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교실>은 어려운 드라마이다.

학교 체육 시간, 형식적으로 행해지는 호신술 교육을 무의미하다고 일갈하는 마여진 선생(고현정 분)에게 학생 오동구(천보근 분)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러자, 마여진은 당당하게 말한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도망가는 것이거나, 상대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그러자 다시 오동구는 묻는다. 도망가기도 싫고 굴복하기도 싫으면 어떻게 하냐고? 마선생은 대답한다. 도망가기도 싫고 굴복하기도 싫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굴복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마선생의 단호한 이 결론에 늘 중학생 형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오동구는 주먹을 그러쥔다. 그리고 알고보면 자기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오동구를 괴롭혔던 형들의 실체를 깨닫고, 그들이 질려 달아날 때까지 덤벼 그들을 물리친다.

드라마가 이렇게만 되면 그래도 마선생의 방침을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신이 난 오동구는 마선생을 존경한다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자고 반 아이들을 독려한다. 그런데, 그런 오동구에 대해, 마선생은 가차없이 그의 실체(?)를 폭로한다. 오동구를 낳은 10대 엄마가, 그를 낳은 것을 저주하며 도망갔다는 사실, 그런 자신을 잊으려고 자꾸 옛날 개그맨들 흉내나 낸다는 사실을.

여기까지 되면 마선생은 영락없이 또 '사디스트'에 가깝다. 그런데 또 거기서 끝이 아니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며 오동구를 몰아가자, 울먹이던 심하나(김향기 분)가 일어서서 오동구의 편을 들어준다. 자기가 오동구를 좋아한다며, 오동구는 좋은 아이라며.

 

 

텔레비젼을 볼 때 가장 편한 방식이 선악 구분이 분명하게 되어 있고, 시청자는 선한 자의 입장에 이입해서 드라마를 따라갈 때이다. 그저 그가 위험에 빠지면 어쩔 줄 몰라하고, 고난을 겪으면 같이 아파하고, 그가 이기면 내가 이긴 듯 신이 나서 박수를 보내면 된다. 그런데 <여왕의 교실>은 그게 안된다.

. <여왕의 교실>을 보며, 주인공인 마여진 선생의 그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대신에,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시대에 수많은 멘토링이 범람하면 할 수록, 젊은이들은 더 갈 곳 몰라하는 것 같듯이, 혀에 단, 어린이를 향한 많은 선의에 입각한 교육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말이 교육이지, 아이든, 선생이든, 학부모이든, 궁극에는 대학 잘 가기란 목표로 일심동체되는 제도 교육에서, 차라리 딱 깨놓고 현실은 이래? 니들 부모들이 원하는게 이런 거잖아 하는 마여진 식 방식이 솔직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솔직한 현실에의 접근이라도, '공포'와 '위협'을 무기로 인간을 길들이는 그 수법에는 동조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이 어떻든, <여왕의 교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고질적 문제인 교육에 대해 직설을 던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언제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 좋게 만든다면서, 하면 할 수록 나빠지는 교육 정책의 문제는, 어쩌면 마여진 선생이 말하듯이, 현실을 외면한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그 우리의 현실에 대해 첨예한 문제 제기를 하는 이 드라마의 원작이 일본 꺼라는 것이다. 2005년 일본 NTV에서 방영된 동명의 <여왕의 교실>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심지어 얼마전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던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를 다뤘던 <직장의 신>역시 2007년 일본 NTV에서 방영된 <만능 사원 오오마에>가 원작이다. 좋은 작품이라면, 사실 어느 나라 꺼가 되었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현재 우리 사회를 현실적으로 다루는 드라마의 원작이 외국 작품이라는 것에서는 적어도 우리 드라마계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 작품이 사회 문제에 완전히 무심했다는 말은 또 아니다.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추적자>도 있었고, 비록 용두사미가 되긴 했어도 사회적 멜로의 장을 연 <보고싶다>의 시도 역시 훌륭했다. 법과 돈의 카르텔을 풍자했던 <돈의 화신>의 시도 역시 신선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가장 화제가 된, 혹은 화제가 될 것같은 드라마가 잇달아 일본 리메이크 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물론 이전에 <꽃보다 남자> 라던가, <아름다운 그대에게> 처럼과 같이 로맨스물에 치우쳤던 리메이크 물이, 이른바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장르물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리고 <직장의 신>에서 보였듯이, 리메이크였어도 일본 드라마의 흔적을 상당히 지운 채 우리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도 있다.

그래도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정서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이다. 겨우 2회이지만, 과연, 마여진의 역설적 교육 방식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이, 온전히 교육 방식의 문제일까? 란 생각이 든다. 일본 사무라이식의 훈련 방식, 혹은 가학적 방식이 쉽게 용인되는 일본식의 정서 혹은 이런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우리 식의 정서였다면, 오동구가 도망치거나 굴복하기 싫다고 했을때, 목숨을 걸라고 했을까?

이렇게 드라마를 보면서, 이게 방식의 문제일까, 국민 정서의 차이일까 고민없이 질좋은 우리 드라마를 보고 싶은 거? 지나치게 편협한 국수주의일까?

by meditator 2013. 6. 14.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