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의 시작은 그랬다.

이미 <7급 공무원>이 선점하고 있는 수목드라마의 제왕 자리를 노리기 위해 sbs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를 수요일에 시작하고, 하루에 1,2회를 몰아서 방영하는 편법을 썼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드라마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전달했던 2회에 힘입어, 작품성 위주라서 시청률을 얻기 힘들꺼라던 예상과 달리 노희경 표 < 그 겨울>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 승승장구 동시간대 1위의 쾌거를 달성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안그래도 <그 겨울>의 편법 편성으로 원성을 얻었던 sbs가 또 그 방법을 쓸 수는 없었다. (물론 다른 방식을 쓰기도 한다. kbs의 <상어> 첫 방송 날,  이른바 72분 룰을 어겨서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10%를 넘기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덕분에 목요일에 첫 방송을 시작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낮은 시청률의 일정부분은 기대작 <그 겨울>의 편법 편성의 탓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이제 심기일전, 일대 반전을 노리고 있는 sbs 수목 드라마가 또 다시 목요일 첫 방이라는 악수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등장한다. 만만하니, 단막극!

 

mbc도 그랬었다.

4부작으로 담을 이야기를 20부작으로 늘렸다 하여 차마 연장은 꿈도 꾸지 못했던 <아랑사또전>이 종영하고 <보고싶다>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못난이 송편>을 방영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 보편적으로 아역들 중심의 이야기들은 시청률이 떨어진다지만, <보고싶다>는 <아랑사또전>의 그나마 간당간당했던 시청률마저 반토막이 난채 아역 시절을 마무리 해야만 했었다.

과연 그간의 편법 편성으로 일그러졌던 sbs 드라마의 순배를 되돌려 놓기 위한 <사건 번호 113>의 편성이 과연 효자 노릇을 할지 다음 주를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정말 얄미운 건(?) 그나마 kbs2는 <드라마 스페셜>이라고 근근이 이어가는 단막극 시리즈라도 있지, mbc와 sbs는 <베스트 셀러 극장>과 <오픈 드라마 남과 여>가 각각 2007년과 2004년 막을 내리 이후 단막극이라고는 <못난이 송편>처럼 땜방용이라던가, <널 기억해>처럼 설날 특집극으로 겨우 1년에 한 편 만들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죽은 아이 뭐 만지기는 아니지만, 한때는 명작 드라마를 보고 싶으면 단막극을 찾아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kbs를 제외한 양 방송사의 단막극은 땜방이나 특집이 아니고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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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벨리)

 

 

단막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다양한 실험작, 더 많은 연출과 출연의 기회들이 기존 드라마의 질을 배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잘 나갔던 시트콤 작가와 케이블 인기 작가들을 수혈해야만 하는, 일본 원작이 빈번하게 번안되는 그럼에도 여전히 어설픈 작품들이 비일비재하게 만들어지는 공중파 드라마의 경쟁력 떨어지는 현실은 한때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던 모 방송국만의 현실은 아니니까.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 할 주제들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겨우 이런 땜방용 특집극에서나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왕따와 학교 폭력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던 <못난이 송편>은 제목처럼 추석 특집극으로 만들어 졌지만 추석에 내보내기에는 부적절하다 하여 창고에 묻혀 있다, 땜방의 기회를 얻어 그나마 빛을 보게 되었었다.

<사건 번호 113>도 마찬가지다.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 시체 실종 사건을 뒤쫓아간 곳에는 고등학교 시절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연이 있었고, 그것을 자기 희생으로 덮으려는 애끓는 모성이 있었다.

왜, 가장 첨예하게 다루어 져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특집이나, 땜방이 아니고서는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직설'로 다루어 질 수 없는 것일까? 시청률이라는, 이제는 믿을 수조차 없는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었던 단막극의 전통을 뭉개버리고, 그나마 남은 kbs 단막극조차 광고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치이게 되는 처지를 만들었다.

드라마가 냉철하게 짚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은 늦은 밤이나, 땜방이 아니고서는 제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이러고도 텔레비젼이 공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런지. '공중파'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런지.

 

<사건 번호 113>으로 돌아가 보자.

이제는 세련되어가는 케이블의 수사드라마들에 비해 어딘가 밑도 끝도 없이 함께 하는 검사와 형사(이분들도 검경 합동 수사반 텐인가요? 어떻게 함께 수사하지요?)의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수사 과정도 단막극이려니 이해가 된다. 추격 장면만 나오면 '예술'을 만들고픈 의욕도 단막극만의 매력같아 보인다. 기태영, 김민서,두 배우의 새로운 모습도 신선했다. 김미숙의 미묘한 모성의 결은 언제나 탁월하다.

무엇보다 하나의 주제로 뚝심있게 밀어부친 실험작에 온전히 배려된 두어시간을 함께 한 것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본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by meditator 2013. 5. 31. 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