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돌아온 김지우 작가, 박찬홍 연출의 복수 시리즈 완결판 <상어>는 복수의 첫 단추를 '첫사랑'이야기로 끼우기 시작하였다.

아련함이 물씬 묻어나는 화면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해우(경수진)와 이수(연준석)는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교실에서, 한 집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그 만남의 끝에는 빗물 속의 두근거리는 이마키스와 '죽을 때까지 너를 찾겠다'는 이수의 고백이 헤어날 수 없는 추억의 도장을 찍는다.

 

 

아이러니하다.

치명적인 복수의 시작이 '첫사랑'이라니, 아니 어쩌면 가장 당연한 수순인가. 죽을 때까지도 가슴 한 구석에서 지워낼 수 없다는 첫사랑, 그 감정의 잔인한(?) 집착이, 전복되었을 때 가장 잔인한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건.

'복수'는 사랑의 가장 반대편에 자리잡은 상대어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선 가장 순수하게 누군가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원한다는 측면에선 사랑과 아주 유사한 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복수'는 동음이의어라 볼 수도 있고, 그랬을 때 그 맞은편에 자리잡은 상대어는 욕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순수한 감정이 또 다른 불순한 욕망에 의해 훼손되었을 때 그 순수함은 또 다른 경지의 순수함으로 자연스레 질적 승화(?)되어 욕망을 깨부수기 위한 복수의 수레바퀴를 가열차게 돌리게 된다는 것일까.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감정에서 부터 시작된 <상어>가 무시무시한 복수극으로 진전되어 갈 것이라는 건, 언제나 그랬듯 인간 본연 심리의 결을 따라 극을 전개시키며 시청자들을감탄시켰던 김지우, 박찬홍 작가의 의도적인 첫 포석이라 하겠다.

얼굴을 징그리고, 눈웃음을 치는 하나하나가 젊은 시절 손예진을 고스란히 빼어닮은 어린 해우(경수진)의 등장은 영화<클래식>이나 드라마<여름향기>의 손예진만큼이나 시청자들을 첫사랑의 감정에 풍덩 젖어들게 한다.

첫 만남부터 해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아이를 위해 겁없이 주먹을 내지르는 소년 이수 역시 멀쓱한 순정 만화 속 그 남자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1회 마지막,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상어를 좋아하는 이수의 말은 곧 이수 그 자신을 상징하는 문구가 될 것이고, 그런 상어가 가장 좋은 이유가 불쌍해서라는 이수의 말은 고스란히 해우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란 건 무시무시한 제목에서 잔인한 복수극의 냄새를 맡은 시청자라면 쉽게 눈치 챌 전형적인 대사들이다.

사실 두 주인공에 홀려있던 감정을 차치하고 <상어>의 1회를 냉정하게 돌아보면, 온통 첫사랑의 클라셰 뻘밭이다. 첫 눈에 반하고, 여자아이는 당돌하고, 남자아이는 모범생이고, 부자인 여자 아이는 외롭고, 엄마가 없이 여동생과 아버지와 사는 남자 아이는 그런 여자 아이의 외로움을 가슴으로 공감한다거나, 자신을 이해해 주면서도 단호한 남자아이에게 여자아이는 빠져든다거나, 가정의 문제로 잠깐의 가출 중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거나. 아주 전형적인 에피소드 투성이이다.

그러기에, 1회를 본 누군가는 너무도 첫사랑스러운 두 주인공과 더불어 그 예의 익숙한 첫사랑 스토리에 덜컹 빠져들어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뻔하고 지루하다며 채널을 돌릴 것이다.

1회 마지막, 가출한 해우를 찾으러온 이수를 죽을 때까지 너를 찾겠다는 대사는 <상어>라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축과도 같은 대사이지만, 1회 동안 진행된 첫사랑의 세뇌당하지 못한 누군가에겐 개연성도 떨어지고 뜬금없는 복선을 위한 복선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복수를 위해, 가장 순수했던 첫사랑을 <상어>는 주춧돌로 삼았다. 하지만, 전형적인 첫사랑 클라셰와 풋풋한 첫사랑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두 주인공, 약간은 일그러진듯한 주춧돌이 무시무시한 복수의 개연성을 튼튼하게 버티어 줄 수 있는지는 애석하게도 미지수다.

by meditator 2013. 5. 28.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