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젼에 나오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물론 이 말이 맞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텔레비젼에 등장하는 많은 사랑이 첫사랑에 기대어 있는 건 사실이다. 1996년 최수종과 이승연의 <첫사랑>이 시청률 60%를 넘겨 전국민 드라마가 되어 사랑을 받던 그때도,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텔레비젼은 첫사랑의 홍역을 앓고 있다.

<상어>는 치명적 복수의 서막을 간절한 첫사랑의 떨림으로 장식함으로써 가족사의 비극에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얹는 치명적 운명을 완성시킨다. 하다못해 새로운 버전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 조차 알고보니 어린 시절의 인연이 있었다. <구가의서>는 또 어떤가? 강치의 잃어버린 첫사랑에 얼룩진 관계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인이다. 그러다 보니, 늘 그렇듯 사람들은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듯하다.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헤드폰을 낀 상대방에게 소심한 고백 한 마디를 남긴 채 쿨하게 상대방을 보내주는 방식이나, 쫌 징징거리다 어쩔 수 없어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는 방식은 안먹히기가 십상일 터이다. 삶은 뻘밭에 굴러도 마음만은 홀쭉~ 아니, 순수하고 싶은 딜레마랄까. 컴플렉스랄까.

어디 우리나라뿐인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일군 거대한 저택도 알고보면, 첫사랑의 쟁취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여기서, 첫사랑에 임하는 남자들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듯 하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 단편 소설 <소나기>의 남자 아이 유형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냇가를 가로 막고 앉아서 당돌하게 말을 건네는 하얀 도회지 아이에게 첫 눈에 반해, 그 소녀가 하자는 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는 지고지순한 유형.

또 하나는 역시나 단편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남자 아이처럼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지 어쩌는지 자신의 감정도 모르는 채 우격다짐 주먹질까지 해대고 마는 찌질한 유형.

'바운스, 바운스'하고 울리는 심장 박동 앞에 쿨함 따위는 도저히 지켜낼 수 없어, 드라마건, 영화건,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들은 이 두 유형 중 어느 것인가의 길에 들어서고 만다.

음악 드라마<몬스타>도 다르지 않다.

'나 스타야!'를 연발하는 윤설찬(용준형 분)은 <동백꽃> 스타일이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양'이라고 생각한다는 민세이(하연수 분)의 속내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직 그녀가 자신을 인지해주지 않는 사실에 씩씩거리느라 늘 헛발질을 해댄다. 그리고 <동백꽃>에서 소년과 소녀의 육박전이 묘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듯이, 대부분 윤설찬의 도발로 인한 투닥거림은 결국 윤설찬의 숨길 수 없는 감정의 축적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정선우(강하늘 분)는 안어울리게 전학생(민세이)를 챙긴다 했더니, 어린 시절 첫사랑이란다. 반에서 아버지와 함께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던 민세이에게 반했고, 전학생으로 다시 한 반이 된 지금, 정선우는 '키다리아저씨'처럼 호시탐탐 그녀를 돕느라 전전긍긍한다.

 

<몬스타>의 이야기나 전개는 다 어디서 한번쯤 본 듯한 것들이다.

윤설찬의 찌질함도, 정선우의 세이바라기도 새롭지 않다. 과연 정말 아이돌 스타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이요, 세상 물정에 어두울까 란 의문 하나 남기지 않고, 윤설찬은 전형적으로 스타이다. 반면 사실 그간 싸가지 없기론 윤설찬 못지 않았던 정선우가 세이의 등장 만으로 저렇게 지고지순하게 변한다는 아이러니도 그렇다. <몬스타>는 일찌기 <꽃보다 남자> 이래로 순정만화 클리셰를 답습했던 모든 드라마들이 그러하듯, 개연성이나 타당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때? 이런 스타일이 너네들한테 먹히지?'라며 납작한 캐릭터들을 들이댄다. 심지어, 윤설찬은 알고보니 가정적으로 고독하고, 민세이에게는 아버지라는 말만으로도 눈물을 흘릴만한 사연까지 아주 셋트메뉴로 그럴 듯한 것 투성이다.

 

뿐만 아니라, 번번히 신체적 접촉(?)을 통한 야릇한 분위기 형성을 빼놓지 않는다. 일찌기 감독의 전작 <성균관 스캔들>에서 선준(박유천 분)과 윤희(박민영 분)의 의도치 않은 신체적 접촉이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큰 몫을 해냈다는 걸 복기라도 하듯이, <몬스타>의 주인공들은 노골적으로 한 회에 한번은 의도치 않게 신체적 접촉을 한다.

단지 3회 차에 불과한데, 벌써 윤설찬의 '나 스타야'라는 자기 확인이 지루하듯이, 이런 게 있어야 청춘 드라마지 라고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신체적 접촉은 어색하다. 심지어, 낚으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 불쾌하기 까지 하다.

 

 

그런데도, <몬스타>는 신선하다.

스토리는 뻔하고, 캐릭터는 진부한데도, 그 진부함 사이를 메꿔주는 음악이 이 드라마의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민세이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한 윤설찬의 피아노 버전의 '무명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어린 시절의 뻔한 첫사랑이지만, 그것을 기억하며 아파트 계단에 앉아 부르는 정선우의 기억 속의 노래는 그 시절 그 감정에 흠씬 빠져들게 만든다. 첫 회 박규동(강의식 분)의 '바람이 분다' 이래로, 매회, 뻔한 클리셰의 위기의 순간마다 등장하는 뜻밖의 음악들이 <몬스타>를 구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뮤직 드라마인가 보다.

by meditator 2013. 6. 1.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