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숙의 시기가 언제인가 싶게 김구라가 약진 중이다.
월요일 밤 tvn의 <TAXI>, 화요일 밤 SBS의 <화신>, 수요일 밤 MBC의 <라디오 스타>, 목요일 밤 JTBC의 <썰전>, 그리고 얼마전까지 금요일 밤 TVN의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까지. 주말을 제외하고는 공중파, 종편, 케이블을 누비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복귀와 함께 빠르게 여러 프로그램에 투입된 것과 달리, 야심차게 기존의 캐릭터를 누른 채 착한 캐릭터로 복귀했던 KBS2의 <두드림>의 폐지 처럼, 여전히 텔레비젼 속 김구라의 캐릭터는 <라디오 스타>의 전형을 복제 혹은 변형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당연히 프로그램의 성격이 겹치는 <화신>과 <라디오 스타>에 연달아 나오는 김구라가 불편할 밖에. 융성은 하나, 실속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라는 요즘의 운세 형상이다.
(사진; 조이뉴스)
1. <화신> VS. <라디오 스타>; 옴메, 기죽어 VS 옴메 기살어?
<화신>에서의 김구라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은 9일 밤 <화신>에서 발생(?)했다.
여자들 머리의 염색 이야기로 비롯된 토크가 흘러, 김구라 자연스레 옆에 앉은 김희선의 머리가 과거 염색약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과산화수소수'로 염색한 거 같다고 농을 던졌다. 김구라는 그저 자연스레 토크의 흐름 속에 웃자고 한 마디 던진 것이었다. 다같이 하하호호 그래, 비슷하네 하고 넘어가면 될 정황이었는데, 김희선이 발끈한 것이다. 여배우의 외모는 논하는 것이 아니다에서 부터, 김구라가 자기를 두고 외모를 논할 자격이 없다까지, 웃음기는 띠고 있었지만, 내용인 즉슨, 니가 어디 감히 내 외모를!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순간 분위기는 싸~해졌지만, MC 중 누구도 두 사람을 중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게스트였던 안문숙이 김희선이 김구라한테 밀리지 않네 라고 눙쳤고, 김구라는, 이기려고 하지도 않아요 라며 넘어갔다.
얼핏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상황은 사실 <화신>의 딜레마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상황이다. <화신>의 주 아이템이 무엇인가, 맨날 '풍문으로 들었소'라며 게스트들의 온갖 루머를 들추며 그걸 가지고 씹고 즐기는 시간들 아닌가. 그런데, 게스트들을 상대로는 온갖 소리를 해대는 MC들이 상대 MC의 외모를 가지고 농을 쳤다고 정색을 하면, 너무 불공정한 시스템이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그런 상황에서, 신동엽이나, 봉태규가 전혀 그 상황을 다르게 이끌어 가지 못했다는 게 더 문제다. 안문숙이 마무리를 하자, 그때서야, 신동엽이 '사랑과 전쟁'이니 라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김희선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었다.
(사진; 파이낸셜 뉴스)
만약 이게 <라디오 스타>라면 어땠을까? 설사 김구라의 말에 상대 MC가 정색을 하더라도, 옆의 다른 MC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정색을 하면 정색을 한 거 같고 정색을 한다고 놀리며 분위기를 풀어갈 것이고, 만약 정색을 하지 않고 웃었다면, 맨날 김구라의 표현대로 '받아먹는' 에드립들이 양 쪽에서 한 마디 이상씩은 나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다음 날, '김희선 과산화수소수 머리라는 검색어가 뜰 정도로 이슈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요일이 다를 뿐, 기실 성격이 거의 비슷한 토크쇼임에도, 화요일 밤의 <화신>과 수요일 밤의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화신> 속 김구라가 각개 약진하는 MC 들 중 한 사람으로 정해진 풍문을 들먹이는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라디오 스타>의 김구라는 모든 토크의 시작이다. 질문을 누가 했든지, 게스트를 상대로 한 곤란한 질문의 시작은 김구라요, 그걸 옆에서 윤종신과 규현이 거들어 양념을 치고, 김국진이 마무리하는 식의 팀 플레이를 한다. 유세윤의 하차는 개인적으로 안타깝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라디오 스타>의 김구라는 물 만난 고기 같고, 동료들은 김구라라는 고기가 펄떡이며 뛰어놀 수 있는 물을 기꺼이 자청한다.
안타깝게도 <라디오 스타>로의 복귀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화신>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화신>과 <라디오 스타>는 MC진의 조화로움으로 인해, 그 차이가 두드러져만 간다. 불가피하게 동시에 두 프로를 함께 하는 김구라로써는 난감할 노릇이다. 신동엽이나, 김희선이 앞으로도 <라디오 스타>의 동료들처럼 김구라와 더불어(?) 호흡을 맞출 여지가 덜 보이니 김구라의 딜레마는 당분간 계속 될 밖에.
2. 김구라와 강용석, 따로 또 같이?
최근 강용석의 자질론이 불거지기 전까지, <썰전>에서 김구라가 즐겨 쓰던 표현이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이라는 김구라와 강용석을 한 묶음으로 하는 바로 그런 표현들이다.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왜 김구라는 자기 자신을 굳이 강용석과 같은 범주로 묶어 폄하하려고 할까 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용석의 이미지 세탁설이 화두가 되면서, 비록 단 한 회뿐이었지만, 김구라의 입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사라져 버렸다.
김구라의 생각으로는, 자신과 강용석이 말실수로 인한 구설수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생업 전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더구나 오랜 자숙의 과정을 거쳐 <썰전>이란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된 처지도 비슷하고, 역시나 말로써 망했지만(?), 말로써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에서 동병상련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그런건지, 제작진의 의도였는지, 공평한 진행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썰전>에서 김구라의 진행이, 강용석의 재기를 돋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적이 꽤 많았었다. 마치 형님 좋고, 아우 좋고 하는 식으로 한 묶음으로 같이 잘해보자는 식으로.
하지만 이른바 대중들은 다르다. 설사 두 사람이 지난 과정에서 했던 말 실수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고 해도, 두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전혀 달랐다.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을 하던 시절에 많은 연예인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막말 논란으로 인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를 했지만, 조금 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김구라의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했던 모 국회의원 후보자의 지지 연설 방송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 '나꼼수'로 인기를 끌던 국회의원 후보자의 흠을 잡을 게 없나 하고 뒤지던 여당 국회의원이 과거 김구라의 방송을 문제시하고, 그것이 이슈가 되어 졸지에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차와는 별개로, 이미 공중파에 나오는 그 순간부터, 김구라는 과거 자신이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말들을 기회가 되기만 하면 반성하고 사과를 했었다. 하차의 순간에도 언젠가 이런 일이 올 줄 알았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었다.
하지마 강용석은 전혀 반대의 경우다. 이른바 여당의 저격수로, 심지어 지금까지도 <썰전>에서 호시탐탐 야당의 주요 인물들을 못 물어 뜯어서 안달을 낼 정도로,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당의 유력 인사에게 '형님~'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에 여전히 충실한 사람이다. 그가 자숙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개그 소재로 삼은 개그맨에게 소송을 걸려고 했던 정도로 자신의 입장에 투철했던 그가, 그간 자신이 했던 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하거나, 회개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저 방송에 적합한, 혹은 방송을 통해 튀어보려고 애쓰는 재기 발랄한 인간으로 조명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여당 정치인으로의 리바이벌을 노리는 그가, 지난 날 자신이 이러이러해서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방송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주 썰전에서 NLL 문제를 제기한 여당 국회의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 한 마디로 그를 추종하던 보수 세력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을 만큼, 그동안 그는 '배신'의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밀하게 강용석의 문제는 그에게 돌아가는 수많은 방송을 통한 이미지 세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 그의 과오조차 제대로 해명하고 사과하지 않은 색깔 불변이 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와 김구라는 번번히 동료애를 나누려고 했으니! 사람들은 두 사람을 다르게 보는데, 본인이 자청해서 한 묶음으로 난처함을 자청한 경우랄까. 먹고 사는 게 제일 우선인 김구라와, 호시탐탐 정치인으로의 복귀를 포기하지 않는 강용석의 길은 엄연히 다르다. 사람들이 강용석을 새삼 경계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근묵자흑이라고, 괜히 옆에서 거들다 같은 놈이라고 귓방망이 또 한 대 얻어맞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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