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광희야~"
인간의 조건 멤버 중 하나가 광희를 부른다. 그런데, 헐! 돌아다 보는 아이돌 광희의 얼굴이 무성하다. 밤새 수염이 자란 것이다.
상투적으로 이야기되는 아이돌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수염이란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에 특별 멤버로 초빙된 광희는, 밤새 자란 민낯의 수염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뿐만 아니다. 인간의 조건답게, 그간 시끄럽고 정신사나운 아이돌이라던 그에게 씌워진 선입관을 거둬내고, 털털하고 사람좋은 인간 황광희를 자연스레 보여준다.
번번히 동시간대 경쟁자 <세바퀴>와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시던,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다섯 멤버의 시너지가 시청자들에게 권태기를 느끼게 할 즈음에, <인간의 조건>이 모색한 방식은 각 미션 별로 특별 멤버를 초빙하는 것인 듯했다.
그래서 '휴가의 조건' 때에는 엠블랙의 멤버 이준이 합류해, 멤버들과 24시간을 온전히 보냈었다. 처음엔 박성호 등이 낯을 가리기도 했지만, 엄마같은 정태호의 배려로, 이준은 함께 목공을 하기도 하고, 마빡이 퍼포먼스를 하는 등, 아이돌이 된 이후에 누리지 못했던 '휴가'의 즐거움을 누리고 떠났었다.
그리고 이번 '책 읽으며 살기' 미션에서는 아이돌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광희가 미션 전체에 함께 하기로 한다.
(사진; tv데일리)
이준이나, 광희는 그들이 '엠블랙'이거나,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이지만, 그 그룹의 멤버임과 동시에, 여러 예능을 섭렵하며, 예능돌로써 더 이미지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 과연 이미 예능을 통해 소비된, 혹은 소모된 이미지 외에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등장이 정체기에 들어선 <인간의 조건>에 활력소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이라고 말하기조차 무색한 장수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도, 기가 막힌 게스트의 선정과, 그들과의 예외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무한도전의 의의를 적절히 살려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처음 초라하게 몇몇 주민들을 앞에 두고 했던 '무도 가요제'가 <무한도전> 1년 농사 중 가장 풍성한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미션이 되었고, 시청률도 그런 반응에 맞게 반등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무도 가요제에서 유희열과 유재석 팀의 경우, 콜라보레이션의 주도권을 누가 가지고 가는가를 놓고, 포털 사이트에서 투표를 할 정도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런 기발한 게스트에 비해, 이준이나 광희라는 이미 꽤 알려진 아이돌의 투입은 그런 면에서 신선도가 꽤 덜어지기는 하다. 게다가 이준의 경우, 하루를 잠깐 다녀가는 것으로, '시너지'를 논하기에는 전체 미션에서의 영향력이 미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광희는 온전히 미션에 함께 합류하면서, 외부 게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의 효과를 제대로 논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 외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책 읽으며 살기' 미션에서 광희의 합류가 긍정적이 된 것은, 상당 부분, 그간 알려진 아이돌 광희 이외의 매력을 <인간의 조건>이 발견해 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희 자신이 더 보여줄 것이 남은 매력적 인물이라는 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멤버들이 원래 말투가 그래? 라는 질문에, 설마 제가 원래 그랬겠어요? 라며 학교 다닐 때도 시끄럽긴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잘 생긴 멤버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니, 이런 컨셉으로 밀고 나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라는 광희의 허심탄회한 매력말이다.
광희는 그저 말투가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아이돌이었다.
심지어, 동료 아이돌 '시크릿'의 한선화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었어도 그의 그런 면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와 함께 얼크러져 지내는 며칠 동안, 사람들에게 각인된 광희 이외의 매력이 슬금슬금 드러난다.
처음엔 24시간 따라다니냐며 투덜거렸지만, 민낯의 수염투성이 얼굴을 꺼리낌없이 드러낸 정도로 털털한 모습은 또 색다르다. 늘 성형돌이라는 이미지도 되새김질 된 그의 얼굴, 여전히 자신의 얼굴은 조심해 달라는, 보톡스의 효능에 대해 너스레를 떠는 걸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지만, 며칠을 지낸 멤버들이 자세히 보니 너 잘 생겼다라고 말해 줄 정도로, 찬찬히 광희라는 사람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거기에 덧붙여, 그저 가벼운 사람이려니 하는 예상을 뛰어넘는 3시간의 독서 미션을 바쁜 아이돌 생활 중에도 해내는 성실함도 다시 보게 만든다.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아가 책을 소개 받는 미션에서, 대뜸 일면식도 없는 홍진경을 찾아가, 당신의 성취를 존경한다며 누나라고 서슴없이 너스레를 떠는 넉살도 신선하다. 더구나, 사업도 하고, 일도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그의 생각도 제법 주관이 확실해 보인다. 세간의 사람들이 광희라는 아이돌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생각 외로 만만치 않다. 즉, 이미 꽤 소모된 이미지 외에도 광희에서는 원석처럼 찾아낼 매력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진; 뉴스엔)
<인간의 조건>은 '관찰 예능'이다. 여섯 멤버들을 한 공간에 밀어넣고, 그리고 그들에게 특정한 미션을 던져놓고,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섯 멤버의 가상의 삶을 그리고 그 가상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진솔한 속내에 울고 웃으며 '인간다운' 맛을 느끼는 시간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조건>은 늘 느낄 무언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늘 신선해야 하며, 하지만, 거짓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초반에, 김준호나, 허경환이 시청자들에게 밉보였던 이유 중 하나도, 꼼수를 부리거나, 진솔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밉상들 조차도 정이 들어갈 무렵, 그와 함께, <인간의 조건>이 보여주는 인간다운 맛도 시들해져 갔다. 엄마같던 정태호의 요리 신공도, 정말 가족같던 그들의 푸짐한 먹방도, 이제는 각 방송마다 넘쳐나는 먹방과 함께, 늘 하는 그저 그런 것이 되어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아이돌 광희를 뛰어넘은 또 다른 광희의 진솔한 면을 보여준 '책 읽으며 살기'는 책을 읽는 미션 자체에서 비롯되는 볼 거리 외에도, 광희라는 또 특별 멤버를 통해 빚어지는 볼 거리가 풍성한 미션이 되었다.
하지만 광희에게 통한다고 해서, 다른 아이돌 모두가 통할 거라는 일반화는 우려가 된다. 카라의 깜짝 방문처럼, 그간 <인가의 조건>에서 아이돌의 등장은 범람에 가까웠고, 그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가 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게스트 개개인의 능력차가 프로그램의 풍성함을 좌우하고, 그만큼 게스트의 선택은 보다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부디 모처럼 잡은 호기를 뻔한 게스트로 다시 뻔한 <인간의 조건>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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