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기자는 조금 시간이 나서 어딘가를 가게 된다면 자꾸 발걸음이 서울로 향한다. 철마다 바뀌는 서울의 고궁, 이제는 점점 낡아가다 못해 어느 틈에 아파트 숲에 먹혀버리곤 하는 한적한 주택가, 그리고 물은 비록 그 물이 아니되, 여전한 한강...... 누군가에겐 그저 숨막히는 도시에 불과한 서울이지만, 이 글을 쓰는 기자에게 그곳은 내가 살아왔던 추억이 어린 곳이다. 학창시절 원고지를 옆에 밀쳐둔 채 친구들과 헤젖고 다니던 곳, 동동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곳, 현실의 압박감을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잠시 잊었던 곳, 그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저 여느 사람들에겐 스치듯 지나가는 장소에 불과할 지라도, 자신과 관련된 추억이 저장된 장소라면 그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2월9일의 <1박2일>은 '장소'가 가지는 본원적 의미를 가장 뜻깊게 잘 살려낸 시간이 되었다. 


처음 한 명, 혹은 두 명씩 조를 짜서 설날의 고즈넉한 서울을 돌아본다 할 때만 해도, 그저 지금까지 해온 서울 탐험이려니 했었다. 주어진 미션도 그 예전의 고궁을 들러보던 미션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처음 세워진 빌딩에, 가장 오래된 다리에, 찻집에, 역사 책에 등장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는 역사가 된 서울의 한 곳들을 돌아보는 미션은 <1박2일>은 물론, <무한도전>에서도, <런닝맨>에서도 본 듯한 그런 것들이었다. 학림 다방에 소장된 LP판을 틀어 제목을 맞추고, 제일 오래된 빌딩에서 IT에 무지한 김주혁이 팩스에 자신의 사진을 보내느라 낑낑 거리고, 오래된 빵집에서 숨겨진 빵을 맞추는 게임은 굳이 그곳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들이라면 무엇을 해도  미소를 띠고 보게 만들 그런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 여의 시간 <1박2일>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서울의 오래된 장소를 찾아보고, 그곳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다시 둘씩 짝을 이뤄 또 다른 거리를 걷고, 거기서 미션을 하며 설정된 사진을 찍는 등 분주하게 설날의 서울을 활보했다. 

그리고 마지막 잠자리를 찾아 KBS 건물로 돌아온 멤버들에겐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동안 분주히 서울을 돌아다닌 멤버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중 베스트를 뽑겠다는 명목 하에 모인 편집실에서 뜻밖에도 가장 좋다고 뽑힌 사진은 온갖 설정을 하고 찍었던 사진이 아니라, 명동 성당에서, 남산에서, 그리고 고궁에서 가장 평범하게 찍힌 사진들이었다. 


(사진; 리뷰스타)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변한 건 다음 순간이었다. 명동 성당 앞에서 주춤거리며 찍힌 김주혁의 사진 다음으로, 김주혁의 아버지 어머니가 바로 그 명동 성당에서 데이트를 하던 시절에 찍힌 사진이 나타난다. 이제는 김주혁보다도 젊은 아버지가, 멋쟁이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어 나타난 사진은 그 젊은 김주혁의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어 아들인 김주혁과 함께 찍은 것이다. 불과 몇 장의 사진이었지만, 그 사진을 보는 순간부터 아들인 김주혁의 눈이 충혈되고 눈물이 주르륵 흐른 것처럼, 사진은 그저 사진이 아니라, 명동 성당을 배경으로 한 한 가족의 역사가 되어 가슴을 흔든다. 

서울이 고향인 차태현도, 김종민도 마찬가지다. 미션을 수행한 다음에 함께 방문했던 4대가 함께 서울에서 살아온 가족을 방문한 자리에서 펼쳐 본 앨범의 그 사진들과 비슷한 사진들이 차태현과 김종민의 역사로 등장한다. 4대 가족의 부모님이 남산으로 신혼 여행을 가셨던 사진은 이때는 이랬구나 하고 신기한 것이었지만, 방금 전 내가 사진을 찍고 다녀온 그곳이 차태현 자신의 부모님 사진이 되면 마치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님이 계신 그 시간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같은 전율과 함께 목이 메어 오는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어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김종민에게선 그 감회가 극한에 이른다. 

그저 <1박2일>의 한 순간을 통해 등장한 것은 김주혁, 차태현, 김종민 부모님들이 자식들보다도 젊은 나이에 찍은 사진 한 장이었지만, 그 사진만으로, 남산, 명동성당, 고궁은 마치 김춘수의 시처럼, 우리들에게 꽃처럼 다가온다. 김주혁의 '훅 하고  들어왔다'는 표현처럼 아마도 지금까지 <1박2일>이 방문했던 그 어느 장소보다도 유서깊은 서울이 되었다. 아름다운 명승지가 아니라, 일상에서 스치듯 지나쳐온 것들이 다른 이름의, 명소가 되는 순간이다. <1박2일>을 본 사람이라면, 명동 성당을, 남산을, 고궁을 지나칠 때라도 이제는 남다른 감회에 젖을 수 밖에 없도록. 

전국 방방 곡곡도 모자라, 북한에, 이제 일본에 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까지 샅샅이 훑고 다니는 유홍준 교수가 그의 책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통해 남긴 명언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2월9일의 <1박2일>의 서울은 바로 그 사랑해서 달라지게 된 곳이 되었다. 그저 연인들이 매어놓은 자물쇠 더미를 놓고, 한 사람이 몇 번이나 걸어 놓을 수도 있다고 농을 던지며 미션을 하기에 급급한 장소에서,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이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장소로 신혼 여행을 와 똑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역사를 안 순간, 학교를 다니며 수백 번을 스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장소가 이젠 아들과 함께 꼭 가서 사진을 남겨야 하는 나만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곳이 되었다. 장소를 명소로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속에 담긴 소중한 사람들의 역사라는 걸, 가슴 저리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본 <1박2일>이 또 무엇을 할 수 있겠어가 아니라, 똑같은 곳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1박2일>이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시간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2. 10. 09:02

세계화의 시대란다. 

우리의 음식이, 우리의 문화가 세계로 펼쳐나가야 하는 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 우리의 것이 우리의 상표를 달고 해외로 나가 잘 팔리는 것에만 세계화의 방점을 찍고 있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곳에서, 또 다른 세계화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 집약의 대표적 산업인 봉제 산업, 우리나라가 수출 주도형 산업국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봉제 산업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더 이상 물가 상승과, 임금 대비 고비용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없자, 사양 산업으로 몰락해 가는 수순을 밟아갔다. 그때 그 봉제 산업을 구해준 것이 바로 동남 아시아국가들의 저렴한 노동 시장이었다. 

'지난 1월 3일 캄보디아 프놈펜, 봉제공장 100여개가 밀집한 카나디아 공단 인근에서 수십 여발의 총성이 울렸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장기간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군대와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한 것이다.'

(사진; 유니온 프레스)

'공식적으로 다섯 명의 공식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혀진 이 사건이 국제 사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 배후에 한국 봉제 기업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터이다. 공장과 담을 이웃하고 있는 공수부대가 공장 측의 부탁을 받고 출동을자비한 진압을 했다는 것이다. 총격 사태 이튿날, 한국 대사관은 공식 페이스북에 교민과 기업을 안전을 위해 군대와 긴밀히 협조하였으니 안심하라는 당부 글을 게시했다. 한국이 강경 진압과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제기되기 시작하자 이 글은 곧바로 삭제'됨으로써 의심의 불씨를 지폈다. <추적 60분>은 바로 그 캄보디아의 현지에서 '메이드 인 캄보디아'의 현실을 밝힌다. 

캄보디아 정부의 적극적 외국 자본 유치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리바이스', '자라' 등 내로라 하는 전 세계의 봉제 산업들이 캄보디아로 몰려 들었다. 노동 인구 800만명 중 35만명이 고용된, 수출 산업 전체에서 80%가 캄보디아 봉제 산업의 현실이다. 물론 이는 캄보디아가 절대적으로 봉제 산업에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패스트 패션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옷값,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빨라지는 패션의 주기는 보다 싼 노동 시장을 찾아 아시아 각국을 휘젖고 다녔다. 아직 개방이 덜된 베트남 등에서 시작된 봉제 산업들은, 그들 국가들이 산업 발전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자, 조금 더 싼, 조금 더 싼 국가를 찾아 다니다 보니, 결국 캄보디아에 이르게 된 것이 현실이다. 캄보디아 현지의 봉제 공장 한국인 관계자들은 불평을 토로한다. 캄보디아처럼 일년에 노는 날이 많은 나라에서는 베트남만큼의 이윤을 뽑아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노동력에 온전히 의존하는 봉제 산업의 특성상 낮은 임금선을 유지하는 캄보디아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캄보디아의 노동자들은 1월3일 시위에서처럼 월 80달러의 임금으로는 살 수 없다며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낮은 임금으로만 존속가능한 봉제 산업, 하지만 더 이상 비인간적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캄보디아의 노동자들, 우리에게 이 전선은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 노동 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YH 사건(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은 가발수출업체인 와이에이치 무역 여성 근로자들이 회사폐업조치에 항의하여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시위를 벌인 사건 )등 70년대에서 80년대 초의 노동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이들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었다. 즉 우리나라가 1,2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수출 국가로 올라서기까지 그것을 견인해 낸 사람들이 바로, 가발, 봉제 산업 등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이었다.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한 장을 차지하며 열심히 싸웠던 사람들이 다른 국가, 다른 인종의 얼굴을 하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동일한 사회적 갈등 속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현실은 볼멘 소리를 하는 한국 기업들의 불평이 무색하리 만치 궁색하다. 가난한 농촌의 딸로 태어나 아픈 부모님을 둔 덕에 11여년 간을 일고여덟 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 방에 머물려 공장을 다니다 보니, 결혼도 하지 못한 채 44살이 된 처녀에, 몇 년을 일해도 결국 자기 손에 쥔 게 없어 다시 떠난다는 청년의 짐보따리는 그가 일했던 시간이 허무하리만큼 초라하다. 세 오누이가 함께 생활해야 겨우 빠듯하게 버티며 산다는 방에서, 시위대의 주장은 공허한 희망으로 멤돈다. 가난한 농촌의 딸로 도시로 올라와 가족까지 먹여 살리며 빠듯하게 버티다 버티다 못해 임금 인상을 외치던 7,80년대의 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신문도, 우리 기업이 캄보디아 등 아시아 현지의 국민들을 너무 낮은 임금으로 혹사시키다, 인명이 살상되는 시위를 불러 일으키는 세계화의 현장에 있다는 소식을 제대로 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신 속에 사건은 그저 이웃집 불구경만도 못하다. YH여공들의 역사가 시간이 흐른 다음에도 여전히 전설 속 이야기처럼 회자되는 것처럼. 
그래서 <추적 60분>이 현지에서 만난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현실은 굳이 누구의 편을 가르키지 않더라도 우리가 잊고 있는 세계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by meditator 2014. 2. 9. 14:42

나이가 들어 얼굴에 검버섯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을 발견한 친구가 시술을 권한다. 그 정도는 시술도 아니라고, 70이 넘은 노인도 그 정도 검버섯 없애는 시술은 한다고. 자신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은 때마다 보톡스를 맞는다, 필러를 맞는다 분주하다면서. 
하물며 저렇게 시술까지 하는 마당에 화장이야 더 말할 꺼리가 되지 않는 건 당연지사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이라 하지 않고, 무대에 서지 않는 사람조차도 '분장'이란 말을 즐겨쓴다. 화장을 하지 않는 얼굴을 민낯이라 하며 차마 남에게 들키면 안되는 심각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취급한다.
이렇게 누구나 다 자신의 얼굴을 가장 그럴듯하게 만드는 '화장'의 담론이 시험대에 오른다. 바로 두번 째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이다.

2월 8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은 다시 한 번 여성 멤버들을 불러 들였다. 김숙, 김신영, 김지민, 박소영 등의 기존의 멤버가 잔류한 가운데, 개그우먼 박지선과, 아나운서 박은영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지난 번 여성 멤버 버전 <인간의 조건>이 기존의 남성판 <인간의 조건>이 했던 쓰레기 없이 살기,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 등 미션등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문화적 차별성에 방점을 맞추어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면, 이번 두 번째 미션은 '화약 약품 없이' 살기로 온전히 여성 멤버의 특성에 맞춘 미션이 등장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사진; tv데일리)

남성 멤버들이 일정한 물의 양을 가지고도 쉽게 적응하며 일주일을 버텨냈던 것과 달리, 늘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돋보이는 자존감의 향상 요건이자, 시청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여성 멤버들에게 '화학 약품 없이 살기'는 그 심각성을 고민하기에 앞서, 샴푸, 화장품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상황은 '아노미'적이다. 
특히나 이쁜 개그우먼이라고 인정받는 김지민의 경우에는, 최근에 돋아난 얼굴의 뾰루지로 인해 그것을 가려야 하는 화장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했기에, 자신의 정체성의 혼돈조차 느낄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힘들어 한다. 
그런 김지민의 모습은 아마도 일상 생활에서 화장에 의존도가 높은 보통 여성의 반응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모습일 것이다. 트러블 때문에 애초에 화장을 하지 못하는 박지선이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이번 미션에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멤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집을 떠날 때부터 '화약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지가 주어지고 아지트에 모이자 마자 가지고 있는 화약적 처리가 된 모든 물품들을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넣어야 하는 미션에 여성 멤버들은 크게 당황한다.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물어볼 만큼, 화학이란 단어가 막연했던 멤버들은 오히려 화학에 대해 알아가면 갈 수록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일상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화학의 힘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화학 약품 없이 살기 위해서는 샴푸, 화장품은 물론, 당장 입고 있는 옷부터 모두 벗어제껴야 하고, 비닐 포장지에 둘러싸인 먹거리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차분히 화약 약품의 문제점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없이 각자의 방송들을 맞닥뜨린 멤버들은 당장 자신의 민낯을 가릴 화학 약품이 아닌 꺼리들을 찾느라 분주하다. 김신영은 눈썹 화장을 하기 위해 갈비집에서 숯을, 피부톤을 위해 방앗간에서 콩가루를, 그리고 입술 화장을 위해 체리를 구한다. 샴푸는 소금으로 대신하고 달걀과 식초로 유연 과정을 거친다. 당혹스러워 하던 김지민도 궁여지책 구해든 것이 밀가루와 꿀이다. 하지만 늘 그녀를 돋보이게 해주던 화약 약품 덩어리인 인조 속눈썹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궁여지책으로 넘겨는 보지만 누렇게 뜬 얼굴톤과 시큼한 냄새를 숨길 수는 없다.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는 김숙와 박은영은 화학 약품이 들어 있지 않는 천연 화장품 만들기에 도전한다. 몇 가지의 천연 재료로 약간의 품만 들이면 만들어 지는 화장품을 보며, 수십만원을 투자했던 화장품에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쉽게 만들어 진 것에 비해 막상 사용해 보니 그간 화학 약품 덩어리인 화장품에 못지 않는, 아니 심지어 그와는 다른 차원의 만족도를 주는 천연 화장품, 천연 세제에 경이를 느껴간다. 

김숙, 박은영이 재빠르게 찾아 내었듯이, 우리가 주위에 눈을 돌리고 보면 화학 약품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 천연 세제, 천연 화장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몇 시간을 투자해 서점에서 책을 독파했던 박지선의 깨달음처럼, 더께를 두르듯 일상을 겁박한 화학 약품의 세상이 몇몇 천연 제품을 찾아내고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물만으로도 얼만든지 깨끗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며 실천하는 사람도 있듯, 결국은 이런 '화학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되돌아 보는 우리 삶의 담론이 문제이다. 

늘 몇 겹의 화장으로 짙게 자신을 치장하고, 매일매일 샴푸에, 린스에, 에센스까지 덧칠을 하며 머리를 감아야 하고, 때마다 유행에 맞춰 옷을 사입어야 하는 '소비'의 담론이, '화학 약품 없이 살기'의 일주일을 통해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것이 이번 <인간의 조건>의 미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한 몸 깨끗이, 아름답게, 내 한 입 맛있게, 넉넉하게 만드는 그것들이, 결국은 내가 일부인 지구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가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하는 시간, 그래서 조금은 덜 아름답고, 덜 깨끗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되는 것, 그런 신선한 담론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9. 11:00

유엔인구기금(UNFPA)’과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인터내셔널’에서는 최근 전 세계 91개국을 대상으로 노인들의 복지 수준과 삶의 질을 조사했다. 그 결과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로 뽑힌 것은 북구의 작은 나라 스웨덴이었다. <kbs파노라마-행복한 노년에 대하여>는 행복한 노년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스웨덴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웨덴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서비스 하우스'라는 주택 형태가 있다. 한 건물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입주해서 생활하되, 1층은 세탁실, 식당 등 공용 공간으로 활용하고, 2층부터는 개인 각각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주택이다. 개인 주택에 살다 이곳으로 옮겨온 97세의 울라는 자기만의 공간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공존하는 이곳의 삶에 만족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함께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홀로 독서를 즐기는 삶의 질이 유지된다. 모든 노인이 서비스 공간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노인이 되었다고 살고 싶은 방식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집에 살면서, 청소, 검진 등의 재가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치매 등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조건이 될 경우에는 요양원에 들어가면 된다. 전직 부동산 중개인이던 85세의 아니타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다. 그녀와  60여년을 살았던 남편은 거의 매일 그녀를 문병하러 병원에 들린다. 노인이 치매 등에 걸렸다고 해서 그 가족의 삶이 무너지는 일은 스웨덴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아니타의 남편은 이제는 기억조차 없는 아내의 말년을 아름답게 함께 할 수 있다. 



스웨덴 노인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들 삶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은 채 존중받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최저 소득을 보장해주는 연금 체계에서 기인한다. 기초, 직장, 개인 등의 체계로 존재하는 연금 제도는 최저 8000 크로나, 우리 나라 돈으로 130만원 정도를 보장하여, 나이가 들어도, 병이 들어도  경제적 최저선을 무너지지 않도록 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위해 국가가 많은 것을 보장한다. 나이가 들면 제 아무리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다 해도 1년에 15만원 이상 의료비를 지출하지 않는 '의료비 상한 제도'가 있다. 대신 젊어서 일할 때 열심히 세금을 낸다. 대신 노인이 되어 보상을 받는다. 치료비를 걱정하는 노인에게 의사는 말한다. 평생 세금을 냈으며 돌려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거리의 중년들은 자신이 노년에 보상을 받을 것을 확신하기에 세금을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 말한다. 물론 거기엔 자신이 낸 세금이 자신을 위해 제대로 쓰일 거라는 믿음이 전제가 된다. 

하지만 스웨덴 노인 복지는 그저 최저 수준의 삶을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저 죽을 때까지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활동적인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한다. 스웨덴에는 전체 노인 들 중 상당수가 가입해 있는 연금 생활자 연맹(PRO)이 노인들의 경제적 이해 단체로서 자신들의 삶의 질을 위해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중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활동이다. 

PRO에서 춤과 체육 등의 여가를 즐기던 노인들의 노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년과 다르다. 그들은 말한다. 종종 나이가 들었다는 걸 잊는다고. 세대 차이는 크게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스웨덴의 노년은 그저 인생의 한 단계일 뿐이다. 
71세의 잉엘라 탈렌, 전 노동부, 사회 복지부 장관으로 현재의 스웨덴의 복지 제도를 만드는데 공헌을 한 장본인이자, 유력한 수상 후보였지만 후배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던 전설적 정치인이다. 하지만 현재의 그녀는 아들의 방에서 그동안 사회 생활 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퀼트를 하느라 재봉질에, 남편과 함께 밴드를 조직해 마을 강당에서 댄스 공연의 음악 연주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이 만들었던 노인 복지의 현장에서 그 과실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잉엘라는 말한다. 노인들이 행복한 나라란 나와 나의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 다른 가족의 희생이 없는, 즉 너와 내가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말한다고. 
이렇듯 전직 장관이든, 전직 부동산 중개인이든, 그들의 전직이 무엇이든 노년에 그들의 삶의 질이 유지된다. 국가가 보장한 연금 제도 위에서 그들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질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거기에 덧붙여 자신이 젊어 해보지 못했던 것을 즐기며 노년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이제는 그 어느 나라도 부러워하는 노인 복지의 왕국 스웨덴이 단번에 이루어 진것이 아니다. 1928년 스웨덴의 100년을 바꾼 타게 에를란데르 사민당 대표의 '국가는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어야 한다는 연설 이후로, 지난한 노력이 경주되어 왔었다. 하지만 이젠 사민당의 장기 집권 이후 보수당이 정권을 잡아도 국가적 복지 모델에는 변화가 없을 만큼 스웨덴의 복지는 안정된 궤도에 들어서 있다.
노인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 스웨덴 복지의 핵심은 '복지'의 대표적 정치인이이었던 올로프 팔메 수상의 주장처럼 '평등'에 방점이 찍힌다. 모두를 위한 복지, 보편 복지, 돈을 쥐어주는 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복지가 스웨덴의 오늘을 만들었다. 

노인을 위한 복지는, 그저 노인만이 행복한 복지가 아니다.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나, 중년들의 얼굴은 밝았다. 그들이 지금 국가를 위해 낸 세금이 언젠가는 자신을 위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불안해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살아가는 삶이 어디로 갈지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먼 훗날 나이가 든 자신의 삶을 국가가 책임져 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불투명한 삶의 불확실성마저 잠재우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 노인 복지라는 걸 스웨덴은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4. 2. 8. 10:13

드디어 스스로 엘리베이터걸이었음을 밝힌, 그래서 그 좁은 엘리베이커에서 하루 종일 서있었던 경험 덕분에 줄곧 서있어야 했던 서너시간의 대회 동안 남들보다 더 버티기 쉬웠다고 말한 오지영(이연희)이 1997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탄생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자리, 애초에 그녀에게 미스코리아에 나가자고 했던, 그리고 그녀와 함께 달려왔던 형준(이선균)과 그의 동료들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드라마답게도, 그 시각 비비 화장품의 식구들은 부도난 회사에 기계를 떼어가려던 조폭들을 몸으로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영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기계마저 빠져나간 빈 공장에서 형준의 동료들은 울음마저 흘릴 힘도 없이 나뒹구러져 있다. 

하지만 형준은 그런 빈 공장과 동료들을 놔두고 1등을 한 지영을 찾아간다. 맞아서 얼룩덜룩한 얼굴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야 지영을 찾아가 축하를 해준다. 비비화장품의 부도를 모른 채 해맑게 이제 자신 때문에 잘 될거라는 말에 헛헛한 웃음을 날리다, 그녀가 잠든 사이 떠나려던 형준은 정선생(이성민)의 상처주지 말란 한 마디에 그녀 곁에 다시 남는다. 그녀가 스스로 형준을 버릴 때를 기다리며, 절대 애인은 아니라며,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16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가 되고,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거리에서 그 방송을 지켜봐야 하는 형준, 그리고 공장 바닥에 나뒹구는 동료들이야말로, 드라마<미스코리아>의 결정적 장면이다. 삶의 냉엄한 아이러니, 잔인한 선물, 졸렬한 비애, 그간 잽처럼 날리던 그것들이 팡파레를 울리며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응답하라 1994>에서는 그저 나정이네 가족이 아빠가 잘못 결정한 주식 투자로 인해 휘청대고, 취직이 잘 안되서 결혼마저 미뤄야 하는 처지에 빠지지만,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곁에는 여전히 그녀를 위해 결혼마저 미뤄주는 한결같은 쓰레기 오빠와, 그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달려올 칠봉이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IMF시기를 그려내지만, 여주인공은 오뚝이처럼 삶의 성과물을 쟁취하고, 남자 주인공들은 시대적 상황과 상관없이 잘 나가는 '의사'요, '메이저 리거'였다. 그래서 덕분에 시청자들은 마음놓고, 쓰레기가 어떻니, 칠봉이가 어떻니 투정을 부리며 그들의 사랑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미스코리아>의 사랑은 치졸하다. 형준이 지영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그의 회사를 다시 살리기 위한 홍보 도구로써 지영을 이용하기 위해서 였고, 두 사람의 사랑은, 내내 미스코리아란 국가적 행사(?)틈에서 줄타기를 해야만 했고, 그 역경을 견디고 미스코리아가 됐지만, 형준의 부도 덕분에, 애초의 목적은 커녕, 이제는 진심으로 충만한 형준의 사랑마저 초라하게 버티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에서 IMF의 현실은 <응답하라 1994>가 보여준 잠깐의 시련보다는, <미스코리아>가 보여주고 있는 징허디 징헌 운명에 가깝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 고개 숙인 아버지 신드롬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IMF체제가 드러내 보인 것은 결국 이 사회를 이끌어왔던, 하지만 현실의 벽에 무너져버린 남성들의 민낯이었다. <미스코리아> 속 형준처럼, 한때 자신의 학벌만 믿고, 자신의 사랑하던 여자조차 낮잡아 보며, 성장 가도의 대한민국에서 야심차게 자신의 꿈을 펼치겠다 했던 그 남성들의 몰락을 의미한다. 애시당초 자신의 회사를 구하기 위해 사랑했던 여자를 미스코리아에 내보내 홍보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이겠지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발상인가 말이다. 마치 IMF를 넘기기 위해 전국민적 금 모으기를 한 것처럼. 몰락해가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식들의 돌반지이자, 아내의 혼수품이어야 했건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미스코리아>는 다른 드라마가 남자 주인공이 얼마나 멋지게 여자 주인공을 위한 사랑을 어필하는가와 달리, 1회부터, 16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에 이르기까지 남자 주인공의 치졸하고 궁색한사랑을 보이기에 애써왔다. 자신의 여자를 투자를 위해 그녀를 좋아했던 친구에게 접대하기 위해 술집으로 끌고 갔던 형준, 그리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 앞에서 서성이던 형준의 모습은 상황만 달라졌을 뿐 16회 내내 일관되게 그려져 왔다. 16회 친구이자 자신의 회사를 노렸던 이윤(이기우)를 찾아간 형준이 고용 승계를 보장한 회사 인수라 하지만, 드라마는 내내 자신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형준과 동료의 모습은 스치듯 집어 넣고, 내내 미스코리아를 위해 복무하는 형준과 그의 동료들을 그리는데 치중했다. 회사는 쓰러져 가고, 조폭들은 신체 포기 각서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는데, 오지영의 의상과 구두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애잔하기 이를데 없는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그 자체였다. 

물론 <미스코리아>가 자신의 주제 의식을 살려내는데 흡족했는가 하는 것에서는 의문 부호가 달린다. 이제 와 고백컨대, 권석장과 그의 동료와도 같은 이선균, 이성민이 <골든 타임>에서 보여주었던 환상의 호흡을 그리워 하며 <미스코리아>를 보았지만, 드라마는 애초에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드라마를 만들었는가 의문이 가져질 만큼, 형준과 정선생을 둘러리로 만들면서, 지영의 미스코리아 만들기 에피소드에만 골몰해 왔다. 덕분에, 이성민과 이선균의 좋은 연기는 이연희의 미스코리아 만들기 드라마에 애잔한 정서로만 터지되며 16회를 연명시켜 왔다. 이성민, 이선균만이 아니다. <보고싶다> 등에서는 발군의 캐릭터로 빛을 발하던 오정세는 리액션의 존재로만 소모되었고, <골든 타임>에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던 러브라인의 주인공 송선미도 스쳐가듯 그 매력을 드러낼 뿐이었다. 

좋은 주제, 좋은 배우들을 가지고, 16회 내내 미스코리아 만들기 에피소들에 골몰한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낮은 시청률이 굳이 관심을 끌기엔 부족한 주제 때문이라고 핑계 대기엔 드라마는 단선적 에피소드에 치중해 왔을 뿐이다. 때때로 애초에 이 드라마가 과연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 이연희 미스코리아 만들기만이었을까 의문이 가져질 만큼. 작가와, 피디의 숨겨놓은 서랍 어딘가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짜 <미스코리아>가 숨겨져 있는게 아닌가 할 만큼. 하지만 그저 <별에서 온 그대> 라는 강적을 만났다고 핑계를 대기에, <미스코리아>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습은 너무 초라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럴듯한 환타지를 통해 아픔을 가리느라 급급한 드라마 세상 속에서 IMF 시대의 민낯을 그려내고자 애쓰는 <미스코리아>의 미덕은 여전히 희미하나마 가치있다. 부디 남은 4회라도 그 미덕의 불씨를 제대로 살려내는 드라마로써 마무리해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7. 10:26

결혼 첫 날 밤, 당신은 당신의 남편에게 당신이 나의 네 번 째 남자라는 걸 고백해야 할까?

21세기에 이 뜬금없는 결혼 첫 날밤의 고백이 화두가 된 것은 2월 3일 방영된 <힐링 캠프> 시청자 특집의 한 장면이다.
시청자 특집에서 강사로 초빙된 '다상담'의 철학자 강신주는 이제 남자 친구를 만난지 22일 된 새내기 연인에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면을 벗어 던지고 민낯의 자신을 보여주어야 외롭지 않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면을 벗어던진다는 미명 하에 던지는 진실이 진실일까?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진실이란 미명하에 내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는 것은 아닐까? 아니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과연 내 맘 속에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나의 언어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 때 온전히 진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듣는 상대방의 생각과 관점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변질될 파편들이 아닐까? 아니 무엇보다, 결혼 첫 날 밤이든, 이제 겨우 22일 만나는 사이이든지, 그 두 사람 관계 사이에 딱 이렇다 라고 정의내릴 진리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사진; 영남 일보 )

하지만 강신주는 단호했다. 
가면을 벗고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가면 뒤에 숨어서 외로울 것이라고, 둘 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선택을 강요받은 사람, 당연히 외로움을 피한다. 
이런 식이다. 
병들어 퇴직한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에게, 본질은 나이들어 낯선 아버지가 귀찮아 하는 당신의 마음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그리고 그동안 돈 버느라 아버지의 자리에서 벗어나 '모르는 사람'이 된 당신의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김제동에게 사자 인형 따위나 사지 말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라고 충고한다. 

돌직구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그의 직설은 결국 '사랑'으로 향한다. 
쿨하고 싶지만 결국 자신이 던진 말들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성유리에게도 자신이 속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듯이, 정의롭고 성숙한 사랑이야말로 사회적 모순조차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방송 초반 사연을 보낸 70여 명의 방청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입장한 강신주에게 mc 이경규는 다짜고짜 힐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힐링 캠프>에 출연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강신주는 그 말을 거부하지 않는다. 힐링은 결국 '위로'에 다름아닌데, 그렇게 달콤함 위로는 세상의 험한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미봉책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정의내린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식의 김제동 어록은 조작일 뿐이라며, 자신은 도화지에 불과하며, 자신과의 상담을 통해 그 도화지에 그려지는 상담자의 맨 얼굴을 직시하는 것이 자신의 방식으로 힐링과 전혀 다른 효과를 준다고 단언한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YES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는 NO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있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강신주의 혹독한 상담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텔레비젼에서 봤던가, 영화에서 봤던가 어떤 무당집이 떠오른다. 앞의 상을 '땅'치며 '틀렸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인연이 아니야!'라고 말하던. 모욕인가? 아니 우리가 이젠 무당의 그 말이 낭설이라고 믿는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지, 과학과 기술이 발달되기 이전의 시대에, 신의 대리인으로서 전지전능의 권위를 자랑하던 자들이 바로 그들 샤먼들이었다. 우리가 즐겨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도 전쟁에 나가기 전에 신전에 찾아가 신의 말씀 신탁을 듣지 않았던가 말이다. 하지만 내 운명을 확고하게 인도할 것 같던 그 신의 존재는 산업 사회가 발달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져 간다. 더불어 신의 말씀을 전하던 샤먼들은 음침한 골목에서 외로움 깃발 하나에 의지한 채 '영험'하다는 말로 포장한 채, 삿된 요술의 존재가 되어가고. 사람들은 개별자로서의 외로움에 떨고. 

(사진; 스포츠 동아)

그래서 대신 등장한 것이, 정신과 상담이요, 그것보다 유연한 것이 '힐링' 이요, 이제 '힐링'이 또 다르게 '업그레이드'된 것이 '다상담'과 같은 것들이다. 상당해 주는 사람들이 방책으로 삼는 처방들은 제 각각이지만, 결국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해주던 신탁과 본질적으로 효과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렇다. 신탁은 때로는 영웅들에게 전쟁에 나가 이기리라는 승전보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살아돌아오기 힘들다는 비보를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영웅들이 비보를 들었다고 그의 걸음을 물렸던가.

결국, <힐링 캠프>에 출연했던 많은 출연자들이 전해주었던 힐링의 달콤한 말이 옳냐, 강신주식의 직설이 옳냐가 문제가 아니다. '직설'이라면 지난 번 출연했던 법륜 스님의 즉문 직설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강신주든, 법륜 스님이든 그 모든 사람들이 결국 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엎어치나 메치나'위로'이다. 그저 위로의 방식이 어깨를 도닥여 주느냐, 선방의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치느냐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조금 더 행복하게 사랑하고 살라'는 소박한 주문이다. 단지 그것들이 텔레비젼이라는 공적인 매체를 통해, 조금 더 공신력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부작용이 있다. 그런 누군가의 방식이, 그 옛날 샤먼의 그것처럼 전지전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덧 이 시대의 텔레비젼이 바보 상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신전이 되어, 신탁인 양 그런 정언 들을 옮겨대는 것이다. 그 또한 그저 강신주의, 법륜의 생각이요, 주장에 불과한 것을, 우리는 마치 교실 속 착한 학생들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 첫 날밤 고백을 하던 그렇지 않던 그게 그 사람의 진실과 별개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을,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간사한 귀찮음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사람 마음 속에 누구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끄집어 내는 충격 요법은 그저 여러 치료법 중 하나라는 것을 텔레비젼을 보는 우리가 매번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아무리 꿈을 꾸어도, 사랑을 해도,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덮어두게 된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2. 4. 10:20

2월2일 밤 11시 55분에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돌날>은 2002년 동아 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그리고 2001년 한국 평론가 협회 선정 BEST3에 빛나는 연극 <돐날>의 TV 드라마 버전이다. 드라마는 연극의 생생함을 그대로 살려 내고자, 실제 연극에 출연했던 서현철, 박준면 등이 극중 배역 그대로 출연하였다. 하지만 연극 <돐날>이 온갖 상을 수상하며 한때 뜨거운 청춘을 살았으나 이제는 중년이 된 세대의 리얼리티를 소름끼치게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70분에 꾸겨 넣어진 원작의 연극은, 채 무르익지 못한 채 스릴러, 멜로, 심지어 동성애까지 온갖 장르들이 뒤섞여 보는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으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괴작으로 남게 되었다. 



<돌날>의 장르는 문학으로 치자면 후일담 문학에 속한다. 한때 야학당에 모였던 사회 정의에 눈뜨고, 지식인의 사명에 고뇌하던 청춘들, 하지만 이십여 년이 지나 마흔 줄에 다시 모인 그들은 평범하다 못해 서로가 속물이라 비웃고 조롱하는 보잘 것없는 사십대가 되었다. 

돌잔치를 연 정숙(김지영)-지호(고영빈) 부부는 야학당에 만나 결혼에 이르는 동지애적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젠 무기력한 강사와 그의 아내로, 치솟는 전셋값에 전전긍긍하며, 뱃속의 아기조차 지워야 하는 처지의 가난한 삶에 찌든 부부일 뿐이다. 그리고 한때 그들과 함께 세상의 불의를 논하고 실천했던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성기(서현철)는 잘 사는 부모 덕에 사업가가 되었고, 그와 함께 젊음을 불살랐던 친구들은 이제 그의 앞에서 어떻게든 떡고물이라도 얻어볼까 전전긍긍하는 만년과장에, 다단계 판매 사원이 되었다. 시인으로 남은 친구라고 나을까, 그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이다. 

정숙-지호의 아이 돌을 기념하여 모여서 좋자고 모인 잔치는 곧 술이 좀 들어 가면서, 세상사의 만화경이 되어 버린다. 돈이 많은 성기 앞에 친구들은 비굴해지고, 이제는 전셋값에 시달린 집주인 지호조차 성기에게 돈을 빌려보려 애쓴다. 하지만 성기는 안하무인 그 자리에 온 여자들을 농락하느라 바쁘고, 친구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모멸의 말과 행동들 뿐이다. 심지어 남은 것이라곤 학자적 자존심 밖에 없는 지호에게 돈을 주고 논문을 사겠단다. 시간이 흐를 수록, 한때 정의를 논하던 친구들은 가장 치졸한 중년의 모습만을 드러낼 뿐이고, 그런 그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의논조차 하지 않고 아이를 지운 정숙으로 인해 생활의 비애가 극에 달한 지호의 분노는 일탈이 되어 점증된다. 술을 가져오라, 음식을 가져오라, 유산으로 인한 휴유증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에게 권위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다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지호의 불만을 아내 정숙도 이기지 못하고, '나가라' 소리피며 무능한 가장의 이면, 허울만 그럴듯했던 마흔 무렵의 폐부가 드러난다.

그렇게 지호-정숙 부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절묘하게도 내내 이 부부의 신경전의 원인이 되었던 친구 경주(서유정)이 들이닥치며 극은 반전된다. 아내 정숙은 젊은 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던 경주가 자신의 남편 지호와 연인 관계였을 것으로 오해하지만, 다시 돌아와 정숙에게 여전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경주는 알고보니 정숙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지호는 정숙을 도발하고 결국 정숙의 손에 들린 칼을 스스로 당김으로써,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물론 지호의 현실 도피성 자살 시도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남편의 무모한 돌 잔치 강행으로 인해 시달리다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아내는 지고지순한 아내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남편과 함께 앰블런스를 타고, 친구와 가족들을 멀리한 채 하늘로 둥둥 떠가던 지호는 딸아이의 해맑은 모습에 떠나는 발길을 접는다. 붕괴 직전의 가족과 우정은, 오히려 지호의 자살 시도로 봉합된다. 마치 부부 싸움, 친구 싸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드라마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내리는 눈 송이 속에서 서둘러 친구들을 보러 들어가며 여전히 철없는 친구들을 그리는 것으로 행복하게 막을 내렸지만, 보는 시청자들은 방금 전 밥상을 들어엎고, 칼부림을 하던 그 기억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드라마는 이게 이게 다 철이 없어서라고, 제 아무리 동성애의 흔적이라도 살 부비고 산 부부애를 넘지 못한다고 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본듯한 피로감에 젖어든다. 저러고도 해피엔딩이면 다야? 하는 울컥하는 분노까지 느끼며. 120분의 연극이 불과 70여분의 드라마가 되는 동안 놓친 개연성으로 인해, 마흔 무렵 지호의 고뇌는 이해되지만, 난장이 되어버린 돌잔치의 해피엔딩은 쉽게 끄덕여 지지 않는다. 마치 마흔 살의 삶의 무게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동성애까지 해볼 수 있는 모든 장르적 실험에 동원된 듯한 느낌이다. 

좋은 원작이 곧 좋은 드라마가 아니듯이, 좋은 연극이었다고 해서,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늦은 밤이라고는 하지만, 공중파의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 아니 70분의 개연성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위해서, 친구들과 지호의 막장 행각은 '철없음'으로 면피도리 만큼 좀 조절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제대로 마무리 할 자신이 없는 동성애 코드라면 없는 게 나았다. 정숙-지호 부부만의 문제로도 단막극에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을 테니까. 원작의 배우들까지 출연한 열연에도 불구하고, '과유불급'이란 단어만이 자꾸 떠오른 실험의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2. 3. 09:41

1월 29일까지 ebs 다큐 프라임 6부작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가 마무리되었다. 1부 어메이징 데이, 2부 인재의 탄생1, 3부 인재의 탄생 등, 앞의 3부작이 이 시대에 대학생들이 '스펙'이란 강박을 통해 현재 대학 생활을 통해 추구하는 인재상이 아닌, 자신의 삶의 긍정에서 찾아지는 진정한 인재상을 찾는 것을 다룸으로써, 우리의 대학생들이 현재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면,  다시 4부 어메이징 데이2에서 시작된 후반부 3부작은 본격적으로 대학 속에서 이루어지는 배움의 과정으로 눈을 돌린다. 


역시나 시작은 10개 대 44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우리 대학생들의 진짜 이야기로 시작된다. 1부와 마찬가지로 대학이란 절반의 성공을 성취한 학생들은 하지만 나머지 성공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 세상이 정한 경쟁 구도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학년이 올라갈 수록 취직을 위해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어도, 입사 시험에서 동료의 실수를 기뻐하는 자기 자신에 섬뜩해 하면서도,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걷고 있는 그 과정이, '꿈'을 향한 과정이란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이 걷고 있는 '꿈'을 위한 과정은 제대로 된 것일까?
엉뚱하게도 <왜 대학에 가는가?>란 다큐의 5부 제목은 '말문을 터라'이다. 진정한 대학 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말하기를 걸고 넘어지다니?
5부의 시작은 오바마 대통령의 내한 연설 장면에서 시작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 특별히 질문권을 줬지만, 그 자리에 배석했던 기자들 중 그 누구도 선뜻 손을 들지 않는다. 심지어 대신 나선 중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넘기고 만다. 그리고 이 영상을 본 ebs의 기자들 역시 자기 역시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기자들이 이럴 진대, 당연히 대학 강의실의 풍경 역시 다르지 않다. 실험으로 한 수업 시간에 다섯 번을 연달아 질문을 한 학생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낼 정도로 우리 대학에서 질문이란 낯선 것이다. 학생들은 지나온 그들의 중, 고등학교 시절처럼 '조용히' 앉아 교수님의 수업을 경청한다. 

▲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다큐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이상한 시험을 본다. 1. 사람의 일생에서 인생의 꿈과 행복에 대한 생각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언제인가? 2. 운동장, 교실, 도서관에서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은? 3.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이라는 질문이었다. 대학생들도, 그리고 같은 질문을 받아든 교수들조차, 이 시험지에 나온 답을 고르는 것을 당혹스러워 했다. 
그런데 이 시험지의 질문들은 대학생이 된 이들이 지나온 초등, 중등, 고등 교육 과정 동안 배워왔던 내용들이다. 즉, 이들 학생들은 지나온 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면서, 그 과정에서 요구하는 모범 답안을 외우고 시험을 보면서 대학생이 된 것이다. 즉, 인생의 꿈과 행복을 이루는 시기는 중학교 시기요, 운동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오른쪽으로 걷기란 답안을 의심하지 않고 달달 외워야 대학을 갈 수 있었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 너도 나도 손을 들어 선생님께 자기 생각을 말하던 아이들은 '질문'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그저 주어진 것을 외워야지 물어볼 수록 이상한 사람이 되는 학생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왜 중요한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카메라는 시선을 밖으로 돌린다. 세계 노벨상 수상자 중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유태인들의 교육의 산실인 예시바 대학, 그곳의 교육 방식 '하브루타'를 조명한다. 두 사람씩 짝을 이뤄 묻고 토론하는 공부를 하는 이 교육 방식에 깔려있는 생각은 '말로 할 수 없으며 모르는 거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공부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은 3시간의 혼자 하기 공부와 말하기 공부 방식의 비교 실험을 통해 증명된다. 
일반적인 인간의 생각을 인지라고 하면, 그런 인간의 생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 메타 인지가 바로 말하는 공부를 통해 키워진 다는 것이다. 자신의 입을 통해 묻고 설명함으로써 자신이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자신의 진짜 생각이 키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질문을 하지 않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우리의 대학 효육은 가르치되 가르치지 않는 어리석은 과정을 쳇바퀴돌듯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큐는 질문과 말하기 교육을 거들떠 보았던 것이다. 

말을 잃어버린 대학생들, 그래서 생각의 말문을 닫은 대학생들에게서, 그래서 왜 대학에 가느냐란 질문을 던지면 당황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대학, 큰 배움과 큰 물음은 커녕 진리라는 말이 무색해진 대학에서 다시 배움의 답을 찾을 수는 있을까?

그것을 위해 6부 '생각을 터라'는 대학 내에서 적극적으로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 해법을 찾고 있는 교수 3명의 강의를 따라간다. 한 학기 동안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 한양대 학부 '유쾌한 이노베이션' 강의를 하는 정효찬 교수, 그리고 연세대 철학과 김형철 교수의 강의가 그것이다. 

이 세 교수의 강의를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곱 가지이다. 1.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2. 틀에 박힌 수업을 혁신하라. 3. 학생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 4. 질문으로 배움에 도전하라. 5.암기가 아닌 생각을 평가하라. 6. 교수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7. 최고의 교수는 학생이다. 세 명의 교수가 수업을 통해 밝힌 비법 일곱 가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이상적인 대학 강의를 위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누구나 다 생각할 법한 내용들을 교수들은 실제 자신의 강의를 통해 실천하고 있고, 이들 교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다큐가 지금까지 지켜 봐왔던 강의실에 수동적인 학생들과 달랐다. 학생들은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흔쾌히 밤을 지새웠으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질문을 던졌고, 다른 동료 학생의 질문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한 학기의 강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성숙시키고, 한 단계 발전하고 성취감을 느꼈다. 즉, 소통하지 부재한다는, 진정한 배움을 이룰 수 없다는 대학에서도, 가르치는 교수들이 노력만 한다면 학생들은 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다큐는 증명해 낸다. 

물론, 대학에서 제 아무리 인재를 배출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한다 하더라도, 청년 취업률이 30%를 윗도는 현실에서 대학의 존재는 무기력할 지도 모른다. 진실한 인재와 질문을 던지는 삶보다는 당장의 스펙과 등록금이 긴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인재, 살아가며 끊임없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대학이 기업을 위한 신입 사원 양성소가 아니라, 학문을 배우는 곳이란 본연의 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학생이라면,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본 세상이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이요, 취업률 30%의 사회에 대한 답도 스스로  쟁취해 낼 힘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청년 자살율 1위라는 오명 역시 던져질 수 있을 것이다. 

답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원칙적인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는 배움의 시작을 왜곡된 배움으로 얼크러진 우리 대학생들의 삶을 제대로 풀어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진짜 나머지 인생에서 필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이,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by meditator 2014. 2. 2. 18:16

1월 28일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3>의 백미는 신주연(김소연)과 그녀를 보살펴 주는 주완(성준)의 관계도, 신주연도 미처 깨닫지 못한 선배 강태윤(남궁민)과의 사랑도 아니다. 내일 방송을 앞두고 겨우 집에 들어가 옷이나 갈아입고 올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조기 폐경을 맞게 된 신주연의 동료이자, 고참인 이민정(박효주)과의 갈등이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이민정은 강도윤과 동기이자, 직장 연배로 보면 신주연에게 언니 대접을 받아야 할 연배이다. 하지만 늘 신주연에게 ‘자기야’라고 불리워지는, 신주연을 팀장으로 모셔야 하는(?) 위치의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신체적 변화가 생긴다. 흰 머리가 늘고, 달력의 잔글씨가 보이지 않고, 급기야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조기 폐경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늘 연애할 시간조차 제대로 없다고 푸념을 하던 그녀에게 일하느라 바쁘고 번거로워 금요일 밤의 원나이트 정도면 즐기기에 적당하다 하던 그녀에게 내려진 여자로서의 사형선고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의의 신체적 변화에 아노미 상태가 된 그녀는 그 일을 비밀 없이 지내는 듯한 사무실 동료들에게 토로하지만 돌아온 것은 내일 방송을 앞둔 팀장 신주연의 철면피같은 무반응이요, 그저 ‘왜 이렇게 바쁜 시기에’라는 난처함이 역력한 다른 동료들의 표정이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분노한 이민정은 ‘갑각류같은 년’이라며 신주연에게 퍼붓고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바쁜 동료들에게 이기죽거리는 심정으로 카톡으로 사직서를 날려 버린다.


<로맨스가 필요해3>가 사랑에 미성숙한 여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멋진 두 남성이라는 환타지에 충실한 로맨스 소설의 얼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음에도 젊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가는 측면은 그 로맨스 소설이 딛고 있는 현실성이다. 고시를 앞둔 애인 때문에 데이트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고사되어 가는 듯한 정희재(윤승아 ), 마흔을 앞두고 있음에도 직장 일에 얽매어 시원하게 연애 한 번 사랑 한번 못해본 이민정, 그리고 팀장의 자리에 오를 만큼 일에서의 성취는 눈부시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미성숙한 신주연까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이 그 중 누군가에게 자신을 투영하기에 충분할 캐릭터들이다.


그렇게 일에 압박당하느라 사랑도, 젊음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젊은이들의 삶을 케이블 tvn이 그려내고 있는 동안, 종편 jtbc<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그녀들의 언니급인 마흔 무렵의 삶이다.


직업적으로 안정된 지위에 올랐지만 결혼이라는 관문을 아직까지 넘지 못해 이제는 불안해 하는 김선미(김유미 )의 모습은 <로맨스가 필요해3>의 신주연이나 이민정의 미래가 오버랩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려한 결혼을 했지만 그 번듯함이 허명이 되어 고통으로 다가오는 권지현(최정윤)은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미경의 다른 버전 같기도 하다. 결혼도 넘고, 이혼까지 넘어버린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가장이 되어 자기 삶을 꾸려낼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윤정완(유진)은 이 시대 마흔 무렵 여자들이 빚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성이다.


(사진; 무비조이)


sbs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나은진(한혜진)은 세대로 치자면 jtbc <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와 같은 세대이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의 논조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그녀를 연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미경(김지수)의 시선이다. 자신의 동생이 미경의 동생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진은 자신이 전염병같다고 오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재학(지진희)와 정신적 외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경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고, 가족, 친지, 심지어 동네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외도 그 불가피성 여부랑 상관없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가고 있는 파장은, 외도가 가족에 미치는 사회 병리학적 조사 보고서와도 같은 것이다. 가족이, 남편이 전부였던 삶을 살았던 40대 중반의 여성 미경의 눈높이이다.


은진이 재학과의 외도 한번에 천형과도 같은 형벌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에 오면 드라마의 제목처럼, 상황은 한결 여유로워 진다. 비록 그녀가 낳은 숨겨진 딸의 아버지라는, 첫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이제는 엄연히 남의 집 부인과 그 집 남편의 사업상 파트너라는 위치에 놓인 지현와 안도영(김성수)는 사람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키스를 나눌 만큼 대담해진다. <따뜻한 말 한디>에서 ‘사랑’이기에 더 용서할 수 없던 외도가,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장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선미와 주완은 한 남자를 놓고 연적이 될 처지이지만, 결혼이란 제도에서 놓여진 그녀들이 철천지원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천형이던 외도에서 사랑이란 이름이 부각되고, 결혼이란 제도에서 헐거워진 그녀들은 한 남자의 사랑을 높고 자유로이 경주한다. 


(사진; osen)


<로맨스가 필요해3>로 가면 한 발 더 나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겼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신주연이지만 머리끄댕이 한번 잡는 것으로 지나간 회한을 풀어내고, 사업상 그녀가 필요하자 그녀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쿨’한 선택을 한다.  얼굴만 마주대면 으르렁거리다가도 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냉철한 카리스마를 놓치지 않는다. 사랑에 상처받으면 일로 풀어내고, 일이 힘들어 졌을 때 다시 사랑이 채워주는, 양수겹장의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하여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주연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일과 사랑 모두에서 그녀의 버팀목이던 도윤의 냉정함에 마주쳤을 때이다.


이렇듯 동시간대 sbs, jtbc, tvn에서 월화 10시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각 그 드라마의 타겟층이 되는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이혼을 해도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따뜻한 말 한 마디>의 그녀들과, 이혼 후의 가장이 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 >, 그리고 일이 곧 삶의 주된 동인이 되어버린 <로맨스가 필요해3>의 그녀들은 우리 시대 세대별 여성상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풍요를 맛본 중년의 세대와, 그 사이에 끼인 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세대별 사회적, 경제적 삶의 반영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1. 29. 12:54

온갖 부부 문제에 개입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아침 마당), 가상 결혼을 하고(우리 결혼했어요), 결혼을 앞둔 적령기의 남녀에게 소개팅을 하고(짝), 가족을 만들어 주던(사남일녀) tv가 이제 재혼 시장에까지 발을 들였다. jtbc의 <님과 함께>가 그것이다. 


재혼을 화두로 삼은 것은 물론 <님과 함께>가 처음은 아니다. <아침 마당>에서 종종 재혼의 문제가 등장했었고, <짝>에서는 '돌싱'들간의 만남을 특집을 다루어 화제를 끌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런 '특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님과 함꼐>는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가상의 재혼 부부를 등장시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봄으로써 재혼의 리얼리티를 예능의 소재로 끌어들인다. 

'재혼'이 비록 종편이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중적 반응을 얻고 있다는 jtbc에서 정규 방송으로 정규 편성되었다는 것은 한 해 840쌍이 결혼을 하고, 그 중 398쌍이 이혼을 한다는 50%에 가까운 이혼율을 보이는(OECD국가 중 3위) 우리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년층을 주된 타깃으로 삼고 있는 종편 JTBC에서 재혼을 담론으로 삼은 것은, <님과 함께>가 보여주고 있는 환타지성과 무관하게, 중년의 삶의 질에 있어 재혼이 더 이상 방치될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는 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님과 함께>는 두 쌍의 가상 재혼 부부를 등장시킨다. 일찌기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했던 부부를 연기했던 박원숙, 임현식, 그리고 배우 이영하와 전 농구선수 박찬국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면면은 재혼이라는 화두에 대한 제작진의 생각이 담겨 있다.
두 쌍의 재혼 부부 중 두 사람은 배우자를 병으로 잃어 사별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이혼을 한 사람들이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재혼의 사유가 되는 이혼과 사별을 통한 경험들을 담으려는 배려가 있었을 것이다. 

박찬숙과 임현식은 배우자와 사별을 했다. 그래서 박원숙의 표현대로,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평생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함께 결혼 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반면 박원숙과 이영하의 경우는 다르다. 왜 재혼을 하지 않으시냐는 박찬숙의 질문에, 이영하는 한번의 이혼으로 그렇게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또 겪고 싶지 않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나마 자신에게 귀책 사유가 있었음을 은연 중에 내비친 이영하는 나은 편이다. 상대방으로 인한 고통이 컸던 박원숙은, 결혼이라는 자체에 대한 지겨움을 표명했고, 도대체 왜 그러면 가상 재혼 부부 예능이 등장했는지 의문이 될 정도로, 임현식이든, 누구든 재혼이라는 자체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시한다.

덕분에, 의도하건, 의도치 않았건, 가상 재혼이라도 그것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려는 이영하 -박찬숙 부부와, 재혼 자체에 부정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박원숙과 그의 재혼 남편으로 떠맡겨진 임현식 부부의 생활은 모양새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영하-박찬숙 부부가 이영하의 집을 배경으로 재혼이라는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장도 보고, 밥도 먹고, 어떻게든 함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애쓰는 반면, 당장 임현식-박원숙 가상 부부는, 강렬하게 피력되는 박원숙의 재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먼저 경주되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되었다. 드라마에서도 언제나 갑이었던 아내 역할의 박원숙과, 그 앞에서 쩔쩔매던 을의 역할의 남편 임현식의 관계가, 재혼이라는 말만 들어도 징그러워 하며 벽을 치는 박원숙과, 그런 그녀와 어떻게든 재혼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내보고자 들이대는 임현식이라는 관계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첫 회의 박찬숙의 딸이 보내준 커플 잠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달달한 분위기를 낸 이영하-박찬숙 부부와, 손 한번을 잡아주어도 감읍하는 박원숙-임현식 부부의 관계가 계속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첫 날 장을 보러 갔을 때부터 참아야 했던, 그리고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진 이영하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잔뜩 도배된 이영하의 집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던, 그리고 가사일의 통제성을 선호하는 박찬숙의 허니문이 얼마나 지속될 지 의문이다. 20여년을 부모 밑에서 살아왔던 젊은이들도 결혼이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버거워 하는데, 이미 또 다른 배우자와의 경험, 그리고 홀로 살아 온 삶의 틀이 공고해진 중년의 삶이 어느 만큼 재혼이라는 것을 통해 유연해질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오히려 재혼이라는 말만 들어도 징그러워 하면서도, 자신이 혼자 하기 버거웠던 커튼 달기며, 앞 마당 정리같은 일들을 척척 해내는 임현식을 다시 보는 박원숙에게서,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닫아왔던 삶의 봇물이 터졌을 때,그리고 배우라는 길을 오래 함께 걸어왔던 두 사람의 유대로 인해 오히려 더 반전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박원숙-임현식 부부의 앞날을 점쳐 볼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디 그 어떤 것이 되었든, 그 과정이, 그저 가상 재혼의 아름다운 환타지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재혼의 고민을 성의있게 담아주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28. 10:46