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 <블루 재스민>의 여주인공 재스민(케이트 블란쳇 분)의 본명은 자넷이다. 하지만 자넷은 평범한 이름 대신 분위기있는 재스민이란 이름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학시절 해오던 학업을 포기하고 잘 나가던 사업가 '할'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 자넷이 재스민으로 살아가는 그 시점을 재스민이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가진 것 없는 빈털털이가 된 재스민이 가장 먼저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마음을 먹은 것 중 하나는 바로, 대학 시절 못다한 학업을 다시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못다한 학업은 그저 배움의 과정이 아니다. 재스민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았던 자넷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상징한다. 물론, 영화 제목이 블루인 것처럼,(영어의 blue는 우울한, 등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자넷은 재스민으로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주군의 태양' 방송화면
(사진; 텐아시아)

<주군의 태양>에서, 이제 더 이상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게된 태공실 역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서의 대학은 <블루 재스민>의 대학과 동일한 상징성을 띤다. 주군의 캔디가 아닌, 귀신에게 쫓겨다니다 사회에서 밀려나간 백수가 아닌, 태공실 자신으로 서고자 하는 것이었다. 물론, 태공실은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사랑을 위해 맺은 계약을 지키기 위해 공동 묘지를 헤맨다. 

물론 마지막 한 회가 남았지만, 그리고 그 남은 한 회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크게 위배할 것 같아보이지는 않지만, 엔딩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주군의 태양>은 강력한 '안티 캔디'물이다. '사랑지상주의'여야 하는 로맨틱 멜로 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내내, 객관적으로 캔디로 규정될 수 태공실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뇌로 가득차있다. 10월2일의 마지막 한 회를 남긴, <주군의 태양>은  언뜻 보기엔 태공실의 말 대로, 주군과 태공실의 밀땅처럼 보이지만, 실은 캔디가 되고 싶지 않은, 캔디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태공실의 몸부림으로 한 회를 채운다. 

물론 계기는 자신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군이 죽음으로 몰리게 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여느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라면, 주군이 내가 괜찮다, 그래도 널 사랑한다 하면 그래 나도 그래 하고 해결될 이야기를 <주군의 태양>은 한번 더 질문을 던진다. 
유진우(이천희 분)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태공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주군처럼 같은 바라보지 않지만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란, 설정은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태공실은 그 기로에서, 질문을 자신에게 향한다. 주군을 사랑하지만,그를 반공호로 쓰는, 그에게 기대야 하는, 여전히 귀신들에게 휘돌리는 자신 정체를 고민하는 것이다. 외면하다 결국 간청하는 아기 귀신에 못이겨 그 아이 엄마의 목숨을 구해주고 절규하는 태공실은 절실하다. 이런 자신이 싫다고! 당신을 반공호로 쓰는 자신이 미덥지 않다고.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이 된 자넷은, 동생 집에 얹혀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보려 애쓴다. 공부도 다시 해보려고 하고, 돈도 벌려고 하고, 하지만, 그녀에게 쉬운 길은 언제나 그랬듯, '캔디'가 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너무도 자연스레 거짓을 도배한다. 
하지만 <주군의 태양>의 태공실은 재스민과 다른 선택을 한다. 지루한 논리 대결과도 같았던 16회 주군과의 실랑이 속에서 태공실은 확고하게 자신을 선택한다. 이기적이 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러브 스토리'는 상대방이 어떤 조건에 있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화합'의 정신을 구가했다. 하지만, <주군의 태양>은 그런 류의 사랑에 반기를 든다. 태공실은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이제는 더 이상 귀신을 무서워하지도 않지만, 심지어 귀신을 도와주는데 익숙해지기까지 했지만, 태공실은 과감하게 그런 외적으로 씌워진 자신의 운명에 도전한다. 사랑도 내가 당당히 설 때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홍자매의 작품들은 늘 인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젊은 여성층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홍정은, 홍미란 자매의 작품 속 러브 스토리는 그저 사랑을 쟁취하는 것으로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군의 태양>도 마찬가지다. 태공실에게 주어진 귀신을 보는 운명과, 그런 두려움을 피해갈 수 있는 반공호로써의 주군은, 마치 2013년의 거친 세파와, 거기서 도피할 수 있는 사랑으로 치환되어도 크게 어색함이 없이 상징적이다. 취직이 힘들어 취집을 고민하는 시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이제 다시 <블루 재스민>으로 돌아와서, 거짓을 해서라도, 백마 탄 왕자를 만나고 싶었던, 보기엔는 그럴듯했던 재스민의 자넷에게 돌아온 것은 처절한 현실이다. 그녀는 전 남편에게도 버림받은, 희생자연했지만 알고보니 전 남편의 불안한 부를 파괴한 장본인인, 이젠 동생 집에서도 조차 더 이상 머물기 힘든, 그저 다시 한번 버림받은 별볼 일 없는 여자라는. 그토록 우아한 재스민이 되고 싶었지만, 우아함은 남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냉정한 결론을 영화는 가감없이 보여준다.
다행히도, 태공실은, 주군 곁에서 주군의 도움으로 빛나는 대신에, 스스로의 길을 선택했다. 설사 그것이 태양으로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그저 어떻게든 주군의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의탁하려던 태공실에게는 장족의 발전이다. 주군과 태공실의 사랑이 블루일지, 핑크일 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에 떨던 태공실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주군의 태양>을 통해 홍자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16회를 통해 이미 완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도 당신이 스스로 빛날 때만 가능한 거야! 


by meditator 2013. 10. 3.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