 안쓰러워 불러내는 김수용에, '애제자'라는 미명 하에 불려온 윤종신 소속사 가수 김예림, 그리고 두말하면 잔소리인 규현과 한솥밥을 먹는 려욱까지, 제목부터가 노골적이었으니, 당연히 그 자리에 초대받은 게스트의 면면이 mc의 이른바 '내 논에 물대기'식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그런 와중에 돋보이는 건 단연, 김구라가 초대한 봉만대 감독이었다. 김구라의 말 대로 친구라지만 10년 동안 단 두 번을 봤다는 봉만대 감독은 말 그대로 김구라가 강추하고 싶은 순수한 의미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9일자 라디오 방송은, 말이 강추 특집이지, 결국은 '봉만대' 특집이 되었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봉만대 감독이 누구인가. 
장르 영화가 자리잡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물게 이젠 에로 영화의 거장으로 대접받는 감독이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우스개로 봉준호와 함께 봉봉 브라더스 운운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대한민국의 또 한 사람의 봉감독인 것이다. 최근 <아티스트 봉만대>를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노골적으로 '디스'하고, 그것을 통해 결국은 진솔함으로 다가가는 시도를 했던 봉감독은, <라디오 스타>에 나와 꺼리낌없이 자신의 작품 제작 방식에 대해 '수세미'까지 예를 들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에로'라던가, '섹스'라던가 라는 단어가 아직도 그대로 발음하기 조차 어색한 공중파에서 그 분야를 자신의 작품 세계로 추구하는 감독을 초대한 김구라의 배짱과 안목도 대단하고, 그것을 거침없이 소화해 내는 봉만대의 조합은 모처럼 <라디오 스타>의 b급 정서를 제대로 살려낸 듯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다른 mc들의 게스트들은 낯뜨거웠다. 
'강추 특집'의 초반, 소개되는 게스트의 면면을 보면서 김구라는 불편한 듯 일갈한다. 이건 뭐 예능 기대주라고 했는데, 다 자기 측근들을 데려다 앉혔다고. 그러자, 윤종신이 낮두껍게 반문한다. 그러는 당신도 측근을 데려오지 그랬냐고. 그러자, 김구라는 그런 식이면 난 동현이를 데려다 앉혔다고 말문을 막아버린다. 
언제부터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기 논에 물대기 식의 게스트 섭외와 토크가 당연한 일이 되어간다. 메인 mc와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이 보조 mc로 들어가는 건 공식같다. 특정 기획사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은 당연히 그 기획사의 mc가 시청률과 상관없이 메인을 맡는다. 당연히 밉보인 jyj와 같은 그룹은 방송계에 설 자리가 없다. '예능 기대주' 강추란 미명이 당연하게 내 측근 데려다 앉히는 자리가 되었다. 마치 내가 선생인 우리 반에 내 자식을 전학시켜다 앉혀 놓는 것처럼, 내가 사장인 우리 회사에 사원으로 내 친척을 들이미는 것처럼. 내 연줄, 내 인맥을 끌어대는 것이 뻔뻔하거나,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어간다. 그저 대한민국은 인맥이 짱이야! 라는 진리를 몸소 실천 중이다. 아니 인맥을 넘어 이젠 '카르텔'이 되어간다. 

1년에 5번 정도 예능 나들이를 한다는 김수용은 <라디오 스타>에만 유독 출입이 잦다. 능력은 있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그에 대한 소개 멘트가 이젠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김국진이 신혼 여행 비용을 대주었다는 에피소드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차라리, 방송 말미 그가 케이블에서 한다는 19금 토크쇼를 화제로 삼았다면 봉만대 감독이랑 접점이라도 있었을 텐데, 여전히 불쌍한 수용씨는 '강추'하기엔 좀 진부하다. 

윤종신이 예능 기대주라고 말하면서 그 자신의 얼굴이 붉어지듯, 그의 소속사 가수 김예림은 <라디오 스타> 방영 내내 알듯 모를 듯 미소만 짓는 얼굴로 비춰졌다. 윤종신의 소속사 가수 김예림이라서 나올 수 없는 곳이어도 안되겠지만, 예능 기대주라 밀어붙이기엔 낯 부끄러운 게스트였다. 그래도 어거지로 갖다 붙여도 그러려니 하는게 언제부터인가 <라디오 스타>가 되었다. 그나마 그걸 가지고 웃음의 소재로 삼았으니, 면피했다고 할 수 있을까. 방송 말미, 지금의 이미지가 좋으니 오히려 굳이 예능으로 뜨려 할 필요 없는 김구라의 한 마디야 말로 김예림의 소속사 사장 윤종신에게 필요한 촌철살인의 한 마디였다. 

그나저나 궁금해지는 게 있다. 과연,sm 소속이 아닌 규현의 인맥이 등장할 날이 <라디오 스타>에 올까? 어김없이 규현의 예능 기대주는 그와 같은 그룹의 멤버 려욱이었다. 처음 슈퍼 주니어 멤버 이특, 최시원, 은혁을 필두로 해서, 설리, 크리스탈에, 지난 추석에 김민종, 다나, 키에 이르기까지, 이러다 sm 소속 연예인들은 <라디오 스타>에 안나오는 게 이상한 상황이 될 듯하다. 마치 전용 토크쇼인 듯이, 잊을만 하면 sm 소속 연예인들이 둥그렇게 게스트의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 아주 경제)

'강추'를 받아 나왔지만 김구라를 폭로하겠다던 봉만대는 김구라의 단점이 이른바 '라인'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카르텔화 되어가는 연예계에서 봉만대의 지적은 일견 의미있다. 누구나 다 라인을 따라 밥 벌이가 정해지는 상황에서 '독고다이'로 살아가는 건, 앞날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이니까. 
하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엄마의 이른바 '푸쉬'로 밀어붙일 수 있는 아이의 성적은 중학교 까지라는 씁쓸한 우스개가 있다. 고등학교 정도 되면 머리가 커서 더는 엄마의 푸쉬와 잔소리를 들어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만 돼도 내 손을 넘어가는 아이들인데, 다 큰 연예인들의 '푸쉬'가 어느 정도 먹힐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게 김국진이 기대주라고 밀어 줘도, 여전히 일년에 몇 번 예능 출연을 못하는 김수용을 보면, '푸쉬'만이 능사가 아닌 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디스'를 예능감으로 착각하는 듯한 려욱을 봐도, 기회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닌 건 분명한 듯 하다. 하지만, 이른바 '공적 영역'이라는 방송이 특정인들의 카르텔화 되는 걸, 그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시청자들은 뭔 죄란 말인가. 

허긴 대학을 가서도 수강 신청도 엄마가 해주는 세상에, 국적을 포기해서라도 자식의 군대를 빼주는 세상에, 연예계 캥거루 족이 뭐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냐 하면 유구무언이기는 하다.


by meditator 2013. 10. 10. 10:28

파일럿 방송 후 그다지 높지 않은 시청률, 미미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뛴다>가 <화신>의 자리에 정규 편성이 되었다.


<심장이 뛴다>의 정규 편성은, 엄밀히, 새 프로그램의 긍정성보다도, 그 이전에 폐지를 할 수 밖에 없는 <화신>의 부정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시작할 때의 <화신>은 신동엽이 의욕적으로 시도했던, 성인용 콩트와 토크의 콜라보레션을 지향했다. 굳이 토크만 하려고 했다면, 그럭저럭 시청률이 나왔던 <강심장>을 그만 둘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화신>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콩트는 어설펐고, 토크는 그 예전의 <야심만만> 같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화신>은 숱한 변주에 변주를 거듭한다. 콩트는 사라지고 결국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강심장>류의 신변잡기 토크만 남았다. 심지어, 메인 mc였던 윤종신 대신에 김구라를 투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여전히 <라디오 스타>의 아류라는 오명을 뛰어넘지 못했다. 심지어, 토크로서는 무리수였던 생방송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화제성조차 얻지 못한 채 초라한 퇴장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꼭 <화신>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지부진한 <라디오 스타>에, 겨우겨우 게스트와의 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해피투게더>에서 보여지듯이, 이젠 연예인들을 몇 명 불러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단 토크쇼 자체가 한계점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 스타>의 '돌아이' 특집처럼 특정한 주제에 맞춰 게스트를 새롭게 조합하는 방식조차도, 처음 시도했을 때는 신선했지만, 너도 나도 써먹다 보니, 이젠 뻔하고, 때론 어거지다 싶은 토크로 이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해피투게더>의 방영한 다음 날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대부분의 것이  그날의 야식 메뉴라는 사실 자체가, 집단 토크쇼의 현재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사나이>의 소방서 버전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패를 다하지 않은 리얼리티 예능의 선택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과연, 소방서로 간 연예인의 예능은 의문부호를 넘어서기 힘들다. 

10월 8일 방영된 <심장이 뛴다>에서는 119 구급대로 비상 출동을 한 최우식이 맞딱뜨린 고독사를 다뤘다. 
응급 환자가 있다는 호출을 받고 간 그 곳에 이미 죽은 지 시간이 꽤 흘러, 부패가 시작된 시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사를 온 후 동네 사람 그 누구와도 일면식이 없던 홀로 살던 남자는 그의 죽음조차 쓸쓸히 홀로 감내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구급대는 아무도 없는 집의 창문을 뜯고 들어가 이미 죽은 남자의 법정 죽음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미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주사 바늘이나 피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었던 최우식은 그 상황에 지레 눌려 버린다. 선배 소방사들은 그런 최우식을 배려하느라, 현장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최우식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심장이 뛴다
(사진; tv데일리)

<심장이 뛴다>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최우식이라는 초보 소방사가 그런 상황을 겪으며 스스로 극복해 가는 성장통을 다루고자 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10월 8일의 방송은 일면 성공적이었다. 
고독사한 시신의 현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최우식은 다음에 출동한 뇌종양 환자를 도와 병원까지 수송하는 과정에서는 그의 몫을 십분 해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선배 소방사로부터, 같이 한 연예인들 중 가장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일을 해낸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하지만 그건 제 아무리 상황을 미화한다 하더라도 예능이다. 
최우식은 연예인이고, 그는 그저 잠시 소방사 코스프레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제 아무리 그 상황에서 그의 마음이, 자세가 진정성을 지녔더라도, 그건 가짜다. 만들어낸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예능적 이벤트를 위해 소비된 진짜 상황들, 사람들, 그리고 시신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미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자살을 시도한 여자가 등장했었다. 그리고 이제 홀로 죽은 채 냄새를 풍기며 부패되어 가는 시신이 등장했다. 다음엔, 뇌종양 환자다. 비록 뿌옇게 뭉개버리기는 했지만, 상황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방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시신에, 변기를 붙잡고 토하는 환자에 카메라를 맞췄다. 제 아무리 자막으로 그들의 죽음과 아픔을 애도한다 하더라도, 이건 예능의 몫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만약에 최우식이 연예인이 아니라 진짜 신입 소방 대원이었다면, 그리고 <심장이 뛴다>가 예능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뛰는 소방대원들의 삶을 다루는 다큐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게다가 상황이 급박하거나, 절박하다 보니, 실제 <심장이 뛴다>에서, 소방대원으로서 연예인들의 몫이 애매하다. 방치된 시신을 거둬야 하는데 연예인을 투입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나마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에만 들어가야 하다보니, 몫이 적어지고, 후일담 식의 에피소드가 되는 것이다. 응급 상황의 연속인 소방서의 일에서, 정말 연예인 소방대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현장에 뛰어드는 날이 올까? 죽음의 위험조차 감내하며? 그리고 정말 그럴 만한 의미가 있을까? 예능에서? 

피만 봐도 온 몸에 힘이 빠지는 최우식이 시신이 있는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한다. 그 모습은 <스플래쉬> 마지막 회 어찌어찌 하다가 다이빙대 위로 내몰린 씨스타의 소유가 그 위에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에 겹쳐진다. 물론 소유는 다이빙대에서 뛰어 내렸다. 최우식도 그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 했다. 방송은 그런 그들의 성장담을 그려내고. 하지만 나무의 나이테 위에 남겨진 태풍의 상흔처럼 혹시나 그들의 정신에 남겨질 상흔에 대해 세상은 무심하다. 트라우마가 될 지도 모를 그런 일까지 겪으며 예능을 해야만 하는 걸까? 

고독사의 죽음과, 말기 뇌종양 환자조차 예능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 두렵다. 성장통 혹은 자기 극복이라는 이름의 트라우마도 가혹하고. 리얼리티라는 이름의 거침없는 질주는 어디까지가 그 한계일까?  kbs2의 <다큐3일>에나 어울릴 내용이다. 


by meditator 2013. 10. 9. 09:59

10월 7일 방영된 <적과의 동침>은 아예 부제를 '도다리의 역습'이라고 붙여 놓고 시작했다. 도다리라니? 이른바, 사람들이 좋아하는 광어가 되기를 원하는, 도다리, 즉, 국회의원이지만 지명도가 떨어지는 의원들이 출연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방송의 초반, 상당한 시간을 들인 소개 부분에서도 바로 이 지점,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지점에 촛점을 맞춘다.


이런 소개의 방식은 사실 여타 예능 프로그램이랑 동일하다.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는 지명도가 떨어지는 출연자가 등장하면 대놓고, '인지도가 떨어지는' 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적과의 동침>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인 김무성, 박지원이 출연한 거에 비해, 과연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다수의 의원들과 함께 하는 방송이 재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을 김구라는 잊지 않았다.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예능인 <적과의 동침>에 출연한 이유가 인지도의 상승이 목표라는 점에서 연예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박민식 의원은 전과는 다르게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본다며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박인숙 의원은 대놓고 사람들이 동네 아줌마랑 구별을 못한다면 이번 기회에 자신을 알리고 싶다며 속내를 털어 놓는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 한 번에 인지도 상승을 노리는 목표라는 점에서, 연예인과 정치인의 모양새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적과의 동침>에 출연한 게스트들이, 그저 우리가 그들을 보고 웃고 즐길 수 없는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방송 중 곧 드러난다. 
예능 코치로 함께 한 가수 솔비가 이미 <적과의 동침>을 통해 개그맨 못지 않은 예능감으로 거의 고정이 되다시피한 김성태 의원에게 '김성태 씨'라고 할 때, 굳어지는 그의 얼굴에서 이것이 여느 예능 프로그램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지난 주 김무성 의원 앞에서 갖은 애교를 부리고, 웃긴 춤도 불사하던 그가, 자신을 '의원님'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자신을 모르는 다른 연예인에게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자, 옆에 있는 김흥국이 해명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씨'라고 부르면 낙선한 거 같잖아, '의원님'이라고 불러야지'. 하자, 여기저기서 맞단 호응이 나온다. '의원님'이란다. 

<적과의 동침>은 호시탐탐 이 프로그램이, 정치인을 욕받이로 쓰는 프로그램이라고 밝힌다. 즉, 자신들은 국회의원을 데려다 놓고, 그들을 희화화하며 마음껏 물고 뜯고 즐기며 답답한 국민들의 속을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연예인들을 연예 코치라며 합류시켜 말도 되지 않는 고양이 애교를 시키고, 우스꽝스런 게임을 하게 만들고,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단어들을 맞추지 못하면 면박을 주는 것으로 국민들의 속을 풀어주었다고 자부하는 듯 하다. 심지어, 이미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들을, 한참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도다리'라 거침없이 취급하는 것으로, 그들이 만만하게 다루었다고 자평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런 <적과의 동침>의 시도가 딜레마인 것이 불과 4회 만에 드러나고 있다. 같은 당 형님 앞에선 순한 양과도 같았던, 구르라면 구르기라도 할 것 같은 의원이, 다른 연예인 게스트 앞에서는 고압적인 얼굴을 숨기지 않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연히 자신은 '의원님'이어야 한다며 헛기침을 한다. '가왕' 조용필을 우리는 조용필 가수님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국회의원은 여전히 '나으리'이다. 

(사진; 뉴스엔)

정치인 예능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딜레마는 4회에 바뀐 프로그램의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그간 어지간히 정치인 예능에 대한 혹독한 평가에 노심초사했는지, 프로그램 초반 <적과의 동침>은 이 프로그램을 향한 대중의 여론이 다양하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진짜 다양했다면 굳이 그렇게 해명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유치한 게임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성격을 바꾸어, 상대방 지지자들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10개의 문항을 맞추기 게임을 집어 넣었다. 
사실 이 부분은 4회간 방영되었던 <적과의 동침> 그 어떤 순간보다도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인지도가 떨어져요,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예요 하던 '의원님'들이 본색을 가감없이 드러낸 '본격 '리얼리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적과의 동침>을 사람들이 재수없어 하는 이유가 무얼까? 바로 그들이 촬영장에 나와 여깨를 곁고 친한 척을 하고,너스레를 떨고, 심지어 춤을 추며, 저 좀 봐주세요 해도, 국회의원 뺏지만 달면, 국민들은 저리 가라 자신의 당리 당론에만 몰두할 사람들이며, 자신들 정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몸싸움도 저리가라에, 힘 있는 기업과 대통령을 위해 파렴치한 발언과 법안을 만드는데 찬성표를 던질 사람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나비 넥타이를 매고, 난 연예인처럼 인지도에 목말라요 하다가, 정치와 관련된 의견들이 나오자,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는, 불통의 정치인으로 돌아가, 그건 민주당의 의견이요, 매번 지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요, 자신들은 그 어떤 정당보다도 민주적인데, 이런 의견을 이해할 수 없다는 꽉 막힌 모습을 보일 때,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민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때를 만난 듯 비아냥거리는 모습도 그닥 품이 넓어보이진 않았다. 새누리당이건, 민주당이건 그간 뒤집어 썼던 양의 탈을 벗어던진 늑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적과의 동침>의 딜레마는 바로 이거다. 양인 척 하는 늑대들을 데리고, 양들의 놀이를 즐기는 것. 하지만 호시탐탙 늑대들은 자신들을 건드릴 때 마다 '으르렁, 으르렁' 거린다. '의원님'이라고 불러, 우리가 불통의 당이라고, 어디 감히 우리를! 이러면서. 이게 진짜 웃기는 거다. 어설프게 '도다리'로 치부하고, 몇번의 면박으로 그들의 인지도나 올리는데 기여하는 게 본래의 의도가 아니라면, 진짜 국민 욕받이 방송이라면, 거침없이 그들의 가면을 벗어제끼게 만들고 국민들 앞에 본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 줄 때 <적과의 동침>의 참 재미가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히히덕거리다 얼굴이나 알리고 가려고 출연했다가, 자신의 당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나오자 정색하던 의원님들이, 과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적과의 동침>이 진행된다면 계속 나오려고 할까? <적과의 동침>의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3. 10. 8. 09:59

1998년 제주 삼다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왜 물을 돈 주고 사 먹어?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십 년이 흐르지 않아, 이제 제주도 물, 암반수도 부족해, 백두산 물에, 외국 유명 생수를 돈 10만 원을 주고 사 먹는 시절이 되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희대의 사기꾼이 되던 것이 옛 이야기가 되버려, 이젠 물은 당연히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그것도 돈에 따라 급이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물세를 내고, 생수를 사 먹으면서도, 수도만 틀면 콸콸콸 쏫아지는 물에 우리가 '물부족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도 실감하기 힘들고, 그저 물은 당연히 주어지는 지구의 자원 이상의 인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미지


하지만, 10월 6일 방영된 <sbs스페셜-물은 누구의 것인가?>는 그 당연하게 여겨지는 물의 사정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sbs는 un이 정한 '물의 해'을 맞이하여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지난 주 방영된 첫 편은 <4대강의 반격>, 4대강을 살리겠다는 명목하에 22조 2천억이 들어간, 전광석화와 같은 기간에 이루어진 대형 국책 사업인 4대강 사업. 그 결과를 들여다 본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듯이, 홍수를 대비한다는 명목 하에, 수자원을 이용하겠다는 의도는 사라지고, 암묵적으로 운하를 준비했던 4대강의 현실은, 곳곳에서 흐르는 강의 신음 소리 뿐이다. 
하지만, sbs스페셜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역사를 남기기 위해 그 사업 추진 과정이 과연 적법했는가, 결국은 4대강 역시 서울의 청계천처럼, 맑은 물이 흐르던 강을 고인 물의 호수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검증에 들어간다. 

이어서 10월 7일에 방영된 2부 슬픈 장미는 그 시선을 전 세계로 옮겨 간다. 유럽의 거리 화사하게 만발한 장미, 하지만 사람들이 그 곁에서 장미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케냐 산인 이 장미가 아르다운 장미로 피어나기 위해, 그 주변 케냐인 들의 생명의 젖줄인 물을 강탈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140L의 물이 필요한 장미 농장에는 하루 종일 스프링 쿨러에서 물이 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장미 농장이 호수에 펌프를 대고 물을 뽑아 가는 통에, 정작 그곳의 주민들은 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겨우 감시인의 엄한 눈초리를 받으며, 한 통씩 길어갈 뿐이다. 그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사야 한다. 겨우 한 통의 물로, 일가족이 먹고, 세탁하고, 씻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장미 농장에서 마구 버려지는 장미를 키우기 위해 씌여진 각종 화학 제품의 찌꺼기는 고스란히 케냐인들의 생활의 터전인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물반 고기반이었던 호수는 이제 하루 종일 그물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를 집으로 가져오기 힘들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케냐만의 사례가 아니다. 볼리비아의 맥주 공장도, 잔지바르의 호텔들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의 물 접근권을 막는다.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내세우며, 자본의 편을 들고, 주민의 호소를 외면하거나, 차일피일 미룰 뿐이다. 

이미지

세계에서 잘 사는 편에 속하는 국가들은 아직 물이 부족한 상황이 아님에도 영리하게 자국에서 물이 많이 필요한 산업들을 국외로 돌린다. 장미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청바지를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들이 만들어 지는 과정엔 상상 이상의 많은 물이 필요하다. 장미 등 무심코 쓰는 많은 것들의 물 발자국이 향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물부족 국가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 나라들은, 자국 국민들의 물 부족을 신경쓰지 않는다. 소금기있는 우물물을 소녀들이 긴 거리를 걸어 길어 오는 동안, 참다 못한 주민들이 직접 물 호스를 산에 올라 수원지에 꼽는 동안, 대자본들은 그들 나라 계곡 물에, 지하수의 독점권을 얻어간다. 

총칼을 들이밀은 식민주의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교묘하게 자본을 내세운 새로운 식민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물 발자국의 지도에서 보여지듯이, 세계는, 2차 대전 이전의 식민지와 식민 국가와 유사한 구도를 여전히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터전을 잡고 사라오던 삶의 기본적 요건 조차 빼앗기고 있다. 물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물을 통해 살아가던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다큐의 마지막, 스스로 물을 얻기 위해 계곡에 호스를 대던 주민들은 경찰의 잔인한 진압에 피를 흘린다. 손주들을 위해서 물러날 수 없다던 이장님도 그 중 하나다. 

2부작 다큐멘터리 <물은 누구의 것인가?>는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라고 당연하닥 여기는 그것이 국가 권력의 전횡이나, 외국 자본의 독점으로 인해, 파괴되고, 빼앗기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와 4대강의 이야기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사후 약방문'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사후 약방문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그전 도로를 반복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의 적절을 따질 계제가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방영된, <슬픈 장미>는 그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도 섬뜩하다. 마치 텍사스 소떼처럼 무참하게 지나가버리는 자본의 파고가 두렵다. 


by meditator 2013. 10. 7. 10:14
"광희야~"

인간의 조건 멤버 중 하나가 광희를 부른다. 그런데, 헐! 돌아다 보는 아이돌 광희의 얼굴이 무성하다. 밤새 수염이 자란 것이다. 

상투적으로 이야기되는 아이돌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수염이란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에 특별 멤버로 초빙된 광희는, 밤새 자란 민낯의 수염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뿐만 아니다. 인간의 조건답게, 그간 시끄럽고 정신사나운 아이돌이라던 그에게 씌워진 선입관을 거둬내고, 털털하고 사람좋은 인간 황광희를 자연스레 보여준다.

번번히 동시간대 경쟁자 <세바퀴>와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시던,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다섯 멤버의 시너지가 시청자들에게 권태기를 느끼게 할 즈음에, <인간의 조건>이 모색한 방식은 각 미션 별로 특별 멤버를 초빙하는 것인 듯했다. 
그래서 '휴가의 조건' 때에는 엠블랙의 멤버 이준이 합류해, 멤버들과 24시간을 온전히 보냈었다. 처음엔 박성호 등이 낯을 가리기도 했지만, 엄마같은 정태호의 배려로, 이준은 함께 목공을 하기도 하고, 마빡이 퍼포먼스를 하는 등, 아이돌이 된 이후에 누리지 못했던 '휴가'의 즐거움을 누리고 떠났었다. 
그리고 이번 '책 읽으며 살기' 미션에서는 아이돌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광희가 미션 전체에 함께 하기로 한다. 
인간의 조건 광희
(사진; tv데일리)


이준이나, 광희는 그들이 '엠블랙'이거나,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이지만, 그 그룹의 멤버임과 동시에, 여러 예능을 섭렵하며, 예능돌로써 더 이미지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 과연 이미 예능을 통해 소비된, 혹은 소모된 이미지 외에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등장이 정체기에 들어선 <인간의 조건>에 활력소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이라고 말하기조차 무색한 장수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도, 기가 막힌 게스트의 선정과, 그들과의 예외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무한도전의 의의를 적절히 살려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처음 초라하게 몇몇 주민들을 앞에 두고 했던 '무도 가요제'가 <무한도전> 1년 농사 중 가장 풍성한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미션이 되었고, 시청률도 그런 반응에 맞게 반등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무도 가요제에서 유희열과 유재석 팀의 경우, 콜라보레이션의 주도권을 누가 가지고 가는가를 놓고, 포털 사이트에서 투표를 할 정도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런 기발한 게스트에 비해, 이준이나 광희라는 이미 꽤 알려진 아이돌의 투입은 그런 면에서 신선도가 꽤 덜어지기는 하다. 게다가 이준의 경우, 하루를 잠깐 다녀가는 것으로, '시너지'를 논하기에는 전체 미션에서의 영향력이 미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광희는 온전히 미션에 함께 합류하면서, 외부 게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의 효과를 제대로 논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 외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책 읽으며 살기' 미션에서 광희의 합류가 긍정적이 된 것은, 상당 부분, 그간 알려진 아이돌 광희 이외의 매력을 <인간의 조건>이 발견해 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희 자신이 더 보여줄 것이 남은 매력적 인물이라는 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멤버들이 원래 말투가 그래? 라는 질문에, 설마 제가 원래 그랬겠어요? 라며 학교 다닐 때도 시끄럽긴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잘 생긴 멤버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니, 이런 컨셉으로 밀고 나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라는 광희의 허심탄회한 매력말이다. 

광희는 그저 말투가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아이돌이었다. 
심지어, 동료 아이돌 '시크릿'의 한선화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었어도 그의 그런 면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와 함께 얼크러져 지내는 며칠 동안, 사람들에게 각인된 광희 이외의 매력이 슬금슬금 드러난다. 
처음엔 24시간 따라다니냐며 투덜거렸지만, 민낯의 수염투성이 얼굴을 꺼리낌없이 드러낸 정도로 털털한 모습은 또 색다르다. 늘 성형돌이라는 이미지도 되새김질 된 그의 얼굴, 여전히 자신의 얼굴은 조심해 달라는, 보톡스의 효능에 대해 너스레를 떠는 걸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지만, 며칠을 지낸 멤버들이 자세히 보니 너 잘 생겼다라고 말해 줄 정도로, 찬찬히 광희라는 사람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거기에 덧붙여, 그저 가벼운 사람이려니 하는 예상을 뛰어넘는 3시간의 독서 미션을 바쁜 아이돌 생활 중에도 해내는 성실함도 다시 보게 만든다.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아가 책을 소개 받는 미션에서, 대뜸 일면식도 없는 홍진경을 찾아가, 당신의 성취를 존경한다며 누나라고 서슴없이 너스레를 떠는 넉살도 신선하다. 더구나, 사업도 하고, 일도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그의 생각도 제법 주관이 확실해 보인다. 세간의 사람들이 광희라는 아이돌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생각 외로 만만치 않다. 즉, 이미 꽤 소모된 이미지 외에도 광희에서는 원석처럼 찾아낼 매력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진; 뉴스엔)

<인간의 조건>은 '관찰 예능'이다. 여섯 멤버들을 한 공간에 밀어넣고, 그리고 그들에게 특정한 미션을 던져놓고,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섯 멤버의 가상의 삶을 그리고 그 가상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진솔한 속내에 울고 웃으며 '인간다운' 맛을 느끼는 시간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조건>은 늘 느낄 무언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늘 신선해야 하며, 하지만, 거짓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초반에, 김준호나, 허경환이 시청자들에게 밉보였던 이유 중 하나도, 꼼수를 부리거나, 진솔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밉상들 조차도 정이 들어갈 무렵, 그와 함께, <인간의 조건>이 보여주는 인간다운 맛도 시들해져 갔다. 엄마같던 정태호의 요리 신공도, 정말 가족같던 그들의 푸짐한 먹방도, 이제는 각 방송마다 넘쳐나는 먹방과 함께, 늘 하는 그저 그런 것이 되어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아이돌 광희를 뛰어넘은 또 다른 광희의 진솔한 면을 보여준 '책 읽으며 살기'는 책을 읽는 미션 자체에서 비롯되는 볼 거리 외에도, 광희라는 또 특별 멤버를 통해 빚어지는 볼 거리가 풍성한 미션이 되었다. 
하지만 광희에게 통한다고 해서, 다른 아이돌 모두가 통할 거라는 일반화는 우려가 된다. 카라의 깜짝 방문처럼, 그간 <인가의 조건>에서 아이돌의 등장은 범람에 가까웠고, 그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가 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게스트 개개인의 능력차가 프로그램의 풍성함을 좌우하고, 그만큼 게스트의 선택은 보다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부디 모처럼 잡은 호기를 뻔한 게스트로 다시 뻔한 <인간의 조건>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3. 10. 6. 10:33

mbc는 출연자들의 부상과 미션의 위험성으로 인해 폐지된 <스플래쉬>의 후속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인 <프로파일링>을 10월4일 방영했다. 


프로파일링이란, 
'사건 현장의 단서나, 범행 방법 등을 토대로 범죄자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프로파일링>은 범죄 현장에서 통용되던 프로파일링 기법을 활용해, 미스터리한 인물과 사건,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해 내는 논픽션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프로파일링>의 방영이 반가운 것은, 가을 개편을 맞이하여, 각 방송사마다 작심이라도 한 듯이 예능 대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스플래쉬>의 폐지라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저 겉치례만 다를 뿐 결국은 비슷비슷한 포맷의 예능이 아니라, 프로파일링이라는 신선한 심리학적 실험을 통한 새로운 형식의 논픽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는 자체가 반갑고 기대된다. 
물론 충분한 홍보가 이루어 지지 않은 상황에서, 더구나 상대 방송사에서 이미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상황에서, 첫 선을 보였던 <프로파일링>은 4%(닐슨 코리아)의 흡족치 않은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이미 첫 방송에서 시청률로만 설명될 수 없는 여론의 파장을 보여주고 있다. 부디 방송사 측에서, 보여지는 지수만으로 <프로파일링> 파일럿의 성패를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 선을 보인 <프로파일링>은 세 개의 꼭지로 방영되었다. 
첫 번째는 동년배의 여자 친구를 불러내 잔인한 살해 수법을 보인 '살인자의 목소리-용인 살해 사건의 진실'로, 전형적인 프로파일링의 대상이 되는 범죄 사건을 다뤘다. 
두번 째는, '강남, 부자일수록 공부를 잘 할까?'로, 사회적 현상으로 프로파일링의 분야를  넓히고, 이어서 세번 째는, '구타유발, 시선의 진실'로 인간 심리를 다뤘다.


꼭지를 다루는 방식도 신선했다. 
사건을 다시 추적하여 재연하는 방식을 썼는가 하면, 실제 강남 엄마들의 모임과, 전학한 아이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인간 심리를 다루기 위해서는 실험의 방식을 선보였다. 
그렇게 각 꼭지 별로 실제의 상황을 보여준 뒤, 진행하는 이정민 아나운서와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정신분석학자, 빅 데이터 분석가들이 나와, 그 사건을 분석하고, 해석해 내는 시간을 갖는다. 
앞 부분의 실제 재연에 가까운 상황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현장성을 불러 일으키는가 하면, 뒷 부분의 해석은 그 내용이 익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생각을 뒤집는 파격적인 것이었음에도 전문가들의 식견을 곁들이니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더구나, 프로파일링이라는 부분은 최근 범죄 수사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 층들이 즐겨보는 미국 드라마, 그리고 케이블 범죄 드라마 등을 통해 매력있는 분야로 다가오고 있던 영역이라 흥미를 더욱 유발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베스트 셀러의 목록만 훑어 봐도, 심리서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듯이, 최근 들어 사회적 현상이나, 인간 관계들을 심리학적 요인으로 해석해 내는 경향이 유행을 타고 있는 중이다. 
그 이전의 세대들이, 사회를 해석해 내는 잣대로 '사회 과학'이라는 학문을 만능키처럼 쓴 것과 달리, 그 세대의 해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난한 그리고 요원한 사회적 문제에 부딪힌, 그리고 앞선 세대에 비해 보다 덜 조직적이며, 개인화된 요즘 세대들은, 그 해법의 열쇠를 심리학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는 프로파일링이라는 생소학 분야를 이물감없이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치 골디우스의 매듭같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현명한 심리학적 지식을 통해, 퍼즐을 풀 듯 풀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프로파일링이라는 영역을 마치 마술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분야도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줄 것같은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과 기대에 부응하듯,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서의 <프로파일링> 첫 회가 내보인 카드들은 예외적이다 못해 충격적이기 까지 했다. 
우리가 그저 흉악한 범죄라고 치부해 버린, 소시오패스의 짓이라 단정지어버린 범죄의 이면에 자신의 꿈에서 좌절한 한 소년의 절망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즉, 청소년들의 꿈을 방기한 사회는 수많은 잠재 범죄자를 품을 가능성이 있다는 무서운 진실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tv를 보던 시청자들을 섬뜩하게 한 것은, 바로 강남 학군의 진실이었다. 비단 강남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집값을 올려놓은 주범 중 하나가, 바로 그 공부 잘 하는 학군이라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진실이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동네로 가면 자신의 아이가 공부를 더 잘 할 것이라는 마법에 모든 부모들이 허리띠를 조이고, 이산 가족이 되는 걸 불사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니까. 그런데, 바로 그 환상을 단박에 '강남, 부자일수록 공부를 잘 할까?'는 깨어 버린다. 결국 잘 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 잘 하는 동네가 탄생되었다는 슬픈 진실을 밝힌 것이다. 심지어 그런 동네로 이사를 간 거에 비하면 공부를 못한 거라는 결과까지 도달했다. 

또한 '구타유발'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역으로 해석해서, 자신의 심리적 상태로 회귀한 것은, 역시나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늘 범죄 사실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쉽게 빠져들 유혹 중에 하나가 선정성이듯, <프로파일링> 역시 '살인자의 목소리'에서는 그런 위험성을 여전히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강남 학군의 문제를 파헤친 것과, 구타유발 시선의 진실을 실험을 통해 접근한 방식은 시의적절하고 신선했다. 범죄, 사회적 현상, 인간 등 다양한 꼭지는 골라보는 재미까지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스플래쉬>의 대체 파일럿이라는 상황이, <북극의 눈물> 등 눈물 시리즈를 만들던 쟁쟁한 연출진이 이렇게나 되어야 편성을 받는 상황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라도 비슷비슷한 예능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싶다'가 주말 안방 시청률 보증수표이자, 화제성의 주인공이듯이, <프로파일링>도 파일럿 프로그램 만큼의 내용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흥미진진한 화젯거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 듯하다. 적어도 수영복 입은 연예인들의 안쓰러운 고군분투를 한 시간 보고 난 후의 허무함과 찝찝함은 없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3. 10. 5. 10:05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 <블루 재스민>의 여주인공 재스민(케이트 블란쳇 분)의 본명은 자넷이다. 하지만 자넷은 평범한 이름 대신 분위기있는 재스민이란 이름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학시절 해오던 학업을 포기하고 잘 나가던 사업가 '할'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 자넷이 재스민으로 살아가는 그 시점을 재스민이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가진 것 없는 빈털털이가 된 재스민이 가장 먼저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마음을 먹은 것 중 하나는 바로, 대학 시절 못다한 학업을 다시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못다한 학업은 그저 배움의 과정이 아니다. 재스민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았던 자넷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상징한다. 물론, 영화 제목이 블루인 것처럼,(영어의 blue는 우울한, 등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자넷은 재스민으로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주군의 태양' 방송화면
(사진; 텐아시아)

<주군의 태양>에서, 이제 더 이상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게된 태공실 역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서의 대학은 <블루 재스민>의 대학과 동일한 상징성을 띤다. 주군의 캔디가 아닌, 귀신에게 쫓겨다니다 사회에서 밀려나간 백수가 아닌, 태공실 자신으로 서고자 하는 것이었다. 물론, 태공실은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사랑을 위해 맺은 계약을 지키기 위해 공동 묘지를 헤맨다. 

물론 마지막 한 회가 남았지만, 그리고 그 남은 한 회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크게 위배할 것 같아보이지는 않지만, 엔딩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주군의 태양>은 강력한 '안티 캔디'물이다. '사랑지상주의'여야 하는 로맨틱 멜로 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내내, 객관적으로 캔디로 규정될 수 태공실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뇌로 가득차있다. 10월2일의 마지막 한 회를 남긴, <주군의 태양>은  언뜻 보기엔 태공실의 말 대로, 주군과 태공실의 밀땅처럼 보이지만, 실은 캔디가 되고 싶지 않은, 캔디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태공실의 몸부림으로 한 회를 채운다. 

물론 계기는 자신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군이 죽음으로 몰리게 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여느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라면, 주군이 내가 괜찮다, 그래도 널 사랑한다 하면 그래 나도 그래 하고 해결될 이야기를 <주군의 태양>은 한번 더 질문을 던진다. 
유진우(이천희 분)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태공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주군처럼 같은 바라보지 않지만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란, 설정은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태공실은 그 기로에서, 질문을 자신에게 향한다. 주군을 사랑하지만,그를 반공호로 쓰는, 그에게 기대야 하는, 여전히 귀신들에게 휘돌리는 자신 정체를 고민하는 것이다. 외면하다 결국 간청하는 아기 귀신에 못이겨 그 아이 엄마의 목숨을 구해주고 절규하는 태공실은 절실하다. 이런 자신이 싫다고! 당신을 반공호로 쓰는 자신이 미덥지 않다고.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이 된 자넷은, 동생 집에 얹혀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보려 애쓴다. 공부도 다시 해보려고 하고, 돈도 벌려고 하고, 하지만, 그녀에게 쉬운 길은 언제나 그랬듯, '캔디'가 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너무도 자연스레 거짓을 도배한다. 
하지만 <주군의 태양>의 태공실은 재스민과 다른 선택을 한다. 지루한 논리 대결과도 같았던 16회 주군과의 실랑이 속에서 태공실은 확고하게 자신을 선택한다. 이기적이 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러브 스토리'는 상대방이 어떤 조건에 있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화합'의 정신을 구가했다. 하지만, <주군의 태양>은 그런 류의 사랑에 반기를 든다. 태공실은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이제는 더 이상 귀신을 무서워하지도 않지만, 심지어 귀신을 도와주는데 익숙해지기까지 했지만, 태공실은 과감하게 그런 외적으로 씌워진 자신의 운명에 도전한다. 사랑도 내가 당당히 설 때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홍자매의 작품들은 늘 인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젊은 여성층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홍정은, 홍미란 자매의 작품 속 러브 스토리는 그저 사랑을 쟁취하는 것으로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군의 태양>도 마찬가지다. 태공실에게 주어진 귀신을 보는 운명과, 그런 두려움을 피해갈 수 있는 반공호로써의 주군은, 마치 2013년의 거친 세파와, 거기서 도피할 수 있는 사랑으로 치환되어도 크게 어색함이 없이 상징적이다. 취직이 힘들어 취집을 고민하는 시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이제 다시 <블루 재스민>으로 돌아와서, 거짓을 해서라도, 백마 탄 왕자를 만나고 싶었던, 보기엔는 그럴듯했던 재스민의 자넷에게 돌아온 것은 처절한 현실이다. 그녀는 전 남편에게도 버림받은, 희생자연했지만 알고보니 전 남편의 불안한 부를 파괴한 장본인인, 이젠 동생 집에서도 조차 더 이상 머물기 힘든, 그저 다시 한번 버림받은 별볼 일 없는 여자라는. 그토록 우아한 재스민이 되고 싶었지만, 우아함은 남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냉정한 결론을 영화는 가감없이 보여준다.
다행히도, 태공실은, 주군 곁에서 주군의 도움으로 빛나는 대신에, 스스로의 길을 선택했다. 설사 그것이 태양으로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그저 어떻게든 주군의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의탁하려던 태공실에게는 장족의 발전이다. 주군과 태공실의 사랑이 블루일지, 핑크일 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에 떨던 태공실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주군의 태양>을 통해 홍자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16회를 통해 이미 완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도 당신이 스스로 빛날 때만 가능한 거야! 


by meditator 2013. 10. 3. 10:03

10월2일자 아침 뉴스엔 어김없이 여야의 국회 대립이 등장한다. 

기초연금을 둘러싼, 그리고 채동욱 검찰 총장 사표 수리와 관련된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여야의 의견들이 국회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난립했다. 야당의 대표는 거리에서 노숙을 한 지 오래요, 전국을 떠돌며 국민을 상태로 토크 콘서트를 벌이며 국회에서 소통되지 못한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느라 분주하다. 그런 야당과 달리, 여당은 복지부 장관 조차 소신에 따라 따를 수 없다는 기초 연금안의 정부 의견에 총대를 매느라 단호한 대통령의 복심을 따르느라 타협의 여지 따위는 없다. 그러니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 저는 저얘기, 나는 나얘기 했듯이, 국회에서도 그 분위기가 이어질 밖에. 그런데, 그런 여, 야가 함께 어깨를 곁고, 하하호호 웃음을 터트리며, 화기애애하다 못해, 질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곳이 있다. 바로 jtbc의 '유쾌한 정치 토크쇼'를 표방하는 <적과의 동침>이다. 

<적과의 동침>의 본방은 월요일 밤 11시이다. 하지만 본방이란 표현이 무색하게 바로 다음 날 저녁 6시55분이면 다시 <적과의 동침>은 등장한다. 8시까지 저녁 방송의 피크 타임에 재방송을 내보낼 정도로 성업 중이거나, 성업을 추진 중인 것이다. 



제목에서 풍겨지는 뉘앙스 그대로, <적과의 동침>은 '박터지게 싸우던 국회의 파이터들이 예능을 통해 소통을 하는, 유쾌한 웃음, 통쾌한 즐거움을 드리는, 비무장 정치쇼'란다.
출연진의 면면은 그때 그때 달라지지만, 여야의 국회의원, 혹은 강용석이나, 이철희처럼 여야의 입장을 대변하는 준 정치인들이 연예인 게스트와 편을 먹고 여러가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적과의 동침>은 프로그램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재밌다. 
국회의원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나리'취급을 해주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오락 프로에 나와, 말 대답 한번 제대로 못해 mc들에게 퉁바리를 먹고, 문제를 못풀어 치욕을 당하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말이 국회의원이지, 우리도 뻔히 아는 상식적 문제에도 쩔쩔매는 모습은 한편에선 뭘하고 다니나 싶다가도, 그걸 아는 자신이 대견해 지기까지 한다. 
거기에 덧붙여,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독특한 생태계로 인해, 보이는, 짝짓기 게임에서 같은 편을 버리고 거침없이 같은 당 대표를 껴안는  김성태 의원의 '의원 본능주의,에 씁쓸해지는가 하면,  그런 와중에서도 처음엔 서먹하다가, 결국은 같은 편이 되어 게임을 하다보니, 여당의 중진 김무성 의원도, 야당의 중진 박지원 원내 대표도아이처럼 얼싸안고 좋아라 하는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대통령까지 해보고 싶다는 그들의 속내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하는 속시원한 보너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이다. 제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 해도, 지금의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안다면, <적과의 동침>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쯧쯧거리는 혀차는 소리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오락 프로그램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제1 전제 조건은 거기에 출연하는 국회의원들이 지금 거기서 그런 게임이나 하고 있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게임에서 국회의원들이 오르기를 바란다고 했던 것에 '연봉'이라고 대답을 했던 김영환 의원의 대답이 무색하게, 전국민을 상대로 한 여러번의 앙케이트에서,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받는 세비의 값을 제대로 치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당장 오늘 아침자 방송에서도 자기 할 말만 내뱉고 사라지는 국회의원들로 인해 방송에 비춰지는 국회의사당은 텅 비었다. 
그런 국회의원들이 얼굴 한 자락이라도 더 알려 보겠다고, 여야의 화해를 내건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히히덕거리는 모습은 백번을 양보해도 한심해 보일 뿐이다. 더구나, 2013년에 들어 많은 정치적 사안들이 국민을 들었다 놨다 하는 동안, 도대체 우리나라의 국회, 국회의원들이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해내는 것이 국민들에 눈에 띈 적이 없는 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이 거기서 서로 다른 당임에도 편을 먹고,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 배알이 꼴린다. 오락 프로에서는 합심을 할 수 있고, 정작 자기들이 해야할 일에서는 무능과 나태를 일삼는 저 사람들을 낄낄 거리며 보아 넘기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그닥 편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적과의 동침>은 위험하기 까지 하다. 
현대 정치에 있어서 그의 능력이나, 실적보다도, 그가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가라는 이미지 메이킹이 가장 중요한 판가름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걸 많은 정치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텔레비젼에 중개되는 유세, 토론회 한번에 따라 지지율이 춤을 추고, 당락이 좌우되기도 하는 아이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tv조선은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신정아를 텔레비젼 프로그램의 mc로 기용했다가 여론에 밀려 취소한 사례가 있다. 그 신정아의 사례는 이제는 준 연예인이라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다니는 강용석의 전례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어느덧 사람들은, 그의 지난 과실을 잊거나, 그저 농담처럼 희화화하며 넘겨버리고 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심지어 좋다고 하는 사람조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의 행적이 어떻든, 텔레비젼 화면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인지도가 높아지는 역설적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적과의 동침>이 그래서 더 위험한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국회의원은 평생직이 아니다. 4년마다 재선을 해야하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들은 재선이 되기 위해,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실적이 미비하여 양심에 따라 그만두겠다는 국회의원은 보기 힘들다. 단지 오락프로그램이라도, 이겨야 되는 지점에서는 눈빛이 달라지는 그들은 선거라는 진흙탕에서 단련된 전사들이다. 그런 전사들에게, 여야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오락프로그램만큼 좋은 호기가 어디 있겠는가. 단 3회만에 여야의 대표 중진들이 등장한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다. 국회에서는 얼굴도 마주하지 않을 사람들이, 한 편이 되어, 어깨를 곁고, 시키면 크레용 팝 춤까지 추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연예인과 국회의원의 공통점은 바로 인지도 이다.
그런데, <적과의 동침>이 시작한 이래, 가장 활기찬 행보를 보이는 김성태 의원은 벌써 3회째 고정으로 출연 중이다. 다음 회에도 나올 모양새이다. 물론 <적과의 동침>에서 그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다른 의원들이 쭈볏거리는 것과 달리, 여자 국회의원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음악만 틀어주면, 술 자리에서 꽤나 즐겼을 춤을 흥건하게 추어댄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횡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연예인이 아니다. 한 오락프로그램에 나가 눈부신 활약을 보여 한방에 뜬 연예인은 좋은 수입을 가져가지만, 그간 도대체 그가 보인 국회에서의 활약은 눈에 띄지도 않는데,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보인 웃긴 모습으로, 인지도를 쌓아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면, 이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강용석이 인지도를 쌓아 국회에 도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말이다. 

<적과의 동침>은 <썰전>을 기획한 여운혁 피디의 작품이다. 
모든 것을 차치한 상태에서 순수한 기획 의도는 갸륵하다.  하지만 과연 2013년에 어울리는 정치쇼인지 의문이다. 하지만, 2013년 야당의 천막 당사가 휘날리는 대한민국에서, 불통이 키워드가 되는 대한민국에서, <적과의 동침>은 불쾌하거나, 역겹다. 국회에서는 결코 손을 맞잡지 않은 사람들이 오락프로그램 녹화장에서 얼싸안는 모습을 이해하기에 세상은 너무 고단하다. 
예고를 보니, 시기적 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4회에 등장한 여야 국회의원들은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나 보다. 그래봤자, 사람들은 다 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것을. 그들이 하는 쇼는 국회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3. 10. 2. 10:14

우리집은 경기도 하고도 꽤 변두리에 있다. 

그래서 우리집 가까이에 있는 멀티 플렉스에서는 언제나 가장 흥행성있는 몇몇 영화만이 영화관을 점거하고 있다. 다운을 받아서 볼 양이 아니면,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산 넘고 물 건너 한양 나들이를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산 넘고 물 건너는 수고를 아끼지 않게 만드는 몇몇 감독님들이 있다. 그 중에 제 일은 홍상수 감독님이요, 그 다음에 드는 분이, 우디 알렌이시다. 물론 기라성같은 다른 명작을 남기는 감독님들도 많지만, 거의 일년에 한 편, 두 편을 꼬박꼬박 출근부에 도장찍듯 만들어 내시는 이분들에게 어느덧 길이 들었달까? 이젠 왠지 안보고 지나가면, 땡땡이치는 기분이 들 지경에 이르렀다. 

블루 재스민 포토 보기

내 개인적 사설을 이리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아래의 내 글이,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꼬박꼬박 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희>를 처음으로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조우한 사람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걸 해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해명을 앞에 늘어놓을 만큼, 여전히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좀 그랬다. 

더구나, 이번에 우디 알렌 감독이 내놓은 <블루 재스민>같은 경우가 지금까지 익히 우디 알렌이라는 이름이 각인되었던 여타의 영화와 너무도 다른 명징한 궤적일 보이기에, 더더욱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진부하게 느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분이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기차게 열심히 작품을 생성해 내고 계시기 때문이리라.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우디 알렌 감독의 세계관을 인생에 대한 회의주의라고 평가한다. 지금까지 우디 알렌의 영화는 <블루 재스민>의 징거의 선택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약혼을 한 남자 친구가 있지만, 어느 날 우연히 파티에서 정말 마음에 맞는(혹은 몸이 맞는) 남자를 만나고 그에게 빠져들지만, 알고보니 유부남이었다는, 그래서 결국은 시치미 뚝 떼고, 아니 개과천선하고, 원래의 약혼자에게 돌아간다는, 삶의 부조리한 단면을 고스란히 영화 속에서 폭로한다. 하지만, 그게 마치 우리 조건의 풍자와 해학처럼, 일장춘몽처럼 껄껄껄 사는 게 그런 거야 하며 웃고 지나가게 만들곤 했었다. 
그에 반해, 굳이 비교하자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불가지론'이랄까? 
<우리 선희>에서 선희는 계속 만나는 남자들에게 자신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그런 질문에 대해, 물론 남자들은 경우에 따라, 자신의 편의에 따라 대답을 해준다. 이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해원에게 사람들은 지극히 자신이 보고 싶은 면에서 해원을 평가해 준다. 해원의 진짜 정체 따위는 필요없다. 엄마는 엄마 편한대로, 길가던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사랑하던 남자는 남자대로, 그들의 말을 들을 수록, 여주인공 해원은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야 풀릴 갈증만 가중될 뿐이다. 
알 수 없는 건, 일찌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아니 이미 그 이전부터, 알 수 없었던 오묘한 여성이란 존재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들이 대학교수이건, 영화감독이건, 그 어떤 사회적 정체성을 지녀도, 사실은 '수컷'이란 공용어로 지칭될 수 있는 '미친 놈'들과의 관계가 끊임없이 재생성 되는 세상에 대한 '불가지론'이란 게 정확할 것이다. 
마치 한 평생, 인물화에 몰두하는 화가처럼, 홍상수 감독은 비슷한 구도의, 혹은 구도만 살짝 다르게 잡힌 인물들을 끊임없이 스케치하며 그 불가지론의 매력을 탐구하고 있는 중이 아닐까 싶다. 


우리 선희 포토 보기

물론 처음부터 홍상수 감독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전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똑같이 불가지론의 남녀 관계를 그려내더라도, 거기서 보다 촛점이 맞춰진 것이, 지식인의 허위의힉이라는 사회적 텃치가 강조되었다면, 이즈음에는 보다 오묘한 사회 생물학적 남녀 관계에 터치가 부각되는 듯하다. 여전히 사회적 인간의 부조리함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전의 구체적인 지식인들은 이젠 피상적인 성인 남녀로써 색깔을 더 드러낸다. 
아마도 세월이 변해도 여전히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학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인간 관계들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파격적이라면, <다른 나라에서>의 안전요원(유준상 분)이나, <하하하>의 왕성옥(문소리 분)을 떠올리게 되지만, 여전히 그들도, 크게 보면 홍상수 감독의 불가지론의 세계 속 인물일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유쾌한 음악이 깔리며 소동극을 마무리하는 우디 알렌의 영화는 떠들썩한 마무리와 달리 보고 나면 가슴 속이 스산해 지는 경우가 많다. 저러고 또 사는구나 싶은게 말이다. 반면, 홍상수 영화는 에그 미친 놈, 하게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미친 놈 소리의 뒤끝이 자꾸 힘이 빠지게 된다. 그러다, 이젠 마치 집에서 기르는 애완 동물의 애교를 보는 듯 하게 되어 간다. 에그, 애쓴다~ 이러고. 불가지론이라지만, 그 서로에게 닿을 길 없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관계가 답답하지만, 자꾸 그러려니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두 감독님 모두, 일관되게 자신의 주장을 올곧게 주장하시며, 그 변주를 위해, 우디 알렌은 파리, 바르셀로나 등 외국을 떠돌았고, 홍상수 감독은 통영, 모항등 우리나라의 바닷가를 떠도셨다. 변주해 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그러던, 우디 알렌 감독이 여전히 그의 영화가 그러려니 한 사람들을 향해, <블루 재스민>을 통해 칼을 빼어들었다. 삶이 이런 거야, 느네도 다 이렇게 기만적으로 살잖아. 뭐가 달라! 이러면서. 그의 이야기가 그가 일관되게 주장했던 주제 의식과 다르지는 않지만, 그 표현 방식은 직설적이어졌고, 해학과 풍자는 뒤로 숨었다. 금융위기를 맞이한 세계, 그 중에서도 뉴욕의 현실태를, 그 속의 인물 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마치 각박해진 세상에 퍼뜩 정신이 들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런 거야, 정신 차려! 하듯이 말이다

반면, <우리 선희>란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라기 보다는, 속편 혹은 스핀 오프 같은 느낌이 든다. 
찾아보니, 정유미와 이선균이 연인으로 나왔던 <옥희의 영화>는 몇 년 전, 2010년도 작품인데다가, 작품의 방식도 4부작 옴니버스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희>란 작품이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 느껴지는 것은, 바로 전 작품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해원과 감독으로 나온 이선균의 관계, 직업이 이번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요, <북촌 방향>에서 등장한 술자리가 다시 <우리 선희>에서 오버랩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희>는 그간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우리에게 익숙해졌던 설정들 모두를 모아 놓은 듯한, <옥희의 영화>의 후속편이요, <북촌 방향>의 스팬 오프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그래서, 이제는 당신도 알고, 우리도 아는, 분명히 다른 붓터치에도 불구하고 뻔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화두를 붙잡고 면벽 수행 중에, 그 화두가 이젠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도 되었는데도 여전히 머릿 속을 맴맴 돌고 있는 답답함이랄까. 

이젠 홍상수 감독님도 동화 속 공간 같아진 그의 영화를 넘어선, 술 한 잔에 풀어지고 마는, 어설프고도 뻔한 불가지론을 넘어선, <블루 재스민>처럼 2013년의 대한민국에 발을 내리고선, 그 옛날의 날선 촌철살인을 한 마디쯤 해주셨으면 하는 거다. 


by meditator 2013. 10. 1. 10:50

지인을 만났다. 

때가 입시철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는 대학 입시에 대한 걸로 흘렀다.
"괜히 연고대 높은 과 갈 필요가 없어. 차라리 그 성적이면 서울대 낮은 과 가는 게 나아. 요즘은 서울대 복수전공 제도가 있어서, 경영학과 복수 전공으로 하면, 들어갈 때는 별 볼일 없는 과라도, 나올 때는 서울대 경영학과야."
이 말에는 여러가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사회적 인식들이 들어있다. 속칭 sky라고 하는 곳 중에서도 서울대가 최고요, 서울대에서도 경영학과가 최고요, 소질과 소망이 아니라, 그저 서울대를 가기 위해 아무 과라도 좋으니, 서울대 문턱에 들어서서 경영대를 복수 전공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위너가 될 수 있다는 등등의 생각들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그래도, 서울대가 뭐 그렇게 좋다고, 라며 회의적(혹은 철모르는(?)) 반문을 한다. 하지만, 그러던 아들도,<힐링 캠프>에 나온 한지혜 씨가, 남편감이 서울대 출신에 사시를 한번에 통과하고, 집이 있다는 소리에 단번에 만나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를 하자, 대번에 그런다, '난 루저네'. 

물론 한지혜씨의 남편이 서울대를 나오고, 그것도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사시를 한번에 통과하고, 현직 검사라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다루는, 한지혜 씨의 태도, 그리고 그걸 유도하는 <힐링 킴프>의 태도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힐링 캠프>는 말 그대로 힐링을 시켜주겠다는 예능이다. 그리고 그 힐링의 대상은 출연하는 게스트이기도 하지만, 그 출연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청자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그 지점에 혼돈을 가져오곤 한다.
한지혜씨는 사실이니까, 남편의 스펙만 보고 만나보겠다고 한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톡 꼬집어 이야기의 주제로 부각시킨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다. 이미 한지혜 씨 이전에도, 종종 <힐링 캠프>에서 mc인 이경규 씨가 '서울대'를 참 좋아한다는 언급이 자주 드러났었다. 하지만 텔레비젼을 보는, <힐링 캠프>의 시청률을 책임지는 다수의 사람들은 참 좋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이라고 했지만, 김제동 조차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 할 만큼, 남편의 스펙이 한지혜라는 연예인에게 결혼 결심의 중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과, 그 이전 회, 문소리의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결혼할 때까지, 심지어 결혼한 이후에도 비닐 옷장을 애지중지했다는 사실은 똑같은 사실임에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지는 파장이 다르다. 
하지만, <힐링 캠프>의 반응은 전혀 힐링이 되지 않는다. 문소리 씨 남편의 비닐 옷장에 대해서는 뭐 그런 이상한 사람이 다 있어? 요즘도 그런 걸 써? 라는 식의 우스개로 치부해 버렸다면, 한지혜 씨 남편의 이야기는 갖은 호들갑을 다 떨면서, 그저 남편일 뿐인데, 마치 한지혜 씨가 사시 합격에 검사라도 된 것처럼 대우해 준다. 그리고 그 대우에 한지혜 씨의 얼굴을 더 밝아지고, 더 당당해 진 것 같다면, 그저 보는 사람의 착각이었을까.

좋은 걸 좋다고 말하니 솔직하다고?
이러니 엄마들이 목숨을 걸고 아들 자질과는 상관없이 서울대에 들이밀려고 하고, 아들이 대학간 걸 엄마가 대학이라도 간 것마냥 콧대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는 분 중에 서울대 떨어져서 연대에 갔다고 집안이 초상집 같았던 집이 있었다. 서울대를 못갔다고 루저를 만드는 건, 사회의 무섭고도 왜곡된 인식이다. 그리고 그걸 '솔직함' 혹은 '당당함'이란 이름으로 <힐링 캠프>는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이 원서를 쓰고, 이미 수시 1차 결과의 고배를 마시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 시절에 말이다. 

게다가 한지혜 씨의 경우, 비단 남편과 관련된 언급만이 아니라, 드라마의 캐릭터와 관련된 언급으로도 세간의 평가가 오락가락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미 일간지 등의 인터뷰를 통해 계속 화제가 되었던, '연기 대상을 노리고' 했다던 그 말을 어김없이 <힐링 캠프>에서도 또 했다.
막상 연말이 돼서 그녀가 연기 대상을 받고 안받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녀의 연기 대상을 노린 캐릭터 선정은, 앞서, 스펙만 보고 남편을 만나기로 했던, 그 사고와 연장 선상에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배우 일 개인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 그건 배우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혹시나 그녀를 좋아하는 그녀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땐 경우가 다르다. 
세상이 사실은 그래도, 남편은 스펙을 보고 고르고, 극중 캐릭터는 상을 받을 목적으로 골라서는 안되야 하는 것이다. 굳이 그게 사실이라도, 혼자 생각하면 그뿐, 입 밖으로 '나 자랑이요' 하면서 떠들 꺼리는 아닌 것이다. 원컨 원치않건, 공인으로 대접받는 자의 도리다. 하지만 어느 덧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속물로 살아가는 걸, 당연스레 여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장하기 까지 한다. 솔직함을 가장한 '속물편향주의'가 아쉽다. 



by meditator 2013. 10. 1.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