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tv에서는 미래 창조 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창조 경제 특집 2부작 다큐 <상상력이 경쟁력이다> 중 1부, 미래를 위한 선택이 2월 18일 방영되었다.


<썰전>의 패널 중 한 사람인 이철희 소장이 프로그램에서 우스개로 종종 즐겨하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김정은의 마음, 그리고 안철수의 새정치, 마지막으로 박근혜의 창조 경제라는 것이다. 그렇듯, 박근혜 대통령이 새 정부의 슬로건으로 내건 창조 경제는, cj그룹이 매번 목놓아, 자사의 프로그램을 선전하면서, 이것이 창조 경제의 지름길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알듯 모를 듯한 퍼즐과도 같은 게 현실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썰전>의 이철희, 강용석 두 패널은 결국 창조 경제라는 것이 기업의 규제 완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에 공감을 했지만, 기업의 규제 완화가 창조 경제로 둔갑하는 매커니즘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 듯하다. 

그런 세간의 의혹을 풀어주기 라도 하듯, kbs1tv에서는 미래 창조 과학부의 도움을 받아 창조 경제의 실마리를 제공할 다큐를 준비했다. <상상력이 경쟁력이다>라는 제목에서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듯이,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다큐는 우선 핀란드의 국민 기업으로 핀란드 경제를 지탱해 왔던 노키아가 MS사에 인수되는 충격적 사건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세계의 우려와 달리, 핀란드는 노키아란 대표적 기업이 무너지는 것이 곧 핀란드라는 나라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바일 게임 앵그리 버드로 유명한 로비오 등의 콘텐츠 산업이 노키아의 공백을 메워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핀란드 만이 아니다. 한때 가장 높은 실업률로 인해 해가 지는 나라가 되어가던 영국은 블레어 총리 시절 크리에이티브 정책(Creative Britain)을 내걸고 문화 콘텐츠를 주된 산업으로 성장시키려고 애썼고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의 다수가 영국산이라는 소정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벤처 산업의 메카로 이름을 떨쳤던 실리콘 벨리가 소프트 웨어 산업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될 플러그 앤 플레이 테크 센터(Plug&play tech center)에 세계 각국의 인재들을 끌어 모아 활성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상상력이 경쟁력이다>는 이제는 , IT라는 말조차도 시대에 뒤처지는 세상이 되었다며, 인터넷이 컴퓨터나 핸드폰 속이 아니라 사물에 투영되는 시도가 빈번히 이루어 지는 세상에서, 소프트 웨어의 경쟁력, 결국은 그것을 판가름할 창의력, 상상력이 미래 사회의 산업적 경쟁력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KBS1TV에서 소리높여 상상력만이 이제 우리가 살 길이라고 외칠 때, 그와 비슷한 시간에 tvn의 <공유 tv>에서는 재미있는 화제의 인물이 다루어 졌다. 세간에 힐링의 전도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혜민 스님을 패러디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된 인물 '혜믿 스님'이 등장한 것이다. 혜믿 스님은 그의 sns아이디가 허망하다(@humanghada)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혜민 스님의 힐링 어록을 우리 사회에 맞는 촌철 살인의 패러디로 재탄생시켜 공감을 얻어 가는 중이다.

<공유 tv>에서 소개된 여러 혜믿스님의 어록 중 하나는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름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음악을 즐기던 베짱이는 겨울이 다가오자 여름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한 개미를 찾아간다. 그리고 베짱이는 개미에게 '방빼!'라고 말한다. 

(사진; 한국 경제)

여기서 포인트는 베짱이가 여름 내내 놀고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개미네 집 주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혜믿 스님은 말한다. 최고의 힐링은 입금이라고, 집에 돈이 많으면 실수를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일개 패러디에 불과한 혜믿 스님이라는 sns의 글이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시대적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베짱이와 개미는 우리의 현대사에서 무수한 캐릭터로 변주되어 왔다. 경제 개발 시대에는 땀 흘려 일하는 개미가 근면한 일꾼의 상징으로 칭송받았으며,  그 후 다시 시대가 흘러 창의력과 상상력이 중요한, 바로 창조 경제가 내걸고 있는 그 콘텐츠가 부각되는 시기가 되면, 땀을 흘리며 일하는 개미 대신 베짱이가 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예술가로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4년의 sns는 바로 그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베짱이 같이 집주인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88만원 세대처럼 스펙을 걱정하고, 집값을 걱정하며 살아서는 창조력 따위는 없다는 걸 역설적으로 혜믿스님은 말하고 있다. 

<상상력이 경쟁력이다>는 의기 양양하게 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가 창의력과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콘텐츠 산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기서 예를 들은 핀란드와 실리콘 밸리의 현실은 하나만 보여주고, 둘은 보여주지 않는다. 핀란드라는 나라를 지탱하던 대기업 노키아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핀란드라는 나라를 건재하게 만등러 주는 여러 작은 기업들은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해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핀란드라는 나라의 사회적 기반이 그 뒤에 있다는 말은 드러나지 않는다. 벤처 기업의 모태인 실리콘 밸리를 설명해 주는 또 다른 단어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라는 걸 설명하지 않는다. 

노키아가 무너진 핀란드의 건재를 부러워 하기 전에, 과연 우리나라 전체 예산보다도 더 큰 규모가 되어버린 삼성이 무너져 버려도 대한민국이 건재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지탱해 줄 중소기업들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라는 질문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전제가 생략된 질문, 그리고 전제를 무시한 질문은 다시 허겁지겁 또 하나의 과제만을 젊은이들에게 부여할 뿐이다. 영어 공부에, 인턴에, 자소서에, 거기에 얹어서 이제 창의력과 상상력도 스펙으로 쌓아야 하는 버거운 과제를. 크리에이티브한 영국을 이끌고 있는 테크시티의 관건은 싼 임대료와 싼 음식값이었다는 게 포인트다. 과연 오르는 집세를 걱정하고, 학교가 끝나기가 바쁘게 뛰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춘에겐 창의력이나 상상력은 경쟁력이 아니라, 사치일 수가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2. 19. 02:27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눈밭을 비칠비칠 걸어가던 배우 윤계상은 자신이 지나왔던 과거에 대한 후회의 변을 늘어놓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그리고 드라마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무고시 합격을 기다리던 정세로(윤계상 분)는 그가 면접 시험에서도 말했듯이 세계를 떠돌지만 떠돈 만큼 성과를 얻지는 못하는 아버지가 있는 방콕으로 그를 만나러 떠난다. 그리고 그말고 그곳을 향해 떠나는 또 한 쌍의 커플이 있다. 정세로가 우연히 꽃배달을 가서 그의 눈에 띄었던 여인, 재벌의 딸이자, 쥬얼리 업체 벨 라페어의 대표인 한영원(한지혜 분)과 그녀의 약혼자 공우진이다. 그들은 방콕에서 열리는 쥬얼리 페어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을 향하지만, 세로의 아버지 정도준(이대연)과 박강재(조진웅), 서재인(김유리)이 그들의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공우진(송종호 분)이 눈치채는 바람에, 그리고 다시 세로의 아버지가 배신하는 바람에 사건은 복잡해 지고, 그 과정에서 공우진과 세로의 아버지가 죽게 된다. 

억울하기로 따지자면 외무고시 합격을 한 마당에 손에 수갑을 차고 살인자의 누명을 쓴 채 아버지의 입원비조차 마련치 못해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정세로나, 그 하나만 믿고 의지했지만 하루 아침에 약혼자가 다이아몬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주근 한영원이나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는 '복수'를 위해 한영원의 복수는 약혼자를 잃은 상심으로 덮어 잠시 미뤄둔다. 반면에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태국 감옥에 갇혔던 정세로는 그를 면회 온 박강재의 말 한 마디만 믿고 '벨 라페어'를 아버지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라, 복수의 대상이라 여긴다. 


언제나 우리나라 드라마의 복수극의 주인공들이 그래왔듯이, 복수에 눈이 먼 주인공은 맹목적으로 복수를 향한다. 5년이나 감옥에 있으면서, 한번도 냉정하게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지 못한 채, 언제나 가장 믿지 못할 조력자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의 운명을 넘기는 어수룩한 태도로 일관하고, <태양의 가득히>의 정세로 역시 그 전례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의 맹목성이 결국 첫 장면 정세로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후회하는 그 지점이 되어, 정세로와 한영원의 비극을 낳을 것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정세로의 오해가, 결국 한영원과의 악연을 풀 실마리가 될 것이다. 결국, 박강재의 근거도 없는 말 한 마디가 <태양은 가득히>의 전체 플롯의 견인차가 된다. 덕분에, 드라마는 첫 장면부터 비장하게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5년 전을 오가며, 복수의 실타래를 풀어내지만, 그 실타래가 어딘가 엉성하게 감긴 듯하다. 심지어 현실에서는 가장 엘리트적인 주인공들은 '복수'의 노예가 되어, 언제나 그래왔듯,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해코지 하고자 노력한다. 

제목 역시 그러하지만, 1회부터 주구장창 되풀이 되는 ost에서도 깨닳을 수 밖에 없듯이, 알랭 들롱이 분한 톰 리플리의 야망을 향해 달렸던 영화는, 이제 복수를 위해 야망을 이용하는 청년 정세로의 입지전적 성공기로 돌변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만 믿고 맹목적으로 복수에 뛰어든 청년 정세로의 복수가 리플리의 야망만큼 공감을 얻을 지는 미지수다. 
태국 경찰에서 그를, 그녀를 만나야 한다고 외쳤던 두 사람의 절규처럼, 결국은 하나의 사건에서 조력자여야 하는 두 사람이, 복수의 대상과, 복수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만나는 아이러니는 무척이나 극적이다. 복수극만큼이나, 진실을 안 이후의  두 사람의 행보가 <태양은 가득히>의 후반전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복수극이든, 그 이후의 또 힘을 합친 복수극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시작은 주춧돌이 되는 사건들의 개연성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주춧돌이 얼기설기 놓인 복수를 위한 복수극은 허황하다.


by meditator 2014. 2. 18. 02:07

'추억팔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추억을 팔아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용어로, 말 자체의 뉘앙스로도 알 수 있듯이 그다지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하다하다 오죽해서 할 것이 없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추억이라도 팔아 관심을 끌려고 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시간 위의 존재로써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과거의 그 무엇에 약하다. 더구나, 그 과거가 나와 연관된 고리를 가지는 한에서 더욱. 

지난 주 방영된 <1박2일>이 설날 서울의 명소를 그저 장소가 아니라, 멤버들의 과거, 그들의 아버지 세대의 시간과, 아들 세대의 시간이 중첩된 장소로써 자리매김되어,  그것들이 그간 다녀온 여행지 중 하나가 아니라, 멤버들에게, 그리고 그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의 의미로 다가온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에 덧붙여 <1박2일>의 추억 여행은 계속 된다. 지난 주의 방영분이 <1박2일>의 멤버 개개인의 추억이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2월 16일에 방영된 <1박2일>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써 <1박2일>이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을 추억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주도 그렇고, 이번 주도 그렇고, <1박2일>이 추억을 되새기는 방식은 현존재적이다. 
보통하는 추억팔이라 하면 '그땐 좋았지'라는 회고조가 되어, 말하는 자의 감상에 빠져, 공감의 시점을 놓치기 십상이나, <1박2일>은 추억을 현재의 그 무엇처럼 불러온다. 
방금 전 명동 성당을 다녀왔는데, 몇 십 년 전, 나보다도 더 젊은 아버지가 명동 성당에서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은 오히려 보는 과거가 현재인 듯 느껴진다. 마찬가지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가족 오락관>의 mc인 허참을 모시고, 멤버들을 여성 팀과 남성팀으로 나누어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추억의 <가족 오락관>은 그저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지라던가, 좋았었지라는 감정을 넘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정말 좋았던 그 무언가를 놓쳐버린 것 같은 감정의 수위를 찰랑거리게 만든다. 

(사진; 리뷰스타)

특히나,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몇몇 게임에서 보여지는 명mc 허참의 명불허전 능력은, 어떤 안타까움마저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최근,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면서, mc의 능력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 몇 마디의 말로 진행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진행 실력을 보여준 허참의 모습에서, '레전드'라는 단어의 정의가 새삼 깨달아지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만나보기 드문 허참이라는 명 mc, 그리고 또 그만큼이나 만나보기 힘든 '가족'적인 오락 프로그램의 분위기에서, 정신없이 흥겹게 웃어제끼다 문득 우리가 이제는 흘려보내 버린 과거가 되어 버린 어떤 정서에 문득 가슴이 시큰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가족 오락관>이 돌아와도, 그 몫은 자기가 아니라는 허참의 한 마디에, 손가락 틈으로 흘러내려가는 모래처럼 잡을 수 없는 과거를 흘러보냈음을 깨닫게 된다. 

묘하게도 잠시 만난 가족 오락관은 지난 주의 아버지와 아들이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된 합성된 사진과도 닮았다.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된 mc허참과, 그가 활동하던 당시 신세대나, 유망주로서 <가족 오락관>에 참여했던 멤버들이 이제 주역이 된 프로그램에서 <가족 오락관>을 추억하는 방식은 합성된 가족 사진과도 같은 감회를 불러온다. 잊고 살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내 아버지 세대의 누군가도 여기 이렇게 살았었다는, 박제된 추억이 아닌, 과거의 어느 공간에선가 현존재였던 추억을 존중하게 만든다. 

설날맞이 <1박2일>은 <1박2일>이면서도 <1박2일>답지 않았다, 늘 장소를 찾아가서 그  곳에 정박된 배처럼 그 장소의 이것저것을 탐색하는 <1박2일>의 본래적 활동은 지속하되, 그것을 탐색하는 자세는 이전의 것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음을 설날 특집 <1박2일>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제 시즌3에 들어서, 더 이상 어디 가볼 데가 있겠어가 아니라, 그 전에 가본 곳을 또 가더라도, <1박2일>이 전혀 다른 추억을 우리에게 남겨줄 것같다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by meditator 2014. 2. 17. 10:27

'귀농' 말 그대로 농사에 귀의하는 귀농이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닌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그 전해에 비해 158% 증가하여 만 가구(10, 503 가구, 23,415 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 수원 농업 진흥청 귀농귀촌종합 센터에서 상담자  1000 여 명한 중 무작위로 선정해 조사를 놓고 봐도, 그 전해에 상담자 중 실 귀농자가 11%에 불과한 것에 비해, 16%의 상담자가 이미 귀농을 했고, 52%가 귀농을 준비중 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귀농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삶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런 사회적 현상인 '귀농'이 리얼 버라이어티로 들어왔다. 
물론 농촌으로 향하던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간 종종 있어 왔다. <패밀리가 떴다>는 농가를 빌어 농촌 체험을 리얼 버라이어티의 소재로 삼았고,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한 <사남일녀>의 첫 꼭지도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 마을로 찾아 들었었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농가라는 배경을 리얼 버라이어티의 소재로 삼았을 뿐이고, <사남일녀> 역시 체험의 시한이 한시적이다. 아니 '귀농' 자체가 목적이 된 적도 있었다. <남자의 자격>에서 야심차게 농촌에 땅을 빌어서 일년 농사를 짓겠다는 포부를 내비쳤었지만, 다른 미션에 짖눌려서, 일년간의 귀농은 멤버들이 농사짓는 모습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을 맺고 말았다. 이제 그 <남자의 자격>에서 결실을 얻지 못했던 '귀농'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전면에 내세워 졌다. tvn에서 새롭게 시작한 <삼촌 로망스>는 6개월간의 농촌 재생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네 남자의 농촌 정착기를 다룬다. 

(사진; tv리포트)

프로그램의 목적이 귀농인 만큼, <삼촌 로망스>의 시작 역시 만만치 않다. 앞서 수원 농진청 귀농귀촌 종합 센터 상담자 중 32%가 상담 과정에서 귀농을 포기하고, 실제 귀농만큼 낭만적으로 귀농을 했다가 현실이 여의치 않아 귀농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시점에서, <삼촌 로망스>는 귀농을 꿈꾸는 네 남자 양준혁, 강레오, 강성진, 양상국의 귀농 면접부터 까다롭게 보면서 '귀농'을 시작한다. 그저 프로그램 하나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삶의 선택으로서의 '귀농'의 무게감이 <마스터 세프 코리아>의 무서웠던 심사위원 세프 강레오가  면접관들 앞에서 흘리는 식은 땀에서 현실감있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실제 귀농 인구의 평균 연령은 52.4세로(2011년 기준), 그 중 40대의 귀농 인구도 25.4%를 차지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귀농 인구 중 중장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 <삼촌 로망스>도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네 남자의 평균 연령이 40.3 세이다. 이들은 각자 한때 잘 나가는 야구 선수이거나 배우였지만, 제2의 인생으로 귀농을 생각하고 있거나, 요리사로써 자기 요리의 재료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로망을 지니고 있거나, 태어날 때부터 농가에서 자랐기에 농촌에서의 삶을 꿈꾸는 구체적 목적을 가지고 '귀농 면접'에 임한다. 즉, 그저 리얼 버라이어티의 멤버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이라는 특정의 삶의 형태에 맞도록 각자 삶의 조건에서 그 목적이 배태되어 나올 수 있도록 제작진은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멤버인 줄 알면서도, 막상 면접관 앞에서 그들의 소견이 그리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들처럼 많은 도시인들이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저렇게 귀농을 시작할 것이란 막연한 공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의 특성을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귀농 면접은 현실감있게 진행되었다. 양상국이 가져온 아메리카노와 부셔먹는 과자로 무마될 정도 면접이 호락호락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진심만 있다면 어찌 넘어가 볼 수 있는 대인 면접이라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에 이은 실습 장작 패기와, 실제 농장 체험 과정은 힘으로는 자신감이 넘치던 양준혁조차 신음 소리를 절로 낼 만큼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물론 장작 패기를 농촌 실습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수의 농촌 체험 프로그램들이 다짜고짜 농촌에 찾자들어 살기 시작하는 것과 달리, 실제 정착 과정이 5~7년이 걸린다는 귀농의 무게감을 '면접'이라는 과정을 통해 다루려고 한 것은 기존의 프로그램들과 차별성을 둔 지점이었다. 또한 그들이 살고자 찾은 강원도 인제군 소치 마을에서 기대와 달리 이장님의 냉랭한 반응이 그대로 방영된 것 또한 설정일 망정 '귀농' 프로그램으로서의 리얼리티를 살린 측면이다.

그저 막연한 농촌 체험이 아니라 '귀농'이라는 목적 의식성을 가진 <삼촌 로망스>의 첫 회는 그 목적에 어울리는 첫 발을 내딛은 듯하다. 동상이몽의 네 남자의 개성도 기대해 볼만하다. 부디 앞으로의 과정에서도 현실의 '귀농'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과정을 통해 잘 버무려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2. 16. 11:49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마녀'라 지칭하며 남녀 간의 연예에 대해 갑론을박할 때만 해도 <마녀 사냥>이 뭐야? 했었다. 하지만, 2013년 8월에 시작하여, 불과 반년 정도가 지난 지금,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소리높여 말한다. 매주 즐겁게 시청하고 있어요~.  군대간 아들의 전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가장 즐거이 시청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마녀 사냥>이라고 한다. 어느덧 이 프로그램에서 묘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출연자의 머리 위에 퍼지는 초록빛 기운과 시그널이 타 프로그램에서도 도용되어도 전혀 이물감이 없는 상징이 되었다. 시청률 표에 잡히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마녀 사냥>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사진; 뉴스웨이)


그래서 이제 <마녀 사냥>은 위험해 졌다. 그저 어느 종편 방송국 구서진 스튜디오에서 출연자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누군가의 연애를 도마에 올려놓고 회를 칠 때만 해도, 그저 저런 시각도 있구나 싶었지만, 이제 동시대의 연애 코칭의 상징적 프로그램이 되어가는 <마녀 사냥>에서는 권력의 향기가 난다. 
들여봐 주는 사람들이 적을 때의 <마녀 사냥>에서 곽정은 에디터가 외국의 유명(?) 박사나 연구 기관의 실험 결과를 들먹일 때만 해도, 그녀의 이야기는 그저 각자의 사견에 불과한 연애론에, 조금은 더 객관적인 데이터처럼 보였지만, 이제 다수의 관심이 쏠린 <마녀 사냥>에서 그녀가 매주 들먹이는 이론들은 마치 교과서처럼 신봉되어질 가능성을 보인다. 특히 그린 라이트를 켜줘가 그저 네 남자의 지극히 남성중심적 뒷담화와 거리의 반향을 모으는 수준에 그친 다면, 그린라이트를 꺼줘에 이르면 좀 더 넓은 스튜디오에서, 나름 연예에는 일가견이 있네 하는 출연자에서, 방청객의 선택까지, 연예 재판정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린 라이트의 불이 거의 꺼진다면, 당연히 질의자의 연애는 '쫑'을 내야 하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즉 연예가 남녀간의 사설이 아니라, 공적 담론이 되어 도덕적 잣대에 따라 정해지게 되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마녀 사냥>을 통해 등장하는 질문들의 경향이 묘하게 달라져 간다. 처음에 그저 그린 라이트를 켜느냐, 끄느냐처럼 이것이 사랑인가 아닌가 라는 자신도 헷갈리는 연애에 대한 질의 정도였다면, 언제인가 부터 자꾸만 출연자들에게 자신의 연애를 결정해달라는 식의 질문들이 등장한다. 원컨 원치 않건 출연자들이 질의자들의 연예 멘토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향을 인지한 듯, 출연자들이, 자신들의 그린 라이트 켜고 끄는 결과와 상관없이 결정은 질의자의 몫이라는 언급이 부쩍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연예는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미련이 남는다는 부연 설명도 붙여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게 더 책임감있어 보이는 한 발 빼기가 시청자들에게는 겸손으로 비춰져 더 신뢰의 도를 더할 뿐이다. 

물론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척도의 연예 담론으로 시작된 <마녀 사냥>이 마치 이 시대의 대표적 연예 코칭 프로그램화 되어가는 것에는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탓이 클 것이다. 도무지 공부 외에서 그 어떤 것도 가르쳐주거나, 의논해 주지 않는 사회, 그저 공부만 하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우왕좌왕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풀기 위해 골몰하다, 이제 금요일 밤 텔레비젼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거기에서만은 가식적이지 않게, 연애에 대해 속시원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듯하니까.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며, 어느 카페, 어느 사이트의 게시판을 헤매며 공인되지 않은 연애의 담론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검증되지 않은 의견들에 비하면 tv프로그램화 된 <마녀 사냥>의 공신력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진; 스포츠 한국)

결국 이것은 그저 출연자들의 사견이라는 첨언도 중요하지만, 지금 <마녀 사냥>이 처하게 된 위치에 대한 책임감을 제작진이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보여진다. 그저 우리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 혹은 시청률이 높아 라는 자부심이 아니라, 연예 상담에 갈 곳 몰라 목말라 하는 청춘들이 <마녀 사냥>이라는 연못에 우르르 모여드는 현상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유연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 시점이라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2월 14일 게스트로 출연한 문소리의 입장은 의미심장하다. 20 대 초반에 만난 그 한 사람이 내 평생의 사람이 아니라는 넓은 시각 아래, 차이기도, 차보기도, 심지어 매달려 보기도 하며 다양한 연예를 경험하라는 그녀의 시각이 <마녀 사냥>에 역시 필요한 시점이라 보여진다. 


by meditator 2014. 2. 15. 11:35

2월 13일 <관능의 법칙>이 개봉했다.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가 2003년 개봉한 이후로 부터 거의 10년, 마치 그 영화 속 삼십대들이 십년 후의 후일담을 다루듯, <관능의 법칙>은 마흔이 넘은 여자들의 속사정을 들춘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여주인공들의 질펀한 관능의 한 판으로 시작된다. 일주일에 세 번을 하겠다는 약속을 결혼 초부터 굳건하게 지켜오는 미연(문소리), 남편 재호(이성민)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재 안에서 조심스레 비아그라를 털어넣고 아내의 요구를 맞추느라 애쓴다. 다 큰 딸과 사는 싱글맘 해영(조민수)은 딸아이의 눈을 피해 성재(이경영)와의 시간을 갖기위해 궁색하다. 물심양면으로 도와가며 오랫동안 사귀었던 직장의 상사가 어린 여자랑 결혼해버리는 바람에 분노에 떠는 것도 잠시, 그의 어린 연인 못지 않은 연하남의 대쉬에 곧드미스 신혜(엄정화)는 흔들리고. 영화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삶의 욕구를 성욕으로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질펀하게 육체의 향연을 벌인다. 사랑이라 쓰고 '성'이라 오독하듯이. 

하지만 그도 잠시, 동년배의 여자들을 만나면 늘상 하는 얘기라곤 누가 암걸렸네 라는 식의 건강담론 밖에 없어서 재미없다던 미연의 뒷담화가 무색하게,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딸이 '적당히 하라'며 퉁박을 줄 만큼 만끽하며 삶을 누렸던 그녀들에게 삶의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녀들이 사실은 가장 믿고 의지하던 삶의 보루들이 흔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금과옥조처럼 믿었던 부부사이의 불문율이 흩어지고, 골드미스로서의 삶을 지탱하던 직장에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결혼에 대한 희망의 무산조차도 무색하게, 싱글맘의 삶을 견인하는 건강이 무너진다. 
그리고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이라도 되는 양 육덕스레 중년의 삶을 묘사하던 영화는 이즈음부터 슬슬 현실에 발을 디디기 시작하고, 남편의 바람난 현장을 목격한 미연, 수술실로 들어가는 해영에 이르러 그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은 극점에 이르고, 중년의 삶을 묘사하는 영화의 미덕은 이 지점에서 가장 생기가 돋는다. 

[취재파일] 6주차 추천작: 관능의 법칙 관련 이미지

하지만 그도 잠시, 잠깐 숨고르기를 한 영화는, 중년의 신산한 삶을 견딜 수 없었는지, 당의정처럼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걸 포장한다. 결국 관능으로 시작된 그녀들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들을 지켜주고 바라봐주는 순정남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의 원작이 롯데 엔터테인먼트 공모전 1회 수상작인 이수아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두에 권칠인 감독을 내세운 이유는, 중년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소재적 특수성을 차치하고 보면, 영화의 얼개는 그간 권칠인 감독이 만들어 온 <싱글즈>를 비롯한 <뜨거운 것이 좋아>, <참을 수 없는>와 동일하다. 심지어 신혜에게 등장한 연하남의 설정에서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영미(이미숙> 앞에 나타난 연하남 경수(윤희석)가 오버랩된다. 아니, 다짜고짜 몸부터 맞추고 사랑을 시작하는 방식은 권칠인 감독 영화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사랑의 해법이다. 뿐만 아니라, 삼십대 라는 나이에서 오는 현실적 고민을 결국 나난(장진영)과 수헌(김주혁)의 사랑으로 마무리지은 방식처럼, 환타지적 사랑으로 현실의 고민을 무마하는 방식 역시 일관되게 감독의 영화적 스타일(?)이다. 

그래서 늘 권칠인 감독의 영화에서 그래왔듯이, 삼십대든, 그보다 더 나이든 중년이 되었든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듯한 관음의 민망함과, 그걸 지나 현실적 공감의 깊이에 빠져들었가가, 서둘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 영화를 보고 나면 어쩐지 허무한 것이다. 과연 이 영화가 목적한 것이, 진짜 삼십대, 혹은 중년의 삶과 고민인지, 그게 아니면 그럴듯한 주제 의식으로 포장한 환타지적 사랑과 육욕의 향연이었는지. 

영화는 100일의 말미에도 불구하고 이미 잠시 바람이 난 남편에게 마음이 돌아선 미연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연 일주일에 세 번 하는 것을 '신봉'하였던 육체적 삶이 중심이었던 미연이라는 여성의 삶에 대한 고민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정'으로 사는 재호와의 삶이 미연에게 의미가 있을지 영화는 고민하지 않는다. 성을 중요시하지만, 정작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성의 의미를 고뇌하지 않는다. 
자신이 암을 걸렸다는 사실조차 그에게 숨겼던 해영의 자존심은, 그녀의 똥물 묻은 침대 시트조차 닦아주고, 그런 그녀를 보다듬어 주는 성재 앞에서 스르르 사라지고 만다. 이기적이었다는 후회로 결혼을 회피했던 성재의 고민은 서둘러 마무리된다. 
홀로 서기를 한 신혜에게 손을 내밀어 준 현승(이재윤)만 있다면 오케이다. 이모와 조카 정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현승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정말 그녀들의 중년의 삶에 여전히 그녀들을 사랑하는 그들만 있다면 다 해결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건 영화 자체 담론의 한계라기 보다는, 우리 시대 과학적 도움을 받아서라도 여전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중년의 담론에 대한 즉자적 반영일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내 곁에 나를 사랑해 주는 누군가만 있다면 나의 중년은 견딜만 한 것일까. 결국, 영화는 관능도, 사랑도, 결국은 중년의 삶도 깊게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 

늘 광고에 함께 하듯이 이 영화는 <건축학 개론>을 만들었던 명필름의 작품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결국은 다시 봉합되어질 수 없는 젊은 날의 아픈 추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사는 중년에겐 용기와 사랑이 필요하다고 판단 했는지, <관능의 법칙>은 중년의 고민을 좀 더 들여다 보고 여운을 남기는 대신, 서둘러 사랑하는 남자를 쥐어주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덕분에 환타지는 얻었지만, 관능으로 시작된 중년의 문제제기는 휘발된다. 모처럼 몸에 맞춘 캐릭터를 만난듯한 세 여배우의 열연, 그에 못지 않는 이성민의 발군의 연기, 모처럼 만나는 이경영의 멜로가, 그래서 더 아쉬운 영화, <관능의 법칙>이다. 


by meditator 2014. 2. 14. 11:14

신정태(김현중)의 아버지 신영출(최재성)이 죽었다.

가야의 아버지 신죠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그 누명을 벗기 위해 아내와 자식들을 내버려 둔 채 평생을 떠돌아야 했던 한 사람의 주먹이 죽었다.  가야의 아버지를 죽이기는 했지만, 모든 숨통과 혈이 끊어져 고통에 몸부림치던 동료의 가는 길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였듯이, 그 역시 신죠의 딸 가야의 도움으로 이승을 하직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누구냐고 절규하는 가야 앞에 모든 것은 자신들의 세대로 끝내야 한다는 회한 만 남긴 채, 그의 업보를 고스란히 아들 신정태에게 남긴 채 아버지 신정출은 죽어갔다.

그리하여 원하건 원하지 않건 상해로 온 신정태에게는 또 하나의 복수가 지워진다. 아버지의 숨통을 끊었다며 신정태를 도발할 가야,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 아버지를 죽인 그 누군가. 뜬금없고 불친절했던 마치 방송 사고처럼 등장한 아버지의 죽음의 배후에는, 떠나는 그를 잡으며 자꾸 그러시면 자신이 우두머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정재화(김성오)가, 그게 아니면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덴카이(김갑수>의 사주를 받은 아카(최지호)가 있을 수도 있겠다. 불친절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결국, 다시 정태를 또 다른 복수의 길로 들어서게 만드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정태에게는 동생을 찾겠다던 맹목적인 목적 외에 또 아버지의 복수라는 하나의 목적을 암묵적으로 생성됨으로써 그가 등장한 상하이에서 그의 활약을 추동한다. 

<감격시대>이 주인공의 추진력은 개인적 원한이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동생을 구하기 위해, 혹은 여자를 구하기 위해 정태는 주먹을 휘두르고, 그가 주먹을 휘두르는 횟수에 따라, 주먹 세계로 그의 발걸음은 깊어진다. 가야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킬빌>의 주인공처럼, 부모의 복수를 향해서 무차별적으로 전진한다. 지극히 맹목적이고 단선적인 주인공들의 감정이 드라마의 씨줄이라면, 그들이 개인적인 포한을 풀어내는 그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조직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주먹 세계가 드라마의 날줄이다. 주인공들은 원수를 갚기 위해 저돌적으로 적을 향해 치닫고, 그들을 맞이하여 주먹 세계는 자신의 편의대로 그들을 자신의 편에서, 혹은 적으로 하여 이용한다. 드라마에서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애닮은 감정선에 휩싸인 복수지만, 결국 제 아무리 미화한다 한 들 결론이 되는 것은 주먹 세계의 승부일 뿐이다. 

(사진; 이타임즈)

영화 <신세계>가 상영되었을 당시, 그리고 그 이후로도 쭈욱 영화는 다수의 남성들과, 그 못지 않은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경찰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을 이용해 먹기만하던 사람들, 하지만 그에 반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형제로 대접하던 또 다른 사람들, 그 사이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듯하면서 결국 모든 것을 차지해 버리는 이자성의 결단은 매혹적이다. 이리저리 치이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거기에 빠져있는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형제애란 이름으로 범죄 세력을 선택하고 마는 경찰 이자성의 부도덕말이다. 아무도 경찰로써의 이자성의 도덕정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영화<신세계>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 세대의 대변자 같기도 하다. 사적인 목적이든 복수든 무기를 들고 누군가를 해친 사람이라면 결코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씁쓸한 도덕적 결론에 이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용서받지 못한자>의 혜안은 멀다. 

 <감격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매회, 주인공들의 복수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골몰한다. 뜬금없이 길을 떠난 애비를 피범벅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풍차(조달환)처럼 주인공들을 돕기 이해 나선 선한 사람들은 다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은 주인공들에게 짊어져지고, 주인공들은 그 죽음을 되갚기 위해 이를 앙다물고 결투에 나선다. 결코 한번도 주인공이 스스로 주먹이 좋다거나, 주먹질을 하고 싶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그녀의 삶은 불가피했고, 그들은 운명 속에 수동적으로 휘말려든 객체일 뿐이다. 그래서 주먹을 쓰는 것이 옳거나, 그르거나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의 또 다른 날줄인 주먹 세계에서 정당하다. 드라마 역시 정당하다. 그저 주인공들의 복수극을 그려내는 것이기에, 결국은 주먹세계 이합집산을 다루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언제나 변명하고 또 변명한다. 주먹으로 하는 복수는 불가피하다고. 결코 주먹 세계의 매력을 그리는게 목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나 드라마 <감격시대>에서 가장 공들이고 화려한 장면은 누군가와 누군가와 맞붙어 피터지게 싸우는 장면이다. 


by meditator 2014. 2. 13. 10:14

4년이 넘도록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끌며 세상 모든 진기한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세 mc 이경규, 김구라, 김성주가 다시 뭉쳤다. 이번엔 sns다.

2월11일 첫 방영된 <공유 TV좋아요>는 SNS상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으며 화제가 돠었던 내용들을 TV를 통해 다시 한번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첫 방영된 <공유 TV좋아요>에서는 유상무, 레이디 제인, 홍진호, 육성재 등의 패널들이 자리를 함께해, 64만명이 공유한 돈주고도 욕먹는 '쌍욕 라테', 연예인들 조차 요청한 '포샵해 드립니다', 3분이면 완성되는 '나만의 영화관', 96만명을 울린 악플없는 댓글 릴레이  등이 소개되었다. 

하지만 SNS를 공유한다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화성인 바이러스>의 세 MC가 고스란히 자리를 이어받은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공유 TV좋아요>는 소재가 고갈되어 폐지된 <화성인 바이러스>의 SNS버전과도 같다. 화성인 바이러스가 회자되던 화제의 인물들을 끌어모아 그들의 면면이 던지는 충격적 내용을 프로그램의 근간으로 삼았던 것처럼, <공유 TV좋아요>는대신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들을 끌어모은 식이다.

바로 거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화성인 바이러스>가 상식을 벗어난 충격적 면모의 인물들로 화제를 모아왔던 것에서 볼 수 있었듯이, 결국 프로그램의 관건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는가'였다. 그러기에,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어받은 듯한, <공유 TV좋아요>도 그 정서를 이어받을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놓인다. 이는 이른바 '화제성'이라는 것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TV리포트)

과연 SNS에서는 어떤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까? 빈번하게 방영되었던 예고와 달리, 네 꼭지로 나뉘어 소개된 내용들은, <공유 TV좋아요>가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어받을 만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미약했다. '욕라테'의 반전 매력은 신기했고,'포샵해 드립니다'는 오묘했고, '나만의 영화관'은 기발했고, '댓글 릴레이'는 감동적이었지만, <공유 TV 좋아요>가 딱히 이렇다 하는 프로그램의 정서를 형성하는데는 전체적으로 산만했다. SNS 상에서는 제 아무리 화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기기묘묘한 사람을 앞지르기에는 화제성 면에서 미흡하였던 것이다. 결국 또 다시 <공유 TV 좋아요>가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을 TV라는 매체를 통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부담없이 순간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이상의 리모컨을 유지할 인내심을 가질 만큼의 화제성이 필요하다. 그렇지않다면 <세 얼간이>처럼 신기한 것들만 잔뜩 소개하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비운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 

화제성 면에서 만이 아니라, 과연 젊은 매체 SNS의 화제성을 이어가기에 <화성인 바이러스>의 세 MC가 적절한가도 또 하나의 딜레마이다. 요즘은 하다 못해 맛집 선정 프로그램 하나에도 실시간으로 SNS 상에 사진을 올리고 교감을 하는 식의 첨단의 진행을 도입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공유 TV좋아요>는 21세기의 내용들을 가지고, 20세기의 MC가 진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전히 <화성인 바이러스>의 진행 방식을 고수하는 이경규, 김구라, 김성주의 진행 방식이, 과연 SNS 시대의 화제들을 공감시키는데 적절한가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상에서 공감의 온도와, 스튜디오 안에서의 공감의 온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화성인 바이러스>가 누가 봐도 화성인 같은 사람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각을 세 MC가 대변했었다면, 첫 방송을 한 <공유 TV좋아요>는 보통 사람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SNS 시대에 괴리된, 혹은 뒤처진 사람들의 정서가 종종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가 화성인이 아닌 한에서, 그 괴리감은 '좋아요'를 눌렀던 세대와의 괴리감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 이경규를 필두로 해서, 김구라, 김성주가 21세기의 담론들을 그들의 정서에 맞춰 젊게 소화해 낼 수 있는가이다. 부디 <공유 TV좋아요>가 그 예전 처음 양초를 보고 끓여서 다 함께 나눠먹던 식이 아닌, 젊은 세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신선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12. 10:18

2월 10일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3>에서는 두 나쁜 년의 대결이 그려졌다. 

여기서 대결이라고 해서 칼을 휘두르며 싸운다거나, 아니면 하다 못해 지난 번처럼 머리끄댕이를 잡고 육박전을 벌이는 그런 대결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해 먹는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여주인공 신주연(김소연)과 불가피하게 함께 일하게 된 오세령(왕지원)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친구였던 주연이 자신이 사랑하는 강태윤(남궁민>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우정을 이용하기로 한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여전히 신주연이 사람의 감정 앞에서는 나약해 질 거라는 지레 짐작으로, '우정'의 이름으로 신주연을 옭아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전이었다. 신주연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잘못했다며 꼬리를 내리고 우정의 이름으로 다가온 오세령의 행동이 강태윤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 우정에 넘어간 듯이 행동한 것이다. 
드라마 말미 그런 속내를 들은 주완(성준>은 말한다. 자신이 나쁜 짓을 했다고도 깨닫지 못하는 네가 더 나쁘다고 말한다. 네 곁에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하지 말라면서. 

(사진; tv리포트)

tv속에 등장하는 일하는 여성들, 그것도 이른바 전문직의 커리어 우먼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결같이 신주연스럽거나, 오세령스럽다. 
여기서 신주연스럽거나, 오세령스럽다는 것은, 마치 여린 속살을 꽉 다물은 석회질의 껍질로 보호하듯,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으로 변화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제 그녀와 함께 살며 그녀를 변화시키는 주완이 등장하기 까지 신주연은 그녀의 동료가 폐경 등의 고민에 빠져도 그건 당신의 일이라며, 심지어 회사 일에 방해가 되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신주연만이 아니다. 오세령 역시 자신은 누구와 우정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우정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역시 자신이 갖고픈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를 편다. 어디 두 사람 뿐인가. 같은 사무실의 정희재(윤승아) 역시 오랫동안 사귀어 온 남자 친구에게 행시에 붙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사귈 의미가 없다고 퍼붓는 극단적 사고 방식을 내보인다. 

(사진; osen)

<로맨스가 필요해3>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김선미(김유미)도 마찬가지다. 세 친구 중 가장 직업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김선미는 그녀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그녀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치를 떨며 그녀 곁을 떠날 만큼 매정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오너로 등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설사 연적이 친구라 하더라도, 친구를 밀어내고 자신이 쟁취하려고 하는 이기적 인물이기도 하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은진의 동생 역을 맡고 있는 은영(한그루)의 캐릭터도 다르지 않다. 홀로 나가 살며 집안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무심하게, 반면 자신의 사랑 앞에선 맹목적이어서, 언니고 뭐고 없는 캐릭터이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나, 그녀의 연적으로 등장하는 유세미(유인나)나, <왕가네 식구들>의 왕수박(오현경)까지, tv속 능력있는 여성들의 캐릭터는 한결같다. 

tv속 일하는 여성, 그것도 전문직 여성들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싸우는 전사들과도 같은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화법을 내재화한다. 즉, 싸워서 밟고 이겨내야 한다는 경쟁의 논리를 내재화하는 존재들로 tv 속에서 그려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자기 중심적이어야 하고, 우정 따위는 개나 줘버리란 식으로 친구들 이용하는 것조차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눈썹하나 끔쩍하지 않고 해치줘 버리는 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tv 속 여성의 캐릭터들은 흡사 8,90년대 드라마의 야망에 불타오르는 남성 캐릭터와도 비슷하다. 야망 하나로 입지전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인기를 끌었던 <청춘의 덫>의 동우(이종원)로 대변되는 캐릭터와 다르지 않다. 사회적으로 가진 것 없는 남성이었던 동우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 자신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여성을 버리고 야망을 위해 사랑을 갈아치우듯이, 21세기의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성이라는 지위에서도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들로 그려진다.


(사진; 부산일보)

시대별 자본주의적 화법을 내재화하는 캐릭터들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적 강요이기도 하다. <로맨스가 필요해3> 등을 보면서, 동시대의 여성들은, 그녀들의 어쩔 수 없는 고달픔에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사회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저런 삶이 불가피하는 심리적 강요를 은밀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저렇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되려면, 저 정도의 삶은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산업 자본주의 시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남성 캐릭터들이 야망을 위해 희생시킨 여성들의 사랑으로 인해 주저앉거나, 진실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으로 드라마들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이제, 21세기의 드라마는, 이기적인 사회적 성취를 위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지만, 단단한 겉껍질 속에서 외로움 조차 깨닫지 못하는 그녀들을 위해 그녀들에게 복수를 하고 무너뜨리는 대상이 아닌 그녀들을 위로하고 보살펴 주는 남자들을 보내준다. 과거의 드라마의 야망남과 오늘날 드라마의 그녀들에게 내려진 처방이 다른 이유는, tv를 소비하는 주 시청층이 누구냐 라는데 달려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그는, 가끔은 그녀에게 가슴 아픈 말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녀를 '케어' 해준다. <로맨스가 필요해3>처럼 노골적으로 아예 집에 들어와 살면서 시시때때로 먹는 거 챙겨주고, 마음까지 보살펴 주기도 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직장에서든, 사회 생활에서든, 그게 아니라도 드라마의 주인공인 처지라면 멀찍이 지켜보는 그라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그'들의 역할은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멘토'라던가, '힐링'이라던가, 혹은 ''상담'이란 명목의 여러가지 심리적 처방전의 유행과도 다르지 않다. 네가 아무리 상처받고, 못되게 굴어도 괜찮아, 네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잖아, 너를 사랑해, 기운내 라는 식이다. 그렇게 '케어' 받으며 그녀들은 다시 힘을 내서 전쟁터로 나간다. 아마도 대부분의 드라마들 속 그녀들은 사랑도, 일도, 아니 사랑의 힘으로 일조차 성취해 내는 성공인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2. 11. 11:04
서울 밝은 달밤에  /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로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위의 노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이 불렀다는 노래다. 여기서 아내와 함께 누워 있는 다리 두 개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의 것이고, 처용은 그런 역신의 모습을 알아차려 노래를 불러 역신을 내쫓았던 기인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제 그 설화 속 인물 '처용'이 형사가 되어 돌아왔다. 

2월 9일 밤 11시부터 ocn에서 2회 연속 <처용>이 첫 방영 되었다. 드라마 제목처럼 <처용>의 주인공 윤처용(오지호) 형사는 [삼국유사] 속 그 처용처럼 귀신을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건에 휘말려 들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것이 <처용>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간 ocn에서 제작된 수사 드라마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귀신을 본다는 기담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처용>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딘가 특수수사 전담반<TEN>과 <뱀파이어 검사>의 잔향이 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OCN표 수사드라마의 공식이 정해 졌다고 하는 편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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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새로 시작된 <처용>, 종영된 특수수사 전담반<TEN>, <뱀파이어 검사>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외로운 능력자들이다. <TEN>의 여지훈(주상욱)이 인간적 경계를 뛰어넘은 뱀파이어 민태연(연정훈)과 귀신을 보는 윤처용에 비해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지만, 범죄 심리학자 출신에, 애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연쇄 살인마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내던지는 한에선, 그 능력에 있어 보통의 인간 수준을 넘는다는 점에서는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 즉, <TEN>의 이지훈이던, <뱀파이어 검사>의 민태연이던, 그리고 <처용>의 윤처용이든, 각자 수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할 만큼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되려 낭중지추라고, 이들은 그 능력으로 인해 외로운 처지에 놓인다. 

<뱀파이어 검사>의 민태연은 당연히 인간의 피를 공급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뱀파이어이기에, 대한민국 검사라는 번듯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늘 어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TEN>의 여지훈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그의 트라우마는, 잘 나가던 심리학 교수직 대신에 특수사건 전담팀의 외곬수 팀장직으로 귀결된다. <처용>의 윤처용 역시 마찬가지다. 귀신을 보는 그의 능력으로 인해 한때 광역 수사대에서 날아다녔지만, 그의 발군의 능력으로 인해 범죄자의 타겟이 되고, 그로 인해 아끼던 후배를 잃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경찰차를 몰고 순찰이나 다니는 처지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들 주인공의 캐리어 상의 고독함을 배가시키는 건 각자가 품고 있는 상처많은 가족력이다. 민태연의 여동생, 여지훈의 약혼자, 그리고 잠시 등장했지만 피투성이 몰골의 처용의 아버지까지, 주인공들은 시즌 내내 가족, 혹은 애인으로 인한 상흔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고, 내몰 것이다. 드라마는, 각각 회차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사건을 끌고 나가면서, 그 사건들 아래에서 부지런히 주인공 각자의 트라우마가 얽혀진 큰 사건의 밑그림을 그려가느라 분주한 것이, 미드식 전개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OCN표 드라마의 특징이다.

(사진; 스타엔뉴스)
 

따라서 <처용>도 무리없이 단 2회만에, 병원에서 실종된 아이 엄마라는  개별 사건 해결과 함께, 윤처용과 하선우(오지은)가 얽혀 있는 과거의 사건의 흔적, 나아가 윤처용의 아버지라는 전체적 윤곽을 선보이며 OCN표 수사 드라마의 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처용>의 진가가 드러났다기에는 이젠 OCN표 수사 드라마의 공식이 너무 익숙해 졌다. 덕분에 그간 미드나, <TEN>, <뱀파이어 검사> 등을 즐겨왔던 팬이라면 무리없이 <처용>에 빠져들수 있는 반면, 또 그만큼 어딘가 본듯한 기시감 또한 떨쳐 버릴 수 없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용>은 선택한 전략은 귀신 보는 형사라는 전략에 맞춘 '빙의'를 등장시킨다. 경찰서에서 소일하던 여고생 귀신 한나경(전효성)이 극적인 순간에 하선우의 몸에 들어가 사건에 직접 개입한다는 신선한 전술이다. 극의 절정에서 빙의된 한나경의 기억에 잠시 떠올려진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 그리고 드라마의 말미 잠시 스쳐가듯 보여진 한나경과 하선우가 함께 찍힌 사건에서 한나경의 빙의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면서 <처용>이 보여주는 드라마로서의 맛은 한결 독특해 진다. 귀신을 보는 형사에, 빙의된 여형사 걸맞는 조합이다. 

OCN의 드라마는 미드식 수사 드라마로서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트렌드에 맞게 적절한 소재를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신의 퀴즈>로 메디컬 수사 드라마의 효시를 열더니, 이어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인간의 경계를 허물더니, <특수사건 전담반 TEN>을 넘어 귀신을 보는 형사<처용>까지 이르렀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오가며, 장르적 진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부디 <처용>도 그간 앞서의 드라마들이 시즌에 시즌을 거듭했듯, 충실한 스토리로 다음 시즌까지 고대할 좋은 수사 드라마로 남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2. 10.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