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다 자기 감정, 자기 입장만 생각해요!"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화를 속으로만 삭이던 금만복(기태영 분), 아니 장은중이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그럴 만도 하다. 이십여년을 내 엄마라, 아빠라 믿고 왔던 사람들이 사실은 친부모가 아니라더니, 엄마의 친아들을 유괴한 사람의 재판에 엄마가 앞장선단다. 어디 그뿐인가. 사실은 배다른 오빠인 사람에게 여동생은 좀 더 사귀어 보고 싶다고 하고.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드라마 <스캔들>의 관계 구도는 따지고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유괴범에 연민을 느끼는 엄마, 배다른 오빠와 여동생의 계약 연애, 심지어 조미료처럼 쳐진 장태하의 첩 고주란(김혜리 분)과 강주필(최철호 분)전무의 불륜아닌 불륜까지. 장은중(김재원 분)이어야 할 아이가, 하은중으로 자라났다는 것만으로, 완전 콩가루 집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동생의 꺽이지 않는 연애 방식을 빗대 장은중이 아버지 장태하(박상민 분)와, 어머니 윤화영(신은경 분)에게 말하듯이,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의 욕심때문이다. 

(사진; 뉴스엔)

장태하는 부실 시공을 한 건물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그걸 덮기 위해 88올림픽을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하명근(조재현 분) 형사의 아들 하건영이 죽어갔다. 그리고 하명근 형사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리고 비리를 권력으로 덮으려는 장태하를 해치려 그 집에 갔다가 얼떨결에 그의 아들을 유괴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다 그의 아들을 돌려주려 그 집에 갔지만, 이미 그 집엔 다른 장은중이 있었다. 그래서 진짜 장은중은 하은중이 되어야 했다.
진짜 장은중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엄마 윤화영이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아버지의 사업체를 강탈한 남편 장태하에 대한 복수를 자신의 아들이 그의 뒤를 잇게 하는 것으로 하려던 윤화영은 아들이 유괴되어 죽었다는 쪽지를 보고, 가짜 금만복을 장은중으로 만든다. 
18일 방송에서, 하명근 형사가 병원에 드나들던 이유가 밝혀졌다. 췌장암이다.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남았다고 한다. 자식 바보인 하형사는 그 소식을 듣자, 남은 개월 수를 손으로 꼽다가, 남겨진 아이들 김장 걱정을 한다. 처방전을 버리고 홀로 벤치에 앉아 오열하는 하명근 형사에 시청자들의 가슴도 미어진다. 그리고 그런 하형사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윤화영이다. 그녀 역시 오랜 시간 밤잠을 못이루고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신세다. 하명근의 애끓는 부정이, 윤화영의 채워지지 않는 모성이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저질렀던, 그래서 이제 그들의 죄로 인해 아이들까지 고통받는 업보가 덮어지지는 않는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전래 동화를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의붓딸과, 계모의 관계를 실제 모녀 관계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성장하는 딸과, 그 딸의 성장을 원치 않은 엄마의 존재로, 서양의 오이디푸스 신화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등장하는 아버지 살해는 실질적인 아비의 살해가 아니라, 아버지의 존재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는 남성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스캔들>의 부모 세대 역시 상징적이다. 비리로 부와 권력을 세운 장태하는 원시적 자본주의 축적의 원형이다. 그렇다면 윤화영과 하명근은 무엇일까? 윤화영은 그의 비리를 알면서도, 그의 비리의 희생자이면서도, 그의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그것을 통해 자신도 그 부과 권력의 대열에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있던 많은 투항자들을 의미한다. 현대사에서 적당한 지위와 부를 누렸던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명근은 그 반대의 위치이다. 현대사의 제물이었지만, 힘이 없어, 옹졸한 사적 복수 밖에 하지 못했던 그리하여 그 자신도 피해를 입고 살아가야 했던 희생양을 상징한다. 
지난 시절 윤화영과 하명근은 장태하의 비리를 알았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이 우선해, 그리고 힘이 없어, 시절이 하수상해 만천하에 그의 비리를 폭로하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적인 보복뿐.  그 시절이 윤화영과 하명근이 장태하의 비리를 덮어둠으로써 다시 오늘에 이르러 아파트는 여전히 부실 시공으로 다시 붕괴될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공기찬이 죽고, 그의 아내는 아이를 잃었다. 
드라마는 말한다. 정죄되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더 큰 고통을 돌려주며. 심지어 그 고통은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자식 세대까지 침식할 것이라고. 


스캔들 시청률
(사진; tv데일리)

그런 의미에서 장태하를 향한 윤화영과 하명근의 재판은 상징적이다. 결국은 또 다른 고통만을 만들어 놓은 사적 복수를 벗어던지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장태하를 징벌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화영은 선언한다. 이제라도 자신이 나서서 장태하의 질주를 막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비록 상대가 아들이라고 해도 멈추지 않고 재판을 맡겠다고. 
하명근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의 아들을 유괴했던 옹졸한 사적 복수가 아니라, 자신이 희생양이 되더라도 그때 하지 못했던 장태하의 비리를 만천하에 밝히는 내부 고발자가 되어 정죄를 완성하려 하는 것. 
나빴던 어른들이 뒤늦게 하는 '결자해지', 하명근 형사에게 남은 시간이 3개월 남짓,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제라도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돌려놓으려는 그와 윤화영의 노력이 부디 원하는 결과로 마무리지어 지길 바란다. . 


by meditator 2013. 8. 19.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