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제주 삼다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왜 물을 돈 주고 사 먹어?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십 년이 흐르지 않아, 이제 제주도 물, 암반수도 부족해, 백두산 물에, 외국 유명 생수를 돈 10만 원을 주고 사 먹는 시절이 되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희대의 사기꾼이 되던 것이 옛 이야기가 되버려, 이젠 물은 당연히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그것도 돈에 따라 급이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물세를 내고, 생수를 사 먹으면서도, 수도만 틀면 콸콸콸 쏫아지는 물에 우리가 '물부족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도 실감하기 힘들고, 그저 물은 당연히 주어지는 지구의 자원 이상의 인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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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0월 6일 방영된 <sbs스페셜-물은 누구의 것인가?>는 그 당연하게 여겨지는 물의 사정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sbs는 un이 정한 '물의 해'을 맞이하여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지난 주 방영된 첫 편은 <4대강의 반격>, 4대강을 살리겠다는 명목하에 22조 2천억이 들어간, 전광석화와 같은 기간에 이루어진 대형 국책 사업인 4대강 사업. 그 결과를 들여다 본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듯이, 홍수를 대비한다는 명목 하에, 수자원을 이용하겠다는 의도는 사라지고, 암묵적으로 운하를 준비했던 4대강의 현실은, 곳곳에서 흐르는 강의 신음 소리 뿐이다. 
하지만, sbs스페셜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역사를 남기기 위해 그 사업 추진 과정이 과연 적법했는가, 결국은 4대강 역시 서울의 청계천처럼, 맑은 물이 흐르던 강을 고인 물의 호수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검증에 들어간다. 

이어서 10월 7일에 방영된 2부 슬픈 장미는 그 시선을 전 세계로 옮겨 간다. 유럽의 거리 화사하게 만발한 장미, 하지만 사람들이 그 곁에서 장미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케냐 산인 이 장미가 아르다운 장미로 피어나기 위해, 그 주변 케냐인 들의 생명의 젖줄인 물을 강탈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140L의 물이 필요한 장미 농장에는 하루 종일 스프링 쿨러에서 물이 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장미 농장이 호수에 펌프를 대고 물을 뽑아 가는 통에, 정작 그곳의 주민들은 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겨우 감시인의 엄한 눈초리를 받으며, 한 통씩 길어갈 뿐이다. 그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사야 한다. 겨우 한 통의 물로, 일가족이 먹고, 세탁하고, 씻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장미 농장에서 마구 버려지는 장미를 키우기 위해 씌여진 각종 화학 제품의 찌꺼기는 고스란히 케냐인들의 생활의 터전인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물반 고기반이었던 호수는 이제 하루 종일 그물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를 집으로 가져오기 힘들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케냐만의 사례가 아니다. 볼리비아의 맥주 공장도, 잔지바르의 호텔들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의 물 접근권을 막는다.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내세우며, 자본의 편을 들고, 주민의 호소를 외면하거나, 차일피일 미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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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잘 사는 편에 속하는 국가들은 아직 물이 부족한 상황이 아님에도 영리하게 자국에서 물이 많이 필요한 산업들을 국외로 돌린다. 장미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청바지를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들이 만들어 지는 과정엔 상상 이상의 많은 물이 필요하다. 장미 등 무심코 쓰는 많은 것들의 물 발자국이 향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물부족 국가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 나라들은, 자국 국민들의 물 부족을 신경쓰지 않는다. 소금기있는 우물물을 소녀들이 긴 거리를 걸어 길어 오는 동안, 참다 못한 주민들이 직접 물 호스를 산에 올라 수원지에 꼽는 동안, 대자본들은 그들 나라 계곡 물에, 지하수의 독점권을 얻어간다. 

총칼을 들이밀은 식민주의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교묘하게 자본을 내세운 새로운 식민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물 발자국의 지도에서 보여지듯이, 세계는, 2차 대전 이전의 식민지와 식민 국가와 유사한 구도를 여전히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터전을 잡고 사라오던 삶의 기본적 요건 조차 빼앗기고 있다. 물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물을 통해 살아가던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다큐의 마지막, 스스로 물을 얻기 위해 계곡에 호스를 대던 주민들은 경찰의 잔인한 진압에 피를 흘린다. 손주들을 위해서 물러날 수 없다던 이장님도 그 중 하나다. 

2부작 다큐멘터리 <물은 누구의 것인가?>는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라고 당연하닥 여기는 그것이 국가 권력의 전횡이나, 외국 자본의 독점으로 인해, 파괴되고, 빼앗기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와 4대강의 이야기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사후 약방문'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사후 약방문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그전 도로를 반복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의 적절을 따질 계제가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방영된, <슬픈 장미>는 그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도 섬뜩하다. 마치 텍사스 소떼처럼 무참하게 지나가버리는 자본의 파고가 두렵다. 


by meditator 2013. 10. 7.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