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들의 집을 찾아간 제작진은 다짜고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모습에서부터 카메라를 들이댄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이를 닦는 박성호, 알뜰하게 비누칠을 하는 동안은 샤워기를 잠근 김준현, 옷을 벗고 있다 민망하다 하는데도 들이민 카메라는 집요하게 화장실에서 물을 소비하는 멤버들을 찍어댄다. 그러자, 눈치빠른 김준현이 말한다. "세살 먹은 애도 알겠다. 이번엔 물이지? 물없이 살기지?"

그간 원산지 알고 먹기를 통해 푸짐한 먹방을 즐기고, 친구 찾기를 통해 모처럼 하하호호 친구들과의 여가를 즐겼던 <인간의 조건>이 다시 그 본연의 '~없이 살기' 미션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 더운 여름에, '물없이 살기'

굳이 '물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을 멤버들이 다 모인 오프닝에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지난 번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에서 하루를 쫓아다니며 쓰레기를 모아 보여준 것만으로도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이 설명되었듯이, 그저 아침 나절 멤버들의 준비 과정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우리가 물을 얼마나 하염없이 낭비하고 사는가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이를 닦는다든가, 물을 틀어놓고 샴푸 거품을 낸다든가, 얼굴에 비누칠을 한다던가, 그 '물'이란게 내가 쓰면 '줄줄줄' 새어나가는 걸 모르다가도, 남이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고 쓰는 걸 보면, 몹시도 아까운 요물이다. 그래서 두 말할 필요 없이 <인간의 조건>이 내건 '물없이 살기' 미션엔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하루에 생활을 하면서 물이 얼마나 필요할까?란 제작진의 질문에, 멤버들은 처음엔 그저 마시는 물만 생각하다가 하나하나 자신들이 소비하는 물을 꼽아보고는 깜짝 놀란다. 역시나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도 그랬듯이 당장에 걸리는 건, 화장실 문제 부터다. 하지만 그것을 뺀다해도, 우리 생활 속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각자 필요한 물을 말하라고 했을 때, 김준현이나, 김준호처럼 자신들은 안씻고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부풀려 대며 많은 양을 요구한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제작진이 제시한 물의 양은 단, 20 L 뿐이다. 이것은 2006년 UN(국제연합)이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의,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의 양이다. 그리고 등장한 물통을 보고 멤버들은 경악한다. 겨우 이걸로 하루를 버티라니!

그저 최대한 마시는 걸 줄이면 되겠거니 했던 '물없이 살기' 미션이었지만, 미션 수행에 들어가면서 이 미션이야 말로, 미션의 진검승부 같은 것이라는 걸 멤버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우리가 생활 하는 그 모든 곳에 물이 없는 곳이 없으니 말이다.

식당에 들어가 외식을 해도 기본적으로 6L 물이 차감당한다. 거기에 먹는 음식에 따라, 하다못해 동치미나, 음료수를 먹으면 양이 추가되는 건 물론이다. 먹는 건 괜찮겠거니 했는데, 물이 없으면 당장에 밥도 지을 수 없고, 어떤 음식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기발하게 물없는 카레를 해보는데 먹기는 먹지만 뻑뻑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뻑뻑함의 갈증을 오이로 달래는 밖에.

먹는 건 약과다. 먹고 나서 설거지도 아끼고 아끼니, 한 통의 물로 해결했다 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샤워는 어쩔 것인가, 멤버별로 거품이 안나는 비누 사용하기에서, 물수건으로 닦아내기, 얼굴 씻은 물로 발 닦기 등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그나저나, 세탁은 빼주는 건가? 보고 있는 시청자들 머릿 속에 제 먼저 이런 저런 물이 필요한 곳이 떠오른다.

그러나, 1월부터 시작해서, 5개월 여 달려온 <인간의 조건>은 이제 각자 캐릭터가 구축이 되고, 여섯 개그맨들의 가족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어떤 미션을 들이대도 여유롭게 받아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듯 하다.

이 더운 여름에 꾸질꾸질해 질 수 밖에 없는 '물없이 살기'란 미션을 받아들고도, 이젠 여섯 멤버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여유를 부린다. 처음, 돈없이 살거나, 쓰레기 없이 살기 때만 해도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떤 기발한 방법이 있을까 각자 궁리하느라 바쁘다. 김준호처럼 난 물을 안마셔도 돼, 하면서 버티기 방법을 쓰는 우격다짐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정태호처럼, 미션의 취지를 생각해 보며, 그저 안쓰는 게 아니라, 쓰되 쓰는 방식을 달리하는 모범 답안형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이 여름에 '물없이 살기'란 미션은 꽤나 버겁고 지난한 미션임에도 그것을 받아든 여섯 멤버들은 이제 그간의 미션의 내공으로 지혜롭게 모색해 나간다. 물없이 머리 감을 수 있는 샴푸나, 손 세정제에서, 언젠가 1박2일에서 봤던 물없이 만들 수 있느 카레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돌출한다.

그런가 하면, 각자 20L의 물이 주어지자, 대뜸 누가 얼마나 쓰는가에 따라 '왕'을 정하자며 게임을 벌이고는, 미션의 결과를 유쾌한 '왕 놀이'로 마무리 짓는다. 미션이 고난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도전하는 즐거운 게임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사진; osen)

 

물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 맛이 한결 상실된 그 예전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을 보며 느꼈던 묘미를 <인간의 조건> 미션 수행을 통해 맛보게 된다.

처음,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공익 광고'같은 모습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면, 5개월 여를 지내면서, 이제는 '예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재미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이젠 그들이 개그콘서트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석에서 환호가 울려나올 만큼, 그들이 그저 먹기만 해도 정겹고, 어울려 부등켜 안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5개월의 숙성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돈없이 살기' 등 ~없이 살기 미션을 통해, 난감한 미션을 수행하는 내공이 생겼다면, '원산지 알고 먹기'나, '친구 찾기'를 통해 멤버들이 합을 이뤄내는 시너지에 대한 확인을 한 듯하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없이 살기' 미션은 분명 목적은 '공익'이되, 그 내용은 한결 여유롭고, 풍성한 '예능'이다.

by meditator 2013. 6. 16. 0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